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의 산세는 백두산장군봉에서 발원한 백두대간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백두대간의 시작인 백두산과 가까운 북한지역은 남쪽에 비해 산이 많고 지형이 험하다. 이것은 한반도 5대 명산(백두산, 묘향산, 금강산, 지리산, 구월산)으로 불리는 산 중 4개가 북쪽에 위치하고 있음을 보아도 알 수 있다. 많은 산과 험한 지형은 오랜세월 동안 북쪽 이민족들의 침입을 막는데 이로운 천연의 성벽이기도 했지만 강한 세력과 숨어 싸워야 했던 이들에게는 요새로 이용되기도 하였다. 황해남도 구월산줄기와 황해북도 언진산줄기는 홍길동과 함께 조선시대 3대 대도둑으로 꼽히는 ‘임꺽정’과 ‘장길산’이 근거지로 삼았던 곳. 구월산 일대에는 아직도 그들에 대한 전설을 담고 있는 바위, 고개, 마을이 부지기수다. 일제 강점시기에 이곳은 무장의병들이 터를 잡았고 한국전쟁 시기에는 아군을 괴롭히던 북한 인민군 유격대가 숨어 지내던 곳이기도 하다. 어찌 보자면 험한 산세가 지배체제에 저항하며 의적으로 불리던 도둑무리와 일제에 맞선 의병, 게릴라식 전술을 쓰는 인민군 유격대를 불러들인 것이다.
계급적 성향 반영된 ‘불탄터’‘석당마을’
한 지역의 이름은 지난 사건이나 전설이 구체적으로 반영되는 경우가 많다. 현재의 북한지역은 지명이나 자연물과 관련된 전설 중에 악덕 지주나 부패한 관리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 지명이 유난히 많다. 황해남도 봉천군화촌리 ‘불탄터’라는 마을은 착취당한 주민들이 지주의 집을 불태웠다는 것에서 유래하였고, 황해남도 신천군 산천읍 ‘석당마을’은 주민들이 악독한 지주에게 돌을 던져 돌무덤을 만들었다는 전설을 담고 있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날 수 없듯이 계급과 봉건체제에 대한 부정적인 전설이 많은 데에는 이유가 있다. 황해남북도를 비롯한 현재의 북한지역은 남쪽에 비해 산이 많고 산세가 험하여 중앙정부의 감시와 간섭이 미치기 힘들었다. 이렇게 폐쇄된 환경은 지방 관리와 유지가 결탁한 비리를 유발하였을 것이다. 지배층의 부패로 인해 민초들은 배고픔과 폭정에 시달려 잦은 민란이 일으키게 되고 민란이 조직화되기라도 하면 험한 지형으로 인해 진압하기가 힘이 들었다. 임꺽정과 장길산도 바로 이런 예에 속할 것이다. 오죽하면 황해도 지방은 봉화를 외적의 침입을 알리는 것보다 민란의 정도를 알리는 데에 더 많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이 백성들의 입을 통해 부패한 관리와 못된 부자들에 대한 전설들을 만들게 된 것이 아닐까 싶다.
오랜 세월과 많은 세대를 거치며 하나의 지명이나 자연물에는 여러 전설이 담겨지게 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하나의 마을이 여러 전설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곳이 흔하다. 하지만 현재 북한지역에서 지명을 결정짓는 전설이 되는 것은 결국 계급에 대한 불만이나 저항을 내용으로 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지명 이름에서 이러한 특징이 나타나는 또 하나의 이유는 현재의 북한이 사회주의 체제라는 특성에 기인하고 있지 않을까 한다. 물론 북한정권이 계급투쟁과 사회주의의 정당성을 위해 정책적으로 작은 마을과 바위 하나하나에 담겨있는 전설까지 조작하였다고 하는 것은 무리한 상상일 것이다. 하지만 북한체제의 특성으로 인해 하나의 대상을 두고 여러 전설이 전해진다면 당연 계급 저항적인 전설이 부각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명이 역사적으로 정권적 측면에서 이용된 사례도 있다. 함경북도 은덕군의 본 이름은 경흥군이었다. 본래 공성현이었던 것을 조선 태조 이성계의 아버지 이자춘이 삭방도만호(삭방도 : 경흥군 일대의 고려시대 지명) 겸 병마사를 지낸 것에서 연유해 1437년(세종 19년) ‘경사롭고 흥하라’는 의미의 경흥군으로 바꾸었다. 북한정권 수립 이후 1977년에는 김일성과 김정일의 은덕을 기리기 위해 은덕군으로 개칭되었다. 북한에게 자연물은 자연 이상의 의미와 용도를 갖는다. 대부분의 명산은 그 장엄함과 아름다움으로 사람들에게 경외와 신비의 대상이 된다. 북한은 이러한 명산의 신성함을 김일성 부자 우상화와 체제 선전에 악용하기도 하였다. 백두산의 신성함은 김일성 부자의 우상화를 위한 도구로 주로 사용되었으며 구월산은 계급투쟁과 외세 저항의식의 상징이라는 의미를 부여받고 있다. 지금의 북한정권이 사라진 먼 훗날 새롭게 만들어지게 될 북쪽의 지명과 그 유래는 어떤 것이 있을지 궁금하다. <명종실록> 27권에는 임꺽정에 대한 기록과 함께 이렇게 적고 있다. “도적이 생기는 것은 도적질하기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배고픔과 추위가 절박해서 부득이 도적이 되어 하루라도 연명하려는 자가 많기 때문이다.” 북한에서는 임꺽정과 장길산을 계급적 모순과 봉건체제에 저항한 의적으로 여기고 그들을 만들어낸 조선시대 통치자들을 비판하고 있다. 물론 그런 비판이 일체 틀린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이 애초에 도적질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배고픔 때문이었다. 시대가 달라지고 한반도 북쪽은 사회주의가 비판하던 계급도 해방시켰다지만 북한정권 아래 있는 주민들은 오늘도 굶주리고 있다. 결국 현재의 북한정권은 자신들이 비판하고 있는 봉건왕조와 다를 바 없는 것이다
북한 지역의 지명과 그 유래
북한 지역의 지명과 그 유래
홍길동, 임꺽정, 장길산이 거닐던 북녘땅
한반도의 산세는 백두산 장군봉에서 발원한 백두대간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백두대간의 시작인 백두산과 가까운 북한지역은 남쪽에 비해 산이 많고 지형이 험하다. 이것은 한반도 5대 명산(백두산, 묘향산, 금강산, 지리산, 구월산)으로 불리는 산 중 4개가 북쪽에 위치하고 있음을 보아도 알 수 있다.
많은 산과 험한 지형은 오랜세월 동안 북쪽 이민족들의 침입을 막는데 이로운 천연의 성벽이기도 했지만 강한 세력과 숨어 싸워야 했던 이들에게는 요새로 이용되기도 하였다. 황해남도 구월산줄기와 황해북도 언진산줄기는 홍길동과 함께 조선시대 3대 대도둑으로 꼽히는 ‘임꺽정’과 ‘장길산’이 근거지로 삼았던 곳. 구월산 일대에는 아직도 그들에 대한 전설을 담고 있는 바위, 고개, 마을이 부지기수다. 일제 강점시기에 이곳은 무장의병들이 터를 잡았고 한국전쟁 시기에는 아군을 괴롭히던 북한 인민군 유격대가 숨어 지내던 곳이기도 하다. 어찌 보자면 험한 산세가 지배체제에 저항하며 의적으로 불리던 도둑무리와 일제에 맞선 의병, 게릴라식 전술을 쓰는 인민군 유격대를 불러들인 것이다.
계급적 성향 반영된 ‘불탄터’‘석당마을’
한 지역의 이름은 지난 사건이나 전설이 구체적으로 반영되는 경우가 많다. 현재의 북한지역은 지명이나 자연물과 관련된 전설 중에 악덕 지주나 부패한 관리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 지명이 유난히 많다. 황해남도 봉천군 화촌리 ‘불탄터’라는 마을은 착취당한 주민들이 지주의 집을 불태웠다는 것에서 유래하였고, 황해남도 신천군 산천읍 ‘석당마을’은 주민들이 악독한 지주에게 돌을 던져 돌무덤을 만들었다는 전설을 담고 있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날 수 없듯이 계급과 봉건체제에 대한 부정적인 전설이 많은 데에는 이유가 있다. 황해남북도를 비롯한 현재의 북한지역은 남쪽에 비해 산이 많고 산세가 험하여 중앙정부의 감시와 간섭이 미치기 힘들었다. 이렇게 폐쇄된 환경은 지방 관리와 유지가 결탁한 비리를 유발하였을 것이다. 지배층의 부패로 인해 민초들은 배고픔과 폭정에 시달려 잦은 민란이 일으키게 되고 민란이 조직화되기라도 하면 험한 지형으로 인해 진압하기가 힘이 들었다. 임꺽정과 장길산도 바로 이런 예에 속할 것이다. 오죽하면 황해도 지방은 봉화를 외적의 침입을 알리는 것보다 민란의 정도를 알리는 데에 더 많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이 백성들의 입을 통해 부패한 관리와 못된 부자들에 대한 전설들을 만들게 된 것이 아닐까 싶다.
김일성 부자 은덕 기리기 위한 ‘은덕군’
본래 이름은 ‘경흥군’
오랜 세월과 많은 세대를 거치며 하나의 지명이나 자연물에는 여러 전설이 담겨지게 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하나의 마을이 여러 전설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곳이 흔하다. 하지만 현재 북한지역에서 지명을 결정짓는 전설이 되는 것은 결국 계급에 대한 불만이나 저항을 내용으로 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지명 이름에서 이러한 특징이 나타나는 또 하나의 이유는 현재의 북한이 사회주의 체제라는 특성에 기인하고 있지 않을까 한다. 물론 북한정권이 계급투쟁과 사회주의의 정당성을 위해 정책적으로 작은 마을과 바위 하나하나에 담겨있는 전설까지 조작하였다고 하는 것은 무리한 상상일 것이다. 하지만 북한체제의 특성으로 인해 하나의 대상을 두고 여러 전설이 전해진다면 당연 계급 저항적인 전설이 부각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명이 역사적으로 정권적 측면에서 이용된 사례도 있다. 함경북도 은덕군의 본 이름은 경흥군이었다. 본래 공성현이었던 것을 조선 태조 이성계의 아버지 이자춘이 삭방도만호(삭방도 : 경흥군 일대의 고려시대 지명) 겸 병마사를 지낸 것에서 연유해 1437년(세종 19년) ‘경사롭고 흥하라’는 의미의 경흥군으로 바꾸었다. 북한정권 수립 이후 1977년에는 김일성과 김정일의 은덕을 기리기 위해 은덕군으로 개칭되었다. 북한에게 자연물은 자연 이상의 의미와 용도를 갖는다. 대부분의 명산은 그 장엄함과 아름다움으로 사람들에게 경외와 신비의 대상이 된다. 북한은 이러한 명산의 신성함을 김일성 부자 우상화와 체제 선전에 악용하기도 하였다. 백두산의 신성함은 김일성 부자의 우상화를 위한 도구로 주로 사용되었으며 구월산은 계급투쟁과 외세 저항의식의 상징이라는 의미를 부여받고 있다. 지금의 북한정권이 사라진 먼 훗날 새롭게 만들어지게 될 북쪽의 지명과 그 유래는 어떤 것이 있을지 궁금하다.
<명종실록> 27권에는 임꺽정에 대한 기록과 함께 이렇게 적고 있다. “도적이 생기는 것은 도적질하기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배고픔과 추위가 절박해서 부득이 도적이 되어 하루라도 연명하려는 자가 많기 때문이다.” 북한에서는 임꺽정과 장길산을 계급적 모순과 봉건체제에 저항한 의적으로 여기고 그들을 만들어낸 조선시대 통치자들을 비판하고 있다. 물론 그런 비판이 일체 틀린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이 애초에 도적질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배고픔 때문이었다. 시대가 달라지고 한반도 북쪽은 사회주의가 비판하던 계급도 해방시켰다지만 북한정권 아래 있는 주민들은 오늘도 굶주리고 있다. 결국 현재의 북한정권은 자신들이 비판하고 있는 봉건왕조와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출처 : 네이버 오픈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