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가라.

다신 만나지말자.2015.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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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파 드라마나 유치한 연애소설 따위에서 나오는 흔하디 흔한 구절 마냥,  

잘 가라. 그리고 행복해라. 이따위 말을 했더라면 우리 8년간의 엔딩이 좀 블링블링 했을까.

 

개 소리지.

세상에 그 어떤 이별도 아름다운 이별은 없어.

좋은 이별도 없다.

무 자르듯 숭텅 감정을 잘라내고 이제 정리 끝. 다시 시작. 이런 깔끔한 이별도 없어.   

그 어떤 말로 표현해도 이별은 그냥 이별일 뿐이지.

 

네가 미웠다가 화도 났다가, 너 때문이다 싶었다가 또 내 잘 못인가 싶기도 하다가.

잠깐 멍 때리는 사이에도 이 모든 기분들을 수백번은 오르락내리락 하게 만드는 게 이별이지.

 

너와 나의 감정은 이미 바닥까지 쩍쩍 말라 비틀어졌고, 

다시 채울 사랑도, 또는 사랑을 대신해서 채울 수 있는 것도 없기에 결판나버린 관계. 이별. 

 

화가난다.

내 꽃다웠던 그 시간들 통채 도려내어 고스란히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것 같아서.

 

쏟아 부은 쪽이 미련이 없다지?

너도 알고, 나도 알고, 모두가 다 알듯이 등신같이 있는대로 네게 쏟아부은 건 내 쪽인데,

그럼에도 미련이 남는 것 같아서 그것도 화가 난다.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미련이 아니라 미련으로 착각하는 감정인거지.

8년을 옆에 있다 없어졌으니 내가 아무리 정신줄 부여잡고 있다한들 나도 모르는 새

덜컹덜컹 열려버리는 우매한 내 감정들 때문에 너무 화가 난다.

 

내 생각엔, 네가 내게 했던 것의 백갑절 만큼을 너에게 했다 생각하는데..

너는 부족하다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주어도 주어도 더 달라 하던 너였으니까.  

 

어쨋든 그게 몇갑절이든 몇백갑절이든, 너보단 내가 더 공을 들였음을 너도 알고 있으니까.

너는 내가 치뤄낸 시간의 두배 만큼만.. 딱 그만큼만 더 아파했으면 좋겠다.

 

잘 가라.

 

지나가야 알겠지. 혹은,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너의 옆에 있어봐야 알테지.

 

이기심으로 똘똘 뭉친 사람을 만나서.

손에 꼭 쥐고 절대 놓을 줄 모르는 사람 만나서.

너한테서 열을 뺏어가고도 부족하다 말하는 사람을 만나서. 

 

내가 너에게 무슨 마음이었기에,

얼마나 사랑했기에 그리도 남김없이 다 털어 부을 수 있었는지.

늦게라도 알았으면 한다. 두고두고 새겼으면 한다.

그리고 두고두고 내가 그리웠음 한다. 두고두고 후회했으면 한다. 

다 되었다. 이제.

너는 갔고, 나도 돌아섰고. 

이제 다 된거지.

 

길고 긴 시간 엿가락처럼 지지리도 안 끊어지고 늘어지더니

이렇게 쉽게, 너무 간단하고 너무 어이없게 툭.

 

네 부모도 못해준 것들을 너에게 쏟아부었던 내가..

이제는 날 좀 생각하면서 이기적으로 살겠다 했더니

앞으로 부담주는 일 없을 거라던 너의 한마디.

 

웃었다. 내가.

너무 많이 웃었다.

 

처음 들었을 땐 배를 잡고 웃었다.

두번째 곱씹을 땐 화가 나서 미치는 줄 알았고.

세번째 곱씹었을 땐 한도 끝도없이 서러워서 밤새 울었드랬다 내가.

 

 

너의 이 말. 두고두고 기억하면서

네가 보고싶어 질 때마다 기억하면서

네가 그리워 질 때마다 기억하면서

너한테 전화하고 싶어 질 때마다 기억하면서

꾸역꾸역 밀고 올라오는 감정 마다마다

나는 모조리 다 잘라버릴 것이다.

 

꼴에 이별이랍시고 마지막까지 질질 짜면서 지지리 궁상 맞을까 걱정했는데,

네가 남겨 준 단도같은 한마디 덕에 고고하게 자존심은 지킬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네가 그리도 가지고싶어 안달내고 닥달내던 여자였었다.

많이 못 받고 산게 안쓰러워서 아낌없이 부어주니 밑둥까지 잘라 달라던 너였지. 

 

잘 가라.

행복하란 말은 도저히 못하겠다. 영원히 불행하길 바라지도 않는다.

무엇이든 내가 겪은 시간의 두배만큼만, 네가 치뤄냈으면 좋겠다.

 

이제 정말 끝났다.

시원하다.

후련하다.

아무렇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