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질로 인해 고생하던 중

ㅇㄱ2015.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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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질로 인해 고생하던 중

 

간질에서 해방되어 명랑소녀가 되었어요

간질로 인해 고생하던 중김다솜 자매 (서울00고등학교 3학년)

간질로 인해 고생하던 중

중학교 1학년 때부터 간질을 앓았습니다.
한 번씩 쓰러질 때마다 뇌세포 손상으로 나날이 기억력이 감소되었습니다. 집중력이 떨어져 학교 성적도 늘 중하위권이었지요. 계속적인 약 복용으로 머리카락이 한 움쿰씩 빠졌으며, 어깨는 무언가에 짓눌린듯 하였고 머리가 몽롱한 상태로 항상 잠에 취해 무기력한 생활을 하였습니다.
약 먹기가 너무 싫어 수차례 끊어 봤지만 어김없이 간질 증세는 발병했습니다. 이렇게 하기를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5년 동안 지속되었으니 그 고통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어머니의 사랑의 간구로 은혜가 임해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엄마의 전도로 본교회에 등록은 했지만 신앙생활을 미지근하게 했습니다. 엄마(박명금 집사)가 중증 허리디스크를 2006년 10월경, 당회장 이재록 목사님의 기도를 받고 완쾌되는 모습을 보고도 '아, 엄마 믿음이 대단하구나.'라는 생각만 했을 뿐, 제 병을 치료받아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으니까요.
작년 12월, 하늘에 뜬 원형무지개가 내려와 제 주변을 빙 두르며 감싸던 꿈을 꾼 이후에 제 마음은 달라졌습니다. 제 자신에 대한 좌절감을 극복하고 싶은 마음과 평생을 이렇게 살 수 없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는 그 당시 엄마가 직장을 다니면서도 저를 위해 기도와 금식으로 정성을 다하셨기에 하나님께서는 제게 은혜와 믿음을 주셨던 것입니다.
또한 간질을 치료받음으로 인해 아직 교회를 다니지 않으시는 아빠가 하나님을 믿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니

"그래! 믿음을 내보이자. 기도로 준비하여 당회장님께 나아가 기도를 받자."
마침내 2007년 2월 1일, 약을 끊고 오직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며 응답받고자 본교회에서 매일 밤 열리는 '다니엘철야기도회'에 한 달을 작정하여 참석하였습니다. 3-4일 정도 지났을 때 엄마가 "다솜아! 너 약 먹고 있니?"라고 물어 보셨습니다. 저는 "아니요. 먹지 않았어요. 세상을 의지하면 그건 믿음이 아니잖아요? 하나님을 믿으려면 확실히 믿어야지요."라고 믿음의 고백을 하였습니다.
저는 미움, 혈기, 시기, 질투 등 비진리와, 하나님과 약속한 것을 지키지 못했던 것 등을 회개하며 주님의 마음을 닮아 가고자 노력했더니 하나님께서는 간질을 치료해 주시겠다는 믿음을 더해 주셨습니다.

금요철야 은사집회 때 성령의 불을 받고

간질로 인해 고생하던 중2월 23일, 금요철야 은사집회시 치료받아 간증하는 엄마 박명금 집사와 김다솜 자매

3일 금식을 한 후, 드디어 2월 23일 금요철야 예배 전에 사택으로 당회장님께 기도 받으러 갔으나 성도님들이 너무 많아 단지 악수만 하고 금요철야 예배에 참석하게 되었지요. 성가대의 찬양을 듣는 중 '난 치료받았어!'라는 마음의 음성이 들리는 것이었습니다. 가슴이 두근거리며 마음에 기쁨이 넘치면서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30분 휴식 후, 드디어 금요철야 2부 은사집회 때였습니다. 당회장님께서 단에서 환자 기도를 해 주실 때 머리에 손을 얹고 믿음으로 기도를 받는 중에도 두근거림은 멈추지 않았으며, 치료의 확신으로 인해 제 마음은 뛸 듯이 기뻤습니다. 마치 생일 선물을 기다리는 어린아이 같은 마음이었지요.
환자 기도가 끝난 후 손을 내리는 순간 제 머리 바깥에 감싸고 있던 딱딱한 막 같은 것이 부서져 떨어지는 듯 했고, 시원한 물줄기가 척추를 따라 등으로 흘러 내려오는 듯 했습니다.

간질의 모든 증상을 깨끗이 치료받았어요

간질로 인해 고생하던 중병 원 진 단 서 (경련 발작 없는 상태로 2007년 3월 23일 검사한 뇌파검사상에서도 정상소견 보임)

한 달 후, 검진 결과는 정상이었습니다. 할렐루야!
의사 선생님께서는 간질은 약을 복용하여 발병을 억제시킬 뿐, 치료되는 병이 아니라고 말씀하시며 매우 의아해 하셨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제가 약을 먹지 않았다는 말을 들은 일 주일 후, 엄마 꿈에 거무스레한 연기가 제 머리에서 빠져 나가는 것을 보셨다고 합니다.
저를 그토록 고통스럽게 하던 모든 간질 증상이 사라지고 정상이 된 저는 기억력이 회복되어 성적도 좋아지고 더욱 활기찬 모습으로 학교생활을 행복하게 하고 있습니다.
모든 감사와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며 진액을 다해 기도해 주신 당회장 이재록 목사님께도 감사드립니다.

 

불면증과 신경성 심장병을 치료받은 이 기쁨!
- 김귀례 집사


간질로 인해 고생하던 중- 김귀례 집사 (56세, 동광주만민교회)

17세부터 불면증 증세가 있던 저는 한번 잠이 오지 않으면 일주일, 길게는 열흘 이상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또 기억력이 현저히 떨어지면서 온몸에 무기력 증세가 나타났습니다. 신경성 심장병까지 겹쳐 가슴이 답답한 증상이 지속되었지요. 치료를 위해 백방으로 노력해 보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2004년 4월 어느 날, 딸 유라가 가져온 '만민중앙소식'지를 읽게 되었습니다. 신문에는 이재록 목사님의 기도를 통해 난치, 불치병 등 각색 질병과 연약한 것들이 치료되는 놀라운 권능의 역사가 소개되어 있었습니다.
그해 5월, 저는 집 근처에 있는 동광주만민교회를 찾았습니다. 하지만 말씀에 은혜를 받는다 하면서도 병의 호전이 없어 보이니 참믿음을 갖지 못한 채 갈등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정연옥 담임 목사님께서 갑자기 마음에 주관이 와서 사 오셨다며 배 한 박스를 건네주셨습니다. 저는 순간 마음에 감동이 되었고 이를 계기로 동광주만민교회에 정착할 수 있었습니다. 그 후 마음에 평안이 임하면서 조금씩 잠을 잘 수 있게 되었지요.
동시 화상예배를 통한 당회장 이재록 목사님의 설교는 송이꿀보다 더 달았습니다. 그러던 2005년 어느 날, 하나님을 믿기 전 점을 보고 굿을 하는 등 우상숭배 했던 일들을 떠올리며 통회자복하는 은혜를 받았습니다. 정성껏 화목제물을 드리며 막힌 담을 헐어나가니 저의 불면증 증세는 더욱 호전이 되었습니다. 온전히 치료받고자 매일 밤 열리는 '다니엘철야기도회'에 참석하여 기도하고 금식하며 하나님께 매달렸지요.

2006년 8월, 전교인 하계 수련회에 참석한 저는 놀라운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교육 후, 당회장 이재록 목사님의 환자를 위한 기도를 받자 가슴에서부터 아래쪽으로 힘줄을 타고 전류가 흘러 내려가는 듯한 찌릿찌릿한 느낌이 온몸을 휘감았습니다. 그때 저도 모르게 '아얏' 소리를 지를 정도였지요.
그 후 놀랍게도 잠을 푹 잘 수 있었고, 항상 가슴이 답답하던 신경성 심장병 증세도 깨끗이 사라졌습니다. 할렐루야!

   

 

“천국의 언어로 된 음악과 글씨!”

아브래시아 마카래토샤(아버지는 사랑이시라)

 

“창세 이후로 처음 공개된 천국의 글씨!!!”

 

간질로 인해 고생하던 중

 

 

"비인두암 4기로 죽을 수밖에 없었던 저를 하나님께서 살려 주셨습니다"
 - [경찰관으로 살아온 이민수 성도의 간증]

 


간질로 인해 고생하던 중


이민수 성도 (목포만민성결교회, 63세)


"내가 죽는다니!" 청천벽력 같은 사형선고를 받고

언제부터인가 어깨 통증이 느껴지더니 날이 갈수록 심해졌습니다. 진통제를 복용해도 잠시뿐 송곳으로 찌르는 듯했지요. 한의원에서 침도 맞아보고 병원에 가서 물리치료도 받아 봤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또한 가끔 두통과 함께 코가 답답하고 시원하지 않은 느낌이 들었지요.

2012년 10월, 어느 날 자고 일어나 보니 베개에 피가 많이 묻어 있었습니다. 피곤해서 코피가 난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2013년 2월, 두 번째 코피가 나자 저는 병원에 갔습니다. CT 촬영 결과 의사선생님은 코에 큰 종양이 있다며 대학병원으로 가볼 것을 권했습니다. 대학병원 검사 결과 비인두암 4기였습니다. 의사선생님은 생사를 장담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아내가 교수님에게 살 소망이 있는지 묻자 환자가 원하는 것이나 잘 해 주라고 하셨습니다. 사형선고라는 청천벽력 같은 사실 앞에 저는 그저 눈물만 나왔습니다.

2013년 3월 19일, 저는 서울에 있는 대학병원에서 조직검사, PET-CT 검사(모든 암의 존재 유무를 판별할 수 있는 진단기로 암의 전이나 재발을 확인하는 데 정확성이 높은 검사), MRI 검사를 받았습니다. 결과는 역시 비인두암 4기였고, 코 속의 종양 크기가 5.5cm나 됐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암이 임파선과 뼈(경추, 어깨뼈, 척추, 꼬리뼈)까지 전이됐으며, 종양이 코 속 기도 부위에 있어 수술할 수도 없는 상태라고 했습니다.


'십자가의 도'를 들으며 지난날을 통회자복하니

지난 삶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며 후회가 막급했습니다. 1982년 12월, 저는 막내 누님인 만민기도원 이복님 원장님의 전도로 만민중앙교회에 6개월 정도 다녔습니다. 그러면서 매형 되시는 당시 이재록 전도사님의 기도로 갖가지 질병이 치료되고, 연탄가스로 죽어가던 조카들과 청년이 살아나는 등 놀라운 권능의 역사들을 목도했지요.

하지만 저는 세상이 더 좋았습니다. 당시 경찰직에 근무하면서 음주를 즐겨했고 젊었을 때 세상 것을 더 누리고 싶었습니다. 결국 가족의 권면도 무시한 채 주님을 떠나 살아가고 있었지요.

2013년 4월, 셋째 누님인 이정님 권사님이 저를 위한 기도회가 이복님 원장님을 모시고 있으니 꼭 참석하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감사한 마음으로 기도회에 참석했습니다. 원장님은 "교회에 나가 회개하고 열심히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꼭 병을 고쳐 주실 거야."라고 희망적인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이후로 저는 목포만민성결교회에 출석하며 화상을 통해 만민중앙교회 주일 대예배를 드리면서 당회장님의 설교를 경청했습니다. 하염없이 후회와 회개의 눈물이 흘렀지요. 더욱이 평소 좋아했던 당회장님이신지라 너무 뵙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교회에 나가지도 않았고 암 진단을 받고 나니 찾아뵐 면목이 없었습니다.

원장님이 건네주신 당회장님의 '십자가의 도' 설교 테이프 24개를 들으며 하나님의 사랑과 주님의 십자가 사랑에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기도할 줄 몰랐지만 10대, 20대 시절에 술과 싸움으로 지낸 일들을 비롯해 하나님을 믿지 않고 살아온 시간들을 눈물로 회개하며 통회자복했습니다.


권능의 기도로 비인두암은 물론, 전이된 암까지 사라져

셋째 누님(이정님 권사)이 당회장님께 기도를 받으라고 권유했습니다. 저는 민망했지만 내심 반가웠고 설레는 마음으로 준비해 당회장님께 처음으로 기도를 받았습니다.

2013년 5월 29일, 당회장님 손이 제 머리에 닿자 뜨거운 열기가 머리에서부터 척추로 퍼졌습니다. 동시에 어깨와 척추에 전이된 암의 통증이 신기하게도 사라졌지요. 그동안 통증으로 인해 새우잠을 잤던 것과는 달리 반듯하게 누워서 잘 수 있었고 완치될 수 있다는 믿음이 왔습니다. 병원 검사 결과 코 속에 있는 종양 크기는 3cm나 줄었고, 몸무게도 85kg에서 71kg까지 빠졌었는데 식욕이 돋으니 체중이 조금씩 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6월 24일부터 만민기도원 은사집회에 참석했습니다. 원장님이 설교하실 때 원장님 뒤편에 걸린 은사집회 플래카드에서 예수님 형상을 보게 됐습니다. 그곳에 원래 그 형상이 새겨져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저희 부부에게만 보인다는 사실을 알고 온몸에 전율을 느꼈지요. 그 후 매 집회마다 하나님을 믿지 않고 세상을 좋아했던 것들을 회개하며 통회자복했습니다.

6월 28일에는 당회장님께 두 번째 기도를 받았습니다. 이때도 당회장님 손이 제 머리에 닿자 뜨거운 성령의 기운이 머리부터 임했지요. 평안하고 기뻤습니다. 얼마 후 목포에 내려온 저는 당회장님 설교를 듣거나 예배를 드릴 때 감사가 넘쳤고, 시간마다 회개의 눈물이 흘렀습니다.

그러던 8월 어느 날, 재채기를 크게 했는데 코 속에서 종양 덩어리가 떨어져 나왔습니다. 고기 썩은 냄새가 났지요. 그 뒤 병원 검사 결과는 놀랍게도 종양이 또 절반으로 줄었다고 했습니다. 또한 전이된 암으로 인해 뼈 부위가 대부분 검은 색이었는데 흰색으로 회복돼 있었습니다.

11월 15일, 당회장님께 세 번째 기도를 받았습니다. 27일 병원 검사 결과, 코 속의 종양이 없어지고 뿌리만 조금 남아 있다고 했습니다. 그 뒤 식욕도 왕성해지고 체중도 정상이 되면서 건강이 빠르게 회복됐습니다.

마침내 2014년 3월 7일 검사 결과,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코 속 종양과 임파선에 있던 전이된 암이 뿌리째 사라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경추 1, 2번 뼈에 약간의 흔적을 제외하고는 뼈에 전이된 암도 모두 사라졌습니다. 할렐루야!

사형선고를 받아 죽을 수밖에 없었던 제게 제2의 인생을 주신 삼위일체 하나님께 모든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수술하지 않고도 쌍꺼풀이 생긴 놀라운 사실, 들어보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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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질로 인해 고생하던 중


마해미 자매 (2청년선교회, 23세)

저는 대학에서 한국무용을 전공했고, 우리 교회 예능위원회 소속 '천상의 무용팀'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메이크업을 자주 하게 되고, 쌍꺼풀이 없는 눈을 크고 또렷하게 보이기 위해 쌍꺼풀 테이프를 사용해야만 했지요. 더욱이 눈꺼풀이 두툼하다 보니 많게는 대여섯 번을 수정해 붙여야 했습니다.

장시간 붙이고 있으면 쉽게 눈에 피로가 오고 눈을 뜨고 있는 것조차 힘들었지요. 이로 인해 '쌍꺼풀이 있으면 테이프도 붙이지 않고 눈도 아프지 않을 텐데…. 참 편하겠다.'라는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2014년 5월 11일 주일 아침, 저는 마음의 변화를 사모하며 믿음으로 악수하고자 교회에 오시는 당회장 이재록 목사님을 기다렸습니다. 드디어 당회장님이 오셨고, 저는 당회장님의 따뜻한 사랑의 미소를 바라보며 행복한 마음으로 악수했지요. 그런데 바로 그때 '쌍꺼풀이 생길 것 같다.'라는 마음이 강하게 왔습니다.

저는 즉시 당회장님과 악수한 손을 눈에 대고 기도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목자의 권능으로 쌍꺼풀을 만들어 주세요!" 그 순간 눈에 선이 그려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 기도를 마치자마자 확인해 보니 쌍꺼풀이 생긴 것입니다. 할렐루야!

직접 기도받은 것도 아니었고, 단지 당회장님 권능의 역사를 믿었을 뿐인데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제 마음의 소원에 응답해 주셨습니다. '쌍꺼풀이 있으면 편하겠다.'라고 생각했지만, 인위적으로 쌍꺼풀을 만들고 싶다거나 쌍꺼풀이 없다고 불평한 적은 없었습니다. 쌍꺼풀이 생겨서 편해지고 예뻐지는 것보다 마음의 할례가 우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평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영의 마음을 먼저 이루자. 내게 꼭 필요한 것이라면 아버지 하나님께서 쌍꺼풀도 만들어 주실 거야.'라고 생각했지요. 그리고 공연을 위해 쌍꺼풀 테이프를 붙여야 하는 등 번거로운 상황에도 감사했더니 결국 그 믿음대로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영의 마음을 이룬 후 쌍꺼풀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이제는 공연 메이크업을 할 때에도 수월하고 시간도 단축되며 눈에 피로가 쌓이지 않아서 매우 좋습니다. 무엇보다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를 아시고 이처럼 마음의 소원에 응답해 주셨다는 사실이 제겐 큰 축복이고, 행복입니다.

항상 눈에 본 듯 만진 듯 아버지 하나님을 느낄 수 있도록 큰 은혜와 사랑, 권능을 베풀어 주시는 당회장님께 감사드리며, 섬세하게 인도해 주시는 사랑의 주님과 아버지 하나님께 모든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간질로 인해 고생하던 중
쌍꺼풀이 생기기 전의 모습(왼쪽)과 당회장 이재록 목사를 통해 베푸시는 하나님 권능의 역사로 쌍꺼풀이 생긴 모습(오른쪽).     안경을 벗고도 생활할 수 있다니 꿈만 같습니다 - 이정환 집사 (춘천만민교회)
간질로 인해 고생하던 중저는 강원대학교 환경계획설계평가연구실 연구원입니다. 하루 일과 대부분을 모니터 앞에서 보내는 관계로 시력이 무척 좋지 않았습니다. 대학 강사인 제 아내 이영욱 집사 역시 시력 저하로 불편을 겪고 있었지요.
지난 4월, 희소식을 들었습니다. 6월에 세 차례에 걸쳐 당회장님께서 직접 특별 은사집회를 인도하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저희 부부는 정확한 시력 측정을 위해 안과를 찾았습니다. 저는 시력검사표 10cm 앞에서도 가장 큰 글자가 흐리게 보일 정도였고, 아내는 양안 0.1이었습니다.

저희는 '특별 은사집회 때 꼭 치료받아야겠다'는 기대와 소망으로 한껏 부풀었습니다. 하루하루 하나님 말씀대로 살기 위해 힘썼습니다. 기도와 금식으로 하나님 앞에 정성을 내보였지요.

형님 부부(이관규 강원대 조경학과 부교수, 임수희 집사)는 불임으로 고통받다가 당회장님 기도를 받고 결혼 13년 만에 아들을 낳았습니다. 이 기적 같은 하나님 권능을 보았기에 저희도 치료받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드디어 1차 특별 은사집회가 열린 지난 6월 10일 저는 춘천에서, 아내는 강의를 마친 후 대구에서 서울 만민중앙교회로 달려왔습니다.

2부 시간, 당회장님께서 단에서 '환자를 위한 기도'를 해 주실 때였습니다. 순간 저와 아내는 눈이 뜨거워지는 현상을 체험했습니다. 치료받았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즉시 안경을 벗고 확인했습니다.

"어! 뿌옇게 보이던 색들이 선명하게 보여요!" 아내는 좋아서 어쩔 줄 몰랐습니다. 저 역시 단에 계신 당회장님 모습이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이어 개인 안수기도를 받기 위해 줄을 섰습니다. 이번 특별 은사집회에는 한 주에 4천여 명의 환자가 등록을 했다고 합니다. 이날 시력 환자는 1,095번까지 기도를 받았습니다. 저희는 295, 296번이었지요. 안수기도를 받은 후 안경을 썼다 벗었다 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안경을 새로 맞출 때처럼 선명하고 뚜렷하게 보이는 것이 아닙니까.

저희 부부는 간증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해 단에 올라갔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간증자가 너무 많아 다음으로 미루어야 했지요. 얼마나 시력이 좋아졌는지 특별 은사집회를 마치고 춘천까지 안경을 벗고 운전할 수 있었습니다. 할렐루야!

6월 17일, 2차 특별 은사집회는 춘천만민교회에서 화상으로 동참했습니다. 토요일 아침 9시경 눈을 떴을 때 또 한 번 놀랐습니다. 그동안 형태만 보였던 벽시계가 분침까지 또렷이 보였고, 안구건조증 때문에 눈이 자주 충혈되는 증세도 사라졌습니다. 아내도 심한 난시로 인한 두통이 사라졌지요, 지금은 안경을 벗고 생활하고 있습니다.

모든 감사와 영광을 아버지 하나님께 돌리며,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권능의 기도로 시력까지 회복되니 행복합니다"   간증하는 주현권 목사 (3대대 대교구장, 61세)
간질로 인해 고생하던 중

저희 가족은 주님을 영접한 후 35년 동안 병원이나 약국과는 상관없이 살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1996년 말경부터 시력이 약해져서 2000년부터는 0.3(우안), 0.5(좌안)로 항상 안경을 착용하고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그러던 지난 8월 3일, 만민 하계수련회 시작 전날입니다. 밤에 꿈을 꾸었는데 종기에서 빠져나온 종기 뿌리를 보았습니다. 저는 당회장 이재록 목사님께서 "이번 수련회는 어느 해보다도 권능의 역사가 더 크게 대폭발로 나타날 것"이라고 말씀하셨기에 '내게도 영육 간에 축복의 수련회가 되겠구나!' 하는 기대와 벅찬 마음으로 수련회에 참석했습니다.

수련회 첫날 저녁, 교육 시간에 은혜의 단비가 내렸습니다. 빗물로 안경이 뿌옇게 돼 저는 안경을 벗고 말씀을 경청했습니다. 그런데 흐릿하게 보이던 사물이 어느 순간 선명하게 보이는 것이 아닙니까? '어! 시력이 좋아졌네!' 저는 지갑에서 명함을 꺼내어 읽어 보았습니다. 놀랍게도 작은 글씨도 잘 보였지요.

이어진 은사집회 때 눈에 손을 얹고 당회장님의 환자기도를 받았습니다. 그러자 시력이 더욱 좋아져서 다음 날 체육대회 때에는 안경 없이 릴레이 선수로 달릴 수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일정을 모두 마치고 상경할 때는 야간에 빗길임에도 불구하고 안경을 착용하지 않고 고속도로를 안전하게 운행할 수 있었습니다. 할렐루야!  

간질로 인해 고생하던 중

 

간질로 인해 고생하던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