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의 한 갈래로 'Positive Phychology'라는 것이 있다. 우리말로는 '긍정심리학'쯤 되겠다. '긍정심리학'이 있다는 것은 '부정심리학'이 있다는 말이냐라는 반문을 가능하게 한다. 그렇다. '긍정'이라는 이름을 달고 나온데에는 그동안은 심리학이 주로 인간의 이상(異常; 정상이 아닌) 상태에 초점을 맞추어 이를 진단하고 처방하는 역할을 해 왔다는 것에서 기인한다.
종래 (행동과학적) 심리학에서 연구의 대상은 주로 "상식에서 벗어난 인간들의 행동"이다. 상식으로부터 벗어나는 사람들이 취하는 행위 양식의 공통점들을 연구하고 상담이 필요한 사람은 상담을, 치료가 필요한 사람에게는 치료를, 격리가 필요한 경우 격리한다. 이것이 처방이다. 즉, 이상상태의 관찰 - 진단 - 처방의 순서를 밟는다.
이에 비하여 긍정심리학은 용어에서 풍기는 느낌대로 존재와 현상 자체를 인정한다. 그리고 관찰대상이 가지고 있는 잠재적 능력을 찾아내려 노력한다. 관찰대상의 부정적 행태에 주목하기 보다 이 사람이 앞으로 보여줄 수 있는 능력,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 등에 더욱주목한다. 그래서 작은 것이라도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요소가 있다면 그 점을발굴하여 지속적으로 격려, 고무, 촉진한다. 그래서 긍정심리학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즉, 인간을 통제와 처방이 필요한 대상으로 볼 것이냐, 잠재적 가능성에 초점을 두고 긍정적 요소를 촉진시켜줄 것이냐가 두 접근방식의 차이이다.
통제와 처방에 의존하는 리더쉽
당연히 우리 주변에도 구성원을 통제와 처방이 필요한 대상으로 파악하는 리더가 많다. 이런 리더는 구성원들에게서 끊임없이 문제점을 발견하기 위해서 노력한다. 그래서 발견된 문제점을 지적해주고 분석하며, 시정해주는 것을 리더의 미덕으로 안다. 물론 구성원들에게서 발견된 문제점은 위에서 언급한 '상식에서 벗어난 것'들이다. 처방의 방식은 뻔하다. "상식 안으로 들어오도록 강제하거나 유도하는 것"이다. 이러한 통제에 구성원이 따라주면 그에 대한 보상이 주어지고 지속적으로 벋어나려 할 경우 불이익을 준다.
리더의 지위가 높고 권한이 큰 경우 이런 리더쉽이 많이 발견된다. 이러한 리더쉽에서는 의사결정이 항상 위에서 아래로 수직적으로 이루어진다. 군대, 경찰 이런 조직에서는 이런 리더쉽이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그러나 혹시 교사들의 조직이나 학급운영을 할 때 이런 방식에 의존하는 교사가 있다면 크게 고민해 볼 일이다.
공유와 촉진을 중시하는 리더쉽
한편 구성원들의 잠재적 능력과 가능성을 발견하기 위하여 늘 노력하는 리더쉽은 설사 문제점을 발견했다 하더라도 이것을 긍정적으로 환원하여 볼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모든 것을 구성원 개인이 가진 '에너지'의 한 종류로 보고 그것을 건강한 쪽으로 유도하며 방향을 제시하고 옆에서 함께 고민한다. 이것이 촉진(facilitation)이다. 다음 강좌에서 다시 언급하겠지만 이런 성향의 리더는 구성원에게 무엇을 지시하기 보다 먼저 본(model)을 보인다. 그리고 그것을 따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한다. 성과물은 늘 공유되거나 구성원들이 노력한 댓가로 돌려진다. 어떤 경우 누가 리더이고 누가 구성원인지 분간이 어려울 때도 있다. 질서와 규율이 잡혀있지 않은 듯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안목을
가진 리더와 그의 조직은 "자유로움 속의 질서", "잠재적 가능성의 발현", "책임과 권한의 공유"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면서 "수평적이고 민주적인 조직"으로 발전해 간다.
나는 어떤 리더인가?
공유와 촉진이 있는 조직에서 자유로운 상상력과 창의력, 문제해결력이 신장된다. 구성원들은 합리적 절차에 따라 민주적으로 의사결정을 하고 결정된 사항을 잘 추진하며 반성적 사고를 통하여 다음 과제를 처리하기 위한 준비를 한다. 활동 과정 자체가 에너지를 축적해 가는 과정이요, 그 성과가 고스란히 구성원들의 능력을 신장하는 쪽으로 환원된다. 결국, 의도하지 않아도 조직에서 이뤄낸 성과의 양과 질은 통제와 처방에 의존하는 리더쉽보다 크다. 게다가 활동 자체가 즐겁다. 지금 내가 이끄는 조직 혹은 학급을 대상으로 관찰해 보라.
구성원들이 나의 눈치를 많이 보는 분위기인지, 늘 행복해 하는지, 의사결정은 주로 내가 하는지, 구성원들이 공동으로 참여하는지, 물 흐르듯 소통이 잘 되는지, 리더의 지시가 없으면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 조직인지...어렵지 않게 내가 어떤 리더인지 알 수 있다.
원칙은 기본, 유연성은 양념
원칙이란 무엇인가?
원칙이라 함은 근본이 되는 법칙, 다시 말해 여러 사물이나 일반 현상에 두루 적용되는 법칙을 말한다. 인간관계나 상하관계, 지도 - 피지도의 관계에서도 원칙이라는 말은 많이 쓰인다. 기본 원리를 중시하고 매사에 그 원리에 따라 일을 처리하는 사람은 "원칙적인 사람"이라는 말을 듣는다. 물론 원칙이라는 용어가 꼭 긍정적으로만 쓰이는 것은 아니다. 고지식한 사람, 융통성이라고는 없는 비타협적인 사람을 에둘러 부를 때도 "원칙에 충실한 사람"이라는 말을 한다.
또한 이런 경우에 "그 사람은 융통성이 부족해"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이는 원칙과 유연성이 갖는 함수 관계에서 비롯된다. 이성에 호소하는 원칙 원칙은 주로 인간의 이성에 호소한다. "원칙대로"라는 말은 그 속에 "공평무사"를 내포한다. 따라서 원칙대로 일 처리가 될 경우 크게 이득볼 것도 없지만 손해도 보지 않는다라는 느낌을 구성원에게 줄 수 있다. 2월말 교무실 풍경을 떠 올려 보자. 이 때는 교사들의 일년 업무가 발표되는 시기이기 때문에 가장 많은 신경이 쓰인다. 품위 속에 감추어 두었던 개개인의 인간적 면모가 드러나는 시기이기도 하다. 당연하다. 어떤 학년, 어떤 업무를 맡느냐에 따라 앞으로의 일년이 편할 수도 있고, 매우 힘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학교 사회에서 "하루만 제대로 인간성 보이면 일년이 편하다."라는 말이 생겨났을까? 이때만큼 학교장의 리더쉽이 중요하게 부각되는 때가 없다. 모든 교사들의 불만을 최소화시키면서도 업무능률을 올릴 수 있는 분위기를 위하여 지도력을 발휘하는 교장이 인기를 얻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답은 매우 간단하다. 바로 원칙이다. 인력을 배치하는데 모두가 공감을 할 수 있는 원칙을 수립하고 학교장 자신부터 그 원칙에 따라 업무를 처리하면 된다. 이러한 원리는 곧바로 교실로 이어진다. 학기초에 아이들은 담임이 어떤 사람인지를 탐색한다.
우리 담임이 원칙적인 사람인지, 아니면 원칙없이 그저 상황이 닥치면 즉흥적으로 판단하고 그에 따라 강요하는 스타일인지 아이들은 대개 일주일이면 담임의 스타일을 파악한다. 그리고는 담임의 스타일에 적응한다. 원칙을 중시하는 담임의 경우 아이들 역시 원칙에 따라 움직인다. 그렇지 않은 경우 끊임없이 담임의 눈치를 보게 될 것이고 임기응변이 늘어갈 것이다. 원칙은 모든 구성원들이 편안함을 느끼는 최대공약수이다. 원칙은 어떻게 수립하는가? 원칙은 이미 존재하는 것일까? 아니면 때와 장소에 따라 달라지는 것일까? 원칙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역시 답은 간결하다. 이미 존재하는 원칙이 있고 조직에 따라 달라지는 원칙이 있다. 학교에서는 "민주주의 일반원리"가 대원칙이다. 민주주의 일반원리에 따라 조직이 구성되고 다시 그 조직에서 필요한 원칙은 구성원들의 합의에 의해 만들어진다. 다시 말해 학교에서 인사이동이 말썽없이 이루어지려면 "구성원들의 자발적인 의사에 의하여 인사위원회를 구성"하고 인사위원회는 정해진 절차에 따라 인사작업을 진행하면 된다. 학급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학급구성원에 의하여 학급에서 지켜야 할 일이나 역할분담을 정하는 절차를 거치게 하는 것이 원칙이 통용되게 하는 근거가 된다. 이와 같이 원칙이 힘을 발휘하려면 제도의 바탕이 있어야 한다. 또한 반드시 해당 조직의 구성원에 의하여 수립된 원칙이라야 힘을 발휘한다. 리더는 이 원칙을 잘 이해하고 그리고 원칙을 지키기 위하여 노력해야 하며 원칙에 어긋날 때에는 이를 개선하기 위한 방안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원칙은 모든 구성원들이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최대공약수이다. 원칙은 기본, 유연성은 양념 어떤 조직이 철저하게 원칙으로 무장되어 한치의 오차도 없이 운영된다고 하면 어떨까? 이성적인 사람들은 편안함을 느낀다. 이성적인 취향의 사람들은 대체로 제도와 절차를 중시하기 때문에 원칙과 규율에 익숙하다. 한편 조직에는 감성적 취향의 사람들도 많다. 감성적 취향의 사람들은 제도와 절차가 철저하게 지켜지는 분위기를 대체로 답답해 한다. 따라서 100% 원칙에만 의하여 움직이는 조직은 구성원들을 쉽게 지치게 만들며 조직에 대한 압박감을 줄 우려가 있다. 그렇다고 원칙을 훼손해서는 안된다는 대전제가 있다고 할 때, 우리는 "유연성"에 대하여 생각하게 된다. 리더는 원칙을 굳건하게 지키면서 구성원, 때, 장소에 맞게 유연성을 발휘해야 한다.
이때 리더의 능력이 드러난다. 리더의 유연성은 감성적 호소력을 갖는다. 또한 감성적 취향의 구성원들이 내 놓는 아이디어가 대단히 창의적일 때가 많다. 원칙만을 강조하다 보면 이러한 아이디어와 상상력이 제대로 분출되지 않는다. 물론 리더는 유연함을 보이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유연함을 보이면서 안목을 가지고 구성원을 관찰하여야 한다. 어떤 경우에 구성원이 편안함을 느끼면서 상상력을 발휘하는지, 즐거워하는지...등등... 즉, 원칙을 기본으로 하고 유연성을 양념으로 하는 리더의 자질은 조직 구성원이 가진 능력의 총합을 이끌어 내는 데 필수적인 조건이다. 구성원들의 눈은 의외로 높아서 원칙이 지켜지는 조직을 원하면서도 신나고 즐거웠으면 한다. 이러한 원칙과 유연성의 간격을 조절하는 기술, 리더의 위치에 있는 사람은 늘 고민해야 할 덕목이다.
리더쉽은 선택과 판단의 예술
조직의 향배를 결정하는 리더의 판단
리더에게 주어지는 역할 가운데 가장 크고 중요한 것은 역시 '판단'이다. 리더가 어떤 판단을 내리느냐에 따라 조직의 방향과, 역할, 그리고 구성원들의 임무가 달라지는 것은 물론이고 조직이 더욱 발전할 수도 있으며 때로는 리더의 잘못된 판단으로 인하여 조직이 쇠락의 길을 걸을 수도 있다. 아울러 리더에게는 끊임없이 선택이 요구된다.
특정한 사안에 대하여나, 또는 인적 자원의 배치에 대해서나 선택을 해야 하는 일이 많다. 선택에 앞서 고민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허락되는 경우도 있지만 어떤 경우에는 불가피하게 순간적으로 선택을 해야만 하는 경우도 있다. 학급운영하는 담임의 입장에서,동료교사들을 이끄는 리더의 입장에서 선택과 판단의 문제는 끊임없는 진행형의 과제이다.
경중완급을 구분하라.
그러면 이러한 선택과 판단에서 기준이 되는 것은 무엇일까? 대개의 리더들은 전략적 과제 (조직의 장기적 목표) 속에서 시기별, 사안별로 선택하거나 판단을 한다. - 물론 무엇을 전략적 과제로삼고 무엇이 시기별 과제인지를 구분하는 것 역시 만만치 않은 리더의 소양이기 때문에 이 부분은 따로 떼어 나중에 다루기로 하겠다. - 그러나 리더에게 주어지는 선택, 판단의 과제는 정답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어느 한쪽으로 결정했을 때 구성원의 일부는 환영하지만 일부는 불만을 가질 수도 있다. 그래서 어느 하나를 선택하거나 판단을 내릴 때에는 리더 자신의 기준이 필요하다. 필자는 이것을 '경중완급'을 구분할 수 있는 리더의 소양이라고 생각한다.
무엇이 조직을 위해서 가장 중요한 일이고, 무엇이 급한 일이고...등등 수 많은 사안들 중에서 업무의 우선순위를 구분하고 가려내어 판단하는 일에서 리더쉽의 차이가 발생한다. 또한 중요한 만큼 무게감을 가지고 사안을 대해야 할 것이며 급한 만큼만 서둘러야 할 것이다. 때로 덜 급한 사안을 급하게 밀어부치거나 그 정도로 중요한 사안은 아닌데 너무 비중있게 다루게 되면 필연적으로 정말 급하고 중요한 사안이 닥쳤을 때 구성원을 설득해 내는 힘이 부족할 수 밖에 없다.
주객관적 조건을 살피는 능력
객관적 조건이란 조직을 둘러싸고 있는 제반의 여건을 말한다. 계절이 바뀐다든지, 교육정책이 바뀐다든지...이러한 조건들은 리더나 조직 구성원의 힘으로 변화시키기 힘들다. 따라서 이러한 객관적 조건은 리더의 판단에 가장 중요한 변수가 된다. 주체적 조건이란 간단히 말해 리더 또는 조직이 가지고 있는 능력이다. 어떤 과제를 수행할 능력이 얼마나 되는가가 바로 주체적 조건이다. 객관적 조건이 무르익었다고 하더라도 어떤 과제를 실현할 수 있는 주체적 조건이 충족되지 못한 경우에는 판단이 달라지는 것이다. 반대로 주체의 능력과 사기가 아무리 충만하다 할지라도 외부적 조건이 성숙되지 않았다면 어떤 것을 결정하기 힘들다. 이와 같이 리더는 내외부의 조건들을 면밀하게 살피고 그 조건들이 시사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인식할 때 가장 합리적인 선택과 판단을 하게 된다.
다수의 입장을 반영하되 소수를 고려하는 선택과 판단
어떤 사안을 선택함에 있어 중요한 것은 리더 자신의 판단이고 이 판단은 당시 상황에서보다 중요하고, 보다 급한 것부터 적용된다는 것 외에도 이러한 판단에 대한 구성원의 반응을 조사하거나 예측해보는 것 역시 선택과 판단에 앞서 중요한 과제이다. 이러한 미세한 과정에서 리더의 능력이 드러나게 되는데, 가령 어떤 리더는 무엇을 결정하기에 앞서 이 결정이 내려졌을 때 구성원들의 반응을 예측하고 불만을 가질 수 밖에 없는 구성원들을 위한 조치를 동시에 생각한다.
즉, 역량의 총합을 도모하면서도 불만요소는 최소화하여 모두 함께 가는 방식을 택한다. 이것이 다수의 입장을 반영하면서 소수를 고려하는 선택과 판단이다.
선택과 판단의 시기
주객관적인 조건이 충족되고 구성원들의 의견도 확인이 되었을 때 리더는 어느 하나를 선택하거나 어떤 사안에 대한 판단을 내리게 된다. 판단은 시행을 전제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시기가 매우 중요하다. 아무리 절묘한 판단도 최적의 시기를 놓치면 그 효용가치가 떨어진다. 특히 교컴과 같은 커뮤니티에서는 언제 판단(선택)하고 언제 시행하느냐가 그 활동의 효과를 상당 부분 결정 짓는다.
예컨데, 가을 이벤트는 늦여름에서 초가을에 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가을이 완전히 무르익었거나 늦가을에 하게 되면 효과가 상실된다. 학급 이벤트를 할 때도 학급구성원들이 이름을 익히고 서로 사귀는 것을 목표로 할 때는 학기초가 좋겠지만 구성원들의 활동을 반성하고 격려하는 차원이라면 구성원들끼리 익숙한 상태의 시기를 골라야 한다. 가끔 이러한 시기상의 오류를 범하여 활동의 효과를 반감시키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이런 경우 우리는 "실기(失期)"했다고 한다.
최적의 시기를 살리지 못한 경우에는 해당 활동에 대한 효과가 반감되는 것 뿐만 아니라 앞으로 전개될 활동에 까지 두고두고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다.
결국, 리더가 행하는 선택과 판단은 경중완급에 대한 안목, 주객관적 조건을 살피는 지혜,구성원의 의견 분포를 읽어내는 소양에다 적절한 시기를 택할 수 있는 능력이 통합적으로 어우러져 가장 합리적 결과를 기대하게 하는 요소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리더쉽은 선택과 판단의 예술이다.
공사(公私)를 철저하게 구분하라
조직의 기강을 무너뜨리는 사적 관계의 범람
리더인 사람, 혹은 앞으로 리더가 될 사람이 썩 좋은 평가를 받고 있지 못하다면 가장 먼저 검토해 보아야 할 것이 '공사(公私)의 구분을 확실하게 하고 있는가'이다. 공사(公私) 구분의 모호함은 조직의 기강이 무너지는 첫 번째 신호가 된다.
리더를 포함하여 조직 안에 있는 구성원들은 끊임없이 공적 관계 외에 사적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한다. 사적 관계를 통한 영향력의 발휘가 공적 절차를 통한 해결보다 더 약발이 먹혔던 경험을 가지고 있는 경우에는 이러한 정도가 더욱 심하게 나타난다.
그래서 우리 주변에는 친목이라는 미명 아래 공과 사의 경계선을 넘나들며 인간적으로 친밀한 관계를 구축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다. 친목이나 혹은 인화가 모두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문제는 이렇게 사적 관계를 통하여 구축된 네트워크 혹은 영향력을 이용하여 공적인 절차까지 움직이려는 시도이다. 아울러 이러한 것을 직접 경험하거나 목격한 경우에는 많은 사람들이 공식적인 제도와 절차를 따르기 보다 사적 영역에서 해결을 시도함으로써 공식적 절차를 허수아비로 만들어 버리기도 한다.
어떤 사람들이 사적 관계를 통한 일 처리를 선호하는가? 두말할 것도 없이 능력이 미치지 못하는 경우이다. 정면승부가 두려운 사람은 공적 절차보다는 다분히 인간적 관계를 내 새워 상황을 극복하려 시도한다.
리더는 사적 관계 형성에 신중을 기해야
한편, 리더 역시 사람이기 때문에 리더 주변에 사적 영역이 형성될 수 있다. 그리고 조직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서 사적인 의사소통과 인간관계의 유지, 친목도모 등에 참여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형성된 사적 관계들이 공적인 업무 처리에 까지 영향을 미치게 해서는 곤란하다. 리더는 끊임없는 요구와 부탁을 받을 수 밖에 없다.
리더의 의사결정에 따라 구성원들이 느끼는 '체감적 만족'이 다를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구성원들은 사실 자기에게 유리한 결정을 이끌어 내기 위하여 사적관계를 구축하려는 시도를 많이 하게 된다. 이것을 바로 보고 중심을 잡아야 능력있는 리더라고 할 수 있다. 공사의 철저한 구분은 리더와 구성원이 동시에 가져야 하는 덕목중의 덕목이다.
드문 경우이지만 리더가 앞장서서 사적 관계망을 풍부하게 구축하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구축된 사적관계로 리더의 영향력을 극대화하기 위함이다. 때로 사적 영역이 비대해져서 "사조직" 형태로 발전하는 경우도 있다.
어떤 경우이든 공식적인 조직 안에 사적관계를 토대로 한 분파나 패거리 문화가 존재하는 것은 바람직스럽지 못하다. 많은 조직에서 리더들이 이 구분을 명확히 정리하지 못하기 때문에 조직의 건강성이 침해되고 있다.
공은 공, 사는 사
앞서 언급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방법은 의외로 단순한다. 그것은 바로 "공은 공, 사는사"라는 원칙을 리더와 구성원이 함께 지켜나가는 것이다. 조직이 크고 영향력이 증대할 수록 리더에게 가해지는 유형 무형의 유혹이 많아진다. 그 유혹의 대부분은 사적관계를 통한 청탁일 경우가 많다. 이러한 유혹에 리더가 한 번 빠지게 되면 일 처리의 원칙과 기준이 흔들리게 되고 급기야는 조직의 방향성과 건강성에 치명적 문제가 된다는 사실이다.
바람직한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포기해야 할 것이 많다. 그중 하나가 바로 구성원들과의 사사로운 관계이다. 그래서 리더는 고독하고 외로운 길을 간다. 리더가 지나치게 구성원들과의 사적 인간관계에 신경을 쓴다거나, 사적으로 맺어진 인간관계가 리더의 의사결정에 영향을미칠 정도까지 되거나...이런 정도에까지 이르게 되면 소위 "사적 영향력이 공적 절차를 능가하는" 경우가 된다. 결국 조직은 생명력을 잃고 리더-구성원, 구성원-구성원 간의 신뢰가 무너진다.
그래서 해법은 한 가지 밖에 없다. "공은 공, 사는 사"이다.
리더쉽과 진정성
리더쉽 특강을 시작한지 3개월이 되었고, 벌써 10강이다. 이쯤 해서 특강을 진행하는 필자로서는 "넌 제대로 하고 있는가?"라는 되물음을 자신에게 던질 수 밖에 없다. 필자 자신이 리더쉽을 발휘해야 할 위치에 있고, 이미 2만 6천에 달하는 전국의 교사들이 가입해 있는 교컴이라는 큰 조직이 운영되고 있다는 것은 이 상황을 긍정하든 부정하든 간에 필자의 리더쉽 역시 언제든 도마위에 올려질 수 있는 객관화된 "대상"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타인에 의해서든, 스스로 도마 위에 올라가든 말이다.
사실은 이러한 언급은 자신감의 표현이 아니라 두려움의 표현이다. 누구든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고 말과 실천이 유리되면 설득력이 없어지는 것은 자명한 일! 다시 말해, 우리가 그동안 접해온 리더쉽에 대하여 '상투적이고 상업적이며 성과지향적 리더쉽' 이라고 딱지를 붙여 놓고 비판을 해 대었으니 이제 그 말을 나에게 로 돌려 엄중하게 되물음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필자는 1강에서 "...뛰어난 리더쉽은 소속원 각자의 주체적 능력을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구성원들이 가진 능력을 발현하도록 돕고, 그들이 기쁜 마음으로 성취감을 느끼면서 과제를 수행하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며 결국은 그들의 능력이 골고루 신장되게끔 유도해주는 것... 이것이 교사집단에서 요구되는 리더쉽이라고 일단 정의해두기로 한다...."라고 하였다.
되물음의 방식은 간단하다. "주장한대로 실천하고 있는가?"이다. 내가 말한 것, 주장한 것, 글로 이야기한 것을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자세, 이것이 이른바 "진정성"이다. 그 사람의 주장과 삶을 비교하여 진정성이 있느냐를 찾아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특별히 그 사람이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일하는 공인(公人)이라면 그래서 대중들에게 늘 노출되어 있다면 이미 그 자체로 하나의 역할 모델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이 때문에 주장과 삶을 통일시키려 노력해야 한다.
그런데 이것이 참으로 어렵다. 어렵고도 어렵다. 예를 들어 사교육의 폐해를 비판하면서 내 자식은 사교육에 의존한다든지, 입시교육을 저주하면서 내 자신 그 일부를 담당하여 아이들을 입시전장으로 내몰고 있다든지... 권위주의적 리더쉽을 비판해 마지 않으면서 내 스스로는 권위를 세우기 위해 애를 쓴다든지 이런 모든 경우가 한국 사회에서 진정성을 갖춘 리더쉽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말해준다. 진정한 리더쉽의 발현을 위해서는 용기와 희생과 또한 손에 쥔 것을 과감하게 버릴 수 있는 빈 마음이 동시에 필요함을 느끼게 해 주는 대목이다. 가끔 그런 분들을 만날 기회가 있지만 그런 삶이 얼마나 고단하고 외로운 삶인가를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자신의 안목과 능력이 허락하는 한 노력해야 한다.
모든 것을 구조의 탓으로 돌리면서 "어차피 개인의 노력으로 될 성질이 아니라고" 치부해 버릴 일이 아니다. 구조를 개선하고자 하는 거시적 안목과 노력이 바람직한 교사 리더쉽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것으로 연결된다. 이런 맥락에서, 리더쉽의 진정성을 위하여 순결무구한 윤리성을 강요한다거나 지나치게 성찰적 삶을 살도록 강요하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다.
제도나 시스템은 변함이 없는데 진정성을 강조한다고 해서 리더에게 순교자적 삶을 강요하는 방식이 되어서는 더욱 곤란하다.
누구나 동의하듯이 무한경쟁 대입 시스템, 이성을 잃은 교육열 등이 지배하는 한국사회 교육구조 아래서는 더욱 그러하다. 사실 이런 광적 분위기 속에서는 제 정신 차리고 앞 뒤 분간만 할 수 있어도, 백을 백으로, 흑을 흑으로 볼 수 있는 눈만 있어도 교사로서는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제도와 구조가 가지고 있는 한계를 바로 보고 그것을 개선하기 위한 제반의 노력과 지금 당장 리더가 실천해야 할 과제들이 통일적으로 수행될 때 바람직한 리더쉽에 대한 희망을 엿볼 수 있다. 그렇게 해서 현실과 부대끼고 대중과 호흡하면서 그 결과로 형성되는 진정성이라면 모순 덩어리 한국 사회 교육구조에도 일말의 희망을 던져주는 것이 될 것이다.
리더의 철학과 전문성
리더의 덕목으로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한국교원교육학회의 학술위원장이신 인하대의 이윤기교수께서는 지난해 학회 소식지를 통하여 교육 지도가가 갖추어야 할 3 가지 조건으로 실력, 철학, 솔선수범을 들었다. 과연 수긍이 가는 말이다.
필자는 학교 현장에 왜곡된 리더의 덕목이 설득력 있게 전파되고 있음을 본다. 그 하나는 CEO형 리더에 대한 선동 현상이다. 말 그대로 CEO(chief executive officer)는 최고 경영자를 일컷는다. 최고 경영자의 가장 훌륭한 덕목은 '최소의 투자로 최대의 수익을 창출'하는 것이다. 요즘 학교장에 대하여 CEO라는 표현을 즐겨 쓰는 분들이 있는데 이는 누가 뭐라해도 상업주의의 산물이다. 가치의 실현(학교)과 수익의 창출(기업)을 동일시한 철학 부재의 소산이다.
한편, 유독 '전문성'을 강조하는 사람들이 있다. "뭐니뭐니 해도 교사는 '전문성'이 있어야 해" 이런 말은 우리가 가장 흔히 듣는 말 중의 하나이다. 그리고 지금도 교사들은 본인의 전문성을 신장시키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물론 필자 역시 전문성은 교사의 존재 조건이요, 리더의 중요한 덕목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전문성이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리더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될 수 없다.
필자가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리더의 덕목은 바로 '철학'이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철학이란 리더의 세계관, 인생관이 녹아든 이른바 '교육관'이다. 우리는 지난 해 황우석 교수 사태를 통하여 '철학 부재의 지식'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절망시킬 수 있는지 똑똑히 보았다. 또한 극단적인 성과주의가 얼마나 커다란 비극을 초래할 수 있는지 보았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리더쉽의 조건으로 바로 연결된다.
특히 그것이 교육이라는 공공성의 장에서 이야기되는 것인 까닭에 더욱 중요하다. 즉, "그저 아무 생각없이 열심히 하는 교사"는 미안하지만 리더로서의 자격이 없다. 또 전문성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고 하면서 "방향없는 지식"을 습득하기 위하여 노력하는것도 바람직스럽지 못하다. "철학없는 전문성은" 때로 만인을 죽이는 독이 될 수 있다. 이런 리더에게는 차라리 전문성이 없는 것이 더 좋았을 터이다.
리더의 철학은 어떻게 구축, 함양될 수 있을까? 좋은 철학책을 읽고 공식을 세우면 될까? 천만에 말씀이다. 리더의 철학은 위에서 언급한대로 세계관, 인생관이 녹아든 교육관이다. 세계, 그리고 사람들의 존재와 의식에 대하여 나름대로 가지고 있는 안목이 세계관이고 인생관이다. 이것이 학교 혹은 교실, 또 교사들과의 관계속 에서 정돈된 것이 교육관이다.
공부는 안하고 자기 주장만 강한 경우도 분명 문제지만 우리가 특별히 경계해야할 대상은 "철학없는 전문성의 강조"이다. 그저 아무 생각없이 열심히 하는 것만으로 리더의 책임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것만큼 무능한 것이 없는 것이다.
지금도 생활기록부 종합의견란에 '과묵하게 맡은 바 일을 잘 처리함'이라는 문장을 기술하고 학생에 대하여 흡족하게 생각하는 교사가 있다면 미안하지만 본인의 교육철학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신중하게 생각해 보기 바란다. 필자 역시 작년 한 해 담임을 맡아 생활기록부를 작성하였는데, 필자의 기록부를 검토해 주신 존경하는 옆반 선생님께서 필자의 예시문 작성 방법에 찬사를 아끼지 않으셨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필자가 작성한 예시문이 뛰어난 문장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교사를 편안하게 해 주는 학생'이 곧 우수한 학생이라고 판단하는우는 범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바로 '과묵하게 맡은 일을 잘 처리한다'는 것은 교사의 지시에 대하여 토를 달거나 비판하지 않고 맡은 일(그 맡은 일이 도대체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을 잘 처리한다(결과가 좋다)는 말이기에 아무 생각없이 작성해주는 생활기록부 종합의견 한 마디에서 우리는 교사의 철학(교육관)을 볼 수 있다.
동료교사들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베풀려고 하고 친밀감을 가지고 의사소통하려 하고 그래서 신망도 두텁지만, 이것이 무엇을 위한 것인가가 불투명하다면 생명력이 떨어진다.
교컴과 같은 교사공동체 역시 마찬가지이다. 교사들이 주로 쉽고 편리하게 자료를 이용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저 이것저것 자료의 백화점으로 만든다든지, 교사들은 서로 관심사를 나누는 것을 좋아한다고 해서 학교생활의 일상다반사를 쏟아 놓는 것만으로 커뮤니티의 임무가 완성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다. 리더는 대중들과 섞여 있지만 늘 한 발 앞서 미래를 전망해야 한다. 또한 끊임없는 자기 성찰과 검증 속에서 바람직한 방향을 잡아야 한다. 다시 언급하지만 "철학없는 지식"은 남을 해하는 독이 될수 있다.
말을 잘 하는 리더
"말을 잘 한다"는 말 만큼 다의적으로 해석되는 말이 또 있을까? 우리가 흔히 "그 사람 참 말 잘해"라고 이야기할 때는 그 당시의 상황, 맥락 등에 비추어 그 본래적 의미를 해석해야 한다. 어떤 사람이 말을 잘 한다고 할 때 "본인의 생각을 말로 잘 표현한다"는 긍정적인 의미로도 쓰이지만, 많은 경우 "말만 잘 한다"는 부정적인 의미로도 쓰인다. 당연히 여기서 언급하는 "말을 잘 하기"는 긍정적인 의미이다.
시중에 나와 있는 (상업적이고 성과지향적인) 리더십 관련 자료들을 보면 유독 리더의 "화술"을 강조한다. 이 자료들의 핵심은 한마디로 아무리 리더가 능력이 있어도 "말주변"이 없으면 구성원들을 제대로 통솔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려스러운 것은 이 "말주변"이라는 것이 상당 부분 "화술(=말의 테크닉)"에 의존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점이다.
리더가 하는 말은 집단의 의사결정과 가장 가깝게 닿아 있기 때문에 진정성이 있어야 하며 구성원들에게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단순히 기술로만 해결될 수 없는 특징을 갖는다. 다시 말하지만 테크닉만으로 습득된 말하기는 실천과의 괴리, 신뢰의 부족, 소통에서의 문제를 야기한다. 무엇보다 생명력이 짧다. 차라리 말을 잘 못해도 묵묵히 실천하는 모습을 보이는 리더가 휠씬 능력있는 리더이다.
필자가 생각하는 리더의 말하기 능력은 필요한 말을, 필요한 시기에 하는 것이다. 당연히 해야 할 말을 회피하지 않는 것, 불필요한 말을 반복하지 않는 것이 화술보다 중요한 리더의 말하기이다. 필자는 말을 잘 하는 리더의 조건으로 다음과 같은 몇 가지를 생각해 보았다.
1) 상대의 말을 잘 듣는다. 상담기법에 "긍정적 공감"이라는 말이 있다. 상대의 입장이 되어 충분히 듣고, 상대의 입장에서 판단하라는 이야기이다. 리더가 하는 이야기가 아무리 멋져도 상대방의 능력으로 실천할 수 없는 이상적인 해결책을 내어 놓는 경우를 본다. 충분히 듣지 않은 경우 발생하는 상황이다. 존중과 공감은 리더의 말하기 덕목 중의 으뜸이다.
2) 쉽게 판단하려 하지 말 것. 끊임없이 분석하고, 기민하게 판단하며 그것을 근거로 상대와의 대화를 지속하려는 리더가 있다. 옳고 그름을 떠나 이러한 방식은 구성원과 거리감만 생기게 할 뿐이다. 판단의 시기를 늦추어라. 최종적인 판단에서는 상대를 참여시켜라. 그것이 책임을 공유하고 함께한다는 기분을 줄 수 있는 방법이다.
3) 진지함의 과잉은 천박한 유머만 못하다. 리더가 (객관적 사실보다) 너무 진지하게 말하는 경우, 구성원들은 쉽게 피로감을 느낀다. 구성원들은 늘 업무에 대한 압박감을 가지고 있다. 리더의 말하기 방법은 압박감을 확인하고 가중시키는 기제가 될 수도 있고, 부담감을 더는 활력소가 될 수도 있다. 진지한 것은 좋지만 가능하면 유쾌함을 조장하는 것이 휠씬 좋다. 다만, 유머가 중요하다고 해서 여기저기 떠 도는 스토리를 나열하여 억지웃음을 유도하는 것은 좋지 못하다. 리더가 팀을 유쾌하게 이끌려고 하는 자세, 그리고 리더 스스로 밝은 모습을 갖는 자체가 중요한 것이지 유머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짚고 넘어가자.
4) 여백이 있는 말이 아름답다. 여백이라고 해서 말을 중간 중간 끊고 하라는 기계적인 화법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형식에서의 여백도 중요하지만 내용에서의 여백을 어떻게 살려나갈 것인가는 리더가 생각해야 할 중요한 말하기 기법 중의 하나이다. 여기서 여백이란 "상대를 참여시킬 수 있는 공간"이다.
5) 필요할 때는 확신을 말하라. 민주적 의사소통을 잘못 이해하는 사람들 중에는 리더 역시 공동체에 참여하는 단순 구성원으로서 구성원들과 똑 같은 비중으로 말해야 하고 무엇인가를 결정할 때는 반드시 민주적 절차에 따라 어떤 형태로든 모든 구성원이 참여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리더와 구성원들은 경험이 다르고 고민의 깊이가 다르고 미래를 바라보는 비전에서 차이가 난다. 이것을 무시한 기계적 의사소통은 조직을 정체하게 만들거나 퇴보하게 한다. 때로 리더는 확신을 가지고 말할 필요가 있으며 구성원들을 위하여 결의를 보여야 한다. 특히, 그것이 리더에게 어떤 불이익이 예상될 때는 더욱 그러하다. "불의는 참지만 불이익은 참지 않는" 리더가 되지 않아야 한다.
6) 가능하면 표준 어법을 구사하라. 필자가 교사들에게 늘 강조하는 말이 있다. 인터넷 시대에 교사들이 만드는 학습 컨텐츠는 제작자의 손을 떠나는 순간 "교육용 컨텐츠"로써 작동하기 때문에 그곳에 들어가는 모든 표현은 (특히 제작자의 음성이 들어가는 경우 더욱) 표준 어법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표준 어법이 품위가 있다. 표준 어법은 전달력을 극대화시키고 오해를 최소화한다.
7) 남의 말에 신중하라. 모든 "남의 말"은 갈등의 원천이 된다. 그것이 칭찬이든, 비난이든, 남에 대한 말을 할 때는 최대한 신중할 것을 권한다. 하고 싶은 말 다하면서 좋은 리더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은 욕심이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격려해야 할 것을 생략하고 지적해야 할 것을 생략하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최소한 리더는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남의 말을 하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리더는 늘 어렵고 조심스런 자리이다.
8) 강약 조절은 대상에 따라 우리가 비난해 마지 않는 리더의 유형 중에는 강한 힘에 쉽게 굴복하고 약자에게는 온갖 능력을 과시하려는 부류가 있다. 의외로 많다. 리더가 마음을 온전히 비우지 않으면 이런 현상이 발생한다. 힘을 가진 곳에 떳떳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하고 약한 곳을 향해서는 한 없이 자애로울 수 있어야 한다. 이 모든 것은 리더의 말과 실천으로 외화된다.
9) 성(性)의 구분보다 앞서는 것, 주체로서의 멤버쉽 어떤 사람들은 남자와 여자는 어떻게 다르고, 따라서 어떻게 상대해줘야 편안해 하고, 또 어떻게 접근해야 설득이 쉽고...이런 주장을 한다. 대체로 남자는 논리와 이성에 강하고 여자는 감성과 분위기에 강하다는 이유를 들어 남여의 차이를 정확하게 보고 그에 따라 처방을 내리는 리더를 능력있는 리더로 본다. 그래서 말할 때도 그러한 성별 차이를 고려해서 대화를 나눌 경우 성공하는 리더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필자의 경험으로 보아도 어느 정도는 새겨들을 말이다. 그러나 이것이 다는 아니다. 남과 여로 구분하기 이전에 그 모두는 같은 목적을 공유하는 주체적인 구성원이다. 오히려 논리와 이성, 감성과 분위기로 의식적으로 남여를 구분하는 행위야 말로 반 양성평등적이고 올바른 조직운영 방법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여성에게서도 논리와 이성을 바탕으로 하는 아이디어가 발휘될 수 있다는 점이 인정되어야 하고 남성에게서도 부드러움과 섬세함을 바탕으로 하는 창의성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이것이 리더쉽과 관련하여 남여를 동시에 이해하는 길이다.
10) 말로써 가르치려 하지 말라. 말로 가르치려 든다면 그것을 대화가 아니라 강의이다. 진정성을 가지고 피차 가지고 있는 경험과 소양을 나누다 보면 물 흐르듯이 소통되는 것이 있게 마련이고 이렇게 상호침투되면서 때로 지도와 피지도의 관계, 대등한 소통관계가 반복되면서 관계가 성숙된다. 이것이 소통지향적, 관계지향적 리더쉽이다.
거듭 강조하지만 "말하기"는 리더가 갖춰야 할 중요한 능력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리더에게 필요한 것은 "말하기 기술"이 아니라 "소통 능력"이다.
교사를 위한 리더쉽 강좌
처방인가? 촉진인가?
인간을 어떤 대상으로 볼 것인가?
심리학의 한 갈래로 'Positive Phychology'라는 것이 있다.
우리말로는 '긍정심리학'쯤 되겠다. '긍정심리학'이 있다는 것은 '부정심리학'이 있다는 말이냐라는 반문을 가능하게 한다. 그렇다. '긍정'이라는 이름을 달고 나온데에는 그동안은 심리학이 주로 인간의 이상(異常; 정상이 아닌) 상태에 초점을 맞추어 이를 진단하고 처방하는 역할을 해 왔다는 것에서 기인한다.
종래 (행동과학적) 심리학에서 연구의 대상은 주로 "상식에서 벗어난 인간들의 행동"이다.
상식으로부터 벗어나는 사람들이 취하는 행위 양식의 공통점들을 연구하고 상담이 필요한 사람은 상담을, 치료가 필요한 사람에게는 치료를, 격리가 필요한 경우 격리한다.
이것이 처방이다. 즉, 이상상태의 관찰 - 진단 - 처방의 순서를 밟는다.
이에 비하여 긍정심리학은 용어에서 풍기는 느낌대로 존재와 현상 자체를 인정한다.
그리고 관찰대상이 가지고 있는 잠재적 능력을 찾아내려 노력한다. 관찰대상의 부정적 행태에 주목하기 보다 이 사람이 앞으로 보여줄 수 있는 능력,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 등에 더욱주목한다. 그래서 작은 것이라도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요소가 있다면 그 점을발굴하여 지속적으로 격려, 고무, 촉진한다. 그래서 긍정심리학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즉, 인간을 통제와 처방이 필요한 대상으로 볼 것이냐, 잠재적 가능성에 초점을 두고 긍정적 요소를 촉진시켜줄 것이냐가 두 접근방식의 차이이다.
통제와 처방에 의존하는 리더쉽
당연히 우리 주변에도 구성원을 통제와 처방이 필요한 대상으로 파악하는 리더가 많다.
이런 리더는 구성원들에게서 끊임없이 문제점을 발견하기 위해서 노력한다. 그래서 발견된 문제점을 지적해주고 분석하며, 시정해주는 것을 리더의 미덕으로 안다. 물론 구성원들에게서 발견된 문제점은 위에서 언급한 '상식에서 벗어난 것'들이다. 처방의 방식은 뻔하다.
"상식 안으로 들어오도록 강제하거나 유도하는 것"이다. 이러한 통제에 구성원이 따라주면 그에 대한 보상이 주어지고 지속적으로 벋어나려 할 경우 불이익을 준다.
리더의 지위가 높고 권한이 큰 경우 이런 리더쉽이 많이 발견된다. 이러한 리더쉽에서는 의사결정이 항상 위에서 아래로 수직적으로 이루어진다. 군대, 경찰 이런 조직에서는 이런 리더쉽이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그러나 혹시 교사들의 조직이나 학급운영을 할 때 이런 방식에 의존하는 교사가 있다면 크게 고민해 볼 일이다.
공유와 촉진을 중시하는 리더쉽
한편 구성원들의 잠재적 능력과 가능성을 발견하기 위하여 늘 노력하는 리더쉽은 설사 문제점을 발견했다 하더라도 이것을 긍정적으로 환원하여 볼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모든 것을 구성원 개인이 가진 '에너지'의 한 종류로 보고 그것을 건강한 쪽으로 유도하며 방향을 제시하고 옆에서 함께 고민한다. 이것이 촉진(facilitation)이다. 다음 강좌에서 다시 언급하겠지만 이런 성향의 리더는 구성원에게 무엇을 지시하기 보다 먼저 본(model)을 보인다. 그리고 그것을 따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한다. 성과물은 늘 공유되거나 구성원들이 노력한 댓가로 돌려진다. 어떤 경우 누가 리더이고 누가 구성원인지 분간이 어려울 때도 있다. 질서와 규율이 잡혀있지 않은 듯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안목을
가진 리더와 그의 조직은 "자유로움 속의 질서", "잠재적 가능성의 발현", "책임과 권한의 공유"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면서 "수평적이고 민주적인 조직"으로 발전해 간다.
나는 어떤 리더인가?
공유와 촉진이 있는 조직에서 자유로운 상상력과 창의력, 문제해결력이 신장된다.
구성원들은 합리적 절차에 따라 민주적으로 의사결정을 하고 결정된 사항을 잘 추진하며 반성적 사고를 통하여 다음 과제를 처리하기 위한 준비를 한다. 활동 과정 자체가 에너지를 축적해 가는 과정이요, 그 성과가 고스란히 구성원들의 능력을 신장하는 쪽으로 환원된다.
결국, 의도하지 않아도 조직에서 이뤄낸 성과의 양과 질은 통제와 처방에 의존하는 리더쉽보다 크다. 게다가 활동 자체가 즐겁다. 지금 내가 이끄는 조직 혹은 학급을 대상으로 관찰해 보라.
구성원들이 나의 눈치를 많이 보는 분위기인지, 늘 행복해 하는지, 의사결정은 주로 내가 하는지, 구성원들이 공동으로 참여하는지, 물 흐르듯 소통이 잘 되는지, 리더의 지시가 없으면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 조직인지...어렵지 않게 내가 어떤 리더인지 알 수 있다.
원칙은 기본, 유연성은 양념
원칙이란 무엇인가?
원칙이라 함은 근본이 되는 법칙, 다시 말해 여러 사물이나 일반 현상에 두루 적용되는 법칙을 말한다. 인간관계나 상하관계, 지도 - 피지도의 관계에서도 원칙이라는 말은 많이 쓰인다. 기본 원리를 중시하고 매사에 그 원리에 따라 일을 처리하는 사람은 "원칙적인 사람"이라는 말을 듣는다. 물론 원칙이라는 용어가 꼭 긍정적으로만 쓰이는 것은 아니다. 고지식한 사람, 융통성이라고는 없는 비타협적인 사람을 에둘러 부를 때도 "원칙에 충실한 사람"이라는 말을 한다.
또한 이런 경우에 "그 사람은 융통성이 부족해"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이는 원칙과 유연성이 갖는 함수 관계에서 비롯된다. 이성에 호소하는 원칙 원칙은 주로 인간의 이성에 호소한다. "원칙대로"라는 말은 그 속에 "공평무사"를 내포한다. 따라서 원칙대로 일 처리가 될 경우 크게 이득볼 것도 없지만 손해도 보지 않는다라는 느낌을 구성원에게 줄 수 있다. 2월말 교무실 풍경을 떠 올려 보자. 이 때는 교사들의 일년 업무가 발표되는 시기이기 때문에 가장 많은 신경이 쓰인다. 품위 속에 감추어 두었던 개개인의 인간적 면모가 드러나는 시기이기도 하다. 당연하다. 어떤 학년, 어떤 업무를 맡느냐에 따라 앞으로의 일년이 편할 수도 있고, 매우 힘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학교 사회에서 "하루만 제대로 인간성 보이면 일년이 편하다."라는 말이 생겨났을까? 이때만큼 학교장의 리더쉽이 중요하게 부각되는 때가 없다. 모든 교사들의 불만을 최소화시키면서도 업무능률을 올릴 수 있는 분위기를 위하여 지도력을 발휘하는 교장이 인기를 얻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답은 매우 간단하다. 바로 원칙이다. 인력을 배치하는데 모두가 공감을 할 수 있는 원칙을 수립하고 학교장 자신부터 그 원칙에 따라 업무를 처리하면 된다. 이러한 원리는 곧바로 교실로 이어진다. 학기초에 아이들은 담임이 어떤 사람인지를 탐색한다.
우리 담임이 원칙적인 사람인지, 아니면 원칙없이 그저 상황이 닥치면 즉흥적으로 판단하고 그에 따라 강요하는 스타일인지 아이들은 대개 일주일이면 담임의 스타일을 파악한다. 그리고는 담임의 스타일에 적응한다. 원칙을 중시하는 담임의 경우 아이들 역시 원칙에 따라 움직인다. 그렇지 않은 경우 끊임없이 담임의 눈치를 보게 될 것이고 임기응변이 늘어갈 것이다. 원칙은 모든 구성원들이 편안함을 느끼는 최대공약수이다. 원칙은 어떻게 수립하는가? 원칙은 이미 존재하는 것일까? 아니면 때와 장소에 따라 달라지는 것일까? 원칙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역시 답은 간결하다. 이미 존재하는 원칙이 있고 조직에 따라 달라지는 원칙이 있다. 학교에서는 "민주주의 일반원리"가 대원칙이다. 민주주의 일반원리에 따라 조직이 구성되고 다시 그 조직에서 필요한 원칙은 구성원들의 합의에 의해 만들어진다. 다시 말해 학교에서 인사이동이 말썽없이 이루어지려면 "구성원들의 자발적인 의사에 의하여 인사위원회를 구성"하고 인사위원회는 정해진 절차에 따라 인사작업을 진행하면 된다. 학급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학급구성원에 의하여 학급에서 지켜야 할 일이나 역할분담을 정하는 절차를 거치게 하는 것이 원칙이 통용되게 하는 근거가 된다. 이와 같이 원칙이 힘을 발휘하려면 제도의 바탕이 있어야 한다. 또한 반드시 해당 조직의 구성원에 의하여 수립된 원칙이라야 힘을 발휘한다. 리더는 이 원칙을 잘 이해하고 그리고 원칙을 지키기 위하여 노력해야 하며 원칙에 어긋날 때에는 이를 개선하기 위한 방안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원칙은 모든 구성원들이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최대공약수이다. 원칙은 기본, 유연성은 양념 어떤 조직이 철저하게 원칙으로 무장되어 한치의 오차도 없이 운영된다고 하면 어떨까? 이성적인 사람들은 편안함을 느낀다. 이성적인 취향의 사람들은 대체로 제도와 절차를 중시하기 때문에 원칙과 규율에 익숙하다. 한편 조직에는 감성적 취향의 사람들도 많다. 감성적 취향의 사람들은 제도와 절차가 철저하게 지켜지는 분위기를 대체로 답답해 한다. 따라서 100% 원칙에만 의하여 움직이는 조직은 구성원들을 쉽게 지치게 만들며 조직에 대한 압박감을 줄 우려가 있다. 그렇다고 원칙을 훼손해서는 안된다는 대전제가 있다고 할 때, 우리는 "유연성"에 대하여 생각하게 된다. 리더는 원칙을 굳건하게 지키면서 구성원, 때, 장소에 맞게 유연성을 발휘해야 한다.
이때 리더의 능력이 드러난다. 리더의 유연성은 감성적 호소력을 갖는다. 또한 감성적 취향의 구성원들이 내 놓는 아이디어가 대단히 창의적일 때가 많다. 원칙만을 강조하다 보면 이러한 아이디어와 상상력이 제대로 분출되지 않는다. 물론 리더는 유연함을 보이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유연함을 보이면서 안목을 가지고 구성원을 관찰하여야 한다. 어떤 경우에 구성원이 편안함을 느끼면서 상상력을 발휘하는지, 즐거워하는지...등등... 즉, 원칙을 기본으로 하고 유연성을 양념으로 하는 리더의 자질은 조직 구성원이 가진 능력의 총합을 이끌어 내는 데 필수적인 조건이다. 구성원들의 눈은 의외로 높아서 원칙이 지켜지는 조직을 원하면서도 신나고 즐거웠으면 한다. 이러한 원칙과 유연성의 간격을 조절하는 기술, 리더의 위치에 있는 사람은 늘 고민해야 할 덕목이다.
리더쉽은 선택과 판단의 예술
조직의 향배를 결정하는 리더의 판단
리더에게 주어지는 역할 가운데 가장 크고 중요한 것은 역시 '판단'이다. 리더가 어떤 판단을 내리느냐에 따라 조직의 방향과, 역할, 그리고 구성원들의 임무가 달라지는 것은 물론이고 조직이 더욱 발전할 수도 있으며 때로는 리더의 잘못된 판단으로 인하여 조직이 쇠락의 길을 걸을 수도 있다. 아울러 리더에게는 끊임없이 선택이 요구된다.
특정한 사안에 대하여나, 또는 인적 자원의 배치에 대해서나 선택을 해야 하는 일이 많다.
선택에 앞서 고민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허락되는 경우도 있지만 어떤 경우에는 불가피하게 순간적으로 선택을 해야만 하는 경우도 있다. 학급운영하는 담임의 입장에서,동료교사들을 이끄는 리더의 입장에서 선택과 판단의 문제는 끊임없는 진행형의 과제이다.
경중완급을 구분하라.
그러면 이러한 선택과 판단에서 기준이 되는 것은 무엇일까? 대개의 리더들은 전략적 과제 (조직의 장기적 목표) 속에서 시기별, 사안별로 선택하거나 판단을 한다. - 물론 무엇을 전략적 과제로삼고 무엇이 시기별 과제인지를 구분하는 것 역시 만만치 않은 리더의 소양이기 때문에 이 부분은 따로 떼어 나중에 다루기로 하겠다. - 그러나 리더에게 주어지는 선택, 판단의 과제는 정답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어느 한쪽으로 결정했을 때 구성원의 일부는 환영하지만 일부는 불만을 가질 수도 있다. 그래서 어느 하나를 선택하거나 판단을 내릴 때에는 리더 자신의 기준이 필요하다. 필자는 이것을 '경중완급'을 구분할 수 있는 리더의 소양이라고 생각한다.
무엇이 조직을 위해서 가장 중요한 일이고, 무엇이 급한 일이고...등등 수 많은 사안들 중에서 업무의 우선순위를 구분하고 가려내어 판단하는 일에서 리더쉽의 차이가 발생한다. 또한 중요한 만큼 무게감을 가지고 사안을 대해야 할 것이며 급한 만큼만 서둘러야 할 것이다. 때로 덜 급한 사안을 급하게 밀어부치거나 그 정도로 중요한 사안은 아닌데 너무 비중있게 다루게 되면 필연적으로 정말 급하고 중요한 사안이 닥쳤을 때 구성원을 설득해 내는 힘이 부족할 수 밖에 없다.
주객관적 조건을 살피는 능력
객관적 조건이란 조직을 둘러싸고 있는 제반의 여건을 말한다. 계절이 바뀐다든지, 교육정책이 바뀐다든지...이러한 조건들은 리더나 조직 구성원의 힘으로 변화시키기 힘들다. 따라서 이러한 객관적 조건은 리더의 판단에 가장 중요한 변수가 된다. 주체적 조건이란 간단히 말해 리더 또는 조직이 가지고 있는 능력이다. 어떤 과제를 수행할 능력이 얼마나 되는가가 바로 주체적 조건이다. 객관적 조건이 무르익었다고 하더라도 어떤 과제를 실현할 수 있는 주체적 조건이 충족되지 못한 경우에는 판단이 달라지는 것이다. 반대로 주체의 능력과 사기가 아무리 충만하다 할지라도 외부적 조건이 성숙되지 않았다면 어떤 것을 결정하기 힘들다. 이와 같이 리더는 내외부의 조건들을 면밀하게 살피고 그 조건들이 시사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인식할 때 가장 합리적인 선택과 판단을 하게 된다.
다수의 입장을 반영하되 소수를 고려하는 선택과 판단
어떤 사안을 선택함에 있어 중요한 것은 리더 자신의 판단이고 이 판단은 당시 상황에서보다 중요하고, 보다 급한 것부터 적용된다는 것 외에도 이러한 판단에 대한 구성원의 반응을 조사하거나 예측해보는 것 역시 선택과 판단에 앞서 중요한 과제이다. 이러한 미세한 과정에서 리더의 능력이 드러나게 되는데, 가령 어떤 리더는 무엇을 결정하기에 앞서 이 결정이 내려졌을 때 구성원들의 반응을 예측하고 불만을 가질 수 밖에 없는 구성원들을 위한 조치를 동시에 생각한다.
즉, 역량의 총합을 도모하면서도 불만요소는 최소화하여 모두 함께 가는 방식을 택한다.
이것이 다수의 입장을 반영하면서 소수를 고려하는 선택과 판단이다.
선택과 판단의 시기
주객관적인 조건이 충족되고 구성원들의 의견도 확인이 되었을 때 리더는 어느 하나를 선택하거나 어떤 사안에 대한 판단을 내리게 된다. 판단은 시행을 전제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시기가 매우 중요하다. 아무리 절묘한 판단도 최적의 시기를 놓치면 그 효용가치가 떨어진다. 특히 교컴과 같은 커뮤니티에서는 언제 판단(선택)하고 언제 시행하느냐가 그 활동의 효과를 상당 부분 결정 짓는다.
예컨데, 가을 이벤트는 늦여름에서 초가을에 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가을이 완전히 무르익었거나 늦가을에 하게 되면 효과가 상실된다. 학급 이벤트를 할 때도 학급구성원들이 이름을 익히고 서로 사귀는 것을 목표로 할 때는 학기초가 좋겠지만 구성원들의 활동을 반성하고 격려하는 차원이라면 구성원들끼리 익숙한 상태의 시기를 골라야 한다. 가끔 이러한 시기상의 오류를 범하여 활동의 효과를 반감시키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이런 경우 우리는 "실기(失期)"했다고 한다.
최적의 시기를 살리지 못한 경우에는 해당 활동에 대한 효과가 반감되는 것 뿐만 아니라 앞으로 전개될 활동에 까지 두고두고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다.
결국, 리더가 행하는 선택과 판단은 경중완급에 대한 안목, 주객관적 조건을 살피는 지혜,구성원의 의견 분포를 읽어내는 소양에다 적절한 시기를 택할 수 있는 능력이 통합적으로 어우러져 가장 합리적 결과를 기대하게 하는 요소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리더쉽은 선택과 판단의 예술이다.
공사(公私)를 철저하게 구분하라
조직의 기강을 무너뜨리는 사적 관계의 범람
리더인 사람, 혹은 앞으로 리더가 될 사람이 썩 좋은 평가를 받고 있지 못하다면 가장 먼저 검토해 보아야 할 것이 '공사(公私)의 구분을 확실하게 하고 있는가'이다.
공사(公私) 구분의 모호함은 조직의 기강이 무너지는 첫 번째 신호가 된다.
리더를 포함하여 조직 안에 있는 구성원들은 끊임없이 공적 관계 외에 사적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한다. 사적 관계를 통한 영향력의 발휘가 공적 절차를 통한 해결보다 더 약발이 먹혔던 경험을 가지고 있는 경우에는 이러한 정도가 더욱 심하게 나타난다.
그래서 우리 주변에는 친목이라는 미명 아래 공과 사의 경계선을 넘나들며 인간적으로 친밀한 관계를 구축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다. 친목이나 혹은 인화가 모두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문제는 이렇게 사적 관계를 통하여 구축된 네트워크 혹은 영향력을 이용하여 공적인 절차까지 움직이려는 시도이다. 아울러 이러한 것을 직접 경험하거나 목격한 경우에는 많은 사람들이 공식적인 제도와 절차를 따르기 보다 사적 영역에서 해결을 시도함으로써 공식적 절차를 허수아비로 만들어 버리기도 한다.
어떤 사람들이 사적 관계를 통한 일 처리를 선호하는가? 두말할 것도 없이 능력이 미치지 못하는 경우이다. 정면승부가 두려운 사람은 공적 절차보다는 다분히 인간적 관계를 내 새워 상황을 극복하려 시도한다.
리더는 사적 관계 형성에 신중을 기해야
한편, 리더 역시 사람이기 때문에 리더 주변에 사적 영역이 형성될 수 있다.
그리고 조직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서 사적인 의사소통과 인간관계의 유지, 친목도모 등에 참여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형성된 사적 관계들이 공적인 업무 처리에 까지 영향을 미치게 해서는 곤란하다. 리더는 끊임없는 요구와 부탁을 받을 수 밖에 없다.
리더의 의사결정에 따라 구성원들이 느끼는 '체감적 만족'이 다를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구성원들은 사실 자기에게 유리한 결정을 이끌어 내기 위하여 사적관계를 구축하려는 시도를 많이 하게 된다. 이것을 바로 보고 중심을 잡아야 능력있는 리더라고 할 수 있다.
공사의 철저한 구분은 리더와 구성원이 동시에 가져야 하는 덕목중의 덕목이다.
드문 경우이지만 리더가 앞장서서 사적 관계망을 풍부하게 구축하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구축된 사적관계로 리더의 영향력을 극대화하기 위함이다.
때로 사적 영역이 비대해져서 "사조직" 형태로 발전하는 경우도 있다.
어떤 경우이든 공식적인 조직 안에 사적관계를 토대로 한 분파나 패거리 문화가 존재하는 것은 바람직스럽지 못하다. 많은 조직에서 리더들이 이 구분을 명확히 정리하지 못하기 때문에 조직의 건강성이 침해되고 있다.
공은 공, 사는 사
앞서 언급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방법은 의외로 단순한다. 그것은 바로 "공은 공, 사는사"라는 원칙을 리더와 구성원이 함께 지켜나가는 것이다. 조직이 크고 영향력이 증대할 수록 리더에게 가해지는 유형 무형의 유혹이 많아진다. 그 유혹의 대부분은 사적관계를 통한 청탁일 경우가 많다.
이러한 유혹에 리더가 한 번 빠지게 되면 일 처리의 원칙과 기준이 흔들리게 되고 급기야는 조직의 방향성과 건강성에 치명적 문제가 된다는 사실이다.
바람직한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포기해야 할 것이 많다. 그중 하나가 바로 구성원들과의 사사로운 관계이다. 그래서 리더는 고독하고 외로운 길을 간다. 리더가 지나치게 구성원들과의 사적 인간관계에 신경을 쓴다거나, 사적으로 맺어진 인간관계가 리더의 의사결정에 영향을미칠 정도까지 되거나...이런 정도에까지 이르게 되면 소위 "사적 영향력이 공적 절차를 능가하는" 경우가 된다. 결국 조직은 생명력을 잃고 리더-구성원, 구성원-구성원 간의 신뢰가 무너진다.
그래서 해법은 한 가지 밖에 없다. "공은 공, 사는 사"이다.
리더쉽과 진정성
리더쉽 특강을 시작한지 3개월이 되었고, 벌써 10강이다.
이쯤 해서 특강을 진행하는 필자로서는 "넌 제대로 하고 있는가?"라는 되물음을 자신에게 던질 수 밖에 없다. 필자 자신이 리더쉽을 발휘해야 할 위치에 있고, 이미 2만 6천에 달하는 전국의 교사들이 가입해 있는 교컴이라는 큰 조직이 운영되고 있다는 것은 이 상황을 긍정하든 부정하든 간에 필자의 리더쉽 역시 언제든 도마위에 올려질 수 있는 객관화된 "대상"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타인에 의해서든, 스스로 도마 위에 올라가든 말이다.
사실은 이러한 언급은 자신감의 표현이 아니라 두려움의 표현이다.
누구든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고 말과 실천이 유리되면 설득력이 없어지는 것은 자명한 일! 다시 말해, 우리가 그동안 접해온 리더쉽에 대하여 '상투적이고 상업적이며 성과지향적 리더쉽' 이라고 딱지를 붙여 놓고 비판을 해 대었으니 이제 그 말을 나에게
로 돌려 엄중하게 되물음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필자는 1강에서 "...뛰어난 리더쉽은 소속원 각자의 주체적 능력을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구성원들이 가진 능력을 발현하도록 돕고, 그들이 기쁜 마음으로 성취감을 느끼면서 과제를 수행하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며 결국은 그들의 능력이 골고루 신장되게끔 유도해주는 것... 이것이 교사집단에서 요구되는 리더쉽이라고 일단 정의해두기로 한다...."라고 하였다.
되물음의 방식은 간단하다. "주장한대로 실천하고 있는가?"이다.
내가 말한 것, 주장한 것, 글로 이야기한 것을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자세, 이것이 이른바 "진정성"이다.
그 사람의 주장과 삶을 비교하여 진정성이 있느냐를 찾아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특별히 그 사람이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일하는 공인(公人)이라면 그래서 대중들에게 늘
노출되어 있다면 이미 그 자체로 하나의 역할 모델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이 때문에 주장과 삶을 통일시키려 노력해야 한다.
그런데 이것이 참으로 어렵다. 어렵고도 어렵다.
예를 들어 사교육의 폐해를 비판하면서 내 자식은 사교육에 의존한다든지, 입시교육을
저주하면서 내 자신 그 일부를 담당하여 아이들을 입시전장으로 내몰고 있다든지...
권위주의적 리더쉽을 비판해 마지 않으면서 내 스스로는 권위를 세우기 위해 애를 쓴다든지 이런 모든 경우가 한국 사회에서 진정성을 갖춘 리더쉽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말해준다.
진정한 리더쉽의 발현을 위해서는 용기와 희생과 또한 손에 쥔 것을 과감하게 버릴 수 있는 빈 마음이 동시에 필요함을 느끼게 해 주는 대목이다. 가끔 그런 분들을 만날 기회가 있지만 그런 삶이 얼마나 고단하고 외로운 삶인가를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자신의 안목과 능력이 허락하는 한 노력해야 한다.
모든 것을 구조의 탓으로 돌리면서 "어차피 개인의 노력으로 될 성질이 아니라고" 치부해
버릴 일이 아니다. 구조를 개선하고자 하는 거시적 안목과 노력이 바람직한 교사 리더쉽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것으로 연결된다. 이런 맥락에서, 리더쉽의 진정성을 위하여 순결무구한 윤리성을 강요한다거나 지나치게 성찰적 삶을 살도록 강요하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다.
제도나 시스템은 변함이 없는데 진정성을 강조한다고 해서 리더에게 순교자적 삶을 강요하는 방식이 되어서는 더욱 곤란하다.
누구나 동의하듯이 무한경쟁 대입 시스템, 이성을 잃은 교육열 등이 지배하는 한국사회 교육구조 아래서는 더욱 그러하다. 사실 이런 광적 분위기 속에서는 제 정신 차리고 앞 뒤 분간만 할 수 있어도, 백을 백으로, 흑을 흑으로 볼 수 있는 눈만 있어도 교사로서는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제도와 구조가 가지고 있는 한계를 바로 보고 그것을 개선하기 위한 제반의 노력과 지금 당장 리더가 실천해야 할 과제들이 통일적으로 수행될 때 바람직한 리더쉽에 대한 희망을 엿볼 수 있다.
그렇게 해서 현실과 부대끼고 대중과 호흡하면서 그 결과로 형성되는 진정성이라면 모순 덩어리 한국 사회 교육구조에도 일말의 희망을 던져주는 것이 될 것이다.
리더의 철학과 전문성
리더의 덕목으로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한국교원교육학회의 학술위원장이신 인하대의 이윤기교수께서는 지난해 학회 소식지를 통하여 교육 지도가가 갖추어야 할 3 가지 조건으로 실력, 철학, 솔선수범을 들었다. 과연 수긍이 가는 말이다.
필자는 학교 현장에 왜곡된 리더의 덕목이 설득력 있게 전파되고 있음을 본다.
그 하나는 CEO형 리더에 대한 선동 현상이다. 말 그대로 CEO(chief executive officer)는
최고 경영자를 일컷는다. 최고 경영자의 가장 훌륭한 덕목은 '최소의 투자로 최대의 수익을 창출'하는 것이다. 요즘 학교장에 대하여 CEO라는 표현을 즐겨 쓰는 분들이 있는데 이는 누가 뭐라해도 상업주의의 산물이다. 가치의 실현(학교)과 수익의 창출(기업)을 동일시한 철학 부재의 소산이다.
한편, 유독 '전문성'을 강조하는 사람들이 있다. "뭐니뭐니 해도 교사는 '전문성'이 있어야 해" 이런 말은 우리가 가장 흔히 듣는 말 중의 하나이다. 그리고 지금도 교사들은 본인의 전문성을 신장시키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물론 필자 역시 전문성은 교사의 존재 조건이요, 리더의 중요한 덕목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전문성이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리더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될 수 없다.
필자가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리더의 덕목은 바로 '철학'이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철학이란 리더의 세계관, 인생관이 녹아든 이른바 '교육관'이다. 우리는 지난 해 황우석 교수 사태를 통하여 '철학 부재의 지식'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절망시킬 수 있는지 똑똑히 보았다. 또한 극단적인 성과주의가 얼마나 커다란 비극을 초래할 수 있는지 보았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리더쉽의 조건으로 바로 연결된다.
특히 그것이 교육이라는 공공성의 장에서 이야기되는 것인 까닭에 더욱 중요하다.
즉, "그저 아무 생각없이 열심히 하는 교사"는 미안하지만 리더로서의 자격이 없다.
또 전문성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고 하면서 "방향없는 지식"을 습득하기 위하여 노력하는것도 바람직스럽지 못하다. "철학없는 전문성은" 때로 만인을 죽이는 독이 될 수 있다.
이런 리더에게는 차라리 전문성이 없는 것이 더 좋았을 터이다.
리더의 철학은 어떻게 구축, 함양될 수 있을까?
좋은 철학책을 읽고 공식을 세우면 될까? 천만에 말씀이다. 리더의 철학은 위에서 언급한대로 세계관, 인생관이 녹아든 교육관이다. 세계, 그리고 사람들의 존재와 의식에 대하여 나름대로 가지고 있는 안목이 세계관이고 인생관이다. 이것이 학교 혹은 교실, 또 교사들과의 관계속 에서 정돈된 것이 교육관이다.
공부는 안하고 자기 주장만 강한 경우도 분명 문제지만 우리가 특별히 경계해야할 대상은 "철학없는 전문성의 강조"이다. 그저 아무 생각없이 열심히 하는 것만으로 리더의 책임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것만큼 무능한 것이 없는 것이다.
지금도 생활기록부 종합의견란에 '과묵하게 맡은 바 일을 잘 처리함'이라는 문장을 기술하고 학생에 대하여 흡족하게 생각하는 교사가 있다면 미안하지만 본인의 교육철학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신중하게 생각해 보기 바란다. 필자 역시 작년 한 해 담임을 맡아 생활기록부를 작성하였는데, 필자의 기록부를 검토해 주신 존경하는 옆반 선생님께서 필자의 예시문 작성 방법에 찬사를 아끼지 않으셨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필자가 작성한 예시문이 뛰어난 문장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교사를 편안하게 해 주는 학생'이 곧 우수한 학생이라고 판단하는우는 범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바로 '과묵하게 맡은 일을 잘 처리한다'는 것은 교사의 지시에 대하여 토를 달거나 비판하지 않고 맡은 일(그 맡은 일이 도대체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을 잘 처리한다(결과가 좋다)는 말이기에 아무 생각없이 작성해주는 생활기록부 종합의견 한 마디에서 우리는 교사의 철학(교육관)을 볼 수 있다.
동료교사들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베풀려고 하고 친밀감을 가지고 의사소통하려 하고 그래서 신망도 두텁지만, 이것이 무엇을 위한 것인가가 불투명하다면 생명력이 떨어진다.
교컴과 같은 교사공동체 역시 마찬가지이다. 교사들이 주로 쉽고 편리하게 자료를 이용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저 이것저것 자료의 백화점으로 만든다든지, 교사들은 서로 관심사를 나누는 것을 좋아한다고 해서 학교생활의 일상다반사를 쏟아 놓는 것만으로 커뮤니티의 임무가 완성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다. 리더는 대중들과 섞여 있지만 늘 한 발 앞서 미래를 전망해야 한다. 또한 끊임없는 자기 성찰과 검증 속에서 바람직한 방향을 잡아야 한다. 다시 언급하지만 "철학없는 지식"은 남을 해하는 독이 될수 있다.
말을 잘 하는 리더
"말을 잘 한다"는 말 만큼 다의적으로 해석되는 말이 또 있을까?
우리가 흔히 "그 사람 참 말 잘해"라고 이야기할 때는 그 당시의 상황, 맥락 등에 비추어 그 본래적 의미를 해석해야 한다. 어떤 사람이 말을 잘 한다고 할 때 "본인의 생각을 말로 잘 표현한다"는 긍정적인 의미로도 쓰이지만, 많은 경우 "말만 잘 한다"는 부정적인 의미로도 쓰인다. 당연히 여기서 언급하는 "말을 잘 하기"는 긍정적인 의미이다.
시중에 나와 있는 (상업적이고 성과지향적인) 리더십 관련 자료들을 보면 유독 리더의 "화술"을 강조한다. 이 자료들의 핵심은 한마디로 아무리 리더가 능력이 있어도 "말주변"이 없으면 구성원들을 제대로 통솔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려스러운 것은 이 "말주변"이라는 것이 상당 부분 "화술(=말의 테크닉)"에 의존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점이다.
리더가 하는 말은 집단의 의사결정과 가장 가깝게 닿아 있기 때문에 진정성이 있어야 하며 구성원들에게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단순히 기술로만 해결될 수 없는 특징을 갖는다.
다시 말하지만 테크닉만으로 습득된 말하기는 실천과의 괴리, 신뢰의 부족, 소통에서의 문제를 야기한다. 무엇보다 생명력이 짧다. 차라리 말을 잘 못해도 묵묵히 실천하는 모습을 보이는 리더가 휠씬 능력있는 리더이다.
필자가 생각하는 리더의 말하기 능력은 필요한 말을, 필요한 시기에 하는 것이다.
당연히 해야 할 말을 회피하지 않는 것, 불필요한 말을 반복하지 않는 것이 화술보다 중요한 리더의 말하기이다. 필자는 말을 잘 하는 리더의 조건으로 다음과 같은 몇 가지를 생각해 보았다.
1) 상대의 말을 잘 듣는다.
상담기법에 "긍정적 공감"이라는 말이 있다. 상대의 입장이 되어 충분히 듣고, 상대의 입장에서 판단하라는 이야기이다. 리더가 하는 이야기가 아무리 멋져도 상대방의 능력으로 실천할 수 없는 이상적인 해결책을 내어 놓는 경우를 본다. 충분히 듣지 않은 경우 발생하는 상황이다.
존중과 공감은 리더의 말하기 덕목 중의 으뜸이다.
2) 쉽게 판단하려 하지 말 것.
끊임없이 분석하고, 기민하게 판단하며 그것을 근거로 상대와의 대화를 지속하려는 리더가 있다.
옳고 그름을 떠나 이러한 방식은 구성원과 거리감만 생기게 할 뿐이다. 판단의 시기를 늦추어라.
최종적인 판단에서는 상대를 참여시켜라. 그것이 책임을 공유하고 함께한다는 기분을 줄 수 있는 방법이다.
3) 진지함의 과잉은 천박한 유머만 못하다.
리더가 (객관적 사실보다) 너무 진지하게 말하는 경우, 구성원들은 쉽게 피로감을 느낀다.
구성원들은 늘 업무에 대한 압박감을 가지고 있다. 리더의 말하기 방법은 압박감을 확인하고 가중시키는 기제가 될 수도 있고, 부담감을 더는 활력소가 될 수도 있다. 진지한 것은 좋지만 가능하면 유쾌함을 조장하는 것이 휠씬 좋다. 다만, 유머가 중요하다고 해서 여기저기 떠 도는 스토리를 나열하여 억지웃음을 유도하는 것은 좋지 못하다. 리더가 팀을 유쾌하게 이끌려고 하는 자세, 그리고 리더 스스로 밝은 모습을 갖는 자체가 중요한 것이지 유머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짚고 넘어가자.
4) 여백이 있는 말이 아름답다.
여백이라고 해서 말을 중간 중간 끊고 하라는 기계적인 화법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형식에서의 여백도 중요하지만 내용에서의 여백을 어떻게 살려나갈 것인가는 리더가 생각해야 할 중요한 말하기 기법 중의 하나이다. 여기서 여백이란 "상대를 참여시킬 수 있는 공간"이다.
5) 필요할 때는 확신을 말하라.
민주적 의사소통을 잘못 이해하는 사람들 중에는 리더 역시 공동체에 참여하는 단순 구성원으로서 구성원들과 똑 같은 비중으로 말해야 하고 무엇인가를 결정할 때는 반드시 민주적 절차에 따라 어떤 형태로든 모든 구성원이 참여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리더와 구성원들은 경험이 다르고 고민의 깊이가 다르고 미래를 바라보는 비전에서 차이가 난다. 이것을 무시한 기계적 의사소통은 조직을 정체하게 만들거나 퇴보하게 한다. 때로 리더는 확신을 가지고 말할 필요가 있으며 구성원들을 위하여 결의를 보여야 한다. 특히, 그것이 리더에게 어떤 불이익이 예상될 때는 더욱 그러하다. "불의는 참지만 불이익은 참지 않는" 리더가 되지 않아야 한다.
6) 가능하면 표준 어법을 구사하라.
필자가 교사들에게 늘 강조하는 말이 있다. 인터넷 시대에 교사들이 만드는 학습 컨텐츠는 제작자의 손을 떠나는 순간 "교육용 컨텐츠"로써 작동하기 때문에 그곳에 들어가는 모든 표현은 (특히 제작자의 음성이 들어가는 경우 더욱) 표준 어법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표준 어법이 품위가 있다.
표준 어법은 전달력을 극대화시키고 오해를 최소화한다.
7) 남의 말에 신중하라.
모든 "남의 말"은 갈등의 원천이 된다. 그것이 칭찬이든, 비난이든, 남에 대한 말을 할 때는 최대한 신중할 것을 권한다. 하고 싶은 말 다하면서 좋은 리더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은 욕심이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격려해야 할 것을 생략하고 지적해야 할 것을 생략하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최소한 리더는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남의 말을 하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리더는 늘 어렵고 조심스런 자리이다.
8) 강약 조절은 대상에 따라
우리가 비난해 마지 않는 리더의 유형 중에는 강한 힘에 쉽게 굴복하고 약자에게는 온갖 능력을 과시하려는 부류가 있다. 의외로 많다. 리더가 마음을 온전히 비우지 않으면 이런 현상이 발생한다.
힘을 가진 곳에 떳떳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하고 약한 곳을 향해서는 한 없이 자애로울 수 있어야 한다. 이 모든 것은 리더의 말과 실천으로 외화된다.
9) 성(性)의 구분보다 앞서는 것, 주체로서의 멤버쉽
어떤 사람들은 남자와 여자는 어떻게 다르고, 따라서 어떻게 상대해줘야 편안해 하고, 또 어떻게 접근해야 설득이 쉽고...이런 주장을 한다. 대체로 남자는 논리와 이성에 강하고 여자는 감성과 분위기에 강하다는 이유를 들어 남여의 차이를 정확하게 보고 그에 따라 처방을 내리는 리더를 능력있는 리더로 본다.
그래서 말할 때도 그러한 성별 차이를 고려해서 대화를 나눌 경우 성공하는 리더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필자의 경험으로 보아도 어느 정도는 새겨들을 말이다. 그러나 이것이 다는 아니다.
남과 여로 구분하기 이전에 그 모두는 같은 목적을 공유하는 주체적인 구성원이다. 오히려 논리와 이성, 감성과 분위기로 의식적으로 남여를 구분하는 행위야 말로 반 양성평등적이고 올바른 조직운영 방법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여성에게서도 논리와 이성을 바탕으로 하는 아이디어가 발휘될 수 있다는 점이 인정되어야 하고 남성에게서도 부드러움과 섬세함을 바탕으로 하는 창의성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이것이 리더쉽과 관련하여 남여를 동시에 이해하는 길이다.
10) 말로써 가르치려 하지 말라.
말로 가르치려 든다면 그것을 대화가 아니라 강의이다. 진정성을 가지고 피차 가지고 있는 경험과 소양을 나누다 보면 물 흐르듯이 소통되는 것이 있게 마련이고 이렇게 상호침투되면서 때로 지도와 피지도의 관계, 대등한 소통관계가 반복되면서 관계가 성숙된다. 이것이 소통지향적, 관계지향적 리더쉽이다.
거듭 강조하지만 "말하기"는 리더가 갖춰야 할 중요한 능력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리더에게 필요한 것은 "말하기 기술"이 아니라 "소통 능력"이다.
교컴 대표 함영기 글
출처 :네이버 오픈백과 http://kin.naver.com/open100/db_detail.php?d1id=7&dir_id=814&eid=LTk5X1ytAHz79IGPoXI6UCDtHTVdmg5/&l_url=L2FoYS9haGFfbGlzdC5waHA/c3ZjPU9QRU4xMDAmZDFpZD0wJnBhZ2U9M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