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 맞았는지는 모르겠음그냥 내 가장 오래된 기억부터 나는 맞고 있었으니까아빠는 매일매일 술을 마셨고엄마는 나를 핑계로 저항한번 못하고 매일매일 맞고만 있었음그러다가 결국 도망가긴 했지만 내가 어느정도 크자 아빠는 나를 딸이 아닌 여자로 보기 시작했고내가 잘때 옷안에 손을 넣어서 내 가슴을 만진다던가 하는일이 자주 있었음중1때 처음 초경을 했는데 아빠가 그때 나한테 우리딸도 이제 가슴도 솟아오르고 고*에 털도 나겠네 했던 말을나는 떠오르기만 해도 아직까지 소름끼침 그래도 어릴땐 장남이라고 금이야 옥이야 자란 오빠가 보호해주고 아빠를 말리곤 해서 숨은 쉴만 했는데내가 중고딩이 되고 어느순간부터 오빠새끼도 아빠랑 똑같아 져선아빠가 때리는걸 피하려고 급하게 오빠 방으로 들어가서 문을 닫았는데 게임하는데 시끄러우니까 나가라고 했었음 지도 일말의 양심은 있는지 내가 의식이 있을때는 안만짐근데 내가 잔다거나 하면 내몸을 더듬곤 해서난 정말 편히 자본적도 없었음진짜 소름끼치는게 난 분명 방문을 잠그고 잤는데 일어나보면 문이 안잠겨져 있고 그냥 닫혀만 있음비상키가 있나 하고 집을 뒤져봐도 못찾았고. 오빠도 그걸 알고 있었지만 날 도와주지 않았음정말... 내편은 누구도 없었어 내가 진짜 위로되었던 말은다른말도 아니고 우리나라 가정의 5분의 1이 폭력가정이라는 말이었음나만 그런게 아니구나. 나만 이렇게 사는게 아니구나 싶어서나 진짜 이말이 정말 위로가 되었음 그러면서도 친한친구들이랑 집안얘기를 터놓고 하게 되어도아빠가 날 때린다는 말은 겨우겨우 터놓을수 있지만나를 만진다는 말은 차마 할수가 없어서 정말 서럽고 힘들었다 자존감은 땅을 치고그러면서도 나도 세뇌당한건지약자(여자)는 맞을수 밖에 없어 하는 생각도 했던것 같음그리고 사랑받고 싶다는 생각도 했음비온다고 아빠가 차타고 친구 데리러 오는거엄마랑 목욕탕 갔다 왔다는거생일에 엄마아빠가 뭐뭐 해줬다 하면서 친구들이 자랑하는거너무 부러웠는데 나는 그런걸 못해봤으니까술만 없었으면 아빠가 그러지 않았을까 하는생각도 많이 했음 가족들이랑 멀리 떨어지고 싶어서 다른 지방에 있는 대학에 갔는데거의 대부분이 여자인 과라 교수님들도 다 여자고 애들도 다 여자였음 교양도 여성학이 있었었고전공과목중에도 여성건강에 대한 과목이 있었는데그때 교수님이 술을 마시고 폭력을 행하는 건 술 때문이 아니라고단지 술을 통해 자신의 욕망을 분출할 용기를 얻은거라고자기도 가정폭력의 피해자 였지만가시덩쿨에서도 꽃은 필수 있다고단단한 콘크리트 사이에서도 그 연약한 꽃은 자라난다고그렇게 말씀하신거 듣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름.. 그때 그 교수님한테 상담을 받고상담소를 운영하시는 전공교수님들도 많이 계셔서여러 교수님들의 케어를 통해서 자존감이 많이 회복되었음 대학교 졸업하자 마자 바로 취업을 했는데대학시절에는 연락한통 없던 사람들이페북으로 친구들이 취업축하한다는 글 남긴거 보고 연락해서어디 취업했는지 연봉은 얼만지 꼬치꼬치 다 물어보고아빠는 오랫만에 가족외식 하자며 오빠 데리고 우리 학교 앞까지 와서이제 아빠도 우리 딸 덕좀 보겠네 하하하 이 ㅈㄹ 하고 있었음 나이먹고 하는것 없이 편의점 알바도 짤린 오빠는카톡으로 툭하면 돈좀 보내달라고 그랬고아빠도 갑자기 묵혀둔 집안속사정이라며 아빠가 진 빚을 내가 갚으라는 듯 말하곤 했음그러면서도 이제 자기가 늙어 일을 잘 못하니 생활비가 필요하다고 습관적으로 손벌렸고오빠는 내 월급날만 되면 칼같이 찾아와서 돈 달라고 행패직장 앞에서 떡진 머리로 츄리닝 입고 와서 돈달라고 큰소리로 말하는 오빠가직장 사람들 보이기 부끄럽고 쪽팔려서 적선하듯 돈 건내주면 그제서야 활짝 웃으면서 다음에 보자고 하고 가길 3년이었음 취업후에는 고모를 통해서 내 자취방 어딘지 알아내서돈 떨어지면 내 방 들어가서 기다리고 있었는데심지어 아빠는 내 자취방에 와서 내 컴퓨터로 야동보고 ㄸㄸㅇ치고 ㅈㅇ닦은 휴지 내 컴퓨터 책상에 널부러놓고바닥에 퍼질러 자고 있기도 했고내 자취방으로 오피녀? 자취방으로 와서 해주는 여자 불렀다가하프 쓰고 일찍 집에간 나한테 걸린적도 있었음너무 소름끼쳐서 모텔비 쥐어 준 내가 너무 한심한데그땐 정말 그렇게라도 내보내고 싶었음 그렇게 살았던 내가 결혼을 했음판 오래전부터 해왔지만 결혼/시집/친정에서결혼 시집은 해당이 안됬고친정마저 내게는 지옥같은 곳이어서재밌게 하면서도 문득문득 느껴지는 이질감에 맘이 싸해지곤 했었는데내 집안사정 다 알면서도 품어주고 정상적인 가치관 가진 남자 만나서 결혼했음 그렇게 나를 괴롭히던 사람들이신랑이 내 사정 알고 나 보호해주니까나한테 연락한번 하기 조심스러워함왜냐면 신랑이 돈이 많거든 연애때 신랑이 내 집안사정 모르고그냥 우리집 좀 가난한 집안인줄 알았을때 오빠랑 아빠한테 이제 곧 가족될건데 제가 용돈 드려야죠하면서 많게는 백만원 적게는 몇십만원씩 통장에 가끔 넣어주기도 했고아빠랑 오빠 편하게 가게하나 해드리고 싶다고 했었는데신랑이 집안 사정 다 알고 나서 지원 다 끊어버리니까나한테 잘못했다며 사위 왜저러는지 니가 맘좀 돌려봐라며 난리침 돈이란게. 그리고 날 지켜줄 남자가 있다는게내가 30년이 다 되는 세월동안 당했던 것들, 당했던 상황들을한번에 역전시켜줄 수 있다는게 감사하고 놀랍고 한편으론 서글프고. 주절주절 끄적였는데 마무리를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음..요즘 너무 행복함그동안의 불행을 이제 보상받는 느낌..결국 내 스스로 해낸 것은 없는것 같지만혹시 나와 같은 친구, 동생이 있다면언젠간 너의 인생에도 빛이 드는 날이 있다는 걸 기억하길..
돈많은 남편 만나니 살거 같네요
내가 어느정도 크자 아빠는 나를 딸이 아닌 여자로 보기 시작했고내가 잘때 옷안에 손을 넣어서 내 가슴을 만진다던가 하는일이 자주 있었음중1때 처음 초경을 했는데 아빠가 그때 나한테 우리딸도 이제 가슴도 솟아오르고 고*에 털도 나겠네 했던 말을나는 떠오르기만 해도 아직까지 소름끼침
그래도 어릴땐 장남이라고 금이야 옥이야 자란 오빠가 보호해주고 아빠를 말리곤 해서 숨은 쉴만 했는데내가 중고딩이 되고 어느순간부터 오빠새끼도 아빠랑 똑같아 져선아빠가 때리는걸 피하려고 급하게 오빠 방으로 들어가서 문을 닫았는데 게임하는데 시끄러우니까 나가라고 했었음
지도 일말의 양심은 있는지 내가 의식이 있을때는 안만짐근데 내가 잔다거나 하면 내몸을 더듬곤 해서난 정말 편히 자본적도 없었음진짜 소름끼치는게 난 분명 방문을 잠그고 잤는데 일어나보면 문이 안잠겨져 있고 그냥 닫혀만 있음비상키가 있나 하고 집을 뒤져봐도 못찾았고.
오빠도 그걸 알고 있었지만 날 도와주지 않았음정말... 내편은 누구도 없었어
내가 진짜 위로되었던 말은다른말도 아니고 우리나라 가정의 5분의 1이 폭력가정이라는 말이었음나만 그런게 아니구나. 나만 이렇게 사는게 아니구나 싶어서나 진짜 이말이 정말 위로가 되었음
그러면서도 친한친구들이랑 집안얘기를 터놓고 하게 되어도아빠가 날 때린다는 말은 겨우겨우 터놓을수 있지만나를 만진다는 말은 차마 할수가 없어서 정말 서럽고 힘들었다
자존감은 땅을 치고그러면서도 나도 세뇌당한건지약자(여자)는 맞을수 밖에 없어 하는 생각도 했던것 같음그리고 사랑받고 싶다는 생각도 했음비온다고 아빠가 차타고 친구 데리러 오는거엄마랑 목욕탕 갔다 왔다는거생일에 엄마아빠가 뭐뭐 해줬다 하면서 친구들이 자랑하는거너무 부러웠는데 나는 그런걸 못해봤으니까술만 없었으면 아빠가 그러지 않았을까 하는생각도 많이 했음
가족들이랑 멀리 떨어지고 싶어서 다른 지방에 있는 대학에 갔는데거의 대부분이 여자인 과라 교수님들도 다 여자고 애들도 다 여자였음 교양도 여성학이 있었었고전공과목중에도 여성건강에 대한 과목이 있었는데그때 교수님이 술을 마시고 폭력을 행하는 건 술 때문이 아니라고단지 술을 통해 자신의 욕망을 분출할 용기를 얻은거라고자기도 가정폭력의 피해자 였지만가시덩쿨에서도 꽃은 필수 있다고단단한 콘크리트 사이에서도 그 연약한 꽃은 자라난다고그렇게 말씀하신거 듣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름..
그때 그 교수님한테 상담을 받고상담소를 운영하시는 전공교수님들도 많이 계셔서여러 교수님들의 케어를 통해서 자존감이 많이 회복되었음
대학교 졸업하자 마자 바로 취업을 했는데대학시절에는 연락한통 없던 사람들이페북으로 친구들이 취업축하한다는 글 남긴거 보고 연락해서어디 취업했는지 연봉은 얼만지 꼬치꼬치 다 물어보고아빠는 오랫만에 가족외식 하자며 오빠 데리고 우리 학교 앞까지 와서이제 아빠도 우리 딸 덕좀 보겠네 하하하 이 ㅈㄹ 하고 있었음
나이먹고 하는것 없이 편의점 알바도 짤린 오빠는카톡으로 툭하면 돈좀 보내달라고 그랬고아빠도 갑자기 묵혀둔 집안속사정이라며 아빠가 진 빚을 내가 갚으라는 듯 말하곤 했음그러면서도 이제 자기가 늙어 일을 잘 못하니 생활비가 필요하다고 습관적으로 손벌렸고오빠는 내 월급날만 되면 칼같이 찾아와서 돈 달라고 행패직장 앞에서 떡진 머리로 츄리닝 입고 와서 돈달라고 큰소리로 말하는 오빠가직장 사람들 보이기 부끄럽고 쪽팔려서
적선하듯 돈 건내주면 그제서야 활짝 웃으면서 다음에 보자고 하고 가길 3년이었음
취업후에는 고모를 통해서 내 자취방 어딘지 알아내서돈 떨어지면 내 방 들어가서 기다리고 있었는데심지어 아빠는 내 자취방에 와서 내 컴퓨터로 야동보고 ㄸㄸㅇ치고 ㅈㅇ닦은 휴지 내 컴퓨터 책상에 널부러놓고바닥에 퍼질러 자고 있기도 했고내 자취방으로 오피녀? 자취방으로 와서 해주는 여자 불렀다가하프 쓰고 일찍 집에간 나한테 걸린적도 있었음너무 소름끼쳐서 모텔비 쥐어 준 내가 너무 한심한데그땐 정말 그렇게라도 내보내고 싶었음
그렇게 살았던 내가 결혼을 했음판 오래전부터 해왔지만 결혼/시집/친정에서결혼 시집은 해당이 안됬고친정마저 내게는 지옥같은 곳이어서재밌게 하면서도 문득문득 느껴지는 이질감에 맘이 싸해지곤 했었는데내 집안사정 다 알면서도 품어주고 정상적인 가치관 가진 남자 만나서 결혼했음
그렇게 나를 괴롭히던 사람들이신랑이 내 사정 알고 나 보호해주니까나한테 연락한번 하기 조심스러워함왜냐면 신랑이 돈이 많거든
연애때 신랑이 내 집안사정 모르고그냥 우리집 좀 가난한 집안인줄 알았을때 오빠랑 아빠한테 이제 곧 가족될건데 제가 용돈 드려야죠하면서 많게는 백만원 적게는 몇십만원씩 통장에 가끔 넣어주기도 했고아빠랑 오빠 편하게 가게하나 해드리고 싶다고 했었는데신랑이 집안 사정 다 알고 나서 지원 다 끊어버리니까나한테 잘못했다며 사위 왜저러는지 니가 맘좀 돌려봐라며 난리침
돈이란게. 그리고 날 지켜줄 남자가 있다는게내가 30년이 다 되는 세월동안 당했던 것들, 당했던 상황들을한번에 역전시켜줄 수 있다는게 감사하고 놀랍고 한편으론 서글프고.
주절주절 끄적였는데 마무리를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음..요즘 너무 행복함그동안의 불행을 이제 보상받는 느낌..결국 내 스스로 해낸 것은 없는것 같지만혹시 나와 같은 친구, 동생이 있다면언젠간 너의 인생에도 빛이 드는 날이 있다는 걸 기억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