인간이길 거부한 악질 범죄자들 4편 -로스토프의 백정 안드레이 치카틸로-

콜로라도2015.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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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명은 로스토프의 백정(Ростовский Потрошитель).
소련 역사상 최악의 연쇄살인자

 

1936년 우크라이나에서 가난한 광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선천적으로 병약한 체질이었던 그는 가난한 집안 환경이 겹쳐 굶기를 밥 먹듯 했고, 그로 인해 점점 시력을 잃어갔다. 게다가 유아 시절 만성적인 야뇨증으로 인해 어머니로부터 매우 혼났다고 한다 그리고 사춘기 과정에서 자신이 발기부전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심한 고민에 빠졌고 이에 정력제를 먹거나 나뭇잎을 갈아서 으깬 것을 성기에 바르는 등의 여러 방법을 시도했으나 모두 실패로 끝나자 매우 절망했다고 한다. 그래서 치카틸로는 그 대안으로 독서와 공부에 열중하며 마을 안에서 수재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으나 당대 최고 명문 대학이였던 모스크바 대학 법학부 수험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치카틸로의 어머니는 항상 어린 그에게 '네 큰 형이 반체제사상가로 몰려 공산당원들에게 산 채로 잡아먹혔다'는 말을 하곤 했고, 이로 인해 생긴 극도의 강박관념과 형을 잡아먹은 존재에 대한 공포를 갖게 되었다 거기에 시력을 잃음으로써 생긴 콤플렉스가 더해져 정신적인 문제까지 생기게 되었다. 또한 몸이 굉장히 나쁜 데다가 발기부전이라는 병을 가지고 있어서 성생활이 매우 힘들었고 이것이 훗날 범죄 행각에서 강간보다는 잔혹한 살해에 더 집중하는 원인이 되었다. 한편으로 어린 시절에는 왕따를 굉장히 심하게 당했는데 그의 여동생의 증언에 따르면 "오빠는 항상 혼자였습니다. 오빠는 아이들이 자신을 따돌리는 것을 무서워하여 항상 건물 구석에 숨어있는 불행한 사람"이라고 했다. 이러한 일들로 인하여 그는 자신의 콤플렉스와 세상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힘든 어린 시절을 보내다가 1963년 여동생의 친구와 결혼하였다. 여기에는 치카틸로가 술을 즐기지 않는다는 사실이 큰 이유 중 하나였다. 한편 치카틸로는 발기부전을 숨기고자 자신의 아내에게 결혼 전 순결을 지켜주고 싶다는 변명으로 성관계를 피했지만 그래도 불임은 아닌지라 아이는 가질 수 있었다. 그렇게 슬하에 아들인 유리와 딸인 류드밀라 두 아이를 두었지만 허약한 체질로 인해 생긴 성기능 장애 때문에 가정생활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눈도 거의 실명상태가 된지라 제대로 된 직업을 구하는 것도 어려웠다. 군 제대 후 대학에서 교사 자격증을 딴 그는 광산 지역에서 아이들을 가르쳤지만 생활은 녹록치 않았다. 당시 학생들은 가난한 형편 때문에 제대로 먹지 못해 마른 몸이었던 치카틸로를 '거위'라고 부르며 조롱했다. 그러다가 수영장에서 아이들과 수영을 함께하다가 여자아이를 강간하고 싶다는 충동이 느껴져 여자이이를 강간하려고 했으나 여자아이가 격렬히 반항하기도 하고 게다가 발기부전으로 인하여 실패하였다. 만약 이 때 치카틸로의 범죄가 밝혀졌다면 이 인간 백정은 아마 교도소로 가거나 정신병원에서 치료를 받았겠지만(...) 여자아이가 수치심으로 인해 이야기하지 않아서 결국 그냥 유야무야 넘어가 버렸다. 그러다가 학생 중 일부가 우연히 그의 집안에 불순분자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내고는 이 사실을 학교에 고발, 결국 교단을 떠나야 했다. 그나마 이후에 공장 일도 하다가 80년대 와서는 지방의 작은 기숙사학교 사감으로 일하게 된다.

 

그에게 숨겨진 본능이 앞의 여자아이의 강간 시도를 통해 서서히 눈을 뜨게 되고, 결국 42세가 되던 1978년 이 무렵부터 그는 잔혹한 살인마 로스토프의 백정의 삶을 살기 시작한다. 9살 소녀 옐레나 자코트노바를 먹을 것을 준다는 명분으로 오두막집에 데려와 강간하려고 했으나 옐레나가 격렬히 저항하여 이번에도 강간은 하지 못하고 잔혹하게 목을 졸라 살해한 후 시체에 자위를 했다. 그러면서 밤마다 거리를 지나는 소녀와 여자아이들에게 먹을 것을 준다는 이유로 그들을 꼬셨고. 아이들만 죽인 것이 아니라 성인 여성들을 끔찍하게 유린한 후 성폭행을 하기도 하면서 살해했다. 치카틸로의 피해자들의 연령은 다양했다. 21살의 여성을 비롯하여 헝가리에서 온 여자 유학생 및 16살~17살 정도의 청소년 남녀도 피해자들 중에 포함되었다. 젊은 시절의 교사 생활을 통해 그는 아이들과 성인 여자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움직이는지를 매우 잘 알았고 이를 잘 이용했다.

충격적인 것은 치카틸로가 인육을 먹었다는 사실인데, 희생자들의 신체 일부를 절단하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심지어 희생자들은 아직 살아있는 상태에서 자신의 신체가 잘라지는 장면을 보기도 했으며, 다른 사람이 먼저 죽어 치카틸로가 다른 사람의 인육을 잘라내는 것을 목격하며 공포감을 느끼던 때도 있었다고 한다. 이때 그는 희생자가 공포심에 떠는 모습을 즐겼다고 한다. 잘라낸 부위의 경우 남자는 성기를 잘라내고 여자는 내장을 무자비하게 파헤친 뒤 자궁을 꺼내가거나 유방이나 눈알, 엉덩이살 등 여러 신체부위를 잘랐는데 이때문에 시체는 거의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게 파헤쳐져 있었다고 한다. 수사관들이 검식을 하려고 왔을 때 너무도 잔인하고 무참히 시체가 훼손되어 있어서 이건 짐승이 사람을 잡아먹고 시체를 찢어놓은 것이라고 생각할 정도였으며 러시아의 베테랑 강력반 형사들이나 검식관들도 이런 잔인한 범죄는 처음 본다면서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그러고는 태연하게 희생자들의 인육을 집에 가져가서 인육을 소고기라고 속인 뒤 가족과 함께 먹곤 했다

 

그러나 피해자들이라고 그냥 당하지만은 않아서 치카틸로의 손톱 하나는 한 피해자가 물고 뜯으면서 저항하여 뽑혔고, 피해자가 치카틸로에 저항하면서 다른 손등을 물어서 생긴 이빨 자국이나 묶인 상태에서도 온 힘을 다해 박치기를 하여 치카틸로의 콧등이 부러졌다든지 온몸 구석구석에 상처가 꽤 많았다. 그 때문에 훗날 치카틸로가 범인이라는 것을 밝혀낼 수 있었다.

아침마다 살덩이가 잘려나간 시신들이 발견되자 당시 언론과 시민단체들은 이 얼굴 없는 살인자를 '시민 X(Citizen X)'라고 부르며 두려워했다. 그때까지 그에게 살해당한 이는 무려 53명 이상이었지만, 치카틸로가 체포되기 전까지 그 정체는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었다

 

치카틸로가 이렇게 잡기가 어려웠던 또다른 이유는 그의 지능적인 범행 수법 때문으로, 성폭행을 하는데 남자아이를 살해하기도 하여 수사가 혼선에 빠지기도 했다. 거기다 정말 특이하게도 그는 정액의 혈액형과 타액의 혈액형이 일치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시체 주변 마을의 인물들을 다 조사해보아도 정액의 혈액형과 일치하는 혈액형의 소유자를 찾지 못했으며 수사관들조차 악마가 살인을 저지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흔히 치카틸로를 잡지 못한 이유가 러시아 경찰의 삽질이거나 묻으려고만 했던 태도 때문에 잡지 못했다고 오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러시아 경찰도 이 끔찍한 살인귀를 잡으려고 무지하게 애썼다 하지만 설마 누가 정액의 혈액형과 타액의 혈액형이 다르다는 생각을 하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수사관들이 물증이 있거나 그가 수사선상에 올라도 "저 사람은 혈액형이 다르잖아. 저 사람은 범인이 아닐거야"하는 식으로 생각을 해서 치카틸로를 의심하지 못했다.

 

그러나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 연쇄살인범을 끈질기게 쫓던 조지아 출신의 수사관 이사 코스토예프와 수사반에 의하여 마침내 검거된다. 살인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현장을 배회하던 것이 결국 치카틸로의 덜미를 잡은 것이었다. 코스토예프는 그가 계속 살해 현장 근처에 있었으며 그가 잡히기 6년 전에도 그가 살인현장에서 같은 가방을 메고 똑같은 물건과 노끈, 얼음 송곳 등을 가지고 있었던 사실을 기억해내어 그를 체포하려고 했다.

1990년 11월 20일. 치카틸로를 용의자로 지목하고 체포할 기회를 노리던 코스토예프와 수사반은 그가 카페에 있는 것을 확인하고 그를 체포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들어갔다.

그러자 그는 저항 없이 순순히 붙잡혔는데, 그가 체포되었을 때 보인 태도는 수사관들을 상당히 의아하게 만들었다, 왜냐하면 범인의 잔혹도로 보아 범인은 광기에 가득 차 있고 대단히 폭력적이고 잔인한 인물일 것이라 생각해서 건장한 형사들을 대거 대동하고 출동했는데 정작 체포된 범인은 한때 교사였을 뿐더러 너무나도 침착했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던 그였지만 거듭되는 심문에 결국 범행 일체를 자백했고, 자신을 잡아주어서 그리고 이 살인을 끝내준 당신에게 감사하다며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고 한다.[ 살인만큼 황홀한 경험은 없을거예요]

 

그리고 여담으로 한 번 있었던 아내와의 짧은 면회에서 다음과 같은 말과 함께 가족에게 사죄했다고 한다.

"네 말대로 병원에서 성 불능 치료를 받았어야 했어."

 

 

대부분 여성과 아이들인 피해자의 수는 지금도 확실하게 나와 있지 않다. 법원과 경찰은 치카틸로가 53명 정도를 죽였다고 추정하고 있으나, 치카틸로 본인은 자신이 적어도 57명 정도의 사람을 죽였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한가지 확실한 사실은 이 미치광이에게 공격을 받거나 죽을 고비를 넘긴 사람들의 숫자는 약 100여 명에 달할 것이란 사실이다. 심지어 체포되기 직전에도 아이를 꼬셔서 살해하려고 까지 했으니...

만일 미국이었다면 사법거래를 통해 치카틸로의 범행을 입증할 수도 있었겠지만 소련은 그런 제도가 없었기 때문에 결국 치카틸로가 처형된 뒤 드러나지 않은 희생자들은 묻힐 수밖에 없었다

 

 이례적으로 치카틸로의 공판 때에는 과정이 언론에 생중계되었다(러시아에서는 굉장히 드문 일이다). 그는 쇠우리에 갇혀서 재판 과정을 지켜봤는데, 희생자의 친척이나 친구에게 공격을 받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취해진 조치였다. 치카틸로가 재판장에 모습을 드러내자 희생자 가족들은 모두 분통을 터뜨리며 치카틸로에게 "이 악마야,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 "재판관님, 우리들에게 치카틸로를 넘겨주십시오. 우리들도 그가 했던 것처럼 똑같이 그를 죽이고 싶으니까요"라고 외쳤다. 2차 공판이 끝나고 어떤 방청객은 판사가 재판장을 떠나자마자 방청석에서 뛰쳐나와 치카틸로에게 짧은 철막대기를 던졌다. 치카틸로의 머리를 맞추지는 못했지만, 그의 머리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철막대기가 날라갔다. 그 남자는 희생자 중 한명의 오빠였으며 그는 경찰들에게 잡혀 끌려갔지만 나중에 풀려났다

 

치카틸로는 법정에서 굉장히 이상한 행동을 했는데. 갑자기 숨을 거칠게 몰아쉬거나 두 눈을 마구 굴리는가 하면 피식피식 웃기도 했다. 그의 살해 행각을 알고 있는 사람은 이 영상을 보고 그가 미친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그가 사형을 피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미친 행동을 한 것이었다. 만약 그렇게 미친 놈이었다면 아이들이 그를 따라가 살해당하지도 않았을 것이며 그가 그토록 다른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걸리지 않았던 이유도 설명되지 않는다. 게다가 그는 심리 검사 결과 그냥 살인을 즐기는 사이코패스였다.

그래도 죽기는 싫었는지 재판이 진행중일 때에도 치카틸로는 유족들을 비웃으면서 끊임없이 재판을 방해했는데, 갑자기 소련의 성가를 불러대거나 갑자기 큰 소리를 내면서 웃거나 피해자들을 모욕하고 조롱하기도 했으며 심지어 자신의 성기를 내보여 흔들면서 "이 쓸모없는 것을 보시오. 이것으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이오"라고 하기까지 했다. 이러한 언행으로 그는 끌려나갔다가 판결 결과를 듣기 위해 다시 들어왔다. 소련이 붕괴된 뒤에는 러시아로 처벌 권한이 넘어가 재판이 계속되었다.

그러나 그런 노력에도 연쇄살인범에 대한 처단형은 이미 정해졌으니, 결국 1992년 공개재판에서 사형 선고가 내려졌다. 판사는 다음과 같은 말을 끝으로 판결을 마무리했다.

"그가 저질렀던 끔찍한 살인을 고려하였을 때 본 재판부는 단 한가지 판결만을 내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재판부는 치카틸로에게 사형을 선고합니다."


2년 뒤인 1994년 3월 31일에 사형이 집행되었다. 재판 당시 어떻게든 살아볼 생각으로 정신이상자 행세를 하고(정신이상으로 판명되면 무죄가 되기 때문에) 보리스 옐친 당시 러시아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내기도 했지만 그런 시도도 소용없이 결국 처형되었다. 이 때 사람들이 환호했으며 치카틸로만이 거짓말이라고 판사에게 격렬히 항의하였다.

 

 

이 당시 치카틸로는 항의 정도가 아니라 "씨X! 난 애국자란 말이야! 왜 나를 그렇게 죽이려 드는 거지?" 라고 적반하장 격으로 판사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발광했으나 판사는 무표정하게 무시했다고 한다. 하지만 대다수의 유족들은 환호보다는 우리 아이들을 죽인 것처럼 잔인하게 죽여달라고 요구했다. 재판 당시 아들을 치카틸로에게 잃은 한 어머니는 이성을 잃고 덤벼들었다가 제지당하자 저 악마를 내 아들이 당한 것처럼 죽여달라고 대성통곡했다.

결국 치카틸로는 총살형에 처해졌는데, 기록에 의하면 처형 당하기 전에 죽고 싶지 않다며 울면서 살려달라고 발광했다. 이에 교도관이 "그럴 놈이 사람은 왜 죽이고 법정에서 좋아라 웃어? 그냥 편하게 죽여주는 것에 고마워해라"라고 하자 발버둥쳤기에 교도관에게 얻어맞고 사형장으로 끌려가 총살이 집행되었다고 한다. 이때 치카틸로에게 11살난 아들을 잃은 한 내외는 너무 편하게 죽인다며 "내 아들과 많은 피해자처럼 산 채로 찢어 죽여야 했어!"라고 형이 집행된 뒤 불만스럽게 이야기했다

 

뒷이야기

 

이 사건은 러시아와 전세계를 뒤흔들었으며 그의 악행이 알려지면서 그의 추종자들 또한 생겨났는데, 이들은 치카틸로를 옹호하고 추종하기도 하였다 문제는 이 추종자 가운데 하나가 악명 높은 러시아 체스판 연쇄살인사건을 일으켰다는 사실이다.

 

출처: 나무위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