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미워하는사람... 나의 아버지... 미움은 사랑의 잔재라는데...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한국에서 젤루 유명하던 일본어 강사였던 아버지는 우리를 술때문에 다 망하고 시골로 이사를 가게만든 장본인 이었다 시골에서 난 나름대로 적응해서 잘 살아갔고... 별 문제가 없어보였지만.. 언제부터인가 시작된 술주정.. 그리고 심해지는 폭력... 결국 고1때 어머님을 외가에 보내고 나도 나왔다 당시 내동생이 초등학교5학년 이었기에 동생에게는 폭력이 없었으므로... 또 동생은 아버지가 잘 챙겨줬기에 믿고 나왔는데.. 고2때 동생이 울면서 전화했다 미친듯이 달려가보니 동생의 온몸은 피로 범벅이 된 채로 보일러실에 숨어있었고 아버지란 인간은 술에취해 잠들어 있었다 들끓는 분노를 삭히고 동생의 짐을 챙겨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을 나왔다 학교 정문 바로앞에 월11만원짜리 자취방을 얻고 주말마다 알바를 하며 살았다 잠시 소홀했던 성적에도 신경써서 장학금을 받을 수 있었고 방봉반 부장이었던 나는 학기당 얼마씩 쓸만한 용돈도 학교에서 받아서 생활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아버지라는 사람이 고3때 학교에 만취된 상태로 찾아와서 나를 피떡을 만들어 놓고 갔다 그 후로 한달간 학교를 안나갔고... 담임이 찾아왔지만 난 학교에 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나마 그때 나쁜길로 빠지지 않은걸 다행으로 여기고 내가 기특한 면이 있기도 하지만 정말 맘고생이 심했다 그때 혼자 술을 배웠고 담배만 늘어갔다 다시 학교에 나갔을때 날 잘 알지 못하는 애들의 눈길을 이겨내기가 힘들었다 당시 그놈들은 내가 사고쳐서 아버지가 찾아와서 개패듯이 팬거라고 알고있었다 그도 그럴것이 아버지가 우리학교 일본어 강사였기에.. 수능이 끝나자 마자 난 레스토랑에 들어갔고 동생을 데려가 그곳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살았다 재수좋게 연대에 붙었지만 사정상 때려치고 방통대란 곳에 가게되었다 그곳에서 알게된 형의 소개로 대기업에 들어갔고 학교는 뒷전 우선 회사에 매달려 열심히 일해서 인정받기 시작했을즈음... 다리에 이상이 생겨서 수술을 했는데... 으료사고가 나서 오른발 무릎 아래 신경이 마비되어 다리를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다행히 1년간의 꾸준한 재활 피나는 노력으로 운동신경이 돌아왔으나 감각신경은 아작도 모두 돌아오지 않았다 아무튼 그렇게 회사를 그만두고 잠실 야구장에서 안전요원 일을하며 지내다가 야구팀을 하나 만들었는데 의외로 반응이 좋아서 팀이 많이 커졌다 유니폼두 맞추고 팀 장비도 구입하고 안양연고 팀 들과 친선겜도 하고... 하면서 여러 사람을 알게 되었고 지금의 직업을 직장을 소개해준 형도 만났다 덕분에 참 적성에 맞고 하고싶었던 일을 하고 살고 있었는데... 그간 아버지와 가끔 통화도 하며 약간의 화해의 노력을 하고 있었는데 두달넘게 연락이 없는 아버지... 항상 술취하면 전화해서 엄마를 화냥년이라며 나를 폐륜아라며 욕하던 아버지가 연락이 안되는 것이다 날 정말 꺼려하는 친가친척들 아버지가 술취해서 아무렇게나 이야기 한 것들을 그대로 믿고있는 바보같은 사람들... 그들은 내가 아버지에게 병으로 맞아서 머리가 찢어졌었는지도 코뼈가 부러졌었는지도 이빨이 부러졌었는지도 모르고 단지 아빠가 싫다고 욕하고 때리고 집나간... 나쁜새끼 후레자식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우리 엄마를 싫어하는것도 당연하고.. 아무튼 그런 그들에게 아버지의 소식을 물으니... 구치소 수감중이란다 게다가 할머니 쓰러지셔서 입원중이시란다 아무리 그래도 그런 일이 있으면 아들인데... 나한테 연락을 줘야하는것 아닌가... 큰아버지와 만나서 많은 얘기를 했다 역시 말이 안통했지만 내가 정말 하고픈 말이 많았지만 자식으로서의 도리를 못한 죄가 있기에 그냥 넘어갔다 아마 내가 아버지라는 짐을 짊어지고 살아야 할 것 같다 일이 좋게 끝나서 나온다고 해도 또다시 술을 입에 댈 것이고 그럼 또 폐인이 되어 사고를 칠 것이 분명하니... 나라도 아버지랑 같이 살아야겠다... 며칠간 고민끝에 내린 결론이나.. 자신이 없다 이런 저런 일로 심난해 하고 있을때 닥친 일이라... 감당하기가 너무 힘들고 아버지란 사람을 이번 일 하나로 용서하고 그간의 일을 덮어두고 살 자신도 없고 아마 더 악화될 일을 만들지도... 어찌해야할지 너무 힘들다... 왜 영화에서나 일어나는 일들이 나에겐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찾아오는걸까 신을 저주한다 젠장... 나는 둘째치고라도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나이부터 지금까지 줄곧 아픔만을 겪으며 커가는 내 동생은 어찌하란 말입니까 아직 동생은 이 소식을 모른다 정말 머리속이 복잡하고 터질것만 같다 너무 싫다 사고쳐서 내가 생겨서 원치않는 결혼을 했다며 왜태어났냐고 소리치던 아버지 내 생에 가장 상처받은 말 단 한마디...... 그를 증오하지만 그를 버릴 수 없는 천륜을 가진 나이기에 신을 원망하고 신을 저주한다
미움과 증오...지금은...
세상에서 가장 미워하는사람... 나의 아버지...
미움은 사랑의 잔재라는데...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한국에서 젤루 유명하던 일본어 강사였던 아버지는
우리를 술때문에 다 망하고 시골로 이사를 가게만든 장본인 이었다
시골에서 난 나름대로 적응해서 잘 살아갔고...
별 문제가 없어보였지만..
언제부터인가 시작된 술주정.. 그리고 심해지는 폭력...
결국 고1때 어머님을 외가에 보내고 나도 나왔다
당시 내동생이 초등학교5학년 이었기에 동생에게는 폭력이 없었으므로...
또 동생은 아버지가 잘 챙겨줬기에 믿고 나왔는데..
고2때 동생이 울면서 전화했다 미친듯이 달려가보니
동생의 온몸은 피로 범벅이 된 채로 보일러실에 숨어있었고
아버지란 인간은 술에취해 잠들어 있었다
들끓는 분노를 삭히고 동생의 짐을 챙겨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을 나왔다
학교 정문 바로앞에 월11만원짜리 자취방을 얻고
주말마다 알바를 하며 살았다
잠시 소홀했던 성적에도 신경써서 장학금을 받을 수 있었고
방봉반 부장이었던 나는 학기당 얼마씩 쓸만한 용돈도 학교에서
받아서 생활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아버지라는 사람이 고3때 학교에 만취된 상태로 찾아와서
나를 피떡을 만들어 놓고 갔다
그 후로 한달간 학교를 안나갔고...
담임이 찾아왔지만 난 학교에 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나마 그때 나쁜길로 빠지지 않은걸 다행으로 여기고 내가 기특한 면이 있기도 하지만
정말 맘고생이 심했다
그때 혼자 술을 배웠고 담배만 늘어갔다
다시 학교에 나갔을때 날 잘 알지 못하는 애들의 눈길을 이겨내기가 힘들었다
당시 그놈들은 내가 사고쳐서 아버지가 찾아와서 개패듯이 팬거라고 알고있었다
그도 그럴것이 아버지가 우리학교 일본어 강사였기에..
수능이 끝나자 마자 난 레스토랑에 들어갔고 동생을 데려가 그곳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살았다
재수좋게 연대에 붙었지만 사정상 때려치고 방통대란 곳에 가게되었다
그곳에서 알게된 형의 소개로 대기업에 들어갔고
학교는 뒷전 우선 회사에 매달려 열심히 일해서 인정받기 시작했을즈음...
다리에 이상이 생겨서 수술을 했는데...
으료사고가 나서 오른발 무릎 아래 신경이 마비되어 다리를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다행히 1년간의 꾸준한 재활 피나는 노력으로 운동신경이 돌아왔으나
감각신경은 아작도 모두 돌아오지 않았다
아무튼 그렇게 회사를 그만두고 잠실 야구장에서 안전요원 일을하며
지내다가 야구팀을 하나 만들었는데 의외로 반응이 좋아서
팀이 많이 커졌다
유니폼두 맞추고 팀 장비도 구입하고 안양연고 팀 들과 친선겜도 하고...
하면서 여러 사람을 알게 되었고
지금의 직업을 직장을 소개해준 형도 만났다
덕분에 참 적성에 맞고 하고싶었던 일을 하고 살고 있었는데...
그간 아버지와 가끔 통화도 하며 약간의 화해의 노력을 하고 있었는데
두달넘게 연락이 없는 아버지...
항상 술취하면 전화해서 엄마를 화냥년이라며 나를 폐륜아라며
욕하던 아버지가 연락이 안되는 것이다
날 정말 꺼려하는 친가친척들
아버지가 술취해서 아무렇게나 이야기 한 것들을 그대로 믿고있는 바보같은 사람들...
그들은 내가 아버지에게 병으로 맞아서 머리가 찢어졌었는지도
코뼈가 부러졌었는지도 이빨이 부러졌었는지도 모르고
단지 아빠가 싫다고 욕하고 때리고 집나간...
나쁜새끼 후레자식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우리 엄마를 싫어하는것도 당연하고..
아무튼 그런 그들에게 아버지의 소식을 물으니...
구치소 수감중이란다
게다가 할머니 쓰러지셔서 입원중이시란다
아무리 그래도 그런 일이 있으면 아들인데...
나한테 연락을 줘야하는것 아닌가...
큰아버지와 만나서 많은 얘기를 했다
역시 말이 안통했지만
내가 정말 하고픈 말이 많았지만
자식으로서의 도리를 못한 죄가 있기에 그냥 넘어갔다
아마 내가 아버지라는 짐을 짊어지고 살아야 할 것 같다
일이 좋게 끝나서 나온다고 해도 또다시 술을 입에 댈 것이고
그럼 또 폐인이 되어 사고를 칠 것이 분명하니...
나라도 아버지랑 같이 살아야겠다...
며칠간 고민끝에 내린 결론이나..
자신이 없다
이런 저런 일로 심난해 하고 있을때 닥친 일이라...
감당하기가 너무 힘들고 아버지란 사람을
이번 일 하나로 용서하고 그간의 일을 덮어두고 살 자신도 없고
아마 더 악화될 일을 만들지도...
어찌해야할지 너무 힘들다...
왜 영화에서나 일어나는 일들이 나에겐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찾아오는걸까
신을 저주한다 젠장...
나는 둘째치고라도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나이부터
지금까지 줄곧 아픔만을 겪으며 커가는 내 동생은 어찌하란 말입니까
아직 동생은 이 소식을 모른다
정말 머리속이 복잡하고 터질것만 같다 너무 싫다
사고쳐서 내가 생겨서 원치않는 결혼을 했다며
왜태어났냐고 소리치던 아버지
내 생에 가장 상처받은 말 단 한마디......
그를 증오하지만 그를 버릴 수 없는 천륜을 가진 나이기에
신을 원망하고 신을 저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