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자살했답니다.

ㅇㅇ2016.09.02
조회4,764
어디서부터 뭘 어떻게 적어나가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그제 새벽에 엄마가 죽었다는 연락을 받았고
이틀동안 정말 미친ㄴ년처럼 소리 내 끅끅거리며 통곡을 하다

눈물이 멈추면 술을 마셨고 그러다 혼자 또 울다 술 먹다
쇼파에 누워 잠들고 일어나면 또 술을 먹고 울다 지쳐 잠들었습니다.

제 나이는 올해 23살입니다.
직업은 요양원에서 요양보호사로 일 하고 있고 장녀로 태어났습니다.

제가 10살이 되던 해였고, 남동생이 7살이 된 해였습니다.

옛날 얘기를 하자면

어릴적엔 초등학교를 마치면 학원을 5-6개정도 다닐만큼
집안 형편은 넉넉했었습니다.

그러다 집에 컴퓨터를 들였고, 엄마는 한게임으로 오목게임을 하다

몇 번 바람나기 일쑤였습니다.

9살 어린나이에 엄마는 날 데리고 집 앞 산책나가는 척 하며 나가서는

나를 공중전화 박스 앞에 세워두고 엄마는 인터넷게임으로 바람 난 남자랑 그렇게 통화를 하기를 수차례,

집으로 택배가 와 열어보니 보석상자 하나가 들어있었습니다.

그 안에는 엄마의 바람 난 남자의 사진과 편지가 들어있었고
엄마는 나에게 그 남자의 사진을 보여주며 "새아빠 잘생겼지?"하며 묻곤 했습니다.

어렸던 나는 해맑게 그렇다 대답을 하고 엄마랑 행복하게 웃었어요.

어떤날은 타자가 느린 엄마가 당시 컴퓨터 학원을 다녀 타자가 빠른 나에게

게임 쪽지 좀 대신 써달라셨고 나도 당신 보고싶다. 몸이 너무 달아오른다 등의 음담패설이였고 상대에게 온 답장은 당신 ㅂㅈ를 빨고싶다는 내용의 더 심한 음담패설이였어요.

또 어떤날은 당시 집 전화기가 두개였는데 엄마가 안방으로 들어가 오랫동안 안나오길래 뭐지 하고 거실 전화기의 수화기를 들었는데 남자와 여자의 신음소리가 들렸습니다.

이 모든것들이 어릴 땐 어떤거였는지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그러다 엄마는 결국 제가 10살이 되던 해에 도망을 갔고

얼마 안있다가 정식으로 이혼 한 걸로 알고있습니다.

저희 엄마는 그런 사람이였습니다.

도망갈적에는 아빠의 모든 재산을 다 털어갔고 집까지 넘긴 상태였고

저랑 동생의 학원비도 몇달치를 빼돌려 다 밀린 상태였고

그렇게 우리집은 급격하게 가난해져갔습니다.

그렇게 3년을 살다 제가 13살이 되던 해 엄마랑 아빠는 다시 재혼을 했습니다.

그 동안 연락하고 지냈더라구요. 뒤늦게 알았습니다.

그렇게 좁아진 집이였지만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네가족 다시 행복하게 살다가

아빠 퇴근길에 큰 교통사고가 있었습니다.

그 일로 아빠는 대학병원에 1년가량 입원해계셨고

엄마는 두 달 정도 식당일하면서 간호를 해주시다 또 도망 가버렸습니다.

그 뒤로는 아빠도 엄마의 생사를 모르며 지냈습니다.


남동생이 14살이 되던 해 다니던 중학교에서 장애인검사를 권유 받았습니다.

또래보다 단지 말을 잘 못하고 공부를 못한다 생각했던 동생은 그렇게 지적장애2급 판정을 받았습니다.

어릴 적 심하게 방황했었던 저는 고등학생이 되고나서 차츰 현실을 깨닫기 시작했고 그렇게 알바를 시작했고 동생을 챙기고 집을 챙기고 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동생 도움반 담임선생님께서 전화가 와서 엄마가 학교로 연락이 왔더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놀래서 하던일을 바로 멈추고 통화를 이어가니 엄마가 우리가 사는 지역과 동네를 아니 중학교 전부 전화를 돌리고 동생 이름을 대가면서 동생을 찾았고,

그렇게 다시 연락이 닿았습니다.

엄마는 새가정을 꾸려 수도권에 살고 있었고 때마다 휴가도 가고 여행도 가고 행복하게 잘 사는 듯 보였습니다.
그렇게 1년가량 매일같이 연락하고 왔다갔다 하며 엄마 얼굴도 보고 엄마의 새 가족들도 보고 지냈습니다.

엄마의 새가족에겐 지금 나이로 28살, 26살 남자 쪽 아들 두 명도 있었습니다

1년가량 연락을 하고 지내다 엄마는 제가 꿈이 있다는걸 알게 됐고, 집이 가난한덕에 못 이룬다는걸 알게되고는 엄마가 있는 곳으로 와서 같이 살길 권유했고,

저는 동생때문에 몇 달을 고민하다 지금 동생 조금 고생시키고 내가 성공해서 챙기는게 맞다싶어 짐을 싸서 지방에서 엄마가 살고있는 곳으로 집을 옮겼습니다.

그렇게 세 달을 살다 안좋은이유로 다시 혼자 나오게 됐고 전 8평짜리 원룸을 얻어 혼자 지냈습니다.

그렇게 몇 개월을 지내던 도중 새벽 문 두드리는 소리에 나가보니 만신창이가 된 엄마가 문 앞에 서있었고,

원인은 같이 살던 아저씨의 폭력이였습니다.

끝끝내 신고는 반대하던 엄마때문에 신고는 못하고 저희집에 며칠 지내게 했습니다.

그러다 엄마는 아예 짐을 싸 나왔고 좁은 집에 같이 살기 힘들다하길래 내 명의로 대출을 받아 엄마 살 투룸을 잡아줬고, 한 달 뒤엔 생활비가 없다고 일 시작했으니 잘 갚겠다고 카드를 만들어달라길래 한도 250만원짜리 신용카드를 만들어주고 나오면서 아들명의였던 폰을 정리하고 내 명의 휴대폰도 해줬었습니다.

그렇게 또 몇 달을 살다가 퇴근을하고 집에 가니 도둑 든 것 마냥 개판이였고, 엄마한테 전화를 하니 전화기는 꺼져있었습니다. 경찰에 신고를 하고 찬찬히 찾아보니 선물받았던 귀금속, 마크제이xx 시계 2개, 중고휴대폰 8개 여튼 많은게 없어져 있었습니다. (폰 대리점 일 할 당시여서 인센티브 대신 받았던 중고단말기가 많았습니다.)

이게 엄마의 마지막이였습니다.

신용카드는 한도를 꽉 채워 썼고 내가 잡아준 집의 보증금 500만원도 다 챙겨서, 내가 해 준 휴대폰도 소액결제 금액 꽉 채워서 그렇게 잠적했고 이게 마지막이였습니다.



엄마는 우리 아빠와 결혼 이전에 다른 남자 사이에서 낳은 딸도 있었습니다. 제 앞에서 밤마다 그 여자의 이름을 부르면서 울면서 편지를 쓰는 모습도 몇 번 봤습니다.

우리 엄마는 이런 사람이였습니다.
모성애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던 사람이였습니다.

그렇게 엄마한테 뒷통수를 맞고 정말 증오하고 혐오하고 만나면 쌍욕을 할거라고 가장 싫어하며 지금 껏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랬던 엄마가 스타킹으로 목을 매 죽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통화를 하고 몇시간은 그냥 멍했습니다.

페이스북도 똑같이 하고 카톡도 똑같이 하고 아무 생각이 안들었습니다. 근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자꾸 우울했고 미쳐갔습니다.




안갈랬었는데, 정말 너무 싫어서 안갈랬었는데
오늘 오전에 장례식장이 있는 곳 으로 가는 버스를 탔습니다.

이 글을 제가 왜 적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냥 버스안에서 너무 답답하고 무서운 마음에 적다보니 길어졌네요...

나는 가서 어떻게 해야 될 지 모르겠습니다.

너무너무 무섭고 버겁습니다.

나도 평범한 가정과 평범한 엄마를 갖은 평범한 집에서 태어난 또래와 다를 것 없이 평범한 23살이 되고 싶은데 너무 힘이 듭니다.

내가 여기서 어떻게 하는게 맞는건지 모르겠습니다.

막상 도착해서 들어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폰으로 쓴 거라서 엔터가 보기 불편하셨을건데 긴 글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