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없이 담담하게, 또 그렇게

ㅇㅇ2016.07.30
조회348

내가 열 여덟되던해에 너를 처음 만났다.

 

뭐 저런여자가 다있어, 웃긴여자다. 무슨 여자가 저렇게 억세지?

 

너의 모든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인생에 여자라곤 엄마뿐이었던 내 삶에 묘한 울림을 준 첫 여자.

 

그게 바로 당신이었어.

 

그렇게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매주 마주칠 수 밖에 없었고, 나보다 나이가 많았던 당신은

 

무엇이 그렇게 맘에 들지 않았는지 나를 쥐잡듯 잡아댔지,

 

만나면 볼을 잡아당기고 가만히 있던 나의 팔뚝을 비틀어 꼬집기 일수였고,

 

그런 당신에게 나는 화도 내고 욕도해봤지만 아무소용도 없었어.

 

무슨 교회 누나가 동생을 때리냔 말이지.

 

도망가거나 교회를 관둘 생각도 못하고 매주매주 나가서 당신과 마주치고, 싸우고, 다투고

 

투정부리고 도망가고, 또 그런 나를 잡으러 오고.

 

우리는 그렇게 말도 안되는 사이였어.

 

그러던 어느날, 교회에 가도 보이지 않는 당신의 모습에 한편으로는 다행이다. 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 마음보다 왜? 안나올까? 라는 궁금증이 더 커져만 갔어.

 

그때부터 나는 당신한테 중독된거같아.

 

무엇인가 허전하고 궁금하고...

 

근데 이 허전함과 궁금함이 시간이 지날수록 가슴한켠에 자리잡아버렸고,

 

끝내 잘 사라졌다는 마음을 눌러버렸지.

 

나는 당신의 부모님에게 왜 교회에 나오지 않는지 물어봤어.

 

유학을 갔다더라고.

 

하... 나한테 말한마디 없이, 홀랑 떠나버려?

 

배신감, 분노....

 

어떻게 나한테 그럴수가 있지? 그래도 매주 만나던 사이인데,

 

나는 그렇게 매일매일 화를 내고 혼자 힘들어했어.

 

근데 이상하게 화는 나는데 당신이 너무나도 보고싶었어.

 

그 흔한 사진한장 남기지 못했고,

 

굳게 닫힌 당신의 미니홈페이지엔 방긋 웃는 미이런만 나를 반겼지.

 

잊혀져라 잊으면 추억이 될것이다 그렇게 나는 속으로 되뇌었지만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았어.

 

어린 가슴에 남은 한 여자의 흔적은 그게 차마 사랑인줄도 모르고 그저 미쳐가는구나, 내가 정신병에 걸리는구나, 라고만 생각했지.

 

내 나이 스물에 당신을 다시 만났어.

 

나에게 아무말도 없이 떠났던거처럼, 또 아무 이야기도 없이 다시 돌아왔지.

 

아무렇지 않았던거처럼, 어제 헤어지고 오늘 다시 만난거처럼, 돌아오자마자 당신은 나를 괴롭혀대기 시작했어.

 

아무말도 할수 없었어. 왜 그렇게 떠났냐고? 나는 너한테 아무것도 아니냐고 따질수도 없었어.

 

돌아왔다는 사실이 너무 기뻐서, 당신 얼굴을 다시 볼 수 있어서 그저 그걸로 행복한 나는 바보였나봐.

 

당신 곁에서 입술을비집고 나오는 웃음을 참을수가 없었어.

 

그러나 홀로 집에 돌아오는 밤이면 정말 밤새 당신 생각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이 많았지.

 

그때 어렴풋하게 깨달았어. 내가 사랑에 빠진걸까?

 

이상했어. 분명이 믿음, 소망, 사랑중 제일은 사랑이라는데,

 

당신 생각만 하면 슬펐어, 가슴이 아팠어, 모든 시간 모든 순간을 너랑 함께 보내고 싶은데,

 

당신도 나와 같은지... 당신도 나를 보지 못하면 슬픈지, 괴로운지 힘든지 알 길이 없었지.

 

나는 용기도 없었나봐, 물어보면 되는것을, 아니면 돌아서면 되는데, 너무 두려웠어.

 

그래서 곁에선 여전히 교회 동생인것 처럼, 누가봐도 사이좋은 의남매처럼지냈어.

 

내 나이 스물 한살, 당신 나이 스물 다섯,

 

나는 국가의 부름을 받아 군대를 가게되었고, 군대 가기 전날 당신이 내게 선물해준 디지털 시계를 손목에 굳게 맨 채 나는 입대를 했어.

 

한여름의 태양이 머리를 벗겨버릴만큼 나를 내리쬐도, 내 손목에 감겨있는 검은 시계를 보며 웃을 수 있었고, 내 팔에 남은 시계자국이 마치 당신의 흔적인것 같이 느껴졌어.

 

나의 부모님이 첫 면회를 올때, 저 멀리서 보인 당신의 모습,

 

까까머리가 쑥스럽고, 검게탄 내 모습이 낯설어 당신에게 다가가는 한걸음 한걸음이 주춤거렸어.

 

아직도 그날의 당신 모습이 기억이나. 이글거리는 땅 저 너머 하늘거리는 하얀 원피스와 챙 넓은 모자, 만화에서나 나오는 귀족아가씨 같았지.

 

솔직히 미안한 이야기지만 부모님은 눈에 들어오지 않더라구.

 

사뿐사뿐, 이 세계의 사람이 아닌거처럼 나한테 다가와서 모자를 휙 낚아채 도망가는 당신의 뒷모습, 그 미소, 웃음소리. 나는 아직도 생생한데 이젠 당신이 내곁에 없다는게 믿어지지가 않아.

 

바리바리 챙겨온 음식을 먹는둥 마는둥 나는 곁눈질로 당신을 계속 훔쳐보느라 바빴지.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르고 면회가 끝나고 가야하는 당신이 너무 아쉬웠어.

 

가슴 한켠이 울렁대고, 이상한 기분이 목끝을 간질간질하게 만들었어.

 

나 간다. 라고 말하고 뒤돌아 서는 모습에 눈물이 차오르고, 울먹이는 목소리로 쪽팔리게

 

전화하면 꼭 받아줘. 라고밖에 말하지 못했어.

 

내 나이 이제 서른, 당신 나이. 아직 스물 다섯.

 

당신은 거기 그대로 머물러 있는데, 내게는 아직 흘러가는 시간이 나를 자꾸 앞으로 앞으로 끌고가버려.

 

어린시절 그 모습 그대로 당신옆에 남고싶지만 어째서인지, 그렇게 되지가 않네.

 

이젠 내가 너보다 나이가 많으니까, 내가 오빠일까? 아니면 당신은 나에게 계속 처음 사랑한 누나로 남아야하는걸까?

 

당신이 아직도 내 곁에 있다면, 당신과 나는 결혼을 했을까?

 

근데 나는 아직도 당신이 멀리 떠난 이 계절이 다시 돌아오면 숨이 막히게 그리워

 

당신이 눈물나게 보고싶어.

 

당신에게 나는, 어떤 의미 였을까.

 

영원히 들을 수 없는 그 대답,

 

언젠가 곁에 가게 된다면 나에게 해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