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20대 초반의 룸살롱 아가씨다. 지금은 강남의 10% 룸살롱에서 일하고 있지만, 나의 화류계 입문은 강남에서가 아닌 강북 구의동 먹자골목에서 시작되었다.
때는 고등학교3학년 여름방학이었다. 난 실업계 고등학교를 나왔다. 남들은 수능준비에 정신없이 허벅지에 땀차가며 공부하고 있었지만 난 수시모집으로 일찍 대학에 합격하고 취업준비도 맞춰놓았기 때문에 할일 없이 어머니 일을 도우며 심심한 여름을 보내고 있었다.
실업계고등학생은 3학년 1학기가 끝나고 졸업작품이나 정해진 과제들을 마치면 취업이 인정되기 때문에 취업으로 할 일 없는 백수가 되거나, 진짜 취업을 해서 미래에 관한 준비로 열심히 일하는 학생들도 있다.
그 당시,난 가취업으로 모든 조각을 맞추고 놀고 있었다. 웬만한 친구들은 수능준비를 늦은 취업준비로 정신없었기에 난 같이 놀 친구 몇 없이 상당히 무료했다.
처녀가 애를 낳아도 이유가 있듯이 내가 그 나이에 화류계에 입문하게 된 이유가 있었다. 우리학교는 실업계에 어울리지않게 여학생들 두발규정이 귀밑 3센치였다. 두발 단속 한번 나오면 뒷담에 떡지게 발라논 구리스에 온몸이 범벅되는 한이 있더라도 일단 도망가고 봤다. 싹둑싹둑 잘리는 머리에 어린 가슴이 무너지는 학생들이 너무나 많았다...
난 중학교를 졸업할 때 긴 생머리를 휘날리는 여고생의 헤어스타일을 기대했다.
그렇지만 이게 웬일!!
고등학교 입학식날 내려온 공지문엔 귀밑 3센치라는 조항이 있었다. 아이, 18, 18, 18, 18
내가 가발을 사랑하게 된 이유는 고등학교 입학..그때부터였다. 더운 여름날 같은 입장(?)의 친구와 동대문 쇼핑을 하다 가발 하나를 보았다. 윤기나는 생머리에 찰랑찰랑 탄력까지..그 가발가게에서 제일 비싼 가발 이라는데 인모에 가공을해서 파마,염색 모두가능하고 오래토록 머리결이 손상되지않는다는 그 가발의 가격은 50만원 이었다.
단지 우린 그 이유뿐이었다... 난 그 가발을 갖고 싶은 욕심으로... 절친한 친구는 프라다 가방 욕심으로...(그 당시 프라다 백팩의 인기는 최고였다)
우린 딱 그것만 사기로, 다신 이런일 하지않을거란 약속과 함께 인터넷으로 어린 학생들 유혹하는 보도실장을 만났다.
두근두근두근...떨리는 가슴안고 구의동으로 향했다.
나이를 속여야 하는지 알았는데 보도실장이란 놈은 뻔뻔한건지.. 아니면 다 그런건지... 날 보자마자 한말은 ' 몇 학년?',몇 학년이야?
더욱 황당한거...3학년이란 나의 대답에 보도실장 말 '너네가 제일 언니다!' +.+!! 어리버리 차안 동생(?)아가씨들과 인사를 나누고..
잠시후..보도실장의 전화에 불이 나면서 우리가 차를 타고 내린 곳은 xx비지니스 클럽 내 친구와 난 가슴 졸이며 룸에 들어갔다.
그때 나의 초짜티가 제대로 난건, 난 룸에선 유니폼을 주는지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날 보자마자 웨이타의 말은 '치마갈아입으세요!'
난 바지를 입고 있었던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사장,마담, 웨이터의 눈치 먹으며
처음 보는 아줌마(마담)한테 꽃무늬치마 하나를 빌려 입고 테이블을 들어갔다. 웬 아저씨들이 술에 젖어서 정신을 못 차린다.
한참을 술에 젖은 내 파트너를 관찰하다 보게 된 광경은 다른 아가씨들이 그 비싼 양주를 얼음통에 부어버리는 장면…
술에 뭐가 잘못 들어가서 버리는지 알았다 ㅋ 정신 못차리는 파트너를 눕혀놓고 한 두시간을 관찰하고 난 5만원을 받았다.
알고보니 보도실장이란 놈이 만원을 가져가더군. 뭣도 모르고 괜시리 기분 나빴다. 첫테이블을 어리버리하게 끝내고 차 안에 앉아있었는데 다른 테이블을 들어가란다.
근데 난 정신이 멍~한게 내가 뉴스보도에서 자주보던 유흥업소 미성년자 고용의 주인공이 됐다는 사실에 새삼 움찔 할 수 밖에 없었다.
치마도 없고 기분도 이상해서 테이블을 사양했더니 이 보도실장이라는 사람이 나한테 추근거린다.
자기랑 술 한잔하면 5만원을 주겠다고. 난 어이없고 괜시리 기분이 나빠서 보도란 일을 바로 그만두고 첫 테이블을 들어갔던 가게로 가서 지정 아가씨를 하게 되었다.
그렇게 나의 화류계 인생은 시작됐다. 가발 하나 때문에 그런 짓을 하냐라고 질타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 나에게 가발은 ‘꿈’이자 ‘희망’이었다. 어린 소녀에게 여성스런 아름다움은 보물보다 더 소중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느 한 소녀의 화류계 입문기,,,
지금은 강남의 10% 룸살롱에서 일하고 있지만,
나의 화류계 입문은 강남에서가 아닌 강북 구의동 먹자골목에서 시작되었다.
때는 고등학교3학년 여름방학이었다. 난 실업계 고등학교를 나왔다. 남들은 수능준비에 정신없이 허벅지에 땀차가며 공부하고 있었지만 난 수시모집으로 일찍 대학에 합격하고 취업준비도 맞춰놓았기 때문에 할일 없이 어머니 일을 도우며 심심한 여름을 보내고 있었다.
실업계고등학생은 3학년 1학기가 끝나고 졸업작품이나 정해진 과제들을 마치면 취업이 인정되기 때문에 취업으로 할 일 없는 백수가 되거나, 진짜 취업을 해서 미래에 관한 준비로 열심히 일하는 학생들도 있다.
그 당시,난 가취업으로 모든 조각을 맞추고 놀고 있었다. 웬만한 친구들은 수능준비를 늦은 취업준비로 정신없었기에 난 같이 놀 친구 몇 없이 상당히 무료했다.
처녀가 애를 낳아도 이유가 있듯이 내가 그 나이에 화류계에 입문하게 된 이유가 있었다. 우리학교는 실업계에 어울리지않게 여학생들 두발규정이 귀밑 3센치였다. 두발 단속 한번 나오면 뒷담에 떡지게 발라논 구리스에 온몸이 범벅되는 한이 있더라도 일단 도망가고 봤다. 싹둑싹둑 잘리는 머리에 어린 가슴이 무너지는 학생들이 너무나 많았다...
난 중학교를 졸업할 때 긴 생머리를 휘날리는 여고생의 헤어스타일을 기대했다.
그렇지만 이게 웬일!!
고등학교 입학식날 내려온 공지문엔 귀밑 3센치라는 조항이 있었다.
아이, 18, 18, 18, 18
내가 가발을 사랑하게 된 이유는 고등학교 입학..그때부터였다.
더운 여름날 같은 입장(?)의 친구와 동대문 쇼핑을 하다 가발 하나를 보았다.
윤기나는 생머리에 찰랑찰랑 탄력까지..그 가발가게에서 제일 비싼 가발 이라는데
인모에 가공을해서 파마,염색 모두가능하고 오래토록 머리결이 손상되지않는다는 그 가발의 가격은 50만원 이었다.
단지 우린 그 이유뿐이었다... 난 그 가발을 갖고 싶은 욕심으로...
절친한 친구는 프라다 가방 욕심으로...(그 당시 프라다 백팩의 인기는 최고였다)
우린 딱 그것만 사기로, 다신 이런일 하지않을거란 약속과 함께 인터넷으로 어린 학생들 유혹하는 보도실장을 만났다.
두근두근두근...떨리는 가슴안고 구의동으로 향했다.
나이를 속여야 하는지 알았는데 보도실장이란 놈은 뻔뻔한건지.. 아니면 다 그런건지...
날 보자마자 한말은 ' 몇 학년?',몇 학년이야?
더욱 황당한거...3학년이란 나의 대답에 보도실장 말 '너네가 제일 언니다!' +.+!!
어리버리 차안 동생(?)아가씨들과 인사를 나누고..
잠시후..보도실장의 전화에 불이 나면서 우리가 차를 타고 내린 곳은 xx비지니스 클럽
내 친구와 난 가슴 졸이며 룸에 들어갔다.
그때 나의 초짜티가 제대로 난건, 난 룸에선 유니폼을 주는지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날 보자마자 웨이타의 말은 '치마갈아입으세요!'
난 바지를 입고 있었던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사장,마담, 웨이터의 눈치 먹으며
처음 보는 아줌마(마담)한테 꽃무늬치마 하나를 빌려 입고 테이블을 들어갔다.
웬 아저씨들이 술에 젖어서 정신을 못 차린다.
한참을 술에 젖은 내 파트너를 관찰하다 보게 된 광경은 다른 아가씨들이 그 비싼
양주를 얼음통에 부어버리는 장면…
술에 뭐가 잘못 들어가서 버리는지 알았다 ㅋ 정신 못차리는 파트너를 눕혀놓고 한 두시간을 관찰하고 난 5만원을 받았다.
알고보니 보도실장이란 놈이 만원을 가져가더군. 뭣도 모르고 괜시리 기분 나빴다. 첫테이블을 어리버리하게 끝내고 차 안에 앉아있었는데 다른 테이블을 들어가란다.
근데 난 정신이 멍~한게 내가 뉴스보도에서 자주보던 유흥업소 미성년자 고용의 주인공이 됐다는 사실에 새삼 움찔 할 수 밖에 없었다.
치마도 없고 기분도 이상해서 테이블을 사양했더니 이 보도실장이라는 사람이 나한테 추근거린다.
자기랑 술 한잔하면 5만원을 주겠다고. 난 어이없고 괜시리 기분이 나빠서 보도란 일을 바로 그만두고 첫 테이블을 들어갔던 가게로 가서 지정 아가씨를 하게 되었다.
그렇게 나의 화류계 인생은 시작됐다. 가발 하나 때문에 그런 짓을 하냐라고 질타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 나에게 가발은 ‘꿈’이자 ‘희망’이었다. 어린 소녀에게 여성스런 아름다움은 보물보다 더 소중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고이 간직하고 있는 그 가발만 보면 쓴웃음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