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쓰는 이야기

스푸트니크2016.08.22
조회14,591

친구 생일 파티 겸 주말에 클럽에 간 적이 있습니다.

나이트클럽은 아니고 감성주점 같은 곳인데, 저희는 룸에 있었죠. 전 부킹 그런 건 나이트클럽만 하는 줄 알았는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니더라고요.

 

어쨌든 저희는 룸에서 나가지도 않았는데, 어느 새 여성분들이 저희 룸에 와 있었고, 제 옆에도 앉아 있었고 또 여성분들끼리는 아는 사이도 아니고 뭐 그랬어요. 제가 마지막으로 갔던 클럽이랑은 좀 달라졌나봅니다.

 

 

 

제 옆에 여성 분이 계셔서 전 좀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죠. 말이라도 걸어드려야 하는건지, 뭐 과일이라도 드시라 해야하는 건지. 룸은 ㄷ자 모양이었고, W는 좀 늦게 온다고 해서 그 때는 없었습니다. 제가 난처해 했던 순간이 무색하게, 여성분이 먼저 자연스럽게 말 거시더라고요.

 

운동 하시는 분이세요?, 하고 물으시길래

그냥 취미로 하는 정도라고 말씀드리면서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게 됐죠.

 

 

체대생인 줄 알았어요. 하시길래 그 소리 예전에 많이 들었다 말씀드리니, 그럼 무슨 과예요? 하고 물으시길래 졸업한 지 한참 됐다고 했죠.

아. 일하시나봐요?

라고 묻길래 네. 하고 대답했죠.

그러면서 자기는 대학생이라고 하시길래 그러시냐 하다가 그 분이 먼저 나이를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나이를 말했더니 좀 놀라시더라고요. 절 네댓살은 어리게 보셨더라고요. 기분 좋았습니다.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여성분이 참.. 당당하다고 해야할지 약간 오만하다고 해야할지, 그렇더라고요. 화려한 외모에서 나오는 자신감인가, 싶었죠. 대화를 나눌수록 외모 플러스 학벌에서 나오는 자신감인 거 같더라고요. 자랑하듯이 지식자랑 학교자랑을 은근슬쩍 하셔서, 저도 눈치가 젬병은 아닌지라 대충 느껴졌어요.

 

 

그러다가 대학 얘기가 나왔는데, 저희 학교 후배더라고요. 조금 신기했어요.

근데 생각 외로 학교 밖에서 동문을 만난 적이 많아서 그렇게 많이 놀랍진 않았어요.

 

제가, 동문이네요. 라고 말씀드리니까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네? 거짓말. 하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학교를 굳이 거짓으로 말해야 할만큼 우리 학교가 그렇게 명문대는 아닌 것 같은데요. 라고 말씀드렸죠. 사실 저희 학교에 대해선 저도 나름의 자부심은 있지만, 넘치는 자만감이 좀 거북해서 그렇게 말했어요.

 

제 말을 못 믿으시는지 학교에 대해서 몇 가지 물으시더라고요. 일련의 테스트를 통과하고 나니, 저에게 친근함을 느끼신건지 의외성을 느끼신건지 태도가 조금 달라지셨죠. 그러거나 말거나 저에겐 그 분의 태도나 생각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고요.

 

 

 

어쨌거나 그 여성분과 대화를 나눌 때쯤 W가 문을 열고 들어왔고 시선이 일제히 W에게 향했죠. 저 역시 W를 봤고, 제 옆자리를 가리키며 앉으라 했죠. W가 저와 옆에 앉은 여성분을 번갈아보더니, 바빠 보이는데. 라고 말하곤 제 앞자리에 앉았죠.

 

그러곤 다른 친구들과 대화를 하며 아예 절 없는 사람처럼 쳐다보지도 않길래, 그 때부터 W가 신경쓰이기 시작했죠. 제가 W를 다소 소극적이고 사회성이 결여된 사람처럼 묘사했던 것 같은데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W는 말수가 없는 편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사람들을 쉽게 끌어들이는 편이죠. 적극적이지 않음에도 사교성이 좋아요. 어딜가나 잘 어울리는 편이고. 그것도 뭐 W가 내킬 때라야 해댱되는 말이지만.

 

 

여성분은 제가 같은 학교 출신이란 사실이 반가웠던건지 더 적극적으로 친밀감을 표시했고, 전 그 분과 대화를 하고 있음에도 온 신경이 W에게 가 있었어요. 대놓고 W를 쳐다보는데도 W는 절 보지 않았고 자기 주변사람들하고만 대화하더라고요.

 

저 보라고 그러는건지, 아니면 정말 내가 신경쓰이지 않아서 그런건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그렇게 약간의 시간이 흐르고 W의 시선이 느껴져서 W를 바라보게 됐고, W는 저와 옆의 여성을 번갈아봤죠. 그 즈음에 여성분이 제게,

밖에서도 연락할 수 있어요, 선후배로? 하고 물었죠.

 

제 시선이 앞에 고정되어 있으니 여성분도 느끼신건지 W를 쳐다봤고요. 저희에게만 약간의 정적이 흐르는 느낌이었죠. W가 그 여성분한테, 관심있어요? 하고 물었어요. 여러번 말했다시피 W는 하고 싶은 말은 다 하고, 주변 사람들은 신경쓰지 않아요. W의 관심있어요? 라는 질문은, 여성분에게 한, 저에게 관심있냐는 의미의 질문이었고 그 말을 듣자마자 전 난처해졌죠. 그 대답이 뭐든 간에 질문 자체가요.

 

 

여성분이 네? 하고 묻자 W가 절 힐끔 가리키더니

여자친구 있어요. 난 없고.

 

라고 말했죠.

전 여자친구가 있고, W는 없다는 말이었죠.

둘 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었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죠.

 

난 없고, 라는 말은 대놓고 작업거는 멘트가 아닌가 생각했죠. 그런 W의 태도를 맞닥뜨리면 전 초조해져요. 경쟁에서 이길 자신도, W의 심술을 당해낼 자신도 전 없으니까.

 

 

분위기가 굉장히 어색하게 흘러가는 것 같아서, 여성분께 밖에서 담배 좀 피고 오겠다고 했죠. 룸 안에서도 다들 흡연을 했고, 전 비흡연자였지만 마땅히 자리를 피할 구실이 안 떠올랐어요. W한테, 같이 나갈래? 하고 물으니 W가, 아니. 하고 대답하길래 제가 어색하게, 내가 담배가 없어서 그래. 라며 연기를 하곤 W를 일으켜세우려 손을 뻗으니, 그제야 일어서더라고요.

 

그리고 같이 밖으로 나왔죠.

걸으면서 제가, 왜 너가 솔로냐. 하고 물었죠. W가, 그럼? 하고 심드렁하게 대꾸하길래 제가 다시 말했죠.

난 언제부터 여자친구가 있었고?

 

W가 절 쳐다보길래,

난 여자친구 없어. 대신 애인은 있는 거 같은데.

라고 말했는데 딱히 대꾸하지도 제 말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도 않더라고요.

 

 

같이 편의점 가서 음료수 하나 사마시면서 바깥 공기를 쐬다가,

꼬시려고?

하고 물었죠.

 

제 태도가 W에게 거슬렸든 어쨌든, 난 없고. 라는 W의 말은 영 신경쓰이더라고요. W가, 너 하는 거 봐서. 라고 대답했는데 그 대답이.. 그냥 왠지 굉장히 색기있게 느껴졌여요. 웃을 듯 말 듯한 표정도 섹시했고.

 

제가 W한테, 키스할래? 하고 물었죠.

W가 음료수를 마시다말고 절 보더니 웃더라고요. 그리곤, 아니. 라고 대답하길래

난 할래. 하고 말했죠. 그리고 음.. 키스했죠. 물론 다른 곳으로 데리고 가서.

 

 

갑자기 클럽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예전에 대학생 때 W랑 저랑 다른 친구들이랑 클럽에 간 적이 있었다고 했는데..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그 때 W가 제가 보는 앞에서 다른 여자랑.. 아니 처음 본 여자랑 키스를 했다고.

 

그랬던 기억이 있어서, 전 W는 뭐라도 할 것 같아요. 제 어떤 태도가 W 마음에 안 들면.

아무리 지금 W와 제가 긍정적인 관계라고 해도, 수틀리면 언제든 저 아닌 누군가와 뭐라도 할 것만 같고.. 클럽 룸에서 제 옆에 있던 여자도 언제라도 데리고 나갈 것만 같은 불안함이 있어요 전.

 

 

 

 

주말 아침에 같이 운동을 한 적이 있어요.

너무 더워서 운동하면서도, 괜히 아침에 운동했다 싶었죠. 운동할 땐 W도 땀을 흘리기는 하지만  많이 흘리지는 않는데, 전 더운 여름날의 아침에 운동을 하니 정말 땀이 많이 나더라고요. 운동할 땐 괜찮은데 집으로 돌아가는 길엔 몹시 찝찝해서, 제가 계속 티셔츠를 펄럭거리면서, 빨리 씻고 싶다. 라고 중얼거리고 있었죠.

 

그리고 W 집으로 갔는데 W가 저보고 먼저 씻으라고 하더라고요. 원래라면 항상 W가 먼저 샤워하는데, 그날은 제가 너무 불쾌해서 먼저 씻게 됐죠. 운동화 벗고 들어가자마자 샤워를 했고.. 그리고 샤워하고 머리를 털면서 나오는데. W는 여전히 신도 벗지 않고 현관에 서 있더라고요.

 

못 들어오는거예요 안 씻은 채로.

아니 들어오더라도 소파든 침대든 바닥이든 못 앉는 거죠. 그래서 아예 안 들어오는거고.

 

 

그런 W를 보면서 고마운 마음도 들었지만 미안한 마음이 상당했죠.

그렇지만 아무렇지 않게 그냥, 다 씻었으니까 너 씻어. 하고 말했어요.

 

자신의 배려를 상대방이 눈치채는 걸 굉장히 싫어해요. 참 까다롭습니다.

제가 고마워한다거나 미안해하면, 그게 쑥스러운건지 낯뜨거운건지 어쨌든 싫어하더라고요. 그래서 속으로 미안해하고 앞으로는 찝찝해도 참아야겠다, 생각만 합니다.

말했다시피 저희가 참 대화가 없어요. 감정에 대한 공유도 없는 편이고.

 

 

 

요새 주말이 아니라도 자주 같이 잡니다. 평일엔 제가 W 집에 자주 찾아가요. 제가 먼저 침대에 누워 있으면 W가 자기 전에 또 손을 씻고 와요. 다시 샤워할 때도 있고.

 

W가 제 옆에 눕는 기척이 느껴지면, 선잠을 자다가도 일어나서 W 손에 핸드클림을 발라줍니다. 제가 일어나려고 하면 W는, 그냥 자. 하고 절 억지로 눕히려고 하지만 전 굳이 일어나죠. 이유는 모르겠는데 제가 W 손에 핸드크림을 발라주는 게 전 그렇게 좋더라고요. 제가 뭐라도 된 것 같아서.

 

아마도 제가 조금이라도 W에게 필요한 인간이었으면 좋겠다 싶은 바람 때문이겠죠.

 

 

 

얼마 전에 제 방 에어컨이 고장난 건지 시원한 바람이 안 나온 적이 있어요. W랑 같이 저희집에서 보낸 날인데 열대야라 그런지 선풍기만으로는 너무 덥더라고요. 자다가 일어나서 샤워하고 다시 잠들어도 더위에 쉽게 잠이 들지 않더라고요.

 

제가 계속 잠 못 이루고 뒤척거리니까 W가, 더워서 못 자겠어? 하고 묻더라고요.

자는데 방해한 것 같아서, 어 미안. 넌 얼른 자. 하고 저도 옆에 누웠죠. 그러다 W의 팔이 닿였는데 너무 시원하더라고요.

 

물론 W에게는 뜨거웠겠죠 제 살결이. 근데 W의 피부가 너무 시원해서 기분이 좋더라고요. 제가, 뜨겁지? 하고 물으니까 W가, 별로. 라고 대답하더라고요.

그래서 계속 W의 살결은 만져댔죠. 기분이 좋아서. 팔도 만지고 옷 안으로 손을 넣어 만지기도 하고.

 

옆에서 W가 피식피식 웃더라고요. 제가 왜 웃냐 물으니까, 진짜 더운가보다 싶어서. 라고 대꾸하더군요. 저는 티셔츠를 안 입고 자고, W는 여름에서 반팔셔츠를 입고 잡니다. 근데 그 날 W가 셔츠를 벗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뭐야. 그럼 더 만질건데.

라고 말하니까 W가 또 웃으면서, 어. 라고 대답하길래

이기적이지만 뒤에서 끌어안고 잤습니다.

 

W는 더웠겠지만, 전 정말 시원하고 기분좋게 잠들었어요.

 

 

마지막 글이랑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난 건 아니었지만, 나름의 일들이 있어서 글이 굉장히 길어진 것 같습니다. 

 

 

더위가 한 풀 꺾였는데, 편안한 밤 되시길.

또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