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나는 지방에 살고있는 20대 여자이고 처음에 20대이야기 방에 썼는데 반응이 없길래 잘못쓰건가 싶어서..방옮겨서 다시 써.. 잘하는 짓인지 모르겠네우선 말하자면 엄청 긴이야기야 그냥 생각나는데로 쓰다보니 서두도 없네...미안해 그냥 내가 살아온 이야기, 누구한테 제대로 털어놓지 못한 이야기를오늘 여기서 털어놓으려고해왜냐고 물어보면 그냥 여기 밖에 털어놓을 데가 없어서,그리고 나 같은 사람도 삶을 포기하지 않고 살고 있다고그니까 우리모두 힘내자는 그런 뜻으로 그럼 이제 내가 살아온 얘기를 할게 우리 엄마는 지방공무원이였고, 아빠는 할머니가 하시던 장사를 물려받아서 가게를 하고 있었어. 할머니는 아빠 대학생때 돌아가셨다고 했고, 두분은 지인의 소개로 만났다고 했어이건 엄마한테 들은 이야기인데, 아빠와 엄마가 결혼약속을 하기전 엄마가 임신을 했었는데, 아빠가 지우라고 했었나봐 그당시에는 낙태가 불법이 아니였다고 하더라구그래서 엄마는 내 위의 형제를 지워야만 했고, 그당시에 꽤 충격을 받았었대..그리고 여차저차해서 두분은 결혼하셨고, 2년뒤 내가 태어났지내가 딸이라는 이유로 할아버지랑 아빠는 3일동안 산부인과에 오지 않으셨다고 해 어릴적에 아빠는 자상한 아빠였어, 단지 화가 나면 나랑 엄마를 때리는...나 어릴 적에는 내가 맞을 짓을 해서 맞는다고 생각했어.특히 내가 조금이라도 다치고 오면 아빠는 화를 내면서 나를 엄청나게 혼내시고 때리셨거든그래서 나는 아빠가 나를 소중히 여기시는 줄로만 알았어.근데 그 생각이 바뀌게 된 것 엄마가 동생을 임신했을 때였어.동생은 내가 어린이집에 다닐 때 쯤 생겼는데임신한지 한 7.8개월 정도 됬었던 것 같아 엄마 배가 불러있었거든 어렷을 적이라 자세한 이유는 생각이 안나는데 부부싸움을 시작하셨지항상 내앞에서 싸우셨어 두분이 부부싸움을 하니까 나는 무서워서 어디 숨을 데도 없고 하니까 티비로 둘리인가? 여튼 뭔가를 보고있었어 근데 갑자기 아빠가 내 머리채를 잡더니 엄마 배위에 올리고 나와 엄마배를 누르면서 다죽으라고 했어그러고 기억은 자세히 안나는데 엄마가 나를 데리고 배를 부여잡고 집을 잠시 나갔었던 것 같아 뭐 그랬어 그 이후로 동생이 태어났고 아빠는 동생을 업고 있는 엄마를 때리기도 했고,나도 많이 맞으면서 컸지 내가 학교를 갈때쯤 아빠는 가게를 접었고, 다른 일을 시작했어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동생도 어린이집에 갈 나이가 되자 동생을 맡겨 놓고 엄마도 일을 하기 시작하셨지 덕분에 동생이 어린이집에서 돌아올 시간이 되면내가 마중나가고 하루종일 집에서 동생을 돌봤어 친구들은 당연히 우리집에 올수도 없었고내가 친구들을 만나러 갈수도 없었지 왜냐면 아빠가 동생을 보라고 했으니까친구들이랑 너무 놀고 싶어서 토요일에 집근처 시내에 몰래 나갔다가 아빠한테 죽도록 맞은적도 있어 공부는 안하고 위험한데 다닌다고 그때는 그저 아빠말이 옳은 줄 만 알았어 중고등학생들한테 삥을 뜯길수도 있는 거니까근데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죽도록 맞을 이유는 없었던것같아. 뭐 그렇게 나는 살았지 덕분에 친구들이랑 못놀았고, 왕따도 당해보고 뭐 이런저런 일 많았어초등학교떄 가장기억에 남는 일은 초등학교 2.3학년때쯤인가 친한친구랑 학교에서 벼룩시장 같은데 하는곳에 가서 물건을 팔았어 왜 보통 500원정도에 파니까 동전이 많이 나오잖아어렸을 때라서 동전이 많으니 무겁기도 하고 해서 기부함같은데다가 동전을 다 넣었어착한일 하는 거잖아? 그래서 천원짜리 몇장만 챙겨서 집에 왔어그날 나 아빠한테 죽도록 맞았다. 왜 잔돈으로 가져간 돈을 남겨오지 않았냐고 묻는거야나는 몰랐어 잔돈으로 가져간 돈을 남겨왔어야 했는지 왜냐면 그 누구도 가르쳐 주지 않았거든 9살10살짜리가 그런 개념이 없었던 거지.아빠가 어쨋냐고 물어보기에 기부했다고 했다 그래서 더 맞았다 멍청한년이라고그정도 기본상식도 없냐고....그냥 나는 멍청한년인줄만 알았어 기본상식도 없었으니까 뭐 그런 일도 있었고 한달에 두 번정도는 기본으로 죽도록 맞는 날이 있었어이유는 다양했지. 리모컨 못찾아서, 양파남겨서, 보일러 켜놓고 자서.....그렇게 자랐어 뭐 다 내가 잘못해서 맞았다고 생각했고, 다들 나처럼 맞고 크는줄 알았어모든 엄마들도 남편한테 맞는줄 알았고... 나 그렇게 자랐어. 그냥 내가 다 잘못해서 맞는줄만 알았는데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니까 그제서야 깨달았다 티비에서만 보던 가정폭력이우리집얘기라는 거...내가 점점 커갈수록 보였다 우리집에서 일어나는 가정폭력이엄마는 나와 동생이 보는 앞에서 아빠한테 강간을 당했고,심지어 우리집이 망했을 때, 엄마는 아빠가 시켜서 술집에서 몸을 팔아야만했어. 고등학생쯤되니까 아빠를 죽이던지 내가 죽던지 둘중에 하나를 꼭 하고 싶었다.근데 아빠를 죽이기엔 아빠가 너무 무서워서 내가 죽으려고 했었다.근데 번번히 실패했다. 왜냐면 나는 겁쟁이니까....후에 들은 얘긴데 엄마도 그랬다고 했다.아빠를 죽이던지 자신이 죽겠다고 생각했다고... 엄마도 번번히 실패했다고 했어.나와 동생이 눈에 밟혀서..... 엄마는 이혼을 생각했지만 이혼얘기를 꺼낼때마다 아빠가 엄마를 때렸다고 했어.그 얘기를 듣고 생각했지 아 어떻게 해서라도 이혼을 시켜야겠다. 더 이상 맞고만 있을 수는 없잖아그래서 인터넷으로 가정폭력에 대해서 찾아봤어. 그러면서 알게됬지가정폭력이 사회 4대악이고 처벌을 강하게 받을 수 있고,이혼사유도 된다는 것을 그렇게 엄마는 이혼을 준비했다.하지만 내가 수험생이라는 이유로 당장은 하지 않겠다고 했다. 나는 괜찮은데.... 근데 일이 터졌다. 아빠가 늦게 들어오는 날이었고, 엄마와 나, 동생은 외식을 하고 들어오는 길이었다. 여자들끼리 데이트 하다보니 밤9시?10시쯤 되는 시간에 돌아오게 되었다. 다행이 그것 때문에 아빠가 화를 내지는 않았고, 우리에게 어떤 약을 사오라고 했다.아빠가 평소에 관절이 안좋은 편이라 먹는 약이 있었거든. 그래서 사러갔는데9시10시에 문을 연곳은 없었고, 문을 연곳을 찾았지만 아빠가 원하는 약이 없었다. 아빠는 그약을 먹어야만 효과를 보거든... 편의점에서 약을 팔기도 전이라 구할 방법이 없었고 어쩔수 없었으니 우리는 집으로 들어갔다. 나는 교회를 다녀서 철야기도회 때문에 교회에 갔고 동생과 엄마는 집에 갔다. 근데 한 20분쯤 지났을까 교회에 있는 나에게동생이 전화가 왔다. 아빠가 또 엄마를 때린다고, 그전화를 받자마자 집으로 향했다. 당시 내가 집에서 맞고 크는 것을 전도사님은 알고계셨다. 아빠에게 맞아서 귀가 찢어진적이 있었는데 그때 전도사님께 얘기했었거든....여튼 전도사님이 무슨일 있으면 꼭 전화하라고 하면서 나를 집에다 태워주셨다. 아파트 입구에 내렸는데 도저히 집에 혼자 들어가지 못하겠어서 경찰에 신고를 했다.그 전부터 맘을 먹었었거든 한번만 더 때리면 신고를 하겠다고그래서 신고해서 아빠가 엄마를 때린다고 했고, 나는 출동한 경찰들과 집으로 갔다엄마는 옷이 찢긴채로 쓰러져 있었고 동생은 울고있었다.그리고 아빠는 경찰이 데려갔다. 바보같은 엄마는 내가 수험생이라는 이유로 아빠를 구치소에 넣을 수 없다고 하여합의를 해줘서 아빠가 집에 돌아왔고 아빠의 보복없이 그날 우리는 잠을 잘 잤다.그렇게 일단락 되는 줄 알았다. 사건은 다음날 터졌다. 어쩌면 아빠의 보복이라고 할수 있겠지만...다음날 저녁 아빠가 자살했다. 집에 있던 행거에 아빠가 목을 매달았고, 그렇게 아빠가 죽었다.집에 어제 봤던 경찰이 왔고, 구급대원들이 시신을 수습했다.그리고 어제의 일을 알게 된 아빠 쪽 가족들이 난리를 쳤다.내가 아빠를 죽였다고 했다. 나와 엄마가 맞을 짓을 해서 맞은 건데 내가 신고를 해서마음 약한 아빠가 자괴감에 죽은 거라고 했다. 나 때문이라고 했다. 우리에게는 화나면 주먹을 휘드루던 아빠지만 밖에서는 자상한 아빠이자 남편이였고 착한 아들, 형제였다. 소름끼치게 아빠는 남들과 있을때는 잘해줬고, 특히 아빠쪽 가족들과 있을때는 로맨티스트 남편이였다. 증오스러웠다 그런 모습이, 심지어 더 놀라운건 아빠가 친구들을 만날때는 할아버지가 빨리 돌아가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거나, 고모들이 싫다고 말했다고 했다. 그 얘길 해준 아빠 친구분께서는 인정하기 싫지만 아빠가 완벽한 이중인격자 인 것같다고 했다. 아빠는 밖에서 자상함이라는 철저한 가면을 쓰고 행동하면서 우리를 늘 죽이겠다고 말했고 죽을 만큼 때렸다. 아빠쪽가족들은 내가 아빠를 목졸라 죽인거라고 했다. 나는 무서웠다 진짜 내가 그런 것 같아서.... 근데 얼마후에 진실이 밝혀졌다. 아빠가 바람을 피우던 여자가 있었는데, 그여자도 유부녀였고, 아빠가 이혼을 할테니 여자보고도 이혼을 하라고 했나보다.근데 그여자는 장난처럼 아빠를 만난것이였고, 이혼을 하겠다는 말에 아빠를 밀어냈나보다.그 충격에 아빠는 자살이라는 것을 선택했다. 내가 어떻게 알았냐고? 아빠 유품을 정리하면서 핸드폰을 정리하게 됫고,그때 100통가까이 와있던 카톡을 정리하며 알아냈다.대부분이 아빠친구들이나 직장동료들로 부터온 그립다는 카톡이였는데, 맨아래, HOPE라는 이름으로 와있던 카톡 “살아있지?” 손이 덜덜 떨렸다. 우리한테는 유서 한 장 남기지 않았는데 누군가에게는 자살을 암시했었나.... 그 카톡을 들어갔다. 그리고 그동안의 카톡을 읽었다. 나와 엄마가 증오스럽다는 이야기, 둘이서 놀러갔다온 이야기, 심지어 둘이서 성관계도 맺었나보더라... 그리고 아빠가 꺼낸 이혼얘기 메몰찬 그여자의 태도 ...그러고 3일정도 끊긴 카톡...그리고 너가없으니 더 이상 희망이 없다. 죽겠다는 카톡과 몇시간후 정확히 말하자면아빠가 죽고난후 온 그여자의 카톡 살아있지....... 통화목록을 보니 그여자가 받지않았던 전화가 50통이 넘었더라..... 나 처음으로 아빠한테 욕했다 강아지....밖에서는 그렇게 우리에게 자상한 아빠인척, 남편인척하더니실제로는 다른 여자와 새로운 집을 꾸릴 생각을 했고,심심하면 우릴 때리던 나쁜새끼..... 이런 욕정도는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그동안 내가 맞은 거에 비하면 해도 된다고 생각했다.아무리 패륜아 짓이라도 딱한번만 하자는 생각으로 온갖쌍욕을 뱉었다. 저주하고싶었다. 죽어서까지도 우릴 힘들게한다고아빠쪽 가족들에게 들었던 온갖 저주의 말들을 다해주고 싶었다. 근데 아빠는 이미 이세상사람이 아니였다.... 내 이야기는 이까지다 서두가 없어서 미안하다.아빠의 죽음 이후, 수험생이던 나는 마음 다잡고 공부해서내가 원하던 대학교에 진학했고, 동생도 마음 다잡고 공부 열심히 한다. 아빠가 엄마이름으로 대출을 해서 남겨놓은 빚도 어느 정도 청산을 했고아빠가 떠난후 1~2년정도는 단칸방에 살면서 고생도 했지만 이제는 다른 도시로 이사와서 우리집에서 셋이 오순도순 잘살고 있다. 아직도 아빠가 원망스러울 때가 있다 하지만 더 이상 맞지 않아도 돼서 좋고일상속의 소소한 행복을 찾을 수 있어서 너무 좋다. 제일 처음에 언급했었지만 이런 일을 겪은 나도 잘산다.행복이라는게 뭔지 느끼면서 산다.물론 나보다 더 힘든일, 좋지못한 환경에서 지내는 사람들 많겠지만,그래서 나보다 더 상처투성이인 사람 많겠지만 내가 해주고싶은 얘기는..상처가 나서 아프고 흉터가 남아도 그게 인생아닐까?내가 오래 산 것은 아니지만 노력하니까 살려고 노력하니까 살아지더라행복해지더라 그니까 너무 좌절해 있지말자. 좌절해도 괜찮다.나는 나같은 사람들 도와주는 사람이 될거다.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또다른 상처투성이도 누군가에게 힘이되고누군가를 도와주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아무리 나빠도, 아빠는 아빠인지라 가끔 보고싶다.그냥 그럴땐 보고싶은가보다. 하며 아빠와 있었던 좋은 일을 생각하려고 한다. 마지막으로 내가 과거로 돌아가서 아빠를 만나기전 엄마를 만날 수만 있다면 엄마에게 꼭 말할거다나는 세상에 없어도 되니까 제발 아빠랑 결혼하지말라고...그냥 아는 사이도 하지말라고... 긴 글 읽어줘서 고마워그냥 관종여자 하나가 글 썻구나 하고 생각해도 좋아자작이라고 생각하려면 뭐 맘대로 해굳이 내가 이런 글을 쓰는 이유는... 뭐랄까그냥 넋두리? 아니면 그냥 내가 진짜 삐뚤어지게 잘못살아온건지 묻고싶었어 제3자들에게그냥 그렇다구... 더운데 건강조심하고 행복한 하루되길바래^^ 1
그냥 내가 살아온 이야기(스압주의)
안녕 나는 지방에 살고있는 20대 여자이고
처음에 20대이야기 방에 썼는데
반응이 없길래 잘못쓰건가 싶어서..
방옮겨서 다시 써.. 잘하는 짓인지 모르겠네
우선 말하자면 엄청 긴이야기야
그냥 생각나는데로 쓰다보니 서두도 없네...
미안해
그냥 내가 살아온 이야기, 누구한테 제대로 털어놓지 못한 이야기를
오늘 여기서 털어놓으려고해
왜냐고 물어보면 그냥 여기 밖에 털어놓을 데가 없어서,
그리고 나 같은 사람도 삶을 포기하지 않고 살고 있다고
그니까 우리모두 힘내자는 그런 뜻으로 그럼 이제 내가 살아온 얘기를 할게
우리 엄마는 지방공무원이였고, 아빠는 할머니가 하시던 장사를 물려받아서
가게를 하고 있었어. 할머니는 아빠 대학생때 돌아가셨다고 했고,
두분은 지인의 소개로 만났다고 했어
이건 엄마한테 들은 이야기인데,
아빠와 엄마가 결혼약속을 하기전 엄마가 임신을 했었는데,
아빠가 지우라고 했었나봐 그당시에는 낙태가 불법이 아니였다고 하더라구
그래서 엄마는 내 위의 형제를 지워야만 했고, 그당시에 꽤 충격을 받았었대..
그리고 여차저차해서 두분은 결혼하셨고, 2년뒤 내가 태어났지
내가 딸이라는 이유로 할아버지랑 아빠는 3일동안 산부인과에 오지 않으셨다고 해
어릴적에 아빠는 자상한 아빠였어, 단지 화가 나면 나랑 엄마를 때리는...
나 어릴 적에는 내가 맞을 짓을 해서 맞는다고 생각했어.
특히 내가 조금이라도 다치고 오면 아빠는 화를 내면서
나를 엄청나게 혼내시고 때리셨거든
그래서 나는 아빠가 나를 소중히 여기시는 줄로만 알았어.
근데 그 생각이 바뀌게 된 것 엄마가 동생을 임신했을 때였어.
동생은 내가 어린이집에 다닐 때 쯤 생겼는데
임신한지 한 7.8개월 정도 됬었던 것 같아 엄마 배가 불러있었거든
어렷을 적이라 자세한 이유는 생각이 안나는데 부부싸움을 시작하셨지
항상 내앞에서 싸우셨어 두분이 부부싸움을 하니까 나는 무서워서
어디 숨을 데도 없고 하니까 티비로 둘리인가? 여튼 뭔가를 보고있었어
근데 갑자기 아빠가 내 머리채를 잡더니 엄마 배위에 올리고
나와 엄마배를 누르면서 다죽으라고 했어
그러고 기억은 자세히 안나는데 엄마가 나를 데리고
배를 부여잡고 집을 잠시 나갔었던 것 같아
뭐 그랬어 그 이후로 동생이 태어났고 아빠는 동생을 업고 있는 엄마를 때리기도 했고,
나도 많이 맞으면서 컸지 내가 학교를 갈때쯤 아빠는 가게를 접었고, 다른 일을 시작했어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동생도 어린이집에 갈 나이가 되자 동생을 맡겨 놓고
엄마도 일을 하기 시작하셨지
덕분에 동생이 어린이집에서 돌아올 시간이 되면
내가 마중나가고 하루종일 집에서 동생을 돌봤어 친구들은 당연히 우리집에 올수도 없었고
내가 친구들을 만나러 갈수도 없었지 왜냐면 아빠가 동생을 보라고 했으니까
친구들이랑 너무 놀고 싶어서 토요일에 집근처 시내에 몰래 나갔다가
아빠한테 죽도록 맞은적도 있어 공부는 안하고 위험한데 다닌다고
그때는 그저 아빠말이 옳은 줄 만 알았어 중고등학생들한테 삥을 뜯길수도 있는 거니까
근데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죽도록 맞을 이유는 없었던것같아.
뭐 그렇게 나는 살았지 덕분에 친구들이랑 못놀았고,
왕따도 당해보고 뭐 이런저런 일 많았어
초등학교떄 가장기억에 남는 일은 초등학교 2.3학년때쯤인가
친한친구랑 학교에서 벼룩시장 같은데 하는곳에 가서 물건을 팔았어
왜 보통 500원정도에 파니까 동전이 많이 나오잖아
어렸을 때라서 동전이 많으니 무겁기도 하고 해서 기부함같은데다가 동전을 다 넣었어
착한일 하는 거잖아? 그래서 천원짜리 몇장만 챙겨서 집에 왔어
그날 나 아빠한테 죽도록 맞았다. 왜 잔돈으로 가져간 돈을 남겨오지 않았냐고 묻는거야
나는 몰랐어 잔돈으로 가져간 돈을 남겨왔어야 했는지 왜냐면 그 누구도 가르쳐 주지
않았거든 9살10살짜리가 그런 개념이 없었던 거지.
아빠가 어쨋냐고 물어보기에 기부했다고 했다 그래서 더 맞았다 멍청한년이라고
그정도 기본상식도 없냐고....
그냥 나는 멍청한년인줄만 알았어 기본상식도 없었으니까
뭐 그런 일도 있었고 한달에 두 번정도는 기본으로 죽도록 맞는 날이 있었어
이유는 다양했지. 리모컨 못찾아서, 양파남겨서, 보일러 켜놓고 자서.....
그렇게 자랐어 뭐 다 내가 잘못해서 맞았다고 생각했고, 다들 나처럼 맞고 크는줄 알았어
모든 엄마들도 남편한테 맞는줄 알았고...
나 그렇게 자랐어. 그냥 내가 다 잘못해서 맞는줄만 알았는데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니까 그제서야 깨달았다 티비에서만 보던 가정폭력이
우리집얘기라는 거...
내가 점점 커갈수록 보였다 우리집에서 일어나는 가정폭력이
엄마는 나와 동생이 보는 앞에서 아빠한테 강간을 당했고,
심지어 우리집이 망했을 때, 엄마는 아빠가 시켜서 술집에서 몸을 팔아야만했어.
고등학생쯤되니까 아빠를 죽이던지 내가 죽던지 둘중에 하나를 꼭 하고 싶었다.
근데 아빠를 죽이기엔 아빠가 너무 무서워서 내가 죽으려고 했었다.
근데 번번히 실패했다. 왜냐면 나는 겁쟁이니까....
후에 들은 얘긴데 엄마도 그랬다고 했다.
아빠를 죽이던지 자신이 죽겠다고 생각했다고... 엄마도 번번히 실패했다고 했어.
나와 동생이 눈에 밟혀서.....
엄마는 이혼을 생각했지만 이혼얘기를 꺼낼때마다 아빠가 엄마를 때렸다고 했어.
그 얘기를 듣고 생각했지 아 어떻게 해서라도 이혼을 시켜야겠다.
더 이상 맞고만 있을 수는 없잖아
그래서 인터넷으로 가정폭력에 대해서 찾아봤어. 그러면서 알게됬지
가정폭력이 사회 4대악이고 처벌을 강하게 받을 수 있고,
이혼사유도 된다는 것을 그렇게 엄마는 이혼을 준비했다.
하지만 내가 수험생이라는 이유로 당장은 하지 않겠다고 했다. 나는 괜찮은데....
근데 일이 터졌다. 아빠가 늦게 들어오는 날이었고,
엄마와 나, 동생은 외식을 하고 들어오는 길이었다.
여자들끼리 데이트 하다보니 밤9시?10시쯤 되는 시간에 돌아오게 되었다.
다행이 그것 때문에 아빠가 화를 내지는 않았고, 우리에게 어떤 약을 사오라고 했다.
아빠가 평소에 관절이 안좋은 편이라 먹는 약이 있었거든. 그래서 사러갔는데
9시10시에 문을 연곳은 없었고, 문을 연곳을 찾았지만 아빠가 원하는 약이 없었다.
아빠는 그약을 먹어야만 효과를 보거든...
편의점에서 약을 팔기도 전이라 구할 방법이 없었고
어쩔수 없었으니 우리는 집으로 들어갔다.
나는 교회를 다녀서 철야기도회 때문에 교회에 갔고 동생과 엄마는 집에 갔다.
근데 한 20분쯤 지났을까 교회에 있는 나에게
동생이 전화가 왔다. 아빠가 또 엄마를 때린다고,
그전화를 받자마자 집으로 향했다. 당시 내가 집에서 맞고 크는 것을 전도사님은 알고계셨다.
아빠에게 맞아서 귀가 찢어진적이 있었는데 그때 전도사님께 얘기했었거든....
여튼 전도사님이 무슨일 있으면 꼭 전화하라고 하면서 나를 집에다 태워주셨다.
아파트 입구에 내렸는데 도저히 집에 혼자 들어가지 못하겠어서 경찰에 신고를 했다.
그 전부터 맘을 먹었었거든 한번만 더 때리면 신고를 하겠다고
그래서 신고해서 아빠가 엄마를 때린다고 했고, 나는 출동한 경찰들과 집으로 갔다
엄마는 옷이 찢긴채로 쓰러져 있었고 동생은 울고있었다.
그리고 아빠는 경찰이 데려갔다.
바보같은 엄마는 내가 수험생이라는 이유로 아빠를 구치소에 넣을 수 없다고 하여
합의를 해줘서 아빠가 집에 돌아왔고 아빠의 보복없이 그날 우리는 잠을 잘 잤다.
그렇게 일단락 되는 줄 알았다.
사건은 다음날 터졌다.
어쩌면 아빠의 보복이라고 할수 있겠지만...
다음날 저녁 아빠가 자살했다.
집에 있던 행거에 아빠가 목을 매달았고, 그렇게 아빠가 죽었다.
집에 어제 봤던 경찰이 왔고, 구급대원들이 시신을 수습했다.
그리고 어제의 일을 알게 된 아빠 쪽 가족들이 난리를 쳤다.
내가 아빠를 죽였다고 했다. 나와 엄마가 맞을 짓을 해서 맞은 건데 내가 신고를 해서
마음 약한 아빠가 자괴감에 죽은 거라고 했다. 나 때문이라고 했다.
우리에게는 화나면 주먹을 휘드루던 아빠지만 밖에서는 자상한 아빠이자 남편이였고
착한 아들, 형제였다. 소름끼치게 아빠는 남들과 있을때는 잘해줬고,
특히 아빠쪽 가족들과 있을때는 로맨티스트 남편이였다. 증오스러웠다 그런 모습이,
심지어 더 놀라운건 아빠가 친구들을 만날때는
할아버지가 빨리 돌아가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거나, 고모들이 싫다고 말했다고 했다.
그 얘길 해준 아빠 친구분께서는 인정하기 싫지만
아빠가 완벽한 이중인격자 인 것같다고 했다.
아빠는 밖에서 자상함이라는 철저한 가면을 쓰고 행동하면서
우리를 늘 죽이겠다고 말했고 죽을 만큼 때렸다.
아빠쪽가족들은 내가 아빠를 목졸라 죽인거라고 했다.
나는 무서웠다 진짜 내가 그런 것 같아서....
근데 얼마후에 진실이 밝혀졌다. 아빠가 바람을 피우던 여자가 있었는데,
그여자도 유부녀였고, 아빠가 이혼을 할테니 여자보고도 이혼을 하라고 했나보다.
근데 그여자는 장난처럼 아빠를 만난것이였고,
이혼을 하겠다는 말에 아빠를 밀어냈나보다.
그 충격에 아빠는 자살이라는 것을 선택했다.
내가 어떻게 알았냐고? 아빠 유품을 정리하면서 핸드폰을 정리하게 됫고,
그때 100통가까이 와있던 카톡을 정리하며 알아냈다.
대부분이 아빠친구들이나 직장동료들로 부터온 그립다는 카톡이였는데,
맨아래, HOPE라는 이름으로 와있던 카톡 “살아있지?”
손이 덜덜 떨렸다. 우리한테는 유서 한 장 남기지 않았는데 누군가에게는 자살을 암시했었나.... 그 카톡을 들어갔다. 그리고 그동안의 카톡을 읽었다.
나와 엄마가 증오스럽다는 이야기,
둘이서 놀러갔다온 이야기,
심지어 둘이서 성관계도 맺었나보더라...
그리고 아빠가 꺼낸 이혼얘기 메몰찬 그여자의 태도 ...그러고 3일정도 끊긴 카톡...
그리고 너가없으니 더 이상 희망이 없다. 죽겠다는 카톡과 몇시간후 정확히 말하자면
아빠가 죽고난후 온 그여자의 카톡 살아있지.......
통화목록을 보니 그여자가 받지않았던 전화가 50통이 넘었더라.....
나 처음으로 아빠한테 욕했다 강아지....
밖에서는 그렇게 우리에게 자상한 아빠인척, 남편인척하더니
실제로는 다른 여자와 새로운 집을 꾸릴 생각을 했고,
심심하면 우릴 때리던 나쁜새끼.....
이런 욕정도는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내가 맞은 거에 비하면 해도 된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패륜아 짓이라도 딱한번만 하자는 생각으로 온갖쌍욕을 뱉었다.
저주하고싶었다. 죽어서까지도 우릴 힘들게한다고
아빠쪽 가족들에게 들었던 온갖 저주의 말들을 다해주고 싶었다.
근데 아빠는 이미 이세상사람이 아니였다....
내 이야기는 이까지다 서두가 없어서 미안하다.
아빠의 죽음 이후, 수험생이던 나는 마음 다잡고 공부해서
내가 원하던 대학교에 진학했고, 동생도 마음 다잡고 공부 열심히 한다.
아빠가 엄마이름으로 대출을 해서 남겨놓은 빚도 어느 정도 청산을 했고
아빠가 떠난후 1~2년정도는 단칸방에 살면서 고생도 했지만
이제는 다른 도시로 이사와서 우리집에서 셋이 오순도순 잘살고 있다.
아직도 아빠가 원망스러울 때가 있다 하지만 더 이상 맞지 않아도 돼서 좋고
일상속의 소소한 행복을 찾을 수 있어서 너무 좋다.
제일 처음에 언급했었지만 이런 일을 겪은 나도 잘산다.
행복이라는게 뭔지 느끼면서 산다.
물론 나보다 더 힘든일, 좋지못한 환경에서 지내는 사람들 많겠지만,
그래서 나보다 더 상처투성이인 사람 많겠지만 내가 해주고싶은 얘기는..
상처가 나서 아프고 흉터가 남아도 그게 인생아닐까?
내가 오래 산 것은 아니지만 노력하니까 살려고 노력하니까 살아지더라
행복해지더라 그니까 너무 좌절해 있지말자. 좌절해도 괜찮다.
나는 나같은 사람들 도와주는 사람이 될거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또다른 상처투성이도 누군가에게 힘이되고
누군가를 도와주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아무리 나빠도, 아빠는 아빠인지라 가끔 보고싶다.
그냥 그럴땐 보고싶은가보다. 하며 아빠와 있었던 좋은 일을 생각하려고 한다.
마지막으로 내가 과거로 돌아가서 아빠를 만나기전 엄마를 만날 수만 있다면
엄마에게 꼭 말할거다
나는 세상에 없어도 되니까 제발 아빠랑 결혼하지말라고...
그냥 아는 사이도 하지말라고...
긴 글 읽어줘서 고마워
그냥 관종여자 하나가 글 썻구나 하고 생각해도 좋아
자작이라고 생각하려면 뭐 맘대로 해
굳이 내가 이런 글을 쓰는 이유는... 뭐랄까
그냥 넋두리?
아니면 그냥 내가 진짜 삐뚤어지게 잘못살아온건지 묻고싶었어 제3자들에게
그냥 그렇다구...
더운데 건강조심하고 행복한 하루되길바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