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페미니즘은 여성들을 더 “보호”해주고 “배려”해줄 남자를 찾는 운동이 아니라, 여성들이 한국사회에서 남성과 동등한 지위를 가진 인간으로 살 수 있도록 “사회에 변화”를 요구하는 운동이다.
2) 즉, 적은 임금을 받는 여성들이 데이트 비용에 부담이 되지 않도록 “남성들이 적극적으로 배려”를 해주는 것을 ‘페미니즘’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동등하게 데이트 비용을 내기 어려운 여성들이 “경제적 능력을 갖출 수 있게 사회를 변화”시키는 것을 ‘페미니즘’이라고 부른다.
3) 한국사회에서 특히 여초 카페에서 약자(여성)/강자(남성) 구도는, 쉽게 「보호(배려) 받아야 할 대상으로서 여성/ 보호(배려)해주어야 할 주체로서의 남성」으로 흐르는 문제점이 있다. 사실 이 구도는 가부장적인 구도에 가까운 것이며, 페미니즘과는 거리가 멀다. 이것이 첫 번째 문제점이다.
1) 「약자(여성)/강자(남성)」구도는 한국사회에서 ‘고통 받는 여성’과, 그 고통으로 인해 ‘이익을 보는 남성’으로 몰아가는 문제가 있다. 즉 한국사회에서 남성들은 항상 가해자로 비춰질 뿐이며 여성들은 남성들이 받는 어떠한 고통을 이해하지 못한다.
2) 1%의 금수저 남성을 제외한 99% 남성들은 한국사회에서 ‘남자’라는 역할로 고통을 받는다. 물론 여성에 비해서 고통의 강도가 상대적으로 적긴 하지만, 고통을 받지 않고 이익만을 누리는 ‘강자 혹은 지배자’로 이해하는 것은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다.
3) 남성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는 「약자(여성)/강자(남성)」구도에서, 어떠한 논쟁이든 결론은 “김치녀/한남”으로 끝이 난다. 즉 「약자(여성)/강자(남성)」 구도에서 남성과 여성은 이해와 타협의 여지가 없다. 이것이 두 번째 문제이다.
- 더치페이를 둘러싼 갈등
1) 우리의 어머니 아버지 세대에서 성역할은 너무도 분명했다. 아버지의 권한과 의무는 ‘경제적 영역’이였고 어머니의 권한과 의무는 ‘집안일(=육아&가사노동)’이었다. 아버지가 쓰시는 ‘집사람’이라는 표현과 어머니가 쓰시는 ‘바깥양반’이라는 표현은 여기서 비롯된 것이다.
2) 사회가 변화하면서 우리세대는 남성과 여성이 동일한 교육을 받았고, 20대·30대(초반)는 경제적·사회적 진출 면에서 남녀가 비슷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임금에 있어 남자가 더 받긴 하지만, 남자가 20대 후반 혹은 30대에 취업하는 현실을 고려했을 때 누적 임금액은 비슷하거나 오히려 남자가 적은 경우도 적지 않다.
3) 경제적·사회적 진출을 꿈꾸는 여성에게, 어머니 세대와 같은 집안일을 여성이 하길 기대하는 것은 굉장히 큰 부담이다. 반대로 여성과 비슷한 혹은 여성보다 더 가난한 남성들에게, 아버지 세대와 같은 경제적 책임을 기대하는 것은 또한 부담이다.
4) 여성의 “사회적·경제적 능력 향상”이라는 변화를 아직 우리의 문화가 따라잡지 못했다. 데이트 비용을 남자가 더 내야 한다는 부담과, 결혼할 때 전세자금 정도는 마련해야 한다는 ‘경제적 책임’은 오늘날 20대 30대 남성에게는 매우 큰 부담일 수밖에 없다. 반대로 집안일과 육아는 여성이 해야 된다는 ‘가사와 육아의 책임’은 여성에게 매우 부담일 수밖에 없다. ‘경제적 영역’과 ‘집안일의 영역’이 명백히 분리 되어 있던 어머니 아버지 세대의 부담(문화)들이 우리세대의 어깨를 짓누루고 있다.
5) 가끔씩 ‘집안일 분담에 대한 사상검증’을 하는 여성들이 있는 것처럼, ‘더치페이 분담에 대한 사상검증’을 하는 남성들 또한 존재한다. 둘 다 못나고 찌질해서가 아니다. 그저 그들은 자신들이 행복해지기 위해 남들보다 ‘조금 솔직한’것일 뿐이다.
6) 그러니, 싸우지 말자. 여자들은 더치페이하고 결혼할 때 혼수 반반해 가자. 남자들은 집안일 반땡하고 육아도 소홀히 하지 말자. 반반 나눠도 부족한 부분은 우리 국가와 사회에게 요구하자. “근로시간 좀 줄여줘!!! 집안일 좀 하게” “육아휴직 남자한테도 많이 줘!!”.
7) 모든 것을 반땡하는 것이 ‘사랑’은 아니지만, 모든 것을 배려에 맡기는 것 또한 ‘사랑’이 아니다. 반땡은 남녀가 서로 인식하는 ‘권리의무의 경계’이다. 영화 ‘부당거래’ 류승범의 명대사처럼 ‘호의(배려)가 반복되면 권리인 줄 아는’ 뻔뻔한 사람들이 되지 않으려면 남녀에게 합의된 ‘권리의무 경계’가 필요하다. 배려는 권리의무의 경계가 명백할 경우에 그 존재가 뚜렷해진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우리에겐 배려보다 상호 이해를 전제로 한 “합의된 경계”가 필요하다.
8) 이 글은 남자에게 더 유익한 것도, 여자에게 더 유익한 것도 아니다. 내가 사랑하는 애인이 혹은 앞으로 태어날 내 딸과 아들들이 더 유익해지기 위함이다.
+추가로 ) 여초 남초에서의 더치페이와 관련된 사이다 글이 자주 올라오는데, 사이다는 자제했으면 한다. 먹을 때는 좋은데 몸에는 별로 안 좋다. 몸에 쓴 보약을 먹자. 상대방의 비판에 귀를 기울이자.
더치페이와 관련하여 여초카페와 남초카페에게
-여성/남성, 약자/강자, 피지배자/지배자 구도의 문제점
1) 페미니즘은 여성들을 더 “보호”해주고 “배려”해줄 남자를 찾는 운동이 아니라, 여성들이 한국사회에서 남성과 동등한 지위를 가진 인간으로 살 수 있도록 “사회에 변화”를 요구하는 운동이다.
2) 즉, 적은 임금을 받는 여성들이 데이트 비용에 부담이 되지 않도록 “남성들이 적극적으로 배려”를 해주는 것을 ‘페미니즘’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동등하게 데이트 비용을 내기 어려운 여성들이 “경제적 능력을 갖출 수 있게 사회를 변화”시키는 것을 ‘페미니즘’이라고 부른다.
3) 한국사회에서 특히 여초 카페에서 약자(여성)/강자(남성) 구도는, 쉽게 「보호(배려) 받아야 할 대상으로서 여성/ 보호(배려)해주어야 할 주체로서의 남성」으로 흐르는 문제점이 있다. 사실 이 구도는 가부장적인 구도에 가까운 것이며, 페미니즘과는 거리가 멀다. 이것이 첫 번째 문제점이다.
1) 「약자(여성)/강자(남성)」구도는 한국사회에서 ‘고통 받는 여성’과, 그 고통으로 인해 ‘이익을 보는 남성’으로 몰아가는 문제가 있다. 즉 한국사회에서 남성들은 항상 가해자로 비춰질 뿐이며 여성들은 남성들이 받는 어떠한 고통을 이해하지 못한다.
2) 1%의 금수저 남성을 제외한 99% 남성들은 한국사회에서 ‘남자’라는 역할로 고통을 받는다. 물론 여성에 비해서 고통의 강도가 상대적으로 적긴 하지만, 고통을 받지 않고 이익만을 누리는 ‘강자 혹은 지배자’로 이해하는 것은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다.
3) 남성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는 「약자(여성)/강자(남성)」구도에서, 어떠한 논쟁이든 결론은 “김치녀/한남”으로 끝이 난다. 즉 「약자(여성)/강자(남성)」 구도에서 남성과 여성은 이해와 타협의 여지가 없다. 이것이 두 번째 문제이다.
- 더치페이를 둘러싼 갈등
1) 우리의 어머니 아버지 세대에서 성역할은 너무도 분명했다. 아버지의 권한과 의무는 ‘경제적 영역’이였고 어머니의 권한과 의무는 ‘집안일(=육아&가사노동)’이었다. 아버지가 쓰시는 ‘집사람’이라는 표현과 어머니가 쓰시는 ‘바깥양반’이라는 표현은 여기서 비롯된 것이다.
2) 사회가 변화하면서 우리세대는 남성과 여성이 동일한 교육을 받았고, 20대·30대(초반)는 경제적·사회적 진출 면에서 남녀가 비슷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임금에 있어 남자가 더 받긴 하지만, 남자가 20대 후반 혹은 30대에 취업하는 현실을 고려했을 때 누적 임금액은 비슷하거나 오히려 남자가 적은 경우도 적지 않다.
3) 경제적·사회적 진출을 꿈꾸는 여성에게, 어머니 세대와 같은 집안일을 여성이 하길 기대하는 것은 굉장히 큰 부담이다. 반대로 여성과 비슷한 혹은 여성보다 더 가난한 남성들에게, 아버지 세대와 같은 경제적 책임을 기대하는 것은 또한 부담이다.
4) 여성의 “사회적·경제적 능력 향상”이라는 변화를 아직 우리의 문화가 따라잡지 못했다. 데이트 비용을 남자가 더 내야 한다는 부담과, 결혼할 때 전세자금 정도는 마련해야 한다는 ‘경제적 책임’은 오늘날 20대 30대 남성에게는 매우 큰 부담일 수밖에 없다. 반대로 집안일과 육아는 여성이 해야 된다는 ‘가사와 육아의 책임’은 여성에게 매우 부담일 수밖에 없다. ‘경제적 영역’과 ‘집안일의 영역’이 명백히 분리 되어 있던 어머니 아버지 세대의 부담(문화)들이 우리세대의 어깨를 짓누루고 있다.
5) 가끔씩 ‘집안일 분담에 대한 사상검증’을 하는 여성들이 있는 것처럼, ‘더치페이 분담에 대한 사상검증’을 하는 남성들 또한 존재한다. 둘 다 못나고 찌질해서가 아니다. 그저 그들은 자신들이 행복해지기 위해 남들보다 ‘조금 솔직한’것일 뿐이다.
6) 그러니, 싸우지 말자. 여자들은 더치페이하고 결혼할 때 혼수 반반해 가자. 남자들은 집안일 반땡하고 육아도 소홀히 하지 말자. 반반 나눠도 부족한 부분은 우리 국가와 사회에게 요구하자. “근로시간 좀 줄여줘!!! 집안일 좀 하게” “육아휴직 남자한테도 많이 줘!!”.
7) 모든 것을 반땡하는 것이 ‘사랑’은 아니지만, 모든 것을 배려에 맡기는 것 또한 ‘사랑’이 아니다. 반땡은 남녀가 서로 인식하는 ‘권리의무의 경계’이다. 영화 ‘부당거래’ 류승범의 명대사처럼 ‘호의(배려)가 반복되면 권리인 줄 아는’ 뻔뻔한 사람들이 되지 않으려면 남녀에게 합의된 ‘권리의무 경계’가 필요하다. 배려는 권리의무의 경계가 명백할 경우에 그 존재가 뚜렷해진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우리에겐 배려보다 상호 이해를 전제로 한 “합의된 경계”가 필요하다.
8) 이 글은 남자에게 더 유익한 것도, 여자에게 더 유익한 것도 아니다. 내가 사랑하는 애인이 혹은 앞으로 태어날 내 딸과 아들들이 더 유익해지기 위함이다.
+추가로 ) 여초 남초에서의 더치페이와 관련된 사이다 글이 자주 올라오는데, 사이다는 자제했으면 한다. 먹을 때는 좋은데 몸에는 별로 안 좋다. 몸에 쓴 보약을 먹자. 상대방의 비판에 귀를 기울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