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영지주의자들
1.1. 니콜라스
영지주의 기원에 전통을 보면, 요한계시록(2:6, 15-17)에서 사도요한은 에베소교회와 버가모 교회에 경고를 주면서 니골라당을 언급한다. ‘니골라당’(Nicolaitans)이란 이름은 니콜라스(Nicolas)라는 이름에서 유래된 말이다. 그는 안디옥 출신으로 사도들에 의해 수임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아름다운 아내를 두었기 때문에 육체를 경멸하라는 교훈들에 관해 반항적인 해석을 피력했다는 것이다. 요한계시록 이후 니골라당에 대해 처음으로 언급한 사람은 저스틴(Justin Martyr, d.c. 165)이었다. Trailians에게 보내는 서신에서 그는 “니골라당을 멀리 하십시오. 어리석은 자들입니다. 그들은 쾌락을 사랑하지만 중상적인 혀를 놀립니다”고 했다. 이레니스(Irenaeus, c.125–c.202)는 자신의 책 Adversus Haereses 에서 그들에 대해 이렇게 언급한다: “니골라당은 사도들에 의해 집사를 처음으로 받은 자인 니콜라스를 추종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무절제적인 방종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이런 자들의 특징에 대해서 요한 계시록에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계속하여 이런 자들은 영지주의자들이라고 칭하고, 익나티우스와 동일하게 시몬과 메난더를 근거하고 있다고 한다. 역사가 소크라테스 (Socrates the historian, 5C.)는 요한일서 4:1-3이 니골라당을 두고 하는 말이면서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인성과 분리하려고 하는 자들이라고 했다. 이와 같이 니골라당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격을 반대하고 반율법적인 경향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리멘트는 Carpocratians이 니골라당의 견해를 갖는다고 했다. 모세임 (Mosheim)도 니골라당을 영지주의자들과 연관시키고 있다.
1.2. 시몬 마구스
영지주의의 창시자는 대체적으로 시몬 마구스(Simon Margus)라고 한다. 사도행전 8:9-13에 나오는 시몬 마구스가 영지주의 창설자라는 설명은 알렉산드리아의 클리멘트의 Recognitions와 Homilies에 나타난 묵시적 작품들에서 비롯된다. 사두개인들의 유대 종파의 설립자로 가끔 여겨지는 도시데우스(Dositheus)가 시몬의 스승이었다고 하는데 도시데우스와 시몬의 근거를 두는 단체는 사마리아에서 설립되어 ‘사마리아인들’(Samaritans)이라 불렀다.
시몬 마구스는 로마제국의 황제 클라디우스 시대에 사마리아 지타(Gitta) 출신으로 마술을 행하는 자였다. 스스로 인간 형태를 가진 신이라고 주장했다. 신으로서 자신은 경배를 받아야 하고 유대인들 가운데 메시아로 나타났다고 했다. 시몬은 자신이 죽은 후 무덤을 파헤치라고 주장했는데 그 이유는 3일 안에 부활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자신을 사마리아인들에게 그리스도로 나타내었던 것이다. 두로에 가서 시몬은 헬렌이라는 매춘녀를 만나 구입하여 그녀와 함께 즐겼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통해 그녀를 구원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헬렌을 가리켜 자신의 영의 첫 사상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길 잃은 양과 비유된다. 이 어두운 세상의 타락한 신적 영의 최초의 모습이다. 자신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형태로 성육신되었다. 영지주의 체제에서는 반드시 요구되는 요인이다. “시몬 자신이 실제로 하나님이고 외형으로만 사람인 것처럼, 자신의 십자가에 못 박힘과 죽음도 단순히 외형으로 나타났을 뿐이라고 시몬은 가르쳤다. 그래서 그노시스주의가 그리스도가 단순히 인간인 것처럼 보인다고 말하는 교리인 “가현설(docetism, 헬라어 doketio, ‘나타나다,’ ‘. . . 처럼 보인다’)”의 서론이 시작된 셈이다.”
시몬은 니콜라스보다 한층 더 영지주의의 선구자로서 구체화된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그의 견해는 그의 제자들 중 한 사람 메난더(Menander)에 의해 나타났다. 메난더는 사마리아인으로 Capparetia 출신이었다. 주로 안디옥에서 활동했으며 스스로 불가시적 능력을 받은 구세주라고 천명했다. 시몬의 사상은 앞으로 등장하게 되는 이단운동에 끼친 특징들은 다음과 같다 :
(1) 이교도와 근동으로부터 나온 주제들과 성경적 사상들을 섞은 혼합주의적 현상;
(2) 본질상, 순수한 영적 성부와 구별되어 소망 없는 물질세계로 보는 이원론적 해석;
(3) 인격적 구세주가 세상에 임하셨다는 가르침;
(4) 유대인의 성경을 거짓되고 사악한 것으로 보고 거절함;
(5) 비밀적 지식만 아니라 마술에 대한 관심.
1.3. 케린투스
케린투스(Cerinthus)에 관해서는 이름 외에는 개인의 사생활에 대해서 우리는 아는 바가 없다. 1세기 말 요한의 작품들을 반대하는 자들은 그 기원을 케린투스에게 두었다. 그는 유대인이었고 종말론에서 천년왕국설 신봉자였다고 한다. 이레니우스에 의하면, 만일 최상의 존재가 세상일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음을 가르쳤으며, 최상의 하나님에 대해 무지하려는 능력이 세상을 창조했으며, 그리고 다른 천사가 율법을 만들어 유대인의 하나님이 되었다고 가르쳤다고 한다. 최상의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능력, 즉 덕은 세례 시에 요셉과 마리아의 아들인 예수님에게 부어졌다. 이런 주장은 후에 선재하는 이온들에 대한 영지주의 이론을 낳도록 한다. 인간 예수님만이 죽음을 경험했고 부활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상에서 부르짖었던 “나의 하나님”을 표현을 ‘나의 능력’으로 본다. 그는 마르시온을 따르는 자로서 역시 이원론을 고수한다. 로고스를 역시 ‘8인조’(ogdoad)에서 태어났다고 보고, 아버지로부터 세상에 오기 전에 지혜를 부여받았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그의 견해는 요한서신을 통해 공격을 받았다(요한 1서 4:3; 요한 2서 7). 7명의 천사들에 의해 세상이 창조되었고 마지막으로 창조된 인간은 신의 형상을 가졌다고 한다. 이런 인간은 더 높은 능력이 부어지기 전까지 바로 설 수 없다. 그래서 빛의 섬광이 그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이 빛은 바로 구세주로서 그리스도이다. 이 세상에는 천사들에 의해 창조된 두 종류의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그는 사악한 자들, 사람들, 그리고 귀신들을 멸망시키고, 선한 자들을 구원하기 위해 이 세상에 왔다. 결혼과 자녀들을 낳는 것은 사탄의 일이고 사악한 일이다. 어떤 면으로 볼 때, 케린투스는 기독교 영지주의자라고 할 수 있고 후에 등장할 사투르니누스의 초기 형태를 보는 듯싶다.
1.4. 사투르니누스
바실리데스와 동시대 인물인 사투르니누스(Saturninus 또는 Saturnilus, 117–138)에 대해서는 히폴리투스가 쓴 Refutation of all Heresies 16장에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그는 시리아의 안디옥 출신으로 메난더가 주장했던 것과 거의 유사한 견해를 가졌다고 한다. 그에 의하면,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한 아버지는 천사들, 본질들, 또는 능력들을 창조했다. 7명의 천사들에 의해 세상과 사람이 창조되었다. 그래서 창세기 1장에 나오는 우리들의 형상과 모양은 천사들의 것이라고 한다. 사람들의 모습이 지렁이에 지나지 않지만 위로부터의 ‘생명의 광채’(scintillation)로 인해 인간은 활력을 갖게 되었다. 천사들에 의해 두 종류의 인간이 창조되었다. 하나는 선한 영적 인류와 다른 하나는 악한 지상적인 인간이다. 이렇게 인간에 대해서 두 종류의 인간임을 말한 자는 사투르니누스가 처음이다. 하나님은 태어나지 않고, 형상을 가지지 않은 구세주를 사람인 것처럼 하여 보내셨다고 한다. 이렇게 가현설을 주장하면서 그에 의하면, 구세주는 유대인의 하나님의 던져버리기 위해 와서 자신을 믿는 자에게 구원을, 즉 생명의 광채를 되찾아 주는 것이다. 이상에 볼 때 그의 사상을 세 가지로 다시 요약할 수 있다:
(1) 성부와 세상 간에 다소간 타락하기 쉬운 중개자의 하강하는 사슬의 개념; 이러한 것을 “시대”라 번역되는 헬라어의 어원을 가진 “이언들(aeons)”은 신과 같은 영적 실재라는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유대인들의 하나님과 천사들은 타락하고 기본적 이언들이고 그 가운데서 선한 이언이 그리스도이다.
(2) 영적 세계와 물질적 세계간의 이원론이 이런 사슬에 포개진다. 영적인 실재인 이언들은 선하거나 악할 수 있지만 물질세계는 악한 이언들의 산출이고 그 자체는 악하다.
(3) 특별히 구원에 대한 이러한 영지주의적 개념은 육체적 감옥으로부터 구현된 인간 영혼들의 자유와 성부에로의 귀환을 의미한다. 하지만 신약성경과 너무나 다른 이 개념은 육체의 부활만 아니라 영혼의 생존을 필요하게 된다.
1.5. 바실리데스
영지주의의 창시자이며 최초의 영지주의 조직신학자인 바실리데스(Basilides, d. 140)는 알렉산드리아인이었다. 개인의 생애에 대해서 전혀 알 수 없으나 그의 아들 Isidore가 있었다는 것을 사료들을 통해 알 수 있을 뿐이다. 그의 아들 Isidore는 바실리데스의 교리를 발전시켜 제자들을 이끌었다고 한다. 바실리데스는 베드로의 해설자로 알려진 Glaucias의 제자라고 자청하면서 자신의 가르침들은 그에게서 배웠다고 했다. 또 다른 곳에서는 바실리데스가 Barcabbas와 Barcoph라는 선지자들을 만들고 사도 Matthias의 구두적 가르침을 받았다고 한다. Epipahnius에 의하면, 사투르니누스와 함께 안디옥의 메난더의 제자로서 알렉산드리아에서 로마제국의 황제 하드리안(Hadrian, 117-138)과 황제 피우스(Antonius Pius, 138-161)시대에 가르쳤다.
Agrippa Castor에 따르면, 그의 저서들이 현존하지 않지만 복음서에 관해 24권을 썼다고 한다. 하지만 남아있는 사료를 통해 그의 사상에 대해서는 우리는 알 수 있다. 모든 것이 순수한 무의 상태 또는 무존재(nonentiry)이다. 이레니우스에 의하면, 바실리데스는 태어나지 않은 아버지로부터 이성(nous)이 처음 나오고, 이성으로부터 로고스, 로고스로부터 신중(phronesis), 신중으로부터 지혜(sophia)와 힘(dynamis), 지혜와 힘으로부터 능력들, 본질들, 그리고 천사들이 나왔다는 것이다. 이런 천사적 존재들로 인해 가장 높은 하늘, 즉 첫 번째 하늘이 만들어졌다. 이들의 발산으로 인해 형성된 다른 능력들은 첫 번째 하늘과 유사한 또 다른 하늘을 창조했다. 첫 번째와 거의 유사한 모양이다. 또 다시 세 번째 하늘, 네 번째 하늘, 등등으로 만들어져서 마침내 365개의 하늘까지 만들어졌다고 한다. 제일 마지막 하늘을 붙잡고 있는 천사들은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들었다. 모든 것의 주인은 유대인의 하나님이다. 이제 천사들 중 가장 높은 아버지는 유대인들이 자신의 뜻에 순종하기를 원했으나 모든 군주들이 그에게 항거하고 반대했다. 그래서 태어나지 않는 아버지는 이러한 불운을 보시고 처음 태어난 이성, 즉 그리스도를 세상으로 보내어 세상을 지었던 천사적 존재들의 능력을 받아 자신을 믿게 하셨다.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는 사람으로 보이고, 이적을 행했지만 고통을 당한 것이 아니고 구레네 시몬이 대신 십자가에 못 박혔다. 예수님은 하늘로 되돌아왔다. 시몬은 예수님의 형상을 가진 자이다. 그리스도의 영지(gnosis)를 통해 사람들의 영들은 구원을 받지만 육체는 멸망을 당한다.
Epiphanius와 Pseudo-Tertullian에서도 이와 비슷한 묘사를 읽을 수 있다. 가장 높으신 하나님, 즉 태어나지 않은 아버지는 신비한 존재인 Abrasax를 가졌다고 한다. 이레니우스에 의하면, Abrasax는 365개의 하늘을 낳았다. 일 년 365일의 수와 같다. 또 십자가에 못 박힌 자를 고백하고 순교하는 것은 소용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구레네 시몬이 대신하여 죽은 것이기 때문에 그를 위한 것이지 그리스도를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바실리데스는 이렇게 가현설을 주장한다.
히폴리투스가 바실리데스의 원리에 관하여 말했던 곳은 「모든 이단들에 대한 반박들」(Refutation of all heresies)이다. 히폴리투스에 따르면, 그의 체제는 범신론적 일원론이었다. 모든 것은 태어나지 않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 그 하나님은 시공을 초월하는 모든 것의 순수한 형태이다. 그는 존재하는 것과 존재하지 않는 범주를 뛰어 넘어 있다. 하나님은 비존재이시라고 하며 모든 것의 태아로부터 낳으신다. 그 태아에는 3중아들이 있다. 첫째는 하나님 안에 있는 우주적 영(pneuma)으로서 비존재의 근원이다. 둘째는 하나님 아래에 있는 우주적 아들로서 비존재의 기반이 된다. 영과는 구분되지만 능력 자체를 소유하고 있지 않다. 셋째는 세상의 혼란에 떨어져 있다. 왜냐하면 물질과 영혼의 혼합이기 때문이다. 세상에 퍼져있는 영혼의 분자들은 부분적으로만 되돌아올 수 있다. 이런 귀환은 영이 물질의 짐을 잊어버리는 개인적 정결의 과정이다. 신적인 우주적 씨앗-영혼-빛의 혼란-물질-어두움으로 결합하게 되면 빗과 어두움의 전쟁이 일어난다. 이 전쟁으로 영혼의 분자들을 물질의 혼란으로부터 석방시키고 영혼을 기원적 근원으로 귀환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