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쓰는 두번째 이야기

스푸트니크2016.05.06
조회14,466

저번에는 두 달 만에 왔었는데 이번에는 한 달 조금 넘어 오게 됐네요. 황금연휴라는데 저는 그냥 집에 있습니다. 오랜만에 여유가 생겨서 이렇게 글을 써봅니다.

 

제목을 전과 똑같이 한건, 현재 이야기를 쓰기에 달리 마땅한 제목이 떠오르지 않아서입니다. 제 지난 이야기가 더 궁금하실지 현재 이야기가 더 궁금하실지, 아니면 둘 다 궁금하지 않으실지 모르겠지만, 현재 이야기를 해 드리자면 W는 함께 있습니다. 지금요.

 

이른 저녁부터 술을 걸치고 먼저 잠들었습니다. 그다지 많이 마신 것 같지도 않은데 요 며칠 제대로 못 잤다고 하더니 그 영향인가 봅니다. 저희 집에, 또 W집에 서로 자주 왕래하곤 해요.

 

저와 W 사이를 연인이라고 할 수 있느냐 생각해보면 잘 모르겠지만 그 비슷한 사이인것 같아요. 남자끼리라 그런지 사귀자 뭐 이런 대화는 전혀 없었고 호칭의 변화도 없고 애정표현도 없고.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무뚝뚝하고 재미없는 사이인 것 같네요.

 

제가 시답잖은 농담을 잘 하는데 W는 워낙에 반응도 없고 학생 때보다 더 쌀쌀맞아 진 것 같아요, 어째.

 

 

달라진 건 더 자주 만나게 된 것과 때때로 스킨십을 하는 것 정도인 것 같아요. 그리고, 만나자고 하면 왜냐고 묻지 않는다는 것, 그 정도?

 

W의 생각은 잘 모르겠지만 저는 지금의 우리 관계에 대해서도 만족하고 이대로도 충분히 행복한 것 같아요. 제 생각이지만 W도 그런 것 같고요.

 

어차피 이성과의 연애는 물건너갔다고 생각했었는데 쓸쓸한 인생에서 함께 걸어갈 친구 하나 생겼다고 생각하면 그것만으로도 꽤나 든든하네요, 굳이 W가 제 연인이 아니더라도. 사실 제 속마음은 연인에 가깝다고 생각은 하고 있지만 그냥 그건 제 생각일뿐이니까.

 

 

옛날 얘기 할 때는 술술 글이 적혔는데 현재 이야기를 해보려니까 정말 쓸 말이 없네요. 무슨 얘기를 쓰죠? 다음에 쓸 때는 그냥 우울하기 그지없는 과거 이야기나 적는 게 좋을 것 같다 싶네요.

 

 

저번에 쓴 글 이후 이야기나 적어볼까요.

 

예고 없이 우리집에 찾아와서 파혼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던져주고서는, 그 뒤에 자주 찾아올 척 하더니 전혀 소식이 없더군요. 그래서 며칠 후에 제가 W에게 먼저 연락을 했어요. 전화 걸었더니 받더라고요. 그게 뭐라고, 신기했어요. 매번 제 전화는 무시하니까. 전화든 카톡이든 문자든.

 

받자마자 여보세요란 말도 없이 왜, 라고 말하더군요. 제가 볼까, 하고 물으니 바로 어디서? 라고 긍정의 말을 하길래 그 어디서.란 말만으로도 기분이 좀 좋더라고요.

 

그날이 휴일 전날이어서 둘이서 어김없이 술 한잔 하다가 2차를 저희 집에서 하게 됐죠. 보통의 친구인 척 피상적인 이야기들만 했었죠. 그러다 W가, 넌 나랑 있는 거 편하냐고 묻더라고요. 그래서, 이게 불편한건지 편한건지 모르겠다고 대답하고는 넌 어떠냐 물었죠. W가 솔직히 불편한데. 라고 대답하더라고요.

 

예나 지금이나 참 직설적인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그래서 싫으냐 하고 물으니 살짝 웃으면서 싫진 않네, 하고 대답하는데 고백이라도 받은 듯 기쁘더라고요.

 

저랑 W는 일절 과거 얘기는 안 했었는데 요새는 간간이 과거 이야기도 하곤 해요. 근데 저의 기억과 W의 기억은 꽤 다른 부분이 많더라고요. 저 혼자 절 피해자마냥 여겼던 건가 싶을 만큼, W의 기억 속에 저는 나쁜 놈인 것 같더라고요.

 

 

W가 잠수 타기 전으로 돌아가보자면.

되게 웃긴데 저는 아름이가 W랑 연락하고 있는 것도, 만나고 있는 것도 다 알고 있었어요. 아마 예전에 썼을텐데.

 

W랑 저랑 같이 있었는데 W 폰에 카톡이 오더라고요. 폰 화면에 아름이 이름과 함께 W를 오빠라고 부르며 애정어린 카톡을 보냈기에 그 당시에는 심장이 철렁 했었죠. 처음 알게 됐을 때.

 

 

 

이 얘기는 길어질 것 같아서 다음으로 미뤄두고.

아름이가 나와 W를 두고 양다리를 걸치는 것 같다, 혹은 W와 바람을 피우고 있는 것 같다, 어림짐작으로 알고 있었는데 그냥 모른 척 한 채 짧지않은 시간을 지냈어요.

 

아름이에게 정이 떨어져가면서도 한편으론 계속 아름이를 좋아했었어요. 미우면서도 온전히 싫어지지는 않더라고요.

 

근데 이상하게도 제가 좋아했던 여자와 Wr가 엮이는 게 처음이 아닌데, 전적이 있는 W는 도저히 미워지지가 않았어요. 아니 물론 미웠겠죠. 다만 영원히 보지 않을 자신은 없더라고요. 그러면서 미친놈 같지만 W한테 제가 점점 애정을 느껴게 됐고 스킨십도 많이 했었어요. 술을 핑계삼아서

 

 

그러다가 2년전, 아니 3년전인가..

어쨌든 그 날.

W랑 저랑 전날 우리 집에서 거하게 술을 마시고 다음날 깨서는 같이 뒹굴거리고 있었죠. 날이 훤히 밝았는데도 둘 다 일어날 생각 없이 침대에 누워있다가 밥 시켜먹고 또 소파에서 뒹굴거리고 있었어요.

 

 

그러다 샤워한다고 W가 화장실에 있을 때 또 W의 폰으로 아름이에게 카톡이 왔고, 전 그냥 다 읽었어요. 읽고 왜 대답이 없냐는 아름이의 카톡도 다 읽고 있었죠. 샤워를 다 하고 W가 나오는데도 그냥 W 폰을 계속 보고있는데 W는 그런 저를 보면서도 별다른 저지를 하지 않더라고요.

 

제가, 아름이한테 카톡왔다, 하고 말을 꺼내니 W가, 그래? 하고 말더라고요. 제가 보고 있는 게 아름이 카톡이란 것도 다 알고 있었던 거죠. 그러니까 W는 처음부터, 제가 W와 아름이가 심상찮은 관계에 있는 걸 알면서도 묵인하고 있단 걸 W도 알았던거죠.

 

뭔가 되게 이상하죠.

 

 

W에게서 답이 없어서인지 저에게 카톡이 왔더라고요. 선배 설마 아직까지 W 오빠랑 있는 건 아니죠?, 대충 저런 내용의 연락이 왔는데 그냥 웃기더라고요. 아름이의 목적은 나인가 W인가 궁금하기도 했고 어이없기도 했고.

 

 

W에게 보낸 아름이의 카톡은 마치 W와 만날 약속이라도 한 사람 같길래

오늘 약속있냐, 물었어요. 누구와 만나는지는 묻지 않았지만 누굴 묻는지 저도 알고 W도 알았겠죠.

 

있다없다 언급없이

왜. 하고 묻더라고요.

 

 

그때 쯤인가 W 폰으로 아름이에게서 전화가 왔어요. 여전히 폰은 제 손에 있었고. 제가, 아름이한테 전화왔다, 하고 말했는데 대답이 없길래 꺼도되냐 묻고는 대답도 듣지 않고 그냥 꺼버렸어요.

 

그러곤 둘이서 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노닥거리다가 그 때 처음으로 제가 맨 정신에 W에게 키스를 했었어요, 그 날. 그 전까지는 매번 술김에 치근덕대고 다음날 술 깨면 없었던 일처럼 대했거든요 둘 다.

 

 

W의 핸드폰을 꺼버리고 제가 W를 제 방으로 데려갔죠. 방에 들어가자마자 미친놈처럼 W한테 달려들다시피 하면서 키스를 했는데 W도 거부하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W를 침대에 눕히고 키스하다가 제가 W 윗옷을 벗겼어요. 근데 왠지 모르게 그냥 W의 표정이 왠지 좀 슬프게 느껴졌어요. 그 때 제 눈엔 그렇게 느껴졌어요.

 

W 몸을 만지면서 키스하다가 제가,

정리할거야. 라고 말했어요.

 

 

당연히 아름이와의 관계를 정리하겠다는 뜻이었고, W도 그렇게 이해했을거예요. 제 눈 앞에 있는 W가 좋아서인 것도 있었지만 아름이와의 시간보다 W와의 함께하는 그 시간이 더 달콤하게 느껴지더라고요 그 순간에. 아마 흥분해있었던 본능도 한 몫 했겠지만.

 

 

우리 셋의 그런 관계가 오래 가지 못할 거란 거 알고 있었고 어느 쪽이든 누구든 정리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 전 그게 그 순간이라고 생각했었죠. 그러고나면 W와 저의 관계도 좀 더 명확해질 것 같았어요.

 

그래서 키스하다가, 갔다올게, 라고 말하곤 지갑이랑 폰만 들고 나왔어요. 당장 해결하고 싶었으니까. 오래 걸린 것도 아닌데, 우리 집에 돌아가면 당연히 W가 절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는데 없었죠. 그리고 W의 잠수가 시작됐고 2년 넘는 시간을 못 만났던 거고요.

 

 

이거 한 번 물어봐야 겠어요, W 일어나면. 갑자기 좀 괘씸해지네요. 근황 얘기 하려다가 과거 얘기 늘어놓고, 혼자 씩씩대면서 전 사라지겠습니다.

 

 

머지않아, 또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