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할머니와 아이 그리고 나

행복한고생길2016.01.05
조회15,795
11월초에 지방으로 내려가기전엔 고민이 참 많았었네요. 예전글을 읽어보니 딱 두달전이었는데 지금과는 너무도 다른 상황이었네요. 거의 절망적이었던, 아무런 방법도 못찾고 고민과 방황만 하다가 마지막기회라 생각하고 모든 사람 반대에도 억지로 고집부려 애 데리고 지방내려가는 불행한 엄마였던 같아요.

결론부터 말씀드린다면 애 데리고 지방으로 내려갔던건 백번천번 참으로 잘한 일이었어요. 둘이서 24시간 단 1분도 떨어진적 없이 얼굴 맞대고 코 맞대고 하루종일 책보고 뛰어놀고 밥먹고 과자먹고 씻고 놀러나가고 잠자고... 다른 엄마들 쭉 해오던 평범한 일상이 저한텐 참으로 특별한 날들이었어요.

딸한테 사랑을 줄수 있을만큼 아낌없이 줬어요. 식구 모두가 우리애는 뽀뽀, 포옹을 싫어하는 아이라고만 생각했지 그것에 익숙하지 않은 아이였다는건 몰랐어요. 잘때 곰인형 토끼인형 애벌레를 다 찾아 안기에 인형을 좋아해서라 생각했지 애정결핍이라고는 생각지 못했어요. 엄마아빠 헤어질때 웃으면서 보내주는걸 의연하다 생각했지 포기었다는것도 전 몰랐어요...

둘이서 두달가까이 찰싹 붙어있던 어느날부터인가 더는 인형을 안찾더라구요. 어느날 자기전 처음으로 제 얼굴을 만지작거리더니 정확히 제 입술에 뽀뽀를 하더니 금세 잠들더라구요. 딸한테서 첨으로 받아본 뽀뽀였는데 저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나왔어요. 그후로 뽀뽀는 우리 둘의 일상이 되었네요~^^ 인젠 잘 안겨있기도 해요.언제부터인가 놀다가 저한테 와서 한참 안겨있다가 또 놀다가 또 와서 안기고.. 애고사리같은 손으로 제 목을 감싸안는 느낌 참 행복하네요.

거의 두달간 냄비를 몇번 태웠는지 모르겠어요. 반찬하는데 책들고 와서 놀아달라하면 책 읽어주다가 태우고 잠깐 안아주다가 또 태우고.. ㅎㅎ 남편이 퇴근해서 오늘은 무얼 태웠냐고 물어볼 정도였어요.

저 며칠전 다시 시댁에 돌아왔어요. 아이는 할머니가 키웠던 아이답게 잘 때 다시 할머니를 찾더라구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마음이 거짓말처럼 하나도 아프지 않았어요. 되려 두사람이 알콩달콩 뭐라뭐라 하는 모습이 너무 보기좋았어요. 딸애는 할머니와 엄마 두사람 다 옆에 있다는것이 그렇게 좋나봐요. 오늘밤도 둘 다 옆에 눕혀놓고 '엄마(한테)가자, 할머니가자'하면서 둘사이에서 왔다갔다 하더니 코 잠드네요. 할머니와 전 어이없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여 그때마다 웃으면서 '자 인젠 할매타임!''자 인젠 엄마차례!'하면서 번갈아가며 이야기해주고 노래불러주고 엉덩이 토닥거려주며 재워주었네요.

쓰다보니 드라마같네요. 근데 진짜로 이렇게 잘 지내고 있어요. 워낙 화목한 집안이다보니 애앞에서 다투거나 애를 큰소리로 혼내거나 야단친적 없는 그런 분위기에요. 더더구나 떨어져있는 한달반, 할머니는 그동안 육아에 지쳐 피곤하셨던 몸과 마음을 추스렸고 요가도 하시고 친정도 다니시면서 쉬는 시간을 가지셨어요. 또 도련님이 해외파견근무 나가시면서 더는 새벽 다섯시에 일어나서 아침밥을 안하셔도 되고, 제가 애와 지방 다녀온 이후부터 아이가 할머니한테 찰싹 붙어있지 않고 시장도 자유롭게 다녀오실수가 있어 심적으로 부담감도 적어지셨구요. 우리 모녀는 둘이 부둥켜안고 아침늦게까지 퍼져 자다가 어머님이 들어오셔서 '우리 두 강아지야! 이제 일어나자'하면 그때에야 부스스 일어나서 거실로 나가요. 딸애는 방실방실 웃으며 할아버지 찾아가 허리굽혀 인사하네요.

그전에도 사랑했겠지만 지금은 또다른 사랑인것 같아요. 오늘 할머니랑 같이 유아원 맛보기로 다녀오더니 저한테 꼭 안겨서 떨어지려 안하더라구요. 그리고 제 얼굴을 자기쪽으로 돌려 두 눈을 빤히 쳐다보다가 한참이나 지나서 '엄마 좋다'하네요~ '엄마가 많이 보고싶었구나'했더니 정말 진지한 눈빛으로' 네' 하고 대답하더니 저를 꼭 껴안네요. 22개월 우리 딸이 이 순간엔 저보다 훨씬 더 사랑할줄 아는 하나의 성숙한 인격체로 보였어요.

둘째가 곧 태어나요. 그동안 딸한테 수없이 아기때 이야기 들려주고 찌찌와 배를 만져보게 하고 아기때엔 우유와 쮸쮸만 먹을수 있다고, 동생도 너 애기때처럼 과자도 배도 생선도 밥도 먹을수가 없다고 얘기했더니 인젠 배에 뽀뽀하면서' 동생! 엄마 쮸쮸 냠냠이여! 먹어!'하네요. ㅋㅋ 물론 마음이야 엄마쮸쮸 먹는게 내키기야 하겠나요. 그래도 말만이라도 그렇게 해주니 기특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해요.

항상 너도 애기다 너도 애기다. 동생이 태어나도 넌 여전히 애기다를 되뇌고있어요. 작은 애 보면서 딸래미를 큰애 취급하게 될까봐, 아직 한시간은 재워줘야 잠이 드는 딸한테 '저기 가서 자'라는 말을 하게 될까봐, 수많은 첫애들의 상처를 곱씹으며 '너한텐 절대로 그런 상처 안줄꺼야..'를 맹세하고 있습니다. 할머니와도 계속하여 이야기를 나누면서 '넌 누나니깐...'이란 말은 일체 안하기로 했고 모든건 큰애 위주로 하기로 했습니다.

애한테도 틈만 나면 동생이 태어나면 누워서 응가하고 누워서 쉬하고 누워서 우유나 쮸쮸먹는데 말할줄 몰라서 울기만 할꺼야~ 그럼 우리딸 엄청 답답할걸? 하면서 동생에 대한 대화를 나누고 있어요. 22개월이지만 제가 하는 말은 다 이해하고 있어서 '엄마딸 애기때 우유 쮸쮸 먹었쪄, 배 못머까까 못머 사탕 못머 감 못머...'하면서 조잘조잘 대답도 하구요.

준비는 거의 되어가고 있지만 아직 조리원고비가 남았네요. 엄마가 동생이 뱃속에서 나오려 하면 병원에 가서 의사선생님께 꺼내달라고 해야 한다고, 그럼 열밤 집에 못온다고. 이야기는 하고있지만 그 기간을 과연 잘 이겨낼수 있을까요? 어머님 말씀은 집에서 산후도우미를 부르려 해도 딸애가 방문을 못닫게 하면 갓난애가 감기걸리도 쉽고 저도 더이상 애기 안낳을건데 몸조리도 시원찮게 하면 평생 병치례할꺼 아니냐면서, 조리원 2주 채우고 나오라 하시네요. 사실 딸애가 하루종일 '엄마 같이 가자'하며 저를 집안 여기저기 달고 다니긴 해요. 눈딱 감고 2주 채우고 나올까 아님 걍 실밥 풀때까지 1주일만 있고 나올까 고민이지만 그때가서 상황봐야 알수 있을것 같네요.

쓰고보니 긴 후기 남겼네요 ㅎㅎ 딸을 많이 사랑하게 됐어요.두달전에 느꼈던 서먹함과 어려움이 인젠 죄다 사랑으로 바뀐것 같아요. 그 상황 그대로 둘째 낳았더라면 진짜 큰일났을꺼에요. 전 영낙없이 큰애 차별하는 엄마가 되었을거에요. 딸과 저 사이의 벽이 허물어지면서 믿음과 사랑이 생겼고 그것으로 우린 새가족입성이라는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해갈꺼에요. 언젠가 시간이 지난 뒤 첫째 둘째가 사이좋게 잘 지내는 후기도 올릴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때 쓴소리 아낌없이 해주셨던 첫째님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모두들 행복한 2016년도를 맞이하셨기를 바랍니다.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