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어느날... 미국 깰리뽀~냐에 사시는 이모님께서 이종사촌여동생 두명을 대리고 9박 10일 예정으로 한국을 찾아오셨소이다. 이모님은 종종 5년에 한번씩은 뵈왔지만, 여동생 두명 (미국명 쏘냐, 쓰떼빠니)는 처음이었소. 그들도 나름대로 설랬을 것이라 생각했소. 그러나 생각과는 달리 그들은 답답해서 죽을 지경이었소. 서울이나 시골이나 말이오 그들이 서울에서 이틀을 지내고 내 집 소재가 되는 전북에 한 작은 도시에 찾아오게 되었소이다. 어떻게 인사를 할까 했는데 어머니께서 쏘냐는 집에서 이모님이 한국말을 쓰시니 장녀로서 곧잘 사용했다고 하는데 쓰떼빠니는 한국말도 싫어하고 별로 대화하길 싫어한다하시었소. 머. 영어 시험은 말하기와 듣기를 빼놓고는 사전을 달달 외우다시피했던 나였소. 그러나 발음이 안좋아 걱정은 했지만 한국말을 할줄 안다기에 그리 큰 걱정은 하지 않았소. 어쨌든, 반가운 듯이 hi ! 하고 첫인사 때려부렀소. 그리고 나와의 동거 생활이 시작되었소. 그런데 쓰떼빠니 한국 생활에 전혀 적응을 하지 못하고 음식, 문화, 지역의 크기 등등...모든 것이 싫다고 빨리 어메리카 가자고 지 엄니한테 징징대더이다. 하여간 요놈 입에 맞는 음식을 공수하러 미군부대에 가서 피자. 콜라, 치킨 할 것없이 사다가 처먹였소.아니 내 가족이니까 입에다 대령했소 그때 내가 사는 시골엔 파파이스가 없었더랬소. 너무 신기하고 한국의 닭보다 열라 큰 닭다리 한입한입 비어먹다가 쓰떼빠니를 보니 그럭저럭 목에 넘기고 있더이다. 측은한 마음에 우유를 건네며. "Would you like a glass of milk? " 했는데... <여기서 내가 영어교육을 받았던 한국 교육의 현실, 문제점, 과제인 발음이 쓰떼빠니('쓰리빠' 라고 부르겠소, 그놈의 언니 쏘냐는 '쏘가리')우리의 벽을 두텁게 하기 시작하였소.> 바로 우유의 발음이었소. [ 밀크 ] 못알아듣더이다. 이것이 아닌 가벼하며 재도전 [ 미~을~크 ] '무슨 말하냐'며 위아래로 훑어보며 한손엔 닭다리 한손엔 피자를 들고 있는 나한테 한마디 하더이다. " pig " 뭐라고 씨부렁 거렸는데 요것밖에 안들렸소. 이해했소. 노력했소. 처음 만나구, 문화가 틀리기 때문에 쓰리빠가 이러는가 보다 했소. 7박 8일이 되던 날, 그럭저럭 나의 콩글리쉬랑 한국말 섞어가면서 (거의 한국말 이었소.) 쓰리빠를 이해하려 노력을 했었소. 화장실에서 이빨을 닦고 있는 그놈을 보니 아쉽기만 하고 잘 못해준것에 대한 자괴감마저 조금씩 맘에서 솟구치고 있었소. 그래서 나의 영어실력을 통틀어 그놈을 이해한다는 표현을 하였소. " you are bored to death " < 너 지겨워서 죽겠다.> 그런데 이놈이 "what" 그러더이다. 생각해보니 bored 와 death 에서 내 발음이 안좋았던 것 같았소. 다시 한번 용기를 내어 " 유 아 보~어~드 투 데쓰 " 또 이놈이 " what " 도저히 안되더이다. 다시 한번 도전하였소 또박또박 "유" "아" "보~어~드" "투" "데" "쓰" '이제는 알아 들었겠지 ?!' 하며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는 나한테 이놈의 단 한마디의 답을 했소 "idiot" 이었소. 그러면서 지 언니인 쏘가리랑 막 웃더이다. 그런데 내가 idiot이라는 단어가 애매해서, 집에 있는 1970년 (삼촌이 쓰시던 사전) 영한 사전을 찾아보았소. 그런데 요즘 것은 그런 뜻이 먼저 나오지 않는데..이 것은.. (명) 머저리, 등신, 병신 예) you are the real idiot : 넌 정말 머저리이구나! 라고 써져있던 것이 아니었겠소. 뚜껑열려 미치는 줄 알았소. 내일이면 다시 서울로 가서 미국으로 가는데, 이놈을 때리진 못해도 잔소리를 하고 싶은데 전혀 쳐다도 안보니 여하튼 분을 삭히며 잠을 청하였소. 그 다음날 아침... 아침에 나를 깨우는 것은 닭의 울음 소리가 아니라 쓰떼빠니의 울음 소리였소. " 으어~~~얼" 우는 소리도 영어발음 비스무레 들리더이다.. 어쨌든 기분이 좋더라. 마루로 나가 보니 이놈의 오른 쪽 눈 부위부터 입술까지 퉁퉁부어있더이다. 눈물 콧물... 찍찍 흘려데는 쓰떼빠니. 너무 웃겼소. 알고보니 우리 대한 < > 의 자랑스런 건아 모기, 작은 고추 더 맵다는 것을 알려주듯 내 보복을 해준 거였소. 후에 들었는데 미국에 돌아가서 거의 한달간 병원에 다녔다더이다. 그래서 그런지 작년에 이모님께서 또 한국을 찾아오셨는데. 쓰떼빠니는 다시는 거기에 안갈거라고 했다더이다. 무서워서. 나두, 모기두 다. 좀 섭섭하구, 미안하더이다. 문화의 차이, 성격의 차이를 충분히 극복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잘 지내라. 쏘가리와 쓰리빠. ☞ 클릭, 오늘의 톡! 3년을 참았어요 이젠 나도 하고 싶어요
내 혀가 *** 코브라 *** 인줄 알아?!
2000년 어느날...
미국 깰리뽀~냐에 사시는 이모님께서 이종사촌여동생 두명을 대리고 9박 10일 예정으로 한국을 찾아오셨소이다.
이모님은 종종 5년에 한번씩은 뵈왔지만, 여동생 두명 (미국명 쏘냐, 쓰떼빠니)는 처음이었소.
그들도 나름대로 설랬을 것이라 생각했소.
그러나 생각과는 달리 그들은 답답해서 죽을 지경이었소. 서울이나 시골이나 말이오
그들이 서울에서 이틀을 지내고 내 집 소재가 되는 전북에 한 작은 도시에 찾아오게 되었소이다.
어떻게 인사를 할까 했는데 어머니께서 쏘냐는 집에서 이모님이 한국말을 쓰시니 장녀로서 곧잘 사용했다고 하는데 쓰떼빠니는 한국말도 싫어하고 별로 대화하길 싫어한다하시었소.
머. 영어 시험은 말하기와 듣기를 빼놓고는 사전을 달달 외우다시피했던 나였소.
그러나 발음이 안좋아 걱정은 했지만 한국말을 할줄 안다기에 그리 큰 걱정은 하지 않았소.
어쨌든, 반가운 듯이 hi !
하고 첫인사 때려부렀소.
그리고 나와의 동거 생활이 시작되었소.
그런데 쓰떼빠니 한국 생활에 전혀 적응을 하지 못하고 음식, 문화, 지역의 크기 등등...모든 것이 싫다고 빨리 어메리카 가자고 지 엄니한테 징징대더이다.
하여간 요놈 입에 맞는 음식을 공수하러 미군부대에 가서 피자. 콜라, 치킨 할 것없이 사다가 처먹였소.아니 내 가족이니까 입에다 대령했소
그때 내가 사는 시골엔 파파이스가 없었더랬소.
너무 신기하고 한국의 닭보다 열라 큰 닭다리 한입한입 비어먹다가 쓰떼빠니를 보니 그럭저럭 목에 넘기고 있더이다.
측은한 마음에 우유를 건네며.
"Would you like a glass of milk? " 했는데...
<여기서 내가 영어교육을 받았던 한국 교육의 현실, 문제점, 과제인 발음이
쓰떼빠니('쓰리빠' 라고 부르겠소, 그놈의 언니 쏘냐는 '쏘가리')우리의 벽을 두텁게 하기 시작하였소.>
바로 우유의 발음이었소.
[ 밀크 ] 못알아듣더이다. 이것이 아닌 가벼하며
재도전
[ 미~을~크 ]
'무슨 말하냐'며 위아래로 훑어보며 한손엔 닭다리 한손엔 피자를 들고 있는 나한테 한마디 하더이다.
" pig "
이해했소. 노력했소. 처음 만나구, 문화가 틀리기 때문에 쓰리빠가 이러는가 보다 했소.
7박 8일이 되던 날,
그럭저럭 나의 콩글리쉬랑 한국말 섞어가면서 (거의 한국말 이었소.)
쓰리빠를 이해하려 노력을 했었소.
화장실에서 이빨을 닦고 있는 그놈을 보니 아쉽기만 하고 잘 못해준것에 대한 자괴감마저 조금씩 맘에서 솟구치고 있었소.
그래서 나의 영어실력을 통틀어 그놈을 이해한다는 표현을 하였소.
" you are bored to death " < 너 지겨워서 죽겠다.>
그런데 이놈이 "what" 그러더이다.
생각해보니 bored 와 death 에서 내 발음이 안좋았던 것 같았소.
다시 한번 용기를 내어 " 유 아 보~어~드 투 데쓰 "

또 이놈이 " what "
도저히 안되더이다.
다시 한번 도전하였소 또박또박
"유"
"아"
"보~어~드"
"투"
"데"
"쓰"
이놈의 단 한마디의 답을 했소
"idiot" 이었소. 그러면서 지 언니인 쏘가리랑 막 웃더이다.
그런데 내가 idiot이라는 단어가 애매해서, 집에 있는 1970년 (삼촌이 쓰시던 사전) 영한 사전을 찾아보았소.
그런데 요즘 것은 그런 뜻이 먼저 나오지 않는데..이 것은..
(명) 머저리, 등신, 병신 예) you are the real idiot : 넌 정말 머저리이구나!


라고 써져있던 것이 아니었겠소.
뚜껑열려 미치는 줄 알았소.
내일이면 다시 서울로 가서 미국으로 가는데, 이놈을 때리진 못해도 잔소리를 하고 싶은데 전혀 쳐다도 안보니 여하튼 분을 삭히며 잠을 청하였소.
그 다음날 아침...
아침에 나를 깨우는 것은 닭의 울음 소리가 아니라 쓰떼빠니의 울음 소리였소.
" 으어~~~얼"
우는 소리도 영어발음 비스무레 들리더이다..
마루로 나가 보니 이놈의 오른 쪽 눈 부위부터 입술까지 퉁퉁부어있더이다.
눈물 콧물... 찍찍 흘려데는 쓰떼빠니. 너무 웃겼소.

알고보니 우리 대한 <
> 의 자랑스런 건아 모기, 작은 고추 더 맵다는 것을 알려주듯 내 보복을 해준 거였소.
후에 들었는데 미국에 돌아가서 거의 한달간 병원에 다녔다더이다.
그래서 그런지 작년에 이모님께서 또 한국을 찾아오셨는데. 쓰떼빠니는 다시는 거기에 안갈거라고 했다더이다. 무서워서.
나두, 모기두 다.
좀 섭섭하구, 미안하더이다.
문화의 차이, 성격의 차이를 충분히 극복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잘 지내라. 쏘가리와 쓰리빠.
☞ 클릭, 오늘의 톡! 3년을 참았어요 이젠 나도 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