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지난 학창시절을 되새기다 보면 잊지 못할 별명을 가진 친구들이 자연스레 떠오를 것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유난히 독특한 별명을 가진 친구나 그 별명에 얽힌 사건들이 배시시 웃음을 짖게 만든다. 나 역시 만찬가지로 잊지 못 할 별명을 가진 학창시절의 친구들이 있다. 그 잊지 못하는 친구들의 별명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 본다.
1.'피바다'와 '꾼내'의 뿡뿡의 추억
그렇다. '꾼내'라는 두 글자를 들으면 얼른 떠오르는 묘한 냄새가 있다. 벌써 무언가 느낌이 오지 않는가..꾼내.. 하지만 이 '꾼내'는 그렇게 단순한 별명이 아니다. 평범한 듯 하면서도 무언가 범상치 않은 강한 느낌을 주는 것이 이 별명이 갖고 있는 독특한 카리수마인 것이다. 이 별명에는 철없고 불쌍한 많은 학생들의 피눈물이 들어 있는 별명계의 불후의 명작이다.
그럼 과연 '꾼내..'의 유래는 어떤 사건이었고 그 진짜 의미는 무엇일까?
눈치 빠른 분들은 벌써 눈치 까셨는지도 모르겠지만 '꾼내'는 방귀와 관련이 있다. 대부분의 방귀쟁이들이 별명을 하나씩 가진 것처럼 '꾼내'라는 별명도 방귀 때문에 생긴 것이 맞다. 하지만 다른 녀석들이 방귀로 별명을 얻을 경우는 뿡뿡이, 스컹크, 뽕뽕,..등등의 일반적 별명을 얻는데 비해 이 녀석은 도대체 왜 이렇게 심오하고 꾸린 느낌을 주는 '꾼내'라는 별명을 가졌을까?
그 유래를 따지고 보면 전혀 뜻밖의 애절한 사연이 숨겨져 있다.
학창시절 어느 학교에나 다 있듯이 우리 학교에도 '피바다'로 불리는 성질 더러운 수학 선생이 계셨다. 이 양반의 수업 시간은 거의 한겨울에 얼음 깨고 냉수마찰 하면서 그것도 모자라 얼음조각으로 등판을 박박~ 미는 것처럼 등골이 오싹 하다고 보면 된다. 졸기는커녕 잠시 눈동자라도 옆으로 돌아가면 갑자기 교실안이 싸늘해지며 일순 적막이 흐른다. '피바다'가 자기와 눈동자를 마주치지 않은 녀석을 삼만 팔천 구백 볼트의 고압 광선으로 째리는 순간이다.
이윽고 '피바다'는 조용히 시계를 푼다. 그리고 벼룩이 인사처럼 가볍게 고개를 까딱한다. 앞으로 나오라는 뜻이다. 불려 나가는 녀석이 미쳐 교탁에 다다르기도 전에 '피바다'의 현란한 연속 후려치기가 시작 된다. 마치 권투로 한 시대를 풍미 했던 세계 챔피언의 매서운 스트레이트 공격을 보는 듯 하다.
아! 신은 왜 그에게 선생의 길을 선택하게 했을까... 권투나 킥복싱의 길을 걸었다면 그는 이미 세계 챔피언 타이틀을 몇 번은 더 먹고도 남았을 텐데.. 잘못된 직업 선택이 얼마나 많은 애꿋은 학생들을 죽음의 공포로 밀어 넣을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볼 수 있다.
그 '피바다'가 학생들을 패는 이유는 이처럼 별로 이유가 필요치 않다. 그냥 기분이 꿀꿀하거나 왠지 꼴리게 되면 그냥 패는 것이다. 수업 중에 기침을 하면 감히 선생님의 말씀을 방해 한다고 패고, 눈에 힘이 없으면 정신이 나가 있다고 패고, 눈에 힘을 줘 똑바로 뜨고 있으면 감히 선생님을 야려 본다고 팬다.
당구 칠 때만 힘 조절이 필요하고, 변기에 앉아 똥꼬 열 때만 힘 조절이 필요 한 것이 아니다. '피바다'를 바라보는 눈동자에도 힘 조절은 필요 한 것이다.
그에게는 절대로 변명이 필요 없다. '졸은 것이 아닙니다', 또는 '그냥 쳐다 본 것입니다.'라고 말대답이나 변명을 했다 가는 그 즉시 항명죄로 세배, 네배의 가혹한 처벌을 받는다. 넘버3, 송강호가 무대포 정신으로 자신의 꼬붕을 개 패듯이 패는 장면을 떠올리면 된다. 아마 송강호도 학창시절 '피바다' 같은 선생님을 만났을지도 모른다. 그 선생님에게서 힌트를 얻어 과거의 추억을 연기로 재생 시켰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하여간 그 '피바다'의 수업 시간.. 평소 소장과 대장의 불협화음으로 항문 활동이 활발 했던 우리의 '꾼내'가 드디어 사고를 치고 말았다. 오후의 나른함을 견디지 못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피바다'께서 칠판에 필기를 하고 있다는 잠시의 안일한 생각 때문인지 그는 그만 하지 말아야 할 짓을 하고 말았다. 무심코 똥꼬에 긴장이 풀어지면서 찐 고구마 썩는 냄새로 추정되는 아주 독한 유독가스를 뿜어 내고야 말았던 것이다...
다른 여선생님이나 털털한 선생님 같았으면 벌써 이 대목에서 학생들이 난리를 쳤겠지만 '폭력을 통한 강한 인재 양성'이라는 '피바다'의 교육 이념을 익히 아는지라 아이들은 조용히 호흡을 멈추고 그 순간을 견뎠다. 군대에서 경험하는 화생방 훈련을 떠올리면 된다. 취루탄이 터지면 숨을 멈추고는 빨리 바람이 불어 취루탄이 허공으로 날아가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하지만 초여름의 후덥지근한 교실 안에 도대체 무슨 바람이 있을 것이며 그 가스가 가면 어딜 간단 말이냐. 그리고 취루탄이 한개만 터지는 시시한 화생방 훈련을 본 적이 있는가? 일단 터지면 무차별 연속발사지...
이미 긴장이 풀어진 '꾼내'의 똥꼬는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했다. 아무리 막으려고 애를 써도 피식피식 조금씩 가스가 누출 되기 시작 했다. 다들 알고 있지 않는가? 얼굴 없는 적이 더 무섭고 소리없는 방귀가 더 꾸리 다는 평범한 진리를.. 아이들은 한꺼번에 '꾼내'를 차가운 눈빛으로 무섭게 야리며 침묵 시위를 했지만 이미 터져버린 '꾼내'의 똥꼬는 쉽게 봉합이 되지 않았다. 하기야 이미 터져버린 고압 가스관을 다시 막는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힘든 일이던가..
'꾼내' 주변 아이들은 호흡을 끊고 이를 악물며 볼펜으로 자신의 허벅지를 무자비하게 찔러 댔다. 하지만 더 이상 숨을 참지 못해 고통으로 일그러진 표정으로 복날 끌려가는 개새끼처럼 낑낑댔다. 어느덧 은밀한 독가스는 교단 위 '피바다'의 콧구녕까지 후벼 팠는지 그가 필기를 갑자기 멈췄다.
칠판을 적어 가던 '피바다'의 필기가 멈춰지자 아이들은 일순 굳어졌다. 잠시 적막만이 감도는 가운데 나갈 곳을 찾지 못한 독가스만이 교실 안을 유령처럼 떠돌고 있었다. 이미 독가스의 썩는 고구마 냄새는 교실을 완전히 점령 했고 양이 늘어 가는 독가스는 어느덧 교실을 개똥밭으로 만들었다.
학생들은 이중삼중의 고통에 시달렸다. 숨막히는 독가스의 고통과 '피바다'의 심상치 않은 행동으로 인해 밀려 오는 공포의 이중주였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는 감정의 혼란 속에 빠져 버렸건만 그 어떤 감정도 표출 할 수가 없는 닫힌 교실의 불쌍한 학생들의 현실.. 아! 여기서 불쌍한 학생들을 구해낼 신은 정녕 없단 말인가..신은 진정 이토록 냉정하단 말인가..
필기를 멈춘 '피바다'는 갑자기 조용히 돌아서더니 교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이건 또 무슨 일인가? 그 독하고 냉정하며 한치의 감정에 흔들림도 없다는 '피바다'마져도 결국 독가스를 피해 밖으로 달아난단 말인가? 학생들만 가스실에 버려 두고 혼자 살겠다고 슬며시 도망을 친단 말인가? 그 냉혈한 흡혈귀가 감정을 참지 못하고 밖으로 나갔다면 잠시 후 이들에겐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얼마 후 교실로 들어선 '피바다'는 학생들을 한 바퀴 휘 둘러보더니 이미 감정을 추스렸다는 듯 예의 차가운 목소리로 싸늘하게 물었다. "누구야?" 아! 올 것이 왔구나... 방귀를 뀌었다는 지극히 인간적인 이유로 오늘 또 순수한 한 명의 목숨이 지옥의 문턱으로 기어가 죽음의 키스를 받아야 한단 말인가.. 그런데..이어지는 '피바다'의 한마디..이건 도대체 무슨 말인가..
"누가 똥 쌌어? 똥 싼 놈 누구야?"
그렇다. 우리의 위대한 지도자 '피바다'는 이 극심한 냄새를 방귀로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 도저히 방귀로는 이런 냄새가 날 수가 없다고 생각한 나머지 똥을 쌌다고 판정을 내리신 거다. 졸지에 방귀는 똥이 되었고 그 누구도 자신이 똥을 싼다고 손을 들지는 않았다. 하기야 원래 똥 싼 놈은 없었으니까..
아무도 똥을 쌌다고 인정을 하지 않자 잠시 '피바다' 생각에 잠긴 듯 했다. 우린 그 때라도 똥을 쌌다고 인정 해야 했다. 친구 한 명이 죽더라도 우리만은 살아 남아야 했다. 원래 다수를 위해 소수가 희생 되어야 한다고 배워 오지 않았던가..
하지만 우린 차마 저 핏빛 파도가 출렁이는 '피바다'의 폭풍 속으로 친구의 등을 떠밀어 넣지 못했다. '피바다'가 노란색을 빨간색이라고 하면 빨간색이고 방귀를 똥이라면 똥인 것이다. 그냥 아무 생각하지 말고 그가 똥이라면 똥인 것이다. ('피바다' 이 판단에 대해서는 졸업 후 동창들간에 방귀를 뀌었다고 얘들 패기가 뭐하니까 똥 싼 것으로 덤튀기를 씌워 얘들 팰 이유를 만들었을 것이라는 주장이 있었다. 하지만 이미 다 지난 일 똥통에 빠진 똥개를 똥구덩에서 꺼내 본 들 무슨 맛으로 삶겠는가.. 이미 다 소용 없는 일...)
우리가 '꾼내'에게 간절한 애원의 눈빛을 보내며 살려 줄 것을 간청하는 사이 '꾼내'도 머릿속으로 오만가지 갈등을 했을 것이다. 손을 들고 일어서 '저기...똥이 아니라 방귀입니다...'라고 말한다면 과연 '피바다'는 나를 용서해줄까...아니면 이유를 달았다는 이유로 더 얻어 터질까...아니야..나는 분명히 똥을 싸진 않았어...
'꾼내'의 이런 순진한 순간적 갈등 보다는 '피바다'의 선택이 훨씬 거침 없고 빨랐다.
"이 새끼들 봐라...모두 책상위로 무릎 꿇고 올라 가.."
책상 위에 무릎을 꿇고 앉아 발바닥을 맞아 본 사람은 안다. 발바닥에서 시작된 짜릿한 전율이 내장을 거쳐 목줄기를 지나 머리털까지 쭈뼛 서게 만드는 지독한 고문이란 사실을.. 게다가 맞고 난 후에는 신발이 안 들어 가는 극심한 고문 휴유증에까지 시달려야 한다.
쉬는 시간 종이 울리고 몇 분이 더 지날 때까지 우리는 발바닥을 맞았다. 원래 '피바다'의 체벌 신조는 이런 것이다. '패는 놈은 화끈하게 맞는 놈은 깔끔하게' 그래서 '피바다'는 패면서 맞는 놈들이 자기가 맞은 숫자를 국어 책을 읽듯 아주 낭랑한 목소리로 세도록 한다. 만약 맞는 중간에 몸을 비틀며 비명을 지른다거나 아니면 맞는 숫자가 낭랑한 목소리로 들리지 않는다면 처음부터 다시 때린다.
학생들도 익히 아는지라 셋, 넷까지는 구호가 자연스럽게 잘 나온다. 이게 다섯, 여섯으로 넘어가면서 부터 맑아야 할 목소리에 10옥타브 효과음이 섞여 나오기 시작 한다. 가장 억울한 놈들은 아홉이나 열의 마지막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결국 정상에서 포기를 하는 놈들이다. 이런 놈들은 맞을 거 다 맞고 처음부터 다시 맞아야 하는 것이다. 이때의 고통은 세배, 네배가 된다.
처음 적응이 안되었을 때 몇몇 놈이 쳐 울거나 살려 달라고 빌며 애끊는 곡소리로 순진한 친구들의 눈시울을 붉히게 만들거나 소위 노는 친구들의 웃음보를 간지럽히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의 '피바다'는 결코 어떤 순간 어떤 상황에서도 용서하거나 포기하지 않는다. 학원 폭력 없애자고 전국의 학부모가 다 들고 일어서 아줌마들이 단체로 삭발 투쟁을 해도 때릴 놈은 때려야 하고 맞을 놈을 맞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이렇게 몇 번을 반복해 맞다 보면 속으로 아무리 피고름이 올라와도 그 예전 청산리 벽계수가 황진이와 시조를 나누듯 반듯하고 맑은 목소리로 매 맞는 순간을 하나의 아름다운 고통으로 받아 들여 차분히 맞은 수를 세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선배들 말로는 그렇게 삼년을 맞으면 득음을 하거나 득도의 경지에 올라 대학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속세를 떠나 산으로 들어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병원으로 간 놈은 있어도 산으로 간 놈은 아무도 없었다.
사실 학생들에게 필요한건 졸업장이지 득음이나 득도가 아니다. '피바다'는 왜 학생들에게 원치 않는 도를 가르쳤는지 모르겠지만 학생들에게는 단지 방귀라도 자유롭게 뀔 수 있는 최소한의 인간의 권리가 필요 했을 뿐이다.
'피바가'가 작업을 끝내고 나간 후 우리는 퉁퉁 부은 발로 신발을 신지 못해 화장실도 가지 못하고 앉아 '꾼내'를 성토하기 시작 했다.
"니가 자수하지 않는 바람에 우리까지 곡소리 났쟈나. 왜 말 안했냐?" "........말 하려고 몇번이나 망설 였는데 말했다가는 '피바다'가 날 죽일 것 같아 차마 말 못했어. 진짜로 몇번을 할려고 했다니까. 끝내는 나라고 말 못했지만..." "거짓말 마 샤꺄. 니가 못한거냐, 안한거지." "아니라니까. 진짜 할려구 했어. 못한거라니까."
이런 '꾼내'를 보며 옆에 있던 녀석이 조금 철 지난 노래를 부르며 '꾼내'에게 한마디를 던졌다. "끝내는 말하지 못했네~.....잘 했다, 자슥아..."
그 녀석의 "끝내는 말하지 못했네~"라는 노래에 아이들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자 그 곡조를 다른 녀석도 덩달아 따라 불렀다. "꾼내는 말하지 못했네~, 꾼내는 말하지 못했네~ " 그러자 교실 여기저기서 신세한탄인지 아니면 놀림인지 "꾼내는 말하지 못했네~"라는 곡조가 연이어 터져 나왔다.
그 이후 우리는 얼마동안 단체로 매 타작을 당하거나 억울한 일 안타까운 일이 생기면 "꾼내는 말하지 못했네~"라는 노래로 스스로를 한탄 했다. "꾼내는 말하지 못했네~"라는 곡조는 이제 우리 반 명물 곡이 되었으며 '꾼내'는 그때부터 '꾼내'라는 별명을 갖게 되었다. 혹시 '꾼내'가 선생님들의 질문을 답하지 못하거나 어디서 방귀 냄새라도 나게 되면 우리는 어김 없이 "꾼내는 말하지 못했네~"라는 곡조를 뽑았다.
"'꾼내' 너 방귀 뀠지?" "아니, 이번엔 정말 나 아니야." "얘가 또 거짓말 하고 있어. 그래, 알았다. 꾼내는 말하지 못했네~ " 항상 '꾼내'와 관련된 작은 일만 생기면 이런 식으로 이야기가 끝을 맺곤 했다.
이미 사회인이 되었을 '꾼내'는 지금도 자신이 몸 담고 있는 그 곳에서 '꾼내'로 생활 하고 있을까?
잊지 못할 별명들 - 1.'피바다'와 '꾼내'의 "뿡뿡에 추억"
누구나 지난 학창시절을 되새기다 보면 잊지 못할 별명을 가진 친구들이 자연스레 떠오를 것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유난히 독특한 별명을 가진 친구나 그 별명에 얽힌 사건들이 배시시 웃음을 짖게 만든다.
나 역시 만찬가지로 잊지 못 할 별명을 가진 학창시절의 친구들이 있다.
그 잊지 못하는 친구들의 별명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 본다.
1.'피바다'와 '꾼내'의 뿡뿡의 추억
그렇다.
'꾼내'라는 두 글자를 들으면 얼른 떠오르는 묘한 냄새가 있다. 벌써 무언가 느낌이 오지 않는가..꾼내..
하지만 이 '꾼내'는 그렇게 단순한 별명이 아니다.
평범한 듯 하면서도 무언가 범상치 않은 강한 느낌을 주는 것이 이 별명이 갖고 있는 독특한 카리수마인 것이다.
이 별명에는 철없고 불쌍한 많은 학생들의 피눈물이 들어 있는 별명계의 불후의 명작이다.
그럼 과연 '꾼내..'의 유래는 어떤 사건이었고 그 진짜 의미는 무엇일까?
눈치 빠른 분들은 벌써 눈치 까셨는지도 모르겠지만 '꾼내'는 방귀와 관련이 있다.
대부분의 방귀쟁이들이 별명을 하나씩 가진 것처럼 '꾼내'라는 별명도 방귀 때문에 생긴 것이 맞다.
하지만 다른 녀석들이 방귀로 별명을 얻을 경우는 뿡뿡이, 스컹크, 뽕뽕,..등등의 일반적 별명을 얻는데 비해 이 녀석은 도대체 왜 이렇게 심오하고 꾸린 느낌을 주는 '꾼내'라는 별명을 가졌을까?
그 유래를 따지고 보면 전혀 뜻밖의 애절한 사연이 숨겨져 있다.
학창시절 어느 학교에나 다 있듯이 우리 학교에도 '피바다'로 불리는 성질 더러운 수학 선생이 계셨다.
이 양반의 수업 시간은 거의 한겨울에 얼음 깨고 냉수마찰 하면서 그것도 모자라 얼음조각으로 등판을 박박~ 미는 것처럼 등골이 오싹 하다고 보면 된다.
졸기는커녕 잠시 눈동자라도 옆으로 돌아가면 갑자기 교실안이 싸늘해지며 일순 적막이 흐른다.
'피바다'가 자기와 눈동자를 마주치지 않은 녀석을 삼만 팔천 구백 볼트의 고압 광선으로 째리는 순간이다.
이윽고 '피바다'는 조용히 시계를 푼다. 그리고 벼룩이 인사처럼 가볍게 고개를 까딱한다.
앞으로 나오라는 뜻이다.
불려 나가는 녀석이 미쳐 교탁에 다다르기도 전에 '피바다'의 현란한 연속 후려치기가 시작 된다.
마치 권투로 한 시대를 풍미 했던 세계 챔피언의 매서운 스트레이트 공격을 보는 듯 하다.
아! 신은 왜 그에게 선생의 길을 선택하게 했을까...
권투나 킥복싱의 길을 걸었다면 그는 이미 세계 챔피언 타이틀을 몇 번은 더 먹고도 남았을 텐데..
잘못된 직업 선택이 얼마나 많은 애꿋은 학생들을 죽음의 공포로 밀어 넣을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볼 수 있다.
그 '피바다'가 학생들을 패는 이유는 이처럼 별로 이유가 필요치 않다.
그냥 기분이 꿀꿀하거나 왠지 꼴리게 되면 그냥 패는 것이다.
수업 중에 기침을 하면 감히 선생님의 말씀을 방해 한다고 패고, 눈에 힘이 없으면 정신이 나가 있다고 패고, 눈에 힘을 줘 똑바로 뜨고 있으면 감히 선생님을 야려 본다고 팬다.
당구 칠 때만 힘 조절이 필요하고, 변기에 앉아 똥꼬 열 때만 힘 조절이 필요 한 것이 아니다.
'피바다'를 바라보는 눈동자에도 힘 조절은 필요 한 것이다.
그에게는 절대로 변명이 필요 없다. '졸은 것이 아닙니다', 또는 '그냥 쳐다 본 것입니다.'라고 말대답이나 변명을 했다 가는 그 즉시 항명죄로 세배, 네배의 가혹한 처벌을 받는다.
넘버3, 송강호가 무대포 정신으로 자신의 꼬붕을 개 패듯이 패는 장면을 떠올리면 된다.
아마 송강호도 학창시절 '피바다' 같은 선생님을 만났을지도 모른다.
그 선생님에게서 힌트를 얻어 과거의 추억을 연기로 재생 시켰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하여간 그 '피바다'의 수업 시간..
평소 소장과 대장의 불협화음으로 항문 활동이 활발 했던 우리의 '꾼내'가 드디어 사고를 치고 말았다.
오후의 나른함을 견디지 못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피바다'께서 칠판에 필기를 하고 있다는 잠시의 안일한 생각 때문인지 그는 그만 하지 말아야 할 짓을 하고 말았다.
무심코 똥꼬에 긴장이 풀어지면서 찐 고구마 썩는 냄새로 추정되는 아주 독한 유독가스를 뿜어 내고야 말았던 것이다...
다른 여선생님이나 털털한 선생님 같았으면 벌써 이 대목에서 학생들이 난리를 쳤겠지만
'폭력을 통한 강한 인재 양성'이라는 '피바다'의 교육 이념을 익히 아는지라 아이들은 조용히 호흡을 멈추고 그 순간을 견뎠다.
군대에서 경험하는 화생방 훈련을 떠올리면 된다.
취루탄이 터지면 숨을 멈추고는 빨리 바람이 불어 취루탄이 허공으로 날아가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하지만 초여름의 후덥지근한 교실 안에 도대체 무슨 바람이 있을 것이며 그 가스가 가면 어딜 간단 말이냐.
그리고 취루탄이 한개만 터지는 시시한 화생방 훈련을 본 적이 있는가? 일단 터지면 무차별 연속발사지...
이미 긴장이 풀어진 '꾼내'의 똥꼬는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했다.
아무리 막으려고 애를 써도 피식피식 조금씩 가스가 누출 되기 시작 했다.
다들 알고 있지 않는가? 얼굴 없는 적이 더 무섭고 소리없는 방귀가 더 꾸리 다는 평범한 진리를..
아이들은 한꺼번에 '꾼내'를 차가운 눈빛으로 무섭게 야리며 침묵 시위를 했지만 이미 터져버린 '꾼내'의 똥꼬는 쉽게 봉합이 되지 않았다.
하기야 이미 터져버린 고압 가스관을 다시 막는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힘든 일이던가..
'꾼내' 주변 아이들은 호흡을 끊고 이를 악물며 볼펜으로 자신의 허벅지를 무자비하게 찔러 댔다.
하지만 더 이상 숨을 참지 못해 고통으로 일그러진 표정으로 복날 끌려가는 개새끼처럼 낑낑댔다.
어느덧 은밀한 독가스는 교단 위 '피바다'의 콧구녕까지 후벼 팠는지 그가 필기를 갑자기 멈췄다.
칠판을 적어 가던 '피바다'의 필기가 멈춰지자 아이들은 일순 굳어졌다.
잠시 적막만이 감도는 가운데 나갈 곳을 찾지 못한 독가스만이 교실 안을 유령처럼 떠돌고 있었다.
이미 독가스의 썩는 고구마 냄새는 교실을 완전히 점령 했고 양이 늘어 가는 독가스는 어느덧 교실을 개똥밭으로 만들었다.
학생들은 이중삼중의 고통에 시달렸다.
숨막히는 독가스의 고통과 '피바다'의 심상치 않은 행동으로 인해 밀려 오는 공포의 이중주였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는 감정의 혼란 속에 빠져 버렸건만 그 어떤 감정도 표출 할 수가 없는 닫힌 교실의 불쌍한 학생들의 현실..
아! 여기서 불쌍한 학생들을 구해낼 신은 정녕 없단 말인가..신은 진정 이토록 냉정하단 말인가..
필기를 멈춘 '피바다'는 갑자기 조용히 돌아서더니 교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이건 또 무슨 일인가?
그 독하고 냉정하며 한치의 감정에 흔들림도 없다는 '피바다'마져도 결국 독가스를 피해 밖으로 달아난단 말인가? 학생들만 가스실에 버려 두고 혼자 살겠다고 슬며시 도망을 친단 말인가?
그 냉혈한 흡혈귀가 감정을 참지 못하고 밖으로 나갔다면 잠시 후 이들에겐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얼마 후 교실로 들어선 '피바다'는 학생들을 한 바퀴 휘 둘러보더니 이미 감정을 추스렸다는 듯 예의 차가운 목소리로 싸늘하게 물었다.
"누구야?"
아! 올 것이 왔구나...
방귀를 뀌었다는 지극히 인간적인 이유로 오늘 또 순수한 한 명의 목숨이 지옥의 문턱으로 기어가 죽음의 키스를 받아야 한단 말인가..
그런데..이어지는 '피바다'의 한마디..이건 도대체 무슨 말인가..
"누가 똥 쌌어? 똥 싼 놈 누구야?"
그렇다. 우리의 위대한 지도자 '피바다'는 이 극심한 냄새를 방귀로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
도저히 방귀로는 이런 냄새가 날 수가 없다고 생각한 나머지 똥을 쌌다고 판정을 내리신 거다.
졸지에 방귀는 똥이 되었고 그 누구도 자신이 똥을 싼다고 손을 들지는 않았다.
하기야 원래 똥 싼 놈은 없었으니까..
아무도 똥을 쌌다고 인정을 하지 않자 잠시 '피바다' 생각에 잠긴 듯 했다.
우린 그 때라도 똥을 쌌다고 인정 해야 했다.
친구 한 명이 죽더라도 우리만은 살아 남아야 했다.
원래 다수를 위해 소수가 희생 되어야 한다고 배워 오지 않았던가..
하지만 우린 차마 저 핏빛 파도가 출렁이는 '피바다'의 폭풍 속으로 친구의 등을 떠밀어 넣지 못했다.
'피바다'가 노란색을 빨간색이라고 하면 빨간색이고 방귀를 똥이라면 똥인 것이다.
그냥 아무 생각하지 말고 그가 똥이라면 똥인 것이다.
('피바다' 이 판단에 대해서는 졸업 후 동창들간에 방귀를 뀌었다고 얘들 패기가 뭐하니까 똥 싼 것으로 덤튀기를 씌워 얘들 팰 이유를 만들었을 것이라는 주장이 있었다.
하지만 이미 다 지난 일 똥통에 빠진 똥개를 똥구덩에서 꺼내 본 들 무슨 맛으로 삶겠는가.. 이미 다 소용 없는 일...)
우리가 '꾼내'에게 간절한 애원의 눈빛을 보내며 살려 줄 것을 간청하는 사이 '꾼내'도 머릿속으로 오만가지 갈등을 했을 것이다.
손을 들고 일어서 '저기...똥이 아니라 방귀입니다...'라고 말한다면 과연 '피바다'는 나를 용서해줄까...아니면 이유를 달았다는 이유로 더 얻어 터질까...아니야..나는 분명히 똥을 싸진 않았어...
'꾼내'의 이런 순진한 순간적 갈등 보다는 '피바다'의 선택이 훨씬 거침 없고 빨랐다.
"이 새끼들 봐라...모두 책상위로 무릎 꿇고 올라 가.."
책상 위에 무릎을 꿇고 앉아 발바닥을 맞아 본 사람은 안다.
발바닥에서 시작된 짜릿한 전율이 내장을 거쳐 목줄기를 지나 머리털까지 쭈뼛 서게 만드는 지독한 고문이란 사실을..
게다가 맞고 난 후에는 신발이 안 들어 가는 극심한 고문 휴유증에까지 시달려야 한다.
쉬는 시간 종이 울리고 몇 분이 더 지날 때까지 우리는 발바닥을 맞았다.
원래 '피바다'의 체벌 신조는 이런 것이다. '패는 놈은 화끈하게 맞는 놈은 깔끔하게'
그래서 '피바다'는 패면서 맞는 놈들이 자기가 맞은 숫자를 국어 책을 읽듯 아주 낭랑한 목소리로 세도록 한다.
만약 맞는 중간에 몸을 비틀며 비명을 지른다거나 아니면 맞는 숫자가 낭랑한 목소리로 들리지 않는다면 처음부터 다시 때린다.
학생들도 익히 아는지라 셋, 넷까지는 구호가 자연스럽게 잘 나온다.
이게 다섯, 여섯으로 넘어가면서 부터 맑아야 할 목소리에 10옥타브 효과음이 섞여 나오기 시작 한다.
가장 억울한 놈들은 아홉이나 열의 마지막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결국 정상에서 포기를 하는 놈들이다. 이런 놈들은 맞을 거 다 맞고 처음부터 다시 맞아야 하는 것이다.
이때의 고통은 세배, 네배가 된다.
처음 적응이 안되었을 때 몇몇 놈이 쳐 울거나 살려 달라고 빌며 애끊는 곡소리로 순진한 친구들의 눈시울을 붉히게 만들거나 소위 노는 친구들의 웃음보를 간지럽히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의 '피바다'는 결코 어떤 순간 어떤 상황에서도 용서하거나 포기하지 않는다.
학원 폭력 없애자고 전국의 학부모가 다 들고 일어서 아줌마들이 단체로 삭발 투쟁을 해도 때릴 놈은 때려야 하고 맞을 놈을 맞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이렇게 몇 번을 반복해 맞다 보면 속으로 아무리 피고름이 올라와도 그 예전 청산리 벽계수가 황진이와 시조를 나누듯 반듯하고 맑은 목소리로 매 맞는 순간을 하나의 아름다운 고통으로 받아 들여 차분히 맞은 수를 세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선배들 말로는 그렇게 삼년을 맞으면 득음을 하거나 득도의 경지에 올라 대학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속세를 떠나 산으로 들어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병원으로 간 놈은 있어도 산으로 간 놈은 아무도 없었다.
사실 학생들에게 필요한건 졸업장이지 득음이나 득도가 아니다.
'피바다'는 왜 학생들에게 원치 않는 도를 가르쳤는지 모르겠지만 학생들에게는 단지 방귀라도 자유롭게 뀔 수 있는 최소한의 인간의 권리가 필요 했을 뿐이다.
'피바가'가 작업을 끝내고 나간 후 우리는 퉁퉁 부은 발로 신발을 신지 못해 화장실도 가지 못하고 앉아 '꾼내'를 성토하기 시작 했다.
"니가 자수하지 않는 바람에 우리까지 곡소리 났쟈나. 왜 말 안했냐?"
"........말 하려고 몇번이나 망설 였는데 말했다가는 '피바다'가 날 죽일 것 같아 차마 말 못했어. 진짜로 몇번을 할려고 했다니까. 끝내는 나라고 말 못했지만..."
"거짓말 마 샤꺄. 니가 못한거냐, 안한거지."
"아니라니까. 진짜 할려구 했어. 못한거라니까."
이런 '꾼내'를 보며 옆에 있던 녀석이 조금 철 지난 노래를 부르며 '꾼내'에게 한마디를 던졌다.
"끝내는 말하지 못했네~.....잘 했다, 자슥아..."
그 녀석의 "끝내는 말하지 못했네~"라는 노래에 아이들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자 그 곡조를 다른 녀석도 덩달아 따라 불렀다.
"꾼내는 말하지 못했네~, 꾼내는 말하지 못했네~ "
그러자 교실 여기저기서 신세한탄인지 아니면 놀림인지 "꾼내는 말하지 못했네~"라는 곡조가 연이어 터져 나왔다.
그 이후 우리는 얼마동안 단체로 매 타작을 당하거나 억울한 일 안타까운 일이 생기면 "꾼내는 말하지 못했네~"라는 노래로 스스로를 한탄 했다.
"꾼내는 말하지 못했네~"라는 곡조는 이제 우리 반 명물 곡이 되었으며 '꾼내'는 그때부터 '꾼내'라는 별명을 갖게 되었다.
혹시 '꾼내'가 선생님들의 질문을 답하지 못하거나 어디서 방귀 냄새라도 나게 되면 우리는 어김 없이 "꾼내는 말하지 못했네~"라는 곡조를 뽑았다.
"'꾼내' 너 방귀 뀠지?"
"아니, 이번엔 정말 나 아니야."
"얘가 또 거짓말 하고 있어. 그래, 알았다. 꾼내는 말하지 못했네~ "
항상 '꾼내'와 관련된 작은 일만 생기면 이런 식으로 이야기가 끝을 맺곤 했다.
이미 사회인이 되었을 '꾼내'는 지금도 자신이 몸 담고 있는 그 곳에서 '꾼내'로 생활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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