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문득 그럴 때가 있다. 온 몸이 오싹하고 경고음을 보내는 듯한, 꿀 같은 잠을 자다가도 화들짝 놀라 일어나고 마는 날이 있다. 그런 날에는 무언가가 내게 경고를 보내는 것 같다. 그 때가 그랬다. 나는 고3이였다. 그 날도 나는 얼마 남지 않은 입시 때문에 새벽까지 공부를 하다 거실에서 잠이 들었었다. 새벽 3시쯤 되었을까, 무언가 오싹 하는 기분이 들었다. 지금 일어나야 한다는 기분이 들어 잠에서 깼다. 비명소리가 들렸다. 몽롱 했던 정신을 바짝 긴장시켰다. 엄마의 소리였다. 처음에는 이게 무슨 소리인가 했다. ‘내가 아직 꿈을 꾸나?’
내가 멍하니 있을 동안 소리는 점차 커졌고 욕설도 간간히 들려왔다. 비명은 엄마의 소리였고, 욕설은 아빠의 소리였다. 무서워서 거실에 앉아 소리쳤다. “아빠 지금 뭐해!!!!” 내가 소리를 질렀음에도 불구하고 소리는 줄어들지 않았다. 방에서 아직 자고 있는 동생들의 생각이 났다. 한 번도 내가 맏이라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는데, 동생 생각이 먼저 났다. 맏이인 내가 부모님을 말려야한다는 생각도 함께 들었다. 내 외침을 엄마는 들었는지 경찰에 신고하라고 소리쳤다. 안방으로 가 문고리를 돌렸다. 아무리 돌려도 문은 열리지 않았다. 안방에 나 있는 베란다가 생각이 나 베란다로 뛰어갔다. 그리고 보았다. 하얀 침대 위에 엄마의 긴 머리카락이 풀어헤쳐져 있었다. 그 위에 아빠가 있었다. 목을 조르고 있었다. 아빠가, 엄마의 목을 조르고 있었다.
너무 놀래서 입이 얼어버린 탓 인지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냥, “아빠 지금 뭐해?”라는 말 밖에 나오지 않았다. 아빠는 나를 보고 신경쓰지 말라고 했다. 이건 어른들의 얘기니까 나는 끼어들면 안 된다고 했다. 빨갛게 부풀어 오른 엄마의 얼굴을 보며 엄마가 저러다 터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죽을 것 같았다. 내가 계속 베란다에 서서 멍하니 바라보고 있으니 아빠는 꺼지라고 했다. 아빠가 던진 베개에 얼굴을 맞았다. 엄마는 계속 경찰에 신고하라고 소리쳤다. 바로 달려가서 아빠를 밀치고 엄마를 도와주고 싶었는데, 아빠가 너무 무서웠다. 다리가 움직여지지 않았다. 그냥 나는 그 자리에 서서 소리치는 일 밖에 못했다.
그 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을 때 내가 할 수 있었던 일은 동생들을 방 밖으로 못나가게 하는 일 뿐 이었다. 방문을 꼭 닫고 9살 차이 나는 어린 남동생을 토닥이며 나도 확신 할 수 없는 이야기를 했다.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질 거야.‘ 그리고 우리 집에서 제일 예민한 둘째동생의 귀에 MP3를 꼽아주고 가장 크고 신나는 노래를 틀어 주었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아니, 전부는 아니였을 것이다. 다른 선택지도 있었겠지. 다른 선택을 하지 못 한 이유는 그냥... 내가 겁이 많아서 그랬을 것이다. 나는 아빠가 무서웠다. 이번에도 나는 무서워 안방에 들어가지 못했다. 아빠를 말리지 못했다. 엄마를 도와주지 못했다. 엄마는 늘 엄마를 도와 주지 못하고 쳐다만 보는 내가 얼마나 미웠을까? 다시 거실로 돌아와, 거실에서 “지금 안 그만두면 경찰 부를거야!”하고 소리쳤다. 소리치고 난 후에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오히려 아빠는 경찰에 신고하면 죽여버린다고 소리쳤다.
수화기를 들고 112 번호를 눌렀다. 처음 눌러보는 번호라 이 번호가 맞을까 싶었다. 웃긴 상황이 아닌데도 웃음이 나왔다. “여보세요?” “네.. 저기 있잖아요..” “울지말고 천천히 말씀하세요” 그때서야 아, 내가 울고있구나. 그 생각이 들었다. 엉엉 울며 상황을 설명했다. 누군가 이 상황을 말려줬으면 싶었다.
“아빠가 엄마를 죽일 것 같으니까 빨리 와주세요.”
뺨을 맞았다. 수화기를 내려놓자마자 나는 “경찰에 신고했으니까 그만해!!!” 하고 소리쳤다. 그렇게 내가 문을 아무리 두들겨도 열리지 않던 안방 문이 열리더니 아빠가 나왔다. 뺨을 맞았다. 그리고 쇼파에 부딪혔다. 쇼파에 부딪힌 등과 팔 뒤꿈치보다 아빠한테 맞은 뺨이 더 아팠다. 그리고 ... 잘 기억나지 않는다.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아빠는 나와 엄마 탓을 했다. 집에 돌아오면 집안 꼴은 어떻고, 아무도 자기한테 인사를 안 한다며 화를 냈다. 그 와중에도 동생들이 깨서 저런 말을 들으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1분이 10분 같았고 시간이 너무 더디게 갔다. 20분 쯤 흘렀을까, 경찰이 왔다. 아빠는 변명을 했다. 20분 전엔 화를 냈는데 이번엔 변명을 했다. 나는 아무 잘못 없다. 당신들 같으면 집안 꼴이 이러는데 화가 안나냐? 이건 우리 가족사니까 끼어들지 말아라. 나는 떳떳하다. 경찰서? 까짓 거 그냥 가지 뭐. 난 떳떳하니까.
웃겼다. 수치스러웠다. 부끄러웠다. 나를 잘 모르는 사람이 나의 이러한 상황을 알게 되었다는게 웃기고 수치스러웠다. 또 누군가에게 뺨을 맞았다는 사실이, 그리고 그걸 때린게 아빠라는 것 또한 너무 웃기고 웃겼다. 나도 그런데 저 사람들은 우리가 얼마나 우습게 보일까? 경찰관 아저씨가 아빠를 밖으로 내보내고, 엄마와 나에게 괜찮냐고 물어봐주었다. 엄마는 경찰관 아저씨한테 일이 어떻게 된 건지 말을 했다. 하지만 그건 내가 들을 이야기가 아니었다. 엄마가 나에게 말 해줄 때, 나는 그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공부방에 가 수학책을 폈다. 가장 쉬운 문제를 붙들고 10분을 생각했다. 자꾸만 눈물이 나서 문제를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적분 공식을 생각하다가도 아빠가 엄마한테 말했던 욕이, 행동이 계속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경찰차를 탔다. 엄마와 함께 경찰서로 갔다. 아빠는 다른 차를 탔다. 불과 몇 시간 전의 일이 꿈처럼 느껴졌다. 그냥 내가 지금 아빠를 경찰에 신고했고, 내가 본 것에 대해 진술서를 쓰러 간다는 게 현실 같지가 않았다. 드라마나 다큐멘터리에서 보던 일들이 나한테 벌어졌다는 게 믿기지가 않았다.
티비에서만 보던 형사를 만났다. 가정폭력은 형사과에서 담당한다고 했다. 웃겼다. 한 번도 올 일이 없을 것 같던 곳에 나는 지금 목격자로써 진술을 하러 왔다는 게 웃겼다. 형사아저씨가 처벌을 원하냐고 엄마랑 내게 물어봤다. 우리는 처벌을 원한다고 했다. 형사아저씨는 접근금지를 신청 할 수 있는데 이러이러한 법이라고 설명을 해주었다. 다른거 다 필요 없고 접근금지 신청을 받는데 일주일이 걸린다는 것만 기억에 남는다. 그럼, 접근금지가 효력하지 못하는 일주일 동안은 어떡하지? 가해자와 피해자는 서로 못 만나게 하는 게 당연한거 아닌가? 더구나 나는 가해자를, 아빠를 신고했는데. 아빠가 아까 내게 했던 말 대로 날 죽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서웠다. 경찰 측에서는 아침까지 아빠를 유치장에서 맡아주겠다고 했다. 그래서 최대한 일을 빨리 마무리 짓고 나는 채린이네 집에, 엄마는 찜질방. 동생들은 엄마를 따라가거나 각자 친구 집에서 며칠 자기로 약속했다. 집은 아빠가 찾아 올 수 있으니 갈 수 없었다.
경찰서를 나오니 7시쯤 되었다. 집에 도착해보니 동생들은 깨어 있었다. 둘째 동생의 얼굴에 운 티가 가득했다. 들었나보다. 어디서부터 들었을까? 예민한 동생이 걱정되었다.
나는 평소와 같이 학교에 갈 준비를 했다. 교복을 입었고 가방을 챙겼다. 새벽에 있었던 일이 거짓말같이 느껴졌다. 보통의 일상과 같은 아침이었다. 다만 내 기억의 어제의 아빠, 오늘의 아빠 모습이 달랐다. 엄마의 목을 조르던 아빠와 그저께 엄마가 해준 밥을 같이 밥을 먹던 아빠의 모습이 자꾸만 비교되었다. 여느 때보다 일찍 학교에 도착했다. 화장실에 가서 얼굴을 점검했다. 새벽부터 내내 울었더니 눈이 팅팅 불어있었다. 이 몰골을 하고 반 친구들을 어떻게 볼까, 덜컥 겁이 났다.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걸 아무도 몰랐으면 싶었다. 4층의 교실까지 올라왔지만 차마 교실 문을 열 수 없었다. 교장선생님이 마련해 주었던 특별실이 기억이 났다. 혼자 공부할 때 독서실 말고 여기 와서 공부하라고 만들어 주신 방이였다. 비밀번호도 나 포함 5명밖에 모르는 방이니 괜찮겠다 싶었다. 8시 10분이 되었고, 나는 야자실에 혼자 앉아 담임선생님께 말씀 드려야 하나 고민했다. 지각 처리가 되면 대학 입시에서 0.5점이 깎인다던 우스갯소리가 생각이 났다. 고민은 짧았다. 선생님께 ‘쌤, 저 학교긴 학굔데 반에 못 들어가겠어요..’ 라고 전화를 드렸다. 선생님은 무슨 일 있냐, 어디냐고 물어보셨다.
아침 조회를 끝내시고 선생님은 특별실에 오셨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초지종을 말씀 해 드렸다. 작년 2학년 때의 담임 쌤은 같이 울어줬을 것 같은데 3학년 담임선생님은 남자라 그런가, 아니면 그냥 성격이 그러신건가 별 말 하지 않으셨다. 그냥 가만히 앉아 내가 우는 걸 쭉 보고만 있으셨다. 그렇게 나를 쭉 바라만 보던 선생님께선 내가 진정된 것 같자 ‘많이 속상했지?’ 라고 물어보셨다. 그 한마디에 갑자기 눈물이 터졌다. 진정되려던 마음이 더 복잡해져 아까보다 더 많이 울어버렸다. 내가 다 울고 나자 선생님은 오늘 하루 야자실에 있을건지, 수업을 들을건지 물어보셨다. 시험이 얼마 남지 않은 게 기억이 나서 1교시 지구과학 수업을 듣겠다고 했다. 1교시 수업을 듣는데 수업에 집중이 되긴 커녕 새벽의 일이 자꾸만 생각이나 나도 모르게 훌쩍이게 됐다. 시험기간이라 예민해 져 있는 애들에게 미안했다. 2교시 때는 선생님께 그냥 야자실에 있겠다고 말씀드렸다. 선생님은 쉬는 시간마다 교무실에 올라오는 조건으로 허락해 주셨다. 야자실에 내려가서 과학책을 폈다. 일주일도 채 남지 않은 모의고사가 생각이 났다. 가고 싶은 대학교가 생각이 났다. 그리고 그 학교에 입학하기 위해선 모의고사 성적표를 제출해야 한다던 담임선생님의 말씀이 생각이 났다. 모의고사는 일주일도 채 남지 않았다. 내신 시험도 얼마 남지 않았다. 공부를 해야 했다. 그런데 눈이 너무 아팠다. 새벽부터 지금까지 내내 울기만 했더니 머리도 너무 아팠다. 잠깐 눈을 붙이고 할까, 했는데 눈을 감으면 오늘 새벽에 있었던 일이 자꾸만 생각이 나서 잠들지도 못했다. 혼자만 있으니 자꾸만 더 기분이 쳐졌다.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다른 애들은 공부만 해도 될 텐데 왜 나는 신경 써야 할 일이 더 늘었을까. 왜 나만 그런 걸까. 왜. 왜. 왜.
하교 후에 채린이 집에 갔다. 갑자기 찾아갔는데도 채린이의 부모님은 날 반겨 주셨다. 여러 좋은 소리도 해주셨다. 특히 어머니 아버지가 싸운 것은 나의 탓이 아니라고 말씀 해주셨다. 부모님의 일은 부모님의 일이라고 해주셨다. 채린이가 부러웠다. 그런 좋은 어머니 아버지를 둔 채린이가 너무나 부러웠다.
시간이 약이라 한다. 옛 말에 틀린 말 없다고, 나도 그게 답인 줄만 알았다. 고등학교 3학년 이후 나는, 우리는. 우리 집은 이 이야기를 묻어뒀다. 그렇게 묻어만 두면 언젠가 다 해결 될 줄만 알았다. 나는 지금 이 이야기를 쓰며 그때의 과거의 일을 되짚어 보게 됐다. 그리고 깨달았다. 나는 그때 이후로 성장 하지 못했구나. 21살의 나와 19살의 나는 같은 사람이구나. 그 날, 아버지를 말리지 못해 엉엉 울었던 내가. 그때 그대로 남아있구나.
시간이 약인 이유는 곱씹고, 곱씹어 그 일에 상처받지 않을 정도로 되돌아봤기 때문 일 것이다. 계속 돌아봐서, 그 일에 무뎌져서, 괜찮다고 말 할 수 있는 것 아닐까? 그만큼 무뎌지는 데에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생기지 않았을까? 난 그 생각을 2년 후인 지금에 와서 하고 있다는 게 너무 억울하다. 조금만 더 빨리 돌아봐줄걸. 묻어버리지 말걸. 무섭다고 생각하기 싫다고 그냥 둬버리지 말걸. ‘나’를 좀 더 신경 써 줄걸.
접근 금지법이 시행 되고 우리 집에서 아빠는 사라졌다. 아빠의 존재 자체가 사라진 것 같았다.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밥 먹을 때 수저를 4개씩 준비하고, 밥공기도 4개씩만 준비했다. 아빠의 존재가 사라 진 만큼 엄마도 보기가 힘들어 졌다. 아빠가 하던 일을 엄마는 우리를 위해 짊어져야 했다. 일주일에 한번 엄마를 볼까말까 했다. 저녁에 수저를 4개가 아니라 3개씩 준비하는 날이 많아 졌다. 빨래도 손빨래는 꿈도 못 꿨고 세탁기나 겨우 돌리면 다행이었다. 우리가 교복을 입으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가 늘 버리던 음식물쓰레기가 쌓이기 시작했다. 남동생의 등교를 내가 보내는 날이 많아졌다. 나는 지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대학 출결이 걱정되었다. 그래도 좋았다. 엄마 아빠가 싸우는 모습을 보지 않아도 된다는 게 좋았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났을까, 아빠에게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창문 틈 새로 아빠의 그림자가 보이는 날이 많아졌다. 여동생이 일주일에 몇 번 아빠가 몰래 우리를 보고 가는 것 같다고 했다. 두 달이 지났을까, 아빠가 집에 들어왔다. 아빠는 무턱대고 집 안에 들어와 나에게 얘기 좀 하자고 했다. 나는 할 얘기가 없었다. 아빠를 보기 싫었다. 아빠를 보기가 무서웠다. 한 달전, 아빠가 신고하면 죽여버린다고 한 말이 마음에 남아 있었다. 안방에서 아빠는 나를 보며 얘기했다. 나는 아빠를 등지고 벽을 봤다. 아빠의 얘기를 듣기만 했다. 나는 할 얘기가 없었다. 듣는데 너무 짜증이 나고, 화가 났다. 뭐라 말 하고 싶은데 바로 앞에 앉은 아빠가 어떻게 행동할지 몰라 그냥 가만히 앉아만 있었다. 그냥 차라리 한 대 더 맞고 접근금지 신청을 한 번 더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에 내가 놀랐다. 내가 아빠한테 가진 신뢰도가 이만큼 바닥이구나, 해서 씁쓸했다. 아빠는 자신의 잘못은 생각 안하고 자기합리화만 했다. 너무 짜증났다. 내 입장에서 아빠는 엄마를 때렸다. 엄마를 죽이려 했다. 그래서 우리는 경찰서에 갔고, 일은 이렇게 꼬여버렸다. 이 순서로 일이 진행 된 건데 아빠 말로는 자신이 폭력을 쓴 이유는 우리가 먼저 잘못을 해서 그렇다고 했다. 아빠는 말을 하면서 울었다. 내가 그날 밤 울었던 것처럼 아빠도 울었다. 나는 그 모습이 가식으로 보였다. 불쌍한 척 해서 동정 받으려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아빠는 내가 아빠한테 ‘차라리 이혼해!’ 라고 한 말이 아빠가 나를 때린 것 보다 더 큰일이고, 더 아픈 일이라고 했다. 그 것이 더 큰일이고 더 아픈 일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그냥 나는 아빠가 나한테, 그리고 엄마한테 그렇게 행동 했었던 걸 절대 못 잊을 것 같다. 아빠는 자꾸만 부부 관계 이야기를 나한테 했다. 나는 이야기는 정말 내가 왜 들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더럽다. 나한테 왜 그런 이야기를 하는 지 이유조차 모르겠거니와 거부감만 든다.
나는 아빠가 짜증난다. 아빠가 싫다. 그런데 더 짜증나고 화나는 건 내가 이렇게 아빠가 싫고 미워도 아빠 입장이 이해가 가서, 아빠 마음도 이해가 가서 미워만 할 수 없다는 게 더 짜증나고 화가 난다. 화가 나고 짜증나고 미워도 그런 내 마음을 풀 곳도 없고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모르겠다. 그리고 내 자신이 아빠한테 그런 감정을 갖는 다는 게 안 될 일인 것 같아서 자꾸만 내 감정을 삭혔다.
6월 모의고사 결과가 나왔다. 3월 점수보다 현저히 낮은 점수를 받았다. 쓰고 싶던 대학교에 원서를 쓰지 못하게 되었다. 썼다고 해서 내가 붙었을 거란 보장은 없지만 아쉬움이 컸다. 미련은 빨리 버리고 다른 대학교 원서준비를 해야 하는데 ... 자꾸만 미련이 남았다. 수시 원서를 준비해야 하는 날이 되었다. 방학동안 나는 자기소개서를 최대한 많이 만들어 두어야 했다. 자기소개서를 쓰는 날은 너무 힘들었다. 쓰기 싫었다. 1번문항의 ‘자신의 성장과정과 이러한 환경이 자신의 삶에 미친 영향에 대해 기술하시오’ 이 질문이 나를 헤집어 놓았다. 늘 1번 문항에서 턱 막혀 고민만 계속 했다. 나는 이걸 어떻게 써야할까? 고1때의 자기소개서 파일을 열어봤다. 현명한 어머니와 인자한 아버지 사이에서 1남2녀 중 맏이로 컸다는 상투적인 어구가 눈에 들어왔다. 선생님은 그 문장은 너무 상투적이라 쓰지 말라고 하셨다. 나는 그 어구를, 쓰고 싶어도 이젠 쓰지 못하게 되었다. 기분이 이상했다.
누군가에게 나의 이야기를 털어놓고 싶었다. 나는 고3이었다. 내 친구들도 고3이었다. 공부하느라 바쁜 친구들에게 매번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털어 놓기는 어려웠다. 처음에는 자기 일처럼 맞장구 쳐주던 친구는 이제 그려려니 하며 내 얘기를 들었다. 그 모습에 나는 또 한번 상처를 받았다. 털어 놓고 난 후에는 내 얘기를 들은 친구가 날 동정하지 않을까, 날 무시하진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털어 놓자니 고민이고 안 털어놓자니 또 고민이었다.
친구와의 일도 고민이었지만 더 큰 고민은 역시 자기소개서였다. 내가 지금 엄마와 아빠한테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 내가 그때의 일을 어떻게 받아 드리고 있는지 나는 정확하게 말 할 수 없다. 나도 잘 모르는 상태에서 남에게 이걸 소개하려는 글을 쓰려니 머리가 자꾸만 더 복잡해져 갔다. 나는 내가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 자기소개서를 읽은 사람들이 글 속에 화가 보인다고 했다. 내가 이상해져 가는 것 같았다. 처음에 나는 나와 동생들을 추스르기 위해 괜찮다는 말을 했다. 그 다음에는 주변 사람들에게 걱정을 시키지 않으려고 괜찮아, 괜찮아 했다. 나는 내 말에 내가 세뇌가 된 건 지 아니면 이게 내 진심인건가 헷갈리기 시작했다. 내가 괜찮아서 괜찮은 건지, 내가 괜찮다, 괜찮다 해서 내가 착각을 하는 건지. 나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는 4남중 3째 아들이다. 첫째인 큰 아버지는 첫째라 사랑받았고, 막내인 작은 아버지는 막내라 사랑받았다고 했다. 첫째인 큰 아버지는 처음 생긴 동생인 둘째 동생만 챙겼다고 했다. 아빠는 그 속에서 외톨이였다고 했다. 아빠는 여동생과 내가 같은 잘못을 하면 나만 혼냈다. 여동생이 잘 못을 하면 언니인 내가 모범을 안보여서 그렇다며 나를 혼내셨다. 억울했다. 첫 번째, 두 번째에 태어난 게 뭐가 대수라고 늘 나만 더 혼나야 하나 하는 생각을 어릴 땐 많이 했다. 아빠는 물려받는 입장이었다. 아빠는 첫째인 큰 아빠를 싫어했다. 늘 새것, 좋은 것은 큰 아빠의 몫이였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억울하기만 했다. 나중엔 아, 그래서 그랬구나. 그래서 아빠는 첫째인 나를 그렇게 대하셨구나. 나를 통해서 큰아빠와 아빠를 보셨구나, 하고 이해를 했다. 아빠를 이해함으로서 나는 아빠와의 문제를 해결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었다. 아니였다. 이해를 하니 내 마음은 더 복잡해졌다. 아빠가 오죽 그랬으면 그랬을까. 아빠를 용서해야하나. 하는 마음과 그럼 나는 내 마음을 누구한테 풀어야하지? 하는 마음이 하루에도 몇 번씩 충돌했다. 아빠를 이해하게 된 내 자신이 싫었다. 그냥 맘 편히 미워만할걸. 그럼 내 마음은 편했을 텐데.
아빠를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된 후로 나는 아빠를 조금 더 살갑게 대했다. 아빠와 인사도 하고 가끔은 아빠랑 단 둘이 저녁을 먹기도 했다. 온 집안에서 나만 아빠를 아빠로 대했다. 여동생은 아빠를 혐오했다. 증오했다. 여동생은 방에 들어가 나오지 않는 시간이 늘었다. 아빠가 무언가를 물어보아도 대답을 하지 않았다. 남동생은 엄마와 여동생이 아빠를 싫어하니 아빠를 전처럼 대하지 않았다. 남동생도 아빠를 무서워했다. 아빠는 가족들을 살갑게 대하려 노력했다. 집에 돌아올 때 과일을 많이 사오기 시작했다. 여동생이 좋아하는 포도에서부터 나와 남동생이 좋아하는 수박까지. 엄마가 사오지 말라고 해도 아빠는 늘 과일을 꼬박꼬박 사오셨다. 엄마는 밥을 차려도 동생들과 나만 불렀다. 아빠는 부르지 않았다. 아빠를 부르는 건 언제나 내 몫이었다. 내가 아빠를 부르면 아빠는 슬그머니 거실로 나와 밥을 먹었다. 아빠는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다. 거실에 놓여 진 티비는 새벽 늦게까지 늘 켜져 있었다. 그 모습에서 나는 친할머니 댁에서 뵈었던 친할아버지를 보았다. 아빠의 아버지. 친할아버지도 늘 혼자 어두컴컴한 방에서 티비를 보셨다. 아빠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는 우리를 살갑게 대하려 노력하셨다. 그러다가 어느 날은 터졌다. 참고 우리한테 맞추어만 살던 아빠의 감정이 터졌다. 아빠는 ‘왜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봐주지 않냐’고 했다. 이미 옛날 오래전 일이고 그동안 좋았던 일도 많은데 왜 하필 그 일 가지고 이렇게 오랫동안 자기가 미안해야하냐고 했다. 우리들은 그럼 그렇지. 또 화를 내는구나, 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아빠가 그럴수록 아빠한테서 더 멀어졌다. 아빠는 자살소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아무도 자길 봐주지 않자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위협하기 시작했다.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아빠가 사라졌다. 옥상에 아빠가 있는지 확인해라.’ 또 어느 날은 집에서 경찰관이 나오는 걸 보았다. 놀래서 집에 들어가니 남동생이 울고 있었다. 아빠는 초등학생인 남동생 앞에서 칼을 들고 손목을 그으려 했다. 남동생이 놀래 엄마한테 전화했고, 엄마는 경찰에 신고를 했다. 아빠는 경찰이 가고 나서 화장실에 들어갔다. 세면대의 쏴아아 하는 물소리가 들렸다. 아빠의 울음소리도 들렸다.
아빠의 자살 소동은 여러번 반복 되었다. 이런 일이 반복 되니 나중에는 ‘아 어차피 안 죽을 거면서 왜 또 저런대’ 하는 생각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소름끼쳤다. 그런 생각을 한 내가 혐오스러워 졌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든 게 아빠 때문인 것 같아 아빠가 더 미워졌다. 또, 아빠가 미운만큼 나는 나를 더 미워하기 시작했다. 가족이 나를 옭아매는 족쇄처럼 느껴졌다. 벗어나고 싶었다.
그러는 와중에 나 혼자 아빠를 아빠답게 대하니 아빠는 내가 자신의 편인 줄 착각하기 시작했다. 내가 큰 딸이니 중간에서 가족들의 연결고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빠가 원하는 ‘나’는 엄마에겐 이혼하지 말라고 호소하고, 여동생에게는 아빠를 이해해야 한다고 말을 해주는 딸이었다. 나는 그럴 수 없었다. 내가 보기엔 엄마와 아빠는 이혼을 하는 게 맞았다. 여동생의 문제는 내가 아빠를 이렇게 대하기로 결정 한 것처럼, 여동생 자신이 결정해야 할 문제였다. 아빠가 그렇게 말을 할 때마다 나는 ‘차라리 이혼해!’ 라고 말 했다. 그럼 또다시 아빠는 터졌다. 자꾸만 반복되었다. 집을 나가고 싶었다.
엄마아빠때문에 경찰서간후기
안녕하세요.
올해 21살 여대생이예요.
요새 자존감이 많이떨어져서 외롭고 우울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어요.
내 자존감이 어디서 많이 떨어졌나.. 하고 생각해보니 이 때 일이 제일 기억에 남아요.
이 일을 아직까지도 제가 정리하지 못했더라구요 ㅋㅋㅋㅋㅋ
그래서 쓰게됬어요. 정리하고싶어서요.
본 글은 실화고.....
많은 사람들이 봐 주었으면 해서 제목을 자극적이게 썼어요. ㅠㅠㅠㅠㅠ......
객관적이고, 내 이야기가 아닌것 처럼 쓰고싶어져 문체는 소설체로 쓰게 되었습니다.
(제가보기엔오글오글하네요)
그냥 남들이 보는 저 경험은 어떤 의미일까, 나는 정말 괜찮은걸까.
이 글을 다쓰면 괜찮아질까..... 하는 마음에 네이트판에 오게되었습니다.
한글 파일에 혼자쓰던 이야기라는 점 감안해주시고 ... 고3당시의 일기와 블로그 글을
종합, 제 생각과 그런것들을 버무려 쓰게 되었습니다.
대학교 1학년때의 이야기도 써야하고 현재의 이야기도 써야하는데
일단은 고등학교 3학년. 그때 일 부터 써봐요.
댓글달아주셨으면좋겟어요 ㅠㅠ... 다른 사람들의 조언을듣고싶습니다.
방탈죄송해요
--------------------------------------------------------------------------------
그냥, 문득 그럴 때가 있다. 온 몸이 오싹하고 경고음을 보내는 듯한, 꿀 같은 잠을 자다가도 화들짝 놀라 일어나고 마는 날이 있다. 그런 날에는 무언가가 내게 경고를 보내는 것 같다. 그 때가 그랬다. 나는 고3이였다. 그 날도 나는 얼마 남지 않은 입시 때문에 새벽까지 공부를 하다 거실에서 잠이 들었었다. 새벽 3시쯤 되었을까, 무언가 오싹 하는 기분이 들었다. 지금 일어나야 한다는 기분이 들어 잠에서 깼다. 비명소리가 들렸다. 몽롱 했던 정신을 바짝 긴장시켰다. 엄마의 소리였다. 처음에는 이게 무슨 소리인가 했다. ‘내가 아직 꿈을 꾸나?’
내가 멍하니 있을 동안 소리는 점차 커졌고 욕설도 간간히 들려왔다. 비명은 엄마의 소리였고, 욕설은 아빠의 소리였다. 무서워서 거실에 앉아 소리쳤다. “아빠 지금 뭐해!!!!” 내가 소리를 질렀음에도 불구하고 소리는 줄어들지 않았다. 방에서 아직 자고 있는 동생들의 생각이 났다. 한 번도 내가 맏이라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는데, 동생 생각이 먼저 났다. 맏이인 내가 부모님을 말려야한다는 생각도 함께 들었다. 내 외침을 엄마는 들었는지 경찰에 신고하라고 소리쳤다. 안방으로 가 문고리를 돌렸다. 아무리 돌려도 문은 열리지 않았다. 안방에 나 있는 베란다가 생각이 나 베란다로 뛰어갔다. 그리고 보았다. 하얀 침대 위에 엄마의 긴 머리카락이 풀어헤쳐져 있었다. 그 위에 아빠가 있었다. 목을 조르고 있었다. 아빠가, 엄마의 목을 조르고 있었다.
너무 놀래서 입이 얼어버린 탓 인지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냥, “아빠 지금 뭐해?”라는 말 밖에 나오지 않았다. 아빠는 나를 보고 신경쓰지 말라고 했다. 이건 어른들의 얘기니까 나는 끼어들면 안 된다고 했다. 빨갛게 부풀어 오른 엄마의 얼굴을 보며 엄마가 저러다 터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죽을 것 같았다. 내가 계속 베란다에 서서 멍하니 바라보고 있으니 아빠는 꺼지라고 했다. 아빠가 던진 베개에 얼굴을 맞았다. 엄마는 계속 경찰에 신고하라고 소리쳤다. 바로 달려가서 아빠를 밀치고 엄마를 도와주고 싶었는데, 아빠가 너무 무서웠다. 다리가 움직여지지 않았다. 그냥 나는 그 자리에 서서 소리치는 일 밖에 못했다.
그 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을 때 내가 할 수 있었던 일은 동생들을 방 밖으로 못나가게 하는 일 뿐 이었다. 방문을 꼭 닫고 9살 차이 나는 어린 남동생을 토닥이며 나도 확신 할 수 없는 이야기를 했다.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질 거야.‘ 그리고 우리 집에서 제일 예민한 둘째동생의 귀에 MP3를 꼽아주고 가장 크고 신나는 노래를 틀어 주었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아니, 전부는 아니였을 것이다. 다른 선택지도 있었겠지. 다른 선택을 하지 못 한 이유는 그냥... 내가 겁이 많아서 그랬을 것이다. 나는 아빠가 무서웠다. 이번에도 나는 무서워 안방에 들어가지 못했다. 아빠를 말리지 못했다. 엄마를 도와주지 못했다. 엄마는 늘 엄마를 도와 주지 못하고 쳐다만 보는 내가 얼마나 미웠을까? 다시 거실로 돌아와, 거실에서 “지금 안 그만두면 경찰 부를거야!”하고 소리쳤다. 소리치고 난 후에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오히려 아빠는 경찰에 신고하면 죽여버린다고 소리쳤다.
수화기를 들고 112 번호를 눌렀다. 처음 눌러보는 번호라 이 번호가 맞을까 싶었다. 웃긴 상황이 아닌데도 웃음이 나왔다. “여보세요?” “네.. 저기 있잖아요..” “울지말고 천천히 말씀하세요” 그때서야 아, 내가 울고있구나. 그 생각이 들었다. 엉엉 울며 상황을 설명했다. 누군가 이 상황을 말려줬으면 싶었다.
“아빠가 엄마를 죽일 것 같으니까 빨리 와주세요.”
뺨을 맞았다. 수화기를 내려놓자마자 나는 “경찰에 신고했으니까 그만해!!!” 하고 소리쳤다. 그렇게 내가 문을 아무리 두들겨도 열리지 않던 안방 문이 열리더니 아빠가 나왔다. 뺨을 맞았다. 그리고 쇼파에 부딪혔다. 쇼파에 부딪힌 등과 팔 뒤꿈치보다 아빠한테 맞은 뺨이 더 아팠다. 그리고 ... 잘 기억나지 않는다.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아빠는 나와 엄마 탓을 했다. 집에 돌아오면 집안 꼴은 어떻고, 아무도 자기한테 인사를 안 한다며 화를 냈다. 그 와중에도 동생들이 깨서 저런 말을 들으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1분이 10분 같았고 시간이 너무 더디게 갔다. 20분 쯤 흘렀을까, 경찰이 왔다. 아빠는 변명을 했다. 20분 전엔 화를 냈는데 이번엔 변명을 했다. 나는 아무 잘못 없다. 당신들 같으면 집안 꼴이 이러는데 화가 안나냐? 이건 우리 가족사니까 끼어들지 말아라. 나는 떳떳하다. 경찰서? 까짓 거 그냥 가지 뭐. 난 떳떳하니까.
웃겼다. 수치스러웠다. 부끄러웠다. 나를 잘 모르는 사람이 나의 이러한 상황을 알게 되었다는게 웃기고 수치스러웠다. 또 누군가에게 뺨을 맞았다는 사실이, 그리고 그걸 때린게 아빠라는 것 또한 너무 웃기고 웃겼다. 나도 그런데 저 사람들은 우리가 얼마나 우습게 보일까? 경찰관 아저씨가 아빠를 밖으로 내보내고, 엄마와 나에게 괜찮냐고 물어봐주었다. 엄마는 경찰관 아저씨한테 일이 어떻게 된 건지 말을 했다. 하지만 그건 내가 들을 이야기가 아니었다. 엄마가 나에게 말 해줄 때, 나는 그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공부방에 가 수학책을 폈다. 가장 쉬운 문제를 붙들고 10분을 생각했다. 자꾸만 눈물이 나서 문제를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적분 공식을 생각하다가도 아빠가 엄마한테 말했던 욕이, 행동이 계속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경찰차를 탔다. 엄마와 함께 경찰서로 갔다. 아빠는 다른 차를 탔다. 불과 몇 시간 전의 일이 꿈처럼 느껴졌다. 그냥 내가 지금 아빠를 경찰에 신고했고, 내가 본 것에 대해 진술서를 쓰러 간다는 게 현실 같지가 않았다. 드라마나 다큐멘터리에서 보던 일들이 나한테 벌어졌다는 게 믿기지가 않았다.
티비에서만 보던 형사를 만났다. 가정폭력은 형사과에서 담당한다고 했다. 웃겼다. 한 번도 올 일이 없을 것 같던 곳에 나는 지금 목격자로써 진술을 하러 왔다는 게 웃겼다. 형사아저씨가 처벌을 원하냐고 엄마랑 내게 물어봤다. 우리는 처벌을 원한다고 했다. 형사아저씨는 접근금지를 신청 할 수 있는데 이러이러한 법이라고 설명을 해주었다. 다른거 다 필요 없고 접근금지 신청을 받는데 일주일이 걸린다는 것만 기억에 남는다. 그럼, 접근금지가 효력하지 못하는 일주일 동안은 어떡하지? 가해자와 피해자는 서로 못 만나게 하는 게 당연한거 아닌가? 더구나 나는 가해자를, 아빠를 신고했는데. 아빠가 아까 내게 했던 말 대로 날 죽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서웠다. 경찰 측에서는 아침까지 아빠를 유치장에서 맡아주겠다고 했다. 그래서 최대한 일을 빨리 마무리 짓고 나는 채린이네 집에, 엄마는 찜질방. 동생들은 엄마를 따라가거나 각자 친구 집에서 며칠 자기로 약속했다. 집은 아빠가 찾아 올 수 있으니 갈 수 없었다.
경찰서를 나오니 7시쯤 되었다. 집에 도착해보니 동생들은 깨어 있었다. 둘째 동생의 얼굴에 운 티가 가득했다. 들었나보다. 어디서부터 들었을까? 예민한 동생이 걱정되었다.
나는 평소와 같이 학교에 갈 준비를 했다. 교복을 입었고 가방을 챙겼다. 새벽에 있었던 일이 거짓말같이 느껴졌다. 보통의 일상과 같은 아침이었다. 다만 내 기억의 어제의 아빠, 오늘의 아빠 모습이 달랐다. 엄마의 목을 조르던 아빠와 그저께 엄마가 해준 밥을 같이 밥을 먹던 아빠의 모습이 자꾸만 비교되었다. 여느 때보다 일찍 학교에 도착했다. 화장실에 가서 얼굴을 점검했다. 새벽부터 내내 울었더니 눈이 팅팅 불어있었다. 이 몰골을 하고 반 친구들을 어떻게 볼까, 덜컥 겁이 났다.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걸 아무도 몰랐으면 싶었다. 4층의 교실까지 올라왔지만 차마 교실 문을 열 수 없었다. 교장선생님이 마련해 주었던 특별실이 기억이 났다. 혼자 공부할 때 독서실 말고 여기 와서 공부하라고 만들어 주신 방이였다. 비밀번호도 나 포함 5명밖에 모르는 방이니 괜찮겠다 싶었다. 8시 10분이 되었고, 나는 야자실에 혼자 앉아 담임선생님께 말씀 드려야 하나 고민했다. 지각 처리가 되면 대학 입시에서 0.5점이 깎인다던 우스갯소리가 생각이 났다. 고민은 짧았다. 선생님께 ‘쌤, 저 학교긴 학굔데 반에 못 들어가겠어요..’ 라고 전화를 드렸다. 선생님은 무슨 일 있냐, 어디냐고 물어보셨다.
아침 조회를 끝내시고 선생님은 특별실에 오셨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초지종을 말씀 해 드렸다. 작년 2학년 때의 담임 쌤은 같이 울어줬을 것 같은데 3학년 담임선생님은 남자라 그런가, 아니면 그냥 성격이 그러신건가 별 말 하지 않으셨다. 그냥 가만히 앉아 내가 우는 걸 쭉 보고만 있으셨다. 그렇게 나를 쭉 바라만 보던 선생님께선 내가 진정된 것 같자 ‘많이 속상했지?’ 라고 물어보셨다. 그 한마디에 갑자기 눈물이 터졌다. 진정되려던 마음이 더 복잡해져 아까보다 더 많이 울어버렸다. 내가 다 울고 나자 선생님은 오늘 하루 야자실에 있을건지, 수업을 들을건지 물어보셨다. 시험이 얼마 남지 않은 게 기억이 나서 1교시 지구과학 수업을 듣겠다고 했다. 1교시 수업을 듣는데 수업에 집중이 되긴 커녕 새벽의 일이 자꾸만 생각이나 나도 모르게 훌쩍이게 됐다. 시험기간이라 예민해 져 있는 애들에게 미안했다. 2교시 때는 선생님께 그냥 야자실에 있겠다고 말씀드렸다. 선생님은 쉬는 시간마다 교무실에 올라오는 조건으로 허락해 주셨다. 야자실에 내려가서 과학책을 폈다. 일주일도 채 남지 않은 모의고사가 생각이 났다. 가고 싶은 대학교가 생각이 났다. 그리고 그 학교에 입학하기 위해선 모의고사 성적표를 제출해야 한다던 담임선생님의 말씀이 생각이 났다. 모의고사는 일주일도 채 남지 않았다. 내신 시험도 얼마 남지 않았다. 공부를 해야 했다. 그런데 눈이 너무 아팠다. 새벽부터 지금까지 내내 울기만 했더니 머리도 너무 아팠다. 잠깐 눈을 붙이고 할까, 했는데 눈을 감으면 오늘 새벽에 있었던 일이 자꾸만 생각이 나서 잠들지도 못했다. 혼자만 있으니 자꾸만 더 기분이 쳐졌다.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다른 애들은 공부만 해도 될 텐데 왜 나는 신경 써야 할 일이 더 늘었을까. 왜 나만 그런 걸까. 왜. 왜. 왜.
하교 후에 채린이 집에 갔다. 갑자기 찾아갔는데도 채린이의 부모님은 날 반겨 주셨다. 여러 좋은 소리도 해주셨다. 특히 어머니 아버지가 싸운 것은 나의 탓이 아니라고 말씀 해주셨다. 부모님의 일은 부모님의 일이라고 해주셨다. 채린이가 부러웠다. 그런 좋은 어머니 아버지를 둔 채린이가 너무나 부러웠다.
시간이 약이라 한다. 옛 말에 틀린 말 없다고, 나도 그게 답인 줄만 알았다. 고등학교 3학년 이후 나는, 우리는. 우리 집은 이 이야기를 묻어뒀다. 그렇게 묻어만 두면 언젠가 다 해결 될 줄만 알았다. 나는 지금 이 이야기를 쓰며 그때의 과거의 일을 되짚어 보게 됐다. 그리고 깨달았다. 나는 그때 이후로 성장 하지 못했구나. 21살의 나와 19살의 나는 같은 사람이구나. 그 날, 아버지를 말리지 못해 엉엉 울었던 내가. 그때 그대로 남아있구나.
시간이 약인 이유는 곱씹고, 곱씹어 그 일에 상처받지 않을 정도로 되돌아봤기 때문 일 것이다. 계속 돌아봐서, 그 일에 무뎌져서, 괜찮다고 말 할 수 있는 것 아닐까? 그만큼 무뎌지는 데에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생기지 않았을까? 난 그 생각을 2년 후인 지금에 와서 하고 있다는 게 너무 억울하다. 조금만 더 빨리 돌아봐줄걸. 묻어버리지 말걸. 무섭다고 생각하기 싫다고 그냥 둬버리지 말걸. ‘나’를 좀 더 신경 써 줄걸.
접근 금지법이 시행 되고 우리 집에서 아빠는 사라졌다. 아빠의 존재 자체가 사라진 것 같았다.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밥 먹을 때 수저를 4개씩 준비하고, 밥공기도 4개씩만 준비했다. 아빠의 존재가 사라 진 만큼 엄마도 보기가 힘들어 졌다. 아빠가 하던 일을 엄마는 우리를 위해 짊어져야 했다. 일주일에 한번 엄마를 볼까말까 했다. 저녁에 수저를 4개가 아니라 3개씩 준비하는 날이 많아 졌다. 빨래도 손빨래는 꿈도 못 꿨고 세탁기나 겨우 돌리면 다행이었다. 우리가 교복을 입으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가 늘 버리던 음식물쓰레기가 쌓이기 시작했다. 남동생의 등교를 내가 보내는 날이 많아졌다. 나는 지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대학 출결이 걱정되었다. 그래도 좋았다. 엄마 아빠가 싸우는 모습을 보지 않아도 된다는 게 좋았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났을까, 아빠에게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창문 틈 새로 아빠의 그림자가 보이는 날이 많아졌다. 여동생이 일주일에 몇 번 아빠가 몰래 우리를 보고 가는 것 같다고 했다. 두 달이 지났을까, 아빠가 집에 들어왔다. 아빠는 무턱대고 집 안에 들어와 나에게 얘기 좀 하자고 했다. 나는 할 얘기가 없었다. 아빠를 보기 싫었다. 아빠를 보기가 무서웠다. 한 달전, 아빠가 신고하면 죽여버린다고 한 말이 마음에 남아 있었다. 안방에서 아빠는 나를 보며 얘기했다. 나는 아빠를 등지고 벽을 봤다. 아빠의 얘기를 듣기만 했다. 나는 할 얘기가 없었다. 듣는데 너무 짜증이 나고, 화가 났다. 뭐라 말 하고 싶은데 바로 앞에 앉은 아빠가 어떻게 행동할지 몰라 그냥 가만히 앉아만 있었다. 그냥 차라리 한 대 더 맞고 접근금지 신청을 한 번 더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에 내가 놀랐다. 내가 아빠한테 가진 신뢰도가 이만큼 바닥이구나, 해서 씁쓸했다. 아빠는 자신의 잘못은 생각 안하고 자기합리화만 했다. 너무 짜증났다. 내 입장에서 아빠는 엄마를 때렸다. 엄마를 죽이려 했다. 그래서 우리는 경찰서에 갔고, 일은 이렇게 꼬여버렸다. 이 순서로 일이 진행 된 건데 아빠 말로는 자신이 폭력을 쓴 이유는 우리가 먼저 잘못을 해서 그렇다고 했다. 아빠는 말을 하면서 울었다. 내가 그날 밤 울었던 것처럼 아빠도 울었다. 나는 그 모습이 가식으로 보였다. 불쌍한 척 해서 동정 받으려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아빠는 내가 아빠한테 ‘차라리 이혼해!’ 라고 한 말이 아빠가 나를 때린 것 보다 더 큰일이고, 더 아픈 일이라고 했다. 그 것이 더 큰일이고 더 아픈 일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그냥 나는 아빠가 나한테, 그리고 엄마한테 그렇게 행동 했었던 걸 절대 못 잊을 것 같다. 아빠는 자꾸만 부부 관계 이야기를 나한테 했다. 나는 이야기는 정말 내가 왜 들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더럽다. 나한테 왜 그런 이야기를 하는 지 이유조차 모르겠거니와 거부감만 든다.
나는 아빠가 짜증난다. 아빠가 싫다. 그런데 더 짜증나고 화나는 건 내가 이렇게 아빠가 싫고 미워도 아빠 입장이 이해가 가서, 아빠 마음도 이해가 가서 미워만 할 수 없다는 게 더 짜증나고 화가 난다. 화가 나고 짜증나고 미워도 그런 내 마음을 풀 곳도 없고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모르겠다. 그리고 내 자신이 아빠한테 그런 감정을 갖는 다는 게 안 될 일인 것 같아서 자꾸만 내 감정을 삭혔다.
6월 모의고사 결과가 나왔다. 3월 점수보다 현저히 낮은 점수를 받았다. 쓰고 싶던 대학교에 원서를 쓰지 못하게 되었다. 썼다고 해서 내가 붙었을 거란 보장은 없지만 아쉬움이 컸다. 미련은 빨리 버리고 다른 대학교 원서준비를 해야 하는데 ... 자꾸만 미련이 남았다. 수시 원서를 준비해야 하는 날이 되었다. 방학동안 나는 자기소개서를 최대한 많이 만들어 두어야 했다. 자기소개서를 쓰는 날은 너무 힘들었다. 쓰기 싫었다. 1번문항의 ‘자신의 성장과정과 이러한 환경이 자신의 삶에 미친 영향에 대해 기술하시오’ 이 질문이 나를 헤집어 놓았다. 늘 1번 문항에서 턱 막혀 고민만 계속 했다. 나는 이걸 어떻게 써야할까? 고1때의 자기소개서 파일을 열어봤다. 현명한 어머니와 인자한 아버지 사이에서 1남2녀 중 맏이로 컸다는 상투적인 어구가 눈에 들어왔다. 선생님은 그 문장은 너무 상투적이라 쓰지 말라고 하셨다. 나는 그 어구를, 쓰고 싶어도 이젠 쓰지 못하게 되었다. 기분이 이상했다.
누군가에게 나의 이야기를 털어놓고 싶었다. 나는 고3이었다. 내 친구들도 고3이었다. 공부하느라 바쁜 친구들에게 매번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털어 놓기는 어려웠다. 처음에는 자기 일처럼 맞장구 쳐주던 친구는 이제 그려려니 하며 내 얘기를 들었다. 그 모습에 나는 또 한번 상처를 받았다. 털어 놓고 난 후에는 내 얘기를 들은 친구가 날 동정하지 않을까, 날 무시하진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털어 놓자니 고민이고 안 털어놓자니 또 고민이었다.
친구와의 일도 고민이었지만 더 큰 고민은 역시 자기소개서였다. 내가 지금 엄마와 아빠한테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 내가 그때의 일을 어떻게 받아 드리고 있는지 나는 정확하게 말 할 수 없다. 나도 잘 모르는 상태에서 남에게 이걸 소개하려는 글을 쓰려니 머리가 자꾸만 더 복잡해져 갔다. 나는 내가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 자기소개서를 읽은 사람들이 글 속에 화가 보인다고 했다. 내가 이상해져 가는 것 같았다. 처음에 나는 나와 동생들을 추스르기 위해 괜찮다는 말을 했다. 그 다음에는 주변 사람들에게 걱정을 시키지 않으려고 괜찮아, 괜찮아 했다. 나는 내 말에 내가 세뇌가 된 건 지 아니면 이게 내 진심인건가 헷갈리기 시작했다. 내가 괜찮아서 괜찮은 건지, 내가 괜찮다, 괜찮다 해서 내가 착각을 하는 건지. 나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는 4남중 3째 아들이다. 첫째인 큰 아버지는 첫째라 사랑받았고, 막내인 작은 아버지는 막내라 사랑받았다고 했다. 첫째인 큰 아버지는 처음 생긴 동생인 둘째 동생만 챙겼다고 했다. 아빠는 그 속에서 외톨이였다고 했다. 아빠는 여동생과 내가 같은 잘못을 하면 나만 혼냈다. 여동생이 잘 못을 하면 언니인 내가 모범을 안보여서 그렇다며 나를 혼내셨다. 억울했다. 첫 번째, 두 번째에 태어난 게 뭐가 대수라고 늘 나만 더 혼나야 하나 하는 생각을 어릴 땐 많이 했다. 아빠는 물려받는 입장이었다. 아빠는 첫째인 큰 아빠를 싫어했다. 늘 새것, 좋은 것은 큰 아빠의 몫이였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억울하기만 했다. 나중엔 아, 그래서 그랬구나. 그래서 아빠는 첫째인 나를 그렇게 대하셨구나. 나를 통해서 큰아빠와 아빠를 보셨구나, 하고 이해를 했다. 아빠를 이해함으로서 나는 아빠와의 문제를 해결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었다. 아니였다. 이해를 하니 내 마음은 더 복잡해졌다. 아빠가 오죽 그랬으면 그랬을까. 아빠를 용서해야하나. 하는 마음과 그럼 나는 내 마음을 누구한테 풀어야하지? 하는 마음이 하루에도 몇 번씩 충돌했다. 아빠를 이해하게 된 내 자신이 싫었다. 그냥 맘 편히 미워만할걸. 그럼 내 마음은 편했을 텐데.
아빠를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된 후로 나는 아빠를 조금 더 살갑게 대했다. 아빠와 인사도 하고 가끔은 아빠랑 단 둘이 저녁을 먹기도 했다. 온 집안에서 나만 아빠를 아빠로 대했다. 여동생은 아빠를 혐오했다. 증오했다. 여동생은 방에 들어가 나오지 않는 시간이 늘었다. 아빠가 무언가를 물어보아도 대답을 하지 않았다. 남동생은 엄마와 여동생이 아빠를 싫어하니 아빠를 전처럼 대하지 않았다. 남동생도 아빠를 무서워했다. 아빠는 가족들을 살갑게 대하려 노력했다. 집에 돌아올 때 과일을 많이 사오기 시작했다. 여동생이 좋아하는 포도에서부터 나와 남동생이 좋아하는 수박까지. 엄마가 사오지 말라고 해도 아빠는 늘 과일을 꼬박꼬박 사오셨다. 엄마는 밥을 차려도 동생들과 나만 불렀다. 아빠는 부르지 않았다. 아빠를 부르는 건 언제나 내 몫이었다. 내가 아빠를 부르면 아빠는 슬그머니 거실로 나와 밥을 먹었다. 아빠는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다. 거실에 놓여 진 티비는 새벽 늦게까지 늘 켜져 있었다. 그 모습에서 나는 친할머니 댁에서 뵈었던 친할아버지를 보았다. 아빠의 아버지. 친할아버지도 늘 혼자 어두컴컴한 방에서 티비를 보셨다. 아빠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는 우리를 살갑게 대하려 노력하셨다. 그러다가 어느 날은 터졌다. 참고 우리한테 맞추어만 살던 아빠의 감정이 터졌다. 아빠는 ‘왜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봐주지 않냐’고 했다. 이미 옛날 오래전 일이고 그동안 좋았던 일도 많은데 왜 하필 그 일 가지고 이렇게 오랫동안 자기가 미안해야하냐고 했다. 우리들은 그럼 그렇지. 또 화를 내는구나, 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아빠가 그럴수록 아빠한테서 더 멀어졌다. 아빠는 자살소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아무도 자길 봐주지 않자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위협하기 시작했다.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아빠가 사라졌다. 옥상에 아빠가 있는지 확인해라.’ 또 어느 날은 집에서 경찰관이 나오는 걸 보았다. 놀래서 집에 들어가니 남동생이 울고 있었다. 아빠는 초등학생인 남동생 앞에서 칼을 들고 손목을 그으려 했다. 남동생이 놀래 엄마한테 전화했고, 엄마는 경찰에 신고를 했다. 아빠는 경찰이 가고 나서 화장실에 들어갔다. 세면대의 쏴아아 하는 물소리가 들렸다. 아빠의 울음소리도 들렸다.
아빠의 자살 소동은 여러번 반복 되었다. 이런 일이 반복 되니 나중에는 ‘아 어차피 안 죽을 거면서 왜 또 저런대’ 하는 생각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소름끼쳤다. 그런 생각을 한 내가 혐오스러워 졌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든 게 아빠 때문인 것 같아 아빠가 더 미워졌다. 또, 아빠가 미운만큼 나는 나를 더 미워하기 시작했다. 가족이 나를 옭아매는 족쇄처럼 느껴졌다. 벗어나고 싶었다.
그러는 와중에 나 혼자 아빠를 아빠답게 대하니 아빠는 내가 자신의 편인 줄 착각하기 시작했다. 내가 큰 딸이니 중간에서 가족들의 연결고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빠가 원하는 ‘나’는 엄마에겐 이혼하지 말라고 호소하고, 여동생에게는 아빠를 이해해야 한다고 말을 해주는 딸이었다. 나는 그럴 수 없었다. 내가 보기엔 엄마와 아빠는 이혼을 하는 게 맞았다. 여동생의 문제는 내가 아빠를 이렇게 대하기로 결정 한 것처럼, 여동생 자신이 결정해야 할 문제였다. 아빠가 그렇게 말을 할 때마다 나는 ‘차라리 이혼해!’ 라고 말 했다. 그럼 또다시 아빠는 터졌다. 자꾸만 반복되었다. 집을 나가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