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돌아가지 않으려는 노력

skp2016.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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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가 서로에게 원했던 것들.
이를테면 이성친구와의 연락을 경계했던 일.
헤어진 후 너는 헤어짐을 만끽이라도 하듯 나를 알기 전으로 돌아갔고, 나도 자유를 실감해보기라도 하듯 네가 싫어하던 이성친구를 만났다. 
너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연락조차 조심스러웠던 그 친구를.

아껴아껴 치킨 한 마리를 시켜 먹었던 우리.
특별한 날이 아니면 술을 마시지 않던 우리.
그나마 더 특별한 날엔 와인을 마셨던 우리.
와인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너.

헤어졌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헤어졌구나. 왜?' 라며 연락을 준 친구.
그 가슴을 후벼파는 질문에 
이제는 이별을 실감하기라도 하는 듯
'너에게는 미안해. 나 술도 끊었어. 
너와 연락을 하기 싫었어.
그 애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거든' 
지난 고백인 척. 이제는 우리의 사랑을 털어낸 척 얘기했다.
그 고백에‎ 친구는
'많이 좋아했나 보다. 이해해.'
'술 사줄게 나와' 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며
약속을 미뤄놓고 
너를 만날 때와 달라지지 않으려고 며칠을 노력했다.
너를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며칠을 그대로 있었다.
며칠새 달라져버린 널 보고도
이제는 내가 어느누굴 만나도 신경쓰지 않을듯한 널 보고도
나는 쉽사리 전과 같을 수는 없더라.

헤어진 후 또 한 번의 다툼.
못 견디게 화가나고
못 견디게 이질적인 너의 모습에
보란듯 친구를 만났다.
애써 죄책감을 묻어두고 만났다.
떨쳐지지 않는 네 잔해로 망설이는 마음을
처음이라 그런 거야 하며 스스로를 토닥이고.

'와인을 좋아하게 됐어'라는 나의 말에 
호탕하게 자신도 와인이 잘 맞는 거 같다며 데려간 곳에서
우리가 같이 마셨던 그 와인을 난 고른다. 
아무렇지 않게.
너와 함께라면 고르지 않았을 와인을
너에게 부담이 될까 망설였을 가격의 와인.
와인을 따라놓고 홀짝홀짝 거리며 슬펐다.‎

가진 돈을 모아 모아  
2만원이 채 안되는 음식을 먹으며 행복해하던 내가‎
편의점의 값싼 와인도 너와 함께여서 좋았던 내가
날 위로한다며 적지 않은 돈을 아까워하지 않는 그 친구의 모습이, 그때 우리의 소박함을 어리둥절하게 하는 그 술값이 미치도록 슬펐다. 
나에게 다 해주고 싶다고 울던 네가 떠올라, 
아무것도 해주지 않아도 된다고 덩달아 울던 내가 떠올라.

뒤늦게라도 자리를 박차고 너에게 가고 싶었다.
잘못된 결정이었다고 미안하다고 안겨 용서를 구하고 싶었다.

'널 위해 신년 상여금은 다 쓰려고. 괜찮아 마음껏 마셔.' 하던 친구의 말이. 아무렇지 않게 두 병쯤 더 주문하던 그 모습이
미치도록 쓰렸다. 
너는 이친구 보다 나를 더 위했음에도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어서.
더 많은 것을 해 줄 사람들이 
내 주위에 있을 거라는 것을 알아서. 
얼마나 아팠을까.‎
해주고 싶은 마음을 무척이라도 이해하는 나를 보며
네가 아닌‎ 다른 사람이라면
부담 없이 좀 더 많을 것을 누릴지도 모른다는 마음에
얼마나 속상했을까.
가슴이 미어지는 기분.

알고 있었다 너의 말을 통해.
이 친구, 아마 날 좋아했었다. 
만나지 말아야 했다.
술기운을 빌어 물었다.
아니길 바라며.
죄책감을 비우려.
너 나 좋아했었구나라는 농담 섞인 물음에
빙그레 웃고 이내‎ '사랑은 아니고, 좋은 감정. 
널 보면 대부분의 남자들이 느낄 거야. 
너는 호감을 사는 요소가 많은 아이잖아' 라며 
너스레를 떠는 친구.
별일이냐는 듯 말하는 친구.
그저 호의였다고 생각했던 지난 나를 꾸짓듯.
'거봐, 내 말이 맞지?'라고 네가 내게 말하는 듯.

네가 아닌 다른 사람. 
나를 오랜 기간 좋아했었다고 주저 없이 말하는 사람.
싫었다. 마음이 폭삭하고 주저앉았다. 
지금 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냐는 물음만이 머릿속을 맴맴
괜한 반항심에 잘못을 저질렀다는 미안함만이 머릿속을 맴맴

그 친구. 
다시는 만나지 말아야겠다.
네가 아닌 다른 사람을 만난다는 죄책감이 모두 소진될 때까지만이라도. 
다시는 만나지 못하겠다.
너를 간직한 내 마음이 백지장이 되기 전까지만이라도.

너무 아파서.
잊기 싫어서.
너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서.‎
다른 사람의 보살핌이 네게 아직은 죄스러워서.‎
날 위해 모두 다 해주고 싶어 했던 네가 나는 소중해서

만나지 말아야겠다. 그 친구.
네가 아닌 나를 위해.
여전히 너를 간직하는 날 위해.‎
너를 간직하는 나를 사랑하는 날 위해.

내가 괜찮으니 너도 괜찮아도 돼 라며
나만 생각하던 그때의 날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