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님 옷을 다 벗으시죠?

하얀손2008.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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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나는 각 지방문화축제 행사장을 찾아 돌아다니다 보니 얼굴이 까맣게 타버렸다. 어제는 경상북도 안동 하회에 탈춤축제를 다녀왔고, 오늘은 충남 공주 부여의 백제문화축제에 참석하게 될 것이다. 가을이 되니, 한국은 축제의 장이 많이 열린다. 한성백제문화제를 비롯하여 광진구에서 아차산 고구려축제도 있다. 나를 잘 알고 계신 사람들은 눈치채고 있겠지만, 나는 축제에 단순한 관광객 차원의 참석은 결코 아니다. 작품에 필요한 영상 자료를 얻기 위한 것인데, 나의 미니홈피에 그 사진 및 영상 자료를 모두 올려놓는 것에 한계를 느낀다.


미니홈피에 나의 사진과 영상을 올려놓는 시간과 노력이 만만치 않다. 그럼에도, 틈틈이 내가 올리는 글과 사진 그리고 영상물을 아껴주시는 분들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 물론 창작을 위한 결정적 사진과 영상물은 비공개로 보관하고 있다. 그렇다고 너무 서운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 나는 여름에 부지런히 먹이를 모아 두어야만 겨우살이를 하는 개미와 같기 때문이다. 아직 내가 젊었을 때 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대화하고, 여행을 통한 각종 경험이 나의 먹이 감이다. 누가 흰머리 성성한 사람을 기꺼이 반겨주고 대화하고 보듬어 줄 것인가? 내 인생의 여름이 물러가기까지 부지런히 먹이를 모아서 인생의 가을과 겨울에 하나씩 꺼내어 깎고 다듬을 예정인 것도 많다.


최근 나의 작품이 나오지 않고, 팔자 좋게 여행만 한다고 걱정하는 분들이 있다. 그러나 절대 걱정하지 않기를 바란다. 속된 말로 정희찬은 예술을 빼면 시체다. 누군가는 작가들이 가만히 앉아 편안히 시나 소설을 쓰고 예술 작품 만든다고 착각을 한다. 천만의 말씀이고 오해이다. 온갖 고난과 역경 때로는 모욕과 굴욕을 참아가며 글을 쓰고 사진 및 영상물을 만들기도 한다. 더러는 협박과 죽음의 위협도 받는 경우가 있다. 물론 아름답고 기쁜 사연도 있지만 가슴 아픈 사연에 눈물을 쏟기도 한다. 이런 말도 해야 할 지 잠시 망설여지지만 정말 비용도 많이 들어간다.


그 중에 내가 가장 힘들어 하는 것은 편견과 오해 그리고 무지의 싸움이다. 예술 창작을 상식적인 생각 및 일반적인 법률이나 윤리적 차원의 울타리 안에 넣으려 하거나, 마치 나를 성직자로 오해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나는 결코 상식적 울타리에 머물 수 없고 성직자도 아니다. 나는 오랫동안 인생철학을 깎고 다듬어 확고한 신념 위에 예술적으로 표현하려는 사람이다. 어째서, 평범한 삶이 아니고 예술적 삶을 살아가느냐고 되묻는다면, 바로 나의 철학이 그 중심에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당신의 철학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바로 인간다운 삶의 구현이라고 말하고 싶다.


또 인간다운 삶이 무엇이냐고 반문이 예상된다. 인간다운 삶이란 인위적인 일체의 것으로부터 자유로운 생각과 평화 그리고 행복한 낙원 세계의 동경을 잃어버리지 않는 삶이다. 우리들은 온갖 제도와 규범 속에서 순수한 인간의 본성을 잊어버리고 살아가고 있다. 일상생활에 매몰되어 그것이 옳은지 그렇지 않은지 조차 성찰하지 않는 굳어버린 의식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나는 예술적 창작을 하는 과정에서 일반인들이 다소 납득하기 어려운 것들이 많을 수 있다. 하지만 나의 예술을 이해하고 사랑해 주고 격려해 주는 분들도 있다. 때로는 그들도 상식을 벗어던지고 나의 예술세계에 기꺼이 동참해 주기도 한다.


어제는 나와 친분이 있는 교회 목사님과 동부인해서 산행에 올랐다. (참고로 나는 교인은 아니다. 스님이나 무속인과도 친분이 있음을 밝힌다.) 어쨌건 목사님과 사모님이 사진을 찍기 위해 운동복 차림으로 꽃 앞에서 섰다. 그런데 꽃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옷차림이었다. 목사님이 사모님께 “당신 운동복 벗고 사진 찍는 것이 좋겠어요.”라고 말하자 사모님이 주섬주섬 운동복을 벗는다. 나는 카메라를 들고 목사님과 사모님을 향해 외쳤다. “사모님, 아예 옷을 다 벗으시죠!” 목사님과 사모님이 함빡 웃으셨다. 찰칵, 순간 나는 셔터를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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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깨달음의 시간과 공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