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기다리는 사람들(3)

외사랑2004.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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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경리과 안은 난로를 켜두었지만 썰렁하기 그지 없었다.

서너명의 직원들이 서류철을 끄적이다가  김 용구씨가 들어서자 힐끔 눈인사를 하고는 다시

자기일에 몰두를 하고 있었다.  용구씨는 안쪽의 이홍기 과장에게 다가갔다.

그제서야 이 홍기 과장은 그에게 아는체를 하며 자리를 권했다.

" 아 어서 오세요 김 용구 주임님 "

" 퇴직금 관계로 왔습니다 과장님 "

용구씨는 마치 잘못한 아이처럼 쭈빗거리며 이 과장에게 말을 건넸다.

" 퇴직금은 며칠 안으로 송금이 될 겁니다 그리고 명세서는 집으로 우송이 될거구요"

" 네 고맙습니다 그런데 들어 오다 보니까 공장이 모두 쉬는 것 같아요? "

" 이 곳은 이제 끝 났어요 "

" 그럼? "

" 여기는 문을 닫고 이제 중국으로 이전 합니다 "

"  ........ "

" 그 쪽이 여기보다 인건비나 사업하기가 좋으니까 모두 그쪽으로 가는 추세 아닙니까? "

" 그럼 과장님도 ?"

" 저 라고 별 수 있습니까 . 딴데 일 자리 알아 보고 있습니다만 "

이 홍기 과장의 말은 힘이 없이 들려 왔다 .

김 용구씨는 사무실을 나왔다. 공장 마당엔 기계들과 자재들이  주인을 잃은채 썰렁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용구씨는 자기가 늘 만지던 기계 앞에 섰다

싸늘히 식어버린 기계는 마치 자신의 죽어버린 시신을 만지는 것 같았다.

스무해가 넘게 이곳에서 함께 했던 지난 날이 머릿속을 스치었다.

용구씨는 다시 한번 더 운전대에 손을 잡고 쓰다듬었다.

바람은 천막을 흔들며 지나가고 있었다. 마당의 마른 가지도 흔들며 지나가고 있었다.

12월의 햇살은 유난히 짧게 느껴졌다.

쇠락한 태양은 안타까운 몸부림으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 놓고 있었지만 거리는 차가운 바람으로

태양을 비웃고 있었다

공장을 나온 김 용구씨는 그냥 걸었다.

낙엽 하나가 허공을 맴돌다 빙돌아 땅바닥에 쳐 박혀 버렸다. 그 놈은 이미 떨어져 뒹구는 다른

낙엽속에 파묻혔다.

용구씨는 그 낙엽들을 애써 밟지 않으려하며 발을 옮겼다.

" 내년 봄엔 이 나무들도 또 다른 새순을 돋우고 잎사귀를 피워서 저 햇살을 마음것 탐하겠지 "

" 계절이 바뀌고 자연의 순리는 흘러도 저 낙엽은 올 해의 낙엽일 뿐 아닌가? "

" 한껏 생을 빛내던 그 모든 것이  순간이었다면 ? "

" 내게도 그런 날이 있었나? " 용구씨는 갑자기 외로움이 밀려옴을 느꼈다.

머리카락이 햇살에 하얗게 부셔진다.

 

김 용구씨는 며칠전에 보아 두었던 <ㄷ> 동의 아파트 공사 현장을 찾아 갔다

찌를듯 하늘을 이고 섰는 건물들은 아직 제 옷을 입지 못해 칙칙한 색깔로 서 있었다.

기계음이 여기 저기서 울리고 자재를 실은 차량으로 분주하고 시끄러웠다.

" 어떻게 오셨수? "

하얀 안전모를 쓴 늙으수레한 영감이 물었다.

까만 얼굴에 꺼칠은 피부지만 눈만이 반짝이는 얼굴이었다.

"네~ 여기서 일을 좀 하고 싶어서 왔습니다만 "

" 무슨 기술이라도 있소? "

위 아래를 훓어 보던 그는 그렇게 되물었다.

"건축일은 아는게 없지만 전엔 기계 깍는 일이랑 전기계통 일을 조금 합니다만 "

" 여기서는 그런 일이 필요 없을텐데요"

"무엇이든 시켜만 주시면 열심히 할 수 있습니다 "

용구씨는 그렇게 애원하다시피 말을 하였다.

 영감은  커피를 한 잔을 권 하였다. 그리고는 자판기에서 커피 한 잔을 뽑아 주었다.

" 나이도 많이 드신것 같은데 여기 일거리가 있을지 모르겠오"

" 허드레 일이라도 있으면 ......"

" 조금 있으면 작업반장이 오니까 한 번 알아 보시우 "

" 예  고맙습니다 "

영감은 말을 이었다

" 요즘은 경기 때문에 일이 없기도 하지만 이제 겨울이 되면 더 일감이 없을텐데 "

 " 그러게 말입니다 "

" 없는 사람이 더 힘든거 아니우? "

" 영감님은 여기서 무슨 일을 하십니까? .

" 나야 여기서 경비도 보고 쓰레기도 치우고 온갖 지저분한 일들을 한다오 "

" 연세가 들어 보이시는데 힘들지는 않으세요? "

" 허허허 집에 있어 보니 며느리 눈치나 보이고 마누라는  나 싫다고 먼저 가고 무슨 낙이

있기나 하겠오? "

영감의 표정에 쓸쓸함이 스쳐 지나갔다.

" 그러니 여기가 내 행복을 찾는 곳이기도 하다오 참 ~~ 허허허 "

똑같은 바람이라도 샹데리아 반짝이는 백화점 빌딩사이의 그리 춥지 않게 느껴지지만

공사장 을시년스러운 건물 사이로 부는 바람은 등골이 시리게 느겨지는건 무슨 이유일까?

다른 곳 보다 더 일찍 어둠이 내리는 것 같았다.

그때 영감이 누군가를 불렀다.

" 이봐~~ 태문이 총각 "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그림자가 비췄다

" 작업반장 어디 있나?"

 " 예 곧 가십니다"

몇 사람이 작업을 끝내고 돌아 오느 것 같았다.

그런데 그중에 한 사람의 모습은  눈에 익은 사람이었다.

" 어 !  너는 태문이 아니냐? "

" 아니 아버지~~ 여기 왠 일 이세요? "

태문은 무척이나 몰라는 모습이었다.

김 용구씨도 놀라기는 매일반이었다

" 아니 부자 상봉이 여기서 이뤄지나? 허허허"

영감이 웃었다

용구씨는 아들의 어깨를 안았다

" 네가 여기서 일 하고 있는 줄 몰랐구나 미안하다 "

" 대체 어찌 된 일이냐? 네가 "

잡고 있는 아들의 손으로 뜨거운 열기가 전해졌다.

" 아버님 가시면서 말씀 드릴께요"

태문은 용구씨를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어둠을 가르고 서있는 건물 사이로  그믐달이 삐죽이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