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일 동안의 기억

메르헨2016.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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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딱 90일이 되던 날, 남자친구와 완전히 헤어졌습니다.

 

마음이 너무 아파서 이렇게 글이라도 쓰면, 이렇게라도 꺼내놓으면

조금이라도 후련해질까 싶어서 긴 글을 써봅니다.

 

조언의 말씀은 감사히 듣겠고,

이미 멘탈이 너덜너덜해진 상태이기 때문에

혹시라도 나쁜 말씀은 삼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오빠, 자기, 남친 모두 다 부르고 싶지 않은 아픈 말이라서

한 번도 쓴 적 없는 '너'라는 말로 호칭을 대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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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처음 만난 건 푸른 잎이 반짝거리는 5월의 시작 무렵이었다.

 

나는 스물여섯, 너는 서른넷.

나는 부산, 너는 서울.

 

서로 전혀 만날 일이 없었던 우리가 만난 건 어쩌면 우연 같았고 운명 같았던 일이었다.

 

 

시험 준비로 휴학을 오랫동안 했다가 복학하기 전에 잠시 알바를 하기로 했었다.

 

마트 알바였는데 우리 매장에 문제가 생겨서 본사에서 네가 내려왔었다.

 

딱 5월 한 달간의 기간.

너는 그렇게 내 삶 속으로 걸어들어왔다.

 

 

처음에는 그냥 재미있고 성격 좋은 팀장님이었다.

 

그러다가 점점 얘기를 나누는 시간이 많아졌다.

 

마트다 보니 이모님들이 많았고 내 또래의 알바생들은 얼마 없었으니까.

 

 

알고보니 같은 대학을 나왔다고 했다.

 

어떻게 알았냐고 했더니 내 이력서를 찾아봤단다.

 

그 뒤로는 선배, 후배하며 더 친해지고 가까워졌고

때로는 서로 장난도 치는 사이가 됐다.

 

 

무관심에서 작은 호감으로 바뀔 무렵,

 

아무 연고도 없는 곳으로 갑작스레 오게 되어서

술친구도 없이 혼자 술을 마셨다는 말에

 

친한 선배에게 말하듯 별 생각 없이 술을 사달라고 했는데

당장 오늘 일 끝나고 보자고 했다.

 

나도 호감이 있어서 흔쾌히 오케이 했었고.

 

 

2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거의 네가 말을 했었고 나는 조용히 들어주었다.

원래 내가 말을 많이 하는 편은 아니니까.

 

대화 주제도 별 다를 것 없이 거의 일 얘기였는데

자기 일에 열정을 가지고 열심히 사는 모습이 참 보기 좋더라.

 

그때부터 네가 참 멋있어 보이고 좋아졌던 것 같다.

 

 

집까지 혼자 걸어가면 된다는 나를 굳이 위험하다며 데려다 주었다.

 

약 15분 정도의 거리.

너는 왔던 길을 그대로 돌아가야해서 30분 정도의 거리를.

 

그 이후부터 가끔 카톡을 주고 받는 사이가 되었다.

 

 

휴일이던 날, 너에게서 갑작스레 전화가 왔다.

 

심심하다며 놀아줄 사람이 없다는 약간은 구차하고도 귀여웠던 말에

우리는 첫 데이트를 했었다.

 

부산에는 한 번도 와본 적이 없다는 너에게

해운대를 보여주었고 백사장을 따라 함께 걸었다.

 

네가 미리 예매해둔 조금은 무서운 영화를 보았고

나보다 깜짝 깜짝 놀라는 너를 보며 귀엽다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 이후로 갑자기 너는 내게서 약간 거리를 두더라.

 

나 혼자만 썸이라고 생각한건가

그냥 후배로 대한 것뿐이었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5월 중순의 어느 날, 너의 생일이었다.

 

나는 네 생일을 챙겨주었고, 너는 저녁을 사겠다고 했었다.

 

기분이 좋았던지 약간 과하게 마셨던 너는 내게 마음을 내비쳤다.

 

아, 이 사람이 나를 좋아하는 게 맞구나 하는 확신이 생겼다.

 

 

그렇게 취하고도 기어코 날 집까지 데려다준 너는 그 날 밤 몇 번이나 전화를 했었다.

 

이만 자라는 내 말에도 내 목소리를 듣고 싶다며 주사 아닌 주사를 부렸었다.

 

내일 일하러 가기 전에 잠깐 보자는 내 말에 빨리 내일이 됐으면 좋겠다는 네 말이 참 귀여웠다.

 

 

다음 날 아침에 카페에서 만난 너는 내 눈을 잘 못 마주치더라.

 

내가 고백하기를 종용했을 때에서야 그동안 거리를 둔 이유를 알게 되었다.

 

내게 남자친구가 있는 줄 알았다고 했다.

 

그래서 멀어지려고 했는데 자꾸만 마음이 갔다고 했다.

 

친근하게 구는 내 행동이 남자친구가 있는 게 맞나? 싶으면서도

이모들에게 들었던 남자친구 있다는 말에 포기하려고 했었단다.

 

내가 일을 시작했을 때는 남자친구가 있었지.

 

하지만 그 뒤 헤어졌었고 그걸 굳이 말할 이유가 없었기에

이모들은 아직 그걸 모르셨었다.

 

 

내가 남자친구가 없다고 하는 말에 어찌나 안도하면서 가슴을 쓸어내리던지.

 

그러고는 네 성격대로 진솔하고 진지하게 내게 네 마음을 고백하더라.

 

약간은 떨면서, 여전히 내 눈을 제대로 못 마주치면서.

 

 

내 생에 처음으로 받아보는 고백이었다.

 

이전 남자친구에게는 내가 먼저 고백했었으니까.

 

나도 사실 좋아했었다는 말에 너무 기뻐하던 네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우린 서로에게 바라는 점들을 얘기했다.

 

난 연락이 잘 됐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었고

 

너는 항상 휴대폰으로 거래처와 연락을 해야 하는 일을 하기 때문에

그런 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또 너의 나이는 이미 서른 넷이니까

혹시 나랑 사귀다가 결혼 때가 늦어지면 어쩌나 걱정이 된다고 했다.

 

난 아직 결혼 생각이 전혀 없었으니까.

적어도 서른 즈음 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었고.

 

넌 그런 건 아무 상관이 없단다.

만약 우리가 결혼을 하게 된다면 얼마든지 기다려 줄 수 있다고 했다.

 

난 아직 학생이라 데이트 비용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는 말에

넌 더 버는 사람이 더 내면 된다고 학생 주머니 사정을 모르는 것도 아니라고 했다.

 

난 싸우면 바로 바로 풀고 싶다고 했고

너도 그게 좋겠다고 했다.

 

넌 헤어지자는 말을 장난으로 하지 말아달라고 했고

나는 그러겠다고 했다.

 

그렇게 우리는 시작했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우리는 참 알차게도 보냈다.

 

6시에 먼저 일이 끝나는 너는 내가 마칠 시간까지 기다렸다가 나를 늘 집에 데려다주었다.

 

밤에 또 통화할 거면서, 내일 아침이면 또 볼 거면서

잠시 헤어지는 시간이 아쉬워서 우리집 아파트 공원 벤치에서 도란도란 얘기를 했었다.

 

늦게 들어가는 바람에 아빠에게 혼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참 좋았다.

 

휴일이면 공원, 수원지, 바닷가의 조용한 카페에 가서 평화로운 시간을 보냈다.

 

그저 서로가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감사한 시간들이었다.

 

 

결국 이별의 시간은 착실히도 다가왔다.

 

약속된 한 달의 기간이 끝나고 너는 서울의 본사로 돌아가게 되었다.

 

9월에는 내가 다시 학교로 돌아가니까 너를 자주 볼 수 있었다.

 

심지어 학교에서 네가 사는 집까지는 지하철역으로 몇 정거장 되지도 않는 거리였다.

 

너는 그 동안의 추억으로 날 기다리겠다고 했다.

 

3개월, 그거 금방이라며 어른스럽게 날 다독였었다.

 

 

그렇게 우리는 장거리 연애를 하게 되었다.

 

넌 여름 휴가 때 날 보러 내려오겠다며 내 아쉬움을 달랬다.

 

매일 6시 반에 알람을 맞춰 놓고 일어나서 카톡으로 널 챙겼고

 

부모님이 7시 넘어서 출근하신 후에는 바로 너에게 전화를 걸었다.

 

너는 2시간의 출근시간 동안 나와 전화하는 걸 좋아했다.

 

네가 출근하고 나면 나도 준비해서 알바를 갔다.

 

너는 일하는 도중에도 내 쉬는 시간에 맞춰서 전화를 했다.

 

중간중간에 카톡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밤이 되면 잘 준비를 하고 침대에 누워서 1시간이고 2시간이고 통화를 했다.

 

그땐 어쩜 그렇게 할 말이 많았는지

넌 내 차분한 목소리가 참 좋다고 했었다.

 

 

6월 말, 나는 굳이 치지 않아도 되는 시험을 핑계로 서울에 올라갔다.

 

부모님께는 올라간 김에 친구들도 만나고 오겠다며 4박 5일의 시간을 만들었다.

 

너는 연차를 내고 나와 줄곧 함께 있었다.

 

내가 올라간다는 이야기를 듣고 너는 미리 여행 계획을 세워두었다.

 

영화, 미술관, 연극, 야구, 남산, 덕수궁, 대학로, 석촌호수, 재즈카페, 수많은 맛집들...

 

그동안 못 했던 데이트를 알뜰히도 했었다.

 

정말 사랑 받는 게 무언지 너는 알게 해주었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부산에 내려왔다.

 

만났던 날들은 너무도 행복하고 감사했지만

사실 6월 중순즈음부터 우리는 사소한 마찰이 생기기 시작했었다.

 

 

처음으로 싸웠던 날.

 

우린 기분 좋게 웃으며 통화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네 목소리가 안 좋아지더니 피곤하다고 잔다고 하고 끊었다.

 

뭔가 쎄한 느낌에 다시 연락을 했지만 넌 받지 않았다.

 

영문도 모르고 카톡을 남겼는데 한참 후에 읽더니 답장을 했다.

 

6월 말에 서울에 오지 말라고 했다.

 

내가 다시 전화를 했더니 이번에는 끊어버리고 카톡으로 내 목소리도 듣고 싶지 않단다.

 

그 뒤로는 아예 잠수를 타 버렸고

나는 뒤늦게 설마 아까 그 말 때문에 화가 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만 애를 태우며 거의 밤을 새고 다음날 출근하는 너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까지 들은 적 없는 차가운 목소리로 "지금 지하철이야, 사람 많아, 끊어." 라고 했다.

 

결국엔 네가 회사에 들어가기 전에 연락이 됐고 나는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었다.

 

난 그동안의 마음 고생이 너무 서럽고 또 너의 차가운 모습이 너무 무서워서 엉엉 울었었고

 

그런 나에게 넌 자기는 싸우면 이기려고 하기 때문에 싸울 일을 만들지 말자고 했다.

 

난 화를 낼 땐 내더라도 이유라도 알게 해달라고 했고 너는 알겠다고 했다.

 

 

그 뒤로도 이런 일들이 종종 있었다.

 

전화를 하다가 갑자기 불같이 화를 내고 넌 잠수를 타버렸고

 

난 또 네가 읽지도 않을 카톡을 하고 받지도 않을 전화를 했다.

 

사실 그 중에는 내가 잘못한 일도 있었고 내가 생각하기에 전혀 잘못하지 않은 일도 있었다.

 

네가 생각하기에는 기분이 나빴겠지, 아마.

 

어쨌든 난 그런 일이 있으면 풀고 싶었는데 너는 그냥 잠수를 타버렸다.

 

종잡을 수 없는 너의 모습에 나는 너무 힘들었고 조금씩 지쳐갔다.

 

 

그러던 어느 날, 또 연락이 잘 되지 않았다.

 

이번엔 무슨 일인가 걱정을 하고 있었는데 다음 날 네게서 연락이 왔다.

 

교통사고가 났다고 했다.

 

다행히 타박상과 몇 바늘 꿰매는 것으로 끝났다고 했다.

 

난 숨을 쉴 수 없다는 게 무슨 말인지 깨닫게 되었다.

 

모든 사고가 정지하고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서 내쉬어지지가 않더라.

 

난 당장 서울에 가겠다고 했고, 넌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으라며 오지 말라고 했다.

 

당시 난 알바를 그만 두고 8월 말에 있는 시험을 준비하는 중이었다.

 

 

넌 꽤 오랫동안 교통사고 후유증을 앓았고

회사 일은 새로 오픈하는 매장으로 바빠지게 되었다.

 

신체적으로도, 심적으로도 네가 힘들거라는 건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줄어든 카톡에도, 줄어든 전화에도 나는 힘들테니까 하고 이해했다.

 

 

7월에 핑계거리를 만들어 너를 만나러 서울에 갔다.

 

다친 네가, 여전히 힘들어하는 네가 걱정이 되어서.

 

주말에 1박 2일로 짧게 볼 수 밖에 없었지만 너는 만났을 때는 여전히 내게 다정했다.

 

그런데 6월 말에 만났을 때만 해도

나밖에 보지 않던 사람이, 나만 보이는 것 같던 사람이

 

틈이 날 때마다 여러 번 휴대폰으로 사고 싶은 가방을 찾아보더라.

 

그것도 이해했다. 그래도 넌 여전히 다정했으니까.

 

 

헤어질 때 넌 8월에 부산에 내려오겠다고 했다.

 

난 바쁠 텐데 굳이 힘들게 내려오지 말라고 했다.

 

네가 부담을 가지지 않았으면 했다.

 

 

네게서 오는 연락이 점점 더 뜸해졌다.

 

거의 늘 내가 먼저 안부를 묻고 너를 챙겼고 너는 한참 후에 짧은 답장을 보냈다.

 

나와 함께 있을 때 보면 주말에도 늘 휴대폰을 소리 나거나 센 진동으로 해두어서

회사에서 오는 연락을 바로 바로 확인하던 사람이었다.

 

아마 내 카톡이 온 것을 알고도 바쁘니까, 힘드니까, 피곤하니까 읽지 않았으리라.

 

 

나중에는 본인이 그렇게 말을 하더라.

 

주중에는 회사 일 때문에 바빠서 온 걸 알면서도 확인을 못 했다고.

 

주말에는 나도 좀 휴대폰 신경 안 쓰고 쉬고 싶다고.

 

머리로는 이해를 했는데 솔직히 가슴으로는 이해가 안 됐다.

 

 

전화는 하루 1번 5분 남짓으로 줄어들었고

그마저도 너는 빨리 끊고 싶어 하는 느낌이 들게 했다.

 

내가 마지못해 끊자고 하면 넌 그제야 밝아진 목소리로

"어, 그래. 들어가~ 공부 열심히 하고." 라며 끊었다.

 

 

출근시간 2시간 내내 전화하던 사람이

지하철에 앉아서 간다고 내려서 전화를 하겠다고 했다.

 

지하철 내려서 바로 앞이 회사라서 겨우 3~4분 밖에 통화하지 못했다.

 

 

도서관에서 밤늦게 집에 갈 때 위험하다며 전화하자던 사람이

이제 집에 간다는 카톡에 조심히 들어가라는 답장이 다였다.

 

 

나도 너무 서운해서 투정을 부렸었다.

 

그 때문에 크게 싸웠었는데 네가 했던 말이 참 아팠다.

 

그럼 내가 네 연락을 24시간 기다리고 있어야 하냐고...

 

늘 먼저 내게 연락했던 사람이...

 

그 변화가 참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기분 좋게 술에 취한 어느 날,

밤에 전화가 왔다.

 

3시간 동안 통화했는데 정말 오랜만에 다정하게 하는 통화였다.

 

난 그 통화가 너무 좋아서, 행복해서 네가 날 귀찮아 한다는 걸 애써 외면했다.

 

너도 내가 많이 기다려주고 배려해주는 걸 알고 있다고 했다.

 

혹시 내 마음이 변했다고 네가 느낄까봐 무섭다고도 했다.

 

아, 실은 이렇게 생각하고 있구나.

 

정말 피곤하고 힘들어서 내게 연락을 잘 못하는 거구나.

 

이해했다.

 

 

그런데 다음 날이면 또다시 성의 없는 연락이었다.

 

이러한 반복에 알게 모르게 나는 계속 지쳐가고 있었나 보다.

 

 

광복절이 있던 지난 주말.

 

너는 친구들을 만나러 간다고 했다.

 

대학 친구들인데 둘 다 여자인 친구들이다.

 

늘 여름에 만나서 놀러간다고 말했던 적이 있었다.

 

한 명은 결혼을 해서 남편이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넷이서 놀러 간단다.

 

내게도 나중에 같이 놀러가자고 했었던 기억이 있었기에 잘 다녀오라고 했다.

 

 

아침에 전화를 하고 그 뒤로 계속 연락이 없었다.

 

저녁에 뭐 하냐고 카톡을 보냈는데 읽지 않았다.

 

밤이 되도록 읽지 않아서 조금 서운하다는 말을 하고 잠들었다.

 

 

다음 날 아침이 되어도 읽지 않았더라.

 

혹시 무슨 일이 있나 걱정되어 전화 했더니 끊었다.

 

지금은 전화를 받을 수 없다는 문자가 왔다.

 

친구 집에서 자고 있으려니, 다들 자고 있어서 전화를 못 받으려니 했다.

 

 

점심 쯤 카톡의 1이 사라져 있었다.

 

그러고도 연락이 없어서 오후에 전화를 했다.

 

기분 좋은 목소리로 받았다.

 

운전 중이라고, 친구들한테 인사할래? 라고 묻더라.

 

주위에서 키득거리는 친구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운전 중에는 블루투스로 전화하니까 그러려니 하고 이따 얘기하자고 끊었다.

 

 

그러고도 계속 연락이 없어서 카톡으로 집 갈 때 연락해 달라고 했다.

 

여전히 읽지 않았다.

 

밤에 나도 화가 나서 친구들이랑 있어도 그렇지

카톡 하나 해주는 게 그렇게 힘드냐고 짜증을 냈다.

 

한참 후에 읽었길래 연락을 해줄 줄 알았다.

 

그런데 그대로 씹혔다.

 

 

다음 날 아침에 전화가 오더라.

 

너는 피곤한 목소리로 "여보세요." 라고 하고는 아무 말도 안 했다.

 

나도 화가 나서 "왜 전화 했어. 전화 했으면 말을 해."라고 했다.

 

그러더니 너는 화난 목소리로 "끊는다."라고 했다.

 

어이가 없어서 "왜 전화 했냐구." 했더니

 

"야, 됐어. 할 말 없지? 끊는다." 라며 뚝 끊었다.

 

 

친구들 만나는 데 내가 그렇게 닦달했던 것도 아니고

 

그저 목소리가 듣고 싶었을 뿐인데, 네가 보고 싶었을 뿐인데

 

나랑은 전화도 잘 안 하면서 친구들이랑은 재밌게 놀고 있는 네가 조금 서운해서

 

내 생각도 조금 해줬으면 해서 몇 번 카톡했을 뿐인데

 

그 오랜 기다림 끝에 내게 돌아온 말은 "끊는다."여서 너무 서럽더라.

 

 

네가 속으로는 날 아직 좋아한다고 해도 이런 식으로 대하는 건 아니었다.

 

예전처럼 깨질 듯 부숴질 듯 소중히 다뤄주기를 바란 건 아니었다.

 

적어도 다정하게 대해주기를 바랐던 것뿐인데 네게는 그게 그렇게도 힘들고 귀찮았을까...

 

 

헤어져야겠다고 결심하고 네게 전화를 했다.

 

안 받을 걸 알고 전화를 했다.

 

넌 싸우면 늘 그랬으니까.

 

그래도 역시나 안 받으니 허무하더라.

 

 

장문의 카톡을 보냈다.

 

달라진 네 모습에 내가 너무 힘들다고. 행복하지가 않다고.

 

널 배려해주고 기다려줬는데 넌 끝까지 날 배려해주지 않더라고.

 

 

넌 한참 후에 카톡을 읽었다.

 

그러고 돌아온 답장은 이게 다였다.

 

'알았다.. 잘 지내라..'

 

 

너무 힘들어서 헤어지고 싶은 마음도 분명히 있었지만

 

저 짧은 답장이 끝이라니 너무 허무했다.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넌 받았다.

 

구차하지만 널 붙잡았다.

 

아직 널 사랑하니까.

 

네가 날 다정하게 보던 눈동자를 기억하니까.

 

 

연락 못 해서 미안하다는 한 마디를 바랬을 뿐이라고

 

그런데 너는 끝까지 그 한 마디를 해주지 않더라.

 

자존심 다 버리고 날 위해서 달라져보겠다고 말해줄 수는 없냐고 애원했다.

 

넌 묵묵부답이었다.

 

 

그래서 포기를 했다.

 

포기가 됐다.

 

우린 잘 지내라는 말을 하고 끊었다.

 

난 엉엉 울었다.

 

 

삼시세끼를 꼬박 꼬박 챙겨먹는 나인데 배가 고프질 않았다.

 

어지러워서 이러다 쓰러지겠다 싶어서 억지로 뭔가를 먹었다.

 

집에 가서 술을 마시고 잤는데 잠이 오지를 않더라.

 

술만 마시면 늘 잠이 오는 나인데.

 

겨우 잠들었다가 너를 깨우는 시간에 눈이 떠졌다.

 

그게 또 슬퍼서 울었다.

 

 

네가 변해가는 게 느껴져서 그게 너무 힘들어서 이별을 고했는데

 

헤어지니까 더 힘들더라. 정말 죽겠더라.

 

그래서 동생이 뜯어 말리는데도 불구하고 너에게 카톡을 보냈다.

 

겨우 연락 문제로 헤어지는 건 아닌 거 같다고.

 

날 아직 좋아한다면 한 번 더 기회를 달라고.

 

나도 너무 힘들고 서운해서 그랬던 거라고.

 

 

그런데 넌 퇴근을 하고도 남았을 시간까지 결국 읽지 않았다.

 

난생 처음으로 혹시 내가 카톡 차단이 되었나 싶어서 확인도 해봤다.

 

차단을 하지는 않았더라.

 

그리고 나와 싸우면 늘 나와 관련된 프사를 지우던 너였는데

 

아직 그대로 있어서 자꾸 희망이 생겼었다.

 

 

마지막으로 전화를 했는데 역시 받지 않았다.

 

정말 헤어진 거구나 싶었다.

 

우연히 들었던 네가 전 여자친구들과 헤어진 방식을 떠올렸다.

 

네가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을 말하고 고쳐지지 않으면 그대로 연락을 끊어버린다고 했었다.

 

그래서 혹시 나한테도 그렇게 할 거냐고 물었을 때

 

넌 "그럴 일 없어. 우린 헤어질 일 없으니까." 라고 했었다.

 

 

서럽고 서러웠다.

 

그렇게 날 사랑했던 넌데.

 

처음엔 네가 날 더 사랑했지만, 이젠 나도 널 정말로 사랑하게 되었는데.

 

 

생각해보면 연애 초에는 그렇게 결혼하자고 조르던 네가

 

앞으로의 계획을 세워가던 네가

 

어느 순간부터 결혼이라는 말을 입에 담지 않더라.

 

그 때, 이미 눈치챘어야 했던 걸까.

 

그래도 만났을 때의 너의 다정함이 자꾸 내 발목을 잡았어.

 

 

이제 9월에 학교 갈 날이 얼마 안 남아서 좀 더 참아보려고 했는데

 

우리가 서로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면 이렇게 되지 않았을까 미련도 생기는데

 

이젠 다 끝나버렸다.

 

 

우리의 100일이 되는 날은 시험을 치는 날이다.

 

그러니까 어제 시험이 딱 10일 남은 날이었다.

 

나는 내 시험 합격이 너에게 큰 선물이 될 거라고 생각했었다.

 

합격하면 공무원이 되어서 안정적인 가정을 꾸릴 수 있을 테니까.

 

그런데 넌 회사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인생이 걸린 시험을 앞둔 난 배려해주지 않았고

 

결국 이렇게 날 잔뜩 흔들어놓고 떠났구나.

 

 

공부도 손에 잡히질 않고

 

하지만 내가 시험에 떨어진다고 해도 넌 신경도 쓰지 않겠지.

 

 

우리 정말 사랑했는데, 왜 이렇게 됐을까.

 

어디부터 잘못 된 걸까.

 

 

나 이제 더 이상 생각하지 않으려고.

 

네가 내 마지막 카톡을 안 읽었듯이 이 글도 읽을 일이 없겠지만

 

그동안 고마웠고, 넌 나쁜 놈이었다는 거.

 

그것만 기억할게.

 

 

정말 사랑 받는 느낌이 들게 해줘서 고마웠어.

 

짧은 시간이었지만.

 

 

정말 좋아하는 사람한테 남자는 답장 바로 바로 한다는 동생의 말을 믿을게.

 

넌 그냥 날 더 이상 좋아하지 않은 거라고 생각할게.

 

 

마지막으로 바라는 건

 

언젠가 나 같은 여자를 놓친 걸 후회하게 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