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나는 대한민국의 국민임을 밝히고 이 글을 시작한다.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이고 분단의 현실에 있다. 그럼에도 나는 강씨의 시위의 내용에 대해 절대적 공감을 한다. 첫째, 현실론적으로 남북 분단으로 북한의 침략에 대비뿐만 아니라 자국의 자유와 평화 그리고 외국의 침략에 대비한 안보를 위해 군대의 필요성은 인정한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군대란 대화가 아닌 물리적으로 상대를 제압하겠다는 폭력성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더군다나 엄청난 인원과 비용을 사용하면서 퍼레이드를 준비하는 현 정부와 지지자들에 대해 전쟁에 반대하는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도 있다는 메시지를 무조건 간과하는 것은 짧은 생각이라는 판단에서 그의 주장에 공감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강씨의 시위 방법에 유교적 사고가 뿌리 깊은 우리 사회에서 용납되기 어렵겠지만, 알몸 시위도 표현의 자유에 해당된다. 미국은 수정헌법 1조를 바탕으로 그 어떤 표현의 자유로 보장하고 억압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나의 주장이 존중받으려면 나와 전혀 다른 주장, 아니 이해할 수 없는 주장도 인정하고 존중 할 줄 아는 자유주의 정신을 헌법이 보장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현실론만 강조하고 궁극적인 이상에 대한 것은 인정하지 않으려는 풍토가 강하다. 다시 말하면, 눈앞의 이익에만 충실하다는 비극적인 현실주의자가 많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내 자신도 그렇고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들도 동물(개)가 아닌 인간이다. 인간은 눈앞의 고깃덩이에만 관심이 있지 않고, 인간다운 삶을 원한다.
그렇다면, 과연 인간다운 삶이란 무엇인가? 모든 인간은 자유와 평화 그리고 행복을 추구한다. 그러나 사회 심리학자 E. 프롬의 저서인 <자유로부터의 도피>에서 지적했지만, 특정한 개인(영웅) 및 제도와 규범에 자신의 자유를 포기함으로써, 자유에 따른 의무와 책임을 망각하려는 도피적 무의식이 존재한다. 물론 개인에 따라 자유와 평화 그리고 행복은 주관적으로 인식될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자유 대한민국이라는 대의명분에 위배되지 않는다면 나와 다른 사고를 지닌 사람들에게 대해서도 한국인의 그 특유의 관용성이 적용되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나라, 한국을 여행을 하다보면 느끼는 것이지만, 그 넉넉한 인심과 관용 그리고 포용의 에너지가 철학적으로 융화되어 승화된다면 한국은 세계 최고의 철학 그리고 문화 강국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건국, 아니 광복 60주년 국군의 날 기념행사에 외국인들도 캠코더와 사진기를 들고 많이 참석했다. 바야흐로 국제화 사회에 한국이 중심축에 있다는 자부심도 갖게 된다. 그러나 솔직하게 말한다면, 우리 사회는 자신의 주장만 옳고 상대의 주장은 억압하고 제거해도 좋다는 폭력적 사고가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은 아닐까? 한국인들은 폭력을 좋아하는 야만인이 아니다. 이웃의 아픔을 걱정하고 보듬어 줄 수 있던 정 많던 사람들이다. 그 소중한 정(情)을 우리가 스스로 사랑하고 보존한다면, 나는 그것이 진정한 민주주의의 구현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정씨의 알몸시위에 대해, 우리들은 그런 사고를 지닌 사람도 있다는 너그러운 관용의 미덕으로 바라보자고 제안한다면, 나도 이상한 사람일까?
강의석씨 군대반대 알몸 시위에 대하여...
강의석씨 군대반대 알몸 시위에 대하여...
우선, 나는 대한민국의 국민임을 밝히고 이 글을 시작한다.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이고 분단의 현실에 있다. 그럼에도 나는 강씨의 시위의 내용에 대해 절대적 공감을 한다. 첫째, 현실론적으로 남북 분단으로 북한의 침략에 대비뿐만 아니라 자국의 자유와 평화 그리고 외국의 침략에 대비한 안보를 위해 군대의 필요성은 인정한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군대란 대화가 아닌 물리적으로 상대를 제압하겠다는 폭력성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더군다나 엄청난 인원과 비용을 사용하면서 퍼레이드를 준비하는 현 정부와 지지자들에 대해 전쟁에 반대하는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도 있다는 메시지를 무조건 간과하는 것은 짧은 생각이라는 판단에서 그의 주장에 공감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강씨의 시위 방법에 유교적 사고가 뿌리 깊은 우리 사회에서 용납되기 어렵겠지만, 알몸 시위도 표현의 자유에 해당된다. 미국은 수정헌법 1조를 바탕으로 그 어떤 표현의 자유로 보장하고 억압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나의 주장이 존중받으려면 나와 전혀 다른 주장, 아니 이해할 수 없는 주장도 인정하고 존중 할 줄 아는 자유주의 정신을 헌법이 보장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현실론만 강조하고 궁극적인 이상에 대한 것은 인정하지 않으려는 풍토가 강하다. 다시 말하면, 눈앞의 이익에만 충실하다는 비극적인 현실주의자가 많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내 자신도 그렇고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들도 동물(개)가 아닌 인간이다. 인간은 눈앞의 고깃덩이에만 관심이 있지 않고, 인간다운 삶을 원한다.
그렇다면, 과연 인간다운 삶이란 무엇인가? 모든 인간은 자유와 평화 그리고 행복을 추구한다. 그러나 사회 심리학자 E. 프롬의 저서인 <자유로부터의 도피>에서 지적했지만, 특정한 개인(영웅) 및 제도와 규범에 자신의 자유를 포기함으로써, 자유에 따른 의무와 책임을 망각하려는 도피적 무의식이 존재한다. 물론 개인에 따라 자유와 평화 그리고 행복은 주관적으로 인식될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자유 대한민국이라는 대의명분에 위배되지 않는다면 나와 다른 사고를 지닌 사람들에게 대해서도 한국인의 그 특유의 관용성이 적용되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나라, 한국을 여행을 하다보면 느끼는 것이지만, 그 넉넉한 인심과 관용 그리고 포용의 에너지가 철학적으로 융화되어 승화된다면 한국은 세계 최고의 철학 그리고 문화 강국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건국, 아니 광복 60주년 국군의 날 기념행사에 외국인들도 캠코더와 사진기를 들고 많이 참석했다. 바야흐로 국제화 사회에 한국이 중심축에 있다는 자부심도 갖게 된다. 그러나 솔직하게 말한다면, 우리 사회는 자신의 주장만 옳고 상대의 주장은 억압하고 제거해도 좋다는 폭력적 사고가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은 아닐까? 한국인들은 폭력을 좋아하는 야만인이 아니다. 이웃의 아픔을 걱정하고 보듬어 줄 수 있던 정 많던 사람들이다. 그 소중한 정(情)을 우리가 스스로 사랑하고 보존한다면, 나는 그것이 진정한 민주주의의 구현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정씨의 알몸시위에 대해, 우리들은 그런 사고를 지닌 사람도 있다는 너그러운 관용의 미덕으로 바라보자고 제안한다면, 나도 이상한 사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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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의 시간과 공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