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쓰는 일곱번째 이야기

스푸트니크2016.06.23
조회12,326

날이 흐리고 후덥지근하네요. 차라리 시원하게 비나 쏟아졌으면 좋겠는데.

지금 저는 카페에서 W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한 시간 정도 걸린다고 하니 글이나 써보려고 합니다.

 

근데 조금 억울한 부분이 있었어요. 퇴근할 때 마다 신입을 태워준다는 것이 상대방에게 오해를 심어 줄 수 있다는 여지가 있다는 거, 어느 정도 공감합니다. 그런데 클라이밍은, 제가 클라이밍을 전세낸 것도 아니기 때문에 하지말라고 할 수가 없었어요. 저는 이미 장기간 회원 등록을 한 상태였고요. 그런데도 만약 신입이 저랑 썸을 타고 있다고 착각을 한다면, 물론 그건 제가 잘못한 부분은 맞죠. 그렇지만 우유부단하게 행동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전 확실히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잘 되어가는 사람도 있다고 말 했는데. 클라이밍을 끊든 다른 곳으로 옮기든 해야될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저번 글을 쓰고 나서, 평소보다 더 많이 W집으로 가고 있어요. 저희가 거의 주말에만 보고 평일에는 잘 보지 않는 편인데 이번 주는 벌써 세번 째 만납니다. 대화가 적어서 오해가 생긴다면, 더 자주 만남으로써 오해를 풀어보려고요.

 

댓글 중에, W가 맨손으로 대중교통 손잡이 못 잡냐는 질문이 약간 문제시 됐던데, 왜죠? 결벽증 있는 사람에 관한 논쟁이 있었나요 판에서? 아니면 W의 신상이 들킬까봐 염려해서 그러신 걸 수도 있겠죠.

 

어차피 저희는 대중교통을 잘 이용하지도 않아서 말씀드려도 상관없을 것 같기도 하고, 얼마 전에 있었던 일도 떠오르니까 그 얘기 한번 해볼까요.

 

W는 맨손으로 손잡이 못 잡습니다. 근데 아마 대충 다들 짐작하셨을 것 같은데. 고등학생 때보다 더 심해졌어요.

 

저희가 몇 주전에 지하철 탈 일이 있었어요. 주말 낮 시간대라 차로 이동하면 20키로 움직이는데 족히 4,50분은 걸리는 구간이 있어요. 차에서만 대충 한시간 반은 있어야 해서, 그냥 지하철 타고 가자 했었죠. 지하철로는 30분 정도 걸리는 곳이어서.

 

보통 지하철을 타면, 다들 선호하는 자리가 있겠지만 저희는 둘 다 앉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좀 불편해요. 지하철 자리가 그리 넓지 않잖아요. 저랑 W가 나란히 앉는 것만으로도 이미 좁아서 항상 서서 가요. 그리고 자리가 나도 W는 못 앉고요, 결벽증 때문에.

 

저희는 어느 칸에 타도 4번째 문에서 타요. 그냥 습관처럼. W랑 지하철을 탄 건 굉장히 오랜만이었는데, W는 지하철을 타면 되게 이상하게 서 있어요. 보통 지하철에서 열리는 문이 고정적이잖아요? 아닌 구간도 있겠지만 주로 오른쪽 문이 열린다고 가정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왼쪽문에 등을 기대고 있지 않나요. 저도 왼쪽문에 등을 기대고 서서 가는 걸 편하게 여깁니다.

 

근데 W는 그 노약자석과 왼쪽문 구석쯤에 가서 사람들에서 등을 진 채로 서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구석을 바라본 채로 서서 간다고 하면 이해하실 수 있으시려나. 꼭 죄진 사람처럼 그렇게 가요. 왜 그러는지 대충 이해는 되는데 좀 안쓰럽기도 하고, 약간 노이로제 걸린 사람 같기도 하고 그래요.

 

어쨌거나 가뜩이나 지하철을 싫어하는데 그 날 이후로 더더욱 싫어하게 됐죠.

갈 때는 주말 낮이라 그럭저럭 괜찮았는데 돌아오는 지하철은 사람이 정말 미어터질 정도로 많았죠. 아마 다들 어느 정도인지 아실거예요. 몇 호선이라 굳이 말 하지 않아도.

 

저희도 일단 지하철을 타기는 탔는데, 타고나서 아 택시타고 갈걸 후회했죠. 정말 사람이 너무 많아서 팔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을 정도였으니까.

그렇게 다 같이 끼어서 지하철을 타고 있는데, 저랑 W는 2미터 가량 떨어져 있었어요. 사람이 계속 타다보니까 자연스럽게 저희 사이에도 사람이 타게 되면서.

 

그런데 W 앞에 서있던 여성분이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들고 타셨어요. 그 아메리카노가 뚜껑이 제대로 안 닫힌 채로 컵에 얹혀져만 있는 상태더라고요. 제 눈에는 그 여성분이 보였는데 W는 바로 앞이 그 여성분이라 안 보였을 위치였어요. 여성분 키가 W 어깨 밑으로 왔으니까.

 

그 커피가 계속 위태롭게 보였어요. 더군다나 그 여성분이 꽤나 부산스럽게 보였어요. 그 커피를 마시지도 않고, 커피를 팔에 낀 채로 핸드폰을 하기도 하고 가방에서 뭘 꺼내기도 하고. 계속 신경이 쓰이기는 했지만 W에게 말해줄 정도의 거리는 아니라서 저도 모르게 째려보듯이 그 여성분 커피만 보고 있었는데, 결국 일이 터졌죠.

 

그 분이 커피를 손에 든 채로 이어폰을 만지다가 그 커피를 그대로 W 옷에 다 쏟은거죠. 그 좁은 공간에서, 신기하게도 커피를 쏟자마자 모세의 기적처럼 사람들이 전방 1미터로 물러서더라고요. 그리곤 그 여성분과 W에게 시선이 가죠 아무래도.

 

여성분이야 미안해하면서 사과하셨죠. 근데 그 때의 W 표정은 정말 직접 보지 않고는 글로 묘사해드리기가 힘드네요. 그냥 싸늘함 그 자체였어요. 아마 제 글 읽으면서도 눈치 채셨겠지만, W는 상대방이 미안해하든 말든 본인이 안 괜찮으면 그 사과를 안 받아줍니다. 예의상으로라도 괜찮다고 안 해요.

 

여성분이 어쩔 줄 몰라하면서, 어머 어떡해 괜찮으세요? 라고 말하면서 가방에서 휴지를 찾는거 같긴 한데 없는 것 같더라고요. W가 정말 그보다 정색할 수 없을 만큼 정색을 하면서, 안 괜찮습니다. 하면서 손으로 커피를 털더라고요. 커피 쏟자마자 저도 W 옆으로 가서 손수건으로 대충 커피를 닦아줬지만, 흰 옷에 쏟아진 커피가 닦는다고 닦일 리 없죠.

 

W가 그렇게 나오니까 여성분은 더 곤란해하셨죠. 그러면서, 세탁비라도... 라고 하면서 말을 흐리시는데 W가, 됐습니다. 라고 말하더라고요. 그리고 지하철 문이 열려서, 목적지도 아닌데 일단 W를 데리고 나왔죠.

 

내려서 화장실로 가긴 했는데, 그런다고 할 수 있는 게 없죠. 옷을 벗어서 빨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 때 시각도 이미 역내든 역 밖이든 상가는 다 문 닫았을 시간이었고요.

 

화장실 같은 칸에 들어가서 일단 W 옷을 벗겼어요. 아니 제가 벗기지 않아도 W도 벗었을 거예요. 그 표정을 보면 정말 잠시도 못 견디겠다는 표정이었으니까. 그리고 제가 W 옷을 들고 나와서 커피 묻은 거 다시 짜내고 탈탈 털긴 했는데.. 그 옷을 다시 입으라고 못 하겠더라고요. 그래서 제 옷 벗어서 바꿔줬어요. W야 만류했죠. 뭐하는거야, 그냥 내 옷 줘. 하는데, 그 상황에서 제가 할 수 있는 게 그것 말곤 달리 없는 것 같더라고요. 화장실에 아무도 없어서 다행이지, 누가 있으면 다 큰 남자 둘이서 웃통 벗고 티를 내놔라 마라 하고 있으니 오해하기 딱 좋았을 거 같아요.

 

전 W만큼 예민하지 않아서 크게 짜증나진 않지만, 다만 축축해서 좀 찝찝하긴 했어요.

 

 

그리고 이건 또 몇 주 전 얘기입니다. 지하철 탄 날이랑 같은 날은 아니고요.

제가 글을 쓰다보면 의도치 않게 자꾸 W의 외모에 대해 언급...이라고 해야 하나, 은근슬쩍 자랑하듯이 글을 쓰게 되는데, 그게 자랑하려는 의도는 아닙니다. 아 물론 제가 좋아하는 사람 외모가 출중하면 뭐 저도 좋죠. 보는 눈도 즐겁고 덩달아 제 어깨도 으쓱해지는 기분도 있고요.

 

그런데 그런 이유보다도..

저희 두사람이, 글 읽으면 아시겠지만 그렇게 재밌는 사람도 아니고, 대화도 별로 없어서 온전히 저희 둘만의 이야기를 쓰라고 하면 그다지 쓸 얘깃거리가 없어요. 굉장히 평범하다못해 남이 볼 때 다소 지루할 수 있을만큼 단조롭습니다.

 

그러다보니 저희의 잔잔한 일상 속에서 뭔가 파동이 칠 만한 얘깃거리가 생기면 제가 글을 적는 건데, 그게 주로 이성 관련 얘기인 경우가 많아요. 그리고 W 자체가 좀 특이하다보니까 W의 성격이나 성향에 대한 얘기도 적잖이 쓰게 되는 거고요. 

 

그래서 그런 거니까 맨날 제 얘기가 비슷비슷해보여도 그냥 그러려니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몇 주전에 저희가 뮤지컬을 보러 갔습니다. 시간이 좀 남아서 공연시간까지 카페에 있기로 했죠. 주차해 놓고 카페로 향하는데, W가 손 좀 씻고 온다고 해서 그럼 제가 주문해놓고 기다리겠다고 했죠. 공연보러 온 사람들 영향인지 줄이 좀 있더라고요. 저도 줄 서고 기다리고 있을 때 W가 들어왔죠.

 

제가 줄 서고 있으니까 W도 절 지나쳐서 자리를 잡으러 먼저 안으로 들어갔어요. 근데 W가 들어오면 알게모르게 사람들이 W를 힐끗힐끗 쳐다봐요. 같이 다니면 당연히 시선이 느껴지고 W도 모를 리가 없죠. 그래서 사람 많은 곳을 싫어하는 것도 있고. 사실 그래서 싫어하는건지 성격 때문인건지 확실치는 않지만. 본인만 알겠죠.

 

그래서 지하철도 구석에만 있고 카페에도 꼭 구석에만 앉아요. 그날도 어김없이 제일 구석에 앉아있더라고요. 주문한 음료를 받아서 W에게로 가는 동안에도 W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데, W를 힐끔거리며 보는 시선들이 느껴지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앉으면서, 니 전 여자친구들은 불안했겠다. 라고 말을 했죠. W가 뭔 소리야 또. 하길래, 제가 주위 사람들 살짝 가리키니까 W가 못 들은 척 무시하더라고요. 알면서 대답하기 싫어서 그러는 거에요. 잘 무시합니다, 제 말.

 

그래서 제가 다시 또 말했죠. 어디 뭐 불안해서 같이 다니겠어? 남자친구 노리는 사람들이 많아서? 라고 말했어요. 진심이긴 했지만 약간 놀리듯이 장난섞어가면서 말한 거예요. 제가 그렇게 말하니까 W가.. 아 지금 생각해도 귀여운데.

 

W가 그러더라고요.

그것 때문에 불안했던 게 아니겠지. 라고 말하길래 제가 그럼? 하고 다시 물었죠.

W가 웃으면서, 마음이 딴 데 가 있어서? 라고 말하는데 진짜 정말 너무 귀여웠습니다. 당장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을 정도로.

 

가끔씩 진짜 가뭄에 콩나듯 한 번씩 저렇게 귀여운 말을 합니다, W가.

나름의 애정표현이겠죠? 진짜 귀여워요. 그 얼굴로 그런 표정으로 말하면 듣는 사람은 녹아요.

 

물론 글로 보시는 사람들은 제가 오버하는 거로 보일 수도 있고.. 잘 이해가 안 가시겠지만.. W를 아는 누군가가 들었다면 진짜 까무라칠 거예요. 

 

 

제가 글 쓰기 시작할 때 비나 시원하게 쏟아졌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곧 비가 쏟아질 것 같네요.

사실 더 쓰고 싶지만, 카페가 마감을 합니다. 나가야겠습니다. W는 올 생각을 안 하고.

 

어쨌거나 조만간 또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