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로이트 뉴욕본사 였다고 함
에릭남이 딜로이트 입사를 1년 미룬 이유
대부분이 백인, 유일한 동양인으로 입학해
인종차별을 당했지만
결국 그학교 최초 동양인 학생대표가 됨
어머니가 8살 터울의 동생을 낳았고, 아이를 낳으면 미역국을 먹어야 한다는 누군가의 말에 미역국을 끓였다.
그렇게 맹랑한 아이였지만 전교에서 유일한 동양인으로 학창 시절을 보내는 것은 차라리 견디는 것에 가까웠다.
주눅 들지 않으려고 더 열심히, 부러 더 힘차게 살았지만 스트레스는 어쩔 수 없었다.
“방과 후 혼자 부엌에 서서 요리하는 것이 일종의 스트레스 해소법이었죠.”
재료를 다듬고 모으고 조물조물 음식을 완성하는 과정은 호기심 강하고 창작욕 넘치는 그에게 걸맞은 놀이이기도 했다.
8살짜리 남자애가 미역국 끓인다고 부엌에 있을때
어머니가 말리지 않고 그대로 두셨을 때부터
에릭남은 지금처럼 자랐을 사람일듯
부모님께서는 우리가 영어를 못했는데 지금 이렇게 행복하게 살고 있으니
너희는 우리보다 더 좋은 일을 할 수 있고 늘 도와줘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실제로 부모님은 매주 다운타운에 가셔서 노숙자들에게 밥을 해주시고.
그런 모습들을 보면 나도 저렇게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저절로 든다.
지금도 아침이면
3형제가 부엌에 들어가서 요리 하면서
엄마 지나가면 반가워 하면서 "카메라 출연하실래요" 이러면서
자기들끼리 신나함 ㅋㅋㅋ
만나는 사람들마다 더할 수 없는 극찬
일하다 만난 관계자들, 스텝들이 남자한테 천사라고 할 정도 ㅋㅋ
심지어는 에릭맘이라고 하면서 예뻐하는듯..
딜로이트와도 지금까지 연락한다는 에릭남
Q 회사 입장에서는 에릭남을 한국으로 보내고 싶지 않았을 것 같은데.
처음엔 말 꺼내기가 조심스러웠다.
그런데 오히려 그분들은 회사보다는 나를 먼저 생각해주시더라.
내가 이런 기회가 생겨서 한국에 가야 될 것 같다고 하자
상사분들께서 너에게 정말 좋은 기회인 것 같으니 열심히 하라고 조언해주셨다.
딜로이트 회사는 여기 계속 있을 거니까 언제든 연락하라고. 그때 참 고마웠다.
지금도 메일로 연락하고 안부 물으며 지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