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아버지를 미워하는 26살입니다. (스압이네요..)

ㅋㅋ2015.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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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먼저 30대이야기에 26살이 글을 올려 혹여 보시는 분들의 심기를 건들였을까 죄송한 마음을 먼저 드리며, 제가 26살임에도 30대 이야기에 글을 남기게 된 것은 형님들의 조언으로

제가 느끼는 감정에 대해서 올바른 조언과 그로 하여금 철이 들게 해주셨으면 하는 바램으로 여기에 글을 남깁니다.

 

저는 무능력한 54세 아버지를 미워하고 있습니다. 아니 매우 싫어합니다. 그 마음 속 표현은 최근 4년전부터 아버지와 단둘이 살면서 강해졌지만, 어쩌면 그보다 훨씬 전 기억이 나지않는 시절부터 였던것 같습니다.

 

저는 모 한의대 본과4학년으로 50여일 뒤 국가고시를 본 후, 대체 군복무로 공중보건의사로써 타지역의 보건소, 보건지소로 근무나가게 될 것입니다. 저는 같이 사는 내내 국가고시를 본 후 부터는 독립하겠다는 마음(어쩌면 그보단 아버지와 떨어지고 싶다는마음)을 강하게 가지고 있엇고, 자주 표현했습니다. 결국 아버지도 결국 독립을 인정하셨습니다.

 

그렇게 되면 50여일 뒤부터는 한 집에서 생활하는 일은 없겟지요. 적어도 저는 그러고 싶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미워도 정이 뭔지, 영화나 드라마 노래등에서 보통의 쓸쓸한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혼자 지내실 아버지 생각에 먹먹해지고 애써 그 감정에서 벗어나려 다른 생각이나 행동을 합니다.

 

저는 아마 아버지를 100%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20%의 연민이 동시에 있는 것같습니다.

 

 

 아버지는 7남매중에 막내 아들입니다. 보통은 막내아들이라면 많은 사랑을 받고 자랐을 법 하지만, 저희 아버지는 전혀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랐습니다. 학자로써 지역에서 위엄있으셧던 가부장적인 할아버지 밑에서 할아버지 그림자도 못밟으며 자랐으며, 위로 6남매의 보살핌 보다는 거의 내 논 자식처럼 자라신것 같습니다. 아버지는 고등학교때까지 축구선수셨는데, 학자셨던 조부모님께서는 운동을 매우 격렬히 반대하셨고, 운동을 그만 둔 뒤 도전한 중앙대 연극영화과에 합격했음에도, 딴따라라고 하시며 대학진학을 반대하셨습니다. 이후 아버지는 평발로 공익을 나오셔서 이곳저곳 영업활동을 하시다. 어머니를 만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위 이야기는 아버지가 자주 하시는 말씀이고, 아버지를 안타깝게 생각하는 마음 또한 아버지의 유년이야기에서 나온것입니다.

 

문제는 그 이후입니다. 아버지는 말이 항상 가벼우시고, 거짓말을 입버릇처럼 하십니다. 이것이 아마 지금 어머니와 따로 사는 이유중 하나라 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는 결혼할때 마련한 전세집이 모두 자신의 은행빚이였습니다. 물론 아버지 형제중에는 은행장도 있었고, 사업으로 성공한 사람도 있었지만, 누구하나 도와주지 않은 것 같습니다. 사실 그런 상황이라면 빚으로 집을 마련한 것이 부끄러운 것은 아닐것입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이를 어머니께 속이고 결혼 하였습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빚덩어리라는 사실을 전혀 모른채 결혼 하셨으며 가정살림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아버지는 집안 상황에 안맞는 커다란 침대, 티비, 쇼파등을 낭비벽이라 불러도 될 정도로 과하게 구입하자고 어머니에게 요구했다고 합니다. 반면 어머니는 학창시절부터해서 꾸준히 모은 3000만원을 가지고 결혼하셨으며, 결국 이 돈은 아버지의 빚을 갚는데 모조리 쓰였지요. 그런 상황에도 아버지께선 과한 지출을 계속하셨고, 심지어 결혼사진에만 그 당시 60만원이라는 큰 금액으로 지불하였는데, 어머니께서 아버지께 사진사에 주라고 준 돈 60만원을 아버지께서는 노는데 모두 쓰셧고, 결국 사진관에서 어머니께 따로 연락이 왔던 사건은 저도 자세히 알만큼 어머니께서 속을 썩으셨던 사건입니다.

 

그 외에도 군대를 현역으로 갓다왔다 말하거나, 운전면허를 따놧다고 말하거나 등 말도 안되는 사소한 것부터 거짓말 투성이였습니다. 직장도 1년에 한번씩은 옮기셧고, 이직기간동안 생활비에 대한 고충은 모두 어머니의 몫이였습니다.

 

또 문제는 아버지는 의처증이셨습니다. 월급이 들어오지 않는 회사를 전전하시던 아버지때문에 생활이 되지 않자 어머니는 보험사를 하게 되셧고, 그 때 제 동생나이는 겨우 2살이였습니다. 어머니는 2살배기 아이를 추운 겨울에 돌돌싸메서 어린이집에 맡긴뒤, 직장으로 바로가는 버스가 없어서 한참을 걸은 후에나 버스를 타던 그 시절 이야기를 하시면 지금도 눈물을 흘리십니다. 그런데 그런 어머니가 밖에서 다른 남자 고객이나 상관과 만나고 있으면, 그 당시 삐삐로 마치 위급상황인 것 마냥 삐삐를 남겻다고 합니다. 제가 초등학생때 기억하는 바로도 아버지가 집에 전화를 걸면 번호가 뜨는데, 그게 너무 무서웠습니다. 항상 화난 목소리로 전화를 거신 아버지는 어머니가 집에 있는지에 대해서만 묻고, 전화를 끊고는 했습니다. 제가 겁이나서 동생에게 전화를 떠맡기곤 했었고,

그게 일종의 트라우마로 남아서 저는 엄마 이외에 친한 사람에게도 전화를 잘 걸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조금 어려운 분에게 전화를 드릴 땐 한숨 몇번 내쉬고 억지로 하곤 했습니다.

 

 

그 외 의처증 증세 중에 엄마에게 본인이 암에걸렸다고 거짓말하거나 외삼촌이 주신 노래방을 맡아서 운영하던 아버지께서 어머니께 쓰러졋다고 알바를 통해 알리고 기다리는데 외삼촌이 먼저 오셔서 들처엎고 병원에가서 온갖검사를 다해봤는데 결과는 꽤병이였던 사실 등. 저는 아직도 이해하지 못할 행동들을 많이 하셨습니다. 아버지와 달리 운동선수였지만 혼자 독학하시면서 운동이 아닌 전공으로 대학까지 나오신 어머니는 고등학교때까지 저희 학교에 찾아오는 걸 제가 부끄러워 할 정도로 남들이 더 알아주는 미인이셧고, 아버지와 달리 위로 5남매가 잘챙겨주는 유복한 막내셨습니다. 그러니 아버지 입장에선 불안하셨을 수 있죠.

 

그러나 차라리 아버지가 안계시는 것이 나은 경제력과 의처증, 거짓말 투성이에, 불법 오락실에서 가게에서 그 날 번돈으로 놀다가 새벽에 들어오시는 등. 이미 어머니께선 한계셨을겁니다.

 

아버지의 어머니에 대한 걱정에 관심밖이였던 저는 어머니에게서 아버지역할과 어머니역할의 향기를 모두 받았다고 할 만큼 어머니 손을 많이 탔고, 중,고등학교 시절에 다행이 철이 일찍들어서 없는 환경에서도 공부에 전념하였고, 이렇게 밥 걱정 안할 전공까지 하고 있습니다.

반면 저와는 나이차이가 좀 있는 동생은 어린나이부터 어린이집에 맡겨져 어머니 손길도 못받고 남 눈치를 많이 보고 자랐고, 지금은 그 스트레스로 예상 키보다 훨씬 작으며, 학교 자퇴위기에도 어떻게 전문대까지는 갔으나, 사랑을 못받고 다른사람들과의 관계에서 항상 '을'의 위치가 되는 것을 목격할때마다 저 또한 가슴이 참 아픕니다.

 

못견디던 어머니는 인품도 괜찮고 사업도 하시며 나름의 여유가 있던 어떤 아저씨를 만나셨고, 그걸 아신 아버지와 더욱더 분노하며, 아침에는 저한테 한풀이, 저녁에는 엄마 뒷조사하시며 지내시고, 결국 제가 수능을 보기 전날까지 다투시다가 수능 후 바로 이혼서류를 작성하러 가셨고, 나이가 더 어린 동생은 어머니와 저는 아버지와 살게 된 것입니다.(아버지의 새로운 직장과 제학교가 같은 지역이여서 그리되었습니다.)

 

문제는 아버지의 새로운 직장이였습니다. 아버지는 6년전 이혼 후 불법오락실 관리인으로 일을 하셨습니다. 1,2년간은 나름의 수입이 있었는데, 그 때 그만두라고 아무리 말려도 땅을 살꺼라든지등의 허황된 이야기만 잔뜩하시면서 또 무리하게 돈을 쓰시다가, 그 이후에는 단속이 강화됨에 따라 점점 힘들어졌고, 그러다 구속되셨고, 지금은 돈 한푼없이 12월 재판을 기다리고 계시는 중입니다. 

 

 

제 등록금은 학자금 대출로, 생활비는 생활금 대출과 의사론 마이너스 통장으로 생활하고 있습니다. 제 동생은 멀리 타지에서 학교다니는데, 용돈은 주로 어머니와 어머니가 만나는 사업가 아저씨 쪽에서 받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제 마이너스통장에서 100만원, 200만원, 300만원씩 빌려가시곤 아직 덜 받았고, 제 명의로 카드만들어달란 이야기에 또 크게 실망하기도 했습니다.

 

 

여기까지 이야기를 적는데도 참으로 아버지가 밉내요. 그런데 아버지는 아직도 가정의 깨진 이유를 순전히 어머니의 탓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걸 깨닫지 못하는 아버지가 참 한심합니다.

 

이렇게 싫어하는 마음이 오래되다보니, 아버지께서 밥먹었냐, 같이밥먹자, 어디가냐, 언제들어오냐 등의 관심표현에도 굉장히 싫음 내색을 합니다. 어머니께 하던 의처증증세가 혹여나 나로 바뀐게 아닐까 하고요. 최근에 어머니와의 대화에서 '너에게 해준거 엄마 노후는 엄마가 챙길테니 너는 너가 번 걸로 너의 인생을 꾸려라' 라고 말씀 하신거에 감명깊어 아버지에게 그간 쌓인 감정으로 반항반, 진지함 반으로 '나는 앞으로 내가 번 돈으로 차도사야되고, 결혼자금도 마련해야되고, 병원도 차려야하니 내가 돈을 많이 벌기 전까진 아버지 노후는 아버지가 챙기세요'라고 아버지께서 그 전에 농담반 진담반으로 '너 요양병원가면 월급500~600받니? 거기서 나 100만원씩 주면 안되겠냐'으로 던진 말에 대해 답을 드렸더니 아버지에게서 '내가 구걸하는 한이 있어도 너에게 빌붙어살지 않겠다'는 대답을 얻었내요. 어머니랑 아버지가 참 다르죠??

 

 

그럼에도 마냥 미워할 수 없는게 사람인지라, 아버지가 사랑을 못받고 자란 점, 생각은 짧으시지만 이혼 후 마땅한 베스트프렌드없이 외톨이가 되신 아버지께서 자식들에게 특히 아버지께서 눈치를 보는 저에게 뭐라도 해주려하는 점등이 제 마음을 안타깝게 할 때도 많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버지에게 제 빨래를 해주거나, 국거리를 만들어 놓으시거나, 청소를 해주시거나를 바라지 않습니다. 바라는건 딱 하나 입니다. 부지런하고 올바른 인생을 사는것으로써 저희 자식들에게 모범된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주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전 아버지가 환경미화원을 하신다면 너무나 존경스러울 것 같습니다. 허나 이미 반백년을 이렇게 살아오신 분에게 갑작스러운 변화는 기대하기 힘든 걸 까요??

 

이러한 사실들을 잘 모르는 동생에게 만큼은 좋은 아버지로 남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앞으로 같이 있는 동안은 물론, 따로 떨어지더라도 아버지를 인간으로써 좋아하기는 힘들 것같습니다. 제가 항상 타산지석으로 삶고 살던 사람이 아버지였으니까요.

 

그런데, 그렇게 지내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또 많이 후회하게 될까바 걱정도 있습니다.

동년배에 비해 많이 늙으신 아버지를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드네요.

 

제가 아버지를 볼 때마다 화가나고, 지겹고...그러면서도 인간으로써의 아버지가 참 불쌍하기도 하고... 하 이 복잡한 감정을 잘 표현을 못하겠네요.

 

마지막 학생으로써의 남은 50일이라도 잘 지내보고싶으나 마음이 너무나 따라주지 않네요.

형님께선 아버지와 관계가 어떠셧나요..? 좋은 아버지에 좋은 아들이셧나요..?

형님들의 20대에는 이러한 고민이 있으셧나요..? 제 20대가 아버지를 미워하는 감정으로만 지나가는게 안타깝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