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래스카는 워낙 금으로 유명한 Gold Rush 가번창했었습니다.물론, 지금도 황금을 찾아 오는이들과 일년내내금을 캐는 곳들이 산재해 있습니다..팔머에서 약 8마일정도 떨어진 인디펜던스 골드마인은해처패스로 널리 알려진 산악지역에 자리하고있습니다.. Independence Mine State Historical Park 으로지정되어 있는데, 광산이 문을 닫은후 주정부에서이를 인수해 그대로 보존을 하고 있습니다..오늘은 옛날의 화려했던 골드러쉬의 시대상을 잠시 엿보도록 하겠습니다...해처패스 산자락 맨위로 올라오면 공원 주차장이 마련이 되어 있으며 주차비는 하루에 5불인데, 본인이 직접 봉투에 돈을 넣고 절반을 뜯어 차에 놓아두고 봉투는 무인함에 넣으면 됩니다.누가 지켜보지않아도 잘 지켜지는편입니다..저 건물은 실제로 거주하던 집을 개조해 박물관으로 활용을하고 있습니다.아주 오래된 피아노 한대가 있는데 바로위에 식탁에서 찍은 오래된가족사진이 있더군요.지금 그 가족들은 모두 무엇을 하는지 궁금합니다..이 건물은 직원들 숙소였는데 지금은 단장을 해서 서점과기념품샵으로 운영을 하고 있습니다..실제 이 산에는 많은양의 황금이 잠들어 있으나 채산성으로 인해발굴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1886년에 황금맥을 발견해 그때부터 골드러쉬가 성행 하였습니다..1938년 두사람이 힘을 합쳐 광산회사를 설립하여 화강암으로 이루어진산맥에서 대단위 금을 캐기 시작하였습니다..총 1,350에이커에 달하는 황금산맥은 그당시 엄청난 장비와 204명의 직원을 채용하여 3만4천4백십육온스의 금을 채취했습니다..지금도 주민들이나 여행객들이 냇가에서 사금을 채취하는데자주 발견이 되어 매년 이곳을 찾는이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뜻밖에 내린눈으로 여행객들은 너무나 신이났습니다..1942년 세계 2차대전이 벌어지면서 모든 광산은 활동이 중지되고전쟁물자의 생산에 치중해야 했습니다..종전이 되었지만 광산의 복구는 점차 지연이 되고 말았습니다.그리고, 석영,텅스텐,회중석등이 채굴되었습니다..1951년 6백만달러어치의 금을 생산한후에는 결국 광산이폐쇄되었습니다.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었습니다..1974년 이곳은 결국 국립유적지로 등재를 하면서 관광지로 개발과 함께미국 역사문화의 한 장으로 남게 되었습니다..1970년대 후반에는 이땅의 소유주가 271에이커의 땅을 공원부지로 활용하게 기부를 하였으며, 1980년 1월 19일 알래스카 주정부 소유로 등재가 되었습니다..화려했던 예전의 광산 시설물을 생생하게 보고 느낄 수 있습니다..우리는 그 당시 마차와 지게를 이용하던 시절이었는데 이렇게 발전된 문명이 있었다는걸 전혀 모르고 있었으니 안타까운 일이기도 했습니다..칼과 활로 총으로 무장한 나라와 전쟁을 한다는건 바위에 계란을 던지는 행위와도 같아 결국 일본에게 치욕스러운 일을 당하게 되었지요. .미국의 역사가 어떠했든,당시의 골드러쉬가 어떠 했든이 유적지를 둘러보면서 잠시나마 회상에 젖을 수 있었으니그걸로 족하지 않을까 합니다..새로운 건물을 짓는것 보다는 이러한 것들을 지키고 보존할려고하는 정부의 생각이 참 마음에 드는 것 같습니다..옛것을 지키고 새로운 것들을 개발하고 발굴한다는게 말로는 쉽지만 행하기는 어려운 문제가 아닌가 합니다..이 공원을 천천히 여유롭게 걸으면서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수 없었습니다.왜소해지는 나라에 대한 자부심이 오늘따라 마음 한편이저려오는듯 합니다..그래도 구경은 잘했습니다.
알래스카" "Independence Mine State Historical Park "
알래스카는 워낙 금으로 유명한 Gold Rush 가
번창했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황금을 찾아 오는이들과 일년내내
금을 캐는 곳들이 산재해 있습니다.
.
팔머에서 약 8마일정도 떨어진 인디펜던스 골드마인은
해처패스로 널리 알려진 산악지역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
Independence Mine State Historical Park 으로
지정되어 있는데, 광산이 문을 닫은후 주정부에서
이를 인수해 그대로 보존을 하고 있습니다.
.
오늘은 옛날의 화려했던 골드러쉬의 시대상을
잠시 엿보도록 하겠습니다.
.
.
해처패스 산자락 맨위로 올라오면 공원 주차장이 마련이
되어 있으며 주차비는 하루에 5불인데, 본인이 직접 봉투에
돈을 넣고 절반을 뜯어 차에 놓아두고 봉투는
무인함에 넣으면 됩니다.
누가 지켜보지않아도 잘 지켜지는편입니다.
.
저 건물은 실제로 거주하던 집을 개조해 박물관으로 활용을
하고 있습니다.
아주 오래된 피아노 한대가 있는데 바로위에 식탁에서 찍은 오래된
가족사진이 있더군요.
지금 그 가족들은 모두 무엇을 하는지 궁금합니다.
.
이 건물은 직원들 숙소였는데 지금은 단장을 해서 서점과
기념품샵으로 운영을 하고 있습니다.
.
실제 이 산에는 많은양의 황금이 잠들어 있으나 채산성으로 인해
발굴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
1886년에 황금맥을 발견해 그때부터 골드러쉬가 성행 하였습니다.
.
1938년 두사람이 힘을 합쳐 광산회사를 설립하여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산맥에서 대단위 금을 캐기 시작하였습니다.
.
총 1,350에이커에 달하는 황금산맥은 그당시 엄청난 장비와 204명의
직원을 채용하여 3만4천4백십육온스의 금을 채취했습니다.
.
지금도 주민들이나 여행객들이 냇가에서 사금을 채취하는데
자주 발견이 되어 매년 이곳을 찾는이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
뜻밖에 내린눈으로 여행객들은 너무나 신이났습니다.
.
1942년 세계 2차대전이 벌어지면서 모든 광산은 활동이 중지되고
전쟁물자의 생산에 치중해야 했습니다.
.
종전이 되었지만 광산의 복구는 점차 지연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석영,텅스텐,회중석등이 채굴되었습니다.
.
1951년 6백만달러어치의 금을 생산한후에는 결국 광산이
폐쇄되었습니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
1974년 이곳은 결국 국립유적지로 등재를 하면서 관광지로 개발과 함께
미국 역사문화의 한 장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
1970년대 후반에는 이땅의 소유주가 271에이커의 땅을 공원부지로
활용하게 기부를 하였으며, 1980년 1월 19일 알래스카 주정부
소유로 등재가 되었습니다.
.
화려했던 예전의 광산 시설물을 생생하게 보고 느낄 수 있습니다.
.
우리는 그 당시 마차와 지게를 이용하던 시절이었는데 이렇게 발전된
문명이 있었다는걸 전혀 모르고 있었으니 안타까운 일이기도
했습니다.
.
칼과 활로 총으로 무장한 나라와 전쟁을 한다는건 바위에 계란을
던지는 행위와도 같아 결국 일본에게 치욕스러운 일을
당하게 되었지요.
.
미국의 역사가 어떠했든,당시의 골드러쉬가 어떠 했든
이 유적지를 둘러보면서 잠시나마 회상에 젖을 수 있었으니
그걸로 족하지 않을까 합니다.
.
새로운 건물을 짓는것 보다는 이러한 것들을 지키고 보존할려고
하는 정부의 생각이 참 마음에 드는 것 같습니다.
.
옛것을 지키고 새로운 것들을 개발하고 발굴한다는게 말로는
쉽지만 행하기는 어려운 문제가 아닌가 합니다.
.
이 공원을 천천히 여유롭게 걸으면서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왜소해지는 나라에 대한 자부심이 오늘따라 마음 한편이
저려오는듯 합니다.
.
그래도 구경은 잘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