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가 되어보겠다고 상경해 서울에서 혼자 아둥바둥 살아가는 너를 뒷바라지 했던게 나의 20대 초중반의 모든 기억이다.
나는 어렸고, 너는 젊었다.
난 너에게 미쳐있었고, 너는 그런 나와 연기를 둘 다 이고가느라 꽤나 버거웠을 것이다.
난 어린만큼 사랑에 무모했고, 넌 젊은만큼 너의 꿈에 뜨거웠다.
우연히 지인과 함께하는 자리에서 처음만나, 우린 무서우리만큼 순식간에 사랑에 빠졌다
준비하는 분야, 식성, 취미생활, 성격, 가정사, 심지어는 외모까지 서로 비슷하지 않은게 없었다. 순간순간을 정말 소설처럼 연애했고 너와 헤어지고 집가는 길이면 가슴 벅참에 눈물을 글썽이며 집을 들어가곤 했다. 너의 이름 세글자만으로도 일렁이는 나의 세상을 보며 이보다 더한 사랑은 내 인생에 없을꺼라 매일밤 확신했던 나날들이었다.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혼자 상경해 배우를 준비하는 네가 경제적으로 얼마나 처참하게 살았는지, 나는 사실 잘 알고있었다.
밥값이 없어 나를 만나지 않는 날이면 쌩으로 끼니를 굶었다는 것을, 당장의 차비가 없어 몇몇 오디션도 보러가지 못했었다는 것을, 선생님이 맞지 않는다는 핑계로 레슨을 그만두었지만 결국은 레슨비를 감당해내지 못한 것이었다는 것을, 기독교도 아닌 네가 공짜밥을 먹기위해 주말이면 노인분들만 가득한 교회식당을 들락날락 거렸다는 것을,
나는 다 알고 있었다.
사귄지 1년쯤 됬을 때, 나에게 더는 마음이 없다며 뜬금없이 이별을 통보한 날
너의 통장잔고가 한달 째 텅텅 비어있었던 것 조차 나는 알고 있었기에 별로 당황하지 않았다.
언젠가는 거치게될 일이라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언젠가는 우리 만남에, 돈이, 분명히 장벽이 될 것이라 지레 마음의 준비를 해놓고 있었다
혹여나 너의 자존심을 상하게 할까 붙잡는내내 끝까지 돈문제인걸 아는척하지 못했지만..
그 이후로 나는 결심했고, 닥치지 않고 일을 했다. 온전히 너를 위해.
부끄럽지만 내 대학등록금도 내 돈 벌어서 내 볼 생각 안했던 철없던 내가, 평일이고 주말이고 낮 밤 가리지 않고 무섭게 돈을 벌기 시작했다.
꼴랑 하나하던 과외도 4개로 늘리고, 주말이면 백화점 행사매장에서, 단기 과외까지
진짜 돈에 미친 사람처럼 일을 했다
돈 때문에 너를 잃을 수 있다는 두려움이었다.
그렇게해서 벌어가는 돈으로 네 고시원에 반찬을 사갔고, 네 개인연습실도 대관해줬고, 계절이 바뀔때면 커플옷 맞추자는 핑계로 늘 두명치 옷을 샀으며, 자존심 상하지 않는 선에서 네게 종종 용돈도 주었다. 아 그리고 내가 소개해준 연기 선생님, 넌 내 소개라서 싸게 배운건줄 알았겠지만, 그거 매달 18만원씩 내가 너 몰래 같이 드린거다. 아무것도 모르고 서울에서 어떻게 이가격에 연기 개인지도를 받을 수 있겠냐며 행복해하는 너를 보는게 나에겐 행복이었으니까.
그렇게 하니까 우리의 만남에 위기가 없었다.
종종 너는 나이도 더 어린 나에게 받기만 하는 것을 미안해했지만, 그럴때면 난 요즘 아버지 사업이 잘되간다며 말을 돌렸고, 너는 정말 믿는척 넘어가주었지
나에게 모여가는 돈은 없었지만, 그래도 너와 결혼할 것이라고 나는 굳게 믿었으니까
딱히 걱정은 되지 않았다. 너를 위한 맹목적인 나의 투자는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었다
왜냐면 우린 안헤어질거니까.
그렇게해서 1년,2년, 3년째 되던 해에 네가 슬슬 잘풀리기 시작했다.
나름 대학로에서 이름있는 연극도 하게되고, 몇몇 소극장 뮤지컬 무대에도 서곤 했다.
비록 단역이지만 상업 영화에도 출연했으며, 더는 오디션을 보지 않아도 너를 작품에 불러주는 사람들이 생겼고, 그만큼 너도 연기로인한 ‘벌이’라는걸 드디어 맛보게 된 것 같다.
좋았다. 네가 그토록 원하던 배우의 모습으로 돈을 벌어가는걸 보는게.
널 뒷바라지하는 내내 내 친구들은 아들자식 하나 키우냐며 혀를 찼지만,
진짜 드디어 아들 하나 키워놓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널 위해 돈을 벌며 놓쳤던 친구관계, 학점, 건강, 뭐 하나 아까운 것이 없었다.
이렇게 드디어 네게도 경제적, 더불어 마음의 여유까지 생기면
우린 더더더 행복해질 것 같았다.
나와 만나면 연습 스케쥴에 피곤해하면서도 대본 외워야한다며 내앞에서 대본들며 유세떠는 너를 보는게, 행복했다.
네 공연을 보러가면 크지 않은 배역이어도 뭐라도 된 듯 ‘배우’ 대기실 앞에서 기다리는 순간이, 행복했다.
네 동료 배우들이 공연 초대권을 주었다며 공연 날짜에 맞춰 스케줄 비우라고 할 때, 왜 늘 직전에 통보하냐고 툴툴대면서도, 행복했다.
처음으로 대극장 공연에 선 날, 공연 끝나고 널 보며 눈물 지으시는 네 부모님 앞에서 여자친구라고 소개되진 못했지만 그래도 지금 얘의 8할은 내가 만들었어요 라는 자부심에, 행복했다.
하지만 그러고 너는 점점 변해갔다.
연습이 없는 날에도 피곤하다며 혼자 있길 원했고, 동료 배우들과 밥 한끼 더 먹으며 친해질 수 있는 시간에 나와 있다는 것을 늘 아쉬워했다. 네가 돈을 번 후에도 너의 연습실 대관료는 내가 내는 것이 당연해졌고, 내가 먼저 연락을 하지 않는 날엔 오후 5시고 6시고 내 핸드폰은 울리지 않았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다른 남자들과는 다른 네가 다른 남자들처럼 변해간다는게.
나도 다른 여자들처럼 이런 뻔한 고민에 힘들어하고 있다는 사실이 용서가 안됬다 나는 다른여자들보다 더 잘한 것 같은데.
대학시절을 오롯이 너에게 바친 나를 이렇게 바닥까지 내팽겨쳐도 되나 싶었다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더 이상 나는 너에게 여자가 아니었다.
그냥 뭐랄까 간간히 일상을 함께하는 동료랄까
새로나온 영화를 같이 볼 사람이 없으면 같이 보고, 용돈이 떨어지면 용돈도 좀 타고, 의무감에 가끔씩 만나 딱히 의미없는 시간을 함께하는 그런 존재 그 이상 이하도 못되었다.
그런 끔찍한 모습의 너를, 끔찍한 우리의 관계를 난 8개월이나 더 버텼다.
매일매일 너에게 더 이상 사랑하는 연인이 아님을 확인받으면서,
하루하루 너의 대답, 반응, 표정에 목메어가며
그렇게 꾸역꾸역 버텼다 나는
그러다 마침내 너의 바람대로 나는 나가떨어진 것 같다.
가슴이 아프진 않았다 왜냐면 8개월동안 이미 가슴이 아팠으니까
돈이 없어도, 사는게 불안하고, 미래가 불투명해도,
그저 나를 마냥 예뻐해주던 너의 그 눈빛이 그리웠다.
내 작은 기침소리에 가슴 철렁하던, 너의 마음이 그리웠다.
짧은 치마를 입고 나갈때면 졸졸졸졸 내 뒤에만 바짝 서있던 네가 그리웠다
더러울 것 같아 내게 먹이기 찝찝하다며 대학로 거리음식도 함부로 못먹게하는, 너의 잔소리가 그리웠다
내가 뭘 먹고 있을때면 연신 예뻐죽겠다는 듯이 히죽히죽 사진을 찍어대는 네가, 그리웠다
집에 데려다줄때면 내일 아침에 눈뜨자마자 보자며 빈틈없이 꽉 안아주고 몇분이고 놓아주지 않던 네가 그리웠다
이별을 말하는 나에게 너는 덤덤했다.
덤덤해보였던 걸까, 정말 덤덤했던걸까..
아마 너도 스스로 변해가는 널 보며 어느정도는 우리의 이별을 예상하고 있었겠지
너는 날 붙잡지 않았고, 비교적 깔끔하게 우린 헤어졌다
슬퍼하고, 눈물 흘리고, 아쉬워하고, 이런 것 없이..
그렇게 헤어진지 2년 반, 우린 단 한번도 마주치지 않았다
작년까지 네게 늦은 밤 전화는 몇 번 왔지만 받지 않았다.
받으면 꾸역꾸역 참고 있는 나의 모든 것이 와르르 무너질 것 만 같아서였어
사실 아직도 견뎌내고 있거든 난
가끔 네가 사무치게 그리울 때면 네 이름을 쳐서 공연 후기 블로그들에 들어가보곤 한다
간혹 올라와 있는 너의 사진들.. 살은 많이 빠졌지만 그래도 그대로인 모습에 안심한다
언젠가 한번 괜찮아지면 너의 공연을 몰래 보러가보려고 했는데, 아직 그럴만한 용기는 나지 않는다.
아마 앞으로도 안날 것 같아
그렇게 네게 쏟아부은 나의 시간 5년, 그리고 헤어진지 2년,
나의 20대 7년동안 내게 남자라곤 너밖에 없다.
집에선 이제 슬슬 결혼할 나이 아니냐며 선이라도 보라고 눈치를 주지만 그럴 수는 없다
아직도 난 왠지 너와 결혼할 것만 같으니까.
늦은 밤 괜히 네 생각만 다시 떠올라서 끄적여본다
네가 볼일없는 이 글을.
너 정말 나중에 더 유명해지면, 티비에도 막 나오고 그러면, 나 술자리에서 자랑좀 할게
쟤 진짜 무명이라 힘들 때, 내가 고생고생해서 너 먹여 살렸다고, 그랬다고, 그냥 그렇게 너랑 나랑 평생 만날 줄 알았는데, 이렇게 남남되서 이제 쟨 티비에도 나온다고,
그냥 그정도 안주거리는 삼을 자격 있지 않냐 나
건승해라
나도 이젠 내 앞가림하면서 잘 살아.. 내 통장에 내 돈도 모으고
우리 정말 이제 부정할 수 없는 어른이 됬다
아직도 네가 너무 보고싶다
지금 만나는 사람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중에 어떤 사람을 만나서 어떻게 살게 되던 나는 잊지 말아라
그냥 너의 20대에 무던히 너를 위해 살았던 내가 있었음은
기억하고 살아달라는게 내 마지막 불쌍한 부탁이다
이글이 부디 너에게 닿길
나는 어렸고, 너는 젊었다.
난 너에게 미쳐있었고, 너는 그런 나와 연기를 둘 다 이고가느라 꽤나 버거웠을 것이다.
난 어린만큼 사랑에 무모했고, 넌 젊은만큼 너의 꿈에 뜨거웠다.
우연히 지인과 함께하는 자리에서 처음만나, 우린 무서우리만큼 순식간에 사랑에 빠졌다
준비하는 분야, 식성, 취미생활, 성격, 가정사, 심지어는 외모까지 서로 비슷하지 않은게 없었다. 순간순간을 정말 소설처럼 연애했고 너와 헤어지고 집가는 길이면 가슴 벅참에 눈물을 글썽이며 집을 들어가곤 했다. 너의 이름 세글자만으로도 일렁이는 나의 세상을 보며 이보다 더한 사랑은 내 인생에 없을꺼라 매일밤 확신했던 나날들이었다.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혼자 상경해 배우를 준비하는 네가 경제적으로 얼마나 처참하게 살았는지, 나는 사실 잘 알고있었다.
밥값이 없어 나를 만나지 않는 날이면 쌩으로 끼니를 굶었다는 것을, 당장의 차비가 없어 몇몇 오디션도 보러가지 못했었다는 것을, 선생님이 맞지 않는다는 핑계로 레슨을 그만두었지만 결국은 레슨비를 감당해내지 못한 것이었다는 것을, 기독교도 아닌 네가 공짜밥을 먹기위해 주말이면 노인분들만 가득한 교회식당을 들락날락 거렸다는 것을,
나는 다 알고 있었다.
사귄지 1년쯤 됬을 때, 나에게 더는 마음이 없다며 뜬금없이 이별을 통보한 날
너의 통장잔고가 한달 째 텅텅 비어있었던 것 조차 나는 알고 있었기에 별로 당황하지 않았다.
언젠가는 거치게될 일이라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언젠가는 우리 만남에, 돈이, 분명히 장벽이 될 것이라 지레 마음의 준비를 해놓고 있었다
혹여나 너의 자존심을 상하게 할까 붙잡는내내 끝까지 돈문제인걸 아는척하지 못했지만..
그 이후로 나는 결심했고, 닥치지 않고 일을 했다. 온전히 너를 위해.
부끄럽지만 내 대학등록금도 내 돈 벌어서 내 볼 생각 안했던 철없던 내가, 평일이고 주말이고 낮 밤 가리지 않고 무섭게 돈을 벌기 시작했다.
꼴랑 하나하던 과외도 4개로 늘리고, 주말이면 백화점 행사매장에서, 단기 과외까지
진짜 돈에 미친 사람처럼 일을 했다
돈 때문에 너를 잃을 수 있다는 두려움이었다.
그렇게해서 벌어가는 돈으로 네 고시원에 반찬을 사갔고, 네 개인연습실도 대관해줬고, 계절이 바뀔때면 커플옷 맞추자는 핑계로 늘 두명치 옷을 샀으며, 자존심 상하지 않는 선에서 네게 종종 용돈도 주었다. 아 그리고 내가 소개해준 연기 선생님, 넌 내 소개라서 싸게 배운건줄 알았겠지만, 그거 매달 18만원씩 내가 너 몰래 같이 드린거다. 아무것도 모르고 서울에서 어떻게 이가격에 연기 개인지도를 받을 수 있겠냐며 행복해하는 너를 보는게 나에겐 행복이었으니까.
그렇게 하니까 우리의 만남에 위기가 없었다.
종종 너는 나이도 더 어린 나에게 받기만 하는 것을 미안해했지만, 그럴때면 난 요즘 아버지 사업이 잘되간다며 말을 돌렸고, 너는 정말 믿는척 넘어가주었지
나에게 모여가는 돈은 없었지만, 그래도 너와 결혼할 것이라고 나는 굳게 믿었으니까
딱히 걱정은 되지 않았다. 너를 위한 맹목적인 나의 투자는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었다
왜냐면 우린 안헤어질거니까.
그렇게해서 1년,2년, 3년째 되던 해에 네가 슬슬 잘풀리기 시작했다.
나름 대학로에서 이름있는 연극도 하게되고, 몇몇 소극장 뮤지컬 무대에도 서곤 했다.
비록 단역이지만 상업 영화에도 출연했으며, 더는 오디션을 보지 않아도 너를 작품에 불러주는 사람들이 생겼고, 그만큼 너도 연기로인한 ‘벌이’라는걸 드디어 맛보게 된 것 같다.
좋았다. 네가 그토록 원하던 배우의 모습으로 돈을 벌어가는걸 보는게.
널 뒷바라지하는 내내 내 친구들은 아들자식 하나 키우냐며 혀를 찼지만,
진짜 드디어 아들 하나 키워놓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널 위해 돈을 벌며 놓쳤던 친구관계, 학점, 건강, 뭐 하나 아까운 것이 없었다.
이렇게 드디어 네게도 경제적, 더불어 마음의 여유까지 생기면
우린 더더더 행복해질 것 같았다.
나와 만나면 연습 스케쥴에 피곤해하면서도 대본 외워야한다며 내앞에서 대본들며 유세떠는 너를 보는게, 행복했다.
네 공연을 보러가면 크지 않은 배역이어도 뭐라도 된 듯 ‘배우’ 대기실 앞에서 기다리는 순간이, 행복했다.
네 동료 배우들이 공연 초대권을 주었다며 공연 날짜에 맞춰 스케줄 비우라고 할 때, 왜 늘 직전에 통보하냐고 툴툴대면서도, 행복했다.
처음으로 대극장 공연에 선 날, 공연 끝나고 널 보며 눈물 지으시는 네 부모님 앞에서 여자친구라고 소개되진 못했지만 그래도 지금 얘의 8할은 내가 만들었어요 라는 자부심에, 행복했다.
하지만 그러고 너는 점점 변해갔다.
연습이 없는 날에도 피곤하다며 혼자 있길 원했고, 동료 배우들과 밥 한끼 더 먹으며 친해질 수 있는 시간에 나와 있다는 것을 늘 아쉬워했다. 네가 돈을 번 후에도 너의 연습실 대관료는 내가 내는 것이 당연해졌고, 내가 먼저 연락을 하지 않는 날엔 오후 5시고 6시고 내 핸드폰은 울리지 않았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다른 남자들과는 다른 네가 다른 남자들처럼 변해간다는게.
나도 다른 여자들처럼 이런 뻔한 고민에 힘들어하고 있다는 사실이 용서가 안됬다 나는 다른여자들보다 더 잘한 것 같은데.
대학시절을 오롯이 너에게 바친 나를 이렇게 바닥까지 내팽겨쳐도 되나 싶었다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더 이상 나는 너에게 여자가 아니었다.
그냥 뭐랄까 간간히 일상을 함께하는 동료랄까
새로나온 영화를 같이 볼 사람이 없으면 같이 보고, 용돈이 떨어지면 용돈도 좀 타고, 의무감에 가끔씩 만나 딱히 의미없는 시간을 함께하는 그런 존재 그 이상 이하도 못되었다.
그런 끔찍한 모습의 너를, 끔찍한 우리의 관계를 난 8개월이나 더 버텼다.
매일매일 너에게 더 이상 사랑하는 연인이 아님을 확인받으면서,
하루하루 너의 대답, 반응, 표정에 목메어가며
그렇게 꾸역꾸역 버텼다 나는
그러다 마침내 너의 바람대로 나는 나가떨어진 것 같다.
가슴이 아프진 않았다 왜냐면 8개월동안 이미 가슴이 아팠으니까
돈이 없어도, 사는게 불안하고, 미래가 불투명해도,
그저 나를 마냥 예뻐해주던 너의 그 눈빛이 그리웠다.
내 작은 기침소리에 가슴 철렁하던, 너의 마음이 그리웠다.
짧은 치마를 입고 나갈때면 졸졸졸졸 내 뒤에만 바짝 서있던 네가 그리웠다
더러울 것 같아 내게 먹이기 찝찝하다며 대학로 거리음식도 함부로 못먹게하는, 너의 잔소리가 그리웠다
내가 뭘 먹고 있을때면 연신 예뻐죽겠다는 듯이 히죽히죽 사진을 찍어대는 네가, 그리웠다
집에 데려다줄때면 내일 아침에 눈뜨자마자 보자며 빈틈없이 꽉 안아주고 몇분이고 놓아주지 않던 네가 그리웠다
이별을 말하는 나에게 너는 덤덤했다.
덤덤해보였던 걸까, 정말 덤덤했던걸까..
아마 너도 스스로 변해가는 널 보며 어느정도는 우리의 이별을 예상하고 있었겠지
너는 날 붙잡지 않았고, 비교적 깔끔하게 우린 헤어졌다
슬퍼하고, 눈물 흘리고, 아쉬워하고, 이런 것 없이..
그렇게 헤어진지 2년 반, 우린 단 한번도 마주치지 않았다
작년까지 네게 늦은 밤 전화는 몇 번 왔지만 받지 않았다.
받으면 꾸역꾸역 참고 있는 나의 모든 것이 와르르 무너질 것 만 같아서였어
사실 아직도 견뎌내고 있거든 난
가끔 네가 사무치게 그리울 때면 네 이름을 쳐서 공연 후기 블로그들에 들어가보곤 한다
간혹 올라와 있는 너의 사진들.. 살은 많이 빠졌지만 그래도 그대로인 모습에 안심한다
언젠가 한번 괜찮아지면 너의 공연을 몰래 보러가보려고 했는데, 아직 그럴만한 용기는 나지 않는다.
아마 앞으로도 안날 것 같아
그렇게 네게 쏟아부은 나의 시간 5년, 그리고 헤어진지 2년,
나의 20대 7년동안 내게 남자라곤 너밖에 없다.
집에선 이제 슬슬 결혼할 나이 아니냐며 선이라도 보라고 눈치를 주지만 그럴 수는 없다
아직도 난 왠지 너와 결혼할 것만 같으니까.
늦은 밤 괜히 네 생각만 다시 떠올라서 끄적여본다
네가 볼일없는 이 글을.
너 정말 나중에 더 유명해지면, 티비에도 막 나오고 그러면, 나 술자리에서 자랑좀 할게
쟤 진짜 무명이라 힘들 때, 내가 고생고생해서 너 먹여 살렸다고, 그랬다고, 그냥 그렇게 너랑 나랑 평생 만날 줄 알았는데, 이렇게 남남되서 이제 쟨 티비에도 나온다고,
그냥 그정도 안주거리는 삼을 자격 있지 않냐 나
건승해라
나도 이젠 내 앞가림하면서 잘 살아.. 내 통장에 내 돈도 모으고
우리 정말 이제 부정할 수 없는 어른이 됬다
아직도 네가 너무 보고싶다
지금 만나는 사람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중에 어떤 사람을 만나서 어떻게 살게 되던 나는 잊지 말아라
그냥 너의 20대에 무던히 너를 위해 살았던 내가 있었음은
기억하고 살아달라는게 내 마지막 불쌍한 부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