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젊은 여자로 산다는 것>④ 몸의 존재방식

ㅋㅋㅋ2016.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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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같아서 일부만 퍼왔어요!
진짜 좋은 글이니까 많이 읽어보셨으면 좋겠어요.







제목 : 석사학위보다 무거운 내 11kg


작년 12월, 부모님은 내 졸업식에도 참석할 겸, 나를 가이드 삼아 영국 여행도 할 겸 글래스고로 날아왔다. 공항에 마중 나가 엄마와 마주치는 순간 엄마가 내뱉은 첫마디는 이랬다. “세상에, 왜 이렇게 살이 쪘어!”

내가 느낀 것은 문화충격에 가까웠다. 그 순간 마치 줄곧 피하려고 애써 왔던 한국이라는 현실이 해일처럼 덮쳐오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안타깝게도 그 직관은 정확했다. 오랜만에 재회한 한국 사회가 지난 3개월간 나한테 던져온 가장 강렬한 메시지는 바로 그것이었다. “세상에, 왜 이렇게 살이 쪘어!”

살 찐 모습을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회

올해 2월, 가족의 결혼식에 맞추어 귀국했다. 오자마자 가장 처음 한 일은 결혼식에 입고 갈 만한 옷을 사기 위해 백화점으로 가는 것이었다. 참으로 스트레스 받는 쇼핑이었다. 오버사이즈 코트를 제외하고는 몸에 맞는 옷을 찾을 수가 없었다. 매장에 들어갈 때마다 점원과 엄마는 머리를 맞대고 뚱뚱한 다리를 최대한 가릴 수 있는 스타일은 어떤 것일지 고민했다. 그 상황이 멋쩍고 어색했다. 내가 뚱뚱한 것은 맞다. 그러나 그게 감추어야 할 일인가? 아무도 그런 의문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정말 이상하게 느껴졌다.

나는 마치 여기저기 빚을 지고 도망쳤던 채무자처럼 백화점 다음엔 한의원, 한의원 다음엔 체육관을 거치며 순서대로 혼이 났다. 엄마 손에 이끌려 가게 된 다이어트 한의원에서 인바디 검사를 하고 상담실에 앉았다. 부위별 체지방과 체지방량 등을 지적하며 한의사 선생님은 거듭 말했다. “문제가 심각해요. 살을 꼭 빼야 해요.” 살을 빼기 위해 의학의 도움까지 받겠다고 찾아온 사람에게 꼭 필요한 말일까 싶은 의문이 들었다.

운동은 영국에 가기 전까지 같이 운동하던 퍼스널 트레이너 선생님과 웨이트 트레이닝을 재개하기로 했다. 내 옛날 모습을 알던 사람이라 그런지, 운동복으로 갈아입은 내 모습을 본 첫 반응부터 무척 짓궂었다. 여기서 한 가지 말해두자면 나는 영국에서 2년 반의 시간을 보낸 이후, 외모에 대한 짓궂은 농담을 거의 예외 없이 ‘무례함’으로 인식하며, 결코 장난으로 받아넘기지 않게 되었다. 내가 살짝 정색하고 지적한 것이 의외였는지, 선생님은 며칠 뒤 기억에 오랫동안 남을 말을 했다.

“그런데 회원님은 살이 찐 모습이 전혀 부끄럽지 않은 것 같아요.”






아, 지금 이 순간도 얼마나 많은 재능 있는 여학생들이 ‘예쁜 여자후배’ 역할로 소모되고 있을까? 대학을 다니던 시절에 활동하던 학회에서 내게 기대되는 역할은 ‘귀여운 막내 여자후배’라는 걸, 나는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다. 몸매가 드러나는 옷을 입으면 칭찬받았고, 카라의 ‘엉덩이 춤’을 춰 보라는 주문을 하는 선배도 있었다. 유일한 여자 회원이라고 나한테만 잡일이 면제되는 일도 있었다. 반대로 군대 가는 남자 후배의 ‘총각딱지를 떼 주러’ 가자는 제안에 불쾌감을 표했다가, 지나치게 예민하게 군다고 혼났던 적도 있었다.

나는 바보가 아니었고, 이 모든 일이 부당하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학업과 관련 없는, 차별적인 성 역할을 강요받지 않는 학교생활이나 그런 곳에서 마음껏 가능성을 펼치는 내 모습을 상상하기도 힘들었던 것 같다.

어째서 여성에게 ‘미용’이 선결과제가 된 걸까

주로 글 쓰는 일을 하는 나는 밤 시간에 집중이 잘 되는 편이다. 한의사 선생님은 일찍 자야 살이 잘 빠진다며 몇 번씩이나 수면패턴을 바꿀 것을 다짐받았다. 가벼운 점심과 푸짐한 저녁을 먹는 식단을 보여줬더니, 점심에 많이 먹고 저녁에 적게 먹어야 살이 빠진다는 말을 했다. 공복에 더 집중이 잘 되기 때문에 프랑스어 학원에 가기 전에 가볍게 먹는 습관은 바꿀 수 없다고 했더니, 강한 말투로 “그래도 바꾸셔야 해요” 라고 말했다.

살을 빼기 위해 어떤 식습관이나 수면습관이 더 효율적이라는 조언 정도야 이로울 것이다. 그러나 모든 라이프스타일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살을 뺀다는 것은 다른 어떤 것에도 선행할 만큼 중요한 일인가? 그리고 여자들은 공부도 안하고 살만 빼는 게 일이란 말인가?

재미있는 것은 어디서든 이런 말을 쉽게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트레이너 선생님은 “다이어트가 최우선인 필사적인 사람들만이 살을 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무엇보다도 살을 빼는 것이 최우선인 삶이라니, 공허하게 들린다. 물론 무엇에 가치를 두느냐는 개인의 자유이다. 그러나 어째서 다수의 여성이 미용을 선결과제로 두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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