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때 제제는 망나니였어요. 아 이제 제제가 볼 걸 아니까 괜히 눈치보이네요ㅋㅋㅋ 아니라고 생각하면 어디 반박해보시지ㅡㅡ 고등학교 올라가서 친구를 잘못 사귀더니 방황을 많이 하더라고요. 소문 안 좋은 애들이랑 어울리고 청소년 주제에 흡연이나 하고 그러는 게 전 마음에 안 들었어요. 제일 마음에 안 들었던 건 역시 오토바이였죠. 제가 아무리 혼내도 애가 너무 해맑으니까 도저히 혼내지지가 않는 그 기분 아세요?? 나중엔 정말 화가 나서 니 맘대로 살거면 연락하지 말라고 하고 일방적으로 연락 끊어버렸어요. 그 뒤로 제제 오토바이 사고 나서야 미칠듯이 후회했죠... 화만 내던 게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괴로워하다가 병신같이 흉터나 만들고... 그때 내가 제제를 얼마나 좋아하는 지를 어렴풋이 알았지만 애써 외면했어요. 그때까지는 그걸 받아들이기가 힘들었어요.. 그뒤로 오토바이는 처분했지만 그렇다고해서 뭐 제제가 갑자기 하루아침에 모범생이 되거나 하진 않았죠. 오토바이만 안 탔을 뿐 거의 똑같았어요. 그러다 고3 때 제제가 더 방황하게 된 계기가 있었는데... 제제가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내던 친구가 사고로 떠났어요... 그 일로 제제가 많이 괴로워 했어요. 사고 소식 듣고 울다가 탈진해서 링거까지 맞았어요. 그 뒤로 뭔가 핀트가 나간 것처럼 보이더라고요. 그 전부터 방황하긴 했었지만 분명 그 전과는 뭔가 달라졌다는 게 느껴졌어요. 욱이나 저한테는 아예 연락도 안 했고요. 범이는 제제랑 같은 학교니까 그나마 더 마주치지 않을까 싶어서 많이 물어봤는데 범이도 저랑 똑같이 느끼고 있더라고요. 제제 많이 변했다고. 범이가 집안 사정상 친구들을 집으로 데려오기 힘들어서 저나 욱이도 못 가봤었는데 제제는 중학교 때부터 범이 집에 자주 놀러갔었데요. 저도 그때 처음 알았어요. 근데 사고로 친구 떠나보낸 후론 범이 집에도 안 오고 학교에서 마주쳐도 모르는 척하고 심지어 학교 잘 나오지도 않는다고 많이 걱정하더라고요. 이러다가 정말 큰 사고라도 치는 거 아닌가 싶었어요. 이대론 안 되겠다 싶어서 제제 집 앞에서 기다렸다가 얘기 좀 하자고 끌고 갔어요. 요즘 왜 연락이 안 되냐고 물었는데 대답이 없었어요. 아프냐고 물어도, 요즘 많이 힘드냐고 물어도, 무슨 얘길 해도 말없이 듣고만 있더니 이러더라고요. 나 요새 밥도 안 먹고 잠도 안 자. 그냥 죽고싶어. 이 말 듣고 진짜.... 충격받아서 할 말을 잃었어요... 그 뒤로 아침마다 무작정 제제 집 앞에서 기다렸어요. 같이 학교 가자고. 내 일에 신경끄고 꺼지라더군요. 너 안 가면 나도 학교 안 가겠다고 선전포고하고 아침마다 언제 나올 지도 모르는 애를 무작정 기다렸어요. 저 잘못되는 건 싫었는지 마지못해 나오더라고요. 중간에 어디로 샐까봐 제제 학교 앞까지 데려다주고 들어가는 거 보고 나서야 등교했어요. 저희 집에서 제제 집, 제제 집에서 제제 학교까지가 가까워서 가능했죠. 데려다주고 저는 택시타고 학교갔어요. 교복이 헐렁해질 정도로 하루가 다르게 말라가는 게 밥은 잘 먹고 다니는지 잠은 잘 자는지 걱정이 됐지만 지금 얘기해봐야 듣지도 않을테니까 일단은 다 내버려두고 아침에 학교가는 거부터 시작했어요. 꼬박꼬박 학교 간다 싶길래 그 다음부턴 더 일찍 일어나서 제제네 집에 가서 아침밥을 해줬어요. 제제가 그 때 사정상 자취를 했었거든요. 챙겨주는 사람 없으면 굶는 게 취미인 애에요. 매일 같이 가서 아침밥 해먹였어요. 서로 대화도 거의 없었어요. 그냥 제제네 집에서 같이 아침밥 먹고 같이 등교하고. 그게 다였어요. 어느 날 아침 먹다가 제제가 그러더라고요. 이제 오지 말라고. 너 없어도 아침밥도 챙겨먹을거고 학교도 나갈 거니까 오지 말라고 했는데 전 대답 안 했어요. 며칠 뒤에도 또 며칠 뒤에도 거듭 얘기 하길래 그런 소리 그만해. 니가 오지 말래도 계속 올 거니까.라고 대답했어요. 그렇게 아침밥 먹여서 학교 보내는 거까진 클리어. 근데 먹여도 먹여도 살이 안 찌는 거에요. 불면증 때문이었겠죠. 전처럼 잠들 때까지 옆에 있어주고 싶었지만 밤에 가면 또 못 오게 할 거 뻔하니까 못 가다가 너무 걱정되서 저까지 불면증이 오게 생겼더라고요. 그래서 결국 찾아갔어요. 제제도 제가 왜 왔는 지 다 아니까 이런 이유로 찾아오지 말라더군요. 전 괜히 서랍 열었다 닫았다 하면서 그거 때문에 온 거 아니라고 집구경하러 온 거라고 말도 안 되는 변명하다가 결국 잘 때까지 옆에 있어줬어요. 그 후로 한 5일인가를 그렇게 해줬을 거에요. 일주일도 안돼서 아침에 밥먹다가 이제 진짜 오지 말라고 자꾸 오면 나 다시 학교 안 간다고 하길래 어이가 없어서 지금 그걸 협박이라고 하냐고 니 인생 잘못되든 말든 내 알 바 아니니까 그런 걸로 협박하지 말라고 했어요. 뭐 설득력 없는 말이라는 거 저도 잘 알죠. 그래놓고 그 날도 학교 들어가는 거 보고 갔으니. 그래도 전 제제한테 고마웠어요. 제가 욕먹으면서도 끈질기게 들러붙기도 했지만 그래도 계속 저러다 정말 잘못 되기라도 하면 어쩌나 걱정했었는데 내가 해달라는 건 다 해줘서. 그게 너무 고마웠어요. 많은 거 안 바랬어요. 그냥 아침밥 먹고, 보통 고등학생들처럼 학교 가고, 밤마다 푹 자고. 그거 해줘서 고마웠어요. 고3이었으니 저한테도 중요한 시기였고 제제도 겉으로는 많이 회복된 거처럼 보였지만 전 어떻게든 계속 제제 옆에 붙어 있으려고 했어요. 왜냐면 그때 저한텐 제제가 너무 불안했거든요. 내가 안 보는 사이에 나쁜 생각이라도 하면 어쩌나 싶고. 많이 위태로워 보였어요. 근데 나중에 들으니 욱이가 보기엔 저희 둘다 그랬대요. 둘다 많이 지쳐보이고 위태로워 보였대요. 그 당시에 욱이가 뜬금없이 니네 둘다 괜찮은 거냐고 가끔 물어보고 그랬었는데 그때는 저도 그게 무슨 뜻인지 잘 몰랐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둘다 제정신은 아니었던 거 같아요. 제제는 겉으론 멀쩡해 보였지만 영혼없는 사람처럼 굴었고 전 그런 제제를 지나치게 걱정했었죠. 제가 잠드는 거 기다려 주려고 침대 옆에 앉아 있는데 제제가 그러더라고요. 대체 넌 날 뭘로 생각하는 거냐고. 친구? 친구라서 이렇게까지 해주는거야? 하고 묻는데 아무 말도 못 했어요.. 저도 제가 왜 이렇게까지 하는 지 모르겠더라고요. 정상적인 친구 사이는 아니란 거 저도 알고 있었어요. 자 얼른. 하면서 대답을 회피했던 거 같아요. 그 뒤로 제가 술을 마시고 제제 집에 간 적이 있었어요. 제가 고등학교 때 했던 동아리가 학교에서 좀 유명한 동아리였는데 가끔씩 졸업한 선배들이 오셔서 술을 권하셨어요. 제가 지금도 술 취하면 제제 집으로 가는 습성이 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이때부터 그랬나봐요... 술김에 제제한테 너 아직도 나 좋냐고 물어봤던 거 같아요. 제제가 응. 너도 알잖아. 라고 대답했어요. 그랬나. 나도 알고 있었나. 알면서도 모른 척 한 거였나. 이런 생각 하고 있는데 제제가 왜? 너도 내가 정신병 같아? 라고 하더라고요. 아무렇지도 않게 그런 질문을 하는데 갑자기 술이 확 깨는 기분이었어요. 우리 가족들은 날 정신병원 보내려고 했었는데... 라고 하는데 처음 듣는 얘기에 충격이었어요. 내가 오지 말랬잖아. 왜 자꾸 와? 나랑 있으면 너도 힘들어져. 라고 하길래 무슨 소리냐고 했더니. 어렸을 때부터 트라우마가 있더라고요. 주변 사람들이 자기 때문에 불행해진다고 믿고 있었어요. 뭐든지 자기 탓으로 돌리는 거. 그것도 상대방을 배려해주기 위해 그랬던 게 아니라 진심으로 그렇게 믿고 있었던 거에요. 다 자기 잘못이라고. 그래서 강아지 한 마리도 못 키웠대요. 자기 때문에 잘못 되기라도 할까봐. 사람들이 다가오면 어느 정도 선을 긋고 그 이상 가까워지지 않으려 했던 거. 친구 사고 이후로 죽고 싶다고 했던 거. 그것도 다 자기 때문에 불행해지는 사람들을 보고 싶지 않아서 그랬던 거에요. 중학교 때 혼자 저 좋아했을 때도 동성 친구를 좋아하는 자기자신이 정말로 정신병자일까봐 무서웠대요. 나한테 고백하고나서 왜 그렇게까지 미안해 했었는지. 친구 사고 이후로 왜 우리들한테까지 연락을 끊었던 건지. 퍼즐 조각 맞춰지듯 다 이해가 가더라고요. 알고 나니까 오히려 더 미칠 것 같았어요. 치료받자니까 그마저도 싫대요. 어릴 때 안 좋은 기억 때문에 병원 치료에 대한 트라우마까지 있더라고요. 그냥 안아주면서 그랬어요. 니 잘못 아니라고. 니가 잘못한 거 아무것도 없다고. 해줄 수 있는 말이 그것밖에 없어서 미칠 거 같았어요... 그뒤로는 야자끝나고도 제제를 데리러 갔었어요. 뭔가 제제에 대한 강박 같은 게 생겼었어요. 절대 혼자 두면 안되겠다는. 주말에도 꼭 범이랑 욱이 제제 집으로 불러서 같이 있게 했어요. 넷이 같이 있는 시간 많아지면서 확실히 제제가 많이 밝아지더라고요. 예전만큼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곧 죽을 애처럼 보이진 않았으니까... 제제가 범이랑 욱이 힘들었을 때 직접적으로 도움을 많이 줬었거든요. 제가 일부러 제제한테 그런 얘기도 많이 꺼냈어요. 야 범이랑 욱이가 너한테 고맙대. 왜? 왜긴. 친구니까 옆에 있어주는 것도 고마운거지. 너한테 죽을 때까지 잘 할거래. 이런 말 해주면 그냥 웃었어요. 넌 우리한테 없어선 안 될 존재다. 니가 있어서 우리가 불행해지는 게 아니라 더 행복해지는 거다 라는 걸 주입식으로라도 계속 알려주고 싶었어요. 제제가 저한테 그러더라고요. 니가 믿는 날 나도 믿을게. 라고. 내가 이 말을 들으려고 지금까지 이 고생을 했나 싶을만큼 그 말이 고마웠어요. 범이나 욱이 만나면 거의 하는 얘기가 제제 걱정이었는데. 하반기엔 저희 모두 대입 준비에 몰두하는 평범한 수험생으로 돌아갈 수 있을 정도로 제제가 예전 모습으로 많이 돌아왔어요. 졸업후 저흰 각자 대학에 입학을 했어요. 대학 1학년 때. 제가 동아리때문에 술을 많이 마신 날. 제가 제제 집에 갔다가 술김에 제제한테 키스를 한 일이 있었어요. 그 다음날 술깨고서 생각해보니 와 내가 미쳤구나 싶기보다는... 그냥 그제서야 인정이 되더라고요. 내가 제제를 친구 이상으로 많이 좋아한다는 걸. 솔직히 날라리 친구 걱정된다고 아침부터 밤까지 같이 있어주는 것부터가 정상은 아니죠.... 그런데도 제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어요. 자기가 정신병자일까봐 두려워서 병원도 못 가겠단 애한테 제가 좋아한다는 말을 하겠어요 사귀자는 말을 하겠어요. 정말 비겁하지만 다음날 제제 찾아가서 그랬어요. 어제 일은 미안하다고. 내가 착각하고 그런 거라고. 솔직히 제제가 화내고 욕해도 할 말 없다고 생각했는데. 제제는 그냥 알았다고, 우리 이제 정말 보지 말자고 하더라고요. 이제 우린 친구로도 지낼 수 없는 사이가 된 거구나 하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어요... 저흰 그렇게 연락을 끊었고 그 뒤로 전 단 한번도 여자친구를 사귀지 않았어요. 제제는 연애도 하면서 평범한 대학생활을 하는 거 같더라고요. 그러다 한 학기만 마치고 둘다 입대를 했죠. 이땐 연락을 안 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맞춰서 간 건 아니고 우연히 입대 시기가 맞물렸던 거에요. 제제는 학기 마치자마자 바로 갔고 저도 한 달 차로 입대했어요. 오늘은 여기까지 쓰겠습니다. 동성애자라고 하면 무조건 힘들고 불행하다는 편견을 가지실까봐 무거운 이야기는 최대한 뒤로 미루고 싶었는데 결국 이 이야기를 하는 날이 왔네요. 이번 이야기는 저도 쓰면서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어지지 않을까 싶었는데 생각보단 담담하게 써내려 갔던 거 같아요. 이런 이야기도 추억이란 이름으로 얘기할 수 있는 오늘에 감사합니다. 혹시 궁금해 하실까봐 말씀드리자면 제제는 그 뒤로 상담이랑 병행해서 약물치료 받았어요. 제가 제제는 아니니까 함부로 말은 못 하겠지만. 제제 말에 따르면 통원치료 받은 것보다 그냥 저희들끼리 같이 얘기하고 많이 웃고 했던 게 훨씬 도움 많이 됐대요. 그렇긴 하지만 병원 치료 안 받았으면 후회했을 것 같다고 잘한 일인 것 같다고 했었어요. 병원 치료에 대해 회의적이었던 아이었는데 치료 받고 나서는 생각이 많이 바뀌더라고요. 지금도 약간의 불안증세는 갖고 있지만 이젠 정말 많이 좋아졌어요. 근데 담배는 못 끊네요. 끊는다 끊는다 말만 하고...^^ 다음번엔 사귀게 된 이야기 쓰러 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31
10년지기 친구와 2년 연애 7
고등학교 때 제제는 망나니였어요.
아 이제 제제가 볼 걸 아니까 괜히 눈치보이네요ㅋㅋㅋ
아니라고 생각하면 어디 반박해보시지ㅡㅡ
고등학교 올라가서 친구를 잘못 사귀더니 방황을 많이 하더라고요.
소문 안 좋은 애들이랑 어울리고 청소년 주제에 흡연이나 하고 그러는 게 전 마음에 안 들었어요.
제일 마음에 안 들었던 건 역시 오토바이였죠.
제가 아무리 혼내도 애가 너무 해맑으니까 도저히 혼내지지가 않는 그 기분 아세요??
나중엔 정말 화가 나서 니 맘대로 살거면 연락하지 말라고 하고 일방적으로 연락 끊어버렸어요.
그 뒤로 제제 오토바이 사고 나서야 미칠듯이 후회했죠...
화만 내던 게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괴로워하다가 병신같이 흉터나 만들고...
그때 내가 제제를 얼마나 좋아하는 지를 어렴풋이 알았지만 애써 외면했어요.
그때까지는 그걸 받아들이기가 힘들었어요..
그뒤로 오토바이는 처분했지만 그렇다고해서 뭐 제제가 갑자기 하루아침에 모범생이 되거나 하진 않았죠.
오토바이만 안 탔을 뿐 거의 똑같았어요.
그러다 고3 때 제제가 더 방황하게 된 계기가 있었는데...
제제가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내던 친구가 사고로 떠났어요...
그 일로 제제가 많이 괴로워 했어요.
사고 소식 듣고 울다가 탈진해서 링거까지 맞았어요.
그 뒤로 뭔가 핀트가 나간 것처럼 보이더라고요.
그 전부터 방황하긴 했었지만 분명 그 전과는 뭔가 달라졌다는 게 느껴졌어요.
욱이나 저한테는 아예 연락도 안 했고요.
범이는 제제랑 같은 학교니까 그나마 더 마주치지 않을까 싶어서 많이 물어봤는데
범이도 저랑 똑같이 느끼고 있더라고요. 제제 많이 변했다고.
범이가 집안 사정상 친구들을 집으로 데려오기 힘들어서 저나 욱이도 못 가봤었는데
제제는 중학교 때부터 범이 집에 자주 놀러갔었데요.
저도 그때 처음 알았어요.
근데 사고로 친구 떠나보낸 후론 범이 집에도 안 오고 학교에서 마주쳐도 모르는 척하고 심지어 학교 잘 나오지도 않는다고 많이 걱정하더라고요.
이러다가 정말 큰 사고라도 치는 거 아닌가 싶었어요.
이대론 안 되겠다 싶어서 제제 집 앞에서 기다렸다가 얘기 좀 하자고 끌고 갔어요.
요즘 왜 연락이 안 되냐고 물었는데 대답이 없었어요.
아프냐고 물어도, 요즘 많이 힘드냐고 물어도, 무슨 얘길 해도 말없이 듣고만 있더니 이러더라고요.
나 요새 밥도 안 먹고 잠도 안 자.
그냥 죽고싶어.
이 말 듣고 진짜.... 충격받아서 할 말을 잃었어요...
그 뒤로 아침마다 무작정 제제 집 앞에서 기다렸어요. 같이 학교 가자고.
내 일에 신경끄고 꺼지라더군요.
너 안 가면 나도 학교 안 가겠다고 선전포고하고 아침마다 언제 나올 지도 모르는 애를 무작정 기다렸어요.
저 잘못되는 건 싫었는지 마지못해 나오더라고요.
중간에 어디로 샐까봐 제제 학교 앞까지 데려다주고 들어가는 거 보고 나서야 등교했어요.
저희 집에서 제제 집, 제제 집에서 제제 학교까지가 가까워서 가능했죠.
데려다주고 저는 택시타고 학교갔어요.
교복이 헐렁해질 정도로 하루가 다르게 말라가는 게 밥은 잘 먹고 다니는지 잠은 잘 자는지 걱정이 됐지만
지금 얘기해봐야 듣지도 않을테니까 일단은 다 내버려두고 아침에 학교가는 거부터 시작했어요.
꼬박꼬박 학교 간다 싶길래 그 다음부턴 더 일찍 일어나서 제제네 집에 가서 아침밥을 해줬어요.
제제가 그 때 사정상 자취를 했었거든요.
챙겨주는 사람 없으면 굶는 게 취미인 애에요.
매일 같이 가서 아침밥 해먹였어요.
서로 대화도 거의 없었어요.
그냥 제제네 집에서 같이 아침밥 먹고 같이 등교하고. 그게 다였어요.
어느 날 아침 먹다가 제제가 그러더라고요.
이제 오지 말라고.
너 없어도 아침밥도 챙겨먹을거고 학교도 나갈 거니까 오지 말라고 했는데 전 대답 안 했어요.
며칠 뒤에도 또 며칠 뒤에도 거듭 얘기 하길래
그런 소리 그만해. 니가 오지 말래도 계속 올 거니까.라고 대답했어요.
그렇게 아침밥 먹여서 학교 보내는 거까진 클리어.
근데 먹여도 먹여도 살이 안 찌는 거에요.
불면증 때문이었겠죠.
전처럼 잠들 때까지 옆에 있어주고 싶었지만 밤에 가면 또 못 오게 할 거 뻔하니까 못 가다가
너무 걱정되서 저까지 불면증이 오게 생겼더라고요.
그래서 결국 찾아갔어요.
제제도 제가 왜 왔는 지 다 아니까 이런 이유로 찾아오지 말라더군요.
전 괜히 서랍 열었다 닫았다 하면서 그거 때문에 온 거 아니라고 집구경하러 온 거라고 말도 안 되는 변명하다가 결국 잘 때까지 옆에 있어줬어요.
그 후로 한 5일인가를 그렇게 해줬을 거에요.
일주일도 안돼서 아침에 밥먹다가 이제 진짜 오지 말라고 자꾸 오면 나 다시 학교 안 간다고 하길래 어이가 없어서
지금 그걸 협박이라고 하냐고 니 인생 잘못되든 말든 내 알 바 아니니까 그런 걸로 협박하지 말라고 했어요.
뭐 설득력 없는 말이라는 거 저도 잘 알죠.
그래놓고 그 날도 학교 들어가는 거 보고 갔으니.
그래도 전 제제한테 고마웠어요.
제가 욕먹으면서도 끈질기게 들러붙기도 했지만 그래도 계속 저러다 정말 잘못 되기라도 하면 어쩌나 걱정했었는데
내가 해달라는 건 다 해줘서. 그게 너무 고마웠어요.
많은 거 안 바랬어요.
그냥 아침밥 먹고, 보통 고등학생들처럼 학교 가고, 밤마다 푹 자고. 그거 해줘서 고마웠어요.
고3이었으니 저한테도 중요한 시기였고 제제도 겉으로는 많이 회복된 거처럼 보였지만
전 어떻게든 계속 제제 옆에 붙어 있으려고 했어요.
왜냐면 그때 저한텐 제제가 너무 불안했거든요.
내가 안 보는 사이에 나쁜 생각이라도 하면 어쩌나 싶고. 많이 위태로워 보였어요.
근데 나중에 들으니 욱이가 보기엔 저희 둘다 그랬대요.
둘다 많이 지쳐보이고 위태로워 보였대요.
그 당시에 욱이가 뜬금없이 니네 둘다 괜찮은 거냐고 가끔 물어보고 그랬었는데 그때는 저도 그게 무슨 뜻인지 잘 몰랐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둘다 제정신은 아니었던 거 같아요.
제제는 겉으론 멀쩡해 보였지만 영혼없는 사람처럼 굴었고 전 그런 제제를 지나치게 걱정했었죠.
제가 잠드는 거 기다려 주려고 침대 옆에 앉아 있는데 제제가 그러더라고요.
대체 넌 날 뭘로 생각하는 거냐고. 친구? 친구라서 이렇게까지 해주는거야? 하고 묻는데 아무 말도 못 했어요..
저도 제가 왜 이렇게까지 하는 지 모르겠더라고요.
정상적인 친구 사이는 아니란 거 저도 알고 있었어요.
자 얼른. 하면서 대답을 회피했던 거 같아요.
그 뒤로 제가 술을 마시고 제제 집에 간 적이 있었어요.
제가 고등학교 때 했던 동아리가 학교에서 좀 유명한 동아리였는데 가끔씩 졸업한 선배들이 오셔서 술을 권하셨어요.
제가 지금도 술 취하면 제제 집으로 가는 습성이 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이때부터 그랬나봐요...
술김에 제제한테 너 아직도 나 좋냐고 물어봤던 거 같아요.
제제가 응. 너도 알잖아. 라고 대답했어요.
그랬나. 나도 알고 있었나. 알면서도 모른 척 한 거였나.
이런 생각 하고 있는데 제제가
왜? 너도 내가 정신병 같아? 라고 하더라고요.
아무렇지도 않게 그런 질문을 하는데 갑자기 술이 확 깨는 기분이었어요.
우리 가족들은 날 정신병원 보내려고 했었는데... 라고 하는데 처음 듣는 얘기에 충격이었어요.
내가 오지 말랬잖아. 왜 자꾸 와? 나랑 있으면 너도 힘들어져. 라고 하길래 무슨 소리냐고 했더니.
어렸을 때부터 트라우마가 있더라고요.
주변 사람들이 자기 때문에 불행해진다고 믿고 있었어요.
뭐든지 자기 탓으로 돌리는 거.
그것도 상대방을 배려해주기 위해 그랬던 게 아니라 진심으로 그렇게 믿고 있었던 거에요. 다 자기 잘못이라고.
그래서 강아지 한 마리도 못 키웠대요. 자기 때문에 잘못 되기라도 할까봐.
사람들이 다가오면 어느 정도 선을 긋고 그 이상 가까워지지 않으려 했던 거.
친구 사고 이후로 죽고 싶다고 했던 거.
그것도 다 자기 때문에 불행해지는 사람들을 보고 싶지 않아서 그랬던 거에요.
중학교 때 혼자 저 좋아했을 때도 동성 친구를 좋아하는 자기자신이 정말로 정신병자일까봐 무서웠대요.
나한테 고백하고나서 왜 그렇게까지 미안해 했었는지.
친구 사고 이후로 왜 우리들한테까지 연락을 끊었던 건지.
퍼즐 조각 맞춰지듯 다 이해가 가더라고요.
알고 나니까 오히려 더 미칠 것 같았어요.
치료받자니까 그마저도 싫대요.
어릴 때 안 좋은 기억 때문에 병원 치료에 대한 트라우마까지 있더라고요.
그냥 안아주면서 그랬어요.
니 잘못 아니라고. 니가 잘못한 거 아무것도 없다고.
해줄 수 있는 말이 그것밖에 없어서 미칠 거 같았어요...
그뒤로는 야자끝나고도 제제를 데리러 갔었어요.
뭔가 제제에 대한 강박 같은 게 생겼었어요. 절대 혼자 두면 안되겠다는.
주말에도 꼭 범이랑 욱이 제제 집으로 불러서 같이 있게 했어요.
넷이 같이 있는 시간 많아지면서 확실히 제제가 많이 밝아지더라고요.
예전만큼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곧 죽을 애처럼 보이진 않았으니까...
제제가 범이랑 욱이 힘들었을 때 직접적으로 도움을 많이 줬었거든요.
제가 일부러 제제한테 그런 얘기도 많이 꺼냈어요.
야 범이랑 욱이가 너한테 고맙대.
왜?
왜긴. 친구니까 옆에 있어주는 것도 고마운거지. 너한테 죽을 때까지 잘 할거래.
이런 말 해주면 그냥 웃었어요.
넌 우리한테 없어선 안 될 존재다. 니가 있어서 우리가 불행해지는 게 아니라 더 행복해지는 거다 라는 걸 주입식으로라도 계속 알려주고 싶었어요.
제제가 저한테 그러더라고요.
니가 믿는 날 나도 믿을게. 라고.
내가 이 말을 들으려고 지금까지 이 고생을 했나 싶을만큼 그 말이 고마웠어요.
범이나 욱이 만나면 거의 하는 얘기가 제제 걱정이었는데.
하반기엔 저희 모두 대입 준비에 몰두하는 평범한 수험생으로 돌아갈 수 있을 정도로 제제가 예전 모습으로 많이 돌아왔어요.
졸업후 저흰 각자 대학에 입학을 했어요.
대학 1학년 때. 제가 동아리때문에 술을 많이 마신 날.
제가 제제 집에 갔다가 술김에 제제한테 키스를 한 일이 있었어요.
그 다음날 술깨고서 생각해보니 와 내가 미쳤구나 싶기보다는... 그냥 그제서야 인정이 되더라고요.
내가 제제를 친구 이상으로 많이 좋아한다는 걸.
솔직히 날라리 친구 걱정된다고 아침부터 밤까지 같이 있어주는 것부터가 정상은 아니죠....
그런데도 제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어요.
자기가 정신병자일까봐 두려워서 병원도 못 가겠단 애한테 제가 좋아한다는 말을 하겠어요 사귀자는 말을 하겠어요.
정말 비겁하지만 다음날 제제 찾아가서 그랬어요.
어제 일은 미안하다고. 내가 착각하고 그런 거라고.
솔직히 제제가 화내고 욕해도 할 말 없다고 생각했는데.
제제는 그냥 알았다고, 우리 이제 정말 보지 말자고 하더라고요.
이제 우린 친구로도 지낼 수 없는 사이가 된 거구나 하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어요...
저흰 그렇게 연락을 끊었고 그 뒤로 전 단 한번도 여자친구를 사귀지 않았어요.
제제는 연애도 하면서 평범한 대학생활을 하는 거 같더라고요.
그러다 한 학기만 마치고 둘다 입대를 했죠.
이땐 연락을 안 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맞춰서 간 건 아니고 우연히 입대 시기가 맞물렸던 거에요.
제제는 학기 마치자마자 바로 갔고 저도 한 달 차로 입대했어요.
오늘은 여기까지 쓰겠습니다.
동성애자라고 하면 무조건 힘들고 불행하다는 편견을 가지실까봐 무거운 이야기는 최대한 뒤로 미루고 싶었는데 결국 이 이야기를 하는 날이 왔네요.
이번 이야기는 저도 쓰면서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어지지 않을까 싶었는데 생각보단 담담하게 써내려 갔던 거 같아요.
이런 이야기도 추억이란 이름으로 얘기할 수 있는 오늘에 감사합니다.
혹시 궁금해 하실까봐 말씀드리자면 제제는 그 뒤로 상담이랑 병행해서 약물치료 받았어요.
제가 제제는 아니니까 함부로 말은 못 하겠지만. 제제 말에 따르면 통원치료 받은 것보다 그냥 저희들끼리 같이 얘기하고 많이 웃고 했던 게 훨씬 도움 많이 됐대요.
그렇긴 하지만 병원 치료 안 받았으면 후회했을 것 같다고 잘한 일인 것 같다고 했었어요.
병원 치료에 대해 회의적이었던 아이었는데 치료 받고 나서는 생각이 많이 바뀌더라고요.
지금도 약간의 불안증세는 갖고 있지만 이젠 정말 많이 좋아졌어요.
근데 담배는 못 끊네요. 끊는다 끊는다 말만 하고...^^
다음번엔 사귀게 된 이야기 쓰러 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