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유우~ (우선 길게 한 숨부터 한 번 푹-" 내쉬고 시작하고자 합니다!!)
3년 전, 네이트 판에 글을 올려서 참으로 큰 위로를 받았던 적이 있습니다.
☞ http://pann.nate.com/talk/318342110
당시 그 어떤 심리 치료 보다도 게시글의 댓글들에 힘을 얻어서 글을 올린 뒤에도
한참이나 저와 비슷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의 댓글을 보면서 어떤날을 펑펑 울다가,
또 어떤 날은 댓글로 어린날의 절 제가 달래고 위로 하며 지금까지 또 버텼습니다.
다시 한 번 그때 댓글로 도움 주신 분들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복 받으실꺼예요!!!
적어도 제가 기억하는 어린날의 우리 집은 남들이 말하는것 처럼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고,
휴식과 안정을 주며 보호받는 삶의 터전이 아닌, 어떻게든 빨리 벗어나고픈 곳이였습니다.
[이유. 01] 닭다리는 스무살 이후 사회 나와서 처음 먹어 봤습니다.
치킨, 아니 그 시절- 제 어린날의 표현대로 "통닭"이라고 불러보겠습니다.
가끔 아빠 월급날 같은 때 저녁에 별식으로 통닭이 나오는 날은 늘 이렇습니다
엄마가 시장에서 저녁 장보기를 마치고, 집에 오는길에 통닭 주문을 합니다.
그럼 집에 들어온 엄마는 저한테 이따가 통닭 찾아오라고 심부름을 시키고,
전 30분쯤 뒤에 통닭집으로 가서(걸어서 10분 거리) 통닭을 찾아 집에 옵니다.
제 기억으로 제가 8~9살때부터 대도시로 이사와 배달 주문을하던 16살때까지
늘 이런 패턴이였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10년 가까이 심부름을 하면서도, 아니
그 이후에도 전 한 번도 집에서 닭다리를 먹어본 적이 없습니다. (ㅠㅅㅜ;)
보통 심부름을 다녀오면 고생했다고 수십번 중에 한 번은 저 줄만 하지 않나요?
닭다리는 늘 아빠와 늘 남동생의 몫이였던걸로 기억합니다. 네 좋습니다!!!
여기까지는 제가 백 번 이해해서 그려려니하고 참고 넘어가겠습니다.
근데 더 대박은, 남동생은 통닭 살을 꼼꼼히 발라먹는 스타일이 아니였습니다.
그저 닭다리 한 번 SSG-" 쓱 훑어서 뜯어먹고, 다음 날개 집고, 또 엉성하게
대충 뜯어먹고 살코기만 싹싹 발라서 급하게 먹기에 정신 없는 타입입니다.
물론 한창 어린 초등학생 남자애들이 뭘 알겠습니까? 근데 문제는 엄마입니다.
남동생이 대충 발라 먹어 뼈보다 살이 많은 뼈다귀들을 옆에 수북히 쌓아놓으면,
그거 한 번씩 더 발라먹어야 한다고, 본인도 그걸 먹고 손가락으로 가르키면서
한 번씩 더 먹어야 한다고 뼈무덤을 가르키는 겁니다. 심지어 저한테 건넵니다.
하아~ (ㅠㅅㅜ;) 전 차마 안 먹으면 안 먹었지, 그렇게까지 먹고 싶지는 않아서
제가 집어온 제 몫의 다른 통닭을 오래 오래 천천히 발라먹었던 생각이 납니다.
진짜, 타임머신이 있다면 돌아가서 10살의 저한테 통닭 10마리 사주고 싶네요. (ㅠ_ㅜ;)
이런 영향 때문인지, 저는 지금도 온국민이 사랑한다는 치킨을 좋아라 하는 편은 아닙니다.
대학에 오고 사회에 나왔더니, 남자 동기나 선배들은 닭다리는 여자들 먹으라고 챙겨주던데,
그 때 속으로 정말 놀랐습니다. '아니 이 분들은 도대체 집에서 엄마가 어떻게 가르친거지?'
물론 지금은 회사에서도 닭다리는 다 제껍니다~ 못먹어 봐서인지, 닭다리 고것 참 맛나더군요!
(뺐는건 아니고, 연차가 있으니 후배들이 좋은거 있으면 챙겨주는 분위깁니다. 욕하실까봐 ^-^;)
[이유. 02] 어린 시절, 맛있는건 늘 남동생 몫
통닭 말이 나온김에 먹는 이야기 하나 더 하고 가겠습니다. 이때는 제가 조금 더 어린 시절~!!
위에 통닭 심부름은 초등학교 들어가고 난 뒤니까, 이 이야기는 제가 유치원 다닐때입니다.
아버지가 근무 시간이 굉장히 불규칙한 운송업에 종사하셔서 밤근무, 새벽 근무 등이 많았습니다.
이렇게 아버지가 밤 근무에 나간 날이면 엄마는 거의 남동생을 데리고 함께 주무셨습니다.
보통은 할머니 남동생, 저 이렇게 한 방을 쓰고, 부모님과 갓난쟁이 여동생이 한 방을 쓰지만
아빠가 밤근무를 나가신 날이면, 엄마는 남동생을 데리고 여동생과 한 방에서 잤습니다.
이런거에 불만이 있었던건 아니니 기억에 없을 법 하지만, 또렷하게 기억 나는 어느밤이 있습니다.
할머니랑 잘 준비를 하던 중, 오후에 읽던 동화책이 생각났고, 그 동화책은 건너방에 있었습니다.
방으로 건너가니 여동생은 자고, 남동생과 엄마가 재미난 이야기를 귓속말로 소곤거리고 있던데,
'아아~ 저는 그때 보고야 말았죠. 남동생이 양손으로 들고 마시는 대접의 걸쭉한 황토색 커피를...'
그때는 달짝지근한 커피가 왜 그리 맛있었는지? 아빠 손님들이 오셨다 남기시고 간 커피를 맛보니
'커피 마시는 키 안큰다는' 협박도 무섭지 않았던 그런 맛?? 혹시 끄덕끄덕 동의하는 분 계시나요?
(그 시절의 커피가 약간 고급 문화였나요? 엄마가 중요한 손님들에게만 대접했던 기억이 나네요.)
마침 그 날 따라 오후에 남매 모두 엄마한테 커피 마시고 싶다고 졸랐건만, 끄떡도 안하던 엄마는
그날 밤 남동생한테만 커피를 타서줬고, 남동생이 절 빼꼼히 흘겨보는 눈동자 아래로 대접에 담긴
커피와 함께, 그 보다 서늘했던 엄마의 눈빛이 지금도... 아니 평생토록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엎드려 누워 커피를 마시던 남동생과, 그 옆의 엄마의 시선을 그 후 20년 뒤에 한 번 더 봤습니다~!
헤어진 남친을 우연히 카페에서 마주쳤던 그 날, 그 옆의 여친이 저를 꼭 그런 시선으로 봤습니다.
20년 전의 그 날 밤 남동생 옆에서 저를 쳐다보던 엄마의 시선과 어쩜 그 그리도 닮았었을까요?
정말 그 날 문뜩 그 여자 시선 위로 엄마가..... 20년 전의 그 밤이, 그 기억들이 겹쳐 생각났습니다.
(※ 그 여친이 절 알고 있었습니다만 도대체 어떤식으로 말했길래, 절 그렇게 쳐다봤을까요? ㅋㅋ)
그 시절 엄마들의 택배 기사님! 방판 아줌마가 왔을때, 장난인지 아니면 진심으로 챙피하셨는지...
(종종 아니 자주... 제 앞에서 제 외모 비하와 함께, 애가 셋이나 되서 밖에 나가면 사람들이 다
수술하라고 한다며(/그때는 무슨 수술인지 참 궁금했음/ 남사스럽다는 이야길 자주 하셨습니다.)
옆의 동생들은 다 본인 자식이고, 옆에서 책을 읽고 있던 저를 가르키면서는 옆집에서 놀러왔다고
그 아줌마는 "옆집에서 놀러왔구나, 혼자 보냈어요?" 그러시고는 저를 흘깃 한 번 쳐다보셨습니다.
저는 그 상황에 왠지 아무말도 하면 안 될것 같아, 그냥 한 시간 내내 조용히 책만 보고 있었는데,
그 아줌마랑 마당으로 나가면서 인사하는 길에, 늘 있던 일처럼 남동생은 절 괴롭히기 시작했고
저는 "엄마~ OO봐." 라면서 도움을 청했는데, 언제나 한 번도 도와주시는 일 없이 무시하셨지만
그 날은 방으로 돌아오셔서 발끈하고 화를 내셨습니다. 근데 그 이유가 너무 기가 막혔습니다.
"아줌마한테 너 옆집에서 놀러왔다고 말했는데, 네엄마라며 OO보라고 외치면 어쩌냐고!!"
근데 위에 에피소드 보다도 전 20년 전의 그 밤 그 때, 엄마의 그 눈빛이 더 서럽습니다.
역시 눈은 입보다 많은 말을 한다는 명언은 틀리지 않난 봅니다.
[이유. 03]
이 말고도 먹는거 때문에 속상하고 서러운 경험이 참 많습니다. 정말 다른거 보다 서럽습니다.
어느 명절에 외갓집에 갔을때는, 명절 당일 먹고 남은 갈비가 많지는 않았는지 다음날 보니
제 남동생과 사촌 동생 (큰 외삼촌 아들)만 저쪽 작은상에서 둘이 갈비를 뜯고 있더라구요.
그때 전 엄마와 이모들과 같이 양푼에 고추장 넣고 비빈 열무 비빔밥을 먹고 있었습니다.
고개를 들어보니 동생과 사촌동생이 갈비를 먹고 있는 모습을 보고는 "엄마, 나도 갈비 먹고 싶어."
라고 말했더니, 엄마는 "동생들 먹는게 뭐 똑같이 먹고 싶어. 그냥 여기 밥 먹어." 하시더라구요.
그때 저 10살도 안됐습니다.
(하아악..... 저때의 엄마는 정말이지 이해가 안됩니다. 전 회사 워크샵을 가도 후배 여직원들이
대표님과 이사님 드시는 저쪽 테이블의 뭐가 먹고 싶어요 그럼, 그거 좀 덜어와서 나눠줍니다!)
옆에서 내심 아들 입에 한 점이라도 더 들어갔으면 하는게 보였던 큰외숙모는 가만히 계셨지만,
이모랑 둘째 외숙모는 "언니는, 애들 고기 먹고 싶은 맘이 똑같지!" 라고 하시며 덜어 주셨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이 에피소드 쓰고 나보니 생각이 납니다. 제가 크고 나서 제가 번 돈으로 밥사준
애들은 둘째 외숙모 조카들이랑, 이모 조카들뿐입니다. 기가 막히게도 맘이 그렇게만 갔네요.
뭐 학창 시절에도 늘 남동생은 소세지 햄 반찬이 두 세칸, 전 한 칸에 나머지는 김치 반찬, 한 번은
크고 나서 이 이야기를 했더니 남동생은 김치 싸주면 도시락 안 가져간다고 돈 달라고 했다면서,
근데 너는 싸주면 다 먹고오데? 라는 엄마 말에 말문을 잃어서 그 이후로는 입을 닫아버렸습니다.
또한 중학교 다니던 시절 용돈이 전 1만원, 남동생 2만원 이랬습니다. 어차피 말한다고 제 용돈
올려줄꺼 아니라는걸 너무 잘 알았지만, 말했더니, 남동생은 학교가 멀잖아 라면서 편들더군요.
물론, 그 이후로도 용돈 액수는 차이 없었습니다. (하아악..... 나도 나중에 용돈 덜 입금할테야!!)
네~ 저희 학교는 걸어서 10분, 남동생은 걸어서 15분(남자 걸음으로는 7~8분) 거리였습니다.
그 이후로 대학교 시절에는 20만원씩 주셨었는데, 전 그 20만원에서 제 휴대폰비를 제가 냈고,
남동생과 여동생의 휴대폰 요금은 엄마 통장에서 빠져나갔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치사하네요.
어차피 말한다고 달라지지 않을걸 아는지라~ 대학교때 부터는 그냥 죽자고 알바 열심히 했네요.
[이유. 04]
이런 이야기들이 어릴때에서 끝난 이야기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아직도 전혀 변화가 없습니다.
다 크고 난 대학 시절에도 어느 저녁날 엄마가 "오늘 저녁에 외식으로 뭐 먹을까?" 라고 말했던 날,
전 피자, 남동생은 수박 이렇게 말하면 그럼 울 아들이 먹고 싶어 하자는 거 먹어야지 라고 말하는
엄마의 그 한 마디에 빡쳐서(!) 동기들한테 싹 연락 돌려서 오늘 내가 알바비로 피자 쏠테니까,
다 모이라고 보란듯이 큰 소리로 말하면서 나갔습니다. 네 아직도 이런 집(구석)입니다. (=_=#)
지금 말씀드리는 내용도 불과 2년 전의 이야기입니다.
1년에 3~4번 정도(명절포함) 집(대구)에 가는데, 명절 말고는 집에가도 집밥 거의 안 먹습니다.
보통은 친구들이랑 밖에서 먹고 가거나 아님 집에서는 동생들과 배달 음식을 시켜먹고는 합니다.
이렇게 된 즉슨, 몇 년 전 어느날 집에 갔을때, 식사 시간에 벌어진 이야기를 좀 하고자 합니다.
주말 늦은 오후, 점심 상을 차리고 있었고 전 엄마를 거들어서 옆에서 반찬 꺼내고, 찌개 데우고
같이 상을 차렸습니다. 이제 밥만 푸면 되는데, 엄마가 밥솥을 열고 밥을 푸고 계셨습니다.
당시 아빠는 안방에 계셨고, 동생도 자기 방에서 게임을 하고 있었서 식탁에는 저만 있었습니다.
전 신탁에서 왼손에 숟가락, 오른속에 젓가락을 세워 들고, 배고프다고 밥밥 노래를 부르고 있는데
엄마가 일단 아빠밥을 먼저 퍼서 주면 들고 가라고 하셨습니다. 근데 그 다음 남동생 밥을 푸네요?
하하하하하하핫, 뭔 상황이지?? 정말 제가 그 상황에서 순간 잠시 빡-"(?!? ^-^;) 쳤던거 같습니다.
"엄마~ 뭐하는거야? 나 지금 여기 있는거 안 보이냐고? 그래, 아빠밥까지는 이해를 하겠어,
근데 그 다음밥이 엄마 밥도 아니고, 기다리고 있는 내 밥도 아니고 OO밥?? 이게 지금 말이 돼?"
그러자 엄마왈, 내 집에서 내가 밥 푸는 순서에 상관말라고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몹시 화난 제가
"그래? 알았어. 그럼 나중에 OO가 우리집 놀러오면 그때는 내 밥 먼저 푸고 OO밥 퍼주면 되겠네?"
그랬더니 엄마는 다시 "그때는 OO가 손님이니까, 당연히 OO이 밥 먼저 퍼줘야지." 하시네요??
"그래? 그럼 난 지금 이 집에 손님인테, 왜 내 밥 먼저 안 퍼줘?", "네가 손님이가? 지금 우리집에?"
이런식이여서 말문도 닫히고 더이상 문제 해결을 위한 대화가 불가능한 상태라 입을 닫았습니다.
남동생은 33살에 첫 직장을 잡았을 정도로 공무원 준비한다는 핑계로 백수 생활이 꽤 길었지만,
오전에 남동생이 '김치찌개' 먹고 싶다 하면 점심 시간 메뉴로 그걸 밥 상에 올릴 정도였습니다.
그런 와중에 서울에서 직장 생활하는 저한테는, 혹여 시집 안가서 사람 구실 못하고 몸 아프면,
나중에라도 고모처럼 친정에 돈 빌려달라고, 친정에 기대살 생각하지 말라 말하는 엄마였습니다.
(차라리 남동생을 어디 취직을 시키지 공부 뒷바라지 너무 오래한다는 딸들의 핀잔에도 혹시라도
나중에 날 원망하면 어떡하냐고? 그래서 엄마, 아빠 돈버는 동안에라도 뒷바라지 해 주는거라고
말하는 엄마를 보며 속으로, 어릴때 내가 원망할 생각은 한 번도 못해봤냐면서 묻고 싶었습니다.)
[이유. 05]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더 하고 마무리를 하자면,
이 마지막 사건이 정말 서른이 넘어 어른인 저에게는 인생이 뒤흔들렸던 사건이 한 번 있었습니다.
몇 년전, 회사 생활이 너무 힘들어서 사회에 염증을 느낀 나머지, 회사를 잠시 관두고 개인 사업을
준비할 때가 있었습니다. (물론 결과는 안 좋아서, 지금도 회사 열심히 다니고 있습니다... 지금은
아니지만, 이런 과거 때문인지 전 회사를 다시며 늘 저보다 나이많은 여자 상사들의 감정의 쓰레기
통 역활을 많이 담당했습니다. 주위에 간호사 친구들이 주위에 몇 명 있는데, 제 경험담이 간호사
들의 태움 문화 그 이상이라면서 몇 명이 입을 모아 말하더군요. 아 정말 불쌍한 내 인생!!! =_=#)
이때 당시 대구집 상황도 뭐 딱히 좋지는 않았던거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아빠는 정년 연장이 되냐 마냐 하는 시점이였고, 할머니는 엄마에게 마지막 시집살이를 시키면서
온갖 건강 염려증과 관심병으로 부모님을 힘들게 하던 때였고, 남동생도 백수 생활중이였습니다.
대구 집에서 자고 있는데, 일요일 아침부터 (전 아직도 정확히 이 날의 일자까지 기억이 납니다!)
거실에서 아빠 들으라 한 소리였지만, 큰 소리로 말씀하셨기 때문에 전 잠이 깨서 거실로 나갔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엄마의 폭언을 고스란이 받아냈으며, 그 내용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납니다.
폭언의 내용은 그 날 아침에 몇 시간씩 지속될 정도로 아주 길었고 전반적인 내용은 이렇습니다.
"네가 지금 서울 가서 버는게 그게 돈이냐?는 말부터 시작해서는 (참고로 전 엄마와 연봉은 물론
경제 사정을 말한적이 단 한 번도 없음, 그리고 그때 내 월급보다 지금의 남동생 연봉이 훨씬 작음)
남들처럼 4년제 대학 보내고, 연수 가고 싶다 그래서 어학 연수까지 시켜줬고, 남들하는 만큼 공부
다 시켜놨는데 왜 남들처럼 만이라도 못사냐? 쪽팔린다! 네가 하는일이 말이 좋아 사업인거지,
중학교도 못나온 아줌마들도 하는일 아니냐? 어디가서 쪽팔려서 너 뭔 일 한다고 말할 수가 없다!
(사실 그 전에 제가 다녔던 회사가 누구라도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유명한 회사였던지라, 엄마가
은근히 자랑했던 기억이 납니다.) 여기까진 그렇다쳐도, 다음 발언이 정말 충격적이였습니다.
"지금 사귀는 남자친구 (그때 당시 제가 연애를 하고 있는건 엄마가 알고 계셨지만, 정확히 저 때는
이미 헤어지고 난 뒤였고, 엄마는 제 남자친구 사진도 본 적이 없고, 목소리도 들어본 적 없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 당시 제 남자친구였던 사람이 정말 제 생에 최악의 남자였다고 기억합니다.
이별도 '잠수+문자'였고, 짧게 만났지만 연애 할때도 굉장히 이기적이고 배려심 없었던 걸로 기억)
"지금 만나는 남자 친구랑 왜 결혼을 안 하느냐? (속으로는 엥? 헤어졌는데 뭔 결혼??)
내 친구 딸들은 다 결혼을 했는데, 울 애들은 아무도 결혼도 못하고 내가 챙피해 죽겠다.
(참고로 저희 부모님 두 분은 정말 피곤할 정도로 남의 눈을 의식하며 사시는 분들이긴 합니다)
"그리고 넌 OO(여동생)이랑은 달라도 다르다, 니가 무슨 얼굴이 이쁘길 하냐?
그렇다고 남자들이 좋아할 만큼 몸매라도 좋냐? 아님 학벌이라도 좋으냐?
니 주제에 남자가 좋다고 결혼하자고 하면 넙죽 엎드려서 시집이나 갈 일이지,
니가 뭐 잘난게 있다고 그렇게 튕기기를 튕기냐?? 평생 먹고 살 능력이나 있냐?
니가 뭐가 대단한게 있다고 남자를 고르냐? 남자를 골라서 시집갈 주제나 되냐?
남자 다 거기서 거긴데 만나면 결혼해야지 뭘 믿고 너 좋다는 남자 있을때 시집 안가냐?
사실 이때 뚝-"하고 이성의 끈이 끊기면서 참았던 눈물이 폭포수처럼 흘러나왔습니다.
원래 내일 서울로 돌아갈 예정이였지만, 이 집에서 더이상 이런 말을 듣고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눈물 범벅으로 다시 방으로 들어가 눈에 보이는데로 주섬 주섬 짐을 챙겨서 서울로 돌아가려는데,
아빠가 들어와서 뭐 하는거냐고 성을 내시더라구요. 계속 엄마 옆에서 그만하라도 말리던 상황임.
제가 비행기를 타던 택시를 타던 당장 가겠다고 하니, 그럼 역까지 태워다 주겠다고 하시더라구요.
터미널에서 '요즘 엄마 계속 저런식이라고, 누나가 이해하라' 는 남동생 문자가 왔지만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습니다 7년째 백수로 집에서 함께 산 너한테야 모르겠지만, 내가 사업한다며
돈을 달라 한 것도 아닌데, 엄마가 저한테 왜 저러는지 전 정말 이해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나오는데, 아빠도 전화와서 엄마 갱년기가 심해서 저러니 이해하라더군요.
사실 그때는 이미 너무 울어서 귀도 멍멍한 상태라 전화기 너머 아빠 소리도 잘 들리지도 않고,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로 올라오는 네 시간 내내 자리에 앉아서 정정 엉엉 울기만 했습니다.
소리내 울지는 않았지만, 너무 펑펑 우니 앞자리 사람들이 가끔 힐끔 힐끔 돌아보더라구요.
그리고 택시가 잡히지 않아서 결국 지하철을 타고 집까지 오는데 정말이지 맞은편 사람들이
절 쳐다보는것도 신경쓰지 못할만큼 눈물 콧물이 줄줄 흘러 내려서 정말 많이 힘들었습니다.
(아, 벌써 몇 년도 더 전 일인데 그때 기억을 다시 쓰려니~ 사무실에서도 눈물이 날려하네요.)
암튼 집으로 돌아와서 일도 안하고, 혼자 웅크리고 누워서 그렇게 일주일을 펑펑 울었습니다.
한 일주일 울고 나서, 정신이 번쩍 나더군요~ 지금 내가 나약하게 울때가 아닌거 같다고...
그때부터 전 지금까지 마치 가족이 없는것처럼 살았습니다. 그전에도 가족을 의지하거나
진로 선택등을 의논해 본 적 없지만, 그 이후로는 완젼 세상에 혼자인것 처럼 살았습니다.
그 뒤 한 1년 동안은 대구 집 방문은 커녕 전화도 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지금도 지방 출장차 대구를 가거나 혹은 친구들끼리 놀러가기 위해서 대구에 집합 하는 날이면,
다른 숙소를 이용하지 집에 연락 하지 않습니다. 친구들 보러나 모임 약속이 있어 대구왔다 하면
그럼 집에 먼저 와야지라며 전화기에 대고 고함지르십니다. 다른 동생들한테는 덜하는거 같은데
저한테는 대구 집에 올 때 빈손으로 오면 뭐라고 타박하십니다. 제가 무슨 며느리고 아니고,
집에 갈때마다 꼭 뭔가를 사서 가길 원하시는거 같은데 전 돈 보다도 마음이 안가서 싫습니다.
엄마가 다른 동생들에게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저는 부모님을 보는 시선이 곱지 않습니다.
첫 월급 탔을때 부모 빨간 내복 사줘야 한다며 장난처럼이라도 엄마 속옷 사이즈 말해 주시거나,
제가 해외 여행이나 출장이라도 간다하면 엄마 가방 하나 사와라, 아빠는 아빠 술 사왔냐 이러시니
지금은 해외 간다고 절대 말하지 않습니다. 물론 요청 받은 모델일 경우, 몇 달 뒤 가방값을 주기는
하시는데, 면세점에서 갔다하면 영상 통화 넣어봐라 다른 모델 물어봐라 하시는데 짜증만 납니다.
이상 생각나는 것들만 추가로 더 정리해 봤습니다.
다른 무엇보다도 가장 최근에 있었던 저 마지막 사건이 참으로 감정 데미지가 크네요.
어떻게 친 엄마가 친 딸에게 저런 말을 할 수도 있는지? 아직 미혼에 자식이 없어봐서
잘은 모르겠지만, 다른 부모님들 이야기를 들어봐도, 저런 경험은 주위에 흔치 않네요.
휴~ 그래서 장윤정이 10년을 죽도록 노력해서 전국 팔도를 돌아다녀서 행사뛰며 돈을 벌었는데,
시집가기 전 그동안의 재산을 확인해 보니 재산을 커녕 빚만 마이너스 10억인 걸 확인하고는
은행에서 뒤로 넘어갔다고... 사람들 신경도 못쓰고 그 자리서 짐승처럼 울었다는 이야기를 할 때,
TV 보면서 같이 울었었네요, 아마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기에 불쑥 감정이입이 되었나 봅니다.
정말 아직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가련하다는 생각만 드는 제 어린날의 시절도 노력한다면,
조금씩 극복할 수 있겠죠? 지금은 겉으로 전혀 티나지 않고 오히려 밝고 씩씩한 캐릭터라서
이런 사실을 아는 지인들도 거의 없지만, 얼마전 저의 이런 아픈 과거를 알고 있는 지인 하나가
오히려 이를 이용해서 제 뒤통수를 치는 사건이 있고 난 후로는 절대 타인과 공유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랫만에 익명의 힘을 빌려서, 이렇게 주절 주절 또 하소연을 해 봅니다.
뭔가 이렇게 글을 써서 타인들과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치유의 힘이 있는지~
괜시리 속이 시원해 지는 기분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