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물. 나는 삶을 잘못 살았나 봅니다.

썸남2016.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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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은 긴 글이 될것 같습니다. 미리 양해 구합니다.
목요일 아침. 평소보다 이른시간에 어머니께서 저를 깨우셨습니다.
병원에 입원해 계시던 친할머니께서 방금전 돌아가셨다는 연락이 왔다고 합니다.
순간 멍해져서 상황파악이 잘 되지 않았습니다.
어찌해야 될지 몰라 갈팡질팡 우왕좌왕 하다가 흰셔츠에 검은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었습니다.
일단은 집에서 20분거리에 회사로 향했습니다.
회사사람들에게 상을 당했음을 알리고 결근계를 작성하고 팀장에게 하던 일에 대한 인수인계를 했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집으로 와 가족들과 함께 40분거리에 있는 병원 장례식장으로 출발했습니다.
미리 준비된 검은 상복을 입고 조문객들을 맞이 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속속 화환들이 도착했습니다. 삼가 명복을 빕니다 라는 문구가 선명하게 보이는 큼지막한 화환이 10여개나 왔습니다.
친척들의 핸드폰으로 장례식장의 위치를 묻는 전화도 계속해서 걸려왔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저도 회사에서 전화가 올것이란 생각이 들어 핸드폰을 충전기에 꽂고 틈틈히 폰화면을 확인했습니다.
다음 날이 되어 입관식을 마치고 저녁이 되도록 회사에선 아무런 연락도 없었습니다.
그래도 2년이나 다닌 회사인데 설마 아무런 연락도 없으랴 했습니다. 연락이 좀 늦게 오려나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발인을 마치고 집에 올때까지 회사에선 아무런 연락도 없었습니다.
화환도 없었고 위로의 전화도 없었으며 조문도 오지 않았습니다.
너무나 서운했습니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회사 일이 너무 바빠서 그랬나 보다. 월요일에 출근하면 위로해주며 부의금이라도 챙겨주겠지"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월요일 아침.
무거운 마음을 다잡고 출근을 했습니다.
건물 1층 엘리베이터 앞에서 같은 회사 여직원 A양을 만났습니다.
A양은 저를 보자 마자 무슨 회사가 직원이 상을 당했는데 아무것도 해주는게 없냐며 화를 내주었습니다. 
A양이 화환이라도 보내야 하는거 아니냐고 말했지만 윗선에선 들은척도 하지 않아 묵살되었다고 합니다.
A양 덕에 그래도 조금은 마음이 풀렸습니다.
그리고 곧 A양으로부터 황당한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A양 왈 : 우리 금요일날 회식했던거 알아요? 새로온 팀장 술주정부리고 난리도 아니었어요.
회식???
전 제 귀를 의심했습니다.
제가 상복을 입고 빈소앞에 서서 슬퍼하던 그시각 동료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호프집에서 회식을 했다고 합니다.
너무 어이가 없어 넋이 나간채로 사무실에 들어갔습니다.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켜고 멍하니 있는데 본부장이 직원들 전부 탕비실로 모이라고 합니다.
저는 내심 "그래도 탕비실에서 내 얘기를 꺼내고 다같이 위로를 해주려나 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탕비실에 들어서자 테이블 위에 과자 두상자가 놓여 있습니다.
본부장이 환하게 웃으며 "사장님이 중국출장 다녀 오시면서 중국과자를 사오셨어요. 다같이 맛 보세요!~"
그러더니 과자하나를 집어 저에게 내밀고는 "XX씨도 하나 먹어 봐요"라고 말합니다.
환하게 웃으면서...
저는 너무 어이없는 이상황이 무슨 몰래카메라 같은건줄 알았습니다.
과자를 다 돌리고 본부장이 다시 환하게 웃으며 직원들에게 한마디 건냈습니다.
"다들 금요일에(회식 끝나고) 집에들 잘 들어 가셨지요?~"
머리속에 별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분명 저번주 목요일 아침에 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 말하고 결근계까지 작성하고 왔는데...
이 사람들은 회식을 하고 술을 마시고 과자를 먹으며 너무나 즐거워하고 있다니...
철저한 무관심에 울컥했습니다.
그렇게 오전이 가고 점심시간이 되었습니다.
같은 팀 여직원이 쭈뼛쭈뼛하며 제가 있는 자리로 왔습니다.
그러더니 봉투(5만원이 든 부의금 봉투) 하나를 조심스럽게 건내며 연신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합니다.
본인이라도 사람들 끌고 조문을 가고 싶었지만 회사내에서 위치가 높지 못해 그러지 못했다며 '미안해요'라는 말만 계속 되뇌입니다. 윗사람들이 아무도 움직이지 않아 자기도 어쩔수 없었다고 합니다. 
이 회사에서 나라는 사람의 존재감이 이 정도구나 라는 생각에 소름이 돋았습니다.
저녁이 되어 하늘엔 추적추적 비가 내렸습니다.
자리를 정리하고 퇴근을 합니다. 본부장이 같이 퇴근하자고 합니다.
무언가 할말이 있어 보였습니다.
엘리베이터 앞에 도착했을때 본부장이 가방에서 무언가 주섬주섬 꺼냅니다.
부의금이라도 주는줄 알았습니다.
가방속에서 나온건 접이식 3단 우산...
지하철타기전 "전화한통 못해줘서 미안해요"<<<이 한마디가 본부장이 한 위로의 전부였습니다.
더 이상 이 회사를 다녀야 할 이유가 없어졌습니다.
저란 존재는 이 회사에서 무시해도 그만인 미생물정도 수준인게 분명합니다.
형편없는 월급을 받으며 매일 야근을 밥먹듯이 했고 같이 노력해 큰 회사를 만들자던 사장말을 믿으며 그렇게 2년을 버텼습니다.
그리고 한때는 그들을 동료라 부르며 신뢰했습니다.
너무 어이가 없고 분통이 터져 어디서부터 어떻게 화를 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를 그저 같은 사무실에 일하는 남이라고 생각하는 그들에게 저의 화가 이해되어지기나 할지도 의문입니다.
오늘 밤...쉽사리 잠이 오질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