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악의적 인권유린을 비판해주세요. (상간녀와 살기위해 아들은 미국으로 저는 정신병원강제입원)

피에타2016.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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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랫글은 서울지방 법원 에 제 재판의 판사에게 보낸 것입니다. 어저면 이 글은 그들에게 중요한 것잇은 아닐 수도 있을 거라 생각되지만... 당사자인 저는 3년동안 아들도 보지 못하고 남편은 악의적 유기를 선고받지 않아. 병든 저 홀로 날마다 불안과 우울에서 써본 글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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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한 지 21년됐습니다. 저는 서울의 이화여대 영문과를 졸업하고,당시 민자당 당사에서 신문을 편집 취재하는 기자로 일 했으며 같은 여의도에 있는 방송국 수습작가로 있던 중 원고를 만났습니다.

그의 집은 화성 금복리... 티브로 보기전까지 한 번도 그런 시골을 가 본 적이 없는 도대체 논과 밭만 있는 진흙덩이 길과 가옥들...만난지3개월도 되지 않았는데. 그해 원고의 아버지 생신이라고 제겐 말도 없이 그 집의 초대를 받아 가게됐습니다.

나를 관찰하는 수십명의 친지. 가족들의 유교적 풍토에서 이 집 대종가집 맏며느리로 썩 적당한지를 저의  아래위로 훝어보는  많은눈들이  있었습니다. 당황됐습니다. 그때의 기분은 마치 그 집 마당 건너 외양간의 소처럼... 소시장에 나온 그런 소같은 기분이였습니다.

 

<학력 속임>

서로에게 호감은 있긴 했지만 사랑한다 그런 감정은 없었기에...하지만 제 나이도 이미 26세라 집에서 결혼소식을 기다리고는 있었습니다.서로 급하게 상견례를 하고 정신없는 결혼 준비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결혼식을 두 달 앞둔 제게 남편이 학력을 속인 것이 들통났습니다.

그건 제게는 충격이였습니다. 또한 제 가족들 역시 그 문제를 주요히 여기고 있던 터라 저는 결혼이 불안해졌고 이미 진행중인 결혼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기이한 신혼살림>. 

일반적으로 신혼은 결혼한 남.녀 사이의 사랑의 공간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30년이 넘은 낯설고 허술한 수원의 주공아파트를 예전에 시 아버지가 사두었기에 시 아버님은 그곳을 우리의 신혼살림집으로 주셨습니다.

허술하거나 그런 것까진 그러려니 했지만. 그 신혼집안엔 신혼여행을 다녀온 새 신랑 새신부보다 먼저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시동생. 시누이입니다.

얼마후 지방에서 전문대학을 다니는 시동생이 지방으로 가기 전까지. 우리는 그렇게 넷이서 그 신혼집에 살아야만 했습니다.

시누이는 수원에있는 전문대학을 나와서 안산에 있는 박스공장에 취업하여 수원 신혼집에서 부터 출 .퇴근 했습니다.

이제 그만 잊고 싶지만 잊혀지지 않는 몇몇가지.

시누이는 자신의 생리 관리도 못해서 팬티는 아무서랍안에 집어넣고 요에 묻은것이 새서 바닥까지 흔건히 묻어있는 것을 내가 다  처리해야 했다는 것.살며시 시누이에게 말해봐도 굳건히 지키는 고집인지. 너무 아침에 바빠서인지 계속 그렇게 했습니다.

 

설거지 한 번 하지 않아 제 오빠가 설거지라고 언니를 도와줘라란 말에." 엄마가 올캐가 있는데 니가 왜 설거지를 하냐. 하지마라!" 했다고 대뜸 대드는 시누이는 차라리 시어머니보다 더 무서웠습니다.

게다가 농사일을 하시는 아버님은 매주마다 와서 농사일을 돕거라라는 명령을 내리셨기에... 주말마다 시골에 가서 딸기 따는 일이며 시어머님이 시키시는 농사일을  해야만 했습니다.

 

어느날 등쪽의 통증이 너무 심각해서 피부과에 갔더니. 의사가 하는 말이 " 이건 7.80대 면역력없는 노인들이나 걸리는 대상포진 ...이라고 하더군요. 더불어 많이 스트레스를 받으시나봐요. " 하는 말을 듣고 병원 문 밖을 나올 땐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습니다.

나에게도 꿈이 있고. 그 꿈을 이룰려고 아무도 알지 못하는 수원에서 부터 여의도 방송국본사로 가서 굳은 일을 다하고 있는데...

 

시댁이 대 종가집 장손이라, 항상 일요일에 시골에 가면 은근히 너는 첫 애부터 아들을 낳아야한다.아들을....심한 스트레스였습니다.  네 시어머니처럼...장손을 낳아야 한다. 장손... 장손... 하지만 시누이와 같이 살며서 생기는 스트레스로는 임신할 수가 없었습니다. 분명히 태교가 안 될테니까요. 그래서 시누이가 직장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한 후 1년만에 그토록 원하던 아들. 장손을 낳았습니다. 내 아들... 훈섭이를...

 

<남편의 첫 월급. 82만원에서 50만원 재테크 시작>

 

저는 50만원을 저금하며 꼬박꼬박 가계부를 썼습니다. 엄마의 친목계로 주택부금으로...한달에 32만원으로 생활하기엔 정말 힘들었어요.그런데 어느날 남편이 회사에서 사원급식비로 10만원이 나온다기에 그것을 내게 줘서 생활비를 하게해주고 대신 아침마다 도시락을 사주겠다. 하루라도 빠짐없이 5시 30분이면 일어나서 남편과 시누이 아침을 먹이고 출근. 바로 시어머니의 전화....... 아침먹이고들  출근시켰냐는...어쩌면 하루도 빠짐없이.. 결혼 전엔 일어나자마자 출근하고 그랬다던데... 나란 존재의 입성이 아침밥해주는  존재?

그렇게 1년 8개월간을 도시락을 정성껏 싸주었습니다.  애기를 키우는 일은 정말 상상할 수 없이 힘들었습니다. 거의 날마다 나도 울었으니가요. 가끔 엄마에게 전화걸어 "엄마도 나 키울때 이렇게 힘들었어?"누구 도와주는 사람도 없고...무엇보다 잠을 잘 못자는 것.. 새벽이면 어김없이 깨어나 우는 것... 안아주는 것도 각도가 있어야 할 정도로...모유도 잘 안 먹고...우유도 잘 안 먹고... 하지만 저는 아이가 기저귀를 떼는 그때까지. 엄마가 소창으로만들어준 순면 기저귀 아닌 일회용 기저기를 사용한 적이 없었습니다. 우선 그 귀저기가 우리 아이에게 좋고. 종이 기저귀를 살 만한 생활비도 없었습니다. 하루에 30개 이상 나오는 천 귀저기를 빨고 또 삶고. 또 빨고 개고... 아이를 업어주고 아이가 좋아하는 가도로 아이를 안아줘야 했습니다. 팔이 아프고 저려도...이유식도 마트에서 파는 인스턴트 이유식을 한 번도 먹여본 적 없었습니다. 천연 7가지 곡물을 전날밤에 불려.. 믹서로 갈고 이유식을 만들어 먹었습니다.

 

남편은 매일 외박. 늦은 귀가시간. 출장... / 술이 만취된 상태로 아파트 앞 슈퍼 문 앞에서 자고 있는 걸 새벽에  발견한 수위아저씨 연락으로 집으로 데려와 재운 적도 몇 번있었습니다. 남편은 술에 취하면 예전부터 그런 주정이 있단 소릴 남에도 본인에게도  들은 바 있습니다.      

 

<  결혼 5년에 발변한 우울증발병> 

아들나이 이제  4살....이제 개나리 싹이 돋는 바깥으로 걸음마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나도 외로움을 잘 타는 편인데.. 그래도 나홀로 아기 키우는거 정말 힘들었지만 행복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몸부게 54kg에서 37g으로 빠지면서 온 몸에 기력이 없어졌습니다. 워낙 오래된 아파트라 나이드신 분들만 계시고 훈섭과 놀아줄 친구도 없는데... 너무 기운이 없어서 훈섭이 같이 놀자고 내 앞으로 가져오는 장난감들... 수 천번 읽어줬던 책들....앞에서 제가 잠깐 기절을 했던 모양입니다. 정신이 들고보니.. 훈섭이가 엄마를 흔들며 울고있더군요  1999년  3월쯤? 으로 기억납니다'

 

그 일 이후부터  밤마다 이상하게 아니. 병적으로  잠이 안 왔어요.며칠을 새워도.... 잠을 못 잔터라 훈섭을 돌보기 너무 힘이 들었습니다. 체중은 자꾸 빠져나가고... 손목에 맥박이 뛰지 않는것 같은... 조금도 움직일 수가 없는 완벽한 무기력.

지인의 소개로 서울 대림 성모병원 신경정신과엘   4살아이를 엎고 진찰 받으러 갔습니다. 내 인생 최초로 신경안정제. 수면제. 우울중제를 타가지고 수원으로 돌아왔습니다. 남편은 이런 저런 나의 이야기에 귀도 기울이지 않고 식탁에 앉아 티브에만 몰두해 있었던 것이 나무 혐오스러워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나의 우울증은 결혼후 4년10개월후 발병된것입니다 .

 

 결혼 생활 한지...4년 넘어  저는 정말 수원이라는 곳이 싫어서 서울.남편 직장 가까운 곳주변의 부동산을 알아보았는데. 아주 몹시 운이 좋게IMF 시기라... 부동산 보다는 현금이 급박해서 분양가 보다 훨신 저렴한 아파트를 분양권 전매 할 수 있었습니다.

 

우선 엄마가 제 결혼식 부주금을 따로 주셔서 2천만원 제가 아이들  학교다니면서 영어학원에서 가르친 것으로 받은 월급 으로 주식을 했는데 그것이 대략 2천만원 또 결혼후 무작정 저금했던 3천만원가량. 그리고 수원의 우리의 낡은 아파트처분으로

광진구 경남아파트 분양권( 1억 2천만원가량)을 사게 되었고. 서울로 이사를 했습니다. 그 해 6월 13일날. 우울증은 당시 약간 소강상태였기에 몸이 많이 아프지는 않았어요.저는 우울증이 심하면 온 몸의 근육이 아프거든요.

 

서울생활도 그다지 활기차게 살지는 못했습니다.

오히려 남편은 저 잦은 외박과 긴 출장... 그리고 여전히 1.2시를 넘는 귀가.

한강이 가까운터라 자전거를 사서 한강으로 소풍가고  더 넓은 놀이터에서 놀게하고... 강을 바라볼 수 있게 하고...'너의 태명이 가람이였단다... 가람이란 '옛날 사람들이 '강'이라고 부른 이름이지. 나와 아들...우리는 철저히 외톨리였지요. 동적인 것을 더 좋아하는 아들에게 약한 엄마는 감당이 힘들었슴에도 ... 그래도 열심히 체스나 지구본으로 세계나라를 바라보았지요. 놀아주고 ... 우리 둘이 정선시장으로 기차여행도 다녀왔어요.

 

 < 폭행 폭력의 징조>

어느날 밤 늦게 남편이 술에 만취되어 돌아왔는데.다짜고짜 ... 5살배기 아이가 보는데서 저를 무자비하게 폭행했습니다.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만큼...아이의 울음소리에 정신이나서  이러다가 나...죽겠구나.. 하고  구조전화를 했습니다. 바로 경찰관들이 왔고 저희 세사람은 경찰서에 가야했었지요. 나의 조사가 끝나자 아이를 데리고 집에 데려가 주겠다해서 돌아왔는데... 남편이 걱정되서 다시 택시를 타고 가보니가 무슨 감옥같은데에 갇혀있더군요.  저는 울부짖으면서 다 취소한다고... 내가 말못했다고... 애 아빠 거기 감옥같은데서 나오게 해달라고 형사님들에게 애걸했어요. 그들은 그저 싸늘하게  내게 집으로 가길 종용했죠. 아침일찍 부모님이 오셨습니다. 엄마는 갑자기 내 얼굴을 보면서 대성통곡을 하고......아빠는 당장 병원가자고... 아무 기운이 없는 나를 일으키고... 난 훈섭이는?  난 좀 자고싶어... 그럼에도 부모의 고집에  병원갈 채비를 하는데 거울속의 '나'는 너무나 엄청나게 끔직했습니다. 두 눈은 다 충혈되고 얼굴은 2배로 멍들어 부어있고...

 

지금 생각해 보니까... 왜 나는 그 때 그렇게 살았을까요? 나는 남편을 용서했고 그래서 남편은 기소유예로 폭력전과 1범이 되었습니다.

그 후로도 많은 폭행. 성폭행을 당하면서 살았으면서... 그 후론 아무리 폭력을 해도 신고하지 않았습니다.

​ 강간으로 임신이 되어... 낙태 (제가 항 우울증제와 안정제 수면제를 계속 먹었기에) 의 아픔은 우울증인 나에게 너무나 충격적인 슬픔이였습니다.

​2013년 1월 15일  그날도 남편은 상간녀와 함게 있다가 새벽 3.5 즘 들어와다가.. 김향아와 통화도 하고  남편에게 폭행을 당했습니다.

​배를 차고 침대에 고꾸라져 있는 나를 마꾸 발로 밟고... 저는 죽을 것 같아서 그 방을 나가려는데 내 발을 걸어 그대로 넘어졌습니다. 바로 다리미 다리밑으로.. 앞니가 완전히 빠졌어요.

​그것을 임플란트했죠. 당시 남편은 자기가 그렇게 했으니 임플란트 값은 자기 내겠다고 하더니... 악의적 유기뿐 아니라 그 의료비 한 푼 내지 않았습니다.

내 아들의 아빠니까요.  그런데 왜 나는 우울증을 앓으면서... 그토록 힘들게 남편과 살았을가요?

내 아들 훈섭이? 훈섭이 때문에?

아니요.

이제 생각해 보면 딱히 그것도 아니였어요. 결혼후 나 자신도 모르게  나 자신을 버렸고. 나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우울증이란 병에 걸렸고.. 저 스스로 나아보려고 인터넷을 찾아가며 병원에서 고쳐와야지 노력했던 것도 저 였지만 우울증은 정말 무서운 병이였어요. 그러다가 서울로 이사온 그해 겨울부터인가? 술을 마시기 시작했습니다. 원래는 술을 잘 못 마시는데... 병원에서 지어주는 신경안정제 데파스와 수면제 졸민을 먹고 한 30뒤면 그 역한 소주냄새가 나지 않아 마실 수 있게 되었어요.

 

저는 점점 네거티브하고 냉소적인  인간이 되어갔지만...그 춥던 겨울에 경복사립초등학교에 가서 원서를 사오고 합격되어 우리 애기가  이제 초등학생되었구나.. 아빠는 벌써부터 우리 집 가족이 아닌 돈벌어주는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는 아이. 속상했지만 하여간 우리 두 모자는 훈섭이 학교마치고 스쿨버스에 내리면 내가 픽업해서 집으로 데려오고... 간단히 간식먹이고 다시 롯데월드 스케이트장에 가서 교습받고. 광진 문화센터에 데리고가서 체스 놀이겸 게임을 하고 집에 돌아오면... 서로기진 맥진... 밥을 사먹는 날이 더 많았지만. 그래도 집에서 밥 차려주었습니다. 노준우 변 께서는 상대적으로 제가 가사도우미를 서서 가정주부로서의 일은 전혀 안 했으며 가정경제 기부도가 없다는 핵심을 매번 지겹도록 내고 있습니다.

제가 정말 온 몸에 기운이 없고 링거라도 맞고 스트레스에 잠시 피하기 위해, 성 안드레아나  서울대 정신의학과  입원한 적있습니다. 하지만 집을 비우면 아이식사나 남편 세탁이나. 청소... 등등이 걱정되서 평생 구두쇠소리 듣는 제가 가사도우미를 채용한 적 있어요. 토탈 7.8개월 정도. 그전에 입원했을 땐 친정엄마가 오셔서 대신 아들 봐주고... 사위. 뒷바라지 해주셨죠.

 

텔레비젼을 증오했습니다.

주말이면 같은 공간. 같이 더불어 시간을 보내기 원해서 훈섭 책상도 일대일 책상이 아닌 자그만한 4인용식탁을 마련해서 가족회의도 하고. 보드게임도 같이 하고. 어떤 주제에 관해 토론 형식을 취해가며 아이의 생각의 성장과 성향 유추를.. 또한 아이가 진정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런 가족치료는 누군가 제시해주지 않았어도 저는 노력했습니다.

텔레비젼은 단지... 남편이 집에서 쉬는 날... 아이는 게임방으로... 나는 티비소리가 안 들리는 곳에서 독서. 가족을 분열시키는 도구였을 뿐이였습니다.

그 텔레비젼이 더우기 가족의 분열을 초래한다고 했각했지만 부수어 버리려 했던 것은 아니였지만. 어느날 계속 남편과 아들이 동시에 새벽 2시 넘어 들어오길래 술에 취한 제가 일부러 ... 일부러 보라고 부숴버렸습니다. 후회하지 않습니다.하지만 당시 고1이던 아들에게 폭력적인 방법을 쓴 건 깊이 후회합니다. 하지만 3식구에 항상 집에서 나홀로 외롭게 있다는 것을 알고도  항상 새벽 그 시간에 들어온다는 건...문제가 확실히 있는 것 아니겠어요? 고1아이가 새벽 1.2시에... 더구나 세탁소 아저씨가 아들이 밤늦게 친구들이랑 모여 담배를 피더라는 둥... 어떤 조치가 있어야함에도 아빠는 당시 김향아과와 불륜울 하느라.. 2시전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 늦은 귀가는 아무리 내가 카톡을 해도... 무시됐었어요. 나 혼자서는 잠을 잘 수가 없더군요.그렇게 몇 개월이 흐른뒤. 느닷없이 아침에 아빠가 자고있는 나를 깨웁니다. 잠에 덜 깬 나는 정신이 없는 상태에서 아빠가 갑자기 병원에 입원을 하자는 거에요. 그러더니 거인같은 남자 셋이 옷도 갈아입지 않은 나를 포박해서는 강제로 응급차에 태워 서울대 정신병원 폐쇄병동에 날 감금해 놓고... 아빠도 남편도... 내 선생님도 못 보게하고 주사를 몇 번 놓더니 나는 숨만 쉬는 시체처럼 계속 잠만 잤어요.

이렇게 갇힌 공간에서 20일정도 되었즈음    (물론 제  주치의 교수님은 절 하루라도 안 보고 가신적이 없었어요.) 남편 .주치의교수님. 전공의. 나... 이렇게 넷이 상담실에서 상담을 하다가 제 교수님이 그 때 폐쇄병동 허락한  것은 남편분의 객관적인 소견으로 그렇게 입원시켰지만.최원순씨는 기존에 가지고 있는 우울증. 그리고 약.술에의한 의도적인 의존외에는 입원할 만한 환자가 아니기에 오늘 퇴원을 시키려한다고 하니까 , 남편은 그 전가지만해도 의젓히 앉아서 상담을 했음에도 갑자기 흥분을 하면서 버럭 화를 내는 겁니다. " 여기서 퇴원시킨다면 알아봐서 요양원이나 시설 같은곳 에 입원시키도록 하지요"

주치의 교수. 나. 전공의 ... 모두 놀랐습니다. 일반적으로 환자가 입원을 하지 않아도 될 상태라는 것에 보호자로서 안심을 한다거나 주치의에게 고마움을 느겨야 하는 것이 아닌지...

주치의 교수님은 약간 화가 나셨습니다. 지금 정신적으로 문제가 없어서 주치의가 퇴원을 해도될 상황이니까 퇴원을 시키는 건데. 요양원. 센터? 이런 곳으로 보내고자 하는 보호자는 처음이라며 왜 그래야 하냐?  또한 지금 최원순씨를 그런 요양원. 시설... 그런곳으로 보낸다는 것은 아무리 보호자라고 하더라도 불법행위다. 또한 그 환자를 받아주는 요양. 시설 ..그쪽 역시 불법이라는 것을 알아두라고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남편은 화가 나서 이번 병원진료비를 내지 않을테니가... 알아서 하라고 하며 상담실 밖을 나갔습니다.

 

< 모든 부동산과 제나오션 사업에 대한 저의 기여도>

존경하는 재판장님.

글을 짧게 하려고 애썼음에도 불구하고 이리 지리한 편지이어감을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음.... 우선 모든이들이 나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한결같이... 이리 말할 것입니다. 본인의 학벌도 속이고. 시골에서 18세기식 시집살이는 다하고. 서울 섬유회사에 입사 .겨우 82만원으로... 아내는  약한 몸에도 천기저귀며  직점요리하는 이유식... 생면부지의 타향 수원에서   알들하게 살림하면서(옷도 친구들한테 얻어입었거든요)  저금만 하고... 혼자 아이키우고...

결혼전에 내게 있었던 4천만원 가량 그리고 결혼후 저금액 3천만 정도와 신혼살림집으로 아버님이 주신 수원아파트 (4천만원)

으로 서울 경남아파트를 샀고,  그 이후 9년 뒤에  그 아파트 가격이 가겻이 올라 3억 9천이 되어 그것을 팔고 우리 아파트 부동산 아줌마와 친밀한 관계가 있어서 네게 알려준 정보가 바로  지금 살고있는 이튼 타워 a동 804호 ... 딱 한 채가 도저히 중도금도 못 갚겠고. 기존에 낸 분양금도 다 내 놔야겠다 " 라는 소식를 내게 알려주셨습니다.

이미 제게는 3억 9천여의 경남아파트 매수돈과  또 제가 알뜰히 돈을 모았던 9천의 돈도 현금으로 가지고 살 수 있었으므로 망설일 필요가 없었습니다.

 

하루는 남편에게 할 말이 있으니 일직 들어와서 이야기를 하자고 하면서 그 집 문제에 관해 제 이야기를 했습니다.당시 싯가....3억 6.7천 하던 것도 제가 집을 워낙 깨끗이 알뜰히 늘 청소하고 인테리어를 한 것을 보고 아들 집 사주려던 아주머니가 성큼 계약을 해 주신 행운도 있었던 것이지요.

남편은 우선 경남아파트를 팔면 3억9천 그런 나머지는 어쩌자는 거냐? 고 묻더군요.  내가 생활비 저축하고 증권도 좀 해서 큰 수익은 아니였지만 그 나머지를 갚고도 천만원 가량의돈을 내가 저축하고 있다. 라고 말하니...그럼 당장 이사를 가자고 하더군요.

이렇게해서 이튼타워리버 이 아파트를 분양받아 사게된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내가 이렇게 모아두았던 돈으로 남편의 명의를 살려주겠단 명분으로  명의조차 남편에게 다 주어버렸습니다.  그런데... 친구. 그것도 남편에게 돈을 꿔달라... 자기를 회사 고문 변호사로 해달라 했던 고준우시에게 가압류 잡혀있다는 것을 듣고는 아무생각이 들지 않았어요. 

 

​이튼으로 이사오기전  남편은 또 링크 36이란 섬유회사에서 동업자이던 실장이랑 부적절한 상황을 유지하다가 결국 2000을 받고쫒겨난 남편은 거의 백수처럼 로또를 사거나 암웨이에 골수분자가 되서 속을 썪이고 우울증 환자인 아내. 우리 아들은 신경 쓰지 않고...자신이 한때 무섭게 치렀던 남편의 공황장애에서 어느덧 벗어난 듯 하여 2천만원으로 남편과 나  단 둘이 그 회사를 차렸습니다. 제나오션 이름도...간판도 서로 상의해서 지었고... 저는 여러 잡무를 도와주었죠.  아들이 학교에서 돌아 올때쯤 되면 집에가서 아이를 돌보았구요.몇 달간을 그렇게 힘들게 일을 했어요. 사방 모두 섬유투성이인 그 사무실에 파묻혀...

사업이 어느정도 되다보니... 돈 자체를 우습게 보는 건지... 은행에서 자꾸 돈을 빌려 워낙 자본이 없던 회사였던 지라... 제나오션에 문제가 생기면 급히 나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하는 그런 상황이 아주 여러번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생활비를 가지고 저축한 몫돈을 남편에게 이체해주었습니다. 총  1억 3천이 넘는다고 서면에서 본 바 있습니다. 하여간 그렇게 사업이잘  되면  좋은 것이고 내가 저축하는 것도 우리가정이 잘 살고 아이와 남편을 위해 저축한 것이니 아갑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어요.우라 남편이 부자가 되면 나도 부자가 되는 거겠지 하는 이런 피동적 사고도 지금 보면 한십하게 느껴져요. 사람이  저렇게 변할 수 있다는 것을 난 알수 없었으니가요

전 남편이 벌어다주는 생활비가 너무 고마웠고... 함부로 쓸 수가 없었어요.. 워낙.. 저금하거나 재태크를 염두해 그런진 모르겠구요.

 

나는 왜  내 속옷을 살 때조치 아까왔고... 옷은 절대로 못 사겠고... 오히려 친구들이 안 입는다는 옷을 얻어입는 것이 편했고... 외롭고... 우리 아들한테  우린 어떤 부모였을까? 생각하면  지금은 마음이 너무나 공허합니다. 사고모든. 친구들이든. 엄마든... 남편 역시도... "너를 위해 돈을 써봐라"

가끔... 막장 드라마처럼 내 여지것의 인생이 참 우습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제가 지구본을 내 돈으로 산 적은 훈섭 초등 3학년 때 입니다.

왜? 갑자기 그것을 사 주고 싶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뭔가가 아쉬워요. 훈섭은 지구 본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나의 관심 때문에 그것을 샀을까?  내 인생도 지구본의 모양 그 속에 품은 거대한 대지와 바다 각 나라..를 꿈꾸고있었던 것은 아니였을까요?

 

바쁘신 판사님들이 저의 런언 조잡한 편지를 읽지 않을거야'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쓰고 싶군요.

다시 말해 이 막장드라마의 주인공은 s2lf-ESTEEM 도 없는 우울증에 약물이 없으면 하루가 불안하고 그 약물을 유지하기 위해 못 마시는 술을 마셔야하는 한심한 인간입니다.  그리고 모든 이들한테 버림 받은 자아이지요. 하지만 젊었을 대의 내 열정을 내 심장과 피는 기억하고 있나 봅니다. 살고 싶어요.!

 

철없는 똑똑하고 총명하단 소릴 듣는 26살에 동막골같은 완전 시골로 시집와서. 시동생. 시누이 살피고 신혼생활이란 것은 무언지도 모르고... 워커홀릭인 남편의 가정에 대한 무관심. 가장의 부재.  제 병이 깊어가도 죽도록 애섰던 양육과 유아. 교육....하여간 어느정도 경제적 평균이하정도는 되니까... 서서히 바람과 더 심해져가는 가정에 대한 소홀...만성우울증의 아내에게는 눈 빛 하나 주지않고...그리고 이제는 제 딴엔 성장 했다고 엄마로부터 멀어져가는  아들...

-고준우- 원고의 고교동창으로  캐나다에 있는 딸 둘과 처... 돈 붙히고 모 방송국 신입아나운서랑 불륜을 하며 골프나  치러 다니면서  임채응에게 떡해먹자(무당집에서 고사지내자)  몇 번이나 임채응을 꾀고...돈 좀 꿔줘라 했던  친구가  내 돈으로 산 내 아파트의 절반은 가압류시킨... 어이없는 일들이며. 결국 임채응 사무실에 고문 변호사겸 현재 변호사.

 이 이혼의 본질적인 핵심은 이것입니다.

 

<너란  인간의 소용거리는 아들나나 낳아주고  키워준것으로  다 됐서 이제 내게 필요 없으니... 아이도 다 컸겠다... 불법사업을 하면서도 불구하고 사업은 잘되고 차도 외체차로 근사하게 다니는 나에게 넌 이젠 아무런 가치가 없어.  그동안 피고인 네가 부동산 왔다 갔다 하면서  재산불린 것도  제대로 증거를 못내지 않았냐?

그런데 내가 숨기고 있는  내 재산을 미쳤다고 내 놓겠냐? 고준우하고의 약정인데... 그냥 1억 정도 먹고제발   떨어져라." 그리고 니 우울증이 왜 내 탓이냐? 결혼후 4년 10개월후에 병이 생겼다고 그게 내 책임이냐? 이미 병들고 가치도 필요도 없는 너는 내게 아무 소용없어.  그리고

 나  임채응은 이미 아들을 미국으로 쫓아내고 바로 돌아와서  내  상간녀랑 행복하게  같이 잘 살고 있다.

너와의 부부생활 문제였던 조루증 수술 20년만에 했다는 것도 그 당시에 붕대 감긴것으로 네게도  보여줬지? 이제 이런 내 삶을 살테니 제발 좀 그만 꺼져줘라.

내 상간녀에 대해서는 니가 아무리 어린 조카들이며 내 집에 관련된 사람들은 다 널 차단시켜서 연락하지도 못하게 했다.

역시 훈섭이에게도..연락하지도 말고... 연락하지 말라고도 단단히 했지만...>

 

작년 3월 15일  수아와 통화한거 ... 처음엔 녹취하지 않으려했는데... 수아가 갑자기 새 큰엄마이야기 하길래 녹취 시작... 너의 가족들과도 여러차례 여행다니고. 명절. 그리고 일 받은 대종가집 농사꾼 집... 그래 열 번도 넘게 새큰 엄마 보았다고 하더라. 여행도 자주 다녔다면서... 우리 훈섭이랑 있을땐 텔레비젼앞의 쇼파 위 와상 이었으면서....

그런데.. 큰엄마... 큰아빠하고 새 큰엄마하고는 왜 매일 따로따로 차 타고 와서 또 따로다로 가요. 그게 좀  이상해요. < 녹취 그대로> 

그리곤 애나 어른 할 것 없이 아직 그집 주민증록에 있는 본인을 완전 차단.

상대쪽에서 하도 기일을 연장하자고 해서 지금까지 왔습니다. 저는 우울증으로 인해 스스로도 고통 받고. 남에게도 고통 주었다는 것으로 죄책감을 느껴 더 우울할지경이랍니다.

근데...

제 조카아이 말따나  " 무작정 열심히 저축해서 돈벌어서 잘 살자라고 했다면서요. 이제 어느정도 큰 엄마때문에 좋은 집 이사가고 큰 아빠한테 어려울때마다 사업비 대주고 그러셨는데... 왜 큰 아빠는 미국으로 훈섭오빠보내고...큰엄마한테는  1억도 못주겠다면서 큰 아빠는 21년 동안 결혼행활하면서  지금 큰 엄마를 버리려고 하나요? 새로온 큰 엄마때문인가요?  큰 아빠가는 새로 들어온 새큰엄마가 더 예뻐서  우리 큰 엄마를 버리려고 하는거죠?" 

 물론. 제 조카 수아가 이렇게 말한 것은 아닙니다만... 이 사건의 본질적인 모든 인과는 여기에 있으니까요.

그리고 아직 큰엄마가 있는데...  새 큰엄마가 시골집에 더 잘 드나들면서... 할머니한테 어머니.어머니 해요? 그리고 왜 우린 큰엄마가 두명이나 되나요?그럼 훈섭오빠는 엄마가 두명인가요?   ---학교에서 도덕.윤리. 인륜을  배우고 있는 제   어린조카가 이런 질문을 마음속에 가지게 되면 어떻하죠?  내 아들의 갈등은?

 

존경하는 재판장님... 이리 간단한 요지를 가지고 이렇게 3년동안이나 지리하게 재판이 하신 것도 피곤하셨겠지만...그  피곤속에서 제 편지까지 읽어 주신 것... 죄송합니다.그리고  너무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