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토 무죄…훼손된 국격은 누가 책임지나?

대모달2015.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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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30부가 17일 박근혜 대통령의 세월호 참사 당일 행적에 의혹을 제기해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가토 다쓰야(加藤達也·49) 전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에 대해 무죄를 선고함으로써 1년4개월간 한·일 관계를 긴장시켰던 장애요소 하나가 제거됐다. 하지만 이미 이 사건으로 인해 한·일 간 감정의 골이 패일대로 패인 상황이어서 양국 관계 개선의 전기가 마련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외교부는 이날 판결에 대해 “재판 과정을 통해 문제가 됐던 산케이 신문 보도 내용이 허위라는 점이 명백히 드러났다”면서 “앞으로 이런 허위 보도가 한·일 관계에 부담을 주는 일이 발생하지 않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같은 정부 입장은 이번 사건의 본질과 무관한 동문서답에 가깝다. 이번 재판은 기사 내용의 진위 여부를 가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명예훼손에 대한 유·무죄를 가리기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다. 또 한·일 관계에 부담을 준 정도로 따지자면 산케이 신문의 사실과 다른 보도보다 결국 무죄가 나올 사안을 무리하게 기소해 국내외적 파문을 자초한 검찰의 과잉 대응에 훨씬 더 큰 책임이 있다.

가토 전 지국장의 기사는 악의적이고 수준 미달이며 한·일 관계에도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 ‘황색 저널리즘’의 전형이다. 그렇다고 정부가 나설 일은 아니었다. 그대로 두면 비난받을 쪽은 산케이 측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검찰은 각계 반대에도 불구하고 가토 전 지국장을 기소했고 정부에게 남겨진 것은 정치적·외교적 부담 뿐이었다. 유죄가 나오든 무죄가 나오든 망하는 길로 접어든 셈이다.

이번 판결로 정부는 국제적 망신을 피할 수 없게 됐다. 하지만 유죄 판결이 나왔다면 일본 뿐 아니라 미국, 국제엠네스티 등을 포함한 국제사회로부터 거센 비판을 받으며 계속 재판을 진행해야 하는 부담을 안았을 것이라는 점에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외교부는 이번 판결을 앞두고 가토 전 지국장에 대한 선처를 주장하는 일본 측 입장을 참작해줄 것을 요청하는 공문을 법무부에 보낸 것으로 드러나 논란을 가중시켰다. 외교부는 공문에서 “최근 한·일 관계 개선 조짐, 특히 12월18일이 한일 기본조약 발효 50주년 기념일임을 감안해 일본 측 주장을 참작해 주시기 바란다”고 밝혔다. 일본 측이 그동안 가토 전 지국장의 무죄를 줄곧 주장해왔음을 감안하면, ‘일본측의 주장을 참작해 달라’는 외교부 공문은 사실상 ‘무죄 탄원서’인 셈이다. 애초부터 기소가 무리였음을 정부가 스스로 인정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외교부는 이 공문발송 과정에서 청와대와 의견 조율이 있었던 것은 아니라고 부인했다. 하지만 이번 사안은 박 대통령에 대한 명예훼손 여부를 다루는 재판이었기 때문에 청와대 재가없이 외교부가 독단적으로 무죄를 탄원하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을 가능성은 없다. 결국 정부는 이 공문 발송을 통해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제스처를 보이고 이번 판결로 인한 파장을 최소화하려 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판결과 정부의 조치가 한·일 관계 개선에 직접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일본은 무죄 판결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에 ‘상황 악화’를 방지했다는 것 이상 의미를 갖기 어렵다.

오히려 일본은 이번 판결을 계기로 한국에 대해 더욱 기세등등한 태도를 보일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가토 전 지국장은 이날 판결 직후 기자회견에서 “이것은 당연한 판결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특별한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다. 한국의 검찰 당국은 항소를 하지 않고 본건을 종료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번 ‘산케이 파문’은 대통령 명예를 지킨다는 명분으로 국격을 훼손하고 혐한 보도를 일삼는 일본 3류 언론을 영웅으로 만들어준 비극적인 사건이다. 민주주의와 법치라는 측면에서 우리보다 한 수 아래라고 평가받는 일본으로부터 ‘한국은 민주주의 국가가 맞느냐’는 조롱을 받는 상황을 자초해 국민들에게 자괴감을 심어준 책임은 정부가 질 수 밖에 없다.

 

☞ 유신모〈경향신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