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9살에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상고출신이던 나는 넉넉치 못한 가정형편.많이들 이렇더라. 남동생을 대학에 보내겠다는 아버지의 의지와 고생하는 엄마의 얼굴을 보는것이 안타까워 정작 나는 공부는 멍청해서 못하는거라고 웃으면서 취업이 잘된다는 상고를 들어갔고 고2때부터 수업시간엔 자도 쉬는시간에는 이력서를 써서 냈다. 고3때 담임선생님께서 학교에서 맨날 자고 공부 안해도 내입으로 말하긴 그렇지만 매일 알바나가고 착하고 성실한 나에게 좋은 직장을 소개시켜 주셔서 열심히 잘 다녔더랬다. (사립고의 좋은 점인지 담임선생님께선 재직을 오래하셔서 이곳저곳 인사과 직원분들과 친하신..) 잘 다니던 중에 23살까지 월급이 얼마나 찍히는 줄도 모르고 고스란히 부모님께 통장을 드리고 나는 그냥 얼마를 모은것도 없고 얼마를 쓴것도 딱히 없다. 우리집은 넓은 집으로 이사를 갔고(내가 집을 사드린건 아님..도움정도...) 동생놈도 대학을 졸업했다. 나는 그때 아무것도 모르는 철딱서니 23살 이었다. 공부도 해본적 없고 그냥 일만 했고 기숙사생활을 했던지라 자고 일, 자고 일이었다. 연애같은것도 제대로 해본적 없고 남자가 좋다고 하면 어색해서.. 남자랑 단둘이 있는게 어색해서 연애도 못했었다.. 첫 연애는 중학교 동창하고 고등학생때 하고 대학생 오빠랑도 하고 20살 막 되서도 하고 그랬는데 너무 친구나 친구의 아는 오빠 이렇게 만나서 그랬는지 새로운 사람의 등장은 정말 어색했다; 그렇게 좋은직장에서 기숙사생활을 하느냐고 세상 물정도 모르고 살다가 친구의 권유로 다른직장으로 이직.. 회사는 정말 이상한 회사.. 친구 다 잃었었다.. 소문도 안좋게 나고.. 난 그냥 좋은 조건의 회사인줄 알고 이직 했고 거기가 그렇게 소문이 안좋은 곳인줄 몰랐고 그냥 회사에서 시키니까 했다. 직장은 다 그런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현실을 알아차린건 1~2년이 흐른 뒤였다. 부모님도 월급도 못챙겨 받는 나를 보곤 걱정을 하셨다. 아버지는 걱정과 답답함에 서운한 말만 하셨다. 가장은 아버지인데 아무래도 나에게 의지를 하셨던 것 같다. 나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힘들었다. 그러치만 내가 그걸 알고 '아버지, 제가 왜 짐을 지고 가야 하냐'고 하면 더 슬퍼할걸 알기에 계속 내 멋대로 살게 두라며 철없이 굴었다. 나름 애를 쓰는데 취업이 새로이 잘 안되니까 그래서도 그렇게 말한거 같다. 그러다가 외삼촌의 권유로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다. 외삼촌이 공무원이신데 취업에 도움을 주시겠다고 공부를 준비하라고 하셨다. 어릴때 호기로 또는 겁이 많아서 그런건지 가족의 연줄로 들어가면 반드시 탈이 날거라는 그런 고리타분한 생각을 조그만게 뭘안다고 했을까.. 그러다가 현실에 부딛히고 너무 추운 현실이어서 하겠다고 했다. 나는 이미 이직을 하면서 다시 집에서 나와 이직한 직장에 다니느라 서울의 고시원에서 살았다. 그간 벌었던 돈은 모두 부모님 몫이라 생각하고 미련없이 내 머릿속에서 지웠다. 못해도 8~9천은 됬을 것이다. 밤에는 시급이 좋다는 서울의 칵테일바. 칠천원 받고 일했고 낮에도 콜센터에서 알바하면서 일했다. 공부를 해야 하니 낮에 하는 콜센터를 관두고 학원을 갔다가 밤에 일하던 칵테일 바가 사장이 바뀌면서 내 시급도 오르고 학원 공부는 그렇게 소홀하게 되고 나는 하필 월급의 맛을 그때 느꼈다. 시험공부보다 와인공부 칵테일 레시피 공부 위스키 공부 와인 에티켓 공부 음악공부 (공부보단 제목하고 이름 외우기...음악은 참 .. 좋더라..;;) 원산지에 유학다녀온 업체 직원들에게 자료 받아서 공부.....난 정말 멍청해서 대학을 안간것 같다... 기억도 안난다 이제.. 서울에서 다닌 직장에선 월급도 제때 안나오고 고시원 생활하면서 생활고로 빚만 지고 돈도 없고 공부는 해야겠는데 잠깐 하리라던 알바가 월급 따박따박 들어오니 그냥 직원하겠다고 1년만 다니고 나가야지 한게 3년정도.. 사장이 두번 바뀌었는데 그때마다 월급을 올려주고 그렇게 조금만 더 조금만더 하다가 3년.. 그런데 사장이 바뀔때마다 이건 뭐 하.. 유행따라 매출이 업다운되니 정통분위기 고수하던 사장들 장사안되 가게 넘기고 분위기 바꾸면 유행지나고 또 가게 넘기고 계속 그렇게 변질... 지금은 함께 일하던 사람들 다들 지금 시집장가 다 잘가있다. 예전이 좋았다고 다들 그런다. 맞다 사람들은 좋았던 시절을 잘 못잊는 것 같다. 어쨌든 나는 가게를 다니면서 계속 투잡을 했다. 이제 가게는 관둬야 할것 같으니 직장을 다니려고 어떻게 해서든 연결해서 다니려고 투잡을 했다. 가게는 곧 관뒀고 회사생활을 계속 했다. 그런데 월급이 나같은 자취생에게는 작은차이가 엄청났다.. 정말 빠듯했다. 다시 빚을 지고 집에서 필요하다면 내가 조금 조금씩 보내줬다. 돈 잘벌때는 운동화도 그냥 발이 안맞아도 하루에 두켤레씩 사고 옷도 한달에 4~5번 10~20만원씩 샀고 신발도 구두 운동화 단화 할거 없이 디자인만 맘에 들면 샀다. 그 때 내가 백화점을 다닐 줄 알았다면 거덜났을거다. 다행히 명품은 모르는 순진한 아이였다. 씀씀이도 무시 못한다. 이랬던 나라 돈이 생기면 썼고 생기면 썼다. 뭔가 결핍에 의한 보상심리?! 합리화하는건 알겠는데 암튼 돈 생기면 엄마 드리고 아빠 드리고 나도 쓰고 돈 걱정 안하던 그때가 그리워서 있으면 다 썼다. 모은적도 있다. 그러면 또 집에 일이 터진다. 참 그렇다 인생이. 한 26~7살되었을때 빚이 최고치였다. 그와중에 나좋다고 쫓아다니는애 만났다. 그런데 집착도 있었고 아무리 헤어지자고 해도 그러지말라고 잡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순수하게 좋아하는 마음이었던것 같다. 내가 싫으니 집착이었다. 빚도 많고 직장도 자꾸 변변치않은 계약직만 들어가고 하니 연애할때 자신도 없어졌고 사치부리는것 같았다. 그래서 나를 매일 만나고 싶어하던 그 아이를 그렇게 맘고생 시켰나 보다. 28살..빚이 도저히 줄지 않아 개인회생을 했다. 그래서 변호사사무실 비용만드느라고 또 투잡을 했다. 직장은 계속 다녔다. 직장에서 일만 하고 퇴근하면 항상 회식도 없이 사라락 없어지는 나를 궁금해했던 아이였다. (저녘에 투잡으로 들어간 곳은 나이 지긋한 분이 조용히 음악틀어주는 작은 커피숍이였다.) 그러다가 내가 먼저 퇴근하는데 수습사원주제에 본인 부장님에게 말하고 나랑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며 퇴근했다고 커피나 한잔 하자고 했다. 커피한잔 하면서 순수한게 마음에 들었지만 또래랑 만나라고 거절했다. 어린사람은 패기가 있다. 나도 많은 나이는 아니었지만 왠지 사회에 나와서 두살이 어린 아직 대학 갓 졸업한 그아이는 철없어 보일만큼 불도저 같았다. 첫경험도 그 아이랑 했다. (모태솔로는 아닌데..;;) 사랑을 했다. 나만 했다. 나는 투잡을 그만 뒀지만 그래도 만나기 힘들었고 연락이 뜸해지는 그 겪고 싶지 않은 경험을 하며 내가 이별을 고했다. 몇달뒤 내가 잡았고 그아인 잡히지 않았고 또 근 시일내 그아이가 나를 잡고 이번엔 내가 잡히지 않았다. 너무 힘들었다. 뭔가 내가 사랑한 사람이 떠나는 그 기분이.. 다들 마찬가지겠지.. 내가 좋아서가 아니라 그사람이 좋아서 한 연애였다. 근데 끝났다. 난 안끝났는데 끝났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 또 정말 이런 기분이다. 내가 누굴 만날 수 있을까. 싶었다. 그렇게 직장생활하면서 엄마의 걱정이 늘고 아버지는 은퇴했다. 동생놈은 결혼할 여자가 생겨 돈모으는데 집중 또 집중했다. 갑자기 뜬금없지만 동생은 참 좋은 놈이다. 자기 여자한테 잘 할 것이다. 팔 안으로 좀 굽어봤다. 무튼 29이 되던해.. 계약이 끝나고 잠시 백수생활을 하던중 20대 초반에 직장을 같이 다녔던 언니의 꼬임에 언니의 고향인 곳에 놀러 갔었다. 너 열심히 사는데 이틈에 나랑 놀러 가자고. 너무 고마웠다. 그렇게 날 꼬셔줘서..언니는 정말 고마운 사람이다. 늘 칭찬도 쓴소리도 적절하게 참 잘 해주신다. 놀러간 거기서 날 맘에 들어한다고 연락처를 달라고 했다는 사람이 있었단다. 뭐 아무생각 없었다고는 안한다. 설레이는 감정이 기분좋았다. 그래서 연락을 주고 받았었다. 깊게 사귄다는 생각은 좀 크게 하진 않았었다. 나는 그때 잠시 예전에 일했던 가게에서 일을 도와주고 있었다. 엄밀히 말하면 알바비를 받을려고 일을 하고 있었다. 서로 필요하에 하게 됨. 내가 저녘에 너댓시간뿐이지만 알바를 한다해도 상관없다 했고 본인도 가게를 운영해봐서 안다고 힘들지 않냐며 다 안다고 매일 매일 다독여 줬다. 참.. 이 좋은 기억은 참 드럽게 안잊혀 진다.. 그냥 따뜻한 말에 속은건지 뭔지 용기를 내고 고맙다고 만나기로 했다. 그리고 친구들에게 나와 만나기로 하고난 뒤 결혼생각이 있다고 얘기 하고 다녔고 장거리 연애를 나는 그렇게 그사람만 믿고 시작을 했다. 나는 형편이 이러해서 결혼준비도 안되어있고 마음도 좀 그렇다.. 아버지가 어머니 고생시킨것도 보고 좀 유별난 아버지 성격에 남자도 잘 못믿고 아무리 그래도 여자가 돈한푼 없이 시집을 간다는게 현실이 받아줄까 싶었지만 모든것이 괜찮다고 말이라도 따스하게 했던 사람이었다. 나는 돈에 노예가 되었던 것인가. 돈이 없으니 자존감도 없었고 그사람은 그다지 좋은 조건도 아닌 나를 그저 사랑해줬다. 외모도 어렸을땐 뭐 평타였으나 지금은 그냥 뭐 살도 20살때보다 한 15키로 이상 찐거 같고 얼굴도 변하고 몸매도 변하고 키도 작고 그렇다. 나는 그래도 나름 내가 귀여운 구석은 있다고 생각한다. 내생각이다 ㅎ 아무튼 연애를 하다보니 난 서른이 되었고 한살차이의 그 사람은 한없이 다정하고 따뜻했다. 나를 애지중지 해주었다. 내가 뭐라든 받아 주었었다. 그러다 그사람이 사업적인 일로 (그당시에 다툼도 좀 잦았었다) 바빠졌었고 신경쓸 일이 많아졌었다. 불안해서 울면서 나 불안하다고 하니까 그런생각 하지 말라고 아니라고 안심을 시켜줬었다. 바로 다음날 연락이 또 뜸해지는 그 경험을 하며 내가 서운하다며 헤어지고 싶냐니 그렇다고 했다. 나는 이사람은 내 반려자가 되겠구나 했다.. 내세울것 하나 없는 나에게 항상 웃어주던 그사람을 최선을 다해 잘해주고 사랑해줘야겠다 계산없이 어디 미담에 나올지도 모르게 잘 만나야지 했다. 20년 안되게 같이 산 시간이 아쉬우셨던 어머니는 맏딸이 멀리 시집을 갈수도 있다는 생각에 슬퍼하셨지만 니가 그사람이 좋으면 가라고 했다. 그런데 헤어졌다. 어제까지 웃던 사람이 다음날 미안하단 한마디로 끝이 나버렸다. 너무 슬펐다. 6개월 만났나 보다.. 얼굴본건 10번이 안된다. 하지만 매일 같이 하는 통화와 문자메세지로도 사랑은 할 수 있었다. 정말 주변 지인들한테 폐인처럼 나 어쩌냐고 이제.. 무섭다고 하고 다녔다.. 기간은 중요치 않은것 같다. 연애가 1달이고 10년이고 결혼생활을 하건 어쩌던 그사람 뱃속까진 모른다. 나는 다 보여줬다. 나도 이런남자 어디서 누가 못알아보고 나에게 왔을까 이런글 적을 줄 알았다. 이런거 끄적일줄은 몰랐다. 그렇게 내 지인들 울고불고 괴롭히고 다니던 어느날 헤어지고 한 서너달 지나고 연락이 왔다. 나는 거절했다. 그러면서도 기다렸다. 안왔다. 잊을만 하니까 연락이 와서 다시 슬픈 이별을 또 했다. 그냥 연락이 와서 받은정도의 마음이 아니었다. 나는 너를 얼만큼 사랑했는지 모른다. 밉지 않다. 그냥 서로 나쁜 소식 들리지 않게 잘 지내자 했다. 하루종일 울었다. 난 객지생활 그렇게 어릴때부터 해도 유리멘탈이긴 해도 그런것 치곤 눈물이 없었다. 그런데 엄청 울었다. 그러면서 또 정신나간채로 서너달이 지났는데 또 전화가 왔다. 이번엔 너무 기뻤다. 또 나에게 너무 적극적이었다. 잊을 수가 없단다. 그래서 얼굴도 한번보고 많은 얘기를 나누고 우는 날 달래고 부딛히고 막말하고 속을 터트리며 할걸 다하고 나니 이사람이 이제 사랑으로 다시 보였다. 그런데... 재회가 쉬운일이 아니더라.. 한 2~3주만에 끝났다. 그사람은 나의 '마음열고 대화하기가 시작되니 버거워 했다. 불안하다는 말을 그만 듣고 싶어했다. 애초에 내가 힘들어 하면 너도 힘들거라고 그걸 어떻게 참을 거냐고 이럴줄 몰랐다고 할거라고 했을때도 처음 만난 그때 처럼 다 괜찮다고 내가 다 감수할거니까 걱정 말라고 했는데 걱정하던일이 현실이 되었다. 나는 그사람이 좋아서 다시 시작 했지만 그사람은 본인이 보고싶어서 나를 다시 만난거 같다.. 그래도 그사람의 정말 순백색의 숨어있는 진심을 난 봤고 그게 예뻐서 고맙고 사랑했다. 연하장 보내놨는데 큰일이다.. 헤어지고 그걸 받아보면 내가 얼마나 구질구질 해보일까.. 이젠 정말 끝난거 같다.. 너무 이상황이 힘들고 무섭고 슬프다.. 다른 사람은 생각 안해봤는데.. 나는 계약직이 또 끝나간다. 또 누굴 만날 수 있을까. 돈은 모을 수 있을까. 난 결혼 할 수 있을까. 십년뒤 뭐가 되있을까. 그런 막연한 생각만 둥둥 떠다닌다. 가난한 어린시절, 유별난 아버지, 고생하는 엄마, 너무 이른 사회생활, 정말 황무지에 내던져지듯 덩그러니 서있었던 현실이라는 무대, 가족과 친구들 나를 아끼는 사람들의 사랑은 받아 봤지만 그들이 걱정하는 나의 미래.. 나도 걱정된다.. 든든한 내편은 없나보다.. 슬프다 너무.. 내가 내자신이 애잔하다... 인생이 끝난건 아니지만 .. 의욕도 없다... 세세하게 감정 하나하나 상황 하나하나 다 적은게 아니라 내가 다시 읽어봐도 내삶을 내가 어떻게 어떤 마음으로 산건지 정말이지 모르겠다. 실수도 많았고 아무생각도 없었던거 같다.. 잘한건 있는지 모르겠다.. 아무 이유없이 우울감과 이런 비참함이 한번씩 든다... 단순하게 하나만 생각해야지 .. 나를 사랑하는 엄마를 위해서라도.. 미친듯이 열심히 살아보자.. 그런데도 참 잘 안된다..맞아야 되나 ㅋㅋㅋ 인생이란 참 빚이 난다 빚이. 마음에 빚이든 금전적인 빚이든.. 31살이다 이제.. 여자 나이 서른한살 가진거 하나없지만 그래도 다행인건 내가 주둥이는 부정적이어도 속으로는 희망차고 밝은 미래를 꿈꾸는 긍정적인 면이 있어 늦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자기개발 하고 나를 좀 더 사랑 하면 그때는 오지 않을까 누군가가.. 우리 모두 힘든데 서로를 속이고 살지 말았으면 좋겠다.. 상처도 주지 말고.. 정말 그러지 말자.. 2
빚이나는(?) 느는(?) 인생 ...
나는 19살에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상고출신이던 나는 넉넉치 못한 가정형편.많이들 이렇더라.
남동생을 대학에 보내겠다는 아버지의 의지와 고생하는 엄마의 얼굴을 보는것이 안타까워
정작 나는 공부는 멍청해서 못하는거라고 웃으면서 취업이 잘된다는 상고를 들어갔고 고2때부터
수업시간엔 자도 쉬는시간에는 이력서를 써서 냈다.
고3때 담임선생님께서 학교에서 맨날 자고 공부 안해도 내입으로 말하긴 그렇지만
매일 알바나가고 착하고 성실한 나에게 좋은 직장을 소개시켜 주셔서 열심히 잘 다녔더랬다.
(사립고의 좋은 점인지 담임선생님께선 재직을 오래하셔서 이곳저곳 인사과 직원분들과 친하신..)
잘 다니던 중에 23살까지 월급이 얼마나 찍히는 줄도 모르고 고스란히 부모님께 통장을 드리고
나는 그냥 얼마를 모은것도 없고 얼마를 쓴것도 딱히 없다.
우리집은 넓은 집으로 이사를 갔고(내가 집을 사드린건 아님..도움정도...)
동생놈도 대학을 졸업했다.
나는 그때 아무것도 모르는 철딱서니 23살 이었다. 공부도 해본적 없고 그냥 일만 했고 기숙사생활을 했던지라 자고 일, 자고 일이었다. 연애같은것도 제대로 해본적 없고 남자가 좋다고 하면 어색해서.. 남자랑 단둘이 있는게 어색해서 연애도 못했었다..
첫 연애는 중학교 동창하고 고등학생때 하고 대학생 오빠랑도 하고 20살 막 되서도 하고 그랬는데 너무 친구나 친구의 아는 오빠 이렇게 만나서 그랬는지 새로운 사람의 등장은 정말 어색했다;
그렇게 좋은직장에서 기숙사생활을 하느냐고 세상 물정도 모르고 살다가 친구의 권유로
다른직장으로 이직..
회사는 정말 이상한 회사.. 친구 다 잃었었다.. 소문도 안좋게 나고..
난 그냥 좋은 조건의 회사인줄 알고 이직 했고 거기가 그렇게 소문이 안좋은 곳인줄 몰랐고
그냥 회사에서 시키니까 했다. 직장은 다 그런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현실을 알아차린건 1~2년이 흐른 뒤였다.
부모님도 월급도 못챙겨 받는 나를 보곤 걱정을 하셨다.
아버지는 걱정과 답답함에 서운한 말만 하셨다.
가장은 아버지인데 아무래도 나에게 의지를 하셨던 것 같다. 나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힘들었다.
그러치만 내가 그걸 알고 '아버지, 제가 왜 짐을 지고 가야 하냐'고 하면 더 슬퍼할걸 알기에
계속 내 멋대로 살게 두라며 철없이 굴었다.
나름 애를 쓰는데 취업이 새로이 잘 안되니까 그래서도 그렇게 말한거 같다.
그러다가 외삼촌의 권유로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다. 외삼촌이 공무원이신데 취업에 도움을 주시겠다고 공부를 준비하라고 하셨다.
어릴때 호기로 또는 겁이 많아서 그런건지 가족의 연줄로 들어가면 반드시 탈이 날거라는 그런 고리타분한 생각을 조그만게 뭘안다고 했을까..
그러다가 현실에 부딛히고 너무 추운 현실이어서 하겠다고 했다.
나는 이미 이직을 하면서 다시 집에서 나와 이직한 직장에 다니느라 서울의 고시원에서 살았다.
그간 벌었던 돈은 모두 부모님 몫이라 생각하고 미련없이 내 머릿속에서 지웠다.
못해도 8~9천은 됬을 것이다.
밤에는 시급이 좋다는 서울의 칵테일바.
칠천원 받고 일했고 낮에도 콜센터에서 알바하면서 일했다.
공부를 해야 하니 낮에 하는 콜센터를 관두고 학원을 갔다가 밤에 일하던 칵테일 바가 사장이 바뀌면서 내 시급도 오르고 학원 공부는 그렇게 소홀하게 되고 나는 하필 월급의 맛을 그때 느꼈다.
시험공부보다 와인공부 칵테일 레시피 공부 위스키 공부 와인 에티켓 공부 음악공부
(공부보단 제목하고 이름 외우기...음악은 참 .. 좋더라..;;) 원산지에 유학다녀온 업체 직원들에게 자료 받아서 공부.....난 정말 멍청해서 대학을 안간것 같다... 기억도 안난다 이제..
서울에서 다닌 직장에선 월급도 제때 안나오고 고시원 생활하면서 생활고로 빚만 지고 돈도 없고 공부는 해야겠는데 잠깐 하리라던 알바가 월급 따박따박 들어오니 그냥 직원하겠다고 1년만 다니고 나가야지 한게 3년정도..
사장이 두번 바뀌었는데 그때마다 월급을 올려주고 그렇게 조금만 더 조금만더 하다가 3년..
그런데 사장이 바뀔때마다 이건 뭐 하.. 유행따라 매출이 업다운되니 정통분위기 고수하던 사장들
장사안되 가게 넘기고 분위기 바꾸면 유행지나고 또 가게 넘기고 계속 그렇게 변질...
지금은 함께 일하던 사람들 다들 지금 시집장가 다 잘가있다.
예전이 좋았다고 다들 그런다. 맞다 사람들은 좋았던 시절을 잘 못잊는 것 같다.
어쨌든 나는 가게를 다니면서 계속 투잡을 했다.
이제 가게는 관둬야 할것 같으니 직장을 다니려고 어떻게 해서든 연결해서 다니려고 투잡을 했다.
가게는 곧 관뒀고 회사생활을 계속 했다.
그런데 월급이 나같은 자취생에게는 작은차이가 엄청났다..
정말 빠듯했다. 다시 빚을 지고 집에서 필요하다면 내가 조금 조금씩 보내줬다.
돈 잘벌때는 운동화도 그냥 발이 안맞아도 하루에 두켤레씩 사고 옷도 한달에 4~5번 10~20만원씩
샀고 신발도 구두 운동화 단화 할거 없이 디자인만 맘에 들면 샀다.
그 때 내가 백화점을 다닐 줄 알았다면 거덜났을거다.
다행히 명품은 모르는 순진한 아이였다.
씀씀이도 무시 못한다.
이랬던 나라 돈이 생기면 썼고 생기면 썼다. 뭔가 결핍에 의한 보상심리?!
합리화하는건 알겠는데 암튼 돈 생기면 엄마 드리고 아빠 드리고 나도 쓰고 돈 걱정 안하던
그때가 그리워서 있으면 다 썼다. 모은적도 있다. 그러면 또 집에 일이 터진다. 참 그렇다 인생이.
한 26~7살되었을때 빚이 최고치였다. 그와중에 나좋다고 쫓아다니는애 만났다.
그런데 집착도 있었고 아무리 헤어지자고 해도 그러지말라고 잡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순수하게 좋아하는 마음이었던것 같다. 내가 싫으니 집착이었다.
빚도 많고 직장도 자꾸 변변치않은 계약직만 들어가고 하니 연애할때 자신도 없어졌고
사치부리는것 같았다. 그래서 나를 매일 만나고 싶어하던 그 아이를 그렇게 맘고생 시켰나 보다.
28살..빚이 도저히 줄지 않아 개인회생을 했다. 그래서 변호사사무실 비용만드느라고 또 투잡을 했다. 직장은 계속 다녔다. 직장에서 일만 하고 퇴근하면 항상 회식도 없이 사라락 없어지는 나를
궁금해했던 아이였다.
(저녘에 투잡으로 들어간 곳은 나이 지긋한 분이 조용히 음악틀어주는 작은 커피숍이였다.)
그러다가 내가 먼저 퇴근하는데 수습사원주제에 본인 부장님에게 말하고 나랑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며 퇴근했다고 커피나 한잔 하자고 했다.
커피한잔 하면서 순수한게 마음에 들었지만 또래랑 만나라고 거절했다.
어린사람은 패기가 있다. 나도 많은 나이는 아니었지만 왠지 사회에 나와서 두살이 어린 아직 대학
갓 졸업한 그아이는 철없어 보일만큼 불도저 같았다. 첫경험도 그 아이랑 했다.
(모태솔로는 아닌데..;;)
사랑을 했다. 나만 했다.
나는 투잡을 그만 뒀지만 그래도 만나기 힘들었고 연락이 뜸해지는 그 겪고 싶지 않은 경험을 하며
내가 이별을 고했다.
몇달뒤 내가 잡았고 그아인 잡히지 않았고 또 근 시일내 그아이가 나를 잡고 이번엔 내가 잡히지 않았다.
너무 힘들었다. 뭔가 내가 사랑한 사람이 떠나는 그 기분이..
다들 마찬가지겠지..
내가 좋아서가 아니라 그사람이 좋아서 한 연애였다. 근데 끝났다. 난 안끝났는데 끝났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 또 정말 이런 기분이다.
내가 누굴 만날 수 있을까. 싶었다.
그렇게 직장생활하면서 엄마의 걱정이 늘고 아버지는 은퇴했다.
동생놈은 결혼할 여자가 생겨 돈모으는데 집중 또 집중했다.
갑자기 뜬금없지만 동생은 참 좋은 놈이다. 자기 여자한테 잘 할 것이다. 팔 안으로 좀 굽어봤다.
무튼 29이 되던해..
계약이 끝나고 잠시 백수생활을 하던중 20대 초반에 직장을 같이 다녔던 언니의 꼬임에
언니의 고향인 곳에 놀러 갔었다. 너 열심히 사는데 이틈에 나랑 놀러 가자고. 너무 고마웠다. 그렇게 날 꼬셔줘서..언니는 정말 고마운 사람이다. 늘 칭찬도 쓴소리도 적절하게 참 잘 해주신다.
놀러간 거기서 날 맘에 들어한다고 연락처를 달라고 했다는 사람이 있었단다.
뭐 아무생각 없었다고는 안한다. 설레이는 감정이 기분좋았다. 그래서 연락을 주고 받았었다.
깊게 사귄다는 생각은 좀 크게 하진 않았었다.
나는 그때 잠시 예전에 일했던 가게에서 일을 도와주고 있었다.
엄밀히 말하면 알바비를 받을려고 일을 하고 있었다. 서로 필요하에 하게 됨.
내가 저녘에 너댓시간뿐이지만 알바를 한다해도 상관없다 했고 본인도 가게를 운영해봐서 안다고 힘들지 않냐며 다 안다고 매일 매일 다독여 줬다.
참.. 이 좋은 기억은 참 드럽게 안잊혀 진다..
그냥 따뜻한 말에 속은건지 뭔지 용기를 내고 고맙다고 만나기로 했다.
그리고 친구들에게 나와 만나기로 하고난 뒤 결혼생각이 있다고 얘기 하고 다녔고 장거리 연애를
나는 그렇게 그사람만 믿고 시작을 했다.
나는 형편이 이러해서 결혼준비도 안되어있고 마음도 좀 그렇다..
아버지가 어머니 고생시킨것도 보고 좀 유별난 아버지 성격에 남자도 잘 못믿고 아무리 그래도
여자가 돈한푼 없이 시집을 간다는게 현실이 받아줄까 싶었지만 모든것이 괜찮다고 말이라도
따스하게 했던 사람이었다.
나는 돈에 노예가 되었던 것인가.
돈이 없으니 자존감도 없었고 그사람은 그다지 좋은 조건도 아닌 나를 그저 사랑해줬다.
외모도 어렸을땐 뭐 평타였으나 지금은 그냥 뭐 살도 20살때보다 한 15키로 이상 찐거 같고 얼굴도 변하고 몸매도 변하고 키도 작고 그렇다. 나는 그래도 나름 내가 귀여운 구석은 있다고 생각한다.
내생각이다 ㅎ
아무튼 연애를 하다보니 난 서른이 되었고 한살차이의 그 사람은 한없이 다정하고 따뜻했다.
나를 애지중지 해주었다. 내가 뭐라든 받아 주었었다.
그러다 그사람이 사업적인 일로 (그당시에 다툼도 좀 잦았었다) 바빠졌었고 신경쓸 일이 많아졌었다. 불안해서 울면서 나 불안하다고 하니까 그런생각 하지 말라고 아니라고 안심을 시켜줬었다.
바로 다음날 연락이 또 뜸해지는 그 경험을 하며 내가 서운하다며 헤어지고 싶냐니 그렇다고 했다.
나는 이사람은 내 반려자가 되겠구나 했다..
내세울것 하나 없는 나에게 항상 웃어주던 그사람을 최선을 다해 잘해주고 사랑해줘야겠다
계산없이 어디 미담에 나올지도 모르게 잘 만나야지 했다.
20년 안되게 같이 산 시간이 아쉬우셨던 어머니는 맏딸이 멀리 시집을 갈수도 있다는 생각에 슬퍼하셨지만 니가 그사람이 좋으면 가라고 했다.
그런데 헤어졌다. 어제까지 웃던 사람이 다음날 미안하단 한마디로 끝이 나버렸다. 너무 슬펐다.
6개월 만났나 보다.. 얼굴본건 10번이 안된다. 하지만 매일 같이 하는 통화와 문자메세지로도
사랑은 할 수 있었다.
정말 주변 지인들한테 폐인처럼 나 어쩌냐고 이제.. 무섭다고 하고 다녔다..
기간은 중요치 않은것 같다.
연애가 1달이고 10년이고 결혼생활을 하건 어쩌던 그사람 뱃속까진 모른다.
나는 다 보여줬다.
나도 이런남자 어디서 누가 못알아보고 나에게 왔을까 이런글 적을 줄 알았다.
이런거 끄적일줄은 몰랐다.
그렇게 내 지인들 울고불고 괴롭히고 다니던 어느날 헤어지고 한 서너달 지나고 연락이 왔다.
나는 거절했다. 그러면서도 기다렸다. 안왔다.
잊을만 하니까 연락이 와서 다시 슬픈 이별을 또 했다.
그냥 연락이 와서 받은정도의 마음이 아니었다.
나는 너를 얼만큼 사랑했는지 모른다. 밉지 않다.
그냥 서로 나쁜 소식 들리지 않게 잘 지내자 했다.
하루종일 울었다.
난 객지생활 그렇게 어릴때부터 해도 유리멘탈이긴 해도 그런것 치곤 눈물이 없었다.
그런데 엄청 울었다.
그러면서 또 정신나간채로 서너달이 지났는데 또 전화가 왔다.
이번엔 너무 기뻤다. 또 나에게 너무 적극적이었다. 잊을 수가 없단다.
그래서 얼굴도 한번보고 많은 얘기를 나누고 우는 날 달래고 부딛히고 막말하고 속을 터트리며
할걸 다하고 나니 이사람이 이제 사랑으로 다시 보였다.
그런데...
재회가 쉬운일이 아니더라.. 한 2~3주만에 끝났다.
그사람은 나의 '마음열고 대화하기가 시작되니 버거워 했다.
불안하다는 말을 그만 듣고 싶어했다.
애초에 내가 힘들어 하면 너도 힘들거라고 그걸 어떻게 참을 거냐고 이럴줄 몰랐다고 할거라고
했을때도 처음 만난 그때 처럼 다 괜찮다고 내가 다 감수할거니까 걱정 말라고 했는데
걱정하던일이 현실이 되었다.
나는 그사람이 좋아서 다시 시작 했지만 그사람은 본인이 보고싶어서 나를 다시 만난거 같다..
그래도 그사람의 정말 순백색의 숨어있는 진심을 난 봤고 그게 예뻐서 고맙고 사랑했다.
연하장 보내놨는데 큰일이다.. 헤어지고 그걸 받아보면 내가 얼마나 구질구질 해보일까..
이젠 정말 끝난거 같다..
너무 이상황이 힘들고 무섭고 슬프다..
다른 사람은 생각 안해봤는데..
나는 계약직이 또 끝나간다.
또 누굴 만날 수 있을까. 돈은 모을 수 있을까. 난 결혼 할 수 있을까. 십년뒤 뭐가 되있을까.
그런 막연한 생각만 둥둥 떠다닌다.
가난한 어린시절, 유별난 아버지, 고생하는 엄마, 너무 이른 사회생활, 정말 황무지에 내던져지듯
덩그러니 서있었던 현실이라는 무대, 가족과 친구들 나를 아끼는 사람들의 사랑은 받아 봤지만
그들이 걱정하는 나의 미래.. 나도 걱정된다.. 든든한 내편은 없나보다.. 슬프다 너무..
내가 내자신이 애잔하다... 인생이 끝난건 아니지만 .. 의욕도 없다...
세세하게 감정 하나하나 상황 하나하나 다 적은게 아니라 내가 다시 읽어봐도 내삶을 내가 어떻게 어떤 마음으로 산건지 정말이지 모르겠다.
실수도 많았고 아무생각도 없었던거 같다.. 잘한건 있는지 모르겠다..
아무 이유없이 우울감과 이런 비참함이 한번씩 든다...
단순하게 하나만 생각해야지 .. 나를 사랑하는 엄마를 위해서라도.. 미친듯이 열심히 살아보자..
그런데도 참 잘 안된다..맞아야 되나 ㅋㅋㅋ
인생이란 참 빚이 난다 빚이.
마음에 빚이든 금전적인 빚이든..
31살이다 이제..
여자 나이 서른한살 가진거 하나없지만 그래도 다행인건 내가 주둥이는 부정적이어도
속으로는 희망차고 밝은 미래를 꿈꾸는 긍정적인 면이 있어 늦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자기개발 하고 나를 좀 더 사랑 하면 그때는 오지 않을까 누군가가..
우리 모두 힘든데 서로를 속이고 살지 말았으면 좋겠다..
상처도 주지 말고..
정말 그러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