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이라는 것이 지닌 속성이 본래부터 그러하지만 십대는 내 세계가 아직 완전히 서 있지 않아, 내가 보는 나보다 남이 보는 나에 더 민감히 반응하며 내가 하는 생각보다 남들의 생각에 더 휩쓸리기 쉬운 시기이기 때문에.
바로 서지 못한 나의 '의견'은 그것을 지지하거나 지탱해 줄 익명의 다수에 의해서만 그 힘을 얻는다.
그리고 그 동의를 구하고 그것을 인정받는 또래집단의 공개 재판 과정에서, 거의 필연적으로 누군가는 깊게 다친다.
'누군가가 다친다'는 것, 그것이 늘 문제였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다.
'아이돌(idol)'.
그를 아이돌이기 이전에 '사람'으로써 좋아하는 이가 있다면, '아이돌'로써의 그를 소비하는 이들도 많다는 것을 안다.
'연예인'이라는 존재에서 '연예'에 방점을 찍느냐 '인'에 방점을 찍느냐는 그의 인간적 가치 또는 상품적 가치를 소비하는 '소비자'들에 있기 때문에.
그렇기에 아이돌은 숙명적으로 대중의 기대와 팬의 환상을 유지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는 것도.
물론 이 '의무'라는 어휘의 선택조차 어느 아이돌의 팬인 나로서는 엿같지만, 우리나라 대중연예계 속 대중과 팬이라는 이름의 이들이 아이돌의 존재를 소비하는 꼴을 보고 있자면 이것은 '의무'가 맞다.
아이돌의 열애설, 또는 사생활 사진을 접한 이들이, 그 이슈의 당사자에게 '아이돌로서의 책무를 다하지 못했다' 충고든 조언이든 선생질이든 뭔가를 하고 싶은 거라면, 그래, 그것은 이해 가능한 범위이다.
허나 그것이 '범죄'가 아닌 이상, 도덕적으로 지탄받고 매도되어야 할 일이 아닌 이상, '한 개인으로서의' 지탄과 비난이라면 그것은 웃기지 않은 코미디이자, 개인에 대한 '인격 학대'다. 그것이 한 개인으로서의 '인성'이 운운될 부분이라 생각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인성이라는 개념에 대한 정의가 대단히 왜곡되고 편협하며 엿같이 자리한 당신의 탓이다.
그것은 분명히 네 탓이다.
TV에 나와 자신의 힘든 점을 털어놓는 연예인을 향한 시선은 언제나 폭력적이다. 인간적인 이해의 선에서 포용 가능할, 그조차 포용하기 어렵다면 차라리 무관심할 수 있을 하소연 하나에도, '네가 선택한 삶이니 감수해라, 너보다 힘든 사람 많다, 너는 돈이라도 많이 벌지'라는 비인간적인 반응과 비아냥만이 부메랑처럼 날아가 꽂힌다.
연예인이기 이전에 '사람'으로서 힘들었다 말하는 이의 직업이 '연예'인인 이상, 그것은 모두 그 연예인의 몫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주관적으로 힘든 일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억울할 일을 당해도 이것은 마찬가지다.
도촬을 당하고 그것으로 인해 개인의 사생활이 방방곡곡으로 무섭게 퍼져 나가 심각한 사생활 침해 피해를 입은 연예인이 있다면, 그것은 범죄의 피해를 입은 연예인이 아니라 그와 같은 사생활을 본인의 동의 없이 몰래 촬영하고 유포한 이에게 잘못을 물어야 할 일이다. 하지만 사진이 찍힌 그에게 '그러게 왜 그런 사진을 찍히고 다니느냐'며, '조심 좀 하지 그랬어'라고 탓하는 게 현실이지.
그것이 '조심했더라면 충분히 피할 수 있었다'는 논리로 뒷받침될 비난이라면, 성폭행 피해자에게 '그러게 왜 어두운 길로 가고 그랬어, 그러게 왜 밤길에 혼자 다니고 그랬어, 그러게 왜 짧은 치마를 입고 그랬어'라는 비난이 성립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에도 동의할 수 있어야 하지.
애당초 나는 저 둘의 차이를 조금도 모르겠다.
회사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아 힘들어하는 이에게 '네가 선택한 회사니 감수해라, 너보다 힘든 사람 많다, 네 회사는 돈이라도 많이 주지'라는 위로를 해 줄 리도, 남편과 다투었다 하소연하는 친구에게 '네가 선택한 남편이니 감수해라, 너보다 힘든 사람 많다, 네 남편은 돈이라도 많이 벌지'라고 위로할 리는 없는데도,
유독 연예인의 삶에 대해서만은 이 폭력에 가까운 비약에 추천이 몇백 몇천이 될 수 있는 이유는, 일종의 '보복적 보상 심리'가 작용하는 때문일 테다.
한 명의 개인으로서의 나는 네 높은 위상 앞에 그저 너를 부러워할 만큼 하잘것없지만, 나와 같은 처지의 익명의 다수 속에 함께인 나는 이렇듯 네게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존재라는, 상대적 박탈감과 기묘하게 뒤섞여 괴이하게 뒤틀린 우월감.
내가 개인이 아니라 '대중'이 되었을 때, 나는 네게 영향을 끼칠 만한 존재다, 하는. 그런 식으로 '내가 혼자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존재에 대한 자기영향력을 확인하고, 인정받고, 검증하고자 하는.
안타까울 노릇이지.
'아이돌은 팬의 돈으로 사는 거니까, 너는 내 환상을 지켜야 한다',
이만한 '갑질' 앞에, 개인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소비가 실은 그 아이돌의 재정에 하등 영향력을 끼치지 못한다는 지극한 사실은 무시된다.
애당초 개인으로 얼마의 돈지랄을 하든 그것이 그 아이돌이 먹고 사는 데 자신이 기대하는 만큼의 영향력이 있을까. 그러나 그것이 나와 같은 처지의, '나와 같이 그 아이돌에게 끝없이 돈지랄을 하는' 이들과 함께라 생각한다면, 나는 그 아이돌에게 갑질할 용기와 힘이 생기는 거다.
모든 것을 물질로 치환하는 이 천박한 시장 논리 속에는 내가 네 이미지를 구매했다, 네게서 환상을 샀다, 그러므로 나는 너의 사생활에마저 간섭할 권리가 있다,가 포함된다.
그러나 여기서 가장 엿같은 건 그것이 얼마나 뒤틀린 폭력인지를, 조금도 자각하지 못하는 이 '보편타당한' 갑질의식이다.
내게 돈을 주고 나를 고용한 고용인이 내게, '나는 너의 예쁘고 청순한 외모를 원해서 너를 고용했다, 그러니 너는 부지런히 몸매를 가꿔라, 그리고 너는 내게 내가 산 너의 '청순함에 대한 환상'을 지켜야 하므로 너는 내 앞에서 늘 처녀 행세를 해야 한다, 그리고 연애는 하지 말고 너의 처녀성을 지키거나, 그러지 못할 거라면 영원히 내게 네 연애 사실을 들켜선 안 된다'고 요구한다면, 나는 그것을 내게 돈을 지불하는 이의 정당한 요구라고 수용할 수 있을까.
있다고 여긴다면야 그는 시장논리에 바야흐로 인간성을 잠식 당했다거나, 물질만능주의를 신봉하느라 인권감수성이 그야말로 바닥인 인간일 수밖에.
심지어 대중과 팬은 '고용자'가 아니라 '자발적 선택'으로 그들에게 재화를 지불하는 존재이다. 그들을 고용해 그들에게 재화를 지불하는, 고용 관계로 묶인 존재가 아니란 거다. 누구도 당신에게 이 상품에 갑질을 하면서까지 이 상품을 구매하라 강요하지 않았다. 그것은 당신의 '자유의지'였으니까 말이다.
여론이라는 것이 지닌 속성이 본래부터 그러하지만 십대는 내 세계가 아직 완전히 서 있지 않아, 내가 보는 나보다 남이 보는 나에 더 민감히 반응하며 내가 하는 생각보다 남들의 생각에 더 휩쓸리기 쉬운 시기이기 때문에.
바로 서지 못한 나의 '의견'은 그것을 지지하거나 지탱해 줄 익명의 다수에 의해서만 그 힘을 얻는다.
그리고 그 동의를 구하고 그것을 인정받는 또래집단의 공개 재판 과정에서, 거의 필연적으로 누군가는 깊게 다친다.
'누군가가 다친다'는 것, 그것이 늘 문제였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다.
'아이돌(idol)'.
그를 아이돌이기 이전에 '사람'으로써 좋아하는 이가 있다면, '아이돌'로써의 그를 소비하는 이들도 많다는 것을 안다.
'연예인'이라는 존재에서 '연예'에 방점을 찍느냐 '인'에 방점을 찍느냐는 그의 인간적 가치 또는 상품적 가치를 소비하는 '소비자'들에 있기 때문에.
그렇기에 아이돌은 숙명적으로 대중의 기대와 팬의 환상을 유지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는 것도.
물론 이 '의무'라는 어휘의 선택조차 어느 아이돌의 팬인 나로서는 엿같지만, 우리나라 대중연예계 속 대중과 팬이라는 이름의 이들이 아이돌의 존재를 소비하는 꼴을 보고 있자면 이것은 '의무'가 맞다.
아이돌의 열애설, 또는 사생활 사진을 접한 이들이, 그 이슈의 당사자에게 '아이돌로서의 책무를 다하지 못했다' 충고든 조언이든 선생질이든 뭔가를 하고 싶은 거라면, 그래, 그것은 이해 가능한 범위이다.
허나 그것이 '범죄'가 아닌 이상, 도덕적으로 지탄받고 매도되어야 할 일이 아닌 이상, '한 개인으로서의' 지탄과 비난이라면 그것은 웃기지 않은 코미디이자, 개인에 대한 '인격 학대'다. 그것이 한 개인으로서의 '인성'이 운운될 부분이라 생각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인성이라는 개념에 대한 정의가 대단히 왜곡되고 편협하며 엿같이 자리한 당신의 탓이다.
그것은 분명히 네 탓이다.
TV에 나와 자신의 힘든 점을 털어놓는 연예인을 향한 시선은 언제나 폭력적이다. 인간적인 이해의 선에서 포용 가능할, 그조차 포용하기 어렵다면 차라리 무관심할 수 있을 하소연 하나에도, '네가 선택한 삶이니 감수해라, 너보다 힘든 사람 많다, 너는 돈이라도 많이 벌지'라는 비인간적인 반응과 비아냥만이 부메랑처럼 날아가 꽂힌다.
연예인이기 이전에 '사람'으로서 힘들었다 말하는 이의 직업이 '연예'인인 이상, 그것은 모두 그 연예인의 몫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주관적으로 힘든 일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억울할 일을 당해도 이것은 마찬가지다.
도촬을 당하고 그것으로 인해 개인의 사생활이 방방곡곡으로 무섭게 퍼져 나가 심각한 사생활 침해 피해를 입은 연예인이 있다면, 그것은 범죄의 피해를 입은 연예인이 아니라 그와 같은 사생활을 본인의 동의 없이 몰래 촬영하고 유포한 이에게 잘못을 물어야 할 일이다. 하지만 사진이 찍힌 그에게 '그러게 왜 그런 사진을 찍히고 다니느냐'며, '조심 좀 하지 그랬어'라고 탓하는 게 현실이지.
그것이 '조심했더라면 충분히 피할 수 있었다'는 논리로 뒷받침될 비난이라면, 성폭행 피해자에게 '그러게 왜 어두운 길로 가고 그랬어, 그러게 왜 밤길에 혼자 다니고 그랬어, 그러게 왜 짧은 치마를 입고 그랬어'라는 비난이 성립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에도 동의할 수 있어야 하지.
애당초 나는 저 둘의 차이를 조금도 모르겠다.
회사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아 힘들어하는 이에게 '네가 선택한 회사니 감수해라, 너보다 힘든 사람 많다, 네 회사는 돈이라도 많이 주지'라는 위로를 해 줄 리도, 남편과 다투었다 하소연하는 친구에게 '네가 선택한 남편이니 감수해라, 너보다 힘든 사람 많다, 네 남편은 돈이라도 많이 벌지'라고 위로할 리는 없는데도,
유독 연예인의 삶에 대해서만은 이 폭력에 가까운 비약에 추천이 몇백 몇천이 될 수 있는 이유는, 일종의 '보복적 보상 심리'가 작용하는 때문일 테다.
한 명의 개인으로서의 나는 네 높은 위상 앞에 그저 너를 부러워할 만큼 하잘것없지만, 나와 같은 처지의 익명의 다수 속에 함께인 나는 이렇듯 네게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존재라는, 상대적 박탈감과 기묘하게 뒤섞여 괴이하게 뒤틀린 우월감.
내가 개인이 아니라 '대중'이 되었을 때, 나는 네게 영향을 끼칠 만한 존재다, 하는. 그런 식으로 '내가 혼자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존재에 대한 자기영향력을 확인하고, 인정받고, 검증하고자 하는.
안타까울 노릇이지.
'아이돌은 팬의 돈으로 사는 거니까, 너는 내 환상을 지켜야 한다',
이만한 '갑질' 앞에, 개인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소비가 실은 그 아이돌의 재정에 하등 영향력을 끼치지 못한다는 지극한 사실은 무시된다.
애당초 개인으로 얼마의 돈지랄을 하든 그것이 그 아이돌이 먹고 사는 데 자신이 기대하는 만큼의 영향력이 있을까. 그러나 그것이 나와 같은 처지의, '나와 같이 그 아이돌에게 끝없이 돈지랄을 하는' 이들과 함께라 생각한다면, 나는 그 아이돌에게 갑질할 용기와 힘이 생기는 거다.
모든 것을 물질로 치환하는 이 천박한 시장 논리 속에는 내가 네 이미지를 구매했다, 네게서 환상을 샀다, 그러므로 나는 너의 사생활에마저 간섭할 권리가 있다,가 포함된다.
그러나 여기서 가장 엿같은 건 그것이 얼마나 뒤틀린 폭력인지를, 조금도 자각하지 못하는 이 '보편타당한' 갑질의식이다.
내게 돈을 주고 나를 고용한 고용인이 내게, '나는 너의 예쁘고 청순한 외모를 원해서 너를 고용했다, 그러니 너는 부지런히 몸매를 가꿔라, 그리고 너는 내게 내가 산 너의 '청순함에 대한 환상'을 지켜야 하므로 너는 내 앞에서 늘 처녀 행세를 해야 한다, 그리고 연애는 하지 말고 너의 처녀성을 지키거나, 그러지 못할 거라면 영원히 내게 네 연애 사실을 들켜선 안 된다'고 요구한다면, 나는 그것을 내게 돈을 지불하는 이의 정당한 요구라고 수용할 수 있을까.
있다고 여긴다면야 그는 시장논리에 바야흐로 인간성을 잠식 당했다거나, 물질만능주의를 신봉하느라 인권감수성이 그야말로 바닥인 인간일 수밖에.
심지어 대중과 팬은 '고용자'가 아니라 '자발적 선택'으로 그들에게 재화를 지불하는 존재이다. 그들을 고용해 그들에게 재화를 지불하는, 고용 관계로 묶인 존재가 아니란 거다. 누구도 당신에게 이 상품에 갑질을 하면서까지 이 상품을 구매하라 강요하지 않았다. 그것은 당신의 '자유의지'였으니까 말이다.
한번만 읽고가면 진짜 생각바뀐다 나도그렇고
여론이라는 것이 지닌 속성이 본래부터 그러하지만 십대는 내 세계가 아직 완전히 서 있지 않아, 내가 보는 나보다 남이 보는 나에 더 민감히 반응하며 내가 하는 생각보다 남들의 생각에 더 휩쓸리기 쉬운 시기이기 때문에.
바로 서지 못한 나의 '의견'은 그것을 지지하거나 지탱해 줄 익명의 다수에 의해서만 그 힘을 얻는다.
그리고 그 동의를 구하고 그것을 인정받는 또래집단의 공개 재판 과정에서, 거의 필연적으로 누군가는 깊게 다친다.
'누군가가 다친다'는 것, 그것이 늘 문제였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다.
'아이돌(idol)'.
그를 아이돌이기 이전에 '사람'으로써 좋아하는 이가 있다면, '아이돌'로써의 그를 소비하는 이들도 많다는 것을 안다.
'연예인'이라는 존재에서 '연예'에 방점을 찍느냐 '인'에 방점을 찍느냐는 그의 인간적 가치 또는 상품적 가치를 소비하는 '소비자'들에 있기 때문에.
그렇기에 아이돌은 숙명적으로 대중의 기대와 팬의 환상을 유지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는 것도.
물론 이 '의무'라는 어휘의 선택조차 어느 아이돌의 팬인 나로서는 엿같지만, 우리나라 대중연예계 속 대중과 팬이라는 이름의 이들이 아이돌의 존재를 소비하는 꼴을 보고 있자면 이것은 '의무'가 맞다.
아이돌의 열애설, 또는 사생활 사진을 접한 이들이, 그 이슈의 당사자에게 '아이돌로서의 책무를 다하지 못했다' 충고든 조언이든 선생질이든 뭔가를 하고 싶은 거라면, 그래, 그것은 이해 가능한 범위이다.
허나 그것이 '범죄'가 아닌 이상, 도덕적으로 지탄받고 매도되어야 할 일이 아닌 이상, '한 개인으로서의' 지탄과 비난이라면 그것은 웃기지 않은 코미디이자, 개인에 대한 '인격 학대'다. 그것이 한 개인으로서의 '인성'이 운운될 부분이라 생각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인성이라는 개념에 대한 정의가 대단히 왜곡되고 편협하며 엿같이 자리한 당신의 탓이다.
그것은 분명히 네 탓이다.
TV에 나와 자신의 힘든 점을 털어놓는 연예인을 향한 시선은 언제나 폭력적이다. 인간적인 이해의 선에서 포용 가능할, 그조차 포용하기 어렵다면 차라리 무관심할 수 있을 하소연 하나에도, '네가 선택한 삶이니 감수해라, 너보다 힘든 사람 많다, 너는 돈이라도 많이 벌지'라는 비인간적인 반응과 비아냥만이 부메랑처럼 날아가 꽂힌다.
연예인이기 이전에 '사람'으로서 힘들었다 말하는 이의 직업이 '연예'인인 이상, 그것은 모두 그 연예인의 몫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주관적으로 힘든 일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억울할 일을 당해도 이것은 마찬가지다.
도촬을 당하고 그것으로 인해 개인의 사생활이 방방곡곡으로 무섭게 퍼져 나가 심각한 사생활 침해 피해를 입은 연예인이 있다면, 그것은 범죄의 피해를 입은 연예인이 아니라 그와 같은 사생활을 본인의 동의 없이 몰래 촬영하고 유포한 이에게 잘못을 물어야 할 일이다. 하지만 사진이 찍힌 그에게 '그러게 왜 그런 사진을 찍히고 다니느냐'며, '조심 좀 하지 그랬어'라고 탓하는 게 현실이지.
그것이 '조심했더라면 충분히 피할 수 있었다'는 논리로 뒷받침될 비난이라면, 성폭행 피해자에게 '그러게 왜 어두운 길로 가고 그랬어, 그러게 왜 밤길에 혼자 다니고 그랬어, 그러게 왜 짧은 치마를 입고 그랬어'라는 비난이 성립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에도 동의할 수 있어야 하지.
애당초 나는 저 둘의 차이를 조금도 모르겠다.
회사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아 힘들어하는 이에게 '네가 선택한 회사니 감수해라, 너보다 힘든 사람 많다, 네 회사는 돈이라도 많이 주지'라는 위로를 해 줄 리도, 남편과 다투었다 하소연하는 친구에게 '네가 선택한 남편이니 감수해라, 너보다 힘든 사람 많다, 네 남편은 돈이라도 많이 벌지'라고 위로할 리는 없는데도,
유독 연예인의 삶에 대해서만은 이 폭력에 가까운 비약에 추천이 몇백 몇천이 될 수 있는 이유는, 일종의 '보복적 보상 심리'가 작용하는 때문일 테다.
한 명의 개인으로서의 나는 네 높은 위상 앞에 그저 너를 부러워할 만큼 하잘것없지만, 나와 같은 처지의 익명의 다수 속에 함께인 나는 이렇듯 네게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존재라는, 상대적 박탈감과 기묘하게 뒤섞여 괴이하게 뒤틀린 우월감.
내가 개인이 아니라 '대중'이 되었을 때, 나는 네게 영향을 끼칠 만한 존재다, 하는. 그런 식으로 '내가 혼자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존재에 대한 자기영향력을 확인하고, 인정받고, 검증하고자 하는.
안타까울 노릇이지.
'아이돌은 팬의 돈으로 사는 거니까, 너는 내 환상을 지켜야 한다',
이만한 '갑질' 앞에, 개인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소비가 실은 그 아이돌의 재정에 하등 영향력을 끼치지 못한다는 지극한 사실은 무시된다.
애당초 개인으로 얼마의 돈지랄을 하든 그것이 그 아이돌이 먹고 사는 데 자신이 기대하는 만큼의 영향력이 있을까. 그러나 그것이 나와 같은 처지의, '나와 같이 그 아이돌에게 끝없이 돈지랄을 하는' 이들과 함께라 생각한다면, 나는 그 아이돌에게 갑질할 용기와 힘이 생기는 거다.
모든 것을 물질로 치환하는 이 천박한 시장 논리 속에는 내가 네 이미지를 구매했다, 네게서 환상을 샀다, 그러므로 나는 너의 사생활에마저 간섭할 권리가 있다,가 포함된다.
그러나 여기서 가장 엿같은 건 그것이 얼마나 뒤틀린 폭력인지를, 조금도 자각하지 못하는 이 '보편타당한' 갑질의식이다.
내게 돈을 주고 나를 고용한 고용인이 내게, '나는 너의 예쁘고 청순한 외모를 원해서 너를 고용했다, 그러니 너는 부지런히 몸매를 가꿔라, 그리고 너는 내게 내가 산 너의 '청순함에 대한 환상'을 지켜야 하므로 너는 내 앞에서 늘 처녀 행세를 해야 한다, 그리고 연애는 하지 말고 너의 처녀성을 지키거나, 그러지 못할 거라면 영원히 내게 네 연애 사실을 들켜선 안 된다'고 요구한다면, 나는 그것을 내게 돈을 지불하는 이의 정당한 요구라고 수용할 수 있을까.
있다고 여긴다면야 그는 시장논리에 바야흐로 인간성을 잠식 당했다거나, 물질만능주의를 신봉하느라 인권감수성이 그야말로 바닥인 인간일 수밖에.
심지어 대중과 팬은 '고용자'가 아니라 '자발적 선택'으로 그들에게 재화를 지불하는 존재이다. 그들을 고용해 그들에게 재화를 지불하는, 고용 관계로 묶인 존재가 아니란 거다. 누구도 당신에게 이 상품에 갑질을 하면서까지 이 상품을 구매하라 강요하지 않았다. 그것은 당신의 '자유의지'였으니까 말이다.
왜 이걸 잊는 건지.
[출처] 아이돌의 굴레. 환호의 두 얼굴.|작성자 갓한빈
여론이라는 것이 지닌 속성이 본래부터 그러하지만 십대는 내 세계가 아직 완전히 서 있지 않아, 내가 보는 나보다 남이 보는 나에 더 민감히 반응하며 내가 하는 생각보다 남들의 생각에 더 휩쓸리기 쉬운 시기이기 때문에.
바로 서지 못한 나의 '의견'은 그것을 지지하거나 지탱해 줄 익명의 다수에 의해서만 그 힘을 얻는다.
그리고 그 동의를 구하고 그것을 인정받는 또래집단의 공개 재판 과정에서, 거의 필연적으로 누군가는 깊게 다친다.
'누군가가 다친다'는 것, 그것이 늘 문제였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다.
'아이돌(idol)'.
그를 아이돌이기 이전에 '사람'으로써 좋아하는 이가 있다면, '아이돌'로써의 그를 소비하는 이들도 많다는 것을 안다.
'연예인'이라는 존재에서 '연예'에 방점을 찍느냐 '인'에 방점을 찍느냐는 그의 인간적 가치 또는 상품적 가치를 소비하는 '소비자'들에 있기 때문에.
그렇기에 아이돌은 숙명적으로 대중의 기대와 팬의 환상을 유지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는 것도.
물론 이 '의무'라는 어휘의 선택조차 어느 아이돌의 팬인 나로서는 엿같지만, 우리나라 대중연예계 속 대중과 팬이라는 이름의 이들이 아이돌의 존재를 소비하는 꼴을 보고 있자면 이것은 '의무'가 맞다.
아이돌의 열애설, 또는 사생활 사진을 접한 이들이, 그 이슈의 당사자에게 '아이돌로서의 책무를 다하지 못했다' 충고든 조언이든 선생질이든 뭔가를 하고 싶은 거라면, 그래, 그것은 이해 가능한 범위이다.
허나 그것이 '범죄'가 아닌 이상, 도덕적으로 지탄받고 매도되어야 할 일이 아닌 이상, '한 개인으로서의' 지탄과 비난이라면 그것은 웃기지 않은 코미디이자, 개인에 대한 '인격 학대'다. 그것이 한 개인으로서의 '인성'이 운운될 부분이라 생각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인성이라는 개념에 대한 정의가 대단히 왜곡되고 편협하며 엿같이 자리한 당신의 탓이다.
그것은 분명히 네 탓이다.
TV에 나와 자신의 힘든 점을 털어놓는 연예인을 향한 시선은 언제나 폭력적이다. 인간적인 이해의 선에서 포용 가능할, 그조차 포용하기 어렵다면 차라리 무관심할 수 있을 하소연 하나에도, '네가 선택한 삶이니 감수해라, 너보다 힘든 사람 많다, 너는 돈이라도 많이 벌지'라는 비인간적인 반응과 비아냥만이 부메랑처럼 날아가 꽂힌다.
연예인이기 이전에 '사람'으로서 힘들었다 말하는 이의 직업이 '연예'인인 이상, 그것은 모두 그 연예인의 몫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주관적으로 힘든 일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억울할 일을 당해도 이것은 마찬가지다.
도촬을 당하고 그것으로 인해 개인의 사생활이 방방곡곡으로 무섭게 퍼져 나가 심각한 사생활 침해 피해를 입은 연예인이 있다면, 그것은 범죄의 피해를 입은 연예인이 아니라 그와 같은 사생활을 본인의 동의 없이 몰래 촬영하고 유포한 이에게 잘못을 물어야 할 일이다. 하지만 사진이 찍힌 그에게 '그러게 왜 그런 사진을 찍히고 다니느냐'며, '조심 좀 하지 그랬어'라고 탓하는 게 현실이지.
그것이 '조심했더라면 충분히 피할 수 있었다'는 논리로 뒷받침될 비난이라면, 성폭행 피해자에게 '그러게 왜 어두운 길로 가고 그랬어, 그러게 왜 밤길에 혼자 다니고 그랬어, 그러게 왜 짧은 치마를 입고 그랬어'라는 비난이 성립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에도 동의할 수 있어야 하지.
애당초 나는 저 둘의 차이를 조금도 모르겠다.
회사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아 힘들어하는 이에게 '네가 선택한 회사니 감수해라, 너보다 힘든 사람 많다, 네 회사는 돈이라도 많이 주지'라는 위로를 해 줄 리도, 남편과 다투었다 하소연하는 친구에게 '네가 선택한 남편이니 감수해라, 너보다 힘든 사람 많다, 네 남편은 돈이라도 많이 벌지'라고 위로할 리는 없는데도,
유독 연예인의 삶에 대해서만은 이 폭력에 가까운 비약에 추천이 몇백 몇천이 될 수 있는 이유는, 일종의 '보복적 보상 심리'가 작용하는 때문일 테다.
한 명의 개인으로서의 나는 네 높은 위상 앞에 그저 너를 부러워할 만큼 하잘것없지만, 나와 같은 처지의 익명의 다수 속에 함께인 나는 이렇듯 네게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존재라는, 상대적 박탈감과 기묘하게 뒤섞여 괴이하게 뒤틀린 우월감.
내가 개인이 아니라 '대중'이 되었을 때, 나는 네게 영향을 끼칠 만한 존재다, 하는. 그런 식으로 '내가 혼자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존재에 대한 자기영향력을 확인하고, 인정받고, 검증하고자 하는.
안타까울 노릇이지.
'아이돌은 팬의 돈으로 사는 거니까, 너는 내 환상을 지켜야 한다',
이만한 '갑질' 앞에, 개인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소비가 실은 그 아이돌의 재정에 하등 영향력을 끼치지 못한다는 지극한 사실은 무시된다.
애당초 개인으로 얼마의 돈지랄을 하든 그것이 그 아이돌이 먹고 사는 데 자신이 기대하는 만큼의 영향력이 있을까. 그러나 그것이 나와 같은 처지의, '나와 같이 그 아이돌에게 끝없이 돈지랄을 하는' 이들과 함께라 생각한다면, 나는 그 아이돌에게 갑질할 용기와 힘이 생기는 거다.
모든 것을 물질로 치환하는 이 천박한 시장 논리 속에는 내가 네 이미지를 구매했다, 네게서 환상을 샀다, 그러므로 나는 너의 사생활에마저 간섭할 권리가 있다,가 포함된다.
그러나 여기서 가장 엿같은 건 그것이 얼마나 뒤틀린 폭력인지를, 조금도 자각하지 못하는 이 '보편타당한' 갑질의식이다.
내게 돈을 주고 나를 고용한 고용인이 내게, '나는 너의 예쁘고 청순한 외모를 원해서 너를 고용했다, 그러니 너는 부지런히 몸매를 가꿔라, 그리고 너는 내게 내가 산 너의 '청순함에 대한 환상'을 지켜야 하므로 너는 내 앞에서 늘 처녀 행세를 해야 한다, 그리고 연애는 하지 말고 너의 처녀성을 지키거나, 그러지 못할 거라면 영원히 내게 네 연애 사실을 들켜선 안 된다'고 요구한다면, 나는 그것을 내게 돈을 지불하는 이의 정당한 요구라고 수용할 수 있을까.
있다고 여긴다면야 그는 시장논리에 바야흐로 인간성을 잠식 당했다거나, 물질만능주의를 신봉하느라 인권감수성이 그야말로 바닥인 인간일 수밖에.
심지어 대중과 팬은 '고용자'가 아니라 '자발적 선택'으로 그들에게 재화를 지불하는 존재이다. 그들을 고용해 그들에게 재화를 지불하는, 고용 관계로 묶인 존재가 아니란 거다. 누구도 당신에게 이 상품에 갑질을 하면서까지 이 상품을 구매하라 강요하지 않았다. 그것은 당신의 '자유의지'였으니까 말이다.
왜 이걸 잊는 건지.
[출처] 아이돌의 굴레. 환호의 두 얼굴.|작성자 갓한빈
이거읽고 나니까 진짜 생각이 달라짐 구준회는 공인으로서 잘못한게 없음 진짜로 '공인이니까 조심해서 사진도 찍히지 말았어야지 하고 여자니까 조심해서 성폭행당하지 말았어야지와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 는 말이 인상 깊었음. 참고로 머글임 페북떠서 서치했음 원문 보고싶은사람은 링크타고 들어가서 보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