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하는 것 맞나?글을 '연재'하려니까 어떻게 해야 하나 싶은데 밑에 '이어지는 톡톡'에서 제 글을 선택하면 되는 것이 맞는지 싶어요... 생각 외로, 제 첫 번쨰 글에 좋은 반응 많이 보여주셔서 두 번째 글로 넘어갈게요. 댓글 달아주신 분들 글에 추천 및 댓글 다 달았고요, 다시 한 번 감사드려요. -------------------------------------------------------------------------------
1988년 12월이었습니다, 학교에 갔다가 담임선생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 담임쌤 : " 너 뭐하러 학교 나왔냐?"나 : "???????"(모든 친구들 나하고 선생님을 번갈아 쳐다봄... 상당히 부담스런 눈빛... ㅎㅎ)담임쌤 : "너 이미 이민간다고 학교에 모든 서류가 다 처리되어서 학교 안나와도 돼, 결석 아니야."(모든 친구들 부러움의 눈초리..."학교 안나와도 결석 아니야"라는 부분에서... ㅎㅎ) 그래도 부모님과 저의 선택에 따라 겨울방학식 하는 날까지 나갔네요,그래야 하루라도 더 친구들의 얼굴을 볼 수 있었으니까요. 1학년 때는 남녀합반이었는데 2학년 때는 남자반 여자반 갈려 있었으니 같은 반에 좋아하는 여자친구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제가 잘생겼다거나 돈이 많다거나 하지도 않았으니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것도 아니니 뭐 별다른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요. 잠시 당시 추억...지금 학생들은 잘 모를 건데, 저 때는 교실에 난로를 설치해서 조개탄을 수위실 창고에서 얻어다가 난방을 했었기 때문에 난로 주위가 가장 인기가 좋았고, 창가쪽으로 갈수록 별로...그리고 학생들이 직접 난로에 불을 지폈기 때문에 수업 중 추워지면 "야! 오늘 누가 난로에 불폈냐! 주번이냐? 주번! 불 꺼졌나 봐!"십중팔구 그랬을 겁니다... ㅠㅠ 꺼진 불을 살려보겠다고 입으로 바람 불어넣다가 그나마 있던 불씨마저도 죽여버리고는 서로들 노트를 찢어 옆반, 여학생들 반에 막 가서 난로에서 불을 얻어옵니다, 한 명만 간게 아니라 서너 명이 가서 불을 얻으면 막 뛰어왔지요, 그럼 나머지는 그 옆에서 같이 뛰어다녔죠, 마치 성화봉송주자 옆 들러리들마냥, 그럼 교실에서 기다리던 친구들은 환호성을 지릅니다...난로 위에는 양은도시락통이 잔뜩 쌓여 있지요, 보온도시락통을 가지고 다니던 친구들은 제 반 총 61명 중 열 명이 채 안됐던 것으로 기억이 되는데, 서로 도시락통을 난로 바로 위에 올려놓으려고 경쟁이 일어납니다, 가위바위보를 해서 올려놓기도 하고(그럼 맨 아래 있던 도시락은 누룽지도 생겨서 서로 얻어먹으려고도 했었답니다), 서로 한 시간씩 번갈아 올려놓기도 하고, 급식으로(유료) 나온 S모 우유 종이팩을 난로위에 올려놓아 따뜻하게 덥히기도 하고...창문에 구멍을 내서 연통을 밖으로 빼놓은 곳에 붙여 놓았던 테잎이 떨어져 찬 바람이 들어오면 그것 또 막겠다고 우르르 몰려가서 창틀에 올라서기도 하고... 지금 이런 것들을 기억하는 분들 몇 분이나 계실까요?제가 한국에서의 의무교육을 경험한 것이 이때가 마지막이었으니, 지금 학교들은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지금의 학생들은 이런 추억은 없을 것 같네요.제 기억으로는 1989년부터인가 교복을 다시 입기 시작했었고, 제가 다닌 학교에서 1989년부터 컴퓨터반이 생겨서 컴퓨터가 들어오기 시작했었는데, 저는 손도 못대보고 왔네요...ㅎㅎ 여하튼, 이런저런 기억들이 많아요, 왕따기억, 1년 가까운 시간 동안 세 명의 학생들로부터 대놓고 괴롭힘을 당해서 다른 친구들도 제 편을 들어주기는 했지만 선생님들은 별달리 신경 안써주셨던 기억, 당시 '날라리'로부터 화장실에 불려 끌려갔었던 기억(특히 이 친구가 저하고 되게 친했는데 언젠가부터 그쪽으로 흘러가서...아직도 얼굴이 기억나요, 목소리도. 어떻게 살고 있는지...)좋은 추억이라고는 하기 어렵겠지만 그래도 한국에서의 학창시절?에 대한 기억입니다. 이런저런 기억들, 추억들을 뒤로 하고 방학식 때 그냥 그렇게, 밍숭맹숭하게 집으로 돌아오고... 잘 기억은 안나는데 아마 12월 23일이었던 것 같아요, 당시에는 해외여행이나 이민이 요즘처럼 활발하지는 않았었기 때문이어서 그랬는지 낮이어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김포공항이 꽤나 한산했던 기억입니다. 친할머니께서도 공항에 나오시고(둘 째 아들 가족이 이민간다니까 당신 돌아가시기 전에 못보실까봐, 공항에서 엄청 우셨는데, 철없는 저는 그저 '비행기' 탄다는 것 때문에 싱글벙글...), 또 친인척 여러 분들께서 나오셨죠.어떤 분께서 주셨는지 정확하지는 않은데, 친할머니셨던 것 같아요, 제게 책 두 권을 선물로 주셨는데, 대학교수님들 에세이집 두 권이있고 한 권은 이어령 교수님의 책이었죠, 제목은 기억 안나고... 아마 지금 부모님 살고 계시는 사이판 집에 이 책들이 있지 않나 싶어요. 환송하시는 분들을 뒤로 하고, 사이판에 살고계시다는 먼 친척할머니와 우리 가족, 이렇게 다섯 명은 일본으로 가는 항공편에 올랐습니다.요즘이야 많지만 당시에는 사이판이라는 곳이 그렇게 잘 알려진 곳도 아니고 손님도 많지 않아서 일본 나리따 공항에서 경유하여 갈 수 있었습니다. 일본에 도착했을 때 많은 것은 아니지만 몇 가지가 기억이 나요: 1. 초 6이었던 여동생을 데리고 나리따 공항 내부를 많이도 돌아다녔어요.경유를 위한 공항대기시간이 8시간이었기 때문에 어떻게 하겠어요, 싸돌아다니기라도 해야죠.면세점에 가서 그래도 중 2까지 배운 영어를 가지고 일본인 직원들에게 면세물품 가격'만' 물어보고 다녔습니다, 돈이 어딨어서 샀겠어요, 그냥 가격'만' 물어보고 다녔죠."How much?", "How much is this?" 하니까 일본인들의 그 특유의 상냥한 미소로 얼마라고 영어로 답변해 주면 "Thank you" 하기도 하고 아니면 그냥 씩 웃고 도망치기도 하고... 아마 아이들이 와서 안되는 영어로 이것저것 관심?을 보이니까 나름 귀여웠었나 봅니다. 2. 말씀드린 것 같이 8시간이었습니다, 공항 내 의자에 앉아서 꾸벅꾸벅, 부모님 다리배고 누워서 잠들기도 하고, 위에 쓴 것처럼 돌아다니기도 하고(하, 길을 잃어버리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죠...ㅎㅎ)공항내 식당에서 우동 먹은 것 밖에 기억 안나네요.
일본에서 사이판을 가는 항공편은 일본국적 항공기였던 것 같아요, JAL... 만약 제대로 기억하고 있다면. 아이들이 탔다고 기내에서 선물받은 것이 있는데 거기에 JAL이라고 쓰여 있었거든요, 이때 이후로는 제가 JAL기를 탄 기억이 없기 때문에 그렇다고 믿고 있어요... ㅋㅋ 아... 이 날 이 항공기로 기억하는데 제가 영어를 진짜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ㅠㅠ기내에서 너무 목이 마른거예요, 공항에서 경유대기하느라 8시간을 그러고 있었죠, 우동 먹었죠, 화장실 갔다왔죠, 일본에서 사이판까지 아마 3시간 반 정도 걸리지 않았나 싶은데 너무 목이 말라서 기내승무원에게 부탁을 했어요, "Water, please."헉! 못알아 듣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말했죠,"Water, please."여전히 얼굴표정은 웃고 있었지만 못알아 듣는 것이었습니다...그래서 생각했죠, '혹시 학교에서 영어 배울 때 배운 "A cup of"를 붙이지 않아서 못알아 듣는 것인가?'"A cup of water, please." 딱 제가 사용하고 있는 닉네임과 같은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ㅠㅠㅠㅠㅠㅠㅠ여전히 못알아 듣는 것이었습니다...그러자 제 옆에 앉아계셨던, 주무시는 줄 알았던 친척할머니께서 대신 말씀해 주셨습니다,"Give him a cup of water."그러자 알아듣고 가서 제게 물 한 컵을 갖다 주더군요.'와, 할머니 영어 잘하시네!'"할머니, 나 영어가르쳐 줘요!""그래, 나중에..."(쿨하게 도로 주무심...으로 알았는데 저 주려고 물 갖고 오니 그 승무원에게 당신도 한 컵 달라고... ㅎㅎ) 이렇게 쓰기만 하면 아무도 그 이유를 모르실 겁니다...우리는 아마도 지금도 한국에서는 영어를 '글'로 배우고 있는 지도 모르겠습니다,그 승무원이 알아듣지 못한 이유는 '발음' 때문이었습니다...한국식 발음인 "워터, 플리즈."를 못알아 들은 것이고,제가 착각했던 것처럼 "A cup of..."를 빼먹어서 못알아 들은 것이 아니었습니다...ㅠㅠ
이윽고 사이판 (국제)공항에 도착했습니다.기내에서는 에어컨이 잘 돌고 있었고 공기가 환풍만 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잘 몰랐는데 사이판에 내리니까 '훅!'하더라고요, 아무리 북반구가 겨울철이라 하더라도 사이판은 북회귀선(으로 아는데, 적도에서 북위 15도 사이) 안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사시사철 여름이죠, 날씨가 더웠습니다, 그 더운 공기가 불어오니까 순간 그런 느낌이 들더라고요.
사진을 다시 찾아보니... 15도 안이 아니라 살짝 밖이네요, 여하튼 더운건 사실... ㅎㅎ
공항에 서너 시간 잡혀? 있었습니다, 얼마 전에 어떤 걸그룹이 LA 공항에서 '잡혀'있었다고 했었죠? 물론 상황은 달랐습니다만... 저희는 사이판 입국비자를 사이판 공항에서 받기로 하고 김포공항에서 비행기를 탔는데 사이판 공항에 도착하니 비자가 공항이민국에 와 있지 않은 것이었죠, 그래서 그 더운 공항에(에어컨도 안돌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요... ㅍㅍ) 땀 흘리며 앉아 있었습니다.1988년도 겨울은, 이번 겨울은 한국이 상당히 춥지만 보통 별로 안춥잖아요, 당시는 그래도 좀 추웠어요, 그런데 24시간도 안되는 사이에 열대지방에 왔으니 안그랬겠어요...이민국 직원들이 여기저기 연락해 보고 비자가 발급된 것을 확인한 후 입국? 입도(入島)?할 수 있었습니다. 갔더니 할아버지/할머니 댁에 가까운 이웃분 부부가 와 계셨습니다.(그 분들의 도움을 상당히 오랫동안 받았어요, 아버지와 나이차이도 많이 나지 않으셔서 거의 '친구'먹다시피 하셨고...) 도착한 날이... 성탄절 이브였던 것 같은데, 아닌가, 성탄절 새벽이었나... 이렇게 파란만장한 저의 가족의 이민기가 시작되었답니다. (다음을 기약하며... ㅎㅎㅎ 시간이 허락되면 하루에 두세 편을 올릴 수도 있고, 안되면 2, 3일에 한 편 올릴 지도 몰라요) ------------------------------------------------------------------------------- 몇몇 분들은 의심을 하실 수 있어요, 어떻게 그렇게 자세하게 기억하느냐, 대화내용을 포함해서... 제가, 지금은 많이 떨어지지만, 'Picture Memory'라고 하나요, 자신이 본 것을 마치 사진을 찍어놓은 것처럼 기억하는 것...그리고 후에 1997년에 한국에 대학교 역유학 들어갔었을 때도 시험시간에, 강의시간에 교수님께서 어떤 옷을 입고 어떤 톤의 목소리로 어떤 내용을 강의하셨는지가 기억이 나서 강의내용 그대로 시험답안을 쓴 적도 있고요. 물론 날짜가 오래되어서 100% 정확하게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리고 사람들의 얼굴들(보다는 인상에서 풍겨진 느낌)이 비슷한 분들의 그것과 겹쳐서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기억이 나요. 100% 정확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최대한 기억나는 대로 묘사하려고 했구요, 또 그당시 상황이 기억나는 것을 토대로 쓰느라 약간의 '거품'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양해해 주시겠죠?
내 인생 절반 이상의 미국?! 이민자로서의 삶 이야기...2
생각 외로, 제 첫 번쨰 글에 좋은 반응 많이 보여주셔서 두 번째 글로 넘어갈게요.
댓글 달아주신 분들 글에 추천 및 댓글 다 달았고요, 다시 한 번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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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12월이었습니다, 학교에 갔다가 담임선생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
담임쌤 : " 너 뭐하러 학교 나왔냐?"나 : "???????"(모든 친구들 나하고 선생님을 번갈아 쳐다봄... 상당히 부담스런 눈빛... ㅎㅎ)담임쌤 : "너 이미 이민간다고 학교에 모든 서류가 다 처리되어서 학교 안나와도 돼, 결석 아니야."(모든 친구들 부러움의 눈초리..."학교 안나와도 결석 아니야"라는 부분에서... ㅎㅎ)
그래도 부모님과 저의 선택에 따라 겨울방학식 하는 날까지 나갔네요,그래야 하루라도 더 친구들의 얼굴을 볼 수 있었으니까요.
1학년 때는 남녀합반이었는데 2학년 때는 남자반 여자반 갈려 있었으니 같은 반에 좋아하는 여자친구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제가 잘생겼다거나 돈이 많다거나 하지도 않았으니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것도 아니니 뭐 별다른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요.
잠시 당시 추억...지금 학생들은 잘 모를 건데, 저 때는 교실에 난로를 설치해서 조개탄을 수위실 창고에서 얻어다가 난방을 했었기 때문에 난로 주위가 가장 인기가 좋았고, 창가쪽으로 갈수록 별로...그리고 학생들이 직접 난로에 불을 지폈기 때문에 수업 중 추워지면 "야! 오늘 누가 난로에 불폈냐! 주번이냐? 주번! 불 꺼졌나 봐!"십중팔구 그랬을 겁니다... ㅠㅠ 꺼진 불을 살려보겠다고 입으로 바람 불어넣다가 그나마 있던 불씨마저도 죽여버리고는 서로들 노트를 찢어 옆반, 여학생들 반에 막 가서 난로에서 불을 얻어옵니다, 한 명만 간게 아니라 서너 명이 가서 불을 얻으면 막 뛰어왔지요, 그럼 나머지는 그 옆에서 같이 뛰어다녔죠, 마치 성화봉송주자 옆 들러리들마냥, 그럼 교실에서 기다리던 친구들은 환호성을 지릅니다...난로 위에는 양은도시락통이 잔뜩 쌓여 있지요, 보온도시락통을 가지고 다니던 친구들은 제 반 총 61명 중 열 명이 채 안됐던 것으로 기억이 되는데, 서로 도시락통을 난로 바로 위에 올려놓으려고 경쟁이 일어납니다, 가위바위보를 해서 올려놓기도 하고(그럼 맨 아래 있던 도시락은 누룽지도 생겨서 서로 얻어먹으려고도 했었답니다), 서로 한 시간씩 번갈아 올려놓기도 하고, 급식으로(유료) 나온 S모 우유 종이팩을 난로위에 올려놓아 따뜻하게 덥히기도 하고...창문에 구멍을 내서 연통을 밖으로 빼놓은 곳에 붙여 놓았던 테잎이 떨어져 찬 바람이 들어오면 그것 또 막겠다고 우르르 몰려가서 창틀에 올라서기도 하고...
지금 이런 것들을 기억하는 분들 몇 분이나 계실까요?제가 한국에서의 의무교육을 경험한 것이 이때가 마지막이었으니, 지금 학교들은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지금의 학생들은 이런 추억은 없을 것 같네요.제 기억으로는 1989년부터인가 교복을 다시 입기 시작했었고, 제가 다닌 학교에서 1989년부터 컴퓨터반이 생겨서 컴퓨터가 들어오기 시작했었는데, 저는 손도 못대보고 왔네요...ㅎㅎ
여하튼, 이런저런 기억들이 많아요, 왕따기억, 1년 가까운 시간 동안 세 명의 학생들로부터 대놓고 괴롭힘을 당해서 다른 친구들도 제 편을 들어주기는 했지만 선생님들은 별달리 신경 안써주셨던 기억, 당시 '날라리'로부터 화장실에 불려 끌려갔었던 기억(특히 이 친구가 저하고 되게 친했는데 언젠가부터 그쪽으로 흘러가서...아직도 얼굴이 기억나요, 목소리도. 어떻게 살고 있는지...)좋은 추억이라고는 하기 어렵겠지만 그래도 한국에서의 학창시절?에 대한 기억입니다.
이런저런 기억들, 추억들을 뒤로 하고 방학식 때 그냥 그렇게, 밍숭맹숭하게 집으로 돌아오고...
잘 기억은 안나는데 아마 12월 23일이었던 것 같아요, 당시에는 해외여행이나 이민이 요즘처럼 활발하지는 않았었기 때문이어서 그랬는지 낮이어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김포공항이 꽤나 한산했던 기억입니다.
친할머니께서도 공항에 나오시고(둘 째 아들 가족이 이민간다니까 당신 돌아가시기 전에 못보실까봐, 공항에서 엄청 우셨는데, 철없는 저는 그저 '비행기' 탄다는 것 때문에 싱글벙글...), 또 친인척 여러 분들께서 나오셨죠.어떤 분께서 주셨는지 정확하지는 않은데, 친할머니셨던 것 같아요, 제게 책 두 권을 선물로 주셨는데, 대학교수님들 에세이집 두 권이있고 한 권은 이어령 교수님의 책이었죠, 제목은 기억 안나고... 아마 지금 부모님 살고 계시는 사이판 집에 이 책들이 있지 않나 싶어요.
환송하시는 분들을 뒤로 하고, 사이판에 살고계시다는 먼 친척할머니와 우리 가족, 이렇게 다섯 명은 일본으로 가는 항공편에 올랐습니다.요즘이야 많지만 당시에는 사이판이라는 곳이 그렇게 잘 알려진 곳도 아니고 손님도 많지 않아서 일본 나리따 공항에서 경유하여 갈 수 있었습니다.
일본에 도착했을 때 많은 것은 아니지만 몇 가지가 기억이 나요:
1. 초 6이었던 여동생을 데리고 나리따 공항 내부를 많이도 돌아다녔어요.경유를 위한 공항대기시간이 8시간이었기 때문에 어떻게 하겠어요, 싸돌아다니기라도 해야죠.면세점에 가서 그래도 중 2까지 배운 영어를 가지고 일본인 직원들에게 면세물품 가격'만' 물어보고 다녔습니다, 돈이 어딨어서 샀겠어요, 그냥 가격'만' 물어보고 다녔죠."How much?", "How much is this?" 하니까 일본인들의 그 특유의 상냥한 미소로 얼마라고 영어로 답변해 주면 "Thank you" 하기도 하고 아니면 그냥 씩 웃고 도망치기도 하고... 아마 아이들이 와서 안되는 영어로 이것저것 관심?을 보이니까 나름 귀여웠었나 봅니다.
2. 말씀드린 것 같이 8시간이었습니다, 공항 내 의자에 앉아서 꾸벅꾸벅, 부모님 다리배고 누워서 잠들기도 하고, 위에 쓴 것처럼 돌아다니기도 하고(하, 길을 잃어버리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죠...ㅎㅎ)공항내 식당에서 우동 먹은 것 밖에 기억 안나네요.
일본에서 사이판을 가는 항공편은 일본국적 항공기였던 것 같아요, JAL... 만약 제대로 기억하고 있다면. 아이들이 탔다고 기내에서 선물받은 것이 있는데 거기에 JAL이라고 쓰여 있었거든요, 이때 이후로는 제가 JAL기를 탄 기억이 없기 때문에 그렇다고 믿고 있어요... ㅋㅋ
아... 이 날 이 항공기로 기억하는데 제가 영어를 진짜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ㅠㅠ기내에서 너무 목이 마른거예요, 공항에서 경유대기하느라 8시간을 그러고 있었죠, 우동 먹었죠, 화장실 갔다왔죠, 일본에서 사이판까지 아마 3시간 반 정도 걸리지 않았나 싶은데 너무 목이 말라서 기내승무원에게 부탁을 했어요,
"Water, please."헉! 못알아 듣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말했죠,"Water, please."여전히 얼굴표정은 웃고 있었지만 못알아 듣는 것이었습니다...그래서 생각했죠, '혹시 학교에서 영어 배울 때 배운 "A cup of"를 붙이지 않아서 못알아 듣는 것인가?'"A cup of water, please."
딱 제가 사용하고 있는 닉네임과 같은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ㅠㅠㅠㅠㅠㅠㅠ여전히 못알아 듣는 것이었습니다...그러자 제 옆에 앉아계셨던, 주무시는 줄 알았던 친척할머니께서 대신 말씀해 주셨습니다,"Give him a cup of water."그러자 알아듣고 가서 제게 물 한 컵을 갖다 주더군요.'와, 할머니 영어 잘하시네!'"할머니, 나 영어가르쳐 줘요!""그래, 나중에..."(쿨하게 도로 주무심...으로 알았는데 저 주려고 물 갖고 오니 그 승무원에게 당신도 한 컵 달라고... ㅎㅎ)
이렇게 쓰기만 하면 아무도 그 이유를 모르실 겁니다...우리는 아마도 지금도 한국에서는 영어를 '글'로 배우고 있는 지도 모르겠습니다,그 승무원이 알아듣지 못한 이유는 '발음' 때문이었습니다...한국식 발음인 "워터, 플리즈."를 못알아 들은 것이고,제가 착각했던 것처럼 "A cup of..."를 빼먹어서 못알아 들은 것이 아니었습니다...ㅠㅠ
이윽고 사이판 (국제)공항에 도착했습니다.기내에서는 에어컨이 잘 돌고 있었고 공기가 환풍만 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잘 몰랐는데 사이판에 내리니까 '훅!'하더라고요, 아무리 북반구가 겨울철이라 하더라도 사이판은 북회귀선(으로 아는데, 적도에서 북위 15도 사이) 안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사시사철 여름이죠, 날씨가 더웠습니다, 그 더운 공기가 불어오니까 순간 그런 느낌이 들더라고요.
사진을 다시 찾아보니... 15도 안이 아니라 살짝 밖이네요, 여하튼 더운건 사실... ㅎㅎ
공항에 서너 시간 잡혀? 있었습니다, 얼마 전에 어떤 걸그룹이 LA 공항에서 '잡혀'있었다고 했었죠? 물론 상황은 달랐습니다만...
저희는 사이판 입국비자를 사이판 공항에서 받기로 하고 김포공항에서 비행기를 탔는데 사이판 공항에 도착하니 비자가 공항이민국에 와 있지 않은 것이었죠, 그래서 그 더운 공항에(에어컨도 안돌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요... ㅍㅍ) 땀 흘리며 앉아 있었습니다.1988년도 겨울은, 이번 겨울은 한국이 상당히 춥지만 보통 별로 안춥잖아요, 당시는 그래도 좀 추웠어요, 그런데 24시간도 안되는 사이에 열대지방에 왔으니 안그랬겠어요...이민국 직원들이 여기저기 연락해 보고 비자가 발급된 것을 확인한 후 입국? 입도(入島)?할 수 있었습니다.
갔더니 할아버지/할머니 댁에 가까운 이웃분 부부가 와 계셨습니다.(그 분들의 도움을 상당히 오랫동안 받았어요, 아버지와 나이차이도 많이 나지 않으셔서 거의 '친구'먹다시피 하셨고...)
도착한 날이... 성탄절 이브였던 것 같은데, 아닌가, 성탄절 새벽이었나...
이렇게 파란만장한 저의 가족의 이민기가 시작되었답니다.
(다음을 기약하며... ㅎㅎㅎ 시간이 허락되면 하루에 두세 편을 올릴 수도 있고, 안되면 2, 3일에 한 편 올릴 지도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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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 분들은 의심을 하실 수 있어요, 어떻게 그렇게 자세하게 기억하느냐, 대화내용을 포함해서...
제가, 지금은 많이 떨어지지만, 'Picture Memory'라고 하나요, 자신이 본 것을 마치 사진을 찍어놓은 것처럼 기억하는 것...그리고 후에 1997년에 한국에 대학교 역유학 들어갔었을 때도 시험시간에, 강의시간에 교수님께서 어떤 옷을 입고 어떤 톤의 목소리로 어떤 내용을 강의하셨는지가 기억이 나서 강의내용 그대로 시험답안을 쓴 적도 있고요.
물론 날짜가 오래되어서 100% 정확하게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리고 사람들의 얼굴들(보다는 인상에서 풍겨진 느낌)이 비슷한 분들의 그것과 겹쳐서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기억이 나요.
100% 정확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최대한 기억나는 대로 묘사하려고 했구요, 또 그당시 상황이 기억나는 것을 토대로 쓰느라 약간의 '거품'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양해해 주시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