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따 주동자가 교원 임용시험에 합격하였습니다.

ㅇㅇㅇㅇ2016.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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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제가 기억나는걸 이야기하듯이 다 써보려고합니다.

  

제가 중학교 2학년때, 아버지께서 퇴직을 하시고 다른 지역에서 가게를 차리시고자 이사를 하게 됐습니다.

온 가족이 이사를 가게 됐고, 전학간 첫날부터 밥을 혼자먹는 어떤 학생과 함께 점심을 먹고서 왕따가 됐습니다. 알고보니 그 학생이 전교에서 왕따를 당하는 학생이었습니다. 그래도 뭐, 친구하나 있는것도 어디야라고 생각하며 지냈습니다. 그냥저냥 우리둘끼리 놀며 지냈습니다.

 

그때까지의 왕따는 학생들의 수근거림이라던가, 비아냥, 둘러쌓여서 인신공격을 받는 것에 그치는 정도였습니다.

 

3학년으로 올라가고(2006년일 것입니다) 같은반에 친구가 1명 생겼습니다.(a라고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친구와 같이 다니면서 점점 학급친구들과도 어울릴 수 있겠구나 하는 희망이 생겼습니다.

학기 초에 짝꿍과 함께 영어수업을 듣고 있었습니다. 사실 그 짝꿍도 다른 지역에서 전학을 온 학생이어서 '친해지면 좋겠다...'하는 기대를 조금 했었습니다. 그 수업시간이 끝나고 쉬는시간에, 제가 그 짝꿍에게 심한 욕을 하였다고 짝꿍이 친구들에게 알렸습니다.(이 짝꿍이 주동자입니다)

그 날 체육시간에 우리반 모든 여자아이들에게 둘러쌓여서 욕을 들어야 했습니다. 맹세코 그런 욕을 한적은 없다라는 제 말을, 아이들 그 누구도 한 번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그때부터 왕따의 정도는 훨씬 심해졌고 폭력이 더해진 왕따를 겪어야 했습니다.

사실 그때 기억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모두 단편적인 기억들입니다.

사물함에 들어있는 책을 망가뜨리거나 찢고 밟길래, 사물함에 자물쇠를 채워놓았습니다. 그 주동자 무리들이 항상 제 사물함을 저 대신 괴롭히지 못해 안달이었지요. 어느날은 사물함 자물쇠와 사물함에 가래침이 흥건해서 도저히 책을 꺼낼 수 없는 날도 있었습니다. 그날은 제가 너무 견디기 힘들어서 부모님께 자퇴시켜달라고 애원을 한 날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급식시간에 음식을 받자마자 제 교복 마이에 식판을 엎으면, 식판을 엎은 학생은 다시 음식을 받아오면 그만이지만, 교복마이는 드라이클리닝을 했어야 했습니다. 물과 휴지정도로 닦아내어도 냄새와 얼룩같은건 지우기 힘들었습니다. 부모님께 걱정을 끼치기 싫어서 추워도 교복마이를 입지 않았습니다.

 

주동자 무리는 저희부모님이 피자집을 운영하시는 것을 알고, 소풍 몇일 전부터 저에게 소풍날 치즈스틱을 인원수만큼 각각 치즈스틱 한박스씩 먹을 수 있게 준비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한 박스에 치즈스틱이 보통 여서일곱조각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일반피자집치즈스틱) 치즈스틱을 준비하지 않으면 저희 부모님께 왕따 사실을 알리거나 부모님을 죽이러가겠다는 등의 협박을 했습니다. 바보같지만 그땐 정말 믿었습니다. 한두명도 아니고 무리가 협박을 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부모님은 새벽 2시에서 3시까지 일을 마치시고 집으로 돌아오셨습니다. 그마저도 장사가 너무 안돼서 매일같이 술집에서 술을 마시고 들어오셨습니다. 그런 부모님께 저는 친구들에게 한턱 쏴야한다며 소풍날 아침까지 치즈스틱을 튀겨달라고 졸랐고, 부모님은 힘든거 모르느냐며 저를 혼내기도 하시고 타이르기도 하셨지만, 저는 막무가내였습니다. 가족을 살려야 했으니까요.

  소풍날 아침에 치즈스틱박스가 쌓여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새벽 6시에 가게로 나가서 소풍 잘다녀오라고 저와 주동자무리들을 위해서 치즈스틱을 튀기셨다는 엄마의 핀잔을 들었습니다. 소풍가는 차안에서 무리들이 먹고있는 치즈스틱을 보아하니 그냥 치즈스틱보다 단가가 더 비싼 햄치즈스틱이더군요. 상자가 잘 닫히지도 않게 그득그득 넣어주신 아빠를 생각하면서 차안에서 울었습니다.

  그때 당시에 저희 집이 정말 피자 하루에 3판 팔리면 많이 팔린 날이어서 내가 부모님께 정말 못할 짓을 했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운동회때는 반 학생들이 제가 서있으면 주먹으로 치고 지나가거나, 국민체조를 하며 선생님들의 시선이 다른곳으로 가있는 틈을 타 저에게 발길질을 하였고. 흙을 제 머리에 뿌리고 눈에 던지는 등의 행동을 해서 운동회가 시작하고 사람들이 어수선할때 사물함에 숨어서 하루종일 보냈던 기억이 납니다.(허리정도오는 사물함 사이즈였습니다. 복도 중간에 사물함들만 모여있는 곳이 있어서 거기에 숨어있으면 조용했어요) 아무도 내가 없는걸 모르니까 그저 시간이 빨리 지나가길 빌었습니다. 

왕따사건 처리 과정 : a의 어머니가 저희 아빠 가게에서 일을 하셨습니다. 하루는 그 친구가 자기엄마에게 울면서 제가 죽을 것 같다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해서 저희 부모님도 사건을 아시고 학교에 찾아오셨습니다.

그때까지도 저희 담임선생님은 제가 아니라 a가 왕따를 당하는걸로 느끼고 계셨다고 합니다. 누군가가 집단 따돌림을 당하고 있는 걸 인지하시고도 아무런 조취를 취하지 않으셨죠.

a도 저랑 논다는 이유로 학생들에게 심하게 괴롭힘을 당하고 힘들어했습니다. 아마 그래서 자기엄마에게 알렸을거예요. 벗어나고싶었을테니까

그때당시 담임선생님이 주동자 엄마의 대학 같은과 선배인가?해서 잘 아는 사이였습니다. 담임선생님께서는 저희 부모님께 그아이는 그럴리 없다며, 공부도 잘하고 모범생이라고 제가 잘못한게 있기 때문에 괴롭힌거 아니냐고 계속 말씀하셨습니다. 나중에 교감선생님과 제가 면담할때도, 그런 욕을 사실은 했는데 안했다고 네가 착각하는거 아니냐는 말도 들어야 했습니다.

 

다른 가해학생들이 제가 심리치료를 받는다는 사실을 알고서는 모두 뉘우치면서 저에게 용서를 구할때도 주동자학생은 끝까지 뉘우치지 않고 끝났습니다.

 

끝난것이라고 하기에도 웃긴게, 제가 전학을 가면서 사건이 종료됐습니다. 저희 부모님께서 저를 살려야겠다는 생각으로 멀리 이사를 가야겠다고 결심하셨고, 가족모두 ☆☆에서 경기도로 이사를 갔습니다.(고속버스로 세시간 반정도 거리)

 

그때까지 저에게 언어폭력은 다른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조별토론같은 시간에는 제가 속해있는 조의 조원들이 반 전체로부터 동정을 받았습니다. 저와 같은 조가 돼서 졸지에 저와 같은 취급을 당할까봐 미안했습니다. a도 다른 조에서는 받아주지 않아서 저와 함께 같은조를 해야 했습니다. 눈물이 터져서 울면 연기한다고 비아냥을 받았고, 학생들에게 툭툭 치이거나 학생들이 저를 지나갈때 주먹으로 등이나 가슴을 치는 일을 반복적으로 겪었습니다.

 

증상 : 나중에는 하교해서 제가 어린 동생에게 소리를 지른다거나 동생을 밀친다거나 하는 등의 폭력적인 행동을 점점 보였고, 동생의 옷을 가위로 자르고, 밤에는 악몽을 꾸고, 이유모를 두통 등으로 학교에 가기 싫어하는 등의 이상한 행동을 보여서 전학을 가기 전까지 심리치료를 받았습니다. 처음 그 학교로 전학을 가서 왕따를 당했을때는, 밖에 나가면 중학생정도로 보이는 모든 학생들을 피해다니는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주동자에 의해서 심각하게 집요해진 왕따를 당하고부터는 거리를 걷는 모든 사람들이 다 저에 대해서 알고, 저를 혐오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제가 착각이겠거니 싶지만, 그때는 심부름을 하러 가다가 거리를 지나던 아줌마와 눈이 마주쳤는데 그 아줌마의 눈빛이 절 혐오스럽게 보는 것 같아서 바로 다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저를 목격했다는 소문이 날까봐 밖에 나갈 수 없었습니다. 동네사람들 모두 저희학교 학생들에게 이야기를 듣고 제가 그 왕따라는 것을 알고, 절 기피하고, 길 한복판에서 저에게 윽박지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그런 생각을 왜 했는지 이해가 안가지만, 그때 그 심정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멈추지를 않고 가슴통을 꽉 조이는 기분입니다.

 

모든 것이 다 죽음이랑 연관지어 생각했던 시기였습니다. 심지어 저 혼자 하는 싸이월드에 제 캐릭터가 있는 방이, 배경은 어두컴컴한 옥상이었고, 캐릭터는 옥상 난간 위에 올라서 곧 자살할것 처럼 뒤돌아있는 그런 모습이었습니다. 처음에 그렇게 꾸밀때는 부모님 몰래 휴대폰결제까지 하며 예쁘게 꾸몄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새로운 친구들과 사귀고 알아차렸습니다. 그렇게 공들여 꾸민 캐릭터가 음울하고 무섭게 보인다는 것을요.

 

지금생각하면, 제가 정말 위험한 선택을 할 수 있었겠구나 싶습니다.

 

사건 이후 : 사실, 전학을 가고서도 어떻게든 친구들에게 밉보이지 않기 위해서 무척이나 애를 썼습니다. 고등학교때까지도 친구들이 물건을 빌려달라고 하면 "고마워"하면서 웃을 정도였습니다. 점차 학교생활도 안정적으로 하고 제 마음도 한결 괜찮아 졌다고 생각했을 때에 왕따에 시달리던 당시 일기를 꺼내서 다시 읽었습니다.

읽고서 속이 안 좋아 다시 찢어서 버렸는데, 긴 글들 중에서 아직도 유일하게 기억나는 구절이 '내가 누군지 나도 모르겠다'입니다. 그 글을 쓸 당시에 담임선생님, 교감선생님, 부모님께서 저에게 네가 정말 욕을 안했니?욕을 했는데, 잘못기억할수도 있잖니, 그렇게 많은 친구들이 네가 한 욕에 대해서 알고 있으니까 네 잘못일수도 있단다. 혹시 네 잘못이 드러날까봐 그런거라면 솔직하게 말해도 다 용서해줄께.라는 말로 저를 계속 설득하셨고, 저는 차라리 내가 욕을 했다고 해버릴까 그럼 다 끝나나 그 욕이 대체 뭐라고 절 이렇게까지 괴롭히나 그 욕 때문에 우리 부모님이 날 낳아준 죄로 주동자무리들에게 창녀소리를 들어야하는 것인가 이런 생각에 미쳐버릴 것 같았습니다.

사건이 끝나고서도 한동안 저희 부모님께서는 저를 무서워하시기도 하고 한없이 불쌍해하시기도 했습니다.

  

사실, 이게 제 기억의 전부입니다. 이 이외에는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정말 기억이 하나도 안납니다. 제가 전학을 가고 나서 다시 그 학생들의 이름을 떠올려보려고 해도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저 사건들 이외의 피해기억도 없습니다.(그저 저 사건들이 저에게 충격적인 사건들 중에 하나였기 때문에 뇌리에 깊게 남아있는 것이지 당한사람의 입장에서는 훨씬 끔찍했습니다.)저에게 남은건, 제가 사람을 대할 때 불필요할 정도로 너무 착한사람행세를 하며 동시에 사람을 무서워한다는 것과, 부모님가슴에 박은 대못입니다. 

시간이 흐르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부모님께서 오랫동안 살아오셨던 ☆☆를 다시 돌아오고 싶어하셨습니다. 이젠 다 괜찮다고 생각하고 저도 그러자고 했습니다. 대학도 이쪽에서 다녔습니다.

   

2011년 1월에서 2월쯤에 대학을 다니며 쓸 용돈을 벌기 위해 유명한 피자집 알바를 했습니다. 그냥 예전에 피자집딸이었으니까 일을 더 잘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하루는 피자를 포장하는데 어떤 모르는 여자가 제 얼굴과 제 명찰을 보고 조심스럽게 ㅇㅇㅇ아니니?물었습니다. 얼굴도 전혀 모르겠고 이름은 당연히 생각 나지않아서 대충 반갑게 아는 척을 했습니다. 그 짧은 시간도 매니저님이 일 안하냐면서 혼내셨습니다. 다시 일을 하고 있는데, 그 친구가 휴대폰번호를 알려달라고 했습니다. 찍어주었습니다. 그러고서 몇일 후에 그 번호로 문자가 왔습니다. 이름을 밝히며 오랜만에 봐서 반가웠다며 잘 지내느냐는 문자였습니다.

 

문자에 적힌 이름을 보고서야 주동자였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소름끼치게 발랄한 문자에 답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문자를 받은 휴대폰도 만지기 싫어서 한동안 휴대폰근처에도 가질 않았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웃긴데 그로부터 얼마후에 휴대폰도 바꿨습니다.(사실 낡아서 바꾸긴해야 했음) 휴대폰을 바꿨는데 나중에 스마트폰을 쓰다 보니 제 번호만 저장돼있어도 카톡에 뜨더군요. 계속 차단을 하고 있다가 2014년 10월쯤에 난 너 아직 용서못했다는 카톡을 보내고 번호를 바꿨습니다.

 

 

 

그런 주동자가 이번 임용시험에서 경기도에 초등특수교사로 합격했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제가 많이 단단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아니었나 봅니다.

 

교원임용시험에서 인성평가 요소가 들어가기는 하는 걸까요?

물론, 그때 당시에 반에서 나름 공부를 잘하던 모범생의 앞날을 위해서 학생기록부에 어떠한 기록도 안남기려고 선생님들께서 노력하셨지요. 덕분에 왕따사건의 주동자학생이 교사가 됐네요.

  

담담하게 쓰려고 노력했지만 저녁에 기사를 보고 새벽 내내 펑펑 울면서 쓴 글입니다. 글이 매끄럽지 못하고 흐름이 이해가 안가는 부분도 있을겁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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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친구의 이야기에요.

친구를 대신해 제가 대신 글을 올립니다.

 

한 사람을 죽도록 괴롭힌 왕따 주동자가 어떻게 학생을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