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통보 받고 매달렸어요 집착인듯 집착아닌...그런 느낌이에요

모르겠다2016.05.05
조회1,016
 
남자친구와 전 7살 차,
전 이십대 중후반, 남친은 삼십대 중반에 접어들었어요.
둘 다 동종업계 다른 회사의 직장인이지만
남친은 투자도 함께 해서 지분도 가지고 있는 임원이기도 해요.
(큰 회사는 아니고, 연봉도 낮아요. 되면 정말 성공이고 안 되면 뭐 하나 안남을...)
일을 배우면서 그곳에서 지점을 얻어 직접 사업을 꾸리는 게 목표인 사람이에요.
사귄 지는 1년 반이 다 되어갔구요.
 
사귀고 나서 일주일에 주말 이틀씩 꼬박 항상 같이 보냈어요.
다투는 일도 거의 없었고 항상 다정하게 대해줬고 저도 항상 다정하게 챙겨주고,
잘 맞는 커플이었어요.
둘 다 집순이, 집돌이라서 집에서 퍼즐이나 레고 맞추고 가끔씩 영화보러 가고 영화, 드라마 보고... 그래서 남자친구를 사귄 이후부터는 친구들도 거의 못 만나고 중요한 일이 있어도 항상 끝낸 후에 어떻게든 주말 중 하루는 꼭 봤어요.
 
연락도 하루에 출근하고 퇴근할 때 한 번씩. 그렇게 매일같이 빠짐없이 안정적인 연애를 해왔네요.
 
 
그런데 어느덧 저한테도 조금씩 사소한 불만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둘 다 집순이, 집돌이이긴 하지만 전 그래도 가끔씩 한 번은 데이트다운 데이트 좀 해보고 싶었죠.
(그렇다고 아예 안한 건 아녜요.. 1박 2일로 여행도 가고 드라이브도 하고 한 달에 한번씩은 바깥 데이트를 했으니까요) 
 
그리고 무엇보다 대화다운 대화를 나눠보고 싶었어요.
일상 겉핥는 그런 얘기 말고 좀 더 속 깊은 대화요.
 
하지만 남친은 속내를 그렇게 잘 털어놓는 성격도 아니고 힘들 때 그걸 얘기해봤자 아무런 도움이 안된다고 생각하는 편이라서 진지한 얘기는 잘 안꺼냈어요.
 
헤어지는 당일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남친이 집에 와서 절 안아주고 밥 먹고 웃고 떠드는 그런
일상으로 시작됐어요. 요 근래는 외출다운 외출도 안하다보니 심심하고 지루하다고 얘기했어요.
남친이 산책이라도 갈까 했는데 그냥 싫다고 하고 제 할 일 했죠. 그리고 남친도 그 후 아무런 말 없이 심각한 표정으로 게임을 했어요.
 
서로 마음이 상한 상태에서 저도 제 할 일 했고.. 그러다가 밤에 남친이 답답하다고 하면서 혼자
나갔다오더니 집에 가겠대요. (지금까지 사귀면서 이렇게 떠난 적x)
 
 
남친이 집에 간 후 전화를 걸어 나랑 헤어지고 싶은 거냐고 조심스레 물어봤어요.
 
사실 작년에 한 번 처음 다투었을 때 남친이 저한테 헤어지자고 한 뒤 바로 미안하다고 하고
달래준 적이 있어요. 그 때 처음 안 건데, 불만이나 스트레스가 쌓이면 말을 하는 게 아니라 꾹 참다가 그냥 회피해버리는 성향이더라구요. 그 때의 기억이 떠올라 불안해서 얘기한 건데...
남친은 결국 그래야겠다며, 헤어지는 게 낫겠다고 한 뒤 떠났네요.
 
그렇게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평소처럼 사랑이 넘치는 눈으로 절 바라봐놓고는 떠나버린 게 충격이었어요.
정말 잘 맞고, 배려하고, 그렇게 예쁘게 사겨왔거든요.
하지만 헤어지잔 말을 들은 게 두번째라 그런지 정리를 해야겠단 마음을 먹으니 
울고 불고 하면서 3일 후엔 그래도 좀 괜찮아지더라구요. 
 
 
지금까지 몇 번의 연애를 해오면서 구질구질하게 매달려도 봤고 반대로 모질게 헤어지자고 한 적도 있어요. 이별의 경험이 쌓여서인지 조금씩 미련을 버리는 방법도 알게 됐고,
제 자신을 바쁘게 해야 정리할 수 있으니 운동도 하고 외주 작업도 구해 일하면서 조금씩 잊어갔어요.
 
 
그런데 웃기게도 좀 괜찮아졌나? 싶었는데 갑자기 이틀 전 밤 퇴근하고 나서 남친한테 제가 전화를 걸고 있더라구요.
그 사람이 전화를 받았고 잘 지내냐고 해서 잘 지냈다고 했어요. 그리고 오빠는 잘 지내냐고 되물으니 잘 못 지냈대요. 너랑 헤어져서도 힘들고, 일도 상황이 지금 심각하다고...
그렇게 말을 트면서 30분 정도 얘기했어요.
 
오빠의 말은, 
회사 사정이 지금 힘들다. 이것 저것 신경쓸 것도 많고 스트레스도 받고 절박한 상황이라서
너한테 더 신경을 못 써줄 것 같다. 그런 날 네가 이해해주는 것도 힘들거고 결국 너만 더 상처받을 거 같다였어요.
 
제 입장은,
오빠가 힘들때 왜 나한테 얘기를 안했냐. 내색이라도 했으면 이해하고 다독여주기라도 했을 거 아니냐. 왜 혼자서 그냥 쌓아두다가 터뜨리는 거냐. 지금까지 주말 내내 빠짐없이 봤으면 됐지 오빠 사정이 힘들면 자주 못만나고 나한테 소홀하더라도 내가 이해해줄 수 있는 부분인데 왜 나한테 그런 얘길 안했냐.  
 
이런 식으로 얘기했던 거 같아요.
 
 
회사 대표와 일 때문에 회식 겸 회의하는 자리에서 빠져나와서 전화받은 거라
다시 들어가봐야한다고 해서 다시 연락 줄 거냐고 물으니 알겠다고 한 후 전화를 끊었어요.
 
 
그리고 이틀 후인 어제... 제가 다시 연락했어요. 전화를 받지도 않고... 카톡으로만 답장이 왔네요.
'회사 일 때문에 얘기하고 있는 중이야.
아무래도 힘들 것 같아. 넌 정말 착하고 귀엽고 매력적인 사람이야. 더 좋은 놈 만나서 행복해.
울지 말고... 힘들겠지만 잊어줘. 나도 지금 당장은 너무 힘들지만 잊으려고 노력할게.'
 
 
이 카톡을 받은 뒤 제가 미쳤나봐요. 택시를 타고 남자친구 있는 동네까지 갔어요.
월급날 코앞에 두고 있어서 돈도 없는데 탈탈 털어서 간 뒤 얘기 끝나면 근처로 오라고 톡했어요. 
도대체 왜 그러는 거냐면서 자기만 더 힘들어진다고 안나갈 거라는 남친한테 미안하다고 기다린다고 했어요. 지금 글을 쓰는데도 정말 구질구질했네요.
 
 
안나온다고 해놓고 결국 10분 뒤에 나왔어요.
그러고 나선 정말 대화다운 대화를 했어요.
 
회사 사정은 생각했던 것보다 심각하고 자칫하면 자기가 투자했던 돈이 고스란히 빚으로 올 수도 있는 상황이고, 회사 운영이 잘 안되고 있는 와중이었대요. 
 
나는 진짜 절박하고, 포기할 생각은 없고, 어떻게든 다시 잘 일구려고 한다. 
너는 정말 좋은 사람이고 앞으로도 좋은 남자 만날 수 있을 거 같은데 왜 이렇게까지 자존심 굽혀가면서 나오는 거냐고 묻는데... 
 
솔직히 전 사업하는 사람이 한 방에 잘 되는 꼴 한 번도 못봐왔거든요.
 
저희 아버지도 제가 어릴 땐 집 자산이 수십억이고 강남에 아파트도 몇 채 있을 정도로
잘 나갔었는데 십대 전반을 통틀어 한 순간에 무너지는 꼴을 보고 자랐고,
 
주변에 사업한다는 사람들 보면서 고생하고 힘들어하고 또 포기하거나 끝까지 해내는 사람 많이 봐왔어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자친구를 지지했던 것은 어떻게는 잘 하려고 노력하고 맡은 일에 성실하고 책임감있게 해낸다는 점 믿고 결혼까지 생각했던 거였어요. 저희가 서로 처음 반했던 코드가 그 열정과 성실함이었거든요.
 
그리고 저도 성공하고 싶은 욕심이 있고,
제가 가지고 있는 능력 키워서 지금까지 항상 그 전에 했던 일보다 항상 더 나은 대우를 받아왔고 앞으로도 더 발전할 자신이 있기 때문에 그냥 남친과 저라면 어떤 상황이 닥쳐도 해쳐나갈 수 있을 거라고 믿었어요.   
 
까짓 거 고비 한 번 왔다고 자기가 하는 일을 제가 이해 못해주고 옆에서 잔소리만 해댈 거라고 생각했던 거에 배신감이 들었어요. 노력없이 어떻게 사랑이 이어지냐고 했던 건 그 사람이었는데.
차라리 그냥 사랑이 식었다거나 다른 여자가 생겼다고 하면 정이라도 떨어져서 제 갈 길 갈텐데...
 
이런 생각들을 조곤조곤하게 남친한테 얘기했어요.
그리고 2주 동안 생각할 시간을 가지는 걸로 마무리가 됐어요. 
 
 
20대 초반 어릴 때 정말 뭣모르고 감정적으로 매달려서 집착했던 거와는 기분이 다르네요.
원망도 안들고 내 자존감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그냥...
많이 힘들어보여서 힘이 되어주고 싶어요. 그리고 제가 없으면 더 힘들어할 거 같아요.
예의 바르고, 속깊고 여리고 착한 사람이었어요.  
다른 남자들 처럼 남 앞에서 힘든 거 내색 안하고 스트레스 받고 힘들 때마다 삭혀놨다가
분에 못이겨서 혼자 울다 오고.  
그래서 좋은 사랑을 했다고 생각해요. 둘 다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남은 2주 동안 전 마음의 정리를 해야겠죠. 다시 재회를 하게 되든, 헤어지든, 예전과는 같지 않을 거에요.  
 
 
판에 글을 처음 올려봐요. 생각을 더듬으면서 두서없이 쓴 점도 있고,
그러다보니 글도 되게 길어졌네요. 그래도 글로 푸니 정리도 되고 후련해졌네요.
저도 친구들한테 구구절절 이런 얘기하는 성격이 아니라서.. 말하고 나니 후련하네요.

힘들겠지만 전 곁에서 같이 이겨내고싶어요.
제 오지랖일까요...?
이대로 정리하기엔 걱정돼서 쉽게 정리 못할 거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