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태어날 때부터 부모님 없이 복지시설에서 자라서 이제 20대 후반에 들어선 사람입니다. 복지시설 퇴소 후 누구에게도 하지 못한 이야기들, 그리고 갇혀 자라다가 밖에서 본 것들에 대해 담담히 이야기하고 싶어서 이렇게 글을 씁니다. 글은 편의를 위해 반말이 있는 문어체로 쓰겠습니다. ===================================================================== 요즘 사람들은 자유로운 성을 매우 좋아한다. 성에 대한 책임감은 나날이 가벼워지고, 그 결과에 대해서 깊게 생각하지 않는 것도 같다. 그러나 분명히 그에 대한 결과는 존재하고, 그 책임을 누군가는 진다. 나는 그 책임을 성을 즐긴 당사자 뿐만 아니라 그들의 죄없는 2세가 진다고 생각한다. 병원에서 낙태를 당하거나, 미혼모 시설에서 축복받지 못하고 태어나 부모없이 자라나서 세상에 던져지는 형태로 말이다. 나는 그런 2세 중 한 명이었다. 어렸을 적 몇몇 겁없는 애들이 훔쳐본 서류철에서는 나는 미혼모의 자식이라도 되어있었다. (지금은 무엇이라 부르는지 모르지만, 그 때는 그것을 아동카드라고 했다.) 미혼모의 자식이라는 것은 복지시설에서 같이 자라는 아이들 사이에서는 크게 놀라울 것이 없었다. 우리들은 대부분 미혼모의 자녀였고, 몇몇은 부모가 스스로 버렸고, 몇몇은 미아가 되었다가 (미아였는지 그냥 길에서 버렸는지 알지 못한다.) 시설로 온 아이들이었다. 왜 미혼모의 자녀가 많았냐면, 우리 시설 안에는 미혼모 지원 시설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주 어렸을 때는 10명 정도의 아이들이 한 방에 살았고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부터는 25명이 한 방에 같이 살았다. 우리를 돌보는 사람은 1명이었고, 그것도 1년 단위로 바뀌었다. 25명의 아이를 1명이 돌보기는 매우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사실상 돌봄을 받는게 아니라, 관리를 당하였다. 청소와 빨래, 배식 설거지를 스스로 하였다. 겉옷같은 경우는 세탁방이 있어서 거기서 세탁을 했지만, 속옷과 양말은 8살 때부터 스스로 하였다. 찬 물에 세탁 비누만 가지고 해야 하는 양말 빨래는 어린 손에 매우 힘든 일이었다. 비눗물을 묻힌 뒤 손가락으로 비벼서 빨래를 하다보면 손마디 살이 까져서 피가 나왔다. 한번은, 내가 뭘 잘 못했다고 벌칙으로 겨울에 25명의 양말 빨래를 나 혼자 하게 되었는데, 나는 손으로 계속 빨래를 하려다가 손마디가 너무 아파서 결국 다 못하였다. 그리고 또 혼이 났다. 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우리를 관리하는 사람'들이 우리를 의도적으로 학대한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때 우리도 학대 당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게 당연했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 몸이 약했던 나는 한번은 감기 몸살이 심하게 나서, 학교에서 조퇴를 해서 혼자서 침방(우리는 25명이 모여사는 이 방을 침방이라고 했다.)에 와서 구토를 해버리고 고열로 인해 바닥에 쓰러져서 숨만 쉬고 있었다. '우리를 관리하는 사람'이 좀 있다가 와서 깜짝 놀라서 왜 토를 하고 치우지도 않고 누워있냐고 혼을 냈다. 그 때 나는 매우 아파하면서 용서를 빌었고, 아픈 몸으로 __를 빨아서 닦고 치운 후 내가 꾀병이 아니라고 열심히 설명을 하였다. 다행히 열이 매우 심했기 때문에 나를 병원으로 데려다 주었다. 그 '우리를 관리하는 사람'을 왜 그렇게 부르냐면, 다른 말로 부를 것이 없기 때문이다. 1년 단위로 바뀌는 사람인데, 엄마라고도 부를 수 없고, 당시에는 사회복지사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동복지시설에서 아동을 관리하는 사람에게 사회복지사 자격증이 필수가 되었던 건 불과 10년 전 밖에 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렇게 부르는데, 이 사람들은 나쁜 사람은 아니었지만, 훌륭한 부모 역할이라던가, 관리자는 아니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초등학교 저학년이었을 때, 환경의 문제로 인해 머릿니가 들끓었었다. 그 이유는 아직 나도 모른다. 다만 분명 시설의 노후화된 난방시설과 목욕 시설 등이 원인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분명한 것은, 머릿니가 들끓었던건 지금 와서 생각해보건데 우리의 잘못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 때 '우리를 관리하는 사람'은 그 머릿니가 아이들의 책임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틀림이 없었다. 비정기적으로 (주로 일주일에 한두번) 머리를 검사해서 머릿니가 발견되면 아이를 혼을 냈고, 겨울이건 여름이건 침방 밖으로 쫓아내서 머릿니와 서캐(머릿니의 알을 서캐라고 한다)를 다 없애기 전까지는 들어오지 말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확실한건, 자기가 자리 머리에 있는 머릿니와 서캐를 뽑아 없앨 수 없다. 쫓겨난 아이들은 복도나 마당에 쭈그려 앉아서 서로의 머리를 보며 서캐와 머릿니를 뽑았고, 다시 검사를 받을 때에는 제발 서캐가 발견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전전긍긍했었다. 그 때 머릿니가 많이 발견되었던 나는 제발 하루가 그냥 지나가길 바랬었다. 머리 검사를 하고 혼이 나는 건 나에게 있어 그냥 천재지변이나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점점 검사를 해서 머릿니가 발견된 아이가 적어질 수록 남은 아이들은 자기 머리를 봐줄 아이들이 줄어들었기 때문에 더 전전긍긍했었는데, 사실 이렇게 머릿니를 뽑아봤자 효과가 없어서 또 며칠 지나면 다시 머릿니가 생기곤 했기 때문에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우리를 관리하는 사람'들은 이 머릿니에 대해 지긋지긋하게 생각했던 것이 틀림없었다. 한번은 강제로 머릿니가 발견된 아이들의 머리를 쥐어잡고 그냥 가위로 싹둑 잘라버렸다. 나도 그렇게 머리를 잘리었는데, 그게 트라우마가 되어서 성인이 될 때까지도 머리 자르는 것을 무서워했던 기억이 난다. (결국 머릿니는 독한 약품을 보급(?)받고 그 약품으로 머리를 다 감아낸 후, 시설을 전면 소독하고 개선한 후에 사라졌다.) 여하튼 '우리를 관리하는 사람'들은 결코 합리적인 관리자가 아니었다는게 말하고자 하는 바이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하기사 누가 부모를 대신할 수 있겠느냐 싶지만.. 또 한가지 예를 들어보면, 우리는 청소를 해야할 곳이 매우 많았는데, 시설은 좀 큰 편이었고, (심지어 시설 내에 원생들만 다니는 학교가 있었다.) 그 곳을 원생들이 다 청소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방학 때는 주기적으로 학교에 가서 청소를 하였는데, 한번은 청소를 깨끗히, 빠르게 하지 않는다고 우리를 꾸짖었다. 그리고 벌로 우리의 팬티를 벗어서 그걸 빨아서 그걸로 청소를 하라고 했다. 우리는 말을 잘못들었나 싶어서 머뭇머뭇하였는데 (그게 부당한 일이어서 머뭇거린게 아니라, 팬티는 우리가 빨래해야 하는 건데, 그걸로 __를 삼으라니까...) 옆에 있는 아이에게 매를 때리면서 강요하였다. 그 때 우리는 팬티를 벗어서 __질을 했다. 그게 과연 옳은 훈육법인가? 아니라, 그 '우리를 관리하는 사람'들은 혼자서 25명의 아이를 관리하는 효과적인 방법을 오랜 시간을 통해 알았던 것이다. 그것은 공포였다. 아이의 부모는 인내를 가지고 아이를 옳은 길로 인도하려고 하겠지만, 부모가 아닌 관리자는 효과적인 관리법으로 공포를 심는 방법을 택했던 것이다. 복지시설에서 자라면서 이런 일은 비일비재했다. 부당한 일로 단체 체벌을 받고,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것, 거기서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수십개는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제 와서 무슨 소용이 있겠냐고 생각하고, 사회복지 자격이나 교육도 받지 못한 그 '우리를 관리하는 사람'이 나쁜게 아니라, 25명의 아이를 자격없는 사람에게 한꺼번에 맡기었던 국가 시스템이 잘못된 것이었다 생각한다. 그리고 사실 정말 비극적인 것은 복지시설 안에서 자라날 때 생기는게 아니라, 19살 성년이 되어 퇴소를 하고 나서 생기는 것이라는 것을 나는 후에 깨달았다. 19살이 되면, 대학에 진학하지 않으면 다 퇴소를 하게 된다. 그 때는 자립지원금 500만원을 들고 사회에 나오게 되는데, 19살 혈혈단신 기댈 곳 없이, 집도 없이 사회에 던져진다고 생각해보라. 무슨 일이 벌어질지. 사실 악덕 사장님들은 이런 부모없는 원생 출신을 좋아한다. 죽거나 사고가 나도 뒤탈이 없으니까. 나는 내 또래 중 21살의 젊은 나이에 제철공장에서 일하다가 폐철을 모으는 곳에 떨어져 죽은 내 선배를 기억한다. 그 선배는 가족도 연고도 없기에 그냥 개죽음 당한 것이었다. 그렇게 자라나서 그렇게 살다가 사라진 것이다. 여자의 경우는 당연히 상상하는 것처럼, 갇혀 살아 순진한 원생들을 유혹하여 업소에서 일하게 하거나, 다단계로 끌어들여 이용하다가 거액의 빚을 지게 만든다. 부모 없고 연고 없는 사람을 등쳐먹기 너무도 쉬운 세상이다. 나와 한 때 친했던 언니 중 한 명은 그렇게 살다가 자살을 했다. 듣기로는 연탄가스를 이용해 죽으려고 하다가 못죽어서 그 상태로 옥상에 몸을 던져 죽었다고 한다. 물론 착실하게 공장에서 돈을 모아 사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연고가 없기에 안좋은 경우를 당하는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부모가 없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우리에게 부당하다고 느껴지는 세상에 수없이 우리가 무슨 잘못을 했냐고 물어보아도, 그렇게 태어난 것이 잘못이라고 한다. 사실 합리적으로 생각해보면, 이것은 인권의 문제이다. 언제나 고아들의 처지는 그 당시의 인권의 수준을 말해준다. 그러나 그런 것을 감안한다고 해도, 과연 복지시설의 아이들이 부모와 자라는 것만큼 행복할 수 있을까. 글의 첫 부분에서 말했던 것처럼, 우리가 부모없이 자라나는 것은 우리의 잘못이 아니라, 부모의 잘못이다. 그래서 나는 '자유로운 성'에 터부가 있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연좌제도 사라진 세상에서, 유일하게 '성'이라는 것만 은유적 연좌제를 받고 있다. 부모의 죄를 자식이 받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무섭고, 그 죄도 엄중하다. 피임을 아무리 철저하게 한다 한들, 완벽히 불임이 되지 않는 이상에야 드문 확률로 어쩔 수 없이 아이가 생긴다는 것을 누구나 다 알고 있다. 그럴 때 책임을 질 수 있는 그런 성관계만이 인권적으로 옳은 것이라 생각한다. (누군가는 낙태를 이야기할텐데, 내 삶이 아무리 힘들어도 태어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던 적은 없다. 그 또한 잘못된 것이다. 내 삶에 대한 권리는 나에게 있다.) 특히나 남성들은 이런 책임에서 도망가려고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남성들은 인권을 말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성매매 합법화를 외치든, 원나잇을 외치든 그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난 후에 그런 외침이 정당화가 되는 것이다. 자유로운 성이 가지는 무거움, 고통을 이해해보지도 않고 외치는 사람들이 정말로 증오스럽다. 2
부모가 없다는 것은 이런 겁니다.
안녕하세요.
태어날 때부터 부모님 없이 복지시설에서 자라서 이제 20대 후반에 들어선 사람입니다.
복지시설 퇴소 후 누구에게도 하지 못한 이야기들, 그리고 갇혀 자라다가 밖에서 본 것들에 대해
담담히 이야기하고 싶어서 이렇게 글을 씁니다.
글은 편의를 위해 반말이 있는 문어체로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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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사람들은 자유로운 성을 매우 좋아한다. 성에 대한 책임감은 나날이 가벼워지고,
그 결과에 대해서 깊게 생각하지 않는 것도 같다. 그러나 분명히 그에 대한 결과는 존재하고,
그 책임을 누군가는 진다. 나는 그 책임을 성을 즐긴 당사자 뿐만 아니라 그들의 죄없는 2세가
진다고 생각한다. 병원에서 낙태를 당하거나, 미혼모 시설에서 축복받지 못하고 태어나
부모없이 자라나서 세상에 던져지는 형태로 말이다.
나는 그런 2세 중 한 명이었다. 어렸을 적 몇몇 겁없는 애들이 훔쳐본 서류철에서는 나는
미혼모의 자식이라도 되어있었다. (지금은 무엇이라 부르는지 모르지만, 그 때는 그것을
아동카드라고 했다.) 미혼모의 자식이라는 것은 복지시설에서 같이 자라는 아이들 사이에서는
크게 놀라울 것이 없었다. 우리들은 대부분 미혼모의 자녀였고, 몇몇은 부모가 스스로 버렸고,
몇몇은 미아가 되었다가 (미아였는지 그냥 길에서 버렸는지 알지 못한다.) 시설로 온 아이들이었다.
왜 미혼모의 자녀가 많았냐면, 우리 시설 안에는 미혼모 지원 시설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주 어렸을 때는 10명 정도의 아이들이 한 방에 살았고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부터는 25명이
한 방에 같이 살았다. 우리를 돌보는 사람은 1명이었고, 그것도 1년 단위로 바뀌었다.
25명의 아이를 1명이 돌보기는 매우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사실상 돌봄을 받는게 아니라, 관리를 당하였다.
청소와 빨래, 배식 설거지를 스스로 하였다. 겉옷같은 경우는 세탁방이 있어서 거기서 세탁을 했지만, 속옷과 양말은 8살 때부터 스스로 하였다.
찬 물에 세탁 비누만 가지고 해야 하는 양말 빨래는 어린 손에 매우 힘든 일이었다.
비눗물을 묻힌 뒤 손가락으로 비벼서 빨래를 하다보면 손마디 살이 까져서 피가 나왔다.
한번은, 내가 뭘 잘 못했다고 벌칙으로 겨울에 25명의 양말 빨래를 나 혼자 하게 되었는데, 나는 손으로 계속 빨래를 하려다가 손마디가 너무 아파서 결국 다 못하였다.
그리고 또 혼이 났다.
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우리를 관리하는 사람'들이 우리를 의도적으로 학대한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때 우리도 학대 당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게 당연했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 몸이 약했던 나는 한번은 감기 몸살이 심하게 나서, 학교에서 조퇴를 해서
혼자서 침방(우리는 25명이 모여사는 이 방을 침방이라고 했다.)에 와서 구토를 해버리고 고열로 인해
바닥에 쓰러져서 숨만 쉬고 있었다.
'우리를 관리하는 사람'이 좀 있다가 와서 깜짝 놀라서 왜 토를 하고 치우지도 않고 누워있냐고
혼을 냈다. 그 때 나는 매우 아파하면서 용서를 빌었고, 아픈 몸으로 __를 빨아서 닦고 치운 후
내가 꾀병이 아니라고 열심히 설명을 하였다. 다행히 열이 매우 심했기 때문에
나를 병원으로 데려다 주었다.
그 '우리를 관리하는 사람'을 왜 그렇게 부르냐면, 다른 말로 부를 것이 없기 때문이다. 1년 단위로 바뀌는 사람인데,
엄마라고도 부를 수 없고, 당시에는 사회복지사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동복지시설에서 아동을 관리하는 사람에게 사회복지사 자격증이 필수가 되었던 건 불과 10년 전 밖에 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렇게 부르는데, 이 사람들은 나쁜 사람은 아니었지만, 훌륭한 부모 역할이라던가,
관리자는 아니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초등학교 저학년이었을 때, 환경의 문제로 인해 머릿니가 들끓었었다.
그 이유는 아직 나도 모른다. 다만 분명 시설의 노후화된 난방시설과 목욕 시설 등이 원인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분명한 것은, 머릿니가 들끓었던건 지금 와서 생각해보건데 우리의 잘못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 때 '우리를 관리하는 사람'은 그 머릿니가 아이들의 책임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틀림이 없었다.
비정기적으로 (주로 일주일에 한두번) 머리를 검사해서 머릿니가 발견되면 아이를 혼을 냈고,
겨울이건 여름이건 침방 밖으로 쫓아내서 머릿니와 서캐(머릿니의 알을 서캐라고 한다)를 다 없애기 전까지는 들어오지 말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확실한건, 자기가 자리 머리에 있는 머릿니와 서캐를 뽑아 없앨 수 없다.
쫓겨난 아이들은 복도나 마당에 쭈그려 앉아서 서로의 머리를 보며 서캐와 머릿니를 뽑았고,
다시 검사를 받을 때에는 제발 서캐가 발견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전전긍긍했었다.
그 때 머릿니가 많이 발견되었던 나는 제발 하루가 그냥 지나가길 바랬었다.
머리 검사를 하고 혼이 나는 건 나에게 있어 그냥 천재지변이나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점점 검사를 해서 머릿니가 발견된 아이가 적어질 수록 남은 아이들은 자기 머리를 봐줄 아이들이
줄어들었기 때문에 더 전전긍긍했었는데, 사실 이렇게 머릿니를 뽑아봤자 효과가 없어서
또 며칠 지나면 다시 머릿니가 생기곤 했기 때문에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우리를 관리하는 사람'들은 이 머릿니에 대해 지긋지긋하게 생각했던 것이 틀림없었다.
한번은 강제로 머릿니가 발견된 아이들의 머리를 쥐어잡고 그냥 가위로 싹둑 잘라버렸다.
나도 그렇게 머리를 잘리었는데, 그게 트라우마가 되어서 성인이 될 때까지도 머리 자르는 것을 무서워했던 기억이 난다.
(결국 머릿니는 독한 약품을 보급(?)받고 그 약품으로 머리를 다 감아낸 후, 시설을 전면 소독하고 개선한 후에 사라졌다.)
여하튼 '우리를 관리하는 사람'들은 결코 합리적인 관리자가 아니었다는게 말하고자 하는 바이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하기사 누가 부모를 대신할 수 있겠느냐 싶지만..
또 한가지 예를 들어보면, 우리는 청소를 해야할 곳이 매우 많았는데, 시설은 좀 큰 편이었고,
(심지어 시설 내에 원생들만 다니는 학교가 있었다.) 그 곳을 원생들이 다 청소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방학 때는 주기적으로 학교에 가서 청소를 하였는데, 한번은 청소를 깨끗히, 빠르게 하지 않는다고 우리를 꾸짖었다.
그리고 벌로 우리의 팬티를 벗어서 그걸 빨아서 그걸로 청소를 하라고 했다. 우리는 말을 잘못들었나 싶어서 머뭇머뭇하였는데
(그게 부당한 일이어서 머뭇거린게 아니라, 팬티는 우리가 빨래해야 하는 건데, 그걸로 __를 삼으라니까...)
옆에 있는 아이에게 매를 때리면서 강요하였다. 그 때 우리는 팬티를 벗어서 __질을 했다.
그게 과연 옳은 훈육법인가? 아니라, 그 '우리를 관리하는 사람'들은 혼자서 25명의 아이를 관리하는
효과적인 방법을 오랜 시간을 통해 알았던 것이다. 그것은 공포였다.
아이의 부모는 인내를 가지고 아이를 옳은 길로 인도하려고 하겠지만, 부모가 아닌 관리자는
효과적인 관리법으로 공포를 심는 방법을 택했던 것이다.
복지시설에서 자라면서 이런 일은 비일비재했다. 부당한 일로 단체 체벌을 받고,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것, 거기서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수십개는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제 와서 무슨 소용이 있겠냐고 생각하고,
사회복지 자격이나 교육도 받지 못한 그 '우리를 관리하는 사람'이 나쁜게 아니라,
25명의 아이를 자격없는 사람에게 한꺼번에 맡기었던 국가 시스템이 잘못된 것이었다 생각한다.
그리고 사실 정말 비극적인 것은 복지시설 안에서 자라날 때 생기는게 아니라, 19살 성년이 되어
퇴소를 하고 나서 생기는 것이라는 것을 나는 후에 깨달았다.
19살이 되면, 대학에 진학하지 않으면 다 퇴소를 하게 된다.
그 때는 자립지원금 500만원을 들고 사회에 나오게 되는데, 19살 혈혈단신 기댈 곳 없이, 집도 없이
사회에 던져진다고 생각해보라. 무슨 일이 벌어질지.
사실 악덕 사장님들은 이런 부모없는 원생 출신을 좋아한다. 죽거나 사고가 나도 뒤탈이 없으니까.
나는 내 또래 중 21살의 젊은 나이에 제철공장에서 일하다가 폐철을 모으는 곳에 떨어져 죽은 내 선배를 기억한다.
그 선배는 가족도 연고도 없기에 그냥 개죽음 당한 것이었다. 그렇게 자라나서 그렇게 살다가 사라진 것이다.
여자의 경우는 당연히 상상하는 것처럼, 갇혀 살아 순진한 원생들을 유혹하여 업소에서 일하게 하거나, 다단계로 끌어들여 이용하다가 거액의 빚을 지게 만든다.
부모 없고 연고 없는 사람을 등쳐먹기 너무도 쉬운 세상이다.
나와 한 때 친했던 언니 중 한 명은 그렇게 살다가 자살을 했다. 듣기로는 연탄가스를 이용해 죽으려고 하다가 못죽어서 그 상태로 옥상에 몸을 던져 죽었다고 한다.
물론 착실하게 공장에서 돈을 모아 사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연고가 없기에 안좋은 경우를 당하는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부모가 없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우리에게 부당하다고 느껴지는 세상에 수없이 우리가 무슨 잘못을 했냐고 물어보아도, 그렇게 태어난 것이 잘못이라고 한다.
사실 합리적으로 생각해보면, 이것은 인권의 문제이다. 언제나 고아들의 처지는 그 당시의 인권의 수준을 말해준다.
그러나 그런 것을 감안한다고 해도, 과연 복지시설의 아이들이 부모와 자라는 것만큼 행복할 수 있을까.
글의 첫 부분에서 말했던 것처럼, 우리가 부모없이 자라나는 것은 우리의 잘못이 아니라, 부모의 잘못이다.
그래서 나는 '자유로운 성'에 터부가 있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연좌제도 사라진 세상에서, 유일하게 '성'이라는 것만 은유적 연좌제를 받고 있다.
부모의 죄를 자식이 받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무섭고, 그 죄도 엄중하다.
피임을 아무리 철저하게 한다 한들, 완벽히 불임이 되지 않는 이상에야 드문 확률로 어쩔 수 없이 아이가 생긴다는 것을 누구나 다 알고 있다.
그럴 때 책임을 질 수 있는 그런 성관계만이 인권적으로 옳은 것이라 생각한다.
(누군가는 낙태를 이야기할텐데, 내 삶이 아무리 힘들어도 태어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던 적은 없다. 그 또한 잘못된 것이다. 내 삶에 대한 권리는 나에게 있다.)
특히나 남성들은 이런 책임에서 도망가려고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남성들은 인권을 말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성매매 합법화를 외치든, 원나잇을 외치든 그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난 후에 그런 외침이 정당화가 되는 것이다.
자유로운 성이 가지는 무거움, 고통을 이해해보지도 않고 외치는 사람들이 정말로 증오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