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많은 사람과의 만남은.

에효2015.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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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중반이지만 1년간 학생 만나면서 데이트 비용을 다 쓸 정도로

 

남자의 능력과 재력을 재고 따졌던 내가 아니였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이 조금 더 부담하면 되는 것이고 비싼 레스토랑 음식 보다는 동네 길거리 음식을 먹으면서 행복할 수 있는, 그니깐 감정적인 교류를 훨씬 더 중요하게 생각하던 나였다.

 

그런데 이번에 만난 너는 공교롭게도 집에 돈이 아주 많은 늦둥이 아들이더라.

 

집 안에서 오냐오냐 해달라는거 다 해주고 비싼 억대짜리 외제차를 타고 다니며 세컨 차도 있던 너였다.

 

너의 주변 사람들까지도 전부 지방 촌에서는 구경도 못할만한 아주 좋은 외제차만 끌고 다녔다.

 

나와는 너무나도 다른 세계였다.

 

너는 그 안에서 아쉬울 것 없이 세상을 살았고 남들을 무시하면 무시했지 무시당하는 성격은 아니었다.

 

그래, 그 때는 너가 주관이 뚜렷한 자신감이 아주 넘치는 나를 이끌어줄 수 있는 성격의 소유자라고 느꼈기에 너에게 마음이 갔었나 보다.

 

하지만 그것이 나에게까지 오더라. 그 무시하는 성품이.

 

은연 중에 나를 무시하는 태도와 말들, 대화의 끝은 항상 나를 가르치는 조언이 아닌 충고였다.

 

남,녀 사이에도 갑을 관계 있다면 나는 분명 을이었다.

 

집안도 재력도 전부.

 

결국 너에게 자격지심을 가지고 있던 내가 너를 놓았다.

 

너와 헤어진 후 내 자존감은 바닥을 쳤다.

 

나의 가치를 알아줄 수 있는, 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해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리라 다짐을 하고 이별을 통보했다.

 

그리고 나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데.. 여러 사람들을 만났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 그 사람의 능력과 집안과 재력,차까지 전부 따지고 있더라.

 

경차 하나 끌고 다니는 내가 내 주제도 모르고 타인의 차종을 왈가왈부한다는게

 

내 자신에게 회의감이 드는 참 웃긴 일이었다.

 

남자의 능력과 돈만 보고선 판단하는 소위 된장녀 같은 여자들을 비난했던 내가 말이다.

 

마치 월100만원 받던 사람이 월200만원의 돈을 받게 됬을 때 다시 100만원으로 생활할 수 없는 것 처럼.

 

하지만 나이를 먹고 아무곳에서도 취업이 안된다면 월100만원이라도 받는 곳에가서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겠지. 그것에 또 감사하는 자세를 갖게 되겠지.

 

 

 

 

 

어떤 이별에든 항상 마음 아파했었다.

 

하지만 새로운 사람들로써 그 아픔을 항상 이겨냈었는데, 후유증이 오래 가지 않았었는데

 

이번에는 조금 힘들 것 같다.

 

재력으로 상대를 판단하는 잣대를 버리고 있는 그대로를 그 사람의 인성만 볼 수 있는 수용적인 자세를 갖기 전까지는,

 

차라리 혼자인게 낫겠다.

 

 

 

 

 

 

그런데 사실은,

 

나는 너를 너무 많이 좋아했다.

 

친구들이 너가 이렇게 남자를 대하는 것을 처음본다고. 미친거아니냐고 할 정도로.

 

너의 재력들이 좋았던게 아니고 너가 너무 좋아져버렸는데 너가 그런 부잣집 아들이었던 것 뿐.

 

나는 너와 모든걸 같이 해도 행복했다.

 

그래서 그런걸까, 차라리 그렇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할까.

 

너를 너무 좋아했기 때문에 단지 너와 비슷한 사람을 만나고 싶어 하는 거라고,

 

 

 

 

 

 

헤어지고 난 다음에 좋았던 기억들만 나는 것은 불변의 법칙인 걸까?

 

너랑만 있으면 항상 즐겁다는 말. 너랑 결혼하고 싶다던 말.

 

너랑은 오래 만나고 싶다라는 말. 너를 좋아해. 너를 사랑해.

 

뺴빼로 사들고 사무실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모습도

 

너에게 쓰는 돈은 100원도 아깝지 않다던 말도

 

츄리닝을 입어도 화장을 안해도 너는 뭘 해도 이쁘다는 말도

 

자고 있는 동안 내 이마에 뽀뽀해주던 모습까지도

 

분명 끝은 나빴는데 만나는 동안 너는 정말 여자친구를 사랑했던 남자였구나 라고 느껴지니

 

가슴이 너무 미어진다.

 

그 모습들에 왜 나는 같잖은 자격지심으로 너에게 최선을 다하지 못하였을까..

 

 

 

 

 

 

 

보통 너무 좋아했던 사람과의 헤어짐은

 

일이든 공부든 돈을 더 많이 벌어서든 그 사람보다 훨씬 더 잘 살아서

 

아님 훨씬 더 좋은 사람을 만나서

 

그렇게 잘 사는 것을 보여주는게 최고의 복수라고들 한다.

 

그런데 내가 제일 슬픈 것은, 내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그 사람보다 더 좋은 환경 속에서

 

살 수 없을 것 같다라는 것이다.

 

왜 이렇게 그 현실의 벽이 억울하고 슬플까.

 

아버지가 공무원인 우리 집.

 

그렇게 잘 살지도 못 살지도 않은 그냥 평범한 서민 수준.

 

처음으로 엄마 아빠에게 미안해질만큼 우리 집이 잘 살았었으면이란 생각까지 한 나는 정말 못된 년이고 못된 딸이다.

 

 

 

 

 

 

 

너와의 헤어지고 일주일이 지난 지금.

 

술 한 모금도 마시지 않았다.

 

그 동안 보고싶어했던 책을 사서 읽었고

 

시사 책을 사서 공부까지 했다.

 

관심없던 정치와 경제 기사까지 찾아 읽으며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오랫동안 연락 없던 친구들에게 연락하여 안부를 물었다.

 

모든 만남과 이별에는 분명 성숙해질 수 있는 비단 그 아픔이 없다 하는 이별이라 할지언정

 

무언가를 깨달 수 있는 또 변화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지금 나에게는 '넌 우물 안의 개구리야, 온실 속의 화초처럼 세상 물정을 몰라' 했던

 

너의 말이 나를 변화시켰다.

 

아니 변화하려는 노력을 줬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그 시간을 단축시키는 것은 나의 생각과 태도에 있다고 생각한다.

 

 

 

 

 

 

너만큼 좋은 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을 찾지 말고 내가 좋은 차를 탈 수 있는 노력을 할 것이다.

 

경제적 발전 뿐만 아니라 내 내면을 높일 수 있는 노력들을 할 것이다.

 

너에게 맞는 사람이 되고 싶은 심리로 인하여 하는 노력이라 하여도 좋다.

 

언젠간 그렇게 살다보면 분명 너 생각을 추억할 때가 올 것이고

 

그 때에 나는 발전해 있을 것이다.

 

그래, 이렇게 생각하면 너와의 만남은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라는 합리화라도 할 수 있겠지.

 

그럼 너를 원망할 것이 아니라 고마워해야 하는 걸까.

 

애초부터 만나지 말껄이라는 것은 너무 비겁한 변명이니깐, 차라리 고마워하고 싶다.

 

지금 이 상황 앞에서.. 성숙해지고 싶다.

 

너를 너무 좋아했다.

 

너무나도 너무너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