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돌아가셨다.

할머니2016.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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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일단 방탈 죄송합니다. 제 이야기를 누구에게 털어놓을수없어

여기에 몇자 적어봅니다. 위로받고싶은 마음이 가득하지만요..

 

 

나는 97년 5월 7일에 태어났다. 내가 막 돌을 지날때 쯔음

엄마가 돌아가셨다. 어릴땐 엄마없는게 정말 싫었다 늘 친할머니가 돌봐주셨고

아빠는 알콜중독자라서 집에 들어오시지도 않으셨다.

 

내가 5살이 되던 해 여름쯤이였을까 그날도 앨범을 꺼내 엄마사진만 봤던거같다

아빠가 집에 들어오시고 나는 반가워서 아빠에게 매달렸다

귀찮다며 맞았다 5살 그 어린아이를 그것도 지자식을 때렸다

뒤늦게 들어온 할머니가 말리셨다. 그뒤로 아빠는 볼수없었다

아직도 잊혀지지않는다. 술에 찌든얼굴.. 나를 때리던 큰 손. 아직도 난 손큰사람이 무섭다.

 

초등학교 입학식. 엄마아빠손을 잡고 들어오는 친구들이 너무 부러웠다.

늙은할머니와 같이 있는게 부끄러워 멀리떨어져서 앉았다.

학교다닐때마다 친구들이 엄마아빠는 어디갔냐고 물어본다.

나는 미국에서 돈을 벌고있다고 이야기를 했다. 아는 나라는 미국뿐이였으니까

재롱잔치, 학예회를 거쳐 졸업식날 마저도 할머니 혼자오셨다.

폐지를 주우시는 할머니가 리어카를 끌고오신게 부끄러워

초등학교6학년이였던 나는 도망쳤다. 추운겨울날 할머니볼이 더 추워보였던건

그땐 보이지않았다.

 

중학교 입학을 했다. 나는 사춘기를 빨리맞은덕에 가출이며 폭행이며 경찰서를 왔다갔다했다.

학교도 나가지 않았다. 선생님들이 부모가 없어서 버릇이없다고 이야기하던걸

나는 왜 정신차리지 못하고 더 방황을 했을까.

담배도 피우고 술도 잔뜩마시고 그저 집이 아닌 다른곳에서 노는게 좋았다

많은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공유하는게 즐거웠다.

그러다 두살많은 오빠들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죽고싶었다

내게 먹인 술에 수면제가 들어있었다. 나는 전혀 몰랐었다 그 일로 임신을 하게됬다

임신6주정도 됬을때 할머니한테 걸렸다. 울고불고 반항했다 지우고싶지않다고.

성폭행 당한 내가 수치스럽고 치욕스러웠다. 아파트옥상에 올라가 울어도보고

약을 몰래 손에 쥐고 먹기도 했었다. 목숨이 생각보다 질겼다.

 

할머니가 경찰서에 신고를 하고 나는 진술서를 몇시간동안 받으며 생각했다.

아 처벌받아서 감옥에 들어가라. 너무힘들다

성폭행을 당했을 당시 나이는 15살. 내가 짊어지기엔 너무 컸다.

경찰서 여형사언니 손을 붙잡고 산부인과에 갔다.

눈물이 났다 그래도 새생명이고, 또 내 뱃속에 있는 아이인데.

형사언니와 나름 큰 산부인과병원장님이랑 이야기를 몇차례했다.

낙태수술이 안된다고 했나보다. 형사언니는 서류들을 보여주며 울었다.

나도 몰래 화장실에서 울었다.

다음날 바로 수술이 시작됬다 한지도 모르겠다 마취에 깨어보니 회복실에 누워있었다

옆에선 할머니가 미역국을 준비해주셨다. 또 눈물이 났다 더 죽고싶었다.

 

그 후 나는 정신을 차렸다. 중학교졸업 검정고시도 치루고 알바를 시작했다.

막상 내 손으로 돈을 벌어보니 너무 힘들었다. 한달 70만원 정도되는 돈을 받았다.

10만원은 차비를 하고 나머지는 할머니를 드렸다.

첫 월급을 받아 봉투에 돈을 담아 할머니를 드렸을때 할머니는 우셨다.

내새끼가 할미돈도준다며.. 언제그렇게 컸냐고 우시는 모습에 나도 눈물이 났다.

더 잘해드려야지 생각했다.

 

시간이 흘러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나는 적응하지못했다

중학교도 고작3일나간게 전부였으니 내겐 너무 힘들었다.

실업고등학교를 들어갔는데 두달정도 다니고 또 자퇴를 했다.

그때 할머니는 생전드시지않던 소주를 드셨다.

3개월뒤 고졸학력 검정고시를 또 따고 일을 계속했다.

오전~오후로 13시간씩 일을 했다. 그러다보니 한달에 130만원정도 월급이 들어왔다

40만원은 적금을, 20만원은 내 용돈을, 나머지는 할머니전부 드렸다.

 

18살이 되던 해에 나는 직장을 구해야지 생각했다. 알바로는 안될거같았다.

그래서 공부를 시작했다 컴퓨터관련된 자격증은 죄다 딴거같다.

국비지원을 받으면서 열심히 공부했다. 그 어렵다는 캐드도 마스터했다.

나는 전기설계하는 회사에 들어갔다. 19살 어린나이에. 고작 신입사원 막내정도지만

열심히 버텼다. 면접당시 사장님이 내게 물으셨다.

중학교 고등학교 안나온 이유가 무엇이냐고..

나는 대답했다. 중학교는 사춘기를 맞아서요, 고등학교는 적응을 못해서요.

사장님은 고개를 끄덕거리시더니 월요일부터 출근하라고 하셨다.

 

할머니에게 취업이됬다고 이야길하자 치킨을 시켜주셨다.

어릴땐 착한일을 해야 치킨을 시켜주셨는데.. 먹다가 목이 메었다.

20살이 되었다. 중학교때 실컷 마셨던 술이지만 느낌이 달랐다.

할머니와 맥주한잔 가볍게 마실수있게되었다. 술을 먹다 문득 할머니를 보았다.

주름이 많았다 얼굴도 손도 발도.. 전부 예전 할머니가 아니였다.

나는 과거를 되돌아보며 할머니 가슴에 못을 박은게 후회스러웠다.

 

먼 훗날 알게되었다. 외가,친척 모두 나를 고아원에 버리라고했다그랬다.

할머니는 그러지 못하고 나를 가슴으로 키워주셨다.

그래서인지 어릴때부터 명절에는 할머니와 둘이 지냈다. 친척안본지도 10년이 넘었다.

아빠는 뭐하고 지낼까?

 

2016년 4월 23일 오후7시

할머니는 주무시다가 돌아가셨다. 나는 눈물이 나오지않았다.

손을 떨며 할머니를 어루만져보았다. 차가웠고 무서웠다.

119를 불렀다. 하얀 천으로 할머니를 덮으시고는 나를 태워 장례식장쪽으로 가셨다.

장례식엔 아무도 오지 않았다. 오히려 맘이 편했다 할머니와 둘이 오순도순 이야기를 하며

나는 울었다. 그제서야 눈물이났다. 보고싶었다 할머니가..

3일장을 끝내고 집에 돌아와 할머니물품을 정리했다.

6000만원이 든 통장과 편지를 발견했다. 통장에는 내이름석자가 크게 적혀있었다.

나는 편지를 부둥켜안고 엉엉울었다. 할머니 냄새가 나는거같았다

곧 내 생일인데 생일선물겸 편지를 뜯어볼 생각이다.

즐거운 생일날 나는 눈물로 맞이하겠지.

 

할머니가 돌아가신지 일주일이 지났다. 슬슬 회사도 다시 나가봐야하는데..

할머니방에서 떠나기가 싫다 점점 할머니 냄새가 사라진다.

내겐 이제 아무도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