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때마다 날 알아봐주고 이런저런 얘기도
나누고 그렇게 친해지고..
어느날 내가 가게에들어오자
불안해하는 당신.
무슨일인지 알지못한채 가게를 나서는
날붙잡고 빨개진 얼굴과 떨리는 목소리로
저녁같이드실래요 라고 묻던 당신.
그날이였다.
당신과 연인사이가, 우리의 인연이 시작된게.
만날수있는 시간이 비교적 적었던 터라
조심스레 함께 사는것을 제안한 당신.
난 걱정보단 기쁨이 넘쳤다.
내 긍정적인 대답에 당신은 기뻐함과 동시에
고민에빠졌다.
내집에 어찌 얘기드려야하나하고.
어느집에서 이제 막 성인이된 딸을
10살이나 차이나는 남자와
결혼도 아니고 동거를 허락해줄수있을까.
부모님 설득까지 꼬박 1년이걸렸다.
그 시간동안 신랑은 1시간 거리에있는
부모님집에 하루도 거르지않고 찾아갔다.
결국 부모님은 당신을 믿게됬다.
그렇게 어렵지만 기쁘게 시작한 동거생활
각자 살아온 환경이 달라
많이 투닥거리고 서운해하고 힘들었었다.
그러자 당신은 내가 아닌 나의 부모님에게
잘못을 빌었다.
행복하게 살게해주겠다고 부모님께 약속드렸는데
벌써부터 그약속 지키지못해 죄송하다고
빌고 또빌었다.
그모습을 보고 난 다짐했다.
한발물러서서 당신을 바라보며 당신과 살겠노라고.
다툼은 많이 줄어들고
웃음이 많이 늘어났다.
그렇게 3년이 흘렀고
당신에게서 부모님과 함께 나오라는 연락을받고
나가게됬다.
도착한곳은 묘지였다.
당신의 부모님이 잠들어계시는 곳이라며
결혼 전에 꼭 나와 내부모님을 당신부모님께
소개시켜드리고싶었다며 얘기하는 당신에게
난 너무나도 미안했다.
4년이란 시간동안 당신의 부모님에 대한걸
물을때마다 여행가셔서 당분간 만나지못한다.
아직은 때가 아니다라며 말을 돌리던 당신을..
왜 좀 더 묻지않았을까하며 내스스로를
자책하고있는중에
당신은 당신의 부모님과 나의 부모님앞에서
앞으로 남은 일평생을 함께 하고싶다며
날 울리며 프로포즈를 해줬다.
결혼식 당일 당신의 비어있는 부모님 자리를
나의 부모님께서 어찌하실까 하다가
양가 부모님 자리를 따로 따로 놓지않고
한자리로 모아 당신 부모님사진을 가지런히
놓아주셨다.
그 광경에 많은분들이 낯설어하셨지만
하나뿐인 아들의 결혼식일텐데
사돈분들이 사진으로나마 참석해주신거니
넓은 마음으로 바라봐 달라며
하객들을 이해시켜주셨던 나의 아버지.
그렇게 우린 식을 올렸고
양가부모님께 당신과 내가 인사드리는 차례에
나도 울고 당신도 울었다.
그리고 나의 아버지가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사돈과 우리는 나의 딸과 사돈의 아들로 인해
이어진 가족이다.
이 가족의 인연을 평생토록 이어가고싶다.
그러니 두사람의 결혼은 축복스럽고 아름답다.
싸우지않을 수없고 힘들지않을 수없겠지만
두사람이 지혜롭고 현명하게 잘 헤쳐나가길바라고
그래도 힘들땐 두사람 뒤에 항상 서있는
사돈과 우리를 찾아와도 괜찮다.
많이 울며 우린 진짜 부부가되었다.
해마다 시부모님 기일이되면 당신모르게
시부모님 묘를 찾았고, 생전에 차려드리지못한
시부모님께서 좋아하시는 음식도 만들어
자주 찾았다.
당신도 시간날 때마다 친정부모님을 찾아가고
오히려 나보다 더 친정부모님을 잘 챙겨주었다.
나는 사랑받는 여자
이젠 내세상이다 하며 기뻐하던
20살이된 나.
가정형편이 어려워 진학보다는 취업을 택해
또래들보다 놀 수있는 시간이 적었던 나.
회사근처에서 우연하게 가게된 당신이 일하던 가게.
그때부터였나 보다.
인상도 좋고 친절했던 당신에게 나도 모르게
마음이갔다.
갈때마다 날 알아봐주고 이런저런 얘기도
나누고 그렇게 친해지고..
어느날 내가 가게에들어오자
불안해하는 당신.
무슨일인지 알지못한채 가게를 나서는
날붙잡고 빨개진 얼굴과 떨리는 목소리로
저녁같이드실래요 라고 묻던 당신.
그날이였다.
당신과 연인사이가, 우리의 인연이 시작된게.
만날수있는 시간이 비교적 적었던 터라
조심스레 함께 사는것을 제안한 당신.
난 걱정보단 기쁨이 넘쳤다.
내 긍정적인 대답에 당신은 기뻐함과 동시에
고민에빠졌다.
내집에 어찌 얘기드려야하나하고.
어느집에서 이제 막 성인이된 딸을
10살이나 차이나는 남자와
결혼도 아니고 동거를 허락해줄수있을까.
부모님 설득까지 꼬박 1년이걸렸다.
그 시간동안 신랑은 1시간 거리에있는
부모님집에 하루도 거르지않고 찾아갔다.
결국 부모님은 당신을 믿게됬다.
그렇게 어렵지만 기쁘게 시작한 동거생활
각자 살아온 환경이 달라
많이 투닥거리고 서운해하고 힘들었었다.
그러자 당신은 내가 아닌 나의 부모님에게
잘못을 빌었다.
행복하게 살게해주겠다고 부모님께 약속드렸는데
벌써부터 그약속 지키지못해 죄송하다고
빌고 또빌었다.
그모습을 보고 난 다짐했다.
한발물러서서 당신을 바라보며 당신과 살겠노라고.
다툼은 많이 줄어들고
웃음이 많이 늘어났다.
그렇게 3년이 흘렀고
당신에게서 부모님과 함께 나오라는 연락을받고
나가게됬다.
도착한곳은 묘지였다.
당신의 부모님이 잠들어계시는 곳이라며
결혼 전에 꼭 나와 내부모님을 당신부모님께
소개시켜드리고싶었다며 얘기하는 당신에게
난 너무나도 미안했다.
4년이란 시간동안 당신의 부모님에 대한걸
물을때마다 여행가셔서 당분간 만나지못한다.
아직은 때가 아니다라며 말을 돌리던 당신을..
왜 좀 더 묻지않았을까하며 내스스로를
자책하고있는중에
당신은 당신의 부모님과 나의 부모님앞에서
앞으로 남은 일평생을 함께 하고싶다며
날 울리며 프로포즈를 해줬다.
결혼식 당일 당신의 비어있는 부모님 자리를
나의 부모님께서 어찌하실까 하다가
양가 부모님 자리를 따로 따로 놓지않고
한자리로 모아 당신 부모님사진을 가지런히
놓아주셨다.
그 광경에 많은분들이 낯설어하셨지만
하나뿐인 아들의 결혼식일텐데
사돈분들이 사진으로나마 참석해주신거니
넓은 마음으로 바라봐 달라며
하객들을 이해시켜주셨던 나의 아버지.
그렇게 우린 식을 올렸고
양가부모님께 당신과 내가 인사드리는 차례에
나도 울고 당신도 울었다.
그리고 나의 아버지가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사돈과 우리는 나의 딸과 사돈의 아들로 인해
이어진 가족이다.
이 가족의 인연을 평생토록 이어가고싶다.
그러니 두사람의 결혼은 축복스럽고 아름답다.
싸우지않을 수없고 힘들지않을 수없겠지만
두사람이 지혜롭고 현명하게 잘 헤쳐나가길바라고
그래도 힘들땐 두사람 뒤에 항상 서있는
사돈과 우리를 찾아와도 괜찮다.
많이 울며 우린 진짜 부부가되었다.
해마다 시부모님 기일이되면 당신모르게
시부모님 묘를 찾았고, 생전에 차려드리지못한
시부모님께서 좋아하시는 음식도 만들어
자주 찾았다.
당신도 시간날 때마다 친정부모님을 찾아가고
오히려 나보다 더 친정부모님을 잘 챙겨주었다.
한날은 당신은 내부모님께 왜이리 잘해주는거냐
라고 물었더니 당연한걸 왜묻느냐고
내게 되려 핀잔주던 당신.
내부모 니부모 할것없이 우리부모님들이시라며
내 코끝을 아리게만든 당신.
행복한시간만 가득하던 우리에게
친정엄마의 부고는 너무나 힘들고 슬픈일이었다.
그때 난 만삭의 몸이었고
친정아버지는 건강이 그리좋지않으셨었다.
그렇게 장례하는동안 당신은 상주를하며
모든 장례관련된 일을 나와 아버지가
신경쓸틈도 주지않고 척척해결해주었다.
그리곤 시부모님 묘와 멀지않은곳에
친정엄마가 잠들게되었다.
친정엄마의 빈자리는 출산을 하며
더크게 느껴졌다.
하지만 당신은 그 빈자리를 전부는 아니여도
채워주려 애썼다.
당신을 닮은 아들을 낳고난후
혼자계실 친정아버지와 함께 살고싶다며
한마디 상의없이 아버지를 모시고온 당신.
다시 가시겠다는 아버지를 당신은 울며얘기했다.
어머님 돌아가시고 아버님 너무 마르셨다.
오래 이곳에 계시길 바라지않는다.
아버님께서 기운내실때까지만이라도
함께 있고싶다.
라고..
결국 아버지는 함께사시기로했지만
엄마의 흔적이 남은 집은 처분하지않고
그대로 두길바라셨다.
손자와 함께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시니
아버지는 금새 많이 좋아지셨다.
그리고 난 둘째를 가지게됬다.
첫아이보다 입덧이 심해져 힘들어하는 나에게
많이 미안해하던 당신.
엄마의 기일이다가와 다함께 가기로했지만
입덧이 심한 난 집에서 쉬라며
아버지와 신랑과 첫째만 다녀오기로했다.
첫째도 아직 어리니 내가 데리고
있겠다 했지만 아버지가 운전하고
당신이 아이보기로 했다며 어머님께
우리첫째 보여드려야한다며 날 안심시키려한 당신.
엄마를 보러 간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다시 본건 병원이였다.
타이어가 터져 덜 녹은 빙판에서 미끄러지는 바람에
차가 굴렀다 했다.
너무 놀라 눈물도 나지않았고
의사가 가르쳐준 곳으로 가보니 수술실이였다
세사람이 전부 저기있는걸까
아니겠지 별별 생각이 다 들었던것같다.
그리곤 이내 오열하며 기도했다.
신을 믿진않았지만 하나님예수님부처님
등등 생각나는 신에게 모두 빌었다.
제발 제발 다시볼수있게 해달라고...
그렇게 수술도중 첫째와 아버지는 엄마곁으로
떠났다.
첫째는 너무어려 이겨내지못했고
아버지는 수술은 잘끝나서 중환자실로
옮기려하는데 돌아가셨다 했다.
그소식을 듣고 당신은 어떻냐 물었다.
수술이 완벽하게 되었다는 아니지만
성공적으로 되었고 경과를 지켜봐야한다했다.
당신은 중환자실에
아버지와 첫째는 장례식장에..
조문와주신 분들이 누군지도 알 수없을만큼
제정신이 아니였던것같다.
당신이 깨어났단소리에 아버지와 첫째에겐
많이 미안하지만 미친사람처럼 뛰어갔다.
당신손을 잡고 살아줘서 고맙다며 우는 나에게
딱 한마디. 그한마디 남기고 당신은 떠났다
당신도 떠났다...
미안해
정말 서럽게 울고 또울고..
쓰러졌다가도 일어나 울었다.
원망스러웠다. 터져버린 타이어가,
덜녹았다던 빙판길이...
그리고 엄마가..
그리도 세사람이 보고싶었던걸까
그래서 내게서 한번에 대려간걸까..
그렇게 내게 남은건 뱃속에 아이 뿐..
장례식이끝나고 엄마옆에 아버지를
시부모님 옆에 당신과 아이를..
사람들은 시간이흐르면 괜찮아 질거라고 위로하지만
시간이 지나니 괜찮은 척 할 뿐이다.
당신에게 사랑받던 집과
당신이 애쓰며 이뤄낸 가게.
그리고 부모님의 비어있는 집까지.
모두 처분하고 태어날 아이와 살으라는
얘길 많이 들었다.
아버지가 엄마의 흔적을 남기기위해
집을 처분하지말라던 그말씀을
뼈저리게 공감할수있었기에
한동안 아무것도 처분하지말아야지 했지만
현실적으로 그럴수없었고..
부모님의 집은 처분하게됬다.
두번째로 부모님을 보내는것같았다..
-
둘째아들은 벌써 학교에 들어갔다.
아버지 얼굴도 모르는 녀석이지만
누가봐도 아버지판박이인 아들이다.
오늘따라 유난히 보고싶다.
날 사랑한다고 말하던 당신이..
잠투정하며 울고보채던 우리 첫째가
언제나 내편이던 아버지가
누구보다 날 이해해주던 엄마가..
내곁에 남은 우리아들.
뒷바라지는 좀 더 해야겠지.
더 힘들테고 고단하겠지만
그때마다 지난날처럼 울고쓰러지지는말아야지.
내부모님이 내게 그랬듯
내가 내아들에게 버팀목이되어 줘야 할테니.
잊지말자.
내가 받았던 넘치던 사랑.
그사랑을 가지고 열심히살자.
나중에 당신을 만나 이렇게 열심히살았다 칭찬받을수있게.
힘들면 보러오자.
지금 다짐하기위해 써내려간 이글을.
보고 또 다짐하고 이겨내자.
난 예전에도 지금도 훗날에도
사랑받는 한사람의 여자이니까.
보고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