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어머니의 시댁 이야기입니다.

ㅇㅅㅇ2016.06.10
조회47,685

제목이 거창하긴 한데 제 어머니의 시댁이니까 저에게는 친할머니 친할아버지댁이 되겠지요.

어릴 때 말 시작할때부터 엄마라기 보다는 어머니라고 부르고 존댓말 써야된다고 배워서

어머니라고 쓸테니 양해해 주세요.

- 보통 전화할때도 어머니라고 쓰는데 그러면 친구들이 다 새엄마나 시어머니로 생각하더라구요.

 

판을 보면 종종 연세가 지긋하신 분들은 지금의 산후조리를 이해못하신다는 댓글이 종종 나오더군요.

그건 전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저희 할머니 때문에요.

 

저희 할머니 지금은 돌아가셔서 안 계시지만 1921년생 이시고

제 아버지는 무려 7남매 중 막내아들, 종가집 종손입니다.

흔히 말하는 막내이자 독자이고 시누이가 위로만 6명이네요.

규모가 상당히 큰 선산도 있고 사당도 있고 암튼 제가 어릴때는 한달에 한번은

기본으로 제사를 지내던 종가집 이었습니다.

 

그런 집에 4남매중 2째딸이었던 어머니는 시집을 오셨고

어머니는 딸이었지만 큰 이모와 달리 어릴 때부터 전혀 집안일은 하지 않던 사람이었대요.

어머니 말에 의하면 꾸미는거 좋아했다고;; 그래서 대학도 패션 디자인쪽 나오셨네요.

 

아무튼 그런 어머니와 아버지가 결혼하셨고 1년 후에 제가 태어났습니다.

저희 어머니랑 이야기하다보면 어머니께서는 산후조리를 상당히 중요하게 생각하시더라구요

그래서 한번 어떻게 했는지 여쭤 본 적이 있는데

친정 엄마인 외할머니랑은 사이라 별로라서 오히려 친할머니인 시어머니께 받았다고 했습니다.

2,3달 정도 온돌방에 누워서 혹시라도 찬바람 들어올까 매일 따뜻한 바닥이었고

젖이 안돌까봐 혹은 매일 먹는 미역국이 질릴까봐 소고기, 북어, 조개 등등 매번 다른

미역국을 끓여 주셨다고 하더라구요. 물론 팔목 발목도 따뜻하게 하고 지내셨고

머리 감는건 아버지가 ㅋㅋㅋㅋㅋㅋ해주셨다고 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할머니가 시켜서요.

 

다행히 2년뒤에 남동생이 태어났는데 남동생이 태어났을때도

할머니가 또 산후조리 해주셨다고 해요.

그리고 남동생 태어난 후 또 방에 누워있는데 하루는 옆에 아버지가 같이 누워 있길래

어디 아픈지 물어보니까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응. 묶었어." 라고 했다고 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

할머니 생각으로는 이제 아들도 낳고 했으니 대를 이을 필요가 없으니까 피임을 해야겠는데

그걸 아버지....를 묶으신 거죠.

 

암튼 그래서 그런지 60이 다되신 저희 어머니는 관절도 전혀 안아프시고

손목 발목 쑤신다는 말은 이해를 못하시네요.

건강한 몸으로 쑥 엄청 많이 캐서 고모들 드리고 합니다 ㅋㅋㅋ

물론 저희 고모들도 부모님이랑 나이 차이가 엄청 나는데 좋으신 분들이에요.

몇년 전에 아버지가 큰 실수해서 이혼하네마네 했었는데 고모들이 아버지 불러놓고

완전 혼을 내서;;; 아버지 그 자리에서 우시기도 하셨습니다.

그리고 미안하다면서 만약에 다시 저런 일이 있으면 고모들이 책임지고

재산 다 어머니께 돌리고 이혼시킬테니 한번만 용서해 달라고 하셨구요.

 

그 후로는 두분다 다시 좋아지셔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

 

어머니가 요즘 남동생이 결혼할 나이가 되서 그런지 할머니 생각을 자주 하시더라구요.

자신은 그런 시어머니가 되고 싶다구요.

아이 양육이나 며느리한테 하는 행동같은 모습이 참으로 인상깊고 너무 고마웠다면서

오히려 친정 보다는 시댁이 편했다고 해요.

외가 집은 외삼촌인 남자를 우쭈쭈? 암튼 그랬는데 저희 친가는 철저히 나이 순이라서

막내 며느리로써 사랑 많이 받았다고 종종 할머니 보고싶다고 하세요.

 

물론 저도 어릴때부터 할머니랑 함께 커서 할머니가 보고싶은데

요즘따라 더 그러네요.

 

어떻게 마무리 해야될지 모르겠지만

항상 할머니 보고싶어요.

아버지랑 어머니가 천국이 그리 좋으시냐고, 왜 꿈에 안나오시냐고 아쉬워 하세요.

할머니 돌아가신지 10년이 넘었지만 아직까지도 할머니 물건 다 못버리고 있네요.

 

할머니, 다음 생에도 제 할머니가 되어 주세요.

그리고 종종 제꿈에도 나오셔서 건강한 모습 보여주시구요.

감사했습니다. 할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