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은 전근왔으니
아무것도 몰랐던 시간들을 원망하듯
빠르게
이학교의 실세를 파악하기 시작했고
어떤 학생이 공부를 잘하고못하고
어떤학생 집이 잘살고 못살고 등등
학생들 등급을 본인만의잣대에
갖다대기 시작했다.
문제를 틀린 갯수대로
손바닥을 때리셨다.
선생님의잡들이가
시작된것이었다.
난 처음으로 날 이뻐해주시고
관심주신 선생님께 실망을 드렸다는 죄송스러움에 조마조마하고
손이떨리고 심장이뛰고
딱 죽고싶었다.
반 친구들이 맞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입안에 침이 마르기
시작했다.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7개틀린사람나와!
날 향해 소리를 지르셨다.
나혼자뿐이었다 7개는.
목소리는 격앙되어 있었다.
난 선생님 뵐 면목이 없어
고개를 푹 숙이고 걸어나가
손바닥을 내밀었다.
그 순간 형광등을 한번
껐다 켠것처럼 눈이 번쩍이고
고개가 왼쪽으로 틀어질 정도로
그 투박한 남자손으로 내빰을 거칠게 때리셨다.
맞은 오른쪽뺨을 부여잡을새도 없이
그 선생이란 작자는
출석부로 쎄게 내 머리를 때리시고
발로 내정강이를 걷어찼다.
5학년 여자애를 말이다.
큰사랑에 절로 상체를 숙여
정강이를 잡았다.
바로이어 손바닥을 피라며
말씀하시곤
상체를 들어 손바닥을 펼치니
내 손바닥을 향해
있는힘껏 사랑의매 일곱대를
내리치셨다.
막 울었다.
눈물이 나는 동시에 반아이들이 보고있다는
현실파악과 챙피함과 수치스러움이
물밀듯 밀려왔다.
5학년3반에서 나만
저렇게 맞은것이었다.
손바닥과 더불어 옵션으로 오른쪽뺨과 내머리를 내드렸다.
지금까지 살면서
선생님께 그렇게 치욕스럽게 맞은건
그전에도 학창시절 내내 그후에도
한번도 없었다.
우리부모님도 날 그렇게 안때리신다.
아 열받는다.
글쓰다보니 열 받는다.
불과 초등학교5학년짜리 여자아이.
그날 인생에서 처음으로 모멸감을
느꼈다.
선생님은 날 다 때리신 후
말씀하셨다.
미.친.년.
나에게 적의를 드러내는 목소리로
또렷히 말씀하셨다.
슬펐다.
아니 챙피했다.
나보고 미x년이란다.
자리로 들어가는
날 향해 혀를 쯧쯧 차시며
의자에 앉을때까지 내모습을
째려보던 그 경멸에
가득찬 눈빛.
너때문에 일이 틀어졌어
라고 내게 말하는거 같았다.
당신이 첫 전근와서 콕 찝어 이뻐한 아이가
공부는 지지리도 못하고
그나마 잘사는집 아이였으면
치맛바람으로 당신이 이익이라도
얻었을테지만 그것도 아니니
얼마나 나에게 배신감을
느꼈겠는가
불행히도 선생님의 바램과 달리
난 그 어느곳에도 해당되지
않았다.
선생님은 짧고 굵은 욕설
한단어로 날 평가했다.
딱 나는 거기까지였다
미.친.년
그이후로 5-3반 1학기내내 담임선생님께
내이름은 미.친.년.이었다
공부하다가도
미x년 칠판지워
미x년 이문제풀어봐
미x년 너네부모님은 널 낳고
미역국은 드셨냐 등
미x년 그 수도없이 미친년을
그 썩어빠질 주댕이로
나불댔다.
특별활동시간이 자습시간으로
바뀌어
엎드려서 쉴사람은 쉬라는 그선생님의 말을 듣고 반전체 학생이
책상에 엎드려있는데
콕 나만찍어 내 자리로 오셔서
내등짝을 후려치시고는
미x년 집에가 그럴꺼면 이라고 하시고
안경을 새로맞춰
안경알을 닦으면
안경알은 왜 닦어 미x년이 정신 산만하게
너까짓게 소풍은 왜가냐며 구박을 하셨고 급식시간엔 식판에
밥 퍼담는것도 아니꼬우셨는지
운좋게 앞자리에서 급식을 타는 날이면
맨 끝줄로 날 다시 자리 교체하시고
그것도 모잘라
돼지같은x 미x년 밥은 쳐먹어서
뭘하냐며 폭언을 하기 일쑤였다.
하 쓰는데도 괴롭다.
지금 딱 떠오르는건
이정도뿐인데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을것이다.
당연히 보는 눈 이 많았다
친구들도 언제나 미x년이란 소릴
달고 사는 내가 처음엔 불쌍해보였을지
몰라도 시간이 흐르니
친구들도 그 선생이란작자와 같이
날 부를땐 이름대신 주로
야 미x년
이라고 불렀다.
여학생들은
나와 짝궁하기 싫다며
나에게 냄새가 난다며
멋낸다며 촌스럽다며
더럽다며
날 그들의 대화와 놀이에
껴주지않으며
남학생들은 날향해 지우개와공책
공을 던지기 일쑤였고
내신발을 쓰레기매몰장에 버리질않나
내책가방에 지네들이 씹던껌을
붙여놓으며
가만있는 날 향해 물을 들이붓거나
다리를 걸어 넘어트리기 일쑤였다.
참 유치했다.
차라리유치해서 다행이었다.
난그때마다 울었다.
아무것도 할 수없어
이렇게 무기력하게 당하는
내가 싫어서
우는거라도 맘 편하게 울고 싶어
펑펑 울었다.
난 더 주눅들어가고
혼자있는 시간도 많아졌다.
혼자가 차라리 편하다라는걸
그나이에 느낄줄이야.
쓰레기통 당번도 항상
나였다.
쓰레기는 쓰레기통이 제일
잘 어울린다고 하더라
어느 위대하신 선생작자께서.
5학년3반에서
난 왕따였다.
왕따주동자는
5학년3반에서
유일하게 성인이었던
단 한사람
담임이란작자.
내생각이 틀렸다고
말하지마라.
쪽지시험문제 7개 틀린것치곤
그 댓가는 너무 가혹했다.
난 지금에서야 후회한다.
부모님께 말해볼껄
난 너무아팠다.
몸도마음도ㅠㅠ
내가 아프니 부모님이 아시면
안될거같았다.
왠지 혼날거 같았다.
내가 잘못해서
그 많은 질책을 받았다고
그어린나이에도 스스로 자책했나보다.
그렇게 아픈시간이가니
나에게도 휴식이 오더라.
방학 다가오기 몇일 전
부모님면담이 있어서
엄마께서 학교에 오셨다.
난 엄마오는게 싫어서
오지마라고 했지만
지금와서 말하지만
난 솔직히
내 초라한 학교생활을
엄마에게 보여드리고싶지않았다.
그래도 아무리 무딘 엄마라도 한번은 담임선생님을
봐야한다는 엄마의말을
거역할 수 없었다.
그날 선생님의 날 향한
가식적인 행동과 말 그 눈빛
난 잊을 수 가 없다.
엄마앞에선
날 마치 자신의친딸인냥
무릎에 앉히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애정어린눈빛과 달콤한칭찬을
보내왔다.
구역질이 나올거같고
온몸이 파르르 떨리며
눈물이 나오기 시작했다.
아마 설움이 복받쳤나보다.
나의모습에 적잖이 당황하신
우리엄마는 왜 그러냐며
날 타박하기 시작했고
선생이란작자는
그저 엄마께
너무 걱정 말라며 본인이
잘 달래겠다며
엄마를 안도시키고 있었다.
그렇게 그날이 지나갔다.
그 후 학교에서 방학을
하였고
지옥같은 학교를 가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만으로
너무 기뻤다.
방학내내 열심히 학원다니며
공부를 시작했다.
누가 시킨것도 아닌데
마음속에 화가 치밀어올라
그나이에 내가
할 수 있는건 공부밖에 없었다.
꿈만같던 방학이 끝나고
2학기가 시작되었다
두려움과모멸감속에
왕따생활이 반복될꺼란
불안감속에서
학교를 갔다.
하지만
내예상과는 달랐다.
확실히 엄마가 학교에
방문한 이후로
더이상 나에겐
선생님의 폭력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님 본인이 느꼈거나.
그렇다고 학기초처럼
대해주시지도 않았고
엄한트집을 잡고
혼내시지도 않았다.
그렇게 날 있는듯 없는듯
무관심이란 말이 맞겠다.
터치를 안하셨다.
시험을 잘봐
점수가 잘나와도
나만빼고 칭찬하거나
반 전체 단합 기합을 받을때도
다른학생들과 똑같이받았다.
추후에 추과되는 날 향한
개인적인 폭언과 폭행은
더이상 이루어지지 않았다.
내인사도 받지 아니하며
수업시간에 딴짓을 해도
내쪽은 쳐다보시지도
않으셨다.
난 그야말로 없는 사람이었다.
편했다 오히려 참 편했다.
고마웠다.
친구들도 선생님이 안그러시니
본인들도 귀찮아서인지
나와 가까이하지도 않았지만
1학기때처럼 괴롭히지않았다.
이제라도 날 놔주시는구나
안도하며
5학년 2학기를 끝맺음했다.
그렇게 6학년이 됐고
그후로 복도에서 선생님을 봬도
나또한 인사를 안하고
지나쳤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입학하여
내자신을 바꿔보려 무던히
애를 썼다.
다시 초등학교5학년시절로
돌아가기싫어
집에서 매일 웃는걸 연습하며
친구들과의관계에서도
좀 더 적극적으로 다가가고
학교에서
학생이란 이유로 주눅들지않기위해
선생님들께 하고싶은 말 은 하고싶어
미리 연습장에 필기해가며
말하는 연습을 해가며
사람눈도 피하기 싫어
키우던 강아지를 앞에다 앉혀놓고
눈마주치기 연습도 했었다.
중학교땐 교장선생님과도
친하게 지내어
점심시간이나 하교 후
교장실에 들어가 교장선생님과
면담아닌면담도 자주 하며
그렇게 평범한 학생시절을
보냈다.
난 지금도
욕중에 미x년이란 말을 제일 싫어한다.아니 그욕만 들으면
머리에서 발끝까지 소름이 돋는다.
차라리 나한테 다른욕을 하라고 한다.
더 심한말로 욕해도 되니
그 욕만은 피해달라고
친구들과 싸움하면서도
몇번이나 양해를 구할 정도였다.
나처럼 친구가 아닌
선생님에게 왕따를 당해
아픈상처로 초등학교시절을
보낸 사람이 과연 몇명이나 되나 싶다.
내가 그 선생님의
욕심에 차지못한 학생인 건 죄송하다.
그렇지만 난 거짓말로 선생님을
속인적도 없었다.
우리집이 잘산다고 과대포장을 하지도 않았고
공부를 잘한다며 친구들에게
으시댄적은 더더욱 없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선생님의 착각으로 시작해
나에게 마음을줬던 그 시간들을
애써 부정하고 싶어서
선생님은 선생님자신을 그리고 나를
괴롭혔던 것 같다.
정말이지
저런 거지같은인격을 가진 선생님이
더이상 없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이글을 썼다.
누구한테도 말하지못한
가슴 속 깊이 묻어두었던
어릴적 처음으로 겪었던
모멸감 수치심을
여기 네이트판에
꺼내어본다.
잊었겠지..잊었다
내자신을 다독이고
위로하면서도
한번씩 선생님과 학생 문제가
세간에 떠돌면
어김없이 그시절의 내가 생각나
먹먹해진다.
선생님 밥은 넘어갑니까?
핸폰이라 띄어쓰기 이해해주십시오.
편하게 내맘을 전하고파
말이 짧고 글의문맥이 안맞아도
너그러이 읽어주십쇼
난원래 공부도 좀이아니라 많이못하고
집안이 그닥 부유하지도 않은
내성적인 반면 꾸미는걸 좋아해
은근 멋은 내고 ^다니는
교우사이에서도 있는듯없는듯
마치 요즘말로 병풍마냥
평범하디 평범한
그런학생이었다.
부모님도 학교와는
친하시지 않은 분 들이고
나또한 뭐하나 특출나게
뛰어난 아이도 아니었고
매학년마다 선생님들의 관심과는
동 떨어진 학생이었다.
초등학교5학년
새학기가 시작되고
다른학교에서
전근오신 선생님께서
담임이 되셨다.
그 선생님은 반배정 첫날부터
나에게 묘한 관심을 내비췄다.
내이름을 친근하게 불러주거나
심부름은 항상 나를 시키며
등교시 선생님께서
교탁에 앉아있다 교실에 들어오는
나를 따로 불러 팔 벌려 안아주시고 반겨주시곤
아침밥,날씨에 의한 몸상태등 안부를 물어봐주시고
점심시간엔 날 본인의옆에
앉혀서 점심을 먹게 하였다.
처음엔 이런관심이 부담스러웠지만
그래도 내심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초등학교시절 선생님의
관심 따뜻한눈빛 마다할 학생이 어디있겠는가?
더더군다나 이런적은 처음이라
나도 닫혔던 맘을 서서히
열어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5학년이 된지
3월 끝자락 중..
그날도 어김없이 학교가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문방구에 들려 친구들과 나눠먹을 약간의군것질거리를
사들고는 교실로 향했다
교실문을 열어보니
아침자습시간이었고
칠판엔 수학문제들이 써져있었다.
쪽지시험의문제였던것이다.
난 첫글에 나왔다시피
공부를 좀이아니라 많이 잘하지못하는 학생이었다.
열문제중 내가 풀고 맞은문제의 갯수는
단 세문제.
아마 이때부터였던거 같다.
자신의 미숙함을 책망한냥
학생들 평가에 나서기 시작했다.
본인은 전근왔으니
아무것도 몰랐던 시간들을 원망하듯
빠르게
이학교의 실세를 파악하기 시작했고
어떤 학생이 공부를 잘하고못하고
어떤학생 집이 잘살고 못살고 등등
학생들 등급을 본인만의잣대에
갖다대기 시작했다.
문제를 틀린 갯수대로
손바닥을 때리셨다.
선생님의잡들이가
시작된것이었다.
난 처음으로 날 이뻐해주시고
관심주신 선생님께 실망을 드렸다는 죄송스러움에 조마조마하고
손이떨리고 심장이뛰고
딱 죽고싶었다.
반 친구들이 맞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입안에 침이 마르기
시작했다.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7개틀린사람나와!
날 향해 소리를 지르셨다.
나혼자뿐이었다 7개는.
목소리는 격앙되어 있었다.
난 선생님 뵐 면목이 없어
고개를 푹 숙이고 걸어나가
손바닥을 내밀었다.
그 순간 형광등을 한번
껐다 켠것처럼 눈이 번쩍이고
고개가 왼쪽으로 틀어질 정도로
그 투박한 남자손으로 내빰을 거칠게 때리셨다.
맞은 오른쪽뺨을 부여잡을새도 없이
그 선생이란 작자는
출석부로 쎄게 내 머리를 때리시고
발로 내정강이를 걷어찼다.
5학년 여자애를 말이다.
큰사랑에 절로 상체를 숙여
정강이를 잡았다.
바로이어 손바닥을 피라며
말씀하시곤
상체를 들어 손바닥을 펼치니
내 손바닥을 향해
있는힘껏 사랑의매 일곱대를
내리치셨다.
막 울었다.
눈물이 나는 동시에 반아이들이 보고있다는
현실파악과 챙피함과 수치스러움이
물밀듯 밀려왔다.
5학년3반에서 나만
저렇게 맞은것이었다.
손바닥과 더불어 옵션으로 오른쪽뺨과 내머리를 내드렸다.
지금까지 살면서
선생님께 그렇게 치욕스럽게 맞은건
그전에도 학창시절 내내 그후에도
한번도 없었다.
우리부모님도 날 그렇게 안때리신다.
아 열받는다.
글쓰다보니 열 받는다.
불과 초등학교5학년짜리 여자아이.
그날 인생에서 처음으로 모멸감을
느꼈다.
선생님은 날 다 때리신 후
말씀하셨다.
미.친.년.
나에게 적의를 드러내는 목소리로
또렷히 말씀하셨다.
슬펐다.
아니 챙피했다.
나보고 미x년이란다.
자리로 들어가는
날 향해 혀를 쯧쯧 차시며
의자에 앉을때까지 내모습을
째려보던 그 경멸에
가득찬 눈빛.
너때문에 일이 틀어졌어
라고 내게 말하는거 같았다.
당신이 첫 전근와서 콕 찝어 이뻐한 아이가
공부는 지지리도 못하고
그나마 잘사는집 아이였으면
치맛바람으로 당신이 이익이라도
얻었을테지만 그것도 아니니
얼마나 나에게 배신감을
느꼈겠는가
불행히도 선생님의 바램과 달리
난 그 어느곳에도 해당되지
않았다.
선생님은 짧고 굵은 욕설
한단어로 날 평가했다.
딱 나는 거기까지였다
미.친.년
그이후로 5-3반 1학기내내 담임선생님께
내이름은 미.친.년.이었다
공부하다가도
미x년 칠판지워
미x년 이문제풀어봐
미x년 너네부모님은 널 낳고
미역국은 드셨냐 등
미x년 그 수도없이 미친년을
그 썩어빠질 주댕이로
나불댔다.
특별활동시간이 자습시간으로
바뀌어
엎드려서 쉴사람은 쉬라는 그선생님의 말을 듣고 반전체 학생이
책상에 엎드려있는데
콕 나만찍어 내 자리로 오셔서
내등짝을 후려치시고는
미x년 집에가 그럴꺼면 이라고 하시고
안경을 새로맞춰
안경알을 닦으면
안경알은 왜 닦어 미x년이 정신 산만하게
너까짓게 소풍은 왜가냐며 구박을 하셨고 급식시간엔 식판에
밥 퍼담는것도 아니꼬우셨는지
운좋게 앞자리에서 급식을 타는 날이면
맨 끝줄로 날 다시 자리 교체하시고
그것도 모잘라
돼지같은x 미x년 밥은 쳐먹어서
뭘하냐며 폭언을 하기 일쑤였다.
하 쓰는데도 괴롭다.
지금 딱 떠오르는건
이정도뿐인데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을것이다.
당연히 보는 눈 이 많았다
친구들도 언제나 미x년이란 소릴
달고 사는 내가 처음엔 불쌍해보였을지
몰라도 시간이 흐르니
친구들도 그 선생이란작자와 같이
날 부를땐 이름대신 주로
야 미x년
이라고 불렀다.
여학생들은
나와 짝궁하기 싫다며
나에게 냄새가 난다며
멋낸다며 촌스럽다며
더럽다며
날 그들의 대화와 놀이에
껴주지않으며
남학생들은 날향해 지우개와공책
공을 던지기 일쑤였고
내신발을 쓰레기매몰장에 버리질않나
내책가방에 지네들이 씹던껌을
붙여놓으며
가만있는 날 향해 물을 들이붓거나
다리를 걸어 넘어트리기 일쑤였다.
참 유치했다.
차라리유치해서 다행이었다.
난그때마다 울었다.
아무것도 할 수없어
이렇게 무기력하게 당하는
내가 싫어서
우는거라도 맘 편하게 울고 싶어
펑펑 울었다.
난 더 주눅들어가고
혼자있는 시간도 많아졌다.
혼자가 차라리 편하다라는걸
그나이에 느낄줄이야.
쓰레기통 당번도 항상
나였다.
쓰레기는 쓰레기통이 제일
잘 어울린다고 하더라
어느 위대하신 선생작자께서.
5학년3반에서
난 왕따였다.
왕따주동자는
5학년3반에서
유일하게 성인이었던
단 한사람
담임이란작자.
내생각이 틀렸다고
말하지마라.
쪽지시험문제 7개 틀린것치곤
그 댓가는 너무 가혹했다.
난 지금에서야 후회한다.
부모님께 말해볼껄
난 너무아팠다.
몸도마음도ㅠㅠ
내가 아프니 부모님이 아시면
안될거같았다.
왠지 혼날거 같았다.
내가 잘못해서
그 많은 질책을 받았다고
그어린나이에도 스스로 자책했나보다.
그렇게 아픈시간이가니
나에게도 휴식이 오더라.
방학 다가오기 몇일 전
부모님면담이 있어서
엄마께서 학교에 오셨다.
난 엄마오는게 싫어서
오지마라고 했지만
지금와서 말하지만
난 솔직히
내 초라한 학교생활을
엄마에게 보여드리고싶지않았다.
그래도 아무리 무딘 엄마라도 한번은 담임선생님을
봐야한다는 엄마의말을
거역할 수 없었다.
그날 선생님의 날 향한
가식적인 행동과 말 그 눈빛
난 잊을 수 가 없다.
엄마앞에선
날 마치 자신의친딸인냥
무릎에 앉히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애정어린눈빛과 달콤한칭찬을
보내왔다.
구역질이 나올거같고
온몸이 파르르 떨리며
눈물이 나오기 시작했다.
아마 설움이 복받쳤나보다.
나의모습에 적잖이 당황하신
우리엄마는 왜 그러냐며
날 타박하기 시작했고
선생이란작자는
그저 엄마께
너무 걱정 말라며 본인이
잘 달래겠다며
엄마를 안도시키고 있었다.
그렇게 그날이 지나갔다.
그 후 학교에서 방학을
하였고
지옥같은 학교를 가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만으로
너무 기뻤다.
방학내내 열심히 학원다니며
공부를 시작했다.
누가 시킨것도 아닌데
마음속에 화가 치밀어올라
그나이에 내가
할 수 있는건 공부밖에 없었다.
꿈만같던 방학이 끝나고
2학기가 시작되었다
두려움과모멸감속에
왕따생활이 반복될꺼란
불안감속에서
학교를 갔다.
하지만
내예상과는 달랐다.
확실히 엄마가 학교에
방문한 이후로
더이상 나에겐
선생님의 폭력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님 본인이 느꼈거나.
그렇다고 학기초처럼
대해주시지도 않았고
엄한트집을 잡고
혼내시지도 않았다.
그렇게 날 있는듯 없는듯
무관심이란 말이 맞겠다.
터치를 안하셨다.
시험을 잘봐
점수가 잘나와도
나만빼고 칭찬하거나
반 전체 단합 기합을 받을때도
다른학생들과 똑같이받았다.
추후에 추과되는 날 향한
개인적인 폭언과 폭행은
더이상 이루어지지 않았다.
내인사도 받지 아니하며
수업시간에 딴짓을 해도
내쪽은 쳐다보시지도
않으셨다.
난 그야말로 없는 사람이었다.
편했다 오히려 참 편했다.
고마웠다.
친구들도 선생님이 안그러시니
본인들도 귀찮아서인지
나와 가까이하지도 않았지만
1학기때처럼 괴롭히지않았다.
이제라도 날 놔주시는구나
안도하며
5학년 2학기를 끝맺음했다.
그렇게 6학년이 됐고
그후로 복도에서 선생님을 봬도
나또한 인사를 안하고
지나쳤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입학하여
내자신을 바꿔보려 무던히
애를 썼다.
다시 초등학교5학년시절로
돌아가기싫어
집에서 매일 웃는걸 연습하며
친구들과의관계에서도
좀 더 적극적으로 다가가고
학교에서
학생이란 이유로 주눅들지않기위해
선생님들께 하고싶은 말 은 하고싶어
미리 연습장에 필기해가며
말하는 연습을 해가며
사람눈도 피하기 싫어
키우던 강아지를 앞에다 앉혀놓고
눈마주치기 연습도 했었다.
중학교땐 교장선생님과도
친하게 지내어
점심시간이나 하교 후
교장실에 들어가 교장선생님과
면담아닌면담도 자주 하며
그렇게 평범한 학생시절을
보냈다.
난 지금도
욕중에 미x년이란 말을 제일 싫어한다.아니 그욕만 들으면
머리에서 발끝까지 소름이 돋는다.
차라리 나한테 다른욕을 하라고 한다.
더 심한말로 욕해도 되니
그 욕만은 피해달라고
친구들과 싸움하면서도
몇번이나 양해를 구할 정도였다.
나처럼 친구가 아닌
선생님에게 왕따를 당해
아픈상처로 초등학교시절을
보낸 사람이 과연 몇명이나 되나 싶다.
내가 그 선생님의
욕심에 차지못한 학생인 건 죄송하다.
그렇지만 난 거짓말로 선생님을
속인적도 없었다.
우리집이 잘산다고 과대포장을 하지도 않았고
공부를 잘한다며 친구들에게
으시댄적은 더더욱 없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선생님의 착각으로 시작해
나에게 마음을줬던 그 시간들을
애써 부정하고 싶어서
선생님은 선생님자신을 그리고 나를
괴롭혔던 것 같다.
정말이지
저런 거지같은인격을 가진 선생님이
더이상 없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이글을 썼다.
누구한테도 말하지못한
가슴 속 깊이 묻어두었던
어릴적 처음으로 겪었던
모멸감 수치심을
여기 네이트판에
꺼내어본다.
잊었겠지..잊었다
내자신을 다독이고
위로하면서도
한번씩 선생님과 학생 문제가
세간에 떠돌면
어김없이 그시절의 내가 생각나
먹먹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