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돌아가기로 했어요.

2016.04.06
조회1,039
사실 전 만 23 직장인입니다. 제가 이 게시판에 글을 적는 이유는 저희 친 할머니 때문이에요. 결혼, 시집, 친정... 그 모든것이 손녀인 저에게도 영향을 끼쳤으니 카테고리가 다르진 않겠죠.


제가 어렸을적 부터 할머니는 유별리 저희 엄마에대한 차별이 심하셨어요. 그건 자식인 저도 마찬가지였구요. 8살때였나, 자다가 꺴는데 엄마가 운전중이시던 아빠한테 그러시더라구요.
"여보, 어머님이 나 싫어하네. 솔직히 상도 나만 작은 상에 받는거 섭섭해. 내가 딸만 둘 낳아서 그래?"
그 말로 깨달았어요. 정말 저랑 저희 엄마, 그리고 제 여동생은 그 큰 상옆에 작은상 붙인 거 있죠? 거기서밖에 밥을 못먹었어요. 갈비도 한번 먹을라 치면 진짜 멀었고요. 전 그냥 왔다갔다 하면서 먹었는데, 그게 할머니가 주는 눈치라는걸 그때 알았어요. 나이를 먹을 수록 확실했네요. 어렸을때부터 딸은 이런걸 해야한다 하면서 그 넓은 후라이팬 고기굽는 것 처럼 생긴거에 앉아서 하루종일 전을 부쳤어요. 어렸을 땐 그게 재밌었고 매번 했는데 점점 아닌거에요. 사촌언니 (고모네 딸) 은 매일 쇼파에 앉아 티비만 보며 손 하나 까딱 안했어요. 잘하네 잘하네 하며 저만 전붙이고 저만 과일 깍고 저만 커피를 탔어요. 이렇게 일하는데도 사실 세뱃돈 차이도.. 3배는 났네요. 오빠랑 겨우 2살 차이인데도.... 그러다 어느날 제가 그랬죠. 
"할머니, 저희 싫어해요? 맨날 상도 작은 것만 주고 일도 저만하고..."
할머니는 당혹감을 감추시진 못하셨지만 그래도 웃으시면서 그런거 아니다 네가 잘해서 그런다 이러셨는데, 그날 밤 엄마가 와서 자는 절 깨우며 왜 그랬어, 왜 그랬어! 하며 절 밤새 꼬집었어요. 제 인생 최악의 기억중 하나네요.
엄마는 제가 가만히 있길 바랬고, 저는 엄마를 위해서 그렇게 했어요. 그러다 17살때 갑작스레 돌아가셨죠. 우는 이모가 물어보더군요. 엄마는 행복했니? 저는 모르겠다했어요. 그리고나서 첫 설이었을거에요. 새배를 하는데 아빠가 혼자 앉아 세배를 받으시는거에요. 왈칵 눈물이 나서 절한 그대로 쓰러져 울었어요. 어른들은 그대로 절 방으로 데려가 재우셨고요. 제 생에 처음으로 일 안한 설날. 그런데 자고 일어나니 다른 친척들은 다른 외가 쪽에 다 내려갔더라구요. 일어난 절 보며 할머니가 하시는 말씀이
"내가 허리가 안좋으니 빨래좀 도와다오."
당연히 도와드리겠다 했는데 장롱에서 이불을 다 꺼내시더라구요. 저희가 친가에서 모이는 가족이 5가족이라서 이불이 정말 많아요. 배게까지 꺼내셔서 설날에, 아직 날씨도 안풀렸는데 그거 하루종일 밟고 널고 했어요. 먼지턴다고 추운데 창문까지 막 열어 제끼셨고요. 근데 뒤늦게 일어나신 아빠가 저에게 고작 한 말은 "추우니까 창문닫아." ...아 시발 진짜... 딸이 발 빨갛게 물들어가며 발래하고 청소하는데 자기 추우니까 창문닫아. 엄마는 나에게 이런 일 시키기 싫어서 나대신 얼마나 일했던걸까 아빠는 딸이 이런걸 하는걸 보고도 생각이 안드니 엄마에겐 더더욱 그랬겠구나. 그 이후로 미친년이되기로 했어요.
친가 절대 안갔구요 동생도 안보냈어요. 동생 꼬셔서 다른데 가버리고 전화도 안받고 그랬더니 어떻게 바뀌었는지 아세요? 하하.. 각자 음식 해와서 모여서 먹고 헤어지는걸로 바뀌었대요. 자고가는 일도 없이, 백모가 갈비라면 숙모가 잡채, 할머니가 떡국 뭐 이런식으로 해 와서 간소하게 모이는거요. 아 진짜... 진짜... 왜 처음부터 그렇게 안한거지? 어쨌거나 아빠가 사정해서 다음해부터는 동생은 갔지만 저는 절대 안갔어요.
여튼 그거 말고도 소소하게 일이 많지만 말은 딱히 안할게요. 저희집 동생 학군때문에 이사하기로 한 집 넓어서 좋다면서 자기가 살고싶다고 떼써서 들어가셨던거라던가, 어디 사기꾼한테 물건 왕창 사와서는 그거 몇천씩 빚 쌓인거 해결해 준거라던가, 떼가긴 다 저희집에서 떼갔네요. 네 저희 아빠 효자시죠. 저한테는 철없는 아빠... 다른 형제들 다 자기가 공장에서 번 돈으로 대학 보내놓고, 본인은 대학 문턱도 못밟아본 사람.. 할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 할머니의 유일한 정신적 지주, 제일 아끼는 아들.

그러다 제가 대학을 해외로 갔어요. 외국인임에도 장학금 지원해준다고 해서 학교를 이쪽으로 하고 학교에서 모니터 일도 해가며 집에 부담이 안가게 열심히 했어요. (일단 아버지가 버시긴 잘 버셔요) 그리고 지금 직장 잡고 1년차인데... 아빠가 전화를 하셨네요. 할머니가 돌아가실 것 같다고. 마지막으로 돌아와 보는게 어떻냐고.
저 지금 opt에요. 학생근무 비자같은건데, 일단 이 기간엔 해외 못나간다는것만 말씀드릴게요. 다른 비자 신청해도 해외출국하게되면 비자를 못해요. 근데도 아빠는 들어와봤으면 좋겠다 하시네요. 마지막으로 보는 건 어떻겠냐고. 아무리 아빠가 밉고하더라도 제가 아빠한테 빚진건 맞죠. 그래서.. 일단 돌아가기로 결정했어요.

저 병신같죠? 알아요.. 그래도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가져보고싶어요. 할머니를 용서할수 있게 되지 않을까. 그래도 마지막 가시는 길, 나 뺨때린 것 정도는 용서를 구하시지 않을까 하는기대. 또 두렵기도 해요. 병에 걸린것은 사실이지만 며느리도 없으니(백모,숙모,고모 전부 다 직장이 계셔요) 그냥 나에게 병수발을 들게 하려는 게 아닐까. 나 부려먹을려고, 오빠 언니들은 대학 졸업하고 아직 직장도 못구했는데 나만 먼저 일 구했다고 미워서 내인생망치려고 하는걸까 싶은 적도 있어요. "모름지기 여자앤 가까이 두고 키워야 한다" 면서 유학 결사반대하고 오빠 언니 기 죽으면 어떻게하나 걱정하셨던 분이니까요. 정말.. 뭐랄까 애증이랄지. 안본지 8년쯤? 인것같네요. 이정도 안봤으면 그래도 저에게 용서를 구할려고 하시는 걸까요. 가시는 분, 제가 얼굴 안보고 보내드리면 정말 미움만 남을 것 같아서요.
일단 돌아와도 아빠께서 "네가 2년정도 먹고 놀아도 아빠가 책임져 줄 수 있으니까 돈은 걱정하지 말고 돌아와라"라고 약속하셨으니까 여유가 될때 마지막으로 얼굴이라도 봐 둘까 싶어요. 뭐, 만일 제 걱정이 맞았다면 다시 돌아서면 되겠죠.

어디다가 할 말이 없어서 여기다가 적어봤어요.전 정말 묻고싶어요, 어쩌면 제 질문은 이거 하나뿐일거에요.


저한테 왜 그러셨어요... 제가, 아니 저희가 왜 그리 미우셨냐고.




고부갈등이라고도하죠.사실전 아빠가 제일 미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