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상하고 화나기보단, 슬프고 힘이 들어 함부로 할 수 없는 이야기를 이곳에 써볼까 합니다.
저는 26살 남자입니다.
저에게는 중3이 되던 해부터 만나 여자친구가 있습니다.
그 아이는 내성적인 저와는 다르게 시원스럽고 쾌활하고 긍정적인 아이였습니다.
그 아이와는 세상 무서울 것 없던 사춘기 시절과 나쁜 유혹이 난무하던 시절을 함께 손잡고 이겨낸 친구 사이이기도 하지요.
친구들의 유혹에 첫 담배를 입에 물었을 때, 저 멀리서 달려와 뒤통수를 후려치며 불같이 화내기도 하고, 처음 옆 학교 아이들과 주먹다짐을 해서 코피를 우스꽝스럽게 흘리며 경찰서에 앉아있었을 때 엄마보다 먼저 달려와 제 옆에 앉아 울던 아이였습니다.
그리고 둘 다 첫 성인이 되던 해에는 제가 느낀 세상의 벽에 좌절하여 함께 소주 한잔 기울여주다가도, 어린놈이 술 마시며 한숨 쉬는 모습이 웃기다며 폭소를 하던 유쾌한 아이였지요.
참. 제가 대학을 가지 않겠다고 부모님께 선언을 했던 날, 노발대발하시는 아버지 앞에 무릎 꿇고 앉아 조곤조곤 논리 있게 납득 시켜주던 그 아이의 모습은 남자인 저보다 훨씬 멋있어 보여 눈물까지 흘렸습니다. 사실... 저를 믿어주는 모습에 제가 눈물을 흘렸던 걸수도 있지만요.
저에게 꿈이 하나 있다면, 8년 가까이 사귀어오면서 권태기라고는 전혀 느끼지 못하게 만들 만큼 쉴 틈 없는 매력을 가진 이 아이에게 당당하게 프러포즈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아이가 원했던 것처럼... 소란스럽지 않게 소소하게... 우리 둘만 이 세상에 있다고 느낄 만큼 행복하게 딱 그렇게만 프러포즈 할 수 있기를 매일 밤마다 꿈꿔왔습니다.
그렇게 저도 제 자리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이 정도면 되겠다 싶어, 그 아이에게 장미 한 송이를 내밀며 다이아 없는 반지와 함께 비루한 프러포즈를 했고, 그 아이는 제가 밤마다 생각했던 그 모습보다 훨씬 아름답고 행복한 표정으로 저의 프러포즈를 받아주었습니다.
마치 옆집 친구 부모님 같던 장인어른과 장모님이 되실 그 아이의 부모님에게 결혼 허락을 받으러 갔을 때도, 저보다 그 아이를 더 예뻐하는 우리 부모님께 인사를 갔을 때도, 저희는 너무 큰 축복을 받으며 허락을 받았습니다.
그 뒤로 하루하루 우리의 결혼 생활을 의논하며 설렘 가득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지요.
... 슬픈 마음 조금이라도 풀어볼까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이것도 쉽지 않네요. 쉽지 않네요. 정말...
그날은 이상하게 갑자기 많은 비가 오던 날이었습니다.
감기에 걸린 저를 위해 죽을 만들어 오겠다던 아이가 저녁이 되도록 연락이 없어 아무리 통화를 시도해 봐도 연결이 되지 않는다는 안내원의 목소리만 몇십 번을 듣다가, 비가 조금 그치자 저는 아파트를 나섰습니다.
한참을 단지 앞에 서서 추운데 왜 나와있나는 잔소리를 들을 준비를 하던 저에게 걸려온 전화는 다름 아닌 그 아이의 아버님이셨습니다.
저는 아버님의 전화를 받고 제가 간 곳은 근처 병원이었고, 아버님 어머님도 저처럼 멍한 얼굴이었습니다.
점심이 되기 전 죽을 싸 들고나간 딸의 휴대폰으로 저녁쯤 걸려온 전화는 뒷산 산책로 근처를 운동 나온 한 아주머니의 전화였고, 지금 이 휴대폰 주인이 무슨 사단이 난 것 같다며 일단 119에 신고를 했고 00병원으로 가겠다는 다급한 전화였습니다.
처음 발견했을 땐 남방과 카디건이 험하게 찢겨있고, 하의는 하반신만 간신히 가릴 정도로 대충 던져 저 있었으며 여자는 비를 쫄딱 맞고 멍하게 눈만 겨우 끔뻑이더라라는 아주머니의 말에 대충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아챌 수 있었습니다.
그 아이가 얼마나 아픈 일을 당했는지는 그 뒤로 경찰들과, 잡혀 온 고등학생 3명을 보고 듣고 알 수 있었습니다. 누군가 욕정을 참지 못하고 저지른 범죄에 그 아이는 그리고 그 아이의 부모님은 말을 잃었고, 저 또한 이게 현실인지 꿈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습니다.
꿈이라면 제발 끝나길 바랐고, 현실이라면... 이제 어쩌나 싶었습니다. 무서웠습니다.
저보다 강하고 저보다 웃음이 많고 저보다 씩씩하고 저보다 야무졌던 그 아이가 아무런 표정 없는 얼굴로 저를 멍하게 쳐다보는 게...
마치 제가 누군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환자복을 입고 쳐다보는 모습을 보며 저는 이게 꿈일 것이라 확신했습니다.
저는 제가 참 싫었습니다.
그 아이를 다치게 한 학생들의 부모님이 와 무릎 꿇고 그 아이 부모님께 빌 때도, 아버님이 학생들의 멱살을 잡으며 우실 때도, 전 아무것도 하지 못 했습니다. 화가 나지 않아서가 아니었습니다.
지금 내게 온 이 갑작스러운 불행을 실감하지 못하고 외면하고자 하는 몸부림을 치는 제 자신이 너무 한심했습니다.
시간이 조금 지나 아버님이 가해자들과 일을 해결하실 때 저는 저를 멍하게 쳐다보기만 하는 그 아이 옆에 앉아 똑같이 멍하게 쳐다보기만 했습니다. 그러다가 한 번씩 울기도 하고 갑자기 웃기도 하고... 둘 다 그냥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마냥 행동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그 아이에게 웃으며 말했습니다.
우리 결혼할 거야. 알고 있지?
그 아이는 아무 말 없이 저를 멍하게 보기만 하더군요.
저는 그냥... 내 아이를... 내 사람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보다, 미치게 증오스러운 그 새끼들보다, 하루하루 눈물로 보내시는 그 아이 부모님보다 앞으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생각했고, 하루빨리 이 지옥에서 이 아이를 건지는 일이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시 그 아이 방에서 프러포즈를 했고, 그 아이는 ...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제가 감히 그 아이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저... 나조차 무너지지 말자는 마음뿐이었고,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은 그 아이를 지탱해주고 싶은 마음뿐이었습니다.
그 일이 있고 2달 정도를 그렇게 무의미하게 서로 모르는 사람처럼 지내다가 그 친구가 어느 날 저의 집에 찾아와 그러더군요.
나는 지금 많이 힘들다. 시간이 많이 지났는데 여전히 어제 일처럼 힘들고 무섭다. 그래도 노력해보겠다.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니 옆에서 지낼 수 있도록 노력해보겠다. 혹시 그래도 안되겠으면... 헤어져주라.
그리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이제는 정말 제가 있는 힘을 다해서 그 아이를 웃게 해주리라. 너만큼은 아니겠지만 나도 찢어지는 마음 붙들며 하루하루 지내왔으니, 이제 우리 둘 다 이겨내보자.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평소처럼. 우리가 아프지 않았던 것처럼 제가 더 웃으며 제가 더 그 아이를 붙잡으며 그 아이의 망가진 마음을 달래려 노력했습니다. 하루에도 수십 번 멍하게 저를 바라보는 그 아이의 예쁜 웃음을 돌려주기 위해 안 하던 주접까지 떨며 즐겁게 해주기 위해 애썼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또 흘러 이런 저의 모습과, 그런 그 아이의 모습이 어느 정도 익숙해졌을 때, 그 아이가 저의 손을 꼭 잡고 제가 그렇게 보고 싶었던 그날이 있지 전 예쁜 웃음으로 말하더군요.
우리 오늘 놀이동산 가자. 그리고 그다음엔 니가 좋아하는 돈가스 먹으러 가자. 그리고 그다음엔, 헤어지자 이제.
그 아이는 정말 예쁜 웃음을 지으며 울었습니다. 제가 그 아이를 더 이상 잡지 못한 이유는, 그 아이 눈물에서 느꼈습니다.
아. 내가 이 아이의 악몽이 될 수 있겠구나. 이 아이도 많이 노력했구나.
그래서 저도 세상에서 제일 환한 웃음으로 말했습니다.
그래 그러자.
두 손 꼭 잡고, 마치 학생 때처럼 환하게 웃으며 놀이동산에 갔을 때도, 솜사탕,츄러스 구슬 아이스크림까지 먹고 사진까지 찍고, 돈가스를 먹으러 갔을 때도 우리는 마치 헤어질 일이 없는 그런 사이처럼 보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헤어졌습니다.
잠에서 깨고싶지 않아 수면제를 먹고, 술을 먹고, 계속 잠만 잤습니다. 이것도 악몽이지 싶어 울다 잠들다를 반복했습니다. 몇번이나 그 아이를 찾아가고싶고 전화하고 싶은 마음이 들때면 휴대폰은 집어던지고 제 자신을 패길 반복했습니다. 그래도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보다는 덜 하더군요.
하늘이 얼마나 무심한지 가끔 그날의 악몽을 꾸기도 했습니다.
제가 지켜주지 못 했던 그날을.
그 전날을.
그 다음날을...
몇 번이나 목숨을 끊어볼까. 그럼 안 아플까 생각하다가도, 그 아이가 겪었을 아픔을 조금이라도 느껴보자 싶어 스스로에게도 벌을 주었습니다.
친구 가족을 모두 외면하고 하루하루 겨우 버텨오다가 그래도 사람인지라... 밥은 챙겨 먹게 되는 잊고자 술을 마시는 제 자신이 너무 한심하고 싫어 미치겠다가도, 그 아이를 다시 생각하면 이런 제가 철없이 느껴집니다.
시간도 너무 흘렸고, 부모님도 저 때문에 눈물로 나날을 보내고 계셔 조금이라도 힘을 내보고자 이제는 말해볼까 합니다.
첫사랑이 성폭행을 당했습니다.
속상하고 화나기보단, 슬프고 힘이 들어 함부로 할 수 없는 이야기를 이곳에 써볼까 합니다.
저는 26살 남자입니다.
저에게는 중3이 되던 해부터 만나 여자친구가 있습니다.
그 아이는 내성적인 저와는 다르게 시원스럽고 쾌활하고 긍정적인 아이였습니다.
그 아이와는 세상 무서울 것 없던 사춘기 시절과 나쁜 유혹이 난무하던 시절을 함께 손잡고 이겨낸 친구 사이이기도 하지요.
친구들의 유혹에 첫 담배를 입에 물었을 때, 저 멀리서 달려와 뒤통수를 후려치며 불같이 화내기도 하고, 처음 옆 학교 아이들과 주먹다짐을 해서 코피를 우스꽝스럽게 흘리며 경찰서에 앉아있었을 때 엄마보다 먼저 달려와 제 옆에 앉아 울던 아이였습니다.
그리고 둘 다 첫 성인이 되던 해에는 제가 느낀 세상의 벽에 좌절하여 함께 소주 한잔 기울여주다가도, 어린놈이 술 마시며 한숨 쉬는 모습이 웃기다며 폭소를 하던 유쾌한 아이였지요.
참. 제가 대학을 가지 않겠다고 부모님께 선언을 했던 날, 노발대발하시는 아버지 앞에 무릎 꿇고 앉아 조곤조곤 논리 있게 납득 시켜주던 그 아이의 모습은 남자인 저보다 훨씬 멋있어 보여 눈물까지 흘렸습니다. 사실... 저를 믿어주는 모습에 제가 눈물을 흘렸던 걸수도 있지만요.
저에게 꿈이 하나 있다면, 8년 가까이 사귀어오면서 권태기라고는 전혀 느끼지 못하게 만들 만큼 쉴 틈 없는 매력을 가진 이 아이에게 당당하게 프러포즈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아이가 원했던 것처럼... 소란스럽지 않게 소소하게... 우리 둘만 이 세상에 있다고 느낄 만큼 행복하게 딱 그렇게만 프러포즈 할 수 있기를 매일 밤마다 꿈꿔왔습니다.
그렇게 저도 제 자리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이 정도면 되겠다 싶어, 그 아이에게 장미 한 송이를 내밀며 다이아 없는 반지와 함께 비루한 프러포즈를 했고, 그 아이는 제가 밤마다 생각했던 그 모습보다 훨씬 아름답고 행복한 표정으로 저의 프러포즈를 받아주었습니다.
마치 옆집 친구 부모님 같던 장인어른과 장모님이 되실 그 아이의 부모님에게 결혼 허락을 받으러 갔을 때도, 저보다 그 아이를 더 예뻐하는 우리 부모님께 인사를 갔을 때도, 저희는 너무 큰 축복을 받으며 허락을 받았습니다.
그 뒤로 하루하루 우리의 결혼 생활을 의논하며 설렘 가득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지요.
... 슬픈 마음 조금이라도 풀어볼까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이것도 쉽지 않네요. 쉽지 않네요. 정말...
그날은 이상하게 갑자기 많은 비가 오던 날이었습니다.
감기에 걸린 저를 위해 죽을 만들어 오겠다던 아이가 저녁이 되도록 연락이 없어 아무리 통화를 시도해 봐도 연결이 되지 않는다는 안내원의 목소리만 몇십 번을 듣다가, 비가 조금 그치자 저는 아파트를 나섰습니다.
한참을 단지 앞에 서서 추운데 왜 나와있나는 잔소리를 들을 준비를 하던 저에게 걸려온 전화는 다름 아닌 그 아이의 아버님이셨습니다.
저는 아버님의 전화를 받고 제가 간 곳은 근처 병원이었고, 아버님 어머님도 저처럼 멍한 얼굴이었습니다.
점심이 되기 전 죽을 싸 들고나간 딸의 휴대폰으로 저녁쯤 걸려온 전화는 뒷산 산책로 근처를 운동 나온 한 아주머니의 전화였고, 지금 이 휴대폰 주인이 무슨 사단이 난 것 같다며 일단 119에 신고를 했고 00병원으로 가겠다는 다급한 전화였습니다.
처음 발견했을 땐 남방과 카디건이 험하게 찢겨있고, 하의는 하반신만 간신히 가릴 정도로 대충 던져 저 있었으며 여자는 비를 쫄딱 맞고 멍하게 눈만 겨우 끔뻑이더라라는 아주머니의 말에 대충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아챌 수 있었습니다.
그 아이가 얼마나 아픈 일을 당했는지는 그 뒤로 경찰들과, 잡혀 온 고등학생 3명을 보고 듣고 알 수 있었습니다. 누군가 욕정을 참지 못하고 저지른 범죄에 그 아이는 그리고 그 아이의 부모님은 말을 잃었고, 저 또한 이게 현실인지 꿈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습니다.
꿈이라면 제발 끝나길 바랐고, 현실이라면... 이제 어쩌나 싶었습니다. 무서웠습니다.
저보다 강하고 저보다 웃음이 많고 저보다 씩씩하고 저보다 야무졌던 그 아이가 아무런 표정 없는 얼굴로 저를 멍하게 쳐다보는 게...
마치 제가 누군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환자복을 입고 쳐다보는 모습을 보며 저는 이게 꿈일 것이라 확신했습니다.
저는 제가 참 싫었습니다.
그 아이를 다치게 한 학생들의 부모님이 와 무릎 꿇고 그 아이 부모님께 빌 때도, 아버님이 학생들의 멱살을 잡으며 우실 때도, 전 아무것도 하지 못 했습니다. 화가 나지 않아서가 아니었습니다.
지금 내게 온 이 갑작스러운 불행을 실감하지 못하고 외면하고자 하는 몸부림을 치는 제 자신이 너무 한심했습니다.
시간이 조금 지나 아버님이 가해자들과 일을 해결하실 때 저는 저를 멍하게 쳐다보기만 하는 그 아이 옆에 앉아 똑같이 멍하게 쳐다보기만 했습니다. 그러다가 한 번씩 울기도 하고 갑자기 웃기도 하고... 둘 다 그냥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마냥 행동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그 아이에게 웃으며 말했습니다.
우리 결혼할 거야. 알고 있지?
그 아이는 아무 말 없이 저를 멍하게 보기만 하더군요.
저는 그냥... 내 아이를... 내 사람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보다, 미치게 증오스러운 그 새끼들보다, 하루하루 눈물로 보내시는 그 아이 부모님보다 앞으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생각했고, 하루빨리 이 지옥에서 이 아이를 건지는 일이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시 그 아이 방에서 프러포즈를 했고, 그 아이는 ...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제가 감히 그 아이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저... 나조차 무너지지 말자는 마음뿐이었고,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은 그 아이를 지탱해주고 싶은 마음뿐이었습니다.
그 일이 있고 2달 정도를 그렇게 무의미하게 서로 모르는 사람처럼 지내다가 그 친구가 어느 날 저의 집에 찾아와 그러더군요.
나는 지금 많이 힘들다. 시간이 많이 지났는데 여전히 어제 일처럼 힘들고 무섭다. 그래도 노력해보겠다.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니 옆에서 지낼 수 있도록 노력해보겠다. 혹시 그래도 안되겠으면... 헤어져주라.
그리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이제는 정말 제가 있는 힘을 다해서 그 아이를 웃게 해주리라. 너만큼은 아니겠지만 나도 찢어지는 마음 붙들며 하루하루 지내왔으니, 이제 우리 둘 다 이겨내보자.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평소처럼. 우리가 아프지 않았던 것처럼 제가 더 웃으며 제가 더 그 아이를 붙잡으며 그 아이의 망가진 마음을 달래려 노력했습니다. 하루에도 수십 번 멍하게 저를 바라보는 그 아이의 예쁜 웃음을 돌려주기 위해 안 하던 주접까지 떨며 즐겁게 해주기 위해 애썼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또 흘러 이런 저의 모습과, 그런 그 아이의 모습이 어느 정도 익숙해졌을 때, 그 아이가 저의 손을 꼭 잡고 제가 그렇게 보고 싶었던 그날이 있지 전 예쁜 웃음으로 말하더군요.
우리 오늘 놀이동산 가자. 그리고 그다음엔 니가 좋아하는 돈가스 먹으러 가자. 그리고 그다음엔, 헤어지자 이제.
그 아이는 정말 예쁜 웃음을 지으며 울었습니다. 제가 그 아이를 더 이상 잡지 못한 이유는, 그 아이 눈물에서 느꼈습니다.
아. 내가 이 아이의 악몽이 될 수 있겠구나. 이 아이도 많이 노력했구나.
그래서 저도 세상에서 제일 환한 웃음으로 말했습니다.
그래 그러자.
두 손 꼭 잡고, 마치 학생 때처럼 환하게 웃으며 놀이동산에 갔을 때도, 솜사탕,츄러스 구슬 아이스크림까지 먹고 사진까지 찍고, 돈가스를 먹으러 갔을 때도 우리는 마치 헤어질 일이 없는 그런 사이처럼 보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헤어졌습니다.
잠에서 깨고싶지 않아 수면제를 먹고, 술을 먹고, 계속 잠만 잤습니다. 이것도 악몽이지 싶어 울다 잠들다를 반복했습니다. 몇번이나 그 아이를 찾아가고싶고 전화하고 싶은 마음이 들때면 휴대폰은 집어던지고 제 자신을 패길 반복했습니다. 그래도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보다는 덜 하더군요.
하늘이 얼마나 무심한지 가끔 그날의 악몽을 꾸기도 했습니다.
제가 지켜주지 못 했던 그날을.
그 전날을.
그 다음날을...
몇 번이나 목숨을 끊어볼까. 그럼 안 아플까 생각하다가도, 그 아이가 겪었을 아픔을 조금이라도 느껴보자 싶어 스스로에게도 벌을 주었습니다.
친구 가족을 모두 외면하고 하루하루 겨우 버텨오다가 그래도 사람인지라... 밥은 챙겨 먹게 되는 잊고자 술을 마시는 제 자신이 너무 한심하고 싫어 미치겠다가도, 그 아이를 다시 생각하면 이런 제가 철없이 느껴집니다.
시간도 너무 흘렸고, 부모님도 저 때문에 눈물로 나날을 보내고 계셔 조금이라도 힘을 내보고자 이제는 말해볼까 합니다.
저도 정말... 많이 힘들었다고.
슬프고 미칠 것 같았다고.
너무 보고싶어 미치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