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카페 반한 카페에서 있는글 퍼온것입니다.열받아

무명씨2004.01.17
조회425

네이트에서 알려준대로 이 사이트 가봤는데 열받아 죽는줄 알앗어요..나쁜넘들이예요..

전부 15~18세 사이의 회원들이던데.아이들이라고 하기엔 너무 구체적이라서..제가 보긴 일본넘들이 가라로 아디 만든거 같단 생각이 들어요..올려볼께요..보시고 흥분하지 마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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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모 골통반일카페에서 전체멜로 날린 글입니다 ㅋㅋㅋ
가만보니 웃기네요 ㅋㅋㅋ
일본이 백제를 지배한 엄연한 역사를 부정하는군요^^
일본천황이 백제와 신라 등 삼한 전역을 다스린 역사가 자기네들이 그리도 떠받드는 광개토대왕비에도 있는데 말이죠^^
일본천황이 삼한을 지배하고 있는 것을, 광개토대왕이 남침해서 해방시켰고 이 사실을 오래 널리 알려 대왕의 업적을 기리기리 보존하자는게 광개토대왕비의 주취지 아닙니까? ㅋㅋㅋ
그 당시 이미 왜는 백제의 상국이었습니다.
그래서 신라 박제상이도 일본가서 볼모로 잡힌 신라왕자들을 구출해 오지 않습니까?
이 일은 광개토대왕 후 수십여년의 일이죠.
또한 광개토대왕은 신라를 점거하고 있던 왜군 5만을 무찌르기도 하지요.
이럴 정도로 왜는 당시 고구려와 어깨를 나란히 동아시아 최강국이었습니다.
백제와 신라가 되려 왜의 속국이었던 시대였습니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백제가 곧 왜, 일본과 한 나라라고 주장하는 바입니다만.. 어쨋든 이 당시 광개토대왕의 남하 시기를 전후해서 백제-신라-가야를 포함하는 삼한지역보다는 일본의 나라지역이 보다 우위를 점하던 시기였습니다.
삼한보다 일본지역이 더 앞장서서 동아시아를 선도하던 시대였다는 소리입니다.
이 동아시아의 당대 최강 세력 고구려와 왜(일본)과의 한판승부가 당시 광개토대왕의 남하였습니다.
이 광개토대왕의 남침으로 일본의 천황은 백제지역의 상당한 영토를 잃고 삼한에 대한 영향력을 크게 상실하게 됩니다.
그리고 차차 신라와 가야지역에 있어서도 고구려의 지원을 받은 신라와 가야로 인해 점차 이 지역에 대한 연고권도 상실하게 됩니다.
오래동안 혈연지간이었던 한 집안이었던 백제왕실만은 백제멸망때까지 연고권을 상실하지 않게 됩니다.
따라서 앞서 주장한 필자의 생각대로 그 당시 역사를 판단해 보신다면, 우리가 흔히 상식적으로 알고있는 삼국과 일본과의 관계에 대해 다소 어긋나게 보이는 광개토대왕비의 왜가 백제-신라를 파하고 속민으로 삼아,광개토대왕이 이를 저지했다는 구절이 이해가 가고도 남을 것입니다.
후대에 쓰여진 사료보다 당시에 작성된 비석, 문헌이 더욱 신뢰가 높다는 것은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이라면 상식적으로 알수 있는 내용입니다.
광개토대왕비는 조작이 없습니다.
엄연한 사실입니다.
더 보탤것도 뺄 것도 없습니다.
광개토대왕비의 주기사는 당시 동아시아의 최강국이자 라이벌이었던 고구려 광개토대왕과 대일본제국 응신천황과의 벌어졌던 전쟁과 힘겨루기를 담은 생생한 역사의 보물이며 지금 현재에도 고스란히 남아 당시의 역사를 생생히 전해줍니다.


우스개삼아 하나 참고로 언급하면, 시험에 가서 몇 번 찍을까 고민하다가 다 틀리는 경우있죠?
그럴때 대부분 뒤에 후회하는 경우를 보면, 첨에 찍어던게 답인 경우가 많습니다. 괜히 이게 아닐까 저게 아닐꺼야 하며 고민하며 답을 고친 경우 영락없이 오답을 찍게 됩니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십시오.
있는 것 그대로 받아들이고 판단과 평가는 뒤에 하십시오.
조센징들이 흔히 부정하던 광개토대왕비, 삼국사기, 화랑세기 ... 결국 다 진실로 드러나고 있지 않습니까?
엄연한 사료를 부정하고, 역사를 왜곡날조하며 조센이 대륙에 있었다느니 화랑세기는 일본인이 꾸며쓴 것이라느니, 광개토대왕비는 일본인 장교가 조작한 것이라느니 ㅋㅋㅋ 지들이 불리하면 무조건 그 원작자나 발견자의 약점을 지어내서라도 부정하며 왜곡하고, 자기들에게 유리한 것이 없으니 규원사화이니 환단고기니... 당시에 존재하지도 않던 사료를 최근 몇십년 내에 만들어내서 사실인양 왜곡날조하고...
역사왜곡을 하는 장본인들은 다른나라사람이 아닙니다.
바로 여기 있는 조센징, 당신들입니다.
역사는 있는 그대로 배우는 것입니다.
있는 그대로 판단하고 해석하는 것입니다.
주관이나 픽션이 개입되었다면 그것은 역사가 아닙니다. 소설, 환타지이 일뿐이죠.
앞으로도 그러고 싶은 조센징분들은 소설이나 환타지물이나 찾으로 가십시오.
엄연한 역사를 픽션과 환타지로 뒤범벅해 세계대문화문명 앞에 엄숙하고 경건해야 할 역사를 개시정잡배들의 안주거리로 전락시키지 마시고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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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개토태왕(廣開土太王)비 신묘년(辛卯年) 부분의 바른 해석

광개토태왕 비문의 신묘년 부분은 지금까지
일본서기, 칠지도, 송서 등과 함께 일본의 임나일본부설의 근거가 되어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들의 역사 왜곡을 막고 신묘년 부분을 바로 보려는 노력으로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일본은 신묘년조를 임나일본부의 근거가 만들기 위해

百殘新羅舊是屬民由來朝貢而倭以辛卯年來渡海破百殘□□新羅以爲臣民 을
백제와 신라는 옛날부터 속민으로써 조공을 하여왔는데, 왜가 신묘년이래로 바다를 건너와 백제, 임나, 신라를 파하고 신민으로 삼았다.

라고 해석해 왔습니다.
즉 이 부분 끝의 백잔과 신라 사이의 파손된 글자를 임나라고 넣어서 해석한 것입니다.

이에 대항하기 위하여 한국의 정인보 선생님과 다수의 한국 학자들은

왜가 신묘년에 침입해 왔기 때문에 바다를 건너가서 쳐부쉈다. 백잔이 신라를 쳐서 신민으로 삼았다.

라고 해석해 왔습니다.

하지만 양측의 해석은 모두 큰 문제를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먼저 일본측의 해석의 문제는 문맥상 전혀 맞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태왕비의 내용은 처음부터 끝까지 대부분 태왕의 공적을 찬양하는 것이고, 주어는 태왕입니다
그런데 일본측 해석의 신묘년 부분에는 왜가 백제, 임나, 신라를 쳐서 신민을로 삼았다고 나와 있습니다.
즉 비문의 찬양 성격을 볼때 당연히 쓰지 않았어야 할 내용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만약 신묘년 부분 이후에 태왕이 왜를 공격하는 내용이 바로 나온다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하지만 전혀 그런 언급이 없이, 태왕은 백제를 공격합니다.
왜가 백제를 신민으로 만들었는데, 태왕은 백제를 공격했다?
그렇다면 태왕은 명분없는 전쟁을 한 것이며,
(비문에 비려를 공격할 때나 동부여를 공격할 때나
모두 명분이나, 이유가 꼭 있습니다.
하지만 백제 공격에는 명분이 없습니다.)
어려움에 빠진 백제를 공격하는 비도덕한 인물로 그려지게 되는 것입니다.
과연 장수태왕은 자신의 아버지가 그런 인물로 후대에 보여지게 원했을까요?
이는 분명히 신묘년 부분은 다르게 해석해야 한다는 근거입니다.

그렇지만 한국측 해석도 큰 문제가 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한국의 해석은 한문의 어법에 맞지 않습니다.
한문은 대부분 물이 흐르듯 편안하게 해석됩니다.
하지만 이 해석은 순탄하게 해석되지 않고, 주어도 문장내에서 갑자기 바뀌며,
조금 억지가 있다는 느낌까지 들게 합니다.
또 그래서 국제학술회에 내놓지도 못했죠.
그런데 저는 이런 해석을 정인보 선생님이 하셨다는 것이 더욱 놀랍습니다.
이 분은 논문을 한글보다 한문으로 쓰시는 것이 편할만큼 한문에 능통한 인물입니다.
이를 볼때 저는 한국 학자들을 위해 그분이 먼저 희생하신 것은 아닌가까지 생각되었습니다.
즉 그분은 일본의 해석이 한문 문법상 완벽하다고 생각하신 것입니다.
결국 정인보 선생님의 해석때문에 일본의 해석이 맞지만, 당시 국제 정세상 신묘년 부분은 허구라는
사학계의 탐구성이 없음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주장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그 해석이 문맥에 전혀 맞지 않는다는 것도 모르고 말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이 두가지 해석을 모두 버리고 새로운 해석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래서 비문의 전체적인 내용의 흐름과,
일본이 '임나'라고 일방적으로 주장하던 파손된 부분을 중심으로 공부해본 결과,

九年己亥, 百殘違誓與倭和通
구년 을해에 백잔이 맹세를 어기고, 왜와 통한후 한 무리가 되자

라는 부분을 발견했습니다.
즉 태왕은 백제에게 왜와 연합하지 말라는 맹세를 한 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비문의 어디에도 백제와 왜가 연합했다는 내용은 나오지 않았고,
그래서 저는 신묘년 부분이 백제와 왜가 연합해 어디를 공격했다는 내용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파손된 부분이 두 글자라고 볼 때
하나는 연합한다는 뜻인 '聯', 나머지 하나는 침략한다는 뜻인 '侵' 이라는 것이죠.

이를 바탕으로 해석해 보면,

百殘新羅舊是屬民由來朝貢而倭以辛卯年來渡海破百殘聯侵新羅以爲臣民
백제와 신라는 옛날부터 속민으로써 조공을 하여왔는데, 왜가 신묘년이래로 바다를 건너와 백제를 파하고 신라를 연합해서 침공해 신민으로 삼았다.

라는 해석이 됩니다.
이 해석은 문맥이 이상하지도 않고, 문법도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다만 문제는 '왜가 백제를 파했냐?'입니다.
이 문제는 고구려가 백제를 보는 시각과 당시 백제와 왜의 세력을 살펴보면 풀리게 됩니다.

고구려의 입장에서 백제는 불구대천의 원수입니다.
백제는 광개토태왕의 할아버지 고국원왕을 죽였으며,
당시 삼국중 최강대국이었습니다.
또 백제는 고구려를 항상 위협했고,
이런 당시 상황때문에 고구려의 왕족은 왕권을 다른 부에 넘겨줄 위기에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비문에서 백제는 매우 심한 욕인 백잔이라고 기록됩니다.
그리고 구시속민 유래조공(속민이었고, 조공을 해왔다.)이라는 왜곡까지 감행합니다.
당시 백제가 고구려 보다 강국이었고, 조공을 했다면 고구려가 백제에 했을텐데 말입니다.

결국 고구려는 백제를 공격할 수 밖에 없었고, 신묘년 부분은 그 명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그 명분인
'왜국이 백제를 파하고, 신라를 백제와 연합해서 침공해 신민으로 삼았다.'
는 내용은 당시 백제와 왜의 세력을 비교해보고,
고구려의 백제에 대한 시각(깍아내리려고 왜곡까지 감행함)을 종합해 볼때,
백제와 왜가 연합해 신라를 신민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에
왜가 백제를 파했다는 왜곡을 섞어서 만든 허구의 명분이라는 것입니다.
(1 . 왜는 6세기에나 철기국가라고 할 수 있었고, 백제는 당시 강력한 철기국가였음 2 . 당시 일본 열도는 혼란의 시대였고, 강력한 율령국가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해외에 군사력을 집중시킬 힘이 없었음)
즉 고구려는 백제가 아주 약한 국가로 비추어지길 원했던 것입니다.

만약 백제가 왜에게 당했다면, 다음 기록부터는 백제는 왜로 기록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백잔(백제)이란 기록은 신묘년 이후에도 계속 보이고
왜와 백제의 관계는 주종의 관계가 아닌 연합의 동등한 관계로 비춰지며,
위에서 언급한 바대로 태왕이 백제를 공격한 이후에 한 맹세는 왜와 연합하지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태왕비의 신묘년 부분은 백제와 왜가 연합해 신라를 공격했다는 내용이고
고구려의 백제 침략에 이용된 명분이었으며,
그 내용은 당시 국제 정세에 따라 해석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한국과 일본의 학자들은 문맥과 문법에 따라 다시 그 부분을 봐야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