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휴가를 떠나지 못하는 근로자들은 아직도 많지만, 그렇지만 유난히도 무더운 올여름에는 도심을 떠나 산과 들로 휴가를 떠났으면 하는 바램이다.
// ( KaKaoStory ID : vvcdw1962 ) // // ( v v c d w 1 9 6 2 ) //
[펀글] 담대하게 나라 지킨 저 진주성, 고즈넉이 도시를 품다(1부) – 국방일보 <글> 안승회 기자 <사진> 한재호 기자 (2016. 07. 27)
{임진왜란의 역사 간직한 '진주성'}
{달빛 앉은 촉석루·유유히 흐르는 남강 '시민 휴식처'}
{논개 바위 '의암' 등 주변 볼거리도}
경남 진주시 도심에 남강을 방벽 삼아 우뚝 서 있는 성벽, 바로 진주성이다. 동쪽으로는 남강이 흐르고 강 절벽 위에 성채가 만들어졌으며 서쪽에는 하천이 있는 천혜의 요새다.
진주성에서는 임진왜란 때 두 차례의 큰 전투가 있었다. 1592년 김시민 장군은 이곳 진주성에서 3800여 명의 군사를 이끌고 왜군 2만 명을 물리치는 대승을 거뒀다. 임진왜란 3대첩의 하나로 손꼽히는 진주대첩이다. 이 전투는 왜군이 곡창지대인 호남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는 데 큰 역할을 했다.
2차 진주성 전투는 왜적이 한양을 잃고 남해안으로 후퇴한 상황에서 전라도를 점령하고 남부지방에 교두보를 구축하기 위해 진주성을 다시 공격해 벌어졌다. 왜군 10만여 명이 동원돼 결국 진주성이 함락됐다. 하지만 왜군은 남원에서 침략을 멈췄고 호남지방은 보전된다. 진주에서 너무 많은 피를 흘렸기 때문이다.
지난 21일 밤 진주성을 찾았다. 담담히 흐르는 남강 너머 화사한 조명으로 단장한 진주성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서 있었다. 왜적과 맞섰던 치열한 역사의 현장은 따뜻하고 포근한 시민들의 휴식처로 바뀌어 있었다. 동문을 통해 성안으로 들어가니 커다란 누각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촉석루다. 고려 고종 때 만들어진 이 누각은 ‘강 가운데 우뚝 솟아있다’는 의미로 ‘촉석’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정면 5칸, 측면 4칸 구조로 고려말 진주성을 지키던 장수의 총 지휘소로 사용됐다. 성 밖 강가에는 ‘의암(義巖)’이 있었다. 논개가 왜장을 껴안고 남강에 뛰어들었다는 전설이 담긴 바위다. 촉석루 옆에는 논개를 모신 ‘의기사(義妓祠)’라는 사당도 있다.
진주성 안에는 국립진주박물관이 고즈넉한 모습으로 자리 잡고 있다. 1984년 진주성이 시민공원으로 단장되면서 개관했다. 건물은 건축가 김수근의 작품으로 탑의 형상을 빌려 진주성과 조화를 잘 이뤄냈다는 평을 듣고 있다. 박물관에서는 김시민 장군의 선무공신교서를 비롯해 임진왜란 당시의 다양한 유물을 관람할 수 있다.
여름휴가 떠나요(1부)
여름휴가를 떠나지 못하는 근로자들은 아직도 많지만, 그렇지만 유난히도 무더운 올여름에는 도심을 떠나 산과 들로 휴가를 떠났으면 하는 바램이다.
// ( KaKaoStory ID : vvcdw1962 ) // // ( v v c d w 1 9 6 2 ) //
[펀글] 담대하게 나라 지킨 저 진주성, 고즈넉이 도시를 품다(1부) – 국방일보 <글> 안승회 기자 <사진> 한재호 기자 (2016. 07. 27)
{임진왜란의 역사 간직한 '진주성'}
{달빛 앉은 촉석루·유유히 흐르는 남강 '시민 휴식처'}
{논개 바위 '의암' 등 주변 볼거리도}
경남 진주시 도심에 남강을 방벽 삼아 우뚝 서 있는 성벽, 바로 진주성이다. 동쪽으로는 남강이 흐르고 강 절벽 위에 성채가 만들어졌으며 서쪽에는 하천이 있는 천혜의 요새다.
진주성에서는 임진왜란 때 두 차례의 큰 전투가 있었다. 1592년 김시민 장군은 이곳 진주성에서 3800여 명의 군사를 이끌고 왜군 2만 명을 물리치는 대승을 거뒀다. 임진왜란 3대첩의 하나로 손꼽히는 진주대첩이다. 이 전투는 왜군이 곡창지대인 호남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는 데 큰 역할을 했다.
2차 진주성 전투는 왜적이 한양을 잃고 남해안으로 후퇴한 상황에서 전라도를 점령하고 남부지방에 교두보를 구축하기 위해 진주성을 다시 공격해 벌어졌다. 왜군 10만여 명이 동원돼 결국 진주성이 함락됐다. 하지만 왜군은 남원에서 침략을 멈췄고 호남지방은 보전된다. 진주에서 너무 많은 피를 흘렸기 때문이다.
지난 21일 밤 진주성을 찾았다. 담담히 흐르는 남강 너머 화사한 조명으로 단장한 진주성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서 있었다. 왜적과 맞섰던 치열한 역사의 현장은 따뜻하고 포근한 시민들의 휴식처로 바뀌어 있었다. 동문을 통해 성안으로 들어가니 커다란 누각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촉석루다. 고려 고종 때 만들어진 이 누각은 ‘강 가운데 우뚝 솟아있다’는 의미로 ‘촉석’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정면 5칸, 측면 4칸 구조로 고려말 진주성을 지키던 장수의 총 지휘소로 사용됐다. 성 밖 강가에는 ‘의암(義巖)’이 있었다. 논개가 왜장을 껴안고 남강에 뛰어들었다는 전설이 담긴 바위다. 촉석루 옆에는 논개를 모신 ‘의기사(義妓祠)’라는 사당도 있다.
진주성 안에는 국립진주박물관이 고즈넉한 모습으로 자리 잡고 있다. 1984년 진주성이 시민공원으로 단장되면서 개관했다. 건물은 건축가 김수근의 작품으로 탑의 형상을 빌려 진주성과 조화를 잘 이뤄냈다는 평을 듣고 있다. 박물관에서는 김시민 장군의 선무공신교서를 비롯해 임진왜란 당시의 다양한 유물을 관람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